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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詩]
자신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
한국어로 보통 시라고 할 때에는 그 형식적 측면을 주로 가리켜 문학의 한 장르로서의 시작품(詩作品:poem)을 말할 경우와, 그 작품이 주는 예술적 감동의 내실(內實)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정(詩情) 내지 시적 요소(詩的要素:poetry)를 말할 경우가 있다. 전자는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통합된 언어의 울림 ·리듬 ·하모니 등의 음악적 요소와 언어에 의한 이미지 ·시각(視覺) 등 회화적 요소에 의해 독자의 감각이나 감정에 호소하고 또는 상상력을 자극하여 깊은 감명을 던져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작품의 일종으로, 거기에서는 언어의 정동적(情動的)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언어의 배열과 구성(構成)이 요구된다. 후자에 관해서는 시작품뿐만 아니라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으로부터 미술 ·음악 ·영화 ·건축 등의 예술작품, 더 넓혀서 자연이나 인사(人事) ·사회현상 속까지 그 존재를 인정하는 일이 가능하다.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할 때의 시란, 일정한 울림 ·리듬 ·하모니를 가진 운문(韻文)을 말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시작품을 성립시키는 각 시구(詩句)를 가리킨다. 프랑스 시인 발레리는 시와 산문과의 차이를 말함에 있어서 전자를 무용(舞踊)에, 후자를 보행(步行)에 비유하고, 산문은 보행과 같이 명확한 하나의 대상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향한 한 행위로서 그 대상에 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데 반해, 시는 무용과 같이 그것도 행위의 한 체계이기는 하지만 도리어 그 행위 자체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고 말하였다. 즉 시는 무용과 같이 어딘가를 목표로 하여 가는 것이 아니라 굳이 말한다면 하나의 황홀한 상태, 생명의 충일감(充溢感)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보행과 무용의 공통점은 그때 쓰이는 것이 육체(肉體)라는 점인데, 이것을 시와 산문에 적용시켜 보면 양자는 다같이 언어(言語)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즉 시에 쓰이는 언어, 시적 언어(詩的言語)는 산문에 쓰이는 언어가 이른바 의미기호(意味記號)로서의 언어, 전달을 첫째 목표로 하고 있는 실용적인 언어인 데 비해, 독자 속에 있는 어떤 감동 상태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쓰이는 언어, 즉 감화적 ·정동적인 기능을 달성하기 위한 언어인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우리가 대하고 있는 시에 쓰이는 언어는 반드시 의미 전달의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시적 언어의 본질은 그런 데에 있으며 이런 사고(思考)를 밀고 나갈 때 소위 순수시의 개념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는 어떤 경로를 거쳐 발생하며 또 발전해 왔을까. 어린이가 내적 감정(內的感情)의 솟아오름을 육체적으로 나타내려 할 때, 표정과 함께 몸까지 떨며 그리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입속으로 흥얼거리는 수가 있다. 미개인(未開人)에게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희로애락의 감정은 춤이나 소박한 노래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오늘날의 춤의 기원과 더불어 시의 기원을 거기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단계에서 한걸음 나아가 생산 노동에 수반하여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집단적으로 불리어진 노동가요(勞動歌謠)나 언어의 초자연적(超自然的)인 힘을 믿는 고대 신앙과 결부되어 욕망이나 기대의 실현을 바라는 주문(呪文)으로서의 기도가(祈禱歌)의 단계를 지나 그 자체로서 양식을 완성하려는 자각이 생김으로써 문학으로서의 시가 탄생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또한 고대 사람들이 포획물(捕獲物)인 동물을 한 마리라도 더 잡기를 기원하며 그린 동굴벽화(洞窟壁畵)에서 오늘날의 미술이 탄생한 과정과도 걸맞는 것이다. 동시에 시의 이와 같은 발생의 역사는 오늘날의 시의 본질적 성격까지도 얼마만큼 규정하고 있고, 훌륭한 시는 인간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각성된 의식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사회적으로 억압된 충동이나 소망을 표면에 끌어내어 일종의 심리적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작용이 인정된다. 반복이나 압운(押韻) ·직유(直喩) ·암유(暗喩) ·우유(寓喩) 등, 소위 시의 기법(技法)도 독자의 의식세계를 흔들어, 잠자고 있는 기억이나 소망을 불러 깨우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도 좋다.
시는 크게 서정시(敍情詩) ·서사시(敍事詩) ·극시(劇詩)의 세 가지로 구별한다.
서정시는 개인의 내적 감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근대시의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영어의 lyric poem이나 프랑스어의 poéme lyrique는 본시 lyre(七絃琴)에 맞추어 노래 불렀던 데서 온 호칭이다.
서사시(epic poem)는 민족 ·국가의 역사나 영웅의 사적(事蹟)과 사건을 따라가며 소설적으로 기술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극시(dramatic poem)는 극형식을 취한 운문(韻文) 내지 운문에 의한 극을 말하는데 셰익스피어, 코르네유, 라신, 괴테 등의 희곡이 이에 해당한다.
시에는 그 밖에 흔히 행(行)을 나눠서 쓰는 시와 대조되는 것으로 산문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 속에 시적 감명(詩的感銘)을 담은 산문시(prose poem)가 있는데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 로트레아몽의 《마르도롤의 노래》,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등이 유명하다.
또 정해진 규칙에 따라 시어를 배열 ·구성하는 정형시(定型詩)가 있는가 하면 그와 같은 형식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자유시가 있으며,
또한 그 내용에 따라 생활시(生活詩) ·사상시(思想詩) ·연애시(戀愛詩) ·종교시(宗敎詩) ·풍자시(諷刺詩) ·전쟁시(戰爭詩) 등의 호칭도 쓰여지고 있다.
산문시 [ prose poem , 散文詩 ]
운(韻)이나 리듬을 갖지 않는 산문체의 서정시. 정형시처럼 외재율을 갖거나 혹은 자유시처럼 내재율을 현저히 형성하고 있지 않지만, 형식상으로는 거의 산문이고 내용으로는 시적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시의 한 종류.
자유시와의 구분은 불확실하지만, 산문시는 대략 행과 연(聯)의 구분 없이 줄글로 씌어진 데 그 형태상의 특성이 있다.
은유‧상징을 중심으로 한 시적 조사법(poetic diction)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경우는 한용운(韓龍雲)의 작품에 이와 같은 예가 보이며
해외의 것으로는 보들레르(P. C. Baudelaire),
투르게네프(I. S. Turgenyev),
타고르(R. Tagore) 등의 산문시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문시 [散文詩, prose poem]
일정한 운율을 갖지 아니하고 자유로운 형식으로 내재율(內在律)의 조화만 맞게 쓰는 산문 형식의 서정시.
특히 프랑스 문학에서 특이한 지위를 차지한다.
장 드 라퐁텐(Jean de La Fontaine),
장 드 라브뤼예르(Jean de La Bruyère),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에티엔 세낭쿠르(Étienne Senancour),
프랑수아 드 샤토브리앙(Franois de Chāteaubriand) 등이
산문시의 선구자들이며,
《밤의 가스파르》(1842)의 작가 루이 베르트랑(Louis Bertrand)은
근대 산문시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산문시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가 《파리의 우울》(1869)을 발표한 이래 중요한 시의 한 부문이 되었다.
그는 서문에서 산문시의 특질에 관하여 "율동과 압운이 없지만 음악적이며 영혼의 서정적 억양과 환상의 파도와 의식의 도약에 적합한 유연성과 융통성을 겸비한 시적 산문의 기적"이라고 진술하였다.
보들레르 이후 산문시를 쓴 시인으로
막스 자코브(Max Jacob),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
앙드레 지드(André Gide) 등이 있다.
프랑스 이외의 다른 나라에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이반 투르게네프(Ivan Turgenev)와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의 산문시는 유명하다.
시의 예)
이육사의 절정
매운 계절의 채찍에 갈겨
마침내 북방으로 휩쓸려 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 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어떤 사람이 이 시를 산문으로 풀어 썼다.
산문의 예)
일제치하라는 맵고 차가운 현실에 채찍으로 얻어맞듯 내쫓겨 어느덧 이곳 북쪽의 끝까지 오게 되었다.
하늘과 땅이 분간되지 않을 만큼 끝없이 펼쳐진 북쪽 땅은 내게 있어 마치 하늘도 지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할 고원과도 같이 느껴진다.
뺨을 스치는 차갑고 매서운 칼바람이 내게 더 이상 갈 곳 없는 서릿빛 칼날위에 선 것과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내가 나의 조국을 위해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쫓기고 쫓겨 막다른 길에 다다른 내게 무릎꿇고 있을 작은 도피처나마 존재하긴 한 걸까.
지금의 내게 있어 현재는 고통과 괴로움만이 가득차 있다.
눈 감아 가만히 생각해볼 때, 우리의 독립과 주권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길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눈물과 괴로움과 무기와 비명이 난무한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의지를 꺾지 않으면 그 힘겨움 너머 한가닥 희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질척하고 어두운 비가 그치면 무지개가 솟아 오르듯이 말이다.
*산문이란 시를 줄글로 바꾸어 쓰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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