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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춘매 / 장춘식
2015년 09월 17일 20시 14분  조회:3907  추천:0  작성자: 죽림
 

일상과 꿈, 그 사이를 방황하는 시혼

―전춘매의 시집 《느끼며 살아가며》―

 

장 춘 식

 

  남성이 문단을 지배하던 시대는 이제 옛날이야기가 되여가는것 같다. 격세지감이다. 시단 역시 마찬가지다. 정확한 통계는 내보지 않았지만 신인중 거의 반은 녀류시인인것 같다. 수적으로만 그런것이 아니다. 녀류시인들은 당당한 력량과 기량을 자랑한다. 전춘매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첫 시집으로 펴낸 《느끼며 살아가며》(민족출판사, 2003년 5월)에도 그런 력량이 느껴진다. 전체 5부에 모두 101편의 시를 수록하고있는데 신인으로서는 소재별로 보나 주제별로 보나 또 량적으로 보나 상당히 풍성한편이다. 치렬한 시인의 삶의 궤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다.

  시집의 시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크게 동(상대적 움직임)과 정(상대적 정지)의 성격을 뚜렷이 드러낸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제3부 《등대지기》와 제4부 《장독》의 시들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시상이 주체를 이루는 반면에 제2부 《도시비둘기》와 제5부 《리향(離鄕)》의 시들은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시상이 주체를 이룬다. 그리고 제1부 《무상》의 시들은 그러한 동과 정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있으면서 한차원 높은 경지를 개척하고있다. 이른바 도시적상상력의 소산이라 할수 있는데, 본고에서 주로 관심을 가진 부분은 바로 시인이 새로운 비상의 꿈을 펼치고있는 이 도시적상상력의 시들이다.

  물론 인생의 철학적원리를 담고있는 《등대지기》의 시들과 민족적인 정체성이나 공동체의식을 담고있는 《장독》의 시들은 시어가 정제되고 상당 정도의 원숙미를 보이고있는게 사실이지만 동시에 참신성과 력동성이 떨어지는 약점을 드러내고있다. 어떻게 보면 습작기의 형식미집착에서 비롯된것이라 할수도 있다. 시인의 성장단계로 보면 산업화시대 도시인의 일상적삶을 약간은 자조적 혹은 비판적 시각으로 그리고있는 《도시비둘기》나 그러한 산업화의 부산물로서 빚어지고있는 농촌사회의 공동화(空洞化)를 문제삼고있는 《리향(離鄕)》의 시들은 제2단계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제 이런 단계를 뛰여넘으려는 시도가 바로 이 제1부 《무상》의 작품이 되는것이다.

 

  《무상》의 시들에서 일차적으로 발견되는것은 자신과의 대화이다. 즉 시적화자는 또다른 하나의 의식적존재와 대화하면서 삶의 의미와 무의미를 모색한다. 그러나 언제나 똑부러지는 답은 없다. 다만 존재한다는 자체가 진리일뿐이며 따라서 화자는 일상에 묻혀살다가 그 일상에 의하여 실존이 잊혀져가는것에 대해 몸부림치며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체념하는듯이 보이기도 한다.

  먼저 시집의 첫 작품으로 수록된 《무제》를 보자.

 

내 생에 십자가가 있어

내 삶이 죄 되였을가

 

나는

나를 마주하기 부끄러워

거울 하나

영원히 사이두는수밖에

 

시간으로 재일수 없고

공간으로 볼수 없었던

고집스런 옛 도로표식

마음에서 색바랜다

 

무너지는 울바자사이로

꿈틀대는 야망이 주렁지고

탐스러운 유혹에

나는 그만 나를 잃어버렸다

 

마지막

초불이 꺼지기전에

나는 나를

나같이 찾아야겠는데

 

그저 마음밖에서 서성일뿐이다.

 

  《무제》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꿈과 삶의 신조로 삼았던것이 어느 순간 완전히 무의미해진다.(《고집스런 옛 도로표식/마음에서 색바랜다》) 이는 다시 말하면 과거의 도덕 혹은 가치기준이 무너졌다는 말이 되겠는데, 그러한 《무너지는 울바자사이로》 야망 혹은 유혹이 자라나고 그러한 야망과 유혹을 피하지 못해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즉 과거의 가치기준을 상실한채 새로운 가치기준은 확립하지 못하고있다. 그래서 추구의 동력이 사라지기전에(《초불이 꺼지기전에》) 나다운 나를 찾아야 하는데, 즉 스스로의 가치기준을 확립해야 할텐데 그러한 마음과는 달리 가치지향은 쉽사리 확립되지 않고있다. 그래서 방황한다. 시인의 표현을 원용하면 마냥 《그저 마음밖에서 서성일뿐이다.》 시인은 이 한행을 특별히 떼내여 하나의 련을 만들고있다. 주제도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것이라 판단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그만큼 방황의 정도가 절실함을 강조한것이기도 하겠다. 2천년대 벽두 우리의 자화상이라 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날 우리가 지향했던 혹은 우리 사회가 지향했던 가치기준이나 인생의 목표는 분명 해체되였거나 해체되고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치기준이나 삶의 목적이 확립돼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고 과거의 가치기준을 일부나마 대체하고있는 새로운 《가치기준》은 이른바 실용주의라는것인데, 사실 실용주의라고 하는 가치지향은 국가적인 개발제일주의에 의해 물신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고있다. 이에서 비롯된것이 시인이 말하는 이른바 《꿈틀대는 야망》이고 《탐스러운 유혹》이라 하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에서 화자의 고민이나 방황이 곧 현대인의 자화상이라는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고민이나 방황을 또다른 형태로 드러낸것이 《역설》이다. 일상적인 모색이나 탐구의 방법을 뒤집어 생각해본것이라 하겠다. 하늘과 땅, 아침과 저녁, 자유와 속박, 생과 사 등 상반되는 개념들을 한번 거꾸로 생각했을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시인의 이러한 역설은 그냥 이상한 생각 혹은 엉뚱한 설정이 아니다. 거기에는 진리를 보고자 하는 또다른 시각이 숨어있다. 즉 《한번쯤/옳은것을 그르다고 생각해본다면/거기에 진리가 잠들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이러한 역설적인 발상을 가능케 해준다. 다시 말하면 생각을 뒤집으면, 혹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면 또다른 세계가 보인다는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때 생명 자체의 위대함을 제외하면 진리는 하나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특히 오늘과 같이 진리 여부의 판단이 지난한 전환기 우리 사회의 가치의식에서 이러한 역설은 우리의 삶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것이다.

  《걸인》에서 도시인의 걸인에 대한 구제가 동시에 자신에 대한 구제의 심리적 욕구를 동반한다는 발상 또한 이러한 역설적인 생각의 다른 한 측면이 될것이다. 사물 혹은 현상의 상대성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죄인과 천당》의 발상도 같은 차원이라 하겠다. 기독교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죄인은 지옥에 가까운 존재이기때문에 천당과는 너무나 아득히 떨어져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 죄를 말끔히 씻었을 때 과연 천당에 도달할수 있을까? 아니다. 《죄인이 더는 죄인이 아닐 때/천당도 다시는 천당이 아니다.》 즉 지옥과 천당은 사람의 마음일뿐이라는것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발상은 《리유가 없다》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남들이 특히 녀자들이 다 이쁘다,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즐기고 감동하는 꽃에 대해 화자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감동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처럼 특별한 생각을 가지면서도 거기에는 리유가 없다고 한다. 고정관념에 대해 부정하지만 무슨 리유가 있어서 그러는것이 아니라는 사상은 어떤 가치기준에 대한 부정일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현실에 대한, 혹은 현실의 가치기준에 대한 무감각의 의미가 더 짙게 표현된것 같다. 어떤 가치에 대해 부정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지도 않고 그냥 그 부정이 아무런 리유가 없다고 하는것은 현실의 타락, 인간성의 변이를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 팽배해있는 실용주의적인 사상의 치명적인 약점이라 하겠다.

  그래서 시인은 무상을 느낀다. 《하늘밖은/하늘이지만/더는 어제의 하늘이 아니다》(《무상》의 일부). 즉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며 그 흐르는 시간속에 모든것은 변화한다. 세월의 무상함이다. 세월의 무상함은 곧 인생의 무상함을 의미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변화하는 과거나 미래를 현재의 립장에서 알수는 없다. 알수 있는것은 현재의 변화, 현재의 상황, 현재의 삶의 양상일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마음이 흐린 날에는 기도보다/생각으로 죄를 범하여보자》고 자위한다. 하느님은 언제나 침묵하고 있고 마음속의 범죄는 스스로 용서하거나 합리화시키면 해소되기때문이다. 세월은 무상하며 인생 또한 무상하다. 그러므로 오늘 현재의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것이 이 시의 의미가 되겠다. 생명의 매 순간에 대한 애착이 있을 때 마음의 평온을 얻을수 있고 또 그러한 매 순간이 모여서 인생이 된다. 그렇게 인생을 파악했을 때 무상한 인생은 더이상 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흐르는 강물》의 의미 또한 《무상》과 같은 발상이다. 오늘, 현재, 지금의 삶, 생명이 소중하다. 즉 살아있다는 자체가 소중하다는것이 시인의 현재 시점에서의 인생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생명 존재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 새로이 부상하고있는 생태미학의 시각에서도 바람직한 발상이라 할수 있다.

  다른 한 측면에서 실존, 생명 자체에 대한 존중만으로 삶을 만족할수 없는것이 또한 인간의 심리이다. 생명에는 자아가 존재하기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명상해야만 한다.(《명상》) 꽃이 피는 원리는 우주의 원리다. 꽃씨를 마음의 터밭에 뿌렸을 때 피려는 꽃망울에는 욕망, 사랑, 죄와 벌이 모여든다. 그러나 그러한 강요된 리상때문에 노예가 된 나는 마음밖에 버려진다. 서성이다가 마음안으로 불러들였을 때 다시 우주적원리에 의해 꽃과 함께 원색으로 핀다. 시적인 상상속에서나마 삶의 본질에 도달한것이다. 가장 자연적인 삶에 대한 깨우침이라 하겠는데, 이러한 깨우침은 집념의 무의미함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서마저 잊혀지려는 자신을 구해냈을 때 가능한것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시인이 무상한 삶, 새로운 가치기준에 대한 미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것이 정적인것에 대한 애착이다. 《다도》가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지는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한다.

 

진실된 나를

조용히 부른다

 

바람 한점 없는 호수우에

하늘빛은 겸허히 잠들고

하나로 되는 사이

일상의 나는 사라진다

 

머문듯 부은 물에

사랑이 생명처럼 숨을 쉬면

소망이 없을만큼 빈 차잔에/

마침내 피여오르는 마음의 향.

 

  《다도》의 전문이다. 화자는 다도라는 거의 정지에 가까운 상황, 분위기를 지켜보며 그것과 하나가 된 분위기 즉 정적인 삶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머문듯》, 《빈 차잔》은 《정》과 《공》의 이미지다. 행위자를 제외시키면 다도의 도구는 《물》과 《차잔》, 《차》이며 그것이 어울려서 《향》을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정》과 《공》이다. 정적인 환경속에서 마음을 비운자만이 다도의 진수를 체험할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시상의 핵심이미지는 《소망이 없을만큼 빈 차잔》이다. 이는 《일상의 나는 사라진다》는 그 앞의 이미지와 호응하면서 《공》의 경지 즉 한시학에서 말하는 시의 의경(意境)을 형성하는 모티프가 된다. 다도라는 행위와 그에 의해 만들어진 분위기를 잘 그렸다고 할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와 같이 이처럼 다도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묘사하고있는 시인이 지향하는 삶은 그러한 정적인 삶의 모습이라 하겠다. 그래서 그러한 분위기는 지선(至善)의 삶의 모습으로 환원된것이리라. 그런데 이러한 지선의 삶의 모습은 《일상의 나》가 사라진 상태에서만이 느낄수 있다고 시인은 본다. 구도자의 목욕재계의 통과의례와도 같다. 《진실된 나를/조용히 부》르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일상을 탈피한 진실된 나는 소망마저 비워버린채 숨쉬는 사랑속에 《마침내 피여오르는 마음의 향》을 만끽한다. 다도의 진수인 동시에 시인이 지향하는 삶의 지선의 경지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지선의 삶은 시인의 과거적삶 혹은 소년기의 체험에 깊이 뿌리내려있다. 모두(冒頭)에서 시집의 제4부인 《등대지기》와 제5부인《장독》은 정적인 삶의 양상으로 특징지어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 수록된 시들 특히 《장독》에 묶여진 시들은 정적인 삶의 양상들인 동시에 민족적, 전통적 혹은 과거지향적인 상상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고향, 시골, 할머니, 외할머니가 되겠는데 그것들은 민족성 혹은 조선족성을 가장 보편적으로 상징하고있는 《장독》으로 집약된다. 특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미지는 그 빈도가 상당히 높다. 그러니까 동적인 현재적삶에서의 무상과 방황의 상대적위치에 정적인 과거적삶의 애틋한 추억과 따스한 느낌이 놓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말을 바꾸면 현실적삶의 일상과 염원하는 혹은 꿈꾸는 삶의 모습은 항상 괴리 혹은 유리되여있다는 말이 된다. 그 꿈과 일상 사이에는 너무나도 힘겨운, 넘기 어려운 벽이 가로놓여있기때문이다.

  사회가 너무 많이 변해서 그런것일까? 전춘매의 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야는 추억속의 세계가 될것 같다. 시집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좋은 시라고 느낀 작품도 이 《장독》이라는 표제의 제4부에 묶여진것이 가장 많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도 슬프고 고국에 대한 추억도 측은하다. 민족을 추억처럼 느끼는 시인의 자세는 어딘가 조금은 감상적인데가 있어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너무 많은 추억속의 아름다움을 색바래게 한다. 그래서 그 추억속의 상상력을 더듬어보면 시인이 왜 오늘의 삶을 《무상》으로 인식하는지를 더러 알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령 《옛9월》의 경우 추억의 세계속에 아로새겨진 민족적이미지를 아련한 정서속에 그려놓고있다.

 

젊은 엄마

머리우의 빨래함지에

삐죽이 고개 내민 빨래방치

 

달달달

어린아이 고무신 끌면

수레길에 제멋대로 뒹구는 락역

 

저녁연기 피는 굴뚝

사립문에선

외할머니 기다림이 석양에 물들었다.

 

  《옛9월》의 전문인데 여기서 특히 빨래함지, 빨래방치, 저녁연기, 외할머니의 기다림 등의 이미지들은 농경시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이미지라고 할수 있는것들이여서 잊혀져가는 우리의 기억을 되살려준다.

  《장독》에서는 장독과 할머니를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시키고있다. 《한생을/속 썩이는/할머니//그 마음/누가 엿볼라/꽁꽁 동이신다//안으로만/삭이는 심사는/궂은날 마른날이 따로없고//처마밑/외로운 마음은/헤아려주는이 없지만//언제나/정성에 뜨거운/우리 집 식탁//삭을수록/맛이 깊은/할머니의 향이여.》(《장독》 전문) 여기서 시인은 《속 썩이는》, 《안으로만/삭이는 심사는》, 《삭을수록/맛이 깊은》 등 된장의 일반적인 속성을 《한생을/속 썩이는/할머니》라는 우리 민족 전통적여성의 미덕과 일체화시킴으로써 시상의 시너지적 효과를 이끌어내고있으며 그것을 추억하며 상상하는 시인과 독자의 의식 또한 일체가 됨으로써 진한 감동을 유발시킨다.

  이 두 편의 시에서 시인 혹은 화자의 시점은 오늘에 있지 않고 추억속에 들어가있다. 다시 말하면 적어도 시적화자는 오늘의 시점에서 추억속의 세계를 지켜보며 그리고있는것이 아니라 화자 자신이 추억속의 그때 그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독자를 그 세계에 끌어들인다는 말이 되겠다. 그러나 《추석날의 애수》, 《산에서 자란 아이는》, 《두만강》, 《먼 고향은》 등 작품에서는 그러한 중간절차 없이 시인 혹은 화자 자신이 오늘의 시점에서 직접 추억속의 이미지를 그려내고있다. 따라서 이런 시들은 추억의 세계속 이미지를 그리는 동시에 화자의 감수와 정서도 더불어 드러난다.

  가령 《추석날의 애수》의 경우 추억속에 들어가고자 하지만 세월에 바래진 기억때문에 더이상 들어갈수 없는 슬픔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그 잊혀진 기억만큼이나 외로움도 크다고 하면서 애수의 원인을 설파한다. 《산에서 자란 아이는》도 비슷한 경우이다. 화자는 자신은 산에서 자란 아이이기때문에 산을 《바라만 보아도 감격에 마음이 무저》진다고 했다. 그리고 산에 가면 《이미 흙이 되였을/그 누구의 부름소리 들리는듯하고/돌아가신지 오랜/외할머니의 하얀 치마자락이/기발처럼 날리는듯합니다》고 하여 산을 보며 감격하지 않을수 없는 원인을 드러낸다. 그리고 끝련에서 화자는 《산에서/자란 아이는/산을 못잊어/꿈에나마 가끔씩/산을 찾습니다.》고 추억과의 교감을 보여준다. 그러한 추억속 세계에 대한 동경의 의미를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이 아마도 《먼 고향은》이 되지 않을까 한다. 《먼 고향은/봄, 여름, 가을, 겨울 아닌/그 계절이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4계절 이외의 어떤 계절이다. 상상속의 세계이기때문에 가능한 이 제5의 계절, 그 계절은 4계절이 서로 뒤엉킨 애잔한 아름다움만이 남아있는 시간이다. 그 시간속에는 장국냄새 풍기는 어머니의 기다림이 있고 별같이 총총한 할머니의 옛말이 있다. 그리고 산처럼 무겁던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제 《먼 고향》이며 《내 꿈》일뿐이다. 이 《먼 고향》과 《내 꿈》의 이미지는 그래서 이제 가상의 시간과 공간속에 상대적으로 정지된 존재이다. 즉 시인이 《다도》에서 이미지화시킨 정적인 존재가 될것이다.

 

  결국 시인은 일상을,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항상 또다른 세계―순수의 세계를 꿈꾼다. 그 순수의 세계가 바로 추억속의 정적인 삶이 되겠는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현대의 일상을 살아야 한다는데 시인의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시인이 념원하는 순수의 세계는 공업문명, 현대문명, 물욕이 란무하는 물신주의 등으로 대표되는 현실사회와는 상반되는 위치에 있고 가끔 지난날의 기억들이 그런 순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궁극적인 순수는 원시상태임을 암시한셈이다. 그리고 그 원시상태의 이미지로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있는데, 특히 외할머니의 이미지에는 고향, 때묻지 않음, 전통, 평화와 동경 등 모든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시인이 역설과도 같은 현실, 부대끼고 체념하며 회의하고 방황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세계에서 항상 그리워하는 세계가 바로 앞에서 살펴본바 있는 가상의 시간과 공간속에 상대적으로 정지된채 존재하는 추억속의 세계가 되는셈이다.

  그러나 시인이 간과하고있는것이 있는것 같다. 실존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을뿐이며 거기에서 생명존재의 의미를 구할수는 없다. 실존 자체만이 진리다 라는 답안은 정해진것이다. 동물이나 미물이 존재하는것과 같은 리치다. 다만 인간은 의식과 생각을 가지고있다는것이 다를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삶의 의미를 마냥 추억속의 세계에서 찾는것은 바람직하지만은 않을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갈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즉 삶의 가치는 자기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사회와의 관계속에서 찾는것이 바람직할것이라는 말이 된다. 삶은 원래 의미가 없고, 그래서 개개인이 의미를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싶다. 이와 동시에 인간이 그런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는 의미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시는 《나》를 대상화시킬 때 이루어진다는 이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즉 시적화자와 시인이 지나치게 근접하게 되면 주관적인 사상이 시의 형상성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대상화되지 않은 시에는 넉두리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할수도 있다. 《나》를 최대한 대상화시켰을 때, 즉 사물이나 현상을 조금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묘사할 때 거기에서 새로운 시적인 의미가 창출될수 있다. 이는 의식의 차원을 넘은 무의식의 차원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가능하기때문이다. 전혀 해명이 불가능할것 같은 초현실주의적인 《순간적인 떠오름》의 묘사에서 독자가 감동될수 있는것은 시인의 정서가 그러한 대상을 통하여 정서화되면서 보다 생신한 이미지나 사상, 의식, 감정이 생성될수 있기때문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일상과 현실을 하나로 본것 또한 이 시인의 한계다. 현실의 삶에서도 지양해야 할것과 추구해야 할것들이 따로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앞에서도 더러 언급되였지만 《무상》에 묶여진 시작품들은 열린 사고와 치열한 주제의식, 현실적삶에 대한 인식의 절실함 등이 돋보이지만 시어의 정제나 비유의 치밀함 등 면에서는 《등대지기》나 《장독》에 못미치고있음이 아쉽다. 그밖에도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전체적으로 주제나 감정을 직접 나타내는 추상적인 어휘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시인이 하나씩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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