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2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오규원 - 한잎의 여자
2016년 05월 01일 18시 50분  조회:4957  추천:0  작성자: 죽림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病身) 같은 여자, 시집(詩集)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1978년>


 

▲ 일러스트=권신아

오규원(1941~2007) 시인은, 보통 사람이 호흡하는 산소의 20%밖에 호흡하지 못하는 '만성폐쇄성폐질환'을 앓다 작년 겨울에 타계했다. 임종 직전 "한적한 오후다/ 불타는 오후다/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손가락으로 제자 손바닥에 써서 남겼다.

나는 이 시를 대학교 1학년 때의 여름, 한 남학생이 보낸 대학학보의 주소 띠지 속에서 처음 읽었다.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 여자에게 이 시를 옮겨 나르곤 했던가. 이 시는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에 실린 작품이다. 그러나 시집 '사랑의 감옥'(1991)에 3편의 연작시 중 1편으로 다시 실렸다.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 모자'라는 부제가 첨가되었고, 2연의 끝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와 3연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가 바뀌었다. 부제를 첨가하여 '여자'는 '언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는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를 뒤로 배치하여 여자나 언어 모두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강조하였다.

나무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빛이 푸르스름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물푸레, 이 시 덕분에 물푸레나무와 그 잎이 보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커다란 나무에 비해 여릿하고 포릇하고 정말 '쬐그만' 둥근 잎이었다. 천생 '여자'를 닮은, 이를테면 눈물 하면 떠오르는 글썽임이라든가, 슬픔 하면 떠오르는 비릿함이라든가. 병신 하면 떠오르는 어리숙함이라든가, 시집 하면 떠오르는 아련함이라든가….

그런 '여자'를 반복해 나열하면 할수록, 묘사하면 할수록 '여자'의 실체는 사라지고 '여자'는 신비의 옷을 입는다. 세상의 절반이 여자다. 물푸레나무에 달린 '쬐그만' 잎처럼 하고많은 여자와 '여자'라는 보통명사를 이토록 입에 척척 달라붙도록, 혀에 휘휘 휘감기도록 구체화시켜 놓고 있다니!

여자는 남자의 '여자'다. 남자의 엄마이고 누이이고 애인이고 아내이고 딸이다. 남자의 과거이고 미래이다. 남자의 부재이자 심연이고, 선물이자 폭력이다. 그러니 시작이고 끝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정의할 수 있으랴. 모두 가지지만 결코 가질 수 없는 그런 한 '여자'를 누가 가졌다 하는가.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403 詩와 자연의 축복 2016-05-06 0 6107
1402 연변작가협회에서 회원들 작품집 출간 전력 2016-05-05 0 4229
1401 [한밤중 詩 읊다]- 詩 몇쪼가리 2016-05-05 0 4779
1400 정호승 - 별들은 따뜻하다 2016-05-01 0 4744
1399 강은교 - 우리가 물이 되어 2016-05-01 0 4655
1398 박인환 - 목마와 숙녀 2016-05-01 0 4142
1397 문정희 - 한계령을 위한 연가 2016-05-01 0 4519
1396 기형도 - 빈집 2016-05-01 0 4513
1395 박용래 - 저녁눈 2016-05-01 0 4533
1394 최승호 - 대설주의보 2016-05-01 0 4675
1393 노천명 - 사슴 2016-05-01 0 4419
1392 오규원 - 한잎의 여자 2016-05-01 0 4957
1391 곽재구 - 사평역에서 2016-05-01 0 4748
1390 서정주 - 동천 2016-05-01 0 4542
1389 김춘수 - 꽃 2016-05-01 0 4727
1388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6-05-01 0 4798
1387 이성복 - 남해 금산 2016-05-01 0 4440
1386 김수영 - 풀 2016-05-01 0 4379
1385 박두진 - 해 2016-05-01 0 4192
1384 김삿갓 竹詩 2016-05-01 0 3975
1383 나래를 펴는 엉뚱한 상상 2016-05-01 0 4141
1382 詩作은 온몸으로 하는것... 2016-05-01 0 3903
1381 [밤중 詩를 읊다]- 詩 몇토리 2016-05-01 0 4558
1380 소월 시 음미해보기 2016-04-26 0 4808
1379 내 문학의 고향, 어머니의 詩心 2016-04-25 0 4253
1378 [출근족들 왁짝지껄 하는 이 시각, 詩 한컷]- 늦봄 2016-04-25 0 4386
1377 [詩 미치광이]- 메아리 2016-04-25 0 4048
1376 [기온차가 심한 아침, 詩 한컷]- 문신 2016-04-25 0 3622
1375 [詩로 여는 월요일 아침]-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2016-04-25 0 4177
1374 공룡아~ 발자국을 가져가거라... 2016-04-23 0 4031
1373 한 <단어>앞에 문득 멈춰서게 하는... 2016-04-23 0 3505
1372 흑과 백, 문밖과 문안 2016-04-23 0 3739
1371 [詩와 詩評으로 여는 토요일]- 봄 셔츠 2016-04-23 0 3601
1370 김수영 시인 대표작 시모음 2016-04-22 0 6445
1369 다시 떠올리는 전위시인 - 김수영 2016-04-22 0 4216
1368 [밤에 올리는 詩 한컷]-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2016-04-22 0 4335
1367 [詩로 여는 금요일]- 앞날 2016-04-22 0 3595
1366 [안개 푹 낀 아침, 詩놈팽이 한컷]- 명함 2016-04-22 0 3968
1365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2016-04-21 0 4115
1364 詩는 쓰는것이 아니라 받는것 2016-04-21 0 4425
‹처음  이전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