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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옥금 / 장춘식
2015년 09월 17일 20시 43분  조회:4728  추천:0  작성자: 죽림

민족과 전통과 삶, 그리고 시

―리옥금 시집 《별 줏는 녀인》

장춘식

 

  문학작품창작에서 기교는 중요하다. 소재가 작품이 되기까지는 반드시 기교를 통한 가공을 거쳐야 하기때문이다. 시창작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시창작에 좀더 많은 기교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것을 우리는 《시적표현》이라 일컫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기교 혹은 표현에 집착하면 정반대의 효과가 나타날수도 있다. 집착하다보면 의미가 기교에 덮여버릴 우려가 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기교가 더 중요하냐 의미가 더 중요하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물음에 대답하기는 참 난감하다. 둘 다 중요하니까. 혹 이렇게 대답하면 어떨까? 기교를 사용했으나 그 흔적이 보이지 않을 때 좋은 작품이 완성된다고. 기교는 있으되 기교가 보이지 않는 작품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기교에 대한 얘기로 글을 시작한것은 당연히 그럴만한 리유가 있다. 리옥금의 시집을 읽고 첫 인상으로 기교라는 개념이 떠올랐기때문이다. 그렇다면 리옥금의 시작품들은 기교를 적절히 잘 리용하였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것도 있다. 아래에 작품을 분석하면서 이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도록 한다.

 

  1. 전통적인 삶에의 지향, 그리고 정체성 확인

 

  작품집에 수록된 리옥금의 시작품에서 《단오》《한복》《색동저고리》《북소리》《동지팥죽》과 같이 민족적전통 혹은 이주민과 그 후예의 정체성 확인에 관련된 시작품 제목만 하여도 20여개가 된다. 그외에도 제목은 그렇게 보이지 않으나 시행들에 류사 표현이 들어간것까지를 포함시키면 이 류형의 시들은 더 많다. 전체적으로 가장 많은 량을 차지하며 따라서 리옥금시의 다수가 하나의 큰 주제를 지향하고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만큼 전통과 민족에 대한 시인의 관심이 크다는 말이 될것이다. 이는 동시에 시인의 삶에서 전통과 민족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말해주는것이 되기도 한다.

  《마을앞 개울가에/맑은 물 돌돌돌/흘러 흐르네》로 시작되는 《과거2》에서 시인의 의식은 시골 개울가 아낙네들의 빨래터와 그 빨래터에서 벌어진 시골인의 삶에 닿아있다. 《무서운 시어머니 효도하는 며느리》라는 표현에서 알수 있듯이 시골의 삶이라고 행복만 있는것은 아니지만 첫련의 밝고 즐거운 표현에서 보여지듯 시인은 전체적으로 그러한 소박한 삶에 애정을 드러낸다. 이런 삶은 결국 오늘날 도시화, 세계화의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는 대조적인 전통적인 삶이다. 그러한 삶은 《색동저고리》에서 《평생 씻지 않아도/언제나 깨끗하도록/순수한/동년》으로 묘사됨으로써 한결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를 다시 《옛말》이라는 작품에 련관시켜보면 시인이 지향하는 전통적인 삶의 모습은 대개가 과거의 추억에서 비롯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한여름/모기쑥을 태우며/어머님의 무릎을 베고/앞뜰 버들나무아래/누우면》이라는 첫련의 표현에서 이점은 곧 확인된다. 여기에 모기쑥, 어머니, 외뿔도깨비, 비자루귀신 등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그 옛날 어린시절 우리의 삶이 생생히 되살아나기도 한다.

  상기 작품들의 이미지가 일상사의 기억에서 비롯되였다면 《동지팥죽》이나 《세배》 등 작품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명절을 통해 되살려낸 어린시절의 삶의 모습 혹은 느낌이다. 시인에게 있어 먼 옛날 어린시절의 《세배》는 《아빠의/뒷모습》이였고 《이웃집 할아바지의/담배쌈지에서 나오는/꼬깃꼬깃한 20전짜리/종이돈》이였으며 《앞집 할머님의 혼담》이였으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세배는 《아버지, 어머님 고향으로/날려 보내는/한자락 한숨에 담긴/눈물방울》이 된다. 전통적인 삶에의 지향과 그것에 되돌아갈수 없는 허전함이 은연중에 표현된 경우이다.(이상 시 《세배》) 《동지팥죽》 역시 전통적인 명절의 추억에서 취재한것인데 여기서 동지팥죽에 관련된 추억은 《강원도 고향마을에서/만주 오동성까지/동지팥죽의 김은/식을줄 모르고/모락모락 피여올랐어요》라는 제2련에서 보여지는바와 같이 민족적정체성과 부모세대의 이민추억에까지 연장된다. 제3련에 그려진 어머니의 꿈속에는 그러한 이민과 정착의 고난사가 응축되여있는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현대를 살아가면서 전통적인 삶을 지향하며 애틋한 추억으로 남아있는 과거의 삶에 되돌아가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저 슬퍼만 하고 추억에만 젖어있는것은 아닌것 같다. 《장단을 배우며》에는 조금이라도 전통과 민족성에 접근하려는 실천의 의지가 담겨있다. 굿거리장단, 휘모리장단을 통해 《먼 옛날을 당겨다/내 손에 담아본다》는것은 그냥 추억에 만족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수천년 흘러온 소리는/잠잘 곳을 찾는/내 마음을 깨운다》는 마지막 3행의 표현은 우리 민족의 음악적특징으로 상징되는 장단을 통해 의식속에서나마 전통과 민족의 삶에 접근했음을 보여준것이다. 특히 마지막 2행은 이제 인생의 로년기에 접어드는 길목에서 얻어낸 깨달음임을 시사하고있어 어딘가 무거운 감상(感傷)을 자극하고있기도 하다.

  이 류형의 시들은 시인의 추억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는 시인의 현재 삶이 전통이 색바래져가는 도시에서 영위되고있는데서 비롯되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곧 현대인의 공통된 삶의 양상이여서 더구나 공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앞의 《동지팥죽》이라는 작품에서 우리는 시인의 전통지향성이 민족과 부모세대의 이민경력과도 맥이 닿아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시 《송화강》에서 《머리와 사슬이 이어지는/흐느낌》이요 《머나먼 고향의 부름이였》다는 표현은 부조(父祖)의 이주와 먼 조상의 땅(즉 고구려, 발해의 땅)간의 관계를 암시하고있고 《아버지》에서는 독립을 찾기 위해 만주땅에 이주해살던 아버지가 《오매불망/고향 그려》 결국 《한줌의 향연마저/동해로 떠나셨》다고 했다. 이주민의 후예임을 확인하고자 한 시인의 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목단강》에서 그러한 시인의 의식은 좀더 절실한 형태로 표현된다. 《아버지가 두둥실/물결을 타시고/머나먼 동해바다/고향 찾아 떠나가신/길》은 이미 상기 《아버지》에서 제시된 상황이다. 이것을 우리는 아버지의 유골이 강을 따라 동해로 흘러갔다는 의미로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잎이 떨어져 뿌리에 되돌아간다(落葉歸根)는 중국의 성구를 떠올리는 상황이다. 아버지가 독립을 위해 중국 만주땅에 이주를 했고 이제 한줌의 재가 되여 동해를 거쳐 고국의 땅에 되돌아갔다는것. 그런데 여기서 마지막련의 표현은 의미심장한데가 있다. 《멀리 에돌아도/막힘이 없이/가깝게 가는/머나먼 고향 길》은 《목단강》이라는 표제와 련결시켜 생각해볼 때 고국과 이민지 삶은 동떨어진것이 아님을 시사한것으로 볼수 있는것이다. 이주민의 후예로서 고국과의 끈끈한 관계, 겨레의 동질성과 이를 통한 이주민의 정체성 확인을 엿볼수 있는것이다.

  그러니까 시인의 의식은 항상 추억속의 삶을 더듬고있고 그러한 전통지향의 삶은 아버지의 과거와 죽은후의 《귀소(歸巢)》 상황을 계기로 아버지의 고향 즉 고국과 련결됨으로써 이주민의 후예로서 정체성의 확인의 차원에 이르고있는것이다. 이주민으로서 우리 조선족의 삶이 거대한 변혁의 시대에 처해있고 그로 하여 정체성 상실의 위기의식이 팽배해있는 오늘의 우리 상황에서 이런 인식은 당연히 큰 의미를 지닌다.

 

  2. 삶의 깨달음과 허무

 

  앞에서 론의된 주제의 시작품을 빼고 완성도가 높은 시들을 이 항에서 다루고자 한다. 사실 리옥금의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서 이 부분의 주제를 다룬 시들이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판단이다. 하긴 더러 필자의 개인적인 기호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고자 해도 이런 판단은 변함이 없다.

  《함박눈2》라는 작품은 시행들이 조금은 어수룩한 면이 없지 않다. 호흡이 부자연스러운것이다. 그러나 느낌이 생생하고 새롭다. 우선 안개속을 눈이 내리다가 다시 안개사이로 피여오른다고 했다. 상식적으로 눈은 하늘에서 지면이나 수면우에 내려오게 되여있다. 혹 바람이 불면 하늘로 되올라가는 착시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피여오르네》라는 표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시인은 함박눈이 피여오른다고 느끼고있다. 왜냐? 시인의 눈앞에 떠오른건 그 함박눈과 안개속에 피여오를 진달래였기때문이다. 그것도 《붉디붉은 꽃잎의/애절한 소원한마디》로 피여오를 진달였기때문이다. 흰눈과 역시 흰색계렬이라 할수 있는 자욱한 안개와 《붉게 타며》 피여오르는 진달래의 선명한 대조, 그 강렬한 색조의 충돌속에서 독자는 수많은 련상과 정서의 파동을 체험하게 되는것이다. 더구나 진달래가 우리 민족의 의식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감안할 때 이러한 정서의 파장은 지대하다. 이미지를 통한 생명의 상상을 동반함으로써 철학적인 의미는 제시하지 않고도 감흥을 준 경우가 된다. 《단풍1》 역시 색상의 대조에서 시적감흥이 이루어진 작품이다. 해빛에 영글은 빨간 단풍과 해빛을 쫓는 노란병아리의 대조, 그리고 푸른 하늘, 흰 구름과 빨간 단풍잎의 대조, 또 제3련에 숨겨둔, 얼핏 보면 시의 흐름과는 무관해보이는 《그리움 한송이》라는 표현이 마지막련의 《새빨간 추억으로》와 조응되면서 그리움과 추억과 이를 뒤받침해주는 사라져가는 혹은 스러져가는 이미지로서의 단풍잎의 분위기가 어우러져 서글픈 인생의 감흥을 생성하고있는것이다. 두 작품은 본질적인 련관성은 없지만 색조의 대조를 통한 생명의 느낌 혹은 깨달음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성을 지니고있다.

  《첫사랑》, 《다향(茶香)》 등 작품에서는 사랑의 아픔과 허무적인 느낌을 표현하고있다. 《첫사랑》에서는 《그 모습/다시 찾을길 없어라》라는 첫사랑의 아련한 아픔을 반복되는 《옛날》, 《옛적》의 이미지에 련결시킴으로써 삶의 허무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고있다. 그에 반해 《다향(茶香)》에서는 사랑을 다향에 비유하고는 《다향의 애절한/가슴 찢어 잊을수 없는/연록색 심장의 고동소리》로 표현함으로써 앞의 《첫사랑》과도 련관되는 먼 옛날의 사랑을 되살려낸다. 그리고나서 마지막에 《노을은 불타는 다향이라네》라 함으로써 이제 나이가 든 현재 추억속 그 옛날 사랑의 느낌을 표현하고있는것이다.

  《다향》에서의 노을은 인생의 로년기를 암시하고있음이 분명한데 《가을1》에서는 그러한 인생말년의 인식을 좀더 진일보한 허무의식으로 환원시킨다. 여기서 락엽은 곧 인생의 말년을 의미할것인데 그에 더하여 푸른 하늘은 화자에게 청량함이나 밝음이 아니라 아픈 《멍》으로 표현된다. 다시 밤이슬에 젖은 잠자리의 무거운 날개와 창공을 가르는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대조되여 마음과 현실의 불일치, 즉 인생말년의 육체적인 한계와 정신적인 피곤을 드러낸것이다. 마지막 행의 《풀잎소리도 가냘프다》는 그러한 나약함을 강조한것이다. 어쩌면 소극적인 삶의 인식이 로출된것으로 볼수 있는데 사실 이것 또한 인간의 일상적인 느낌임에는 틀림이 없다.

  《립춘1》, 《어느날 오후》 등은 녀자시인의 시적구성력과 표현의 섬세함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그래서 필자 개인적으로 점수를 많이 주고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립춘1》의 첫련에는 립춘을 맞은 자연의 풍경이 묘사되여있다. 마른나무가지에 하얀 꽃이 피여있다는것, 누구나 눈길을 빼앗길수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제3련에서는 그 아름답고 도고한 꽃이 추녀끝 고드름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물방울이 되여 《시린 마음을 녹여줍니다》고 했다. 차분하고 섬세하지만 별로 대단할것 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제2련 제1행의 《무서운 겨울의 이야기》와 련결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어두웠던 삶의 기억이 봄의 따뜻한 기운에 의해 해동되고 풀렸다는것. 조금은 빛바랜 소재이기는 하지만 깔끔한 표현이 인상적이다.

  《어느날 오후》는 좀더 녀성적인 섬세함과 시적발견의 개성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의 소재가 된 사실은 녀성들이 일상 하는 청소 즉 뭔가를 닦아내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 행위가 서투르다고 했다. 비록 숨어버린 시간들을 찾아내는 손이 서툴다고 표현했으나 여기서의 서툴음은 닦는 행위의 서툴음과도 련관될것인데 그 련관속에서 우리는 두가지 사실을 겹쳐서 느끼게 된다. 즉 가정주부로서의 일의 서툴음과 《마음속에 앉은 때》 즉 삶의 세월속에 쌓인 불결함 혹은 불순함에 대한 반성의 서툴음이 그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련의 《온 오후 하는일 없이/구석구석 먼지 오른 일상들을/흩어진 시간조각으로 닦아본다》는 화자의 행위 표현은 쏜살같이 내달리는 현대인의 빡빡한 삶의 시간과 그 시간속에서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는 반성의 어려움을 시사해준다 하겠다.

  《등산》은 그러한 반성과 삶의 반추를 등산이라는 행위에 담아 잘 표현한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시인데 시인 리옥금의 시적능력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이라 할수 있다. 특히 제1련의 《주말이 되면/일상들이/더덕더덕 매달려/무거워진 몸》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제2련에서는 힘겹게 산을 오르는 화자의 모습이 《더위 먹은 소》에 비유되였는데 나이 든 몸으로 산에 오르는 등산인의 이미지가 잘 각인되였다. 그러나 력점은 마지막 련에 있다. 《인생의 어려웠던 고비들을》《발걸음으로 재여보고》《희로애락을》《산마루로 헤여보며》《아팠던 마음들은/산골짜기에 던져본다》는 표현은 삶에 대한 상당한 경력이 쌓이지 않고는 깨달을수 없는것이다. 그러나 등산이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느끼는 성취감이나 상쾌함이 작품에서 간과되였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좀더 성숙된 삶의 깨달음과 시적인 심화가 가능했었는데 말이다.

  《꿈》과 《당신》이라는 작품은 사랑의 느낌 혹은 인식을 표현하고있는데 《이 모습 이대로/당신의 눈동자에/사진으로 남길래요》라는 《꿈》의 제1련은 이 시인의 시적인 구성력을 보여준 경우가 된다. 그러나 《꿈은 이루어질수 있다는/희망 하나로》라는 제4련과 《존재의 리유는/항상 있는거래요》라는 마지막 련의 표현은 천박함을 로출시키고있다. 《당신》 역시 비슷한 경우이다. 삶의 느낌이나 인식을 좀더 시적인 형상의 승화를 통해 표현해야만 이런 태작을 피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렇기는 해도 리옥금의 시작활동에서 일상적인 삶의 깨달음과 감흥을 다룬 작품이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사실은 부인할수 없다.

 

  3. 기교와 무기교 사이

 

  이 글의 시작에서 기교문제에 대해 언급한바 있지만 리옥금의 시작품에는 아직도 기교를 채 소화시키지 못한 흔적이 상당수 보인다. 특히 상기 《꿈》과 《당신》 류의 작품들은 재치는 인정되지만 시적감흥은 미미하다. 지나치게 기교에 기대여 덜익은 시적인 감수를 작품화한 결과라 하겠다. 《코스모스》나 《조롱박》 역시 비슷한 경우에 속하는데 대상의 특징을 공교한 비유로 표현한 점에서는 시인의 재기가 엿보이지만 현상자체의 묘사에 그쳐 좀더 깊은 의미의 창출에는 실패하고있다.

  그러나 이 정도라면 그냥 넘어갈수도 있다. 이에 비해 《잠자리》나 《락엽의 소리》 같은 경우는 결코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것 같다. 유월 염천 논두렁아래 개울물에서 잠자리가 날아예고있는데 그 표현을 《한순간의 꿈에/연하게 익어/풋풋한 몸으로/하늘을 날아예다》고 했다. 꿈때문에 익는다는 표현도 적절하다 할수 없지만 《풋풋한 몸》이라는 표현은 아리숭함을 떠나 의미의 전달이 왜곡되기까지 한다. 《풋풋하다》는 사전적으로 《풋것처럼 싱싱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시적인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아무리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식물에나 사용하는 표현을 잠자리에게 비유한것은 적절하다 할수 없다.

  《락엽의 소리》 역시 비슷한 우를 범한 경우이다. 《단풍이 불을 지르는》이라고 한 제1련의 첫행에서 혹 단풍에 대한 불탄다는 표현을 좀더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단풍의 의인화는 어색함을 넘어 무모하다고 볼수밖에 없다. 다음 제3련의 《저벅저벅/락엽이 가는 소리》에서 락엽이 간다는것은 적절한 표현이 될수가 없다. 《저벅저벅》이라고 하는 락엽 밟는 소리의 의성화는 락엽이라고 하는 대상이 걸어가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이나 동물이 걸어가면서 락엽을 밟는 소리에 해당되기때문이다. 표현의 교묘함에 집착하다보니 상식을 망각한 경우가 된다.

  이밖에도 상당수의 작품에서 이와 같은 기교집착에서 비롯된 의미의 왜곡이나 부적절한 비유들이 보인다. 기교는 있으되 없는것처럼 작품속에 잘 삭혀서 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할것 같다. 청년시대의 시는 대체로 젊음의 감성에 의지하게 되지만 중로년의 시는 대체로 달관의 경지에서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시적기교의 소화 문제를 특별히 강조한것은 바로 이제 중로년기에 접어든 시인으로서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길을 모색해주십사 하는 주문때문이였다.

 

  4. 마무리

 

  주제적측면에서 리옥금은 민족과 전통, 이주민의 후예로서의 정체성 확인이라는 미리 설정된 주제와 일상적 삶속에서의 깨달음이나 삶의 느낌, 허무 등 체험적주제라는 두 방향에서 시를 쓰고있는것처럼 보인다. 상기의 분석에서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 좀더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제작되였음을 알수 있었다. 이는 미리 설정된 주제방향에서 시작활동을 할 때에는 반드시 좀더 체험적인 느낌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주기도 한다. 이 시인이 앞으로 명심해야 할 부분인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교 리용에서의 인위성 극복이다. 기교를 기교처럼 보이지 않게 리용했을 때 그 기교가 기교로서의 역할이나 효과를 최대한 발휘할수 있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러나 사실 시인이라면 항상 시시각각의 느낌을 시로써 표현하고싶은 충동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태작도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뭐라고 나무랄수는 없는것이다. 우리가 흔히 위대한 시인이라고 하는 시인에게도 태작은 존재하며 특히 잘된 시작품, 특히 위대한 작품은 어차피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일부 평범한 작품이나 태작이 나왔다고 크게 나무랄 일은 아닐것이다. 다만 이것저것 흠집을 지적한것은 좀더 태작을 줄이고 수작을 많이 써달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랄뿐이다.

  한편 시집에 수록한 시인의 언니 이점수의 시작품들은 순수성 그 자체를 표현하고있다. 《성인동요》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한다. 동요와도 같은 순수함으로 시골의 풍경과 농부의 삶과 넋두리를 소박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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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 詩의 넋두리 2015-12-31 1 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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