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론]난해시를 위한 변명
입춘
-증상을 앓는 허공
계절은 가장 먼저 허공에 도착한다
허공은 증상을 앓다가 새 떼를 날린다
달을 지나가는 까만 점들의 ㅅ,자 행렬이 잦을 때
계절이 바뀌는 것이다 <사진 읽기>
<단순한 나의 시창작론 9 - 난해시를 위한 변명>
위험을 무릅쓰고 욕하는 것은 용기
별로 감수해야 할 위험도 없는데 비장하게 욕하는 것은 버릇
이 말을 트위터에 올렸더니 갑자기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리트윗을 했다(자랑질이다). 덕분에 팔로워가 1700명을 훌쩍 넘었다. 비장할 것도 없는데 비장한 각오를 밝히거나 택도 아닌 일에도 심각해 하기를 좋아하는 이들의 솔직하지 못한 행태를 비판한 것인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솔직하다면 유머도 감동이고 까부는 것도 보기 좋다. 시의 솔직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솔직한 시는 아무리 어려워도 용서가 된다. 솔직하지 못한 시는 아무리 쉬워도 용서가 안 된다. 심지어 화가 난다. 이것이 단순한 나의 시론이다.
땅이 진동하고 해일이 일 때 그리고 폭풍우가 몰아쳐 인간의 마을을 휩쓸 때, 인류는 그 공포스러운 사태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왔다. 사태 속에서 때로 신의 의지를 읽기도 하고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인류의 정신은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삶의 의미는 깊어졌다. 신(우주, 대자연)은 여러 가지 기호로 자신의 뜻을 끊임없이 인간들에게 알려왔다. 난해한 기호일수록 해석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의미를 파악하고 난 뒤의 인류의 이성은 늘 한 단계씩 고양되었다.
시도 마찬가지이다. 해석할 필요도, 깊은 의미도 없는 일상적인 중얼거림을 토하고 싶다면 굳이 시라는 형식을 빌려 의미를 드러낼 필요는 적다. 시는 신(우주, 대자연)이 쓴 기호처럼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특별한 사태이다. 해독이 어려운 시의 공포 앞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울림을 만져볼 일이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기쁜 만큼 세계는 확장되고 이성은 깊어진다. 난해한 시가 늘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난해한 시를 욕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 난해한 시를 생각없이 심각하게 욕하는 사람들에게 ‘그대들이 알아듣는 시를 쓴다면 그건 초딩 일기장이 될 확률이 높다.’고 귓속말로 얘기해 주고 싶다.
난해한 시는 현실적 쓸모가 없다고 보는, 실용주의적 관점에 선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아마 칼이나 돌이지 시가 아니지 싶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로 쉽사리 파악하기 어려운 시가 그 칼이나 돌보다 더 강력한 칼이나 돌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생각의 범위 안에서만 그렇다. 더 오래 더 강하게 더 깊게 세상을 베어내고 근원적으로 세상을 흔드는 난해한 시가 있다. 시가 중얼거림과 다른 이유는 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에 깊고, 깊기 때문에 오래 간다. 오래 가기 때문에 더 많은 이들의 정신에 광범위한 충격을 줄 수 있고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어떤 이는 말할 것이다,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시를 보여 달라고, 우리는 미래를 살지 않고 현재를 사는 이들이라고. 그 말도 맞다. 그래서 나는 또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해 둔 게 있다. 행사시, 행사시를 준비해 두었다. 조선, 중앙, 동아일보의 창간일에 실리는 창간 축시가 대표적인 행사시다. 당장의 필요에 의해 쓴 시다. 그런데 그게 시냐? (개소리지) 물론 행사시 중에는 감동스럽고 위대한 시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극히 드물다는 게 문제다. 나는 아직 감동스러운 행사시를 본 적이 없다.
아기의 몸짓을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울음에 귀 기울이면 말하지 못하는 아기의 말이 들려온다. 그 때 엄마는 젖을 물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준다. 현미경과 씨름하고 밤새워 실험을 하면서 현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과학자에게는 자연의 말이 들려온다. 그 때 과학자는 노트에 새로 발견한 자연의 법칙을 써내려 간다. 사랑하는 이의 말없는 눈을 한없이 깊게 들여다보면 입의 말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말이 눈에서 들려온다. 그 때 연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굴을 내밀어 뜨거운 키스를 한다. 아기의 울음, 현미경 속의 움직임, 사랑하는 이의 눈빛. 이것들은 모두 해석을 기다리는 현상이고 무심하면 파악하기 힘든 난해한 기호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진실하게 기울이면 파악되고 해석되는 감동적인 시들인 것이다.
쉽게 파악되는 시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껍질을 벗길수록 새로운 의미들이 솟아나는 어려운 시를 좋아하는 이들의 뜨거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단순한 나의 시론이다.
난해시의 선조(先朝) 김구용 시인의 시 한 편
고봉준령 설산에 오르기를 거부하고 평지에 앉아 미인과 술과 더불어 노닥거리기를 좋아하는 나는 김구용 시인의 시를 보며, 까마득한 높이에서 비루한 인간을 내려다보는 영혼의 거대한 얼굴을 느낀다. 김구용 선생의 시에 발을 들여놓으려다가 물러나 개새끼처럼 마구 짖어대기를 몇 번, 선생의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기를 몇 번, 더러 욕설을 뱉으며 시의 저수지에 침을 뱉기를 몇 번··· 오늘은 기어코 선생의 표제시 「풍미」를 침범한다.
풍미 / 김구용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리하여 돌(石)은 노래한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끝난 곳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대답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거울로 들어간다.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희생자인 향불.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을 아는가.
녹(綠)빛 도피는 아름답다.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1970년)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게다가 “이리하여 돌은 노래한다” 이건 또 뭔 소린가. 그리고 두 문장이 인과관계로 이어지는 건 또 무슨 이유인가. 심호흡을 하고 다시 들여다 본다.
판단하고 생각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전화기의 번호판을 누르던 기억이 내겐 있다. 사랑하던 여자가 죽고 술만 취하면 그 여자의 번호를 눌렀다. 그것은 분명히 판단 이전의 행동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미쳐서 세상의 모든 사물들(돌, 풀, 길, 먼지)로부터 죽은 여자의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를 따라 거리를 헤매고 술집에 앉아 열흘씩 술을 들이켰다. 미쳤다. ‘나는 판단 이전에 앉’아서 ‘돌’의 노래를 들었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 끝난 속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갈수록 태산이다. 어렵다. 뭔 말인가.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불교의 인연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잎사귀는’ 우리의 불완전한 눈으로 보는 ‘생김-존재,현상’들 이전에 이미 어떤 근원적 힘(태허, 신, 우주의 원리)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그 색과 형태를 말하지만 시인은 그 이전의 것을 느끼고 있다. 그리하여 ‘끝난 것 속에서 시작을 보고 시작 속에서 끝을 보는 윤회’를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물음(의문)’ 속에서 썩지 않는 언어의 다이아몬드를 채굴해 내는 것이다. “대답은 반문하고 / 물음은 공간이니 /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 거울로 들어간다. /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낮과 밤, 음과 양의 이치를 터득한 자는 높은 자기성찰의 단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이해하고 흡수한다. ‘너’인들 내게로 들어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희생자인 향불.” 희생은 아름답다. 고귀하고 향기롭다. 70년대의 암울했던 시기를 올곧게 살다 간 이들의 희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향불은 죽은 자의 앞에서 기도처럼 타오르고 시인의 마음 속에는 ‘정확’한 이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자들에 대한 조소가 일렁인다. 그래서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으로 한 시대를 분탕질한 자들에 대한 고요한 분노를 호소한다. 자기의 생각을 ‘정확’하다고 맹신하는 것들의 주둥아리를 쥐어박는다.
또한, 불의의 시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을 것이다. 아니 도망이 아니라 당당히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거머리처럼 붙는 간사한 세파를 뚫고 ‘녹빛 도피’를 ‘아름답’게 감행하고 싶었을 것이다. “녹빛 도피는 아름답다. / 그대여 외롭거든 / 각기 인자하시라.” 나는 이 마지막 구절을 읽으며 개처럼 짖던 내 주둥이를 틀어막는다. 독자들이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문학평론가 김동호는 2001출간된 김구용 선생의 시집『풍미』의 해설에서 이런 지적을 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시는 술술 잘 넘어가는 술 같은 시만 찬미를 받는 것 같다. 자연 예찬의 낭만시나 바보예찬의 천국적 단순시 아니면 대중 앞에 초경을 치르는 듯한 낮 간지러운 감각시만 찬미를 받는 것 같다. 뼈속의 진액으로 쓴 시, 그 진액이 마르도록 쓴 시는 사면초가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전쟁 같은 큰 비극을 겪은 나라, 30년의 군사독재를 치른 나라의 시가 무정란처럼 아프지도 않게 생겨나와 댕글댕글 때깔만 좋아서야 될까. 시의 자존적 위상을 위해서도 깊은 고뇌의 이런 난해시는 깊이 연구, 재음미가 되어야 한다.”
10년 뒤의 오늘에도 딱 맞는 말이다. 나는 고개를 숙인다.
<백과사전 등에 소개된 김구용 시인의 약력>
김구용(金丘庸, 1922.2.5.~2001.12.28.)
▶본명은 김영탁이며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4세 때부터 금강산 마하연에서 불교와 한학을 접했으며 19세 되던 해부터 13년 간 동학사에 기거하며 경전 및 수많은 동서 고전을 섭렵한 김구용은 1949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전통 시서화에 조예가 깊고, 특히 추사 김정희의 예술에 대해 독보적인 해석을 지닌 한학자이자 서예가이다. 유장한 우리말로 다수의 동양 고전들을 번역한 번역 문학가이다. 중국 고전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시인 특유의 문재가 돋보이는 그의 번역물들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육군사관학교, 서라벌예술대학, 건국대학교, 숙명여대 강사를 역임했으며 1956년부터 1987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시집「시」「구곡」「송 백팔」「구거」와 산문집「인연」「구용 일기」가 있고, 역서로「삼국지연의」「동주 열국지」「충의 수호전」「옥루몽」「노자」「채근담」과 편서「구운몽」이 있다. 2000년 6월에 시 전집 네 권을 비롯한 산문 전집 두 권을 새로이 교정 편집하여,「김구용 문학 전집」(전6권)을 출간했다.
▶원본 「삼국지연의」의 꾸밈없고 쾌활한 서사성과 웅혼한 문학적 스케일을 정확하고 완전하게 살려낸 국내 유일의 한국어 완역본「삼국지연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 그 자체만을 즐기는 독자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원문을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자신만의 해석을 내려보고자 하는 진지한 독자들에게는 명백하게 역효과를 초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삼국지연의」의 원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김구용의「삼국지연의」가 다시 출간되는 점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김구용의 번역본에는 「삼국지연의」의 원문에 들어 있는 시문詩文이 빠짐없이 유장한 문체로 번역되어 있어서 「삼국지연의」의 본디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고 인물의 삽화나 부록으로 묶인 전투지의 지형도 등도 독자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둘러보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삼국지연의」는 역사 기록을 토대로 해서 씌어진 소설이지만 김구용 선생은 「삼국지연의」를 마치 역사 기록을 다루는 자세로 번역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서경호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추구한 시를 썼다. 본명은 영탁(永卓).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를 마치고 1955년 〈현대문학〉 기자,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성균관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일찍이 불교에 귀의하여 해방직전까지 동학사 등에서 유불선(儒佛仙)의 경전과 동서양 고전을 두루 익혔다. 1936년〈회고〉를 시작으로 1949년 〈신천지〉에 시〈산중야〉·〈백탑송〉등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40년에는 관념적이고 한자가 많은 난해한 시를 썼는데〈탈출 脫出〉(문예, 1953. 2)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분광(噴光)의 심장〉(신천지, 1953. 6)·〈오늘〉(문예, 1953. 12)·〈슬픈계절〉(현대문학, 1955. 6) 등에서는 전쟁 뒤의 극도로 불안한 현실을 그렸다. 이어〈관조〉(문학예술, 1956. 2) 등을 발표했는데 이 무렵에는 정교하고 섬세한 언어로 행과 연을 무시한 산문시를 주로 많이 썼다.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현실에서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의식의 세계를 추구했다. 1957년 〈현대문학〉에 〈소인〉·〈심장없는 인형〉 등을 발표했으며 뒤이어 발표한〈불협화음의 꽃〉(현대문학, 1960. 1)·〈육곡〉(현대문학, 1969. 2) 등은 원고 100장이 넘는 장시이다. 그밖에도 〈현대문학〉·〈자유문학〉에 동양의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초현실주의 기법을 실험한 시를 발표해 현대시의 범위를 넓혔다. 1955년 제1회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시집 1〉(1969)·〈구곡〉(1978) 등이 있고, 역서로 〈채근담〉(1955)·〈옥루몽〉(1957)·〈열국지〉(1990) 등이 있다.
선비같은 난해시인 김구용
추재욱교수님의 시는 난해시를 썼던 김구용(전 성대교수, 시인, 나의 친구 외숙)의 시와 공통분모가 많아 이를 소개하며, 김구용 선생님의 추모전에 관련된 기사를 옮겼습니다.
김구용은 그의 시에 대한 물음에는 무언으로 일관하며 일체의 해석과 의견을 피력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추교수님도 그러하실는지? (난해시에 훌륭한 능력이 돋보인다고 소견(?)을 피력하고 싶습니다.)
김구용의 시
- 풍미(風味) -
나는 판단 이전에 앉는다.
이리하여 돌(石)은 노래한다.
생기기 이전에서 시작하는 잎사귀는
끝난 곳에서 시작하는 엽서였다.
대답은 반문하고
물음은 공간이니
말씀은 썩지 않는다.
낮과 밤의 대면은
거울로 들어간다.
너는 내게로 들어온다.
희생자인 향불.
분명치 못한 정확과
정확한 막연을 아는가.
녹(綠)빛 도피는 아름답다.
그대여 외롭거든
각기 인자하시라.
(중앙일보 2002.12.24 자에 인용된 것을 재인용함.)
- "마지막 선비' 김구용 시인 1주기 추모 글씨전 -
"우리는 동양 정신을 말살하면서까지 감성적 유행에 경도하리만큼 부박(浮薄:천박하고 경솔함)하지 않다. ···(중략)···
우리는 끝까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하며, 투시할 줄 알아야 하며 순수한 정신의 원자(原子)를 추출 폭파하여 인간의 무애자성(無碍自性:막히거나 거치는 것이 없는 인간의 본성)을 대오(大悟:크게 깨닫는 것)해야 할 임무에 있다."
2001년 12월 28일 타계한 김구용 시인이 1963년 밝힌 글이다. 이어지는 이 글에서 그는 "신·인간 또는 긍정·부정뿐만 아니라 정신·물질의 일체 양반(兩反)되는 차이와 상대성을 그대로 두고도 분별이 없어지는 날이 이 지구의 미래"라고 예견했다.
그러면서 김구용은 자신의 시와 글씨와 그림으로 그런 무애자성의 세계를 보여줬다. 김구용 1주기를 맞아 동료 문인, 후학들이 '구용 선생 글씨전'을 마련, 서울 사간동 학고재에서 30일까지 전시를 개최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김구용이 생전에 동료들에게 써 준 글씨나 그림 80점이 전시되었다. 시·서·화에 거침없이 두루 능했던 김구용은 또 김동리 소설집 '무녀도', 천상병 시집 '새'등 문학 단행본 제자(題字)도 가장 많이 부탁 받은 시인으로 기록된다. 해서 문학평론가 고(故) 김현은 "김구용의 모든 작품은 시간과 공간의 올 속에 끼인 표현될 수 없는 근원적인 경험을 언어로 표백하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정"이라고 평했다.
일제 말기 10여년 간 절에 있으면서 동서양 고전을 두루 섭렵하면서 스님들에게 강의했던 김구용. 선(禪)적 직관으로 모든 것을 감싸안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마저도 초월하려했던 그의 시·서·화 세계를 재평가하기 위해 열린 이번 추모전은 그래서 의미를 더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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