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늘 이름이 앞서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괜히 이름만 들어도 주눅이 들고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이 드는 인물들이 그들이다. 시인 서정주와 기형도도 이들가운에 포함되어 있다. 서정주 선생이야 두말할 것 없는 한국 서정시의 기인이요, 기형도 또한 짦은 살만큼 찬란한 시어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괜히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업적은 그 자체로 빼어나다. 하지만 불멸이라고 이름붙이기에는 왠지 찜찜한 구석이 있다.
제목 : 한국 현대시 이렇게 볼 수도 있다
한국 현대시사(史)에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된 시인들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계간 ‘시인세계’는 겨울호 특집으로 ‘과대평가된 시인, 과소평가된 시인’이란 주제를 다뤘다. 이에 따르면 시인 박목월 전봉건 김종삼 박인환은 과소평가 받았고, 서정주 윤동주 김수영 기형도는 과대평가 받은 시인으로 꼽혔다.》
‘시인세계’ 측은 편집위원인 김종해 장석주 정끝별 씨가 그간 시단의 여론을 반영해서 이처럼 선정했으며 여기에 동의한 8명의 문인들로부터 거론된 시인들을 평가하는 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은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각각의 글에는 주요 시인들의 가려진 면모들을 조명해 주는 측면이 있다.
시인 김옥성 씨는 박목월에 대해 “청록파라는 관사가 이름 앞에 붙으면서 ‘청록집’을 그의 본령이라고 보고, 이후 시들은 시적 긴장이 결여됐다고 보는 흐름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김 씨는 “박목월이 생활에, 서정주가 종교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시적 사유에 있어서 양자는 용호상박”이라며 “박목월이 성숙한 생활인으로서 아버지 상을 그려낸 점, 기독교적 사유와 상상을 내밀하게 감춰둔 점이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론가 문혜원 씨는 전봉건에 대해 “문학의 사회 참여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으며, 그걸 인정하는 게 오히려 진실하다고 봤으나, 그게 현실도피적인 자세로 여겨졌다”고 분석했다. 또한 그가 대표적 시문예지인 ‘현대시학’을 1969년 창간하고 주간으로서 신인 발굴과 지면을 결정하는 자리에 있었지만 이를 이용해 문단 입지를 확보하려 하지 않았던 점도 그가 과소평가된 원인이라는 것. 전봉건은 돈이 없어 이중섭의 그림을 팔아 사무실을 유지했지만, 사심이 없었고 외부 상황에 연연해하지 않는 ‘말 그대로 시인이었다’고 문 씨는 평가했다.
시인 강연호 씨는 김종삼에 대해 “대표작 ‘북 치는 소년’에서 보듯 그의 시는 그야말로 내용 없는 아름다움의 세계였다”며 “그에 대한 소극적 평가는 그가 현실의 비극과 싸우지 않고 심미적 구원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썼다.
평론가 이홍섭 씨는 박인환에 대해 “‘밤의 노래’ 등 전쟁의 비극을 다룬 시들에서 보듯 그에게는 감상주의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세계가 있다”고 썼다.
평론가 신철하 씨는 서정주에 대해 시인 김지하 씨가 비판한 내용을 인용했다. “서정주의 대표시집인 ‘질마재 신화’의 경우 거대한 역사의 회오리가 반영돼 있지 않으며, 거칠거칠한 무기교의 기교를 만들지 못해 생생한 삶의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윤동주에 대해선 “저항시인으로 조명됐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빙산의 밑둥은 ‘청춘의 비애를 드러낸 센티멘털 로맨티시즘’이다”(평론가 이명원)는 분석이 나왔다.
김수영에 대해 박현수 경북대 국문학과 교수는 “4·19 때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시인들이 5·16으로 다시 억압받으면서 김수영 신화가 탄생했다”며 “신화 이후 그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으로 상향 조정되어, 서정주가 우리 시의 우익정부라면 그는 우리 시의 좌익정부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김수영의 시를 꼼꼼하게 읽었을 때 박인환의 겉멋 같은 것이 너무 과잉되어 있으며, 시적 맥락이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고 주장했다.
스물아홉 살에 요절한 기형도에 대해 문학평론가 홍기돈 씨는 “한 시인의 우발적 죽음을 필연으로 수용하는 현상은 그 사회가 처한 조건과 관계 맺는다”며 “사회에 은연중에 유포되어 있는 죽음의 분위기가 기형도의 죽음과 공명하였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고, 그런 공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 기형도의 죽음은 우리 문학계에서 마치 신탁과도 같은 영향력을 갖게 된다”고 분석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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