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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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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골목길을 좋아한다...
2016년 05월 06일 23시 42분  조회:5483  추천:0  작성자: 죽림

◈  엉큼함과 솔직함 사이에서  ◈      / 진영대



나는 엉큼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투명하지 않다는 말일 것이다. 영혼이 맑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들키지 않으려고 후미진 곳을 찾아 납작 엎드려 있는 내 영혼. 영혼의 몸도 역시 보호색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그늘 빛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엉큼하다는 말속에는 불쑥 두 쪽으로 갈라진 혓바닥을 내밀고 당신들을 향해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뜻과 함께 이미 그 속내를 알고 있으니 엄두도 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포함해서일 것이다. 내가 당신들을 물어뜯고 상처 내고 덧나게 해야 하는지, 더 낮게 똬리를 틀고, 혹시 밟히더라도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꿈틀거리면 안 되는 상황인지는 나의 판단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 단단하게 굳어진 허물 때문에 물어뜯을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 제 허물 벗기기에도 너무 힘들다. 상처 입은 내 영혼이 덧나지 않고 새 살이 돋기를 기다릴 뿐이다. 산딸기 덩굴 속에 똬리를 튼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다. 내 몸에는 가시가 없기 때문에 내 몸을 보호해 줄 가시밭에다 영혼을 숨겨 두고 쉬고 싶은 것이다. 내가 제일 두려운 건 가시나무 숲에서 기어나와 기다란 몸뚱어리를 끌고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가는 길을 건너가야 할 때다.

“나는 그 속에 있다.” 
이 문장은 오랫동안 내가 준비한 대답이었다. 내가 입은 상처가 누구에게서 입은 것이었던지 당장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하다 못해 치통으로 날밤을 새워야 했던 날에도 나는 날이 밝으면 당장 어금니든 송곳니든 모두 뽑아 버리고 말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아픔이든지 간에 아픔을 참고 견딘다는 일은 미련한 일처럼 느껴졌다. 항상 상처받지 않으려면 조심하는 일밖에 없었다. 꿈은 아프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① 물 속에서 유영을 즐기던
버들붕어 한 마리가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를 제 집인 줄 알았던지
그림자 속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한다.
내 안에 버들붕어 한 마리가
살게 된 것이다.
② 등뒤에서 햇살은 
그림자를 자꾸
호수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그럴수록 내 몸은 더욱
산언덕에다 등을 기댄다.
③ 성큼성큼 산 그림자가
물 속으로 걸어간다. 
버들붕어의 크고 단단한 집이 되는 것이다.
④ 내 몸도 그러는 사이
유선형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상처 입지 않은 영혼도 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지극히 사소한 경험에서다. 어느 날 물가에 서 있는데 버들붕어 한 마리가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왔다. 그것이 전부다. 그 후로 버들붕어가 내 그림자 속에서 오래 머물러 있었는지 혹은 물 속을 유영하던 중에 우연히 내 그림자를 통과하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물고기의 습성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수초 사이 후미진 곳이 아늑한 집이 된다는 것을 물고기는 오랜 습성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얼마 전에 한 시인으로부터 생물의 진화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인식 이전의 무의식만이 진실이다. 모든 세포는 우리가 인식해서 자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각 기관에 명령을 내리기 전에 각각의 세포가 인식한 방향으로 변해 가고 있다. 그것이 곧 진화요, 진화는 의식으로 되는 것도 아니며 생존에 임해서 가장 솔직한 세포들의 생각이다. 그것이 곧 진실이다. 당시 나는 술에 취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유의 얘기에 크게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곧 잊어 버렸다.

형태 면에서 가장 완벽한 진화의 예로 우리는 물고기의 유선형을 예로 들곤 한다. 내 몸도 곧 유선형으로 변해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 것은 순간이었을까. 「집」이라는 제목을 달아 놓고 후에 읽어보니 너무 과장이 심했다. 초점도 없이 감상에만 젖어 한 가락 뽑아 놓았으니 제 속은 후련했겠다 싶었다. 그러나 실상 그렇지도 못했다. ①에서 버들붕어가 내 그림자 안으로 들어왔다는 사실만을 묘사해도 충분한 일을 화자의 주관을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급급했던 것이다. ②와 ③에서는 물밖에 서 있는 화자에게로, 이어서 배경으로 버티고 있는 등뒤의 산으로 시야가 옮겨지면서 또다시 그림자 안으로 렌즈를 굴절시키는데 ④로 옮겨오는 것이 그것이다.(①물 속의 버들붕어→ ②물 밖의 화자→ ③등뒤의 산→ ④산 그림자 안의 화자) 
빈번한 시야의 이동은 비록 동일한 장소라 할지라도 산만해지기 쉬울 뿐만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긴장감을 줄 수 없는 약점을 갖는다. 그래서 개작을 하면서 시야를 좁혀 보기로 하고 버들붕어에게 더 많은 말을 시켜 보았던 것이다.


① 버들붕어 한 마리, 물 속에 비친
내 그림자 속으로 들어왔다.
※습성은 쉽게 버려지는 것이 아니어서
물살을 향한 자세를 풀지 않았다.
내 그림자의 가슴 안쪽에 돌이 하나 박혔던지
물살이 생기곤 했는데 
버들붕어는 그 물살을 기어오르느라고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놓았던 것이다.
좁은 내 목에도 돌이 하나 불쑥 솟아 나왔다.
물 밖으로 튀어나온 돌을 뛰어 넘느라고 
텅, 텅 계단 밟는 소리를 냈던 것이다.
겨우, 돌을 하나 뛰어 넘은 버들붕어는
※내 그림자의 눈구멍 안으로 
제 머리를 쓱 디밀어 본다.
방마다 물이 가득 차 있다.
② 나의 어디에 물이 차 있을까
어느새 나를 제대로 오므리지 못하고
버들붕어를 모두 흘려보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동안에도 
햇살은 등뒤에서 나를 떠민다.
내 그림자의 손목을 잡고 자갈밭으로 가고 있다.
자갈밭, 마른 웅덩이에서는
버들붕어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야의 이동은 ①물 속의 버들붕어에서 ②물 밖의 화자로 단순화시킬 수 있었지만 여전히 불만이 많아 이것저것 건드려 보느라고 제목을 「집」에서 「빈 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는 사이 장소도 호수에서 여울물로 바뀌어서 물이 흘러가게 했는데 아무래도 작위적이다. 

자신에게도 이 시는 아직도 불만이 많다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님을 안다. 얼마 전에 가깝게 지내는 한 시인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부분에서 주관적 해석내지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흔적이 남아 있다든지(내 그림자의 가슴 안쪽에 돌이 하나 박혀 있었던지) 시에서 몸을 차용하여 표현하고 있는 부분의 안이함(현재 많은 시에서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 등에 대해서 지적 받은 바 있다. 실제로 “그림자의 가슴 부분에 돌이 박혀 있다”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음에도 그대로 싣기로 한 것은 어떤 잡지에 이미 원고를 보낸 작품이었기 때문에 발표된 후에 수정을 함이 옳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글이 나 자신에게 시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의도에서다.

나는 지금 이 시가 또 한번 변하게 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문장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시야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사실 이 시에서 화자와 버들붕어 중의 어느 하나에게 눈길을 주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연민의 의미와도, 따뜻함의 포장과도 무관한 것이다. 욕심이며 유보다. 머뭇거림이다. 애매함이며 무지다. 시에 있어서 가장 경계해야 할 악덕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선뜻 이 시를 텍스트로 삼은 것은 뻔뻔스러워서도 아니고 좋은 시여서도 아니다. 가장 최근에 썼던 시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까울 수 있고, 솔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기보다는 변명하려고 대들었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그렇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버들붕어가 물고기라는 이상의 정보도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버들붕어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정보를 제공하려고 한다. 그렇게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버들붕어는 맑은 물보다는 어느 정도 탁한 물에서 더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급수가 아니어도 충분히 살아 남는다. 수초 사이의 그늘을 좋아해서 좀처럼 물 밖에서는 찾기가 힘들다. 숨어 있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탁하고 검은빛의 비늘을 가진다. 

이쯤에서 시인들은 내 변명에 대해서 싫증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시인들이 짜증을 내며 떠난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버들붕어와 잠시 그의 집이 되어 주었던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에 잠기곤 할 것이다. 그리고는 텅 빈 그림자를 바라보며 나는 또 시를 쓰고 있을 것이다.


자갈밭, 마른 웅덩이에서는/ 버들붕어 한 마리가/ 퍼덕거리고 있었다./ 햇살의 손목을 뿌리치고/ 바지를 걷어올리고/ 나는 마른 웅덩이 안으로 들어간다. 물은 아직 멀다./ 웅덩이 자갈밭에다 두 손에 모아온 물을 쏟아 놓는다/ 햇살이 잠깐 물에 젖는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잘박잘박 자갈밭을 걷고 있는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그림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엉큼하다는 생각을 떠올릴 것이다. 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솔직함이다. 솔직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도 용기이지만 위험한 것도 용기이다. 솔직하면 나의 상처는 치유가 될망정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입기 마련이다. 그리고 좀 멀리 떨어진, 내 칼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칼날이 그의 귓가를 스쳐간 후에도 상처입지 않았다는 쾌감을 느낄 것이다. 

시를 쓰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관념어를 빼고 말하기이면서도 막상 시에 있어서 관념어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느라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발끝만 보며 걷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골목길을 더 좋아하지만 가로등 밑에 오래 서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역시 엉큼하다. 내 시의 구 할이 관념어일망정 내 인생의 구 할은 사실이기를 바란다.◑

◇진영대 97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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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 애인 / 장석주

 

     

 

 

 

 

 

 

 

   

애인

 

 

                             장 석 주

 

누가 지금

문 밖에서 울고 있는가.

인적 뜸한 산언덕 외로운 묘비처럼

누가 지금

쓸쓸히 돌아서서 울고 있는가.

 

그대 꿈은

처음 만난 남자와

오누이처럼 늙어 한 세상 동행하는 것

작고 소박한 꿈이었는데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세상의 길들은 끝이 없어

한번 엇갈리면 다시 만날 수 없는 것

메마른 바위를 스쳐간

그대 고운 바람결

그대 울며 어디를 가고 있는가.

 

내 빈 가슴에 한 등 타오르는 추억만 걸어놓고

슬픈 날들과 기쁜 때를 지나서

어느 먼 산마을 보랏빛 저녁

외롭고 황홀한 불빛으로 켜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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