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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2015년 09월 17일 20시 05분  조회:4281  추천:0  작성자: 죽림
 

  3) 초현실주의와 《시현실》동인의 시

 

  모더니즘시의 의미

  현실대응의 한 방법론적인 모색으로 모더니즘시 창작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모더니즘시의 특징들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으나 가장 쉽게 다가오는 특징은 아무래도 난해성이라 해야 할것이다. 전통적인 시의 감상방법으로는 도저히 리해가 불가능하기때문에 흔히 《몽롱시》라 불리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상 앞항에서 살펴본 작품들도 일부 난해성을 동반하고있다. 난해성은 결국 전통적인 시작방법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쉽게 받아들일수 있는 시의 개념을 깨뜨림으로써 느껴지는 낯설음이다. 그러한 깨뜨림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다. 상징주의나 인상주의, 이미지즘, 그리고 초현실주의 등이 그것인데 초현실주의 시작품에 이르면 전통적인 감상방법으로는 거의 의미파악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가 난해하다. 이에 비하면 앞항에서 살펴본 시작품들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시작방법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있다 하겠다.

  이번항에서는 그에서 좀더 진일보한, 모더니즘적인 요소들이 좀더 많이 가미된 작품들을 검토해보고자 한다.

  먼저 함형수(咸亨洙)의 《家族》1)의 경우 어머니와 누이, 동생의 각이한 모습들, 그들의 관심과 희노애락을 그리고있음은 분명한데 도대체가 상호간의 련관성은 찾아낼수가 없다. 그리고 특히 《휘황한 電燈밑에서 누이는 밤마다/붉은알 푸른알 힌알 노-란알을 굴리느라고 눈길이 異常하여졌다/오늘 누이는 大理石 돌층계에서/競走練習을 한다/돌층계 밑에 떠러저있는/찢어진 찬송가와 때묻은 항케치》라는 누이의 행위와 련관되는 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분명치 않다. 전체가 은유로 되여있기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작품의 의미를 우리는 대개 짐작은 한다. 《가족》이라는 표제가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어머니와 누이와 동생과 나로 구성된 한 가족의 삶의 양상이 이 《가족》이라는 하나의 키워드에 얽혀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기때문이다. 이 시인의 또다른 작품인 《개아미와 같이》2)도 비슷한 경우지만 그 의미는 더욱 아리숭하다.

 

개아미들이 몬지길을 기어가는 것처럼

뜨거운 거리의 애스팔트우에 사람은 넘처났으나

白紙의 한울에 太陽은 한개의 붉은 쇳덩어리처럼 空然하다.

악착한 市場과

大學室의 試驗管에 어두운 밤은 찾어와

제各各의 內部에서 理論과 苦痛이 달렀다.

개꼬리와 쥐꼬리의 差異만치

一定한 法律과 一定한 流行은

一定한 生活에 象徵되고,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

나무 풀은 쓸데없이 자라고,

시럽시 아이들은 울고,

女子는 帽子를 男子는 신짝을 찾고,

두터운 傳統의 眼鏡속으로 아버지는 조으럼오는

忠告를 느러놓을게다.

 

  이 시에서 현실은, 혹은 현실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냥 하나 혹은 여러 개의 현상에 불과하다. 화자의 시선도 무덤덤하며 거의 정감이 배제된것처럼 보인다. 《뜨거운 거리의 애스팔트우에 사람은 넘처났으나/白紙의 한울에 太陽은 한개의 붉은 쇳덩어리처럼 空然하다.》 하늘은 백지같고 태양은 붉은 쇠덩이같으니 공연(空然)할수밖에 없다. 꽉 차있으면서도 텅 비여있다는 표현이 되겠는데 이것 자체가 곧 역설이 된다. 악착같이 푼전을 다투는 시장의 흥정이나 대학교 실험실의 시험관이나 인간사회의 구석구석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치와 고통과 같은 삶이 진행되고있으나 그들 각자 사이에는 무슨 련관이 없는듯이 보인다.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 라는 회의의 질문은 바로 그래서 강한 울림을 동반할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무나 풀과 같은 미물의 생장도 그냥 무의미하며 아이나 어른, 아버지의 충고마저도 부질없는 일이라고 했다. 인생무위의 인식이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제 다시 이 시의 첫행에 돌아가보면 작품에서 렬거한 현실이나 현실의 삶 모두가 《개아미들이 몬지길을 기어가는 것처럼》 무의미하다는 화자의 인식을 리해할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시인이 정말 현실이나 현실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한것은 아닌것 같다. 《사람은 사람이오 憂鬱은 憂鬱에 不過한것이냐?》라는 반문때문이다. 즉 화자는 현실을 무의미하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달갑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것이다. 그래서 현실이 무의미하다고 한 표현들은 역설이 된다. 현실이나 현실의 삶이 원래 무의미한것은 아니며 그것이 무의미해진데는 뭔가 원인이 있다는 의식이 바탕에 깔려있는것이다. 그 원인에 대한 불만의 정서가 이 작품에는 흐르고있다 하겠다.

  상기 함형수의 시들도 난해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해석은 가능하다. 그에 비하면 김조규(金朝奎)의 《少年一代記》3)는 거의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 작품은 《墓碑銘의 一節》과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두 소제목으로 나뉘어졌는데 긴 시여서 두번째 장이라 할수 있는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부분만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少年의 遺稿日記의 一節

   悔恨의 倫理는 必要업다. 나는 나의 房과 나의 壁과 나의 空氣가 무섭다

  내가 엇지 못하는것은 花辨의 빗갈과 林檎의 味覺이다

少年의 喪輿는 늣가을 찬바람에 饌送되어 黃昏속에 잠기엇고 少年의 무덤압헤는 女人의 恥毛로 包裝한 林檎 한알을 고여노앗다. 女人은  한포기 고이지 안헛고 뭇俗物들의 무덤과 무덤새에 홀로 하이얀 墓碑만이 지터가는 黃昏 黃昏을 지키고잇섯다.

   高邁한 精神少年의 殉死之地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다. 이럴 때 요긴하게 리용할수 있는 리해의 방법이 있다. 이미지의 분석이다.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은것이 되겠다. 《무섭다》《喪輿》《늣가을 찬바람》《黃昏》《무덤》《女人의 恥毛》《林檎》《墓碑》《殉死》…모두가 죽음과 어둠, 성(性)과 관련되는 이미지들이다. 여기에 인용하지 않은 첫번째 장의 이미지들, 가령 《로-마 廢墟의 風化헌 記憶》《가마귀의 豫告》《氷雨가 車窓을 두드리든 黃昏》《쥐새기의 搖籃인 女人의 불근 寢室》《가마귀의 華麗한 分列》《도마도와 갓튼 불근 피덩이를 吐하면서 운명할 》《허이연 한울이 문허지고》《地下室의 饗宴》《점잔은 殺戮》 등을 련결시켜보면 그러한 암울함의 정서는 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따라서 모더니즘시운동을 감정 및 의식의 퇴폐화와 관련시키는 주장은 일부 합리적인 면을 가지기도 한다 하겠다.

 

  《시현실(詩現實)》동인과 그 주변

  상기 김조규의 작품에서도 더러 초현실주의적인 요소들이 엿보이지만 아직은 상징과 은유, 이미지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않는다. 《시현실》동인들의 초현실주의 실험은 그래서 한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시대적으로 이 시기는 조선 본토에서 민족문학이 거의 완전히 말살되면서 황민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던,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발동하고 대동아 공영을 부르짖던 이른바 암흑기에 속한다. 따라서 조선족 이주민들의 문화환경도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나마 남아 있은 《만선일보》라는 발표 지면에서마저도 일제에의 동조를 강요받았고, 이제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나 표현마저도 자유롭지 못하게 되였다. 이런 상황에서 모더니즘의 표방은 어쩌면 암묵적인 저항의지의 표현으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다음으로 민족 시사적인 맥락에서 30년대 리상(李箱)에서 중단되였던 모더니즘의 실험이 40년대 초반에 다시 맥을 이었다는 의미에서 그 중요성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시현실》 동인의 작품 1은 리수형(李琇馨)과 신동철(申東哲)의 공동작인 《생활의 시가(市街)》4)이다.

 

  밤의 피부 속에는 夜光筮의 神話가 피어난다

  밤의 피부속에서 銀河가 發狂한다

  發狂하는 銀河엔 白裝甲의 아츰의 呼吸이 亂舞한다

  時間업는 時計는 모-든 現象의 生殖術을 구경한다

  그럼으로

  白裝甲의 이마에는 毒나븨가 안자

  永遠한 午前을 遊戱한다

  遊戱의 遊戱는

  花粉의 倫理도 아닌

  白晝의 太陽도 아닌

  시커먼 새하얀 그것도 아닌

  眞空의 液體 엿으나 液體도 아니엿다

  자- 그러면 出發하자

  許可된 現實의 眞空의 內臟에서

  시커먼 그리고 새하얀 그것도아닌

  聖母마리아의 微笑의 市場으로 가자

  聖母마리아의 市場엔

  白裝甲의 秩序가 市街에서 퍼덕일뿐이엿다

 

  《생활의 시가》의 전문인데,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차적으로 이 작품이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일반적으로 대할수 있었던 여타의 시작품과는 뚜렷한 구별을 보이고있음을 발견할수 있을것이다. 그 구별을 일단 (1) 현실적인 론리성의 파괴, (2) 사유의 순수한 자동기술성, (3) 이미지의 격리성과 기이성, (4) 신비적, 광란적 수법 등으로 나눠볼수 있다. 이와 같은 특징을 보여주는 시작품의 경향을 우리는 초현실주의라 볼수 있지 않을가 한다.

  조선현대문학사에서 초현실주의의 수용양상은 1920년대 말부터 나타나며 초기에는 프랑스문단에서의 초현실주의 류파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되였다가 30년대에 들어서면서 리상(李箱), 김기림(金起林), 정지용(鄭芝溶), 장서언, 그리고 《삼사문학(三四文學)》의 동인인 리시우(李時雨), 신백수(申白秀), 한천(韓泉) 등의 작품으로 실천되며, 결국 리상의 작품을 정점으로 문단에서 사라졌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5) 그러나 1940년대에 동북지역 조선이주민 문단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순수시파가 일어나고있었음은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정작 이 시기 조선문단에는 보국주의라고 불린 친일문학만이 존재하던 시기에 말이다.

  한편, 극언(克彦)이라는 필명을 쓴 사람은 《熾烈한 精神의 燃燒》라는 평문 5회 련재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있다.

 

  現代性이란 現代의 文化創造力이 傳統과 蓄積에서 한 그것에 重壓當할 에 비로소 나타나는것이다. 그러타고 곳 모-든 詩人들이 푸-쉬킨의 詩精神을 體得하라는 注文은 아니다. 한 時代의 過渡되는 苦惱와 混亂에 否定이면 否定, 肯定이면 肯定의 深化된 意(識?)을 불태우라는것이다. 한 時代가 絶望할제 다음 時代는 삿삿치 헷처진 絶望의 深淵에서 建設과 前進의 烽火를 들고 뒤이어 올것을 우리가 밋을  모름직이 불길을 우리는 남겨야 할것이다. 그러기엔 詩人은 熾烈한 精神을 燃燒해야 하는것이다.

  그러치 못한 

  諸君들은 稅關의 눈을 속이는 文化的密輸入者의 工人이 되고말 危險性을 가지는것이다.

  自重합시다. 나도 自重하기 爲해 이 學說을 깊이 謝過하니 容恕하시요.6)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극언이라는 이름으로 《만선일보》에 발표된 작품은 2편인데, 상기 인용문의 글 외에 《돌》7)이라는 시 한편이 있을뿐이다. 그러나 이런 훈계조로 한 그룹 동인들의 시작활동을 평가한것으로 보아 신인은 아닌듯하며 그렇다면 당시 소위 《문화부대》로 들어온 조선의 어떤 기성문인의 필명일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평문 전편을 보면 다분히 체제영합적인 태도를 보이고있다. 비록 《부정이면 부정 긍정이면 긍정의 심화된 의식을 불태우라》고 표현하였지만 오족협화(五族協和)에 대등아공영을 웨치며 전시체제에 막 돌입하려고 하였던 당시 만주의 환경에서 현실을 부정한다는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였으므로 사실상 긍정의 의식을 불태우라는것이나 다를바 없는것이다. 그러니까 극언의 훈계는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이 당대의 현실을 너무 의식하지 않은데 대한 경고로 보인다. 1940년의 8월이 어떠한 시대인데 서양 나라 문학의 흉내나 내고있느냐는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시작실험이 현실에 대한 불협화음을 동반하고있으며 심지어 저항적인 의미마저 내포하고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현실》동인의 초현실주의 작품들로는 리수형(李琇馨)·신동철(申東哲)의 《生活의 市街》, 김북원(金北原)의 《椅子》8), 강욱(姜旭)의 《樂譜를 가젓다》9), 리수형의 《娼婦의 運命的海洋圖》10), 김북원의 《비들기 날으다》11), 신동철의 《능금과 飛行機》12) 등 6편으로 6회에 걸쳐 《만선일보》지에 발표되였고, 동인으로는 리수형, 신동철, 김북원, 강욱 등 4명이 여기에 묶여있다.

  물론 류사경향을 보인 S. S. Y13), 송석영, 천청송(千靑松), 정야야(鄭野野), 함형수(咸亨洙) 등 5명을 포함해보아야 총 9명 시인에 12편의 작품이 전부여서, 량적으로는 빈약하다 할수 있고, 그중 다수는 조선본토문단에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문학에 관한한 문제는 달라진다. 순수문학중에서도 《정신의 폭발》로 압축되는 이 문예사조가 조선시가에서 하나의 성과로 평가되는것은 리상 정도이기때문이다. 더구나 1940년 8월의 만주는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의 일차적 후방이였고, 따라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제의 강압적, 혹은 포용적 책략에 시달리다못해 변절하고 투항했던 당시 조선족문단에서14) 《시현실》동인들이 이런 시대적상황, 달라진 천지, 대동아공영의 신풍토에서 눈을 딱 거두고있는것은 이변이 아닐수가 없는것이다.

  이수형의 《娼婦의 運命的 海洋圖》를 보자.

 

  一萬系列의 齒科術時代는 밤의 海洋에서 섬의 하-모니카를 분다

  一萬系列의 化粧術時代는 空港의 層階에서 근 추-립푸 저녁을 심포니한다 記念日 記念日의 추립푸는 送葬曲에 핀 紙花엿다

  明日의 손락을 算術하는 츈-립푸는 머-ㄴ 푸디스코 압페

  오르는 오르는 비누방울의 夜會服 記念日記念日의 幸福을 約束한 肉體의 女人이 雙頭의 假面을장식하는 날 七色의 슈미-즈가 孔雀의 미소를 워 나의 海洋의 蜃氣樓를 러 왓다

  記念日 記念日 너의 장식에

  너의 그 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골에 너의 그 바다와 가튼 神話를 들여주는 눈동자에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

  그러나 娼婦는 울고만 잇엇다

  肉體의 女人은 장식의 歷史가 슬펏다

  假面의 女史는 살아잇는것이 슬펏다 雙頭의 怪物은 왜 울엇을?

  明日을  장식하여야 할 運命을

  明日도 그 다음날도 살아야 할것을

  女人아 假面아 深夜의 어린애야

  現實에 規約된 誠實보담도 阿片보담도 술보담도 밤의 秘密보담도 외健康術을 사랑한다

 

  이 시는 서정시의 일반적 독법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문맥이 비론리적이고 내포가 복잡하기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대로 막연하기만 한것도 아니다. 우선 제목에서 무엇인가 시사되고있다. 《娼婦의 運命的海洋圖》. 다시 말하면 창부의 운명과 해양도가 관련이 되고있다는 얘기인데, 전체적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는 암울하고 절망적이다. 그 절망감과 암울한 분위기를 형성한 이미지들을 추출해보면, 《밤의 海洋》《送葬曲에 핀 紙花》《海洋의 蜃氣樓를 러 왓다》《洋초와 갓튼 蒼白한 얼골》《나의 椅子는 溺流되엿다》《娼婦는 울고만 잇엇다》《장식의 歷史가 슬펏다》《살아잇는것이 슬펏다》《雙頭의 怪物》《現實에 規約된 誠實》《阿片》《술》《밤의 秘密》 등으로 되는데, 대체로 암흑과 타락과 슬픔으로 요약할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 자체도 암울하고 절망적이지만 이러한 이미지들을 《娼婦의 運命》과 련계시킬 때 그 암울함과 절망감은 배가된다. 이 작품의 시적 자아는 창부라 볼수 있는데, 창부란 말은 그 생존양태상 밤의 이미지와 련결되며 시인은 이런 이미지를 다시 죽음, 소멸, 사라짐의 이미지와 련결시키고있다. 그리고 시의 후반부는 《溺流되엿다》《울고만 잇엇다》《슬펏다》와 같은 소멸적 혹은 절망적내포의 서술어로 끝나고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사실상 형식에만 집착한 무의미의 시는 아닌셈이다. 상식적인 론리를 초월한 자동기술에 의하여 기존의 시적흐름을 파괴시키고있고 그래서 기존의 시읽기 방법으로 해석이 어려워졌을뿐이다.

  자동기술법은 초현실주의 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기법중의 하나이다.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상태에서의 자유련상을 시작과정에 리용하고있다고 보면 된다. 《발광하는 은하엔 백장갑의 아츰의 호흡이 난무한다》(《生活의 市街》)나 《포푸라 가지에 가벼웁게 바다가 넘친다》(《樂譜를 가젓다》), 《푸른 口腔속에 여러 비행기들이 몰려든다》(《능금과 飛行機》), 《안즈면 그대요 나인/굼실거리는 바다》(《椅子》) 등의 표현은 그 개념들사이에 필연적인 련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다만 서로 이질적인 이미지가 병치되여 그 상호 충돌에 의해 돌발적인 의미의 충격이 일어나고 동시에 낯선 긴장감을 동반한 매력이 있을뿐이다. 이 충격, 이 매력이 바로 초현실주의 시인들이 노리는 인간 감성의 발굴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문학의 진정한 힘, 진정한 가치는 바로 이러한 인간 감성의 발굴에서 기인된다. 비록 이런 이미지들의 다발에서 우리는 실리적인 의미를 추출해내기는 어렵지만, 그러나 시인이란 현실을 살아가는 력사적인 인간이므로 시인이 가지고있던 감정과 정서, 념원과 리상, 사랑과 증오 등의 감정은 무의식적인 상태에서도 드러나게 마련이며 어쩌면 이러한 무의식 상태에서 보다 진실하고 적라라하게 드러날지도 모른다. 이점은 인간의 사상의 진실이 꿈속에서 가장 확실하게 표현된다는 정신분석학의 리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한것이다. 우리가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초현실주의 시작품에서 비록 론리적으로는 분명한 의미를 추출해낼 수 없으나 《어둠》이라든가, 《파멸》, 《상실》, 《복수》 따위 불만의 정서를 읽을수, 혹은 느낄수 있는것은 바로 이런 원인에서가 아닐가 한다.

  《<詩現實> 同人集》에 묶여 발표된 작품은 아니지만 이수형의 《白卵의 水仙花》15), 金北原의 《胎動》16), S. S. Y의 《氣焰》17), 송석영의 《詩人》18), 千靑松의 《愚感錄》19), 鄭野野의 《거리의 碑文》20), 咸亨洙의 《正午의 모-랄》21) 등 《滿鮮日報》에 발표된 다른 작품도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있다. 동인이라는 개념이 가지는 성격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그 주변에 류사한 문학적경향을 가진 시인들이 비슷한 경향의 작품을 발표했다는것은 초현실주의 실험이 하나의 류파를 형성하고있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 흥미있는것은 이와 같은 초현실주의 성격의 작품들이 발표되기 시작하여 3개월여만에 《시현실》동인이라는 그룹이 출현하여 동인특집을 련재한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만선일보》를 통한 초현실주의 시작실험이 일정기간 진행되여오다가 그것이 무르익으면서 동인그룹이 형성되였고 본격적인 동인활동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다른 측면에서 초현실주의 문학류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셈이 된다. 그만큼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띤다 하겠다.

  이런 사실을 진일보 확인하기 위하여 정야야(鄭野野)의 《거리의 碑文》를 더 제시한다.

 

  大理石 딍에

  神話가 油液처럼 흐르는 밤.

  女人은 二十世紀의 傳說을

  聖母처럼 受精한다.

  明體의 彈力의 플니는 花房

  閱華의 燭臺압헤는

  獨生子의 來世를 비는 一族의

  白金義齒로 별을 는 饗宴을 연다.

  秘閱의 振律하는 한나지면

  獨生子는 呪文을 流行歌처럼 부른다.

  交叉點에는 礫死의 事故가 이럿다.

  《靑進赤地(止)》 信號는 번가러 든다.

  昇天하는 獨生子는 二萬七千群이 氣流를 헤간다

  花房의 女人은 傳說을 다시 受精한다.

 

  전형적인 초현실주의 시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초현실주의 실험시들이 추구하는 요소들은 두루 갖추고있다. 이미지들사이의 론리적인 련결성의 부재, 자유련상으로만 가능한 《정신의 폭발》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암울한 분위기 역시 초현실주의 시들과 류사하다. 따라서 정확한 의미파악은 불가능할뿐만아니라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다만 《거리의 碑文》이라는 표제를 키워드로 하여 시 전체적으로 풍기는 정서 혹은 분위기를 느낄수 있을따름이다. 여타의 류사 작품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 작품의 경우와 비슷하다. 1940년 당시 조선족문단에서 초현실주의 실험이 차지하는 문단적 영향력을 짐작할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와 같이 《시현실》동인들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시의 실험운동은 그 기법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1940년 일제의 발악적인 식민통치라는 최악의 환경에서 조선족 이민시인들이 민족의 지성인들로서 자신의 정서를 문학적으로 표현할수 있는 장치로서 상당히 효과적이였고 따라서 긍정적이였다 하겠다. 앞에서 제시한 극언의 평문은 오히려 반면적으로 이들 《시현실》동인들의 시작품의 적극적인 의의를 파악하게 하는 글이 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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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7 어느 할아버지 시평 - 김춘수 "꽃", 존재론적에 머문 詩 2016-01-02 0 4182
826 해체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2016-01-02 0 5811
825 "거시기" 세글자면 모든 것 통하는 것... 2016-01-02 0 4115
824 난해시와 김지하 2016-01-02 0 3961
823 산문시(散文詩)와 그 례... 2016-01-02 0 3675
822 詩史에서의 미래파시인 2016-01-02 0 4818
821 해체시와 박남철, 황지우 /// 시적허용 2016-01-02 0 4157
820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예디자인론 2016-01-02 0 3875
819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통점과 차이점 2016-01-02 0 4489
818 포스트모더니즘과 니체 2016-01-02 0 3958
817 난해시와 보들레르 2016-01-02 0 4146
816 난해시를 읽는법 2016-01-01 0 6098
815 왕초보 시짓기에서의 비법 2016-01-01 0 4072
814 난해시의 원조 - 산해경 2016-01-01 0 3627
813 난해시와 목장의 목동 2016-01-01 0 3431
812 난해시와 오세영 2016-01-01 0 3571
811 난해시와 김수영 2016-01-01 1 3860
810 난해시와 김춘수 2016-01-01 0 4097
809 난해시와 조영남가수 2015-12-31 0 3941
808 난해성과 현대성 2015-12-31 0 4030
807 난해시와 어설픈 평론 / 나와 나도 난해시가 좋다... 2015-12-31 0 4005
806 난해시와 신경림 2015-12-31 0 4277
805 난해시와 李箱 2015-12-31 0 4373
804 詩의 넋두리 2015-12-31 1 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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