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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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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에서 낚시질 하기...
2016년 01월 10일 02시 42분  조회:5229  추천:0  작성자: 죽림

▣ 1997년 계간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 여성학 강좌를 지도한 교수가 이제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랑스럽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었나 봅니다.

  - 여성의 자궁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거룩한 곳이기에 위대한 모성의 상징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 강좌를 들은 여대생 진수미는 화장실 바닥에 거울을 놓고 양다리를 활짝 열어 자신의 성기를 비춰보고 감탄을 합니다.

  - 아랫배 깊숙이 숨겨져 있던 자궁의 입구인 외음부를 보고 "철따라/점점이 피꽃 게우며", "울컥울컥/목젖 헹구며" 운운하는 내용으로 시를 써 당당히 시인이 되었습니다.

  - 시인의 부모님은 이 시를 읽고 조금은 놀랐을 것입니다.

 

 ◦ 이 시 역시 후세에 남을 명시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진수미라는 사람은 남들 다 아는, 혹은 다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색다르게 자신의 신체 일부에 대해 담론을 펼쳤기에 당선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시인의 관찰력이 무뎌서는 안 되며, 상상력이 진부해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 사물과 이 세계, 인간과 자연, 이 사회와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고 재구성해 내는 자가 바로 시인이기 때문입니다.

  - 계간지 당선작을 봤으니 이번에는 월간 문예지 {현대시}의 2000년도 신인추천 작품상 수상작을 봅시다.

 

블랙 후라이데이 [전문]

 

                                 이명훈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시간은 검은 칠로 보디 페인팅한다

아프리카 흑인들의 영혼의 춤,

그보다는 조용한 몸짓,

창백한 미소와 예리한 눈빛,

추락하는 펀드매니저는 자기 운명을

손가락 끝에 건다. 자기 몸의 끄트머리에

그의 믿음의 섬이 있다. 배반의 해일.

 

닉 리슨이 니께이 선물로 베어링 사를 망가뜨릴 때

나는 (주)대우의 해외 DR을 팔아먹으려고

자정까지 야근했다.

검은 하늘에 뜬 달이 파리하게 아름다웠다.

 

블랙 후라이데이의 후장(後場),

주식시장이 설사했다. 주루룩 흘러내리는 블루칩.

미수에 걸려 있는 나의 심장에 지진의 자장(磁場)이 흐른다.

펀드매니저의 몸에서 몸으로 흐르는

검은 영혼의 전류, 아랫배가 짜르르 아프고

허한 가운데 어떤 알 수 없는 후련함도 지나갔다

 

깊게 아프게 패일수록 그곳에 진한 자장(磁場)도 고인다.

그 독한 취기로 내일도 금융시장의 페달을 돌릴

빠른 손놀림들. 세계의 비틀거리는 자전거는

어느 내리막길을 지나 평지에 다다를까. 낡은

페달과 고장난 브레이크를 달고.

 

블랙 먼데이에서 블랙 후라이데이까지

매일 번갈아 피는 목련, 장미, 난초, 국화, 동백

주말에는 견디기 어려운 폭설이 내릴지 모른다

너희들은 독한 자장(磁場)의 술을 마셔두렴.

 

▣ 한국 금융시장의 현실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 수많은 사람이 선물시세·주식시세·외환시세 따위에 울고 웃습니다. 유가는 또 어떻고 금리는 또 어떤가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일상적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고, 우리는 바로 현대인입니다.

  -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일상성'과 '현대성'입니다.

  - 시인이 '나와 내 이웃의 삶'을 외면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면 일단 10대와 20대는 시를 읽지 않습니다.

 

 ◦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 인터넷 채팅을 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젊은이가 시를 읽지 않는 데는 기성세대 우리 시인들의 잘못도 조금은 있는 것입니다.

  - 우리는 혹 그 동안 현실감 없는 시를 써온 것이 아닐까요?

  -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유년기의 추억을 더듬고 인정 미담을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이렇게 일상성과 현대성을, 현실의 잡사와 생활의 이모저모를 시에 담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 2000년도 월간 {현대시학} 신인작품 공모 당선작을 봅니다.

 

무등산 2000 [전문]

 

무등산에 올라

바다를 만나지 못하는 이들은

광주 사람은 아니다

 

슬픔이 목까지 부풀어 숨이 막힌 광주를

대신 울어주려고

산짐승의 작은 것까지도 다 파도 한 음절씩 들메주는 바다

 

아무리 어두운 밤에도

태양을 품속에 꼭 껴안아 재우고는

첫 새벽이면 흔적 없이 서석대 위에 올려놓는 바다

 

아직도 가파른 능선을 타고 역류하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합창, 한 물결 아니었으면

이미 불모의 사막이 되어 있을 바다

 

장불재 억새 한 잎, 세인봉 노송 한 그루 고인 이슬이

한여름에 소신공양하여 일군 칠산바다 천일염 맛인지 모르는 이들은

옷깃 여미고 다시 무등산에 올라가 보라

 

 

 

▣ 무등산을 역사의 수난지로 설정하여 애향의 의지를 담은 이 시는 소재며 주제가 무난합니다.

 ◦ 문제는 표현에 있어 새로운 구석이 없다는 것입니다.

  - 어찌 보면 너무도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식으로 하고 있기에 저에게는 별다른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 시가 가슴을 벅차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잔잔한 울림으로 와 닿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의 공감대는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 [얼음을 주세요]와 [바기날 플라워]는 적어도 동년배의 독자에게는 공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 시인이 독자에게 감동과 공감을 주지 않는다면 기발한 상상력을 펼쳐 보여주거나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 감각으로 시를 읽는 묘미,

  - 즉 언어의 맛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고 있는 사람을 시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 시인은 사물의 이면을 볼 줄 아는 견자이며, 이 세계의 온갖 사물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명명자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기꾼이며 '역설'과 '반어'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는 희대의 범죄자입니다.

  - 소재와 주제가 낡디낡은 것, 혹은 너무나 뻔한 것이라면 표현이라도 좀 새로워야 할 것입니다.

  - 다음에 소개해 드릴 시는 소재가 낚시여서 별로 새로울 것은 없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새로움을 추구한 시입니다.

 

감성돔을 찾아서 [전문]

 

                           윤성학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

 

바다가 변한다

영등철이 지나 바다가 몸을 바꿔 체온을 올리고

파도가 깃을 세우면

그들은 산란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빠른 물살이 곶부리를 휘어감는 곳

빠른 리듬을 타고 온다

영등 감생이의 시즌이다

 

 

 

바닷물의 출렁거림은 흐름과 갈래를 지녔다

가장 강한 놈은 가장 빠른 곳에서만 논다

릴을 던져라 저기 분류대를 향해

가쁜 숨 참으며

마음속 깊이로 채비를 흘려라

거칠고 빠른 그곳

거기 비늘을 펄떡이는 완강함

릴을 던져라

 

바다는 몸을 뒤채며 이리저리 본류대를 끌고 움직이지만

큰 놈은 언제나 본류에 있다

본류는 멀고

먼 데서부터 입질은 온다

바다의 마개를 뽑아 올릴 힘으로 나를 잡아채야 한다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며 발밑에까지 끌려온 마찰저항

마지막 순간이 올 때

 

언제나 거기 있다

막, 채비를 흘려보냈다

 

온다

 

 

▣ 강 낚시이건 바다 낚시이건 낚싯줄은 팽팽한 포물선을 그리지요.

 ◦ 200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 시의 강점은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과 꽉 짜인 플롯입니다.

  - 짧은 문장이 연속되고 명령형이 적절히 구사됩니다.

  - 첫 연은 "홀로 바위에 몸을 묶었다"는 짧은 문장인데 끝 연은 "온다"라는 단 두 음절의 문장입니다.

  - 언어를 어떻게 배치하는가에 따라 시를 갓 잡힌 물고기처럼 퍼덕거리게 할 수도 있고 배를 뒤집고 죽어 있는 물고기처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이 시는 충격까지는 아니지만 언어가 지닌 싱싱한 힘을 십분 느끼게 해줍니다.

  - [감성돔을 찾아서]는 언어의 선택과 배치가 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 여러분은 소재와 주제가 그다지 새롭지 않을지라도 표현을 잘만 하면 얼마든지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 감칠맛 나는 표현은 치밀한 묘사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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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저 산이 날더러 / 정희성

 

 

 

 

 

 

42.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 정희성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방법 

1. 발견, 그 새로운 눈

발견이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발명과는 달리 고작해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 많은 삶의 편린(대상)들 속에서 시가 될 수 있는 특정한 편린(대상)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사실 발견적 상상력은 소재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의 문학작품을 읽을 때 독자들은 前理解을 갖기 마련이다 전이해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전이해란 일종의 선입견으로 , 동시대의 삶의 상황과, 시와 시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언어지식, 자신의 인생관 등등이 얼크러져있는 인식의 배경이다 한 편의 시를 읽을 대 그 시에 대한 전이해가 중요한 해석의 수단이 된다 그러나 전이해가 그대로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작품 속의 구체적인 사실들의 의미를 전이해를 통하여 해명하지만, 그 부분들의 의미는 다시 전체의 의미를 변환시킨다 그러므로 독자가 가지고 있는 전이해(상식)에 아무런 변화를 요구할 수 없는 시는 새로움이 없는 시다 설령 시인에겐 아무리 절실한 체험일지라도 보편성을 가질 수 없는 체험과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험은 진실한 체험이 될 수 없다 시인의 체험은 늘 독자의 기대보다 조금은 앞서서 독자의 전이해에 변화를 줌과 동시에 독자들의 창조적 상상력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허락하여야 한다 이상 고재종선생님의 강의록을 요략해 본다
오늘 아침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철을 타고 출근을 했습니다 매일보는 문구이며 평범하여 크게 부각되지 않았는데, 발견이라는 시적상상력을 발휘해 본 결과,

문구

'비상시에는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의자아래 핸들을 돌리면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승무원은 늘 부재중입니다
전철 승무원은 앞만 보고 갑니다

저의 간단한 상상력입니다
늘 승무원의 지시를 받으라하지만
막상 급할 때 승무원(선도자, 윗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달려가기만 할 뿐이다

즉 발견은 우리의 일상에서 알고있지만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하여 시에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런 발견의 눈을 갖기위해서는 늘 시인의 눈을 갖어야합니다 보통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인용하는 힘을 키울줄 알아야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힘 또한 관찰의 힘입니다


2.

떨어지는 병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그럴까 별이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 소원을 빌기 위해서는 그 바램을 언제라도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갑작스런 유성의 낙하 앞에서 간절하게 그 바램을 간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와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언제라도 기원할 수 있는 그 갈망, 그 열망이야말로 희망을 현실로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 갈망이 있을 때에야 늘 범속한 사물과 일상 속에서도 생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관찰해낼 수 있는 것이다 관찰만 예리하게 잘 하여도 시의 절만은 이룬 셈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관찰은 시적 묘사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묘사가 없는 시가 있을 수없듯이 관찰이 없는 묘사 또한 있을 수 없다

방법 1의 발견이나 관찰은 묘사에 의해 주로 표현된다 묘사란 객관화된 표현 방식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에서 주관적 토로인 진술보다는 묘사를 많이 사용하여야만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또한 관찰이란 발견보다는 더 긴 시간을 요구한다 즉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금방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예전에 함께 시를 쓰던 문우가 개에 대해 시를 쓰려고, 황소만한 개의 뒤를 하루종일 쫓아다녔다고 한다 개의 습관, 생리 등 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되었는데, 그것은 개에 대한 깊은 관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자신이 어떤 소재를 통하여 시를 쓰려할 때, 오랫동안 관찰한 다음에 시를 쓰면 훨씬 깊이가 묻어나오는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졌던 관심 만큼 우리는 시의 소재를 관찰하고 들여다 보아야할 것이다


나비 (오규원)

작약꽃이 한창인 아파트 단지의
화단을 나비 한 마리가 날고 있다
어린 후박나무를 지나 향나무를
지나 목단을 넘고 화단 가장자리의
쥐똥나무를 넘어 밖으로 가더니
다시 속으로 들어와
한창인 작약꽃을 빙글빙글 돌더니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혼자 훌쩍 날아올라 넘더니
비칠대는 온 몸의 균형을 바로잡고
날아넘는 허공을 뒤돌아본다
뒤돌아보며 몸을 부풀린다


아마 시인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나비 한 마리를 발견하고 나비를 오래 관찰하였을 것이다
위의 시는 순전히 관찰만으로 막막한 아파트 단지의 생명성과 존재의 비의를 환하게 드러내주는 시이다


3. 연상, 사랑에 관한 단상

사랑은 시와 흡사하다 사랑이 시와 흡사한 것은 양자가 모두 논리의 대척점에 서 있다는 사실이다 이 남자가 누구의 남자인가는 아랑곳없이 마음의 길이 언제나 그에게 향하고, 그에게 맞닿아 있듯, 남들이 보기에는 하잘 것 없는 왜소한 존재임에도 바닥 모를 깊이로 몰두한 채 시의 길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어도 몇 겹으로 덧씌웠는지 알 수 없을만치 혼미한 가운데 연인들과 시는 앞다투어 마음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오직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계를 보는 완벽한 주관성, 자신의 세계를 방기할 정도로 타자에 몰두하는 전적인 몰아, 그 어떤 언어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는 절망과 모색 등이야말로 시와 사랑의 교차점이다 이들 특성은 견고한 세계의 질서를 모두 자신의 열망 안으로 끌어들이며, 외적 대상 자체로부터 사유를 시작하는 바탕을 이루며, 직접적인 제시 대신 함축적인 은폐를 기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독특한 갈망들을 연상은 너끈히 감당한다 연상이야말로 의미를 은폐하고 세계를 내부로 끓어들이는 유효한 방법이며 모든 세계를 한 곳으로 끌어모으는 힘인 것이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모든 존재하는 대상들을 그 남자와 연결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연상기법을 사랑에 비유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어떤 것에 자꾸 연상하여 생각하는 힘을 준다 그래서 시인들은 감성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연애를 하라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감성이 풍요로워지면서 시인은 연상의 반복을 하게끔 되고 그것은 시상을 연결하게 해 주는 힘이 된다



4. 투사, 삶의 본질에로의 날카로운 진입


시적 대상이 있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서정적 주체가 있다 주체는 반드시 주체의 관점을 통하여 대상을 바라본다 그 관점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럼에도 그 주관은 삶의 본질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주관이자, 어떤 객관적인 언술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을 향해 비약하는 주관이다 그 주관은 일체의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함으로써 획득된 것이며 순간적으로 지각된 느낌을 명징하게 드러냄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어떤 논증적인 결론에 뒤지지 않는 심정적인 깨우침을 안겨준다 그리고 독자는 이 당연한 주관성을 엿봄으로써 공감을 느끼거나 부적절함에 대한 반감을 토로함으로써 시적 상상력에 개입한다 무엇보다 이 내밀하고 주관적인 관점이 우리에게 건네는 공감이야말로 시의 아름다움이 갖는 본질적인 표딱지인 것이다 여기에서 이 주관을 가능케 하는 힘을 투사라고 한다. 이 투사는 또 직관력을 절대로 필요로 한다.

* 투사라함은 시적대상에 시인의 삶이 용해되어 그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시를 쓸 때 사물의 겉면만을 보고 쓴다면 깊이 있는 시를 쓸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연륜이나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함께 동화되어 신선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투사일 것이다

墨畵


김 종 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自尊

화창한 가을날
벌판 끝에 밝고 환한 나무 한 그루
우뚝 솟아 있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


시 묵화는 회화적이다 이는 첫 행과 두 번째 행을 통해 누구의 눈에라도 확연히 그 풍경을 지각할 수 있다 저물무렵 아마도 깡마른 손임에 분명한 할머니 손이 물억고 있는 소의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는 외딴집 울타리 속의 풍경. 제목이 묵화이듯이 어떤 묵화를 바라보고 썼거나, 거꾸로 풍경과 人事의 여러 자잘한 가지를 생략해버리고 고단위의 긴장과 절제의 방법으로 여백과 농담의 미가 충만한 묵화의 세계를 지향앴거나 상관없다 이 시는 묘사적 풍경에서 멈추지 않는다 3행으로 넘어가면서 직바로 본질로 진입해 가는 시인의 날카로운 주관적 투사, 즉 진술 곧 " 이 하루도/함께 지났다고/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서로 적막하다고" 말해버림으로 무먹는 소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지는 단순하고도 객관적인 풍경이 소와 할머니 사이에 지극한 교감으로 바뀌고, 또 단순하고 객관적인 풍경이 생의 비애, 존재가 맞닥뜨린 생에 대한 자각과 그에 반응하는 섬세한 존재의 울림을 고스란히 확인케 함으로써 우리를 천박하고 저열한 우리의 그저 놓여있는 일상을 새롭게 충전하는 것이다.
시 자존도 이 점에선 시 묵화에 한 점도 뒤지지 않은 시이다 오히려 묵화가 3행부터의 투사적 진술이 우리를 깨우치긴 하지만 존재와 풍경이 감추고 있는 아득한 비의를 약간은 깨버린듯한 인상을 주는 데 비해 자존은 그렇지 않다 이 시에서도 너무나 확연한 그림 하나를 볼 수 있다 화창한 가을날이면 하늘은 높고 햇살은 순금빛으로 쏟아지고 대기는 맑다 못해 푸르른 날일 것이다 그런 날 벌판 끝에 그 햇살을 받고 나무는 역시 황금빛으로 빛나는 은행나무도 좋겠고 투명한 갈색으로 빛나는 느티나무도 좋겠다 얼마나 밝고 환할 것인가 그것이 우쑥 솟아있다 황금나무다 세계수다 은행나무라면 땅에서 하늘로 팔 벌린 상태일 것이고 느티나무라면 둥그렇게 마을을 감싸는 모습일 것이다 은행나무나 느티나무나 모두 지상과 하늘을 매개하는 영매이다 어쨋든 그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아늑하고 정정하고 성성하고 밝고 환할 것인가 여기까지는 객관적 풍경의 언어적 그림이다 이에 덧붙여 연을 나눈 마지막 한 줄이 투사적 진술을 감행한다 /모든 새들이 그곳에서 난다/라고 객관적 사실은 모든 새들은 그곳에서 날 수도 있고 날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밝고 환한 나무에서 새가 날지 않고 어디서 날겠는가 새는 자유 순수 평화 등 모든 것을 상징한다 그 새는 인간의 비상의 꿈을 하늘로 치솟음을으로 상징해 준다 그러나 들판의 새는 대개 옆으로 난다 여기 밝고 환한 나무에서 나는 새도 그 나무에서 솟는 새이기도 해야 하지만 그 나무를 가로질러 나는 새이기도 해야한다 그래야 나무의 수직과 새의 수평이 이루어지는 것을 상상치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는 이런 모든 췌사를 불필요하게 만든다 풍경에 대한 언어의 선연한 그림과 이에 날카로운 투사적 상상력을 보탬으로 존재의 비의를 한층 더 깊게 만드는, 말을 침묵에 가깝게 줄임으로 되레 수 많은 말을 가능케 하는 시의 진경이 여기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5. 유추, 빗대어 말하기

시란 다른 질서 안에서 존재하는 사물을 자신의 질서로 바라보는 것이다. 시는 타자를 자신의 질서 안에 재편할 뿐 아니라 타자의 질서를 자신의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본질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혹은 자신의 질서 안으로 타자를 끌어들이는 시적 관계 양상을 유추라고 명명할 수 있다
유추는 두 대상을 나란히 마주 세움으로써 시작된다. 물론 그 한편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는 여우가 아니라 사람이다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나폴레옹이라는 시커먼 돼지 역시 탐욕스러운 인간의 상징적 대체물이다 이 두 상징이 얼마나 엄밀히 조응하는 가에 따라 유추의 효과는 그 빛을 발한다
일반적으로 유추를 통해 획득되는 시적인식은 계몽적이거나 풍자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유추의 대상을 통해 삶이 무엇인지 배우라고 말하고 싶거나, 삶이 얼마나 비루한 것인지 잔뜩 조롱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유추가 삶 전체를 통해 무차별적으로 열려 있지만은 않다 시가 문제삼는 삶은 특정한 삶이지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추사으로서의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가 어떠한 삶을 풍자하거나 외경스러워하는지를 무엇보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한다


오징어 3

최 승 호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
릇이 있다

이 짧은 시의 대상은 오징어부부이다 그 오징어 부부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남 다르다 '부둥켜 안고 목을 조르는 버룻'은 결코 사랑의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이 표현은 오징어의 여러 개의 긴발의 형상에서 취한 상상력인데, 그러나 이러한 부부는 그 오징어부부만이 아니라는 현실 때문에 표현의 성공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류의 사랑은 많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정작은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목을 조르고 있지는 않았던가 교묘하게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고, 풍부한 인간적 감성을 마모시키지나 않았던가 결국 그 오징어 부부는 우리들 사랑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욕망으로 뒤덮인 인간이며 그 사랑의 방식은 우리들이 하용 지니고 있던 버릇이었던 것이다

근래에는 이렇게 다른 사물에 빗대어 말하기, 즉 시를 쓰는 유형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봅니다 예전에 억압적인 시대에 많이 쓰던 기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아닐지라도 무언가를 통렬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때, 유추의 상상력은 커다란 깃발이 될 것이다

6. 전복, 뒤집어보기 꿰뚫어보기

전복 또한 상상력의 일종이다 현상을 통하여 현상의 이면에 숨죽이며 떨고있는 본질을 드러내는 힘, 그것이 꿰뚫어보는 상상력이며 뒤집어보는 상상력이며, 일체의 허위를 전복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북어

최 승 호

밤의 식료품가게
케케묵은 먼지 속에
죽어서 하루 더 손때 묻고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북어들.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
나는 죽음이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은 사람들과
무덤 속의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
말라붙고 짜부러진 눈,
북어들의 빳빳한 지느러미.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막대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달고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는 순간,
느닷없이
북어들이 커다랗게 입을 열고
거봐,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너도 북어지
귀가 먹먹하도록 부르짖고 있었다.

이 시는 참 재미있는 시이다 식료품가게 꼬챙이에 꿰어진 채 널부러져 있는 북어를 직접 들여다보고 있는 듯이 형상화하고 있다. 더욱 세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지다가 '가슴속에 싱싱한 지느러미'를 꿈꾸는 가운데 교묘하게 북어가 사름으로 대체되어 있다 헤엄쳐 가기를 원하는 것은 북어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그 순간 느닷없이 커다란 입을 벌린 북어들이 큰소리로 '너도 북어지'라고 귀를 먹먹하도록 계속 부르짖는 눈부신 전복으로 시를 끝맺고 있나.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말라 찌부러진 요즈음의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뒤틀린 현실을 전복하고자할 때, 전복적 상상력은 비판적 세계인식을 드러내는 유효한 무기가 된다 따라서 이것은 앞의 발견적 상상력과 함께 리얼리스트들의 중심적 상상력을 형성한다


7. 종합, 상상력의 유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적 상상력의 개진 방식들은 사실 추상화되어 있다. 한 편의 시는 모름지기 단 하나의 주독적인 상상력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섬세한 발견과 관찰, 날카롭게 대상의 본질을 길어 올리는 투사와 유추, 분리된 것을 결합하는 연상과 현실을 부정의 눈으로 확인하는 전복의 상상력들은 사실 한 편의 시에 긴밀하게 습합되고 용해된 채, 하나의 시적 세계를 튼실하게 엮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편의상 이런 분리는 상상력의 실체를 더욱 선명하게 들여다보기 위한 장치라는 점에서 놓칠 수 없는 이점들을 갖는다 더욱이 상상력들은 동일한 깊이로 시적 세계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독적인 상상력이 전면에 배치된 채 여타의 상상력들은 후경에서 마치 삼각형의 꼭지점을 위한 밑변과 옆변을 형성하는 것처럼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시들을 보면 이러한 결합의 양상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 황지우 -


映畵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群을 이루며
갈대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열 이열 삼열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끼리
낄낄대면서
깔죽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이시에서는 다채로운 상상력이 사용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시의 모티브로 존재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겸험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이 시를 쓴 80년 대는 영화가 시작되기에 앞서 줄곡 애국가를틀어주었다 어쩌면 김남주의 말대로 세금고지서와 징병통지서 밖에 가져다주지 않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강요하기라도 하는 듯 틀어주던 애국가였다 그런데 이 일상적 경험은 사실 발견적 상상력에 속한다 영화 속의 한 화면을 그대로 시적 경험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시의 중심적 시상에는 이 발견에 대한, 시적 인식으로서의 투사가 중핵을 이루고 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날아오르는 새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는 객관적 사실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주관적인 인식으로 슬그머니 환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명백히 주관적인 의식의 투영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투사가 가능하며 이는 과연 공감을 자아내는가? 이 시가 1981년에 발표되었음을 생각해 보라 광주항쟁을 겪었고, 군사독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있던 그 때, 시인을 비롯한 깨어있는모두가 시의 이면에 그 아픔의 흔적과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 고통 안에서 심지어는 그 고통의 현실과 무관한 새들조차 이 한반도의 남쪽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끼룩거리면서" "낄낄대면서"로 투사된 채, 이런한 웃음 역시 남겨두고 떠나는 세상에 대한 빈정거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없는 모멸을 남긴 채 새들이 "자기들의 세상을/이 세상에서 떼어 매고" 앞 화면에서 비추었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뜨는 것이다
그런데 이 투사는 시의 후반부에서 짝을 이루는 유추로 정교하게 반복된다 우리 역시 낄낄대면서, 깔쭉되면서, 다시 말해 빈정거리면서, 야유를 퍼부으면서 썩어빠진 세상을 떠나 깨어있는 우리들끼리라도 "우리들의 대열을 이루며" " 이 세상 밖"의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들은 날아 갈 수 있으나 우리들은 날아가지 못한다 그 부푼 꿈이 애국가가 끝나자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그냥 앉는 것이 아니라 어쩌지 못해 채 주저앉는다 영화관의 자리에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광주에, 현대사의 고통의 심부에, 썩은 세상에 주저 앉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에서의 꿈이 애국가가 끝나는 현실로 돌아오면서 그만 전복이 되는 것이다 전복적 상상력인 것이다 뜬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결코 낄낄거리거나 깔쭉대지 못한 채 고통과 누물로 우리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한편의 시에는 발견과 투사, 유추와 전복이 다채롭게 융화되어 있다.

지금까지 시적 상상력을 구사하는 몇 가지 방법들에 대하여 간략한 설명을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미천하여 상상력을 중첩시키거나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많으므로 하나, 둘의 상상력만으로 시작업을 해보시기 바란다 시가 체험과 상상력의 결합이라할 때, 사실 상상력은 무한 공간이다 무한대로 그 상상력을 지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뿌리가 되는 실체(체험)를 바탕으로 하기에 그 상상력의 한계는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점점 확대해나가는 것이 시인의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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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알 수 없어요 원작>

 

 

 

83. 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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