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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송정환 / 장춘식
2015년 09월 17일 20시 41분  조회:4162  추천:0  작성자: 죽림
 

송정환의 창작과 연구 다시 보기

장춘식

 

  우리 시인이자 사학자인 송정환선생이 작고한지도 벌써 16년 세월이 흘렀다. 선생은 54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 우리에게 《풀피리》(연변인민출판사, 1982), 《사랑의 페허위에》(도서출판 高句麗, 2001) 등 시집 2권과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 개요》(료녕인민출판사, 1982; 한국 범우사, 1990년 개정재판), 《조선사화총서》(전4권, 료녕인민출판사, 1983~1985), 《안중근전》(료녕민족출판사, 1985), 《조선갑오농민전쟁》(상무인서관, 1987) 등 7권의 력사서, 그리고 소설, 수필, 문학평론 등 기타 문학작품 및 사학론문 다수를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21세기라는 시점에서 선생의 문학적성과와 학문적업적을 되돌아보는것은 우리 민족성 보전과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시문학창작의 특징과 전개

 

  송정환의 문학창작은 시를 중심으로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이루어졌다. 시기별로는 크게 세 단계를 거치는데 첫째시기는 청년시절인 1950년대말~1960년대 초반이고 둘째시기는 개혁개방초기 즉 1970년대말 1980년대초반이며 세번째시기는 그후 작고하기전까지의 시기이다.

  첫째시기의 시들은 청춘의 정열과 감성이 넘쳐나고 거기에 신중국 건국후 격정적이고 조금은 유아적인 정치적담론이 호응되여 표현되였다.

  처녀작으로 알려진 시 《춘희의 초상》(1956)은 시인이 19세 되던 해에 발표한 작품인데 이 시에는 새시대 고향건설에 나선 춘희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희망에 가득찬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기대와 환상을 그려보이고있다.

  제1련에서는 화가의 시각으로 춘희라는 새내기 농사군의 외적인 모습을 그리고나서 제2련에서는 행동하는 춘희의 정열적인 모습을 그린다. 상당히 서사적인 묘사속에 드러난 춘희의 이미지는 미래에 대해 희망과 기대로 충만되여있고 따라서 전반적인 시의 분위기는 밝다. 정열과 감성이 뚜렷하며 현실에 대한 인식은 매우 긍정적이다. 여기서 춘희의 초상은 동시대 청년들의 초상이라 할수가 있어 다분히 전형성을 지녔다 하겠다. 작품의 마지막 4행만 보더라도 이점은 잘 드러난다.

 

  그렇습니다. 화가들은 못그릴것입니다

  처녀의 새별눈동자에 담긴 모든것,

  두드러진 앞가슴에 품은 모든것,

  정녕 이것만은 그려내지 못할것입니다…

 

  삶에 대한 기대감, 흥분 같은 정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에 대한 찬미에서도 잘 드러난다.

 

  공장지구의 높은 굴뚝과 건물우로

  동녘하늘은 구름과 연기로 자욱한데

  구름새로 황금의 부채살 활짝 펼치며

  타끓는 아침해 우렷이 솟아오르네

 

  《장춘교외의 아침》의 첫 련인데 굴뚝과 연기는 력동적인 우리 사회의 상징이 될것이고 거기에 아침, 아침해는 생기에 넘치는 청춘의 정열을 상징한것이다. 이 작품뿐만아니라 《안강의 이른아침에》를 비롯하여 이 시기 다른 작품들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달한다. 《장춘교외의 아침》의 마지막 련에서 그러한 시인의 기대와 희망은 직설적으로 표현된다.

 

  생활이 바로 시며 노래인 여기

  약동하는 교외의 대지 광활한 무대우에서

  아침, 그것은 영예론 하루의 서막이여라

  태양, 그것은 시대의 찬란한 조명이여라!

 

  새사회, 새생활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그것을 가능케 해준 조국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조국》, 《조국의 수도에서》, 《영광이 있으라, 조국이여!》 이때 시인의 정체성은 민족성보다는 국민성에 맞추어져있다. 50-60년대 우리 시단에 조국에 대한 찬가가 류행했던 사실을 돌이켜볼 때 송정환의 작품들이 그러한 류행을 한층 고조시켰다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20대의 젊은 시인답게 이 시기 송정환의 시에는 사랑에 대한 어렴풋한 감정이 표현되기도 한다. 《무지개》, 《실련자에게》, 《사랑의 그림자》 등이 이에 속하는데, 이런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밑바탕에 깔린 시에서마저 새사회에 대한 기대감이 강한 정서로 표현된다. 그만큼 당, 조국과 희망에 넘치는 새사회의 삶에 대한 시인의 감정은 진실했고 소박했다는 말이 될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정열과 기대에 부풀었던 시인의 정서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한결 성숙해진다. 물론 제2단계 시창작도 문화대혁명이라는 암흑을 뚫고나온 해방감에서 시작된다. 첫번째 시집 《풀피리》중 《원혼이 된 시인에게》항에 수록된 작품들은 대부분 이 류형에 속한다.

  우선 《좋다!》에서는 봄을 맞은 자연의 풍경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이 봄은 그냥 자연의 봄이여서 좋다고 한것만은 아니다. 첫 두 련을 인용해보이면 이점은 금방 알수 있다.

 

  이른봄, 해빙기

  집채같은 성에장 떠이고

  봄물결 도도히 흘러가는데

  들려와라 시성의 목소리

  ―좋다!

 

  겨우내 짓밟힌 강기슭

  짐승들 쏘다니던 발자국은

  아직도 저렇게 어지럽다만

  산간을 울리며 굽이치는 봄물결

  이 봄이 나는 좋다!

 

  특히 제2련에서 어지러워진 강기슭에 대한 묘사는 4인무리에 의해 어지러워진 이 땅 겨울의 흔적이 분명하다. 그래서 더구나 시인은 이 봄이 좋다고 큰소리로 웨친것이다. 그러나 기쁨이나 즐거움만 있는것은 아니다. 《원혼이 된 시엔에게》라는 시에는 그 매서운 겨울이 우리 사회에 남겨준 뼈아픈 상처를 상기시키고있다. 《풀피리》의 《잊을수 없는 어제날의 생각》항에 수록된 작품들에서는 그러한 상처의 흔적을 원천적으로 규명하고자 한다. 문화대혁명속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들, 비정상적인 현상들을 재현하여 검토하고 비판하고있는것이다. 심지어 몇편 안되는 단편소설중 《정인군자》라는 작품에서도 이러한 문화대혁명의 상처 혹은 그속에 로출된 인간성의 문제를 다루고있다. 이른바 혁명위원회 주임이라는 자의 마음속에 도사리고있는 《악마》를 끄집어내여 비판하고있는것이다.

  이런 반성과 비판을 통한 력사인식을 표현하고나서야 비로소 시인은 이제 불혹의 나이에 느끼는 삶의 긍지감과 행복감을 드러낸다. 《사랑시를 두고》를 비롯하여 《풀피리》의 《사랑의 그림자》항에 수록된 작품들에는 이러한 시인의 삶에 대한 애착과 긍지감이 표현되여있다.

  그러나 이때쯤에 와서 송정환의 시들은 왕년의 정열과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형식적인 모색의 기회를 놓친것이다. 이 시기에는 우리 문단에서도 모더니즘시운동이 확산되면서 시적인 지형의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송정환은 거기에 합류하지 못하였다. 아쉽다 하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송정환은 또다른 측면에서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다. 력사에 대한 재음미가 이에 속한다. 사학자라는 송정환의 또다른 신분과도 관련되는 이 모색은 송정환의 시창작에서 셋째 단계가 되는데, 이 시기에 오면 그의 작품들에는 지천명의 깨달음과 인생의 무게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조선족으로서 정체성 확인의 욕구들이 끊임없이 표현된다.

  《사랑의 페허위에》는 1988년에 쓴 사랑시이다. 그러나 제목에서도 시사해주는 바와 같이 꿈같은 환상적인 사랑의 애탄 그리움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아쉬움과 그를 통해 깨달은 삶의 무게감이다. 그런 무게감은 마지막 련에서 잘 드러난다.

 

  꿈나라 무너진 돌각담위에

  달빛은 이 밤도 춤추며 내리는데

  이끼 돋은 사랑의 페허위에

  추억은 다시 안개되어 꿈틀거린다

 

  《용수평 작은 골목길》이나 《달처럼 별처럼》, 《가을밤에》와 같은 다른 사랑시들도 옛날의 사랑시와는 의미가 다르다. 오히려 인생의 무게감이 사랑시로 표현되였다고 하는것이 나을것이다.

  사랑시에서뿐만이 아니다. 《이름 석자 아끼여》는 명예에 대한 시인의 깨달음을 시화한것인데 여기서도 삶의 무게감은 뚜렷하다. 《구름처럼 덧없는 일생에/강물처럼 부지런히 옥토를 적시며/짧은 생을 보람있게 살아가리라/이름 석자 때가 묻지 않게 하리라!》 짧은 삶을 값지게 보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담겨있다. 《나 흙으로 돌아간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시인은 삶의 끝을 예감하기라도 한듯 1989년에 쓴 이 시에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고백하고있다.

  삶의 무게감은 정체성 확인의 욕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욕구는 우선 시인이 사학자인 관계도 있겠으나 고구려와 발해국에 대한 남다른 감정으로 드러난다. 《고구려 옛터에서 읊은 시》라는 시묶음에 묶인 3편의 시에서는 집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구려의 옛 흔적들을 이곳에 정착한 이주민의 후예의 시점에서 되새기고있다. 이보다 작품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 바로 《발해국 옛터에서》라 하겠는데, 발해국 옛터의 폐허를 보며 망국의 설음과 인생의 무상함, 정체성의 문제를 두루 내포시키면서 담담한 어조로 시적인 감흥을 유발하고있다.

  우리 조선족이 살고있는 땅에서 벌어진 우리 조상의 력사에 대한 되새김, 그것 자체가 조선족시인으로서는 하나의 정체성 확인 과정이다. 《할빈 역두의 아침》, 《역사는 울고있었네-안중근의사가 수감돼있던 여순감옥에서-》, 《장고봉 기슭을 지나면서》 등 우리의 현대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소재를 시속에 용해시킨것도 같은 리치라 하겠는데, 그러나 송정환은 자신의 정체성 확인 욕구를 력사 되새김이라는 의미에서만 드러낸것은 아니다. 이민의 이미지를 표현한 시작품에서는 좀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추억따라 세월따라-수필가 이계향여사 이게-》라는 작품은 일면 재미동포 수필가 리계향의 중국행을 그린것처럼 보인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작품의 초점은 다른데 있다. 《고국을 등지고 쫓겨와 살던/저 먼 옛날 옛적엔/산설고 물설은 타향이었건만/오늘은 사무차게 정다운/사무차게 정다운 두번째고향…》 리계향의 운명이 우리 이주민의 운명과 같은 지평을 가졌다는 사실에 시인의 의식은 맞춰져있는것이다. 남을 통하여 자기를 드러낸셈이다. 《두만강의 여울소리》에서는 다시 그 매개체가 두만강이 되고있다. 《그것이 살길찾아 눈물의 강 건너/쪽박차고 쫓겨오던 그 시절/북간도 서간도 저 먼 북만벌/그리곤 바람세찬 시베리아에서/그것은 진정 겨레의 곡성이였다/두만강 철썩이는 여울소리…》 상기 《추억따라 세월따라》에서와 비슷한 시의식이지만 표현은 훨씬 직접적이다. 그만큼 시인 로년에 정체성 확인의 욕구가 강했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송정환 시창작의 전개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제1단계의 시들은 청춘의 정열과 감성속에 당대의 정치적인 담론들을 담아내고있고 제2단계의 시들은 문화대혁명에 대한 반성과 비판, 그리고 이를 탈출한 해방감을 표현하고있으며 제3단계에서는 인생의 무게감과 정체성 확인의 욕구들을 표현하고있다. 그런데 이러한 3단계의 문학적 전개과정과는 무관하게 송정환의 문학인생 전반을 관통하는 시적인 맥락이 있다. 그것이 뭐냐면 바로 고향의식이다. 이러한 고향의식은 앞에서 론의된 정체성 확인의 욕구와도 관련되는바, 이중적 정체성을 소유한 조선족시인으로서 고향은 그러한 이중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 모티브가 되기까지 한다. 송정환뿐만 아니라 우리 시인이나 문학인들이 항상 고향을 중요한 이미지로 문학작품에 표현하고있다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 리해가 된다.

  송정환은 시인이지만 단편소설도 3편 발표하였다. 뛰여난 성과작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시작활동의 한 보완의 형태로서 의미가 있다. 1986년 전반기부터 1987년 전반기까지 일년여 기간에 《주택문제》(《북두성》, 1986.2), 《정인군자》(《장백산》, 1986.5), 《빼앗긴 첫사랑》(《장백산》, 1987.3) 등 3편의 단편을 발표하는데 주제적측면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작활동에서 다룬것들과 다르지 않다. 《주택문제》에서는 제목에서 시사하는바와 같이 개혁개방초기 심각한 주택난의 문제를 바탕에 두고 개혁과 개방의 바람과 더불어 점차 바로잡혀가는 우리 사회 시비곡직의 문제를 재현하였다. 그리고 《정인군자》에서는 문화대혁명기간 한 5.7간부학교 혁명위원회 주임 오운룡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정인군자》의 이미지를 잘 그려냈다. 문화대혁명기간 존재했던 림시정권의 부당성과 부패상을 드러낸것이다. 또다른 소설 《빼앗긴 첫사랑》은 좀더 복잡한 소설적인 장치들을 동원하고있다. 출신제일주의 사회의식때문에 빼앗긴 사랑을 그리면서 첫 련인의 딸을 등장시킴으로써 현실과 과거의 삶이 얽혀지면서 소설적인 긴장감을 조성한것이다. 소설에서는 특히 두 련인이 모두 딸 이름을 《아려》 즉 하르빈 역두에서 이등방문을 쏜 독립투사 안중근 부인의 이름을 따옴으로써 안중근 투사에 대한 작가의 강한 존경심을 엿볼수가 있다.

  그러니까 송정환은 잠간의 《외도》를 통해 시작활동으로 이어온 주제들을 소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시작활동에서 남겨진 아쉬움을 보완하고자 했던것으로 보인다.

 

  력사연구와 정체성 확인

 

  송정환은 시인이면서 동시에 사학자이기도 하다. 그의 직업도 사실은 사학도로서의 연구에 관련되는것이였다. 그만큼 그의 사학연구의 업적은 눈부시다.

  송정환은 일생동안 7권의 사학 관련 저서를 출간하였다. 가장 먼저 출간한 저서는 오늘까지도 학계에서 중요 참고자료가 되는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이다. 한국 범우사에서 재판까지 한것을 보면 이 연구서의 가치가 상당수준임을 짐작할수가 있다.

  이 저서는 책 서언을 쓴 박문일도 지적하고있는바와 같이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는 오늘 이때까지도 기본상 처녀지로 남아있다고 말할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송정환동지의 이 저작은 …(중략)…하계의 공백을 미봉함에 있어서 초보적이나마 반가운 성과를 올렸다고 믿어진다.》 그렇다면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 력사에 대한 연구는 왜 공백을 이루었을까? 저자 자신은 이러한 연구의 부진상태를 우선 짜리로씨야의 침략방식에서 찾고있다. 《조선에 대한 짜리로씨야의 침략과 팽창은 다른 렬강들이 조선에 대한 침략이나 또 짜리로씨야자신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적라라한 무력적침공정책과는 달리 대체로 <온화>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였다.》이처럼 조금은 《온화》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기때문에 그 침략력사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절실하지 않았다는것이다. 그러나 사실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은 중국이나 일제와의 각축을 동반하였던바 조선근대사의 진행과정에 짜리로씨야의 영향은 지대하였다.

  이런 시각에서 송정환은 200쪽 남짓한 짧은 저서에서 짜리로씨야와 조선반도 및 주변국들간의 관계사를 추적하면서 일제의 조선 식민화 추진과정에서 짜리로씨야의 점진적인 침략이 미친 영향을 개괄적으로 제시하고있다. 우리의 근대사를 리해하는데, 특히 뼈아픈 망국사를 리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가 순수 력사연구서라면 또다른 저서인 《조선사화총서》(전4권)는 문학자요 사학자인 저자의 신분에 걸맞는 작업이라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 력사를 다분히 문학적인 표현방식으로 제시하고있기때문이다.

  총서의 제1권은 제목을 《해동의 세나라》라 하고 고조선에서부터 삼국에 이르는 고대사를 문헌자료에 근거한 사화로써 풀어나가고있다. 제2권은 제목을 《송악산 줄기줄기》라 하고 통일신라에서 고려조에 이르는 시기의 력사를 기록한 사화를 제시하고 제3권은 《한양성의 종소리》라 하여 리조초기부터 리조중기에 이르는 력사를 펼쳐보이고있다. 제4권은 《피바다 삼천리》라 하고 리조후기부터 시작된 피비린 근대사, 봉건왕조의 종말과 근대식민지시대의 력사를 제시하고있다.

  일부에서는 이 저서를 저평가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본격적인 력사연구서가 아니라 이야기 위주의 사화집으로 되여있다는 리유에서일것이다. 그러나 력사서가 꼭 딱딱해야 한다는 도리는 없다. 오히려 쉽게 읽으면서 력사를 알아가는것이 일반독자에게는 더 유익하다 해야 할것이다. 고조선에서 삼국시대를 지나 통일신라, 고려, 조선왕조를 거쳐 근대에 이르는 반만년 조선사를 대표적인 사화이야기를 통하여 재미있게 보여준것, 아직 우리 이민사마저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통속적인 력사교양의 방법은 어쩌면 딱딱한 력사서보다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또 비록 비슷한 사화들이 여기저기에 수록되여있지만 그것을 송정환의 력사인식에 따라 배렬하고 엮어놓음으로써 력사저서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더구나 여기에는 문학에 깊은 조예를 갖춘 송정환의 독자적인 연구스타일이 반영되기도 하여 남다른 교양효과를 가지기도 한다.

  《안중근전》과 《조선갑오농민전쟁》은 자료를 구하지 못해 좀더 자세한 론의는 접을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안중근에 관련된 자료는 력사실화 《할빈역두의 총소리》(《장백산》, 1982.4)가 있어 얼마간의 발언권을 얻었다.

  사실 송정환의 안중근에 대한 관심은 남다른데가 있다. 단편소설 《빼앗긴 첫사랑》에서 주인공의 첫사랑 과정에는 안중근 관련 연극이 중요한 매개가 되여있다. 심지어 안중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자기들 딸의 이름을 《아려》라 짓기로 약속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실제로 두 련인은 결혼을 못하지만 각자의 딸들 이름을 《아려》로 짓기도 한다. 안중근에 대한 송정환의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뿐이 아니다. 송정환의 시작품에도 안중근을 기념한 작품이 2편이나 있다. 《역사는 울고있었네-안중근의사가 수감돼있던 려순감옥에서》와 《할빈역두의 아침》이 그것이다. 전자는 안중근의사가 의거를 단행한후 수감됐던 감옥을 돌아보며 의사의 업적을 기린 작품이고 후자는 안중근의사의 의거의 자리였던 하르빈 역두에서 의사의 장거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리고 력사실화의 형식으로 쓴 《할빈역두의 총소리》에서는 식민지 백성의 원한을 담아 원쑤의 가슴에 총탄을 안긴 안중근의사의 의거 과정을 거의 소설적인 구조를 통해 그려내고있다. 인물의 담대하고 의로운 성격과 장엄한 분위기를 잘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어느 정도 《안중근전》의 모습을 짐작할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송정환의 력사연구는 력사연구의 가치로서뿐이 아니라 문학자로서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조선사화총서》는 당연히 력사적 사실이나 야사의 사실들을 거의 문학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고 볼수 있거니와 안중근의 사적을 다룬 실화 《할빈역두의 총소리》, 그리고 그것을 좀더 심도있게 다룬 《안중근전》 역시 송정환의 문학적인 공력에 힘입은바 적지 않다.

 

  문학과 력사학사이에서의 고민

 

  송정환은 문학과 사학사이에서 항상 갈등을 겪어왔다. 그러한 갈등은 소년시대에 벌써 씨가 뿌려졌던것 같다. 소학교 5-6학년때부터 력사와 어문에 특별한 흥미를 가졌던것이다. 이런 그의 갈등과 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은 송정환 평생을 두고 이루어졌다. 《문학과 력사학의 갈림길에서》(《갈매기》, 1988.1)라는 글에는 그러한 송정환의 고민이 잘 드러나고있다.

  비록 전통적으로 문학과 사학은 서로 얽혀있으나 학문이 세분된 현대사회에서 그러한 관련성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국 송정환은 이 문학과 사학의 갈등을 정체성의 확인이라는 보다 높은 차원의 실천을 통해 극복했다. 시문학창작에서 정체성 확인은 이땅에 남겨진 고구려, 발해 등 조상의 력사 흔적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여 이민의 력사에 대한 관심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사학분야에서의 정체성 확인은 《조선사화총서》에서 민족력사지식이 전무한 우리의 신세대에게 민족사의 전통을 알기 쉽게 제시하고 《짜리로씨야의 조선침략사개요》에서 우리 삶의 현장과 관련된 현대사의 한 단면을 제시한데서, 그리고 《안중근전》을 통하여 이땅에서 이루어진 독립투사의 위업을 그려냄으로써 이루어진다. 혹 어느 한 분야에서 정진했더라면 보다 나은 업적을 쌓았을것이라 볼 사람도 있으나 두 분야의 관련성속에서 이민민족으로서의 정체성 확인을 통하여 겨레에게 삶의 한 좌표를 제시해주었다는것은 큰 기여가 아닐수 없다. 송정환의 창작과 연구를 되돌아보며 이점을 다시금 상기시키고싶다.

  송정환 자신은 이점을 사학과 문학의 불가분리의 관계에서 찾고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민족의 얼, 민족의식, 민족전통 등 민족적인것을 고창하고있는데 민족의 력사를 모르고 어찌 민족적인것을 써낼수 있겠는가!》《우리 중국조선족문학도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전통에 대한 국가적 내지는 국제적인 공인을 받자면 반드시 자민족의 력사에 대한 투철한 리해가 있어야 할것이라고 생각된다.》(이상 《문학과 력사학의 갈림길에서》, 《갈매기》, 1988년 1기에서)

  어떻든 송정환은 창작과 연구의 병행을 통하여 우리의 민족성 보전과 정체성의 확인에 초점을 맞춰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상의 론의를 통해 확인할수가 있다. 후학들이 본받을바라 하지 않을수 없다.

 

 

 

   * <문학과 예술>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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