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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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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음의 詩 한묶음
2016년 03월 28일 00시 00분  조회:4861  추천:0  작성자: 죽림

@!@ 세계를 항해 던지는 연애편지로서의 시들;ㅡ


어둠속에서


빛 안에 어둠이 있었네
불을 끄자
어둠이 그 모습을 드러냈네
집은 조용했고
바람이 불었으며
세상밖에 나앉아
나는 쓸쓸했네

-정희성( 창작21, 2008.여름호)



시월이라 햇살도 눈부신 날
명륜동 시의 집 마당 감나무에
붉은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불을 밝히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

이 나라의 시인들이
한 등 한 등 정성껏 밝혀든 등불이라고
일러주는 주인의 얼굴도
붉은 연등처럼 환했다

-허형만(정신과 표현,2008.0708)

빛과 어둠의 관계를 뒤집어서 표현한 시들을 골라보았다. 정희성은 “빛 안에 어둠이 있었네”라는 구절로 빛에 익숙한 우리의 눈이 놓치고 있는 어둠의 정체를 말했다. 어둠/죽음의 관념은 나를 빛/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화자의 운명과 처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허형만은 감/붉은연등의 이미지를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에 빗대어 시를 썼다. 석가를 감동시킨
가난한 여인의 전 재산 공양처럼 시인들이 시를 전심으로 쓰고 있다는 아름다운 풍경을 말했다. 내가 시인인지라 이 대목에서는 얼굴이 조금 붉어진다(貧者一燈의 무게를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갑자를 넘긴 시인들은 인생도 시도 요약을 쉽게 한다. 젊은 시인들의 무거운 포즈가 이 때쯤이면 허세로 다가오나 보다. 연륜이라는 말로 바꿔도 되겠다


떠도는 사막

내가 앓고 꿈꾸던 사막이 거기 있었다

평생 사막을 떠나지 않으면
모래바람 속에서 神의 얼굴을 보게 된다는
베두윈族의 사막을 보고 싶었다

사막은
턱수염을 깎지 않는
獨身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내가 앓고 숨 쉬던 사막이 거기 있었다

요즘도 인공위성을 촬영을 하면
모래에 파묻힌 와디가 잡히고, 태양이
그 물길의 배를 타고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으니
이를 태양범선이라고 했으니

내가 꿈꾸고 노래하던 사막이었다
불에 타지 않는 책, 神의 데드마스크가 거기 있었다

-오정국( 현대시학, 2008.7월호)

심문

정리廷吏는 명했다. 재판을 시작하니, 모두 심장을 제거하시오. 태양이 검은 닻에 매달려 끌어내려지고, 마지막 저녁이 붉은 날개를 펼쳤다. 피고는 중력의 위험을 숨긴 죄를 아는가, 태초에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그들에게 어찌하여 그릇된 희망을 주었는가. 속기사는 그에게 술병 모양의 기억을 건넸고, 그는 답변했다. 시간은 불에 다시 녹여야 바꿀 수 있는 유리지도와 같다. 판관은 다시 물었다, 목숨은 누구의 것인가. 그는 대답했다, 모래는 우리들 발자국을 기껏해야 몇 초 동안밖에 간직하지 않는다, 내 허파를 피해 간 호흡을 어찌하겠는가. 이윽고 판관은 말했다, 모든 뿌리가 시들어버릴 때까지, 그 어떤 꿈도 금함. 딱딱한 시간을 영원히 갈아 마시라! 우연이었을까 그때, 여자배심원이 아랫배에 힘을 주며 콜록, 기침하는 순간, 공중에 뿌리박은 마른 꽃에서 번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텅빈 안구를 만졌다.
-이성렬(정신과 표현 2008.7.8)

오정국과 이성렬은 표현과 형식은 다르나 무의식에 죽음을 염두에 두고 시를 썼다. 오정국은 사막이 표상하는 금욕과 은자의 생활을 통해 “신의 얼굴”을 보고 싶은 욕망을 형상화 했다. ‘피라미드’는 이집트인들이 ‘영원으로 가는 배’로 부른 건축물이며 태양신 “라”의 지혜가 들어간 타임머신이다. 시인은 초월을 통해 신에 이르고 싶은 열망을 노래했다. “불에 타지 않는 책, 神의 데드마스크”인 사막의 이미지 표현이 좋아 보인다. 이성렬은 한걸음 더 나가 망자의 사후재판을 소재로 시를 썼다. 재판관과 피고의 문답이 다소의 비약이 있지만 시인의 의도는 짐작이 가능하다 “중력의 위험“ ”시간은 불에 다시 녹여야 바꿀 수 있는 유리지도“와 같은 참신한 비유 때문에 시간과 공간, 중력에 대한 깊은 물리와 철학적 이해가 없다면 독자들은 말의 맛만 보고 넘어갈 위험이 있다. 마지막 행인 ”여자배심원이 아랫배에 힘을 주며 콜록, 기침하는 순간, 공중에 뿌리박은 마른 꽃에서 번져 나오는 푸른빛이 그의 텅빈 안구를 만졌다.“도 약간 비약이다. 여기서 시인의 의도와 관념이 집중되고 좀 더 친절한 상징의 해결이 보였다면 시가 긴장의 미학을 획득했을까? 시의 구성과 디자인은 시인의 권리이지만.



쓰쓰가무시병


쓸쓸함A는 사람과 사람사이에 서식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쓸쓸함A는 처음부터 쓸쓸함A였을 리 없다
쓸쓸함A를 어딘가에 내버린다면 지구 한 귀퉁이 검어질 것이다
쓸쓸함A를 묻을 곳이란 내 가슴뿐, 거기

쓸쓸함A가 쌓이고 쌓여 섬을 이루면 꽃씨가 날아와 필지도 몰라. 꾀꼬리 몇 마리 부화할지도 몰라. 오랜 쓸쓸함A를 위해 노래 불러줄지도 몰라. 하지만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덤이 된대도 쓸쓸함A는(밀봉된 내 가슴뿐) 아무데나 버려선 안돼

쓸쓸함A를 끌어안은 쓸쓸함B위로 밤이 내린다
쓸쓸함A의 이면엔
누가 ․ 언제 ․ 어디서 ․ 무엇을 ․ 어떻게 ․ 왜 …… 의
스토리 전모가 적혀 있다
쓸쓸함B는 ‘진화론’에 힘입어 쓸쓸함C로 자란다
쓸쓸함C는 뭇 쓸쓸함X에게 ‘적응’을 가르칠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가 향기로워질 때까지
사뿐사뿐 일어서는 바람의 무릎을 제안할 것이다
- 정숙자(불교문예 2008.여름호)




함수


f(x)는 어렵다.
f(x)는 우주다.
우주 그 이상이다.
f(x)는 삶이다. 쳇바퀴다. 빠져나가고픈 굴레다.
아이들은 f(x)를 싫어한다.

x축과 y축이 만나서 이루는 좌표평면 속에
x와 y가 대응하여 만들어내는 점들이 그리는
직선, 곡선, 포물선 그래프
자유롭게 이동하는 그래프를 만드는 함수
아이들은 싫어한다.
평면 안에 자신이 버린 낙서들이 모여서 사는지도 모르고.
좌표 속을 한번만 휘둘러보면
점이 모여 만들어낸
낙서들, 어지러운 낱말들, 묻혀버린 꿈도 보인다.

평면에 z축 하나를 더 그으면
내가 발 디디고 사는 공간, 3차원이 된다.
그 안에서 이리저리 좌표를 옮기며
입체로 된 생의 그래프를 그려간다.
살다가 하루가 너무 무거워 축을 부여잡고
원점으로 돌아가려 뒤돌아보지만
한 번 그려진 그래프는 고쳐 그릴 수 없다.
간혹 평면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다.

3차원 공간에
시간의 축 하나를 더 그어
4차원 세상을 만든다.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지나온 나와 다가올 나를 번갈아 보면서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워서
시간을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오명주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08. 7.8)

정숙자의 시 제목이 낯설어서 찾아보았더니 가을철에 들쥐나 들새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이었다. 고열과 두통, 피부발진으로 변해 폐렴과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한다. 시인은 씋쓸함A, 쓸쓸함B, 쓸쓸함C로 번져가는 쓸쓸함의 전염상황을 나타냈다. 쓸쓸함의 보편 전염상황인 X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감상에 떨어지지 않고 지적인 통제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는 A,B,C,X 같은 대문자 기호덕분이다. 기호가 상징으로 읽혀야 시의 다의적 의미가 성립이 되는데 이 시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f(x)라는 수학 함수를 보면 시의아이들 뿐 아니라 시인들도 머리가 아프다. 함수란 두 개의 양이나 몇 개의 변수에 따라 달라지는 양이나 관계를 의미한다. 오명주는 “f(x)는 우주다/우주 그 이상이다/f(x)는 삶이다”라고 말함으로서 관계가 이세상의 모든 기초라고 주장한다. 현상계를 설명하는 연기론의 수학적 해석 같다. x,y,z 축의 삼차원공간에 시간 축을 추가해서 사차원이 되는 인식을(인간의 경험인식이라고 해야 하겠다. 실제의 물리 우주는 매우 다르다한다. 끈이론에 의하면 수학의 11차원이 동원된다) 말하고 있다. 시인의 상상력은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들고/.../시간을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라고 말하지만 현실에서 시간의 화살은 한 방향으로 고정되어 있다. 물리적 계산으로는 정지하고 있는 물체도 시간 축을 따라 운동 한다(상상하기 어렵지만 광속으로 운동한다고 한다. 물체의 위치에너지가 광속의 운동에너지로 변할 때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다만, 아침


안개가 지상을 뒤덮은 아침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무엇 하나 다치지 않은 아침입니다

새들이 울음을 풀어놓은 아침입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새의 울음을 감추지 않는 아침입니다

집들과 길들과 허공이 서서히 떠오르는

뿌리들이 나무의 행방을 살그머니 당겨보는 아침입니다

그러나 어느 숨구멍에서도 소리가 새어나오지 않는 아침입니다

다만 봄눈이 띄엄 내리다 멈추기도 했을지 모르는 아침입니다

-이원( 유심, 2008.여름호)


감자의 9가지 변주

놀란 흙 밖에 서 있는,

나는 노을을 들춘 마른번개,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당신을 붙들고 싶지
나는 자주 빛 스카프를 두른 여자, 당신의 목덜미를 휘감고 싶지
나는 무덤 속의 고요, 눈썹 아래 당신을 끌어안지
나는 어두운 숲 속의 은사시나무, 바람의 귓바퀴에 대고 속살거리지
나는 한낮의 어지러움, 촘촘히 볼우물에 고이지
나는 젖몸살 앓는 싹눈, 나풀거리는 몸짓으로 말하지
나는 독침, 말랑거리는 바닥에 착지하지
나는 높새바람, 당신의 쇄골, 부드러운 능선을 파고들지
나는 저장해둔 감자, 당신의 심장부를 핀 푸른 솔라닌,

치명적인 꽃이지.

- 강영은(시안,2008 여름호)

사유대신 감각위주로 쓴 시들을 보면 일단 독자가 편하다. 안마를 받을 때의 쾌감과 비슷한 느낌이 사유의 몸을 자극하는 것 같다. 독자는 작자의 안마에 정신을 맡기고 즐거운 느낌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사유시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똑같은 밥상에 물린 사람이 다른 별식을 찾는 것과 같다) 이원은 단 8행을 가지고 아침의 고요한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시다. 노련한 바둑고수처럼 작가의 계산은 모두 뒤로 숨어있다. 강영은은 감자의 은유로 다양한 이미지를 동원해서 시를 만들어냈다. 작가의 계산은 모두 전면에 드러나 있고 시는 사랑에 들떠 할 말이 많은 여자의 말씀처럼 보인다. 침묵 속의 말씀을 드러내고자 하는 앞의 시와는 다르다. 마음의 정열이 앞선 경우이지만 이 정열이 시의 자산이다. 각행의 앞 비유가 뒤의 진술과 아귀가 정확하게 안 맞는 느낌도 들지만 작가의
정열이 이를 커버하고 있다.


베란다

거실문을 열고 닫을 때
지상에서 사라지는 모든 것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나는 문,그는 베란다
나는 그의 안에 있고, 그는 나의 밖에 있다
나를 열면 그는 반쯤 내가 된다
나를 닫으면 그는 마술처럼 사라져버린다
하지만 정작 그가 사라진 건 아니다
내 두 눈이 그를 밀어낸 것뿐이다

나를 떼어 내면
그는 바람 잘 통하는 훌륭한 거실이 된다
그와 나는 사라지고 사랑이라는 바람만 남는다
내가 사라진 것도 세상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사랑의 밖이며 안이다

문을 열고 닫는 일
어쩌지 못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일
보이면서 보이지 않는
사람을 향해 뻗어가는
퇴화식물 뿌리 같은 캄캄한 눈동자
사랑아,
문에 접질려 피멍 든 손가락으로 어디서 울고 있는가
- 서안나 (현대시, 2008,6월호)


운다

나는 내가 한 개 잎인 것을 잊었다 잊은 지 오래전 일이다 나는 흙에 나의 뿌리가 박혀 있는 것도 잊고 허공의 바람이 지나칠 때면 내 몸의 솜털을 흔들어 바람에게로 길을 물었다

나는 잎인 것도 잊고 수컷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고
수컷들 앞에서 한 잎의 눈으로 더없이 맑은 웃음을 낳았다

흐느끼는 여자, 소리없이 눈물을 훔치는 여자, 울음을 삼키는 여자, 울먹이는 여자, 울부짖는 여자… 울음을 달래는 여자… 여자의 연애를 떠올렸다 나는 잎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잊고

연애와 눈물 그리고 슬픔이 새긴 유서를 읽는다 한 잎의 우둔한 눈에 바람의 무늬를 새기고
잎맥들의 살을 팠다 내가 잎인 것도 잊고

잎뿐인 것도 잊고 저녁이면 암각화처럼 수컷들을 새기고 수컷의 이름을
시와 자유처럼 부르고 불렀다
-김예강 (시와사상,2008.여름호)

“시적 본질은 사랑과 닮아있다”말을 나는 가끔 인용한다. 서안나는 베란다의 공간을 타자에 비유하고 자신을 문에 바유해서 타자와 사랑과 합일이 안되는 이유는 나(에고)임을 암시한다. 나(에고)를 죽임으로서 타자와 나는 “사랑의 밖이며 안”인 차별의 세계를 극복하고 행복(유토피아)의 세계에 이를 수 있는데 시인은 현실(현상계)에 갇혀 문을 열거나 닫는 존재이다. “문에 접질려 피멍 든 손가락”은 현실의 상처이고 몸을 가진 자의 비극이다. 이 시는
타자와 자아의 합일이 아닌 개인의 사랑이야기로서도 가능하다. 독자의 권리로 나는 전자로 읽었으나 취향이 다른 사람들은 사랑이야기의 지적버전으로 읽어보시기를(살 냄새가 더 느껴진다면). 김예강의 “운다”라는 시도 화자를 “잎”으로 설정했기에 개성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잎은 나무의 부분이면서 존재하는 생명을 암시한다. 식물성인 화자의 정신이 동물성의 연애를 꿈꾸었기에 비극이 발생했다. 시인여자와 현실의 여자가 충돌하는 일종의 분열을 그려냈다. 분열의 아픔과 상처는 시로 치유할 수 밖에 없겠지. “잎뿐인 것도 잊고 저녁이면 암각화처럼 수컷들을 새기고 수컷의 이름을/시와 자유처럼 부르고 불렀다"고 표현했으니. 시는 시인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연애편지이다. 사랑을 주제로 노래할 때 시인의 무의식은 현실의 연인너머에 있는 대타자를 부르게 된다. 그래서 ”시적 본질은 사랑의 본질과 닮아있다“라는 명제가 성립 한다.

지구는 미끄럽고 둥글다

 

이 원

 

 

무덤은 크고 둥글고 푸르다

가끔 무덤 안에서도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들린다

그곳이 입구인지 알고

길을 제 몸 속으로 빨아들이며 날아온 새들이

발을 내려놓는다

 

새들에게도 지구는 미끄럽고 둥글다

 

............................................................................................................................................................................................

 

시인의 전복적 상상력은 ‘지구’와 ‘무덤’을 동궤의 대상으로 묘사한다. “무덤은 크고 둥글고 푸르다”라는 묘사에서, ‘지구’를 ‘무덤’으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물론 그 외형적 이미지의 유사성에 기대고 있지만, 여기에는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이 개입되어 있다. 그 통찰은 지구란 거대한 무덤이 아니겠는가고 묻고 있다. "그곳이 입구인지 알고/ 길을 제 몸 속으로 빨아들이며 날아온 새들"이라는 예리한 표현 역시 지구라는 무덤 속에 살고 있는 존재들의 운명에 대한 서늘한 비유를 흘린다.

 

이광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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