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시인 문학관 탐방
글/ 사진 이 규 봉
박재삼 시인의 고향이자 그의 시 원천인 먼 삼천포 남쪽바다, 잔잔한 물결에 실려와 쉴새없이 솔가지를 간지르는‘천년의 바람’을 맞으러 천리 길을 나선다.
이미 추수를 끝낸 경부 고속도로 주변의 논들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아카시아 잎, 싸리나무 여린 잎사귀들이 노랗게 물들어 마치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 있는것 처럼 계절을 혼동하게 한다. 천안을 지나자 짙은 안개가 길을 막아선다. 햇볕은 안개에 가려지고 대진고속도로로 접어들자 덕유산 정상에 걸쳐진 구름과 안개가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낸다.
햇볕과 안개가 숨바꼭질을 하고 다리와 터널이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깊은 산골짝을 흘러온 냇물이 모이고 모여서 이룬 청청(靑淸)한 남강 상류를 지난다. 삼천포 바다가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길가 옹기종기모여있는 시골 마을, 탐스러운 감들이 나무 끝가지에서 가을빛으로 익어가는 성숙의 시간을 보네고 있다.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뒤로 벋어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러질까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한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全) 설움이요 전(全)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쨋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한(限)」전문
‘가장 슬픈 것을 노래한 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것이다.’ 라는 명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시를 써왔다는 박재삼 시인, 시인은 노을빛 아래 붉게 익어가는 감 빛깔이‘전생(前生)의 전(全) 설움이고 전(全) 소망’이라 느끼며 저승에서나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다 못한 사랑의 아픔, 세상살이 설음을 이렇듯 한(限)으로 노래한 것인가.
차는 사천 IC를 빠져나와 와룡산을 바라보며 바다 쪽으로 달린다. 멀리 쪽빛 바다가 보이고 섬들이 나타나고 섬과 섬을 이어주는 붉은 아치형의 남해대교가 시야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와 붉은 다리, 검푸른 섬들이 조화를 이룬 절묘한 풍경이다. 생선 비린내가 물씬 풍겨오는 바다 가에 섬 같기도 하고 어머니 가슴 같기도 한 노산공원에 차가 닿았다. 노산공원을 끼고 해안으로 빠지는 박재삼 거리를 걷는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시기 된「울음이 타는 가을 강」과「내 고향 바다 치수」시비가 공원에 세워져 있다.
-박재삼 시인 시비(울음이 타는 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 보담도 내 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죽은 가을 강(江)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
친구의 서러운 사랑이야기는 자신의 사랑이야기 일런지도 므른다. 오르막 사랑과 내리막 이별로 갈라진 등성이에 이르러 시인(화자)은 어느새 눈물 흘리며, 마음은 해질녘 울음이 타는 서러운 가을 강으로 향하고있다, 첫사랑 그 다음 사랑의 열정도 다 사라져가는 사랑의 종말에 이르는 허무의 강으로 마음이 옮겨 가는 것이다. 문학평론가인 이건청 교수는‘한국 현대시사에 드물게 보는 견고한 서정’이라 했다.
박재삼 문학관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가파르다. 계단 옆 동백나무는 한겨울 추위를 견디고 나서 피워야 할 진홍 빛 꽃잎들을 가을에 성급하게 몽우리를 터트렸다. 꽃들이 잠시 계절을 착각한 것인가 아니면 먼데서 온 손님을 맞아주는 것인가. 여튼 꽃은 마음을 밝게 해준다. 등성이에 이르자 번듯한 현대식3층 건물 <박재삼 문학관>이 눈에 들어온다.
-박재삼 문학관
시원스레 터진 넓은 잔디마당 한쪽엔 몇 백 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서 있고, 한쪽엔 옛 서당이던 호연제(浩然齊) 한옥건물이 말끔하게 자리하고 있다. 바다와 섬과 남해대교가 내려다보이고 사천시가와 시가 뒤의 와룡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학관이 공원 속에서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시민의 쉼터를 재공해 주는 참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배인숙 문학관 해설가가 친절히 안내를 해준다. 로비에는 박재삼 시인 흉상이 삼천포 바다를 배경으로 한 대형 그림 앞에 놓여 있고, 그림에는
-박재삼 시인 흉상
진실로 진실로
세상을 몰라 묻노니
별을 무슨 모양이라 하겠는가
또한 사랑을 무슨 형체라 하겠는가
93년 봄 박재삼
시인의 친필 시가 적혀있고, 이 그림 양 옆으로 시인의 흑백 대형 초상 사진이 있다. 전시실을 들어서자 박재삼시인 연보를 사진과 함께 년대별로 기록하여 놓았다.
1930년대 : 1933년 아버지 박찬홍과 어머니 김어지의 차남으로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였으며, 아버지는 노동 어머니는 행상을 하였다. 형이 있었고 후에 누이동생 두 명이 태어났다. 1936년 가족이 모두 귀국하여 어머니의 고향인 경남 삼천포 현 사천시 서금동(팔포)에 자리를 잡고 유년 시절을 바닷가에서 보냈다.
-박재삼 시인의 어린시절(형과 함께)
1940년대 : 1940년 현 삼천포 초등학교의 전신인 수남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졸업 후 삼천원의 입학금이 없어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삼천포 여자 중학교 사환(使喚)으로 들어갔다. 그때, 이 학교의 김상옥 선생님을 만나 시인의 길을 걷는다. 다음해 삼천포 중학교 병설 야간중학교에 입학, 당시 김상옥 시인의 첫 시조집『초적(草笛)』을 공책에 베껴 애송하였으며, 1948년 교내신문『삼중(三中)』창간호에 동요「강아지」시조「해인사」를 발표하였다.다음해에 장학생이 되어 주간 삼천포 중학교에 진학하였으며, 잡지『중학생』에 시「원두막」을 투고하여 실렸다. 진주에서 열린 제1회 영남예술제의 ‘한글시백일장’에서 시조「촉석루」가 차상으로 입상하였다.
-박재삼 시인의 학생 시절
1950년대 : 진주농림에 다니던 김재섭, 김동일과 함께 동인지『군상(群像)』을 발간하였다. 삼천포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모윤숙의 추천으로 시조「강물에서」가『문예』지 12월호에 발표되었다. 은사 김상옥 선생의 소개로 현대문학사에 취직하여『현대문학』창간 준비에 매진했다. 1955년 유치환의 추천으로『현대문학』에 시조「섭리」가 실리고 서정주의 추천으로「정적」이 발표되어 김관식, 신동준과 함께 등단하였다. 이해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였으며(3년 중퇴) 현대문학사가 제정한 제2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고은 시인과 함께
1960년대 : 구자운, 박성룡, 박희진, 성찬경등과 함께『60년대 시화집』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62년 김정림 여사와 결혼했다. 처녀시집『춘향이 마음』을 출간하였다. 이어 제2시집『햇빛 속에서』제3시집『천년의 바람』제4시집『어린것들 옆에서』를 출간하였으며, 제1수필집『슬퍼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출간하였다. 대한일보 기자, 출판사 근무, 신문에 바둑 관전기 수록, 한국 시인협회 사무국장, 대한기원 이사 등 저작활동과 사회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으며, 문교부 주관 문예상, 한국 시인협회 상(회장 박목월)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나, 1967년 남정현의‘분지’사건 공판을 보고 고혈압으로 쓰러져 지병으로 평생을 고생하게 되었다.
1970년대 : 제5시집『뜨거운 달』제6시집『비 듣는 가을나무』를 출간하였으며, 제2수필집『빛과 소리의 풀밭』제3수필집『노래는 참말입니다』제4수필집『샛길의 유혹』을 출간하였다. 제7회 노산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나 이 무렵 고혈압, 위궤양으로 입원하는 등 지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1980년대 : 제7시집『추억에서』와 제8시집『대관령근처』제9시집『내 사랑은』제10시집『찬란한 미지수』제11시집『사랑이여』를 출간하였으며, 또한 제5수필집『너와 내가 하나로 될 때』제6수필집『아름다운 삶의 무늬』제7수필집『차 한잔의 팡세』제8수필집『사랑한다는 말을 나 그대에게 하지 못해도』를 출간하였고『바둑환담』도 책으로 펴냈다. 자랑스러운 서울 시민상,중앙일보 시조대상, 제2회 평화문학상, 제7회 조연현 문학상도 수상하였다.또한 고향 삼천포 노산공원에 시비 <천년의 바람>을 건립하였다.
1990년대 : 제12시집『해와 달의 궤적』제13시집『꽃은 푸른빛을 피하고』제14시집『허무에 갇혀』제15시집『다시 그리움으로』를 출간하였으며, 제9수필집『미지수에 대한 탐구』제10수필집『아름다운 현재의 다른 이름』을 출간하였다. 인촌 상, 삼천포 문화상, 제1회 겨레시조대상, 제1회 한맥문화 대상, 95바둑문화상 공로상를 수상하였다.1996년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1997년 6월8일 새벽 5시경 오랜 투병생활 끝에 영민하였다. 유택은 평소 고인을 따르던 시인 강경훈의 호의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충남 공주군 의당면 도신리에 마련하였고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문학관에는 ‘박재삼과 함께 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사진과 함께 글이 적혀있다. 박재삼 시인은 평소 소박 소탈하고 정이 많았다. 질병과 싸우면서도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겸손하였으며,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태도를 지녀 자연히 이치에 순응할 줄 알았다. 이런 성품은 문학계 저명인사들뿐만 아니라 바둑계 인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었다.
스승 김상옥 시인과 문학계의 유명한 박목월, 서정주, 구자운, 김종길, 김남조, 성찬경, 박희진, 고은, 김후란, 박성룡 시인과 소설가 김동리, 조정래,바둑기사 조남철, 조훈현등 다양한 인물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평화 문학상
문학관 한쪽에 재현해 놓은 박재삼 시인의 글방에는 시인이 사용하던 책상뿐 아니라 생전에 읽었던 책들과 친필 메모원고지, 스크랩북, 안경, 시계, 여권,도장, 지갑, 만년필 등 소품이 전시되어 있다. 개인 서신과 그리고 시인이 작고했을 때 김남조, 이근배 시인의 조사가 진열되어 있다.
시집 15권과 수필집 10권이 진열되어 있으며, 박재삼의 시세계를 간략하게 조명해 놓았다. 아직 시인의 전집이 나오질 않아 시중에서 시집과 수필집을 구입하기가 쉽지않다. 정가 15,000원 박재삼 시선집(민음사)이 중고가로28,000원이다. 필자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박재삼 소년이 김상옥 시조집을 공책에 베끼듯이 필사 하였다. 더구나 수필집은 일반 도서관에도 없다. 진열된 수필집을 보고 해설가에게 좀 빌려줄 순 없냐고 농담으로 말했더니 그저 웃기만 한다. 어서 전집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재삼 시인의 시집
박재삼 시인은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잘 드러나는 시를 썼고, 말소리와 말뜻을 조화시킨 오묘한 운율을 만들어 시인의 감정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리고 광복 무렵과 한국전쟁기간을 전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했던 경제적 빈곤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일상적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누구나 가슴깊이 새길 수 있는 시를 썼다. 또한 그 나름의 인생관으로 삶의 괴로움을 극복하는 시를 꾸준히 써 왔기에 그의 작품 속에는 그만의 독특하고 깊은 시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한과 슬픔의 정서 : ‘가장 슬픈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박재삼 시인의 말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박재삼 시의 주된 정서는 ‘한’과 ‘슬픔’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된다. 이런 것은 시인이 어린 시절 경험했던‘가난’과 잦은 질병으로 인한 외로움 고통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재삼 시인은 이 한과 슬픔을 다스려 그것을 극복해 내는 시를 썼다. 박재삼 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랑, 자연, 허무는 ‘한’과 ‘슬픔’을 극복하는 방편들이다.
자연을 통하여 승화된 한과 슬픔 : 박재삼 시는 햇빛, 나무, 땅, 바다,풀, 바람과 같은 자연적인 소재와 자연의 의미를 통해 형상화 되었다. 자연은 인간의‘한’과 ‘슬픔’을 포용하는 절대적 존재인 동시에 삶의 고통과 즐거움, 죽음에의 공포와 생명에의 경외가 하나가 되어 서로 화합하는 장소인 것이다. 박재삼의 시에 자연적인 존재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삼천포라는 자연 환경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겠다.
사랑의 힘에 의한 ‘한’과 ‘슬픔’의 극복 : 한과 슬픔에 대한 극복을 위해 박재삼의 정신세계가 의지한 곳은 사랑이었다. 삶의 최상의 가치를 사랑에서 찾았다. 사랑이 있기에 삶은 가난하고 허무한 것일지라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 사랑을 가족 간의 사랑으로 춘향의 사랑으로, 흥부의 사랑으로, 남평문씨의 사랑으로 표현했다. 충만한 사랑이야 말로 ‘한’과 ‘슬픔’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박재삼 시인은 도처에서 노래하고 있다.
한과 슬픔의 근원인 허무에의 깨달음 : 박재삼의 시는 후기에 가까와 지면서‘허무’를 많이 이야기한다. 박재삼 시인은 ‘한’과 ‘슬픔’의 근원인 삶의 허무를 철저히 깨닫고 수용함으로서‘한’과 ‘슬픔’그리고‘허무’를 역설적으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특정시어의 반복과 종결어미의 다양화 : 박재삼은 눈물, 강물, 나무, 햇빛, 달, 별, 구름, 바다, 바람 같은 특정적인 시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묘사에 주력하고 있다. 그리고 종결어미인‘-이다'‘-라’를 ‘-것가’ ‘-을래’ ‘-것네’ ‘-이야’ ‘-까나’ 등으로 과감하게 바꾸어 다양하게 활용한다. 이와 같은 종결어미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옛 시와 현대시 사이의 문체 단절을 극복하고, 전통적인 정서를 잘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서술적으로 흐르기 쉬운 간접화법의 형식에서 벗어나 사실적인 언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하고 있다.
-박재삼 시인의 글방
시민과 함께 호흡하려는 문학관 2층에는 박제삼 시 맞추기, 박제삼 시를 직접 낭송하고 감상하는 시 체험 공간이 있다. 쥬크박스에서 시와 배경음악을 선택하여 시를 낭송하고 USB 등에 담아갈 수 있다. 필자는 평소에 좋아하던 시「아득하면 되리라」를 선정하여 낭송을 해 보았다.
해와 달, 별까지의
거리 말인가
어쩌겠나 그냥 그 아득하면 되리라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거리도
자로 재지 못할 바엔
이 또한 아득하면 되리라.
이것들이 다시
냉수사발 안에 떠서
어른어른 비쳐오는
그 이상을 나는 볼 수가 없어라.
그리고 나는 이 냉수를
시방 갈증 때문에
마실 밖에는 다른 작정은 없어라.
-「아득하면 되리라」 전문
필자는 오래 전부터 사진을 많이 찍었다. 특히 안개 속의 풍경과 물그림자 사진을 즐겨 찍는다. 이때 셔터를 누르기 전에 속으로 중얼대는 말이‘아득하면 되리라’‘그냥 아득하면 되리라' 다. 세상이 자로 잰 듯이 매사가 반듯하고 분명하기만 하여서야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싶다. 안개 속에 아른 아른 비쳐오는 것, 물속에 어른어른 일렁이는 것, 이런 것들에 삶의 묘미는 더 보태지는 것이다.
사랑도 그런 거 아닐까. 박재삼 시인은 <시작노트를 대신하는 글>에서‘시’와 ‘눈물’이 없는 세상은 생활에 물기가 없는 세상이라고 했다.
“시에서 밥이 안 나오고, 눈물을 흘려서 일의 능률에 손해라는 것만 따진다면 세상은 너무나 삭막해지기 마련이다. 소득의 극대화를 계산기로 누르고 있을 때, 삶의 윤기를 찾을 도리가 없어지고 만다. 정거장이나 부둣가에서 손수건을 들고 눈물을 닦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생활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것” 이라고
박재삼 시인은 시를 잘 쓰기위한 비법은 없다고 했다. 많은 문학체험과 꾸준한 연습, 반복된 수정이 중요하며, 깊고 풍부한 사고 능력과 사물을 따뜻하면서도 날카롭게 볼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그리고 생명의 근원지인 자연에서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전시관을 나선다. 해설가는 노산공원 남쪽 끝,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박재삼 시비로 안내 했다. 이 시비는 시인이 작고하기 12년 전인19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박재삼 시를 좋아하는 삼천포의 한 부부가 박재삼 시비를 세우기로 작정하고, 몇 년간 적금을 부어 모은 돈으로 세웠다고 한다.빗돌은 경남 산청에서 운반해 왔으며, 시비 자리는 시인이 즐겨 사색 하였던 곳으로 박재삼 시인이 직접 지정했다고 한다.
-박재삼 시인의 시비(천년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천년의 바람」중에서
제3시집『천년의 바람』의 표제가 되기도 한 이 시는「울음이 타는 강」과 함께 박재삼 시인의 대표시가 되었다. 시비에 있는 시는 <1연>으로 <2연>까지 다 쓰기에는 돌의 면적이 부족했나보다. 주변에 소나무들이 많다. 지금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나무 가지를 쉴 사이 없이 간지르며 장난을 치고 있다.‘천년 전에 하던 장난’이란 표현이 참으로 절묘하고‘소나무 가지에 쉴새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준다’ 는 이미지는 손끝에 닿을 정도로 감각적이다.
시인은 만년에 쓴 시「노산에 와서」에“소시적 꾸중을 들은 날은 이 바다에 빠져드는 노산에 와서 갈매기 끼륵대는 소리와 물비늘 반짝이는 것 돛단배 눈부신 것에 혼을 던지고 있었다.” 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 들어“이제 나를 꾸짖는 이라곤 없이 심심하게 여기 와서 풀잎에 내리는 햇빛, 소나무에 감도는 바람을 이승의 제일 값진 그림으로서 잘 보아 두고, 또 골이 진 목청으로 새가 울고 가다간 벌레들이 실개천을 긋는 소리를 이승의 더할 나위 없는 가락으로서 잘 들어 주는 것 밖엔 나는 다른 볼 일은 없게 되었거든요.” 라고 나이 들어가는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해설가는 노산공원 입구에서 몇 십 미터 떨어진 골목길에 있는 시인이 살던 옛 집터(지금은 상가)를 알려 준다. 공원과의 거리로 보아 이 시 속의 이야기는 시인의 실체험 인것으로 보인다.
이쯤에서 배인숙 해설가와 아쉬운 작별을 한다. 친절하게 설명을 하여주고 안내를 해 주신데 감사를 드린다. 박재삼 기념사업회 정삼조 시인은 “그분의 시의 바탕은 고향 삼천포의 바다이며 섬이고, 바다위에 찬란히 부서지는 햇빛이고 달빛이며,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했다. 박재삼 시인의 또 다른 문학관이 되기도 할 삼천포 바다를 일주하는 유람선을 탔다. 붉은 아치형 남해대교가 우선 눈에 들어오고 멀리 가깝게 크고 작은 무수한 섬들이 보인다.
그의 형제와
그의 사촌들을 더불고 있듯이
바람받이 잘하고
햇볕받이 잘하며
어린 섬들이 의좋게 논다.
어떤 때는
구슬을 줍듯이 머리를 수그리고
어떤 때/
고개 재껴 티없이 웃는다
그중의 어떤 누이는
치맛살 펴어 춤추기도 하고
그중의 어떤 동생은
뜀박질로 다가오기도 한다.
바라건대 하느님이여
우리들의 나날은
늘 이와 같은
공일날로 있게 하소서.
-「섬을 보는 자리」 전문
화안한 꽃밭 같내 참.
눈이 부시어, 저것은 꽃 핀 것가 꽃 진 것가 여겼더니,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한 그러한 꽃밭의 저것은 저승살이가 아닌 것가 참. 실로 언짢달 것가 기쁘달 것가.
거기 정신없이 앉았는 섬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살아닥 해도 그 많은 때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숨소리를 나누고 있는 반짝이는 봄바다와도 같은 저승 어디쯤에 호젓이 밀린 섬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것가.
-「봄 바다에서」 부분
유람선이 삼천포 바다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은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바다에서 의좋게 노는 어린 섬들과, 공일처럼 편안하고 평화스러운 섬도 만나 보았다. 바다위에 피는 것 지는 것을 같이 한 시인의 꽃밭도 찾아보았다.
갈매기는 새우깡 하나를 얻어먹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유람선을 따라 다닌다. 문득, 한 사발 밥을 얻어먹기 위해 아침부터 해 어스름 질 때 까지 종 끈에 매달려 있던 종치기 소년 박재삼이 눈에 그려진다. 그리곤 삼천포 노산공원 등성이에서 죽어 호강하는,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숨소리를 함께 나누고 있는 시인 박재삼을 생각해 본다. 시인의「나의 시」를 생각한다.
햇볕에 반짝반짝 윤이 나고, 파랗고,
또한 빛나는 것 밖에 할 줄을 모르는
저 연약한 잎사귀들을 보아라.
산들바람에 몸을
이리 눕혔다 저리 눕혔다
생명의 광휘(光輝)만을 이 세상에
즐거운 노래로써 남기는,
그러나 그 한때 뿐,
가장 귀한 짓을 하면서
결국은 그냥 사라져가는
끝없는 무욕을 하염없이 바라보노라니
오히려 부끄럽고 허전하고나.
나는 시를 쓰기는 쓴다마는,
하여간 죽고 나서 이 세상에
남을 것을 바라고 기록한다마는
저 이파리의
서늘하고도 그윽한 것에 미치지 못하고
빈약하고 헛된 짓만 하는 듯
마음 절로 외로워지느니.
-「나의 시」 전문
시인이시여, 당신의 시는 생명의 광휘(光輝)를 이 세상에 즐거운 노래로남기는 이파리들처럼 이 세상에 영원히 빛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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