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집게>를 발표하신 님은 '시인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인의 눈이란 무엇입니까. 남들이 못 보는 것, 안 보는 것을 보는 눈이겠지요. 시인의 눈을 '바깥의 눈'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 걸음 비켜서서, 또는 한 걸음 앞서거나 뒤쳐져서 보는 눈, 그것이 시인의 눈입니다. <빨래집게>를 함께 읽어보지요.
버스 창문 밖으로 내민
하이얀 그녀의 손
뒤뜰에 널어놓은 손수건 마냥
오늘도 바람에 나부낀다
꽉 물고 놓지 못하는 그리움
난해한 시어가 없습니다.
특별한 비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움의 깊이가 가슴속으로 환하게 스며듭니다.
시 속에서 그녀는 버스를 타고 떠나는데, 창문 밖으로 하얀 손을 흔듭니다.
이 손은 곧 손수건으로 변주됩니다.
애인의 손=하얀 손수건=이별. 이 같은 은유와 상상력의 전개는 너무 흔해서 자칫 상투적 표현으로 전락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빨래집게를 동원하며 상투성에서 벗어납니다.
시의 화자는 빨래집게를 의인화(자기화)하며 애인의 손을 '꽉 물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의 위력이자 매력입니다.
시 쓰는 이의 심리 상태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물의 이미지와 만나게 해주는 것,
그리하여 '나'는 물론이고 '나'에게 비유된 대상까지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
은유는 지배나 억압의 관계가 아닙니다.
은유는 공존, 상생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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