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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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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이미지는 진화한다...
2016년 05월 12일 07시 47분  조회:5052  추천:0  작성자: 죽림
 이원 시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사진
- 이신조 소설가

 

                                    

                                        

  이미지는  진화한다

 

 

 

 

 

 

 

 

 

 

 
아, 이 사람도 공기(空氣)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색도 소리도 맛도 냄새도 질감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느라 힘겹겠구나, 외롭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시인 이 원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맛볼 수도 냄새 맡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공기를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져서 탄생시킨 공기의 이미지들······.

“세계와의 불화가 에너지인 사람들 / 사이로 공기를 덧입은 돌들이 / 둥둥 떠다닌다”, “떠나온 곳을 알 수 없는 한 떼의 공기 / 주전자의 보리차처럼 그림자에게 쏟아져 내린다”, “너의 이름과 주소에서는 / 온통 수선화의 우주가 만져지겠지 / 공기도 리듬의 붕대를 풀 거야”, “공기의 귀가 떨어져 나가 사방에서 / 바람이 몰려들고 있어”, “하늘이 자주 지퍼를 배꼽 근처까지 내리고 / 레고블럭 같은 공기들은 허공에 끼워지고 있다”, “공기가 알을 낳는다”, “집 안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허공을 재봉틀처럼 박아간다”, “단단한 사과 하나가 새벽의 공기 위에 떠 있다 / 이 사과는 관념에 물든 사과다.”

아, 이 사람도 잠수함의 토끼처럼 전조(前兆)를 느끼느라 힘겹겠구나, 인간보다 더 철학적이고 멜랑콜리한 사이보그들이 등장하는 SF영화의 한 장면 같은 잿빛 세상, 디스토피아로 치닫는 음울한 미래, 시인 이 원이 불길한 예지몽처럼 만들어낸 어둡게 번뜩이는 ‘현대’의 이미지들······.

“나는 그 순간의 ‘나’를 눌러 그 세월을 프린트하기 시작했다 간혹 빛바랬거나 지워진 곳들도 있다 호흡을 중단했던 곳에서는 잠깐 프린트가 중단되기도 한다”, “내 몸의 사방에 플러그가 / 빠져나와 있다 / 탯줄 같은 그 플러그들을 매단 채 /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휴대폰을 받다 얼굴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깨진 조각 하나를 들어 오른쪽 팔목을 그었다 비틀린 혈관 하나 끊어지자 해가 땅에 뚝 떨어진다”, “실습용 재료 같은 사내와 여자가 나란히 검은 주유기를 제 옆구리에 꽂고 서 있다 그들은 서울의 밤이 꿈 대신 선택한 텍스트이다”, “흰 변기에 파탄 같은 알몸의 한 사내가 주저앉는다 / 두 다리 사이에 파묻은 사내의 머리는 납작하다 / 출구가 없는 그의 몸에서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공기든 전조든 그것은 결국 기운(氣運)이다. 에너지다. 희로애락에 근거하는 소박한 서정만으로는 온전히 아우를 수 없는 거대한 무엇, 복잡다단한 무엇이다. 그것은 어떤 리듬, 감히 우주적인 리듬에 관여하고 있다.

아, 이 사람도 - 짐짓 서글프고 애틋한 느낌. 그러나 그런 만큼 묘한 동질감과 은밀한 연대감을 느껴온 터였다. 시인 이 원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매료된 지 10여 년, 늦더위가 유난했던 여름의 끝자락 그녀를 처음으로 만났다.

이 원은 여리고 차분하고 선명하고 다감하고 사려 깊었다. 그리고 몽상가였다. 나는 그 모두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를 알기에 마냥 좋다고만은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을 말할 수 있는 진짜 권리는 사이보그에게만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내 도구가 언어라는 걸 꽤나 늦게 깨달은 편이에요. 책벌레 문학소녀는 전혀 아니었어요. 글을 쓰고 싶다고 열망한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들어갔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대입 원서를 쓸 무렵 잘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서 우연히 그런 말을 들었어요.

예대 문창과에 가면 꽃잎이 허공을 둥둥 떠다닌다고. 좀 우스운 얘기 같겠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잊히지 않았어요.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언가를 건드린 느낌. 물론 그만큼 학과 분위기가 예술적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이었겠지만 결국 그 한 마디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본 게 되어버렸어요.”

이 원은 중학생이 되던 해 낯선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다. 스스로 ‘훼손’이라 부를 만한 신변의 큰 변화를 겪은 직후였다. ‘사춘기’라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자신의 복잡한 내면을 조금씩 감지해간다.

소녀 이 원은 어느 날 집안 어딘가에서 수동카메라를 찾아낸다. 필름을 넣을 줄도, 초점을 맞출 줄도 모른다.

물론 디지털카메라도 폴라로이드도 없던 시절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란 그야말로 SF이자 사이보그인 시절이다. 그러나 어쨌든 소녀 이 원은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니다.

이미지의 시작이다. 표현의 시작이다. 하늘의 구름이 변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책상 위에 올려 둔 사과가 썩어가는 모습을 매일매일, 소녀는 이미지와 표현을 ‘낳기’ 시작한다. 도구가 필요한 삶, 이 원은 막연히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11년 전 출간된 이 원의 첫 시집 자서(自序)에는 ‘이 막막한 첫 시집을, 스승께 바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시간이 흐르고, 올해 발표된 그녀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의 첫머리에는 ‘제 언어의 맨 처음에 계시는 오규원 선생님 영전에 바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언어의 처음’을 시작할 수 있게 이끌어 준, 이 원의 진짜 도구를 찾고 사랑하게 해 준 스승의 죽음. 사제 간의 정을 실감할 수 있는 그럴싸한 일화 한 토막을 청하는 것이 너무 얕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학생문사(文士)로 중고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리던 동기, 선후배들이 과에 가득했어요. 그에 비하면 전 문학에 무지하다 싶을 정도였고요. 문학을 알게 되고 시를 흠모하게 되었지만 주눅이 들어 있을 수밖에 없었죠.

이미 시를 잘 쓰기로 소문이 나 있던 학생들에게 오규원은 선생님은 ‘네가 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걸 버려라’라고 엄하게 말씀하실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게는 늘 좀 다른 차원의 얘기를 들려주셨어요.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제야, 이제야 그 뜻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원의 세 번째 시집에는 무엇보다 거울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거울에 들어가 거울을 생각하면 거울이 달아난다”, “거울 :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리는 벽 또는 언어”, “거울의 꿈은 제 내부를 온전하게 텅 비우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만 꿈인 것이어서 거울은 계속 실존한다”, “거울 : 내가 밖으로 나와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 내가 갇혀서 끓고 있는 진창”,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 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 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거울 속에서 얼굴이 달린다 가도 가도 끝없는 거울이다 거울의 풍경이 바뀌지 않는 것은 안이 온통 사막이기 때문이다”, “방은 거울이다 / 방의 어디에서나 내가 보인다 / 나는 늘 구석구석의 내가 어리둥절하다”

거울 뿐만이 아니라 물론 공기도, 전조도, 초현실적 디스토피아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어반복이 아니다. 진화(進化)다. 시인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미지의 진화다.

“이미지는 스스로 운동한다. 평면적이고 수동적인 풍경들은 스스로의 운동을 통해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이미지가 된다. 즉 나만 풍경을 들여다보는 단방향이 아니라 풍경 스스로가 제 속을 열어 보여주는 쌍방향이 된다. 점층적으로 변화하면서, 이미지는 진화한다.”

이 원과 나는 서태지와 자코메티와 존 배와 영화 <아무도 모른다>와 <내 곁에 있어줘>와 키냐르의 소설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예의 ‘입체적이고 능동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사이보그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사이보그는 말한다. 아니 외친다. 사이보그처럼 존재하는 인간들은 참을 수 없다고, 견딜 수 없다고.

저물녘, 헤어질 곳에 도착하기 위해 그녀와 함께 여전히 더운 거리를 걸었다.

그 시각 미처 알지 못했지만, 해와 달과 지구, 개기일식이 일어나고 있었다. 며칠 뒤 함께 하늘이라도 올려볼 걸 그랬다는 메일을 보내자, 그녀는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을 보고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대사를 메모해 두었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지난겨울, 시인 오규원 선생의 부음을 들었던 날, 빈소를 찾지 못한 나는 종일 그의 시집들을 꺼내 읽었다. 시인 이 원에 대한 글의 마무리를 시인 오규원의 시로 대신하는 것 - 우리의 도구가 결국, 끝내, ‘언어’이기 때문이다.

“개울가에서 한 여자가 피 묻은 / 자식의 옷을 헹구고 있다 물살에 / 더운 바람이 겹겹 낀다 옷을 / 다 헹구고 난 여자가 / 이번에는 두 손으로 물을 가르며 / 달의 물때를 벗긴다 / 몸을 씻긴다 / 집으로 돌아온 여자는 그 손으로 / 돼지 죽을 쑤고 장독 뚜껑을 / 연다 손가락을 쪽쪽 빨며 장맛을 보고 / 이불 밑으로 들어가서는 / 사내의 그것을 만진다 그 손은 / 그렇다 - 언어이리라” - (오규원의 시, ‘손-김현에게’ 전문)

 

 

 

 

 

 

 

● 이원 시인 약력

 

1968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했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동국대학교 문예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를 출간했다. '현대시학 작품상'과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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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안의 달걀 / 이원

 

 

둥근 접시 안에 둥근 달걀 세 개가 담겨 있다
서로 닿으면서 불시착한 소행성처럼 머뭇거린다
흰 껍질에는 평화와 우울이 오래된 비닐처럼 붙어 있다
달걀과 달걀의 벌어진 사이를 비집고 공기들이 블록처럼 쌓인다
관절이 없는 것들에게서 비린내가 난다
뜨겁고 동그랗게 갇힌 비명

 

 

 

오토바이 / 이원


 

왕복 4차선 도로를 쭉 끌고
은색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질주한다
오토바이의 바퀴가 닿은 길이 팽창한다
길을 삼킨 허공이 꿈틀거린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끊긴 길을 좋아하고
4차선 도로는 허공에서도 노란 중앙선을 꽉 붙들고 있다
오토바이에 끌려가는 도로의 끝으로 아파트가 줄줄이 따라온다
뽑혀져나온 아파트의 뿌리는 너덜너덜한 녹슨 철근이다
썩을 줄 모르는 길과 뿌리에서도 잘 삭은 흙 냄새가 나고
사방에서 몰려든 햇빛들은 물을 파먹는다
오토바이는 새처럼 뿌리의 벼랑인 허공을 좋아하고
아파트 창들은 허공에서도 벽에 간 금을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다
도로의 끝을 막고 있던 아파트가 딸려가자
모래들이 울부짖으며 몰려온다 낙타들이 발을 벗어들고 달려온다
그러나 낙타들은 우는 모래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고
모래들은 울부짖으면서도 아파트 그림자에 자석처럼 철컥철컥 붙어간다
모래도 뜨겁기는 마찬가지여서
오토바이는 허공에 제 전 생애를 성냥처럼 죽 그으며 질주한다
아파트는 허공에서도 제 그림자를 다시 꾸역꾸역 삼키고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이원

 

 

잉크 냄새가 밴 조간신문을 펼치는 대신 새벽에
무향의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한다
신문 지면을 인쇄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PDF 서비스를 클릭한다
코스닥 이젠 날개가 없다
단기 외채 총 500억 달러
클릭을 할 때마다 신문이 한 면씩 넘어간다
나는 세계를 연속 클릭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해가 떠오른다 해에도 칩이 내장되어 있다
미세 전극이 흐르는 유리관을 팔의 신경 조직에 이식
몸에서 나오는 무선 신호를 컴퓨터가 받는다는
12면 기사를 들여다보다
인류 최초의 로봇 인간을 꿈꾼다는 케빈 워윅의
웹 사이트를 클릭한다 나는 28412번째 방문객이다
나도 삽입하고 싶은 유전자가 있다
마우스를 둥글게 감싼 오른손의 검지로 메일을
클릭한다 지난밤에도 메일은 도착해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k가 보낸 첨부 파일을 클릭한다
붉은 장미들이 이슬을 꽃잎에 대롱대롱 매달고
흰 울타리 안에서 피어난다
k가 보낸 꽃은 시들지 않았다
곧바로 나는 인터넷 무료 전화 dialpad를 클릭한다
k의 전화번호를 클릭한다
나는 6589 마일리지 너머로 연결되고 있다
나도 누가 세팅해놓은 프로그램인지 모른다
오른손으로 미끄러운 마우스를 감싸쥐고 나는
문학을 클릭한다 잡지를 클릭한다
문학 웹진 노블 4월호를 클릭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표지의 어린 왕자는
자꾸자꾸 풍경을 바꾼다 창을 조금 더 열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클릭한다 신간 목록을 들여다보다
가격이 20% 할인된 폴 오스터의
우연의 음악과 15% 할인된 가격에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을 주문 클릭한다
창밖 야채 트럭에서 쿵쿵거리는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착 쿵착 쿵차자 쿵착
나는 뽕작 네 박자를 껴입고 트럭이 가는
길을 무심코 보다가 지도를 클릭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길 하나를 따라가니 화엄사에
도착한다 대웅전 앞에 늘어선 동백 안에서
목탁 소리가 퍼져 나온다 합장을 하며
지리산 콘도의 60% 할인 쿠폰을 한 매 클릭한다
프린터 아래의 내 무릎 위로
쿠폰이 동백 꽃잎처럼 뚝 떨어진다 나는
동백 꽃잎을 단 나를 클릭한다
검색어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0개의 카테고리와
177개의 사이트가 나타난다
나는 그러나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 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 이원

 

 

지금은 모든 것이 초록인 계절.모든 것이 초록으로 흔들리는 계절.
우리도 흔들리는 두 팔과 다리 몸통과 머리 그리고 두 손과 두 발이 있어요.
자르고 갈고 붙이고 맞추고 쇠나 플라스틱을 끼울 수도 있어요.
공구세트는 당일 배송 되요.
지금은 초록의 계절.
모든 것이 초록 아니면 안되는 계절.
살은 다 발라내고 싶은 계절.
팔 다리 몸통 머리 그런 분할은 너무 도식적이니
단면으로 지하 1층에서부터 옥상까지처럼 몸을 통째로 쓱 자르는거죠.
3천여 개의 칼이 완비된 칼마트에서 종합 조리용 장미목 식도세트를 팔고 있어요.
왼손잡이용 칼 사용법도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어요.
지금은 진초록의 계절.
나무들의 잎잎이 공포로 꽉 찬 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쓰지 않는 영혼을 팔아 고원이나 북극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
바람이 좋아서요.
햇빛이 좋아서요.

 


 

시간에 관한 짧은 노트 1 / 이원

 


 첫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별이 하나 떴다 그 옆에 새가 발자국을 콱 찍었다 둘 다 반짝거렸다 그 사이로
 시간의 두 다리가 묻힌다 더 이상 별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모국어 같은 순간이 있다

 

 둘째날

 

  흰 초생달이 서쪽에 떴다 그 달 아래 별도 하나 떴다 버려진 거울 속에 갇힌 지난 시간이 자꾸 운다 눈앞에서 허물어지고 금방 다시 지어지는 집들의 동쪽에도 별이 두 개 떠올랐다 그 곳으로 머리를 한데 모아 비벼대는 시간들 초록색으로 떨며 서서 지구의 지붕을 뒤지는 시간들 흰 달 위에 위태롭게 올라탄 외눈박이 별들

 

 세째날

 

 낮이 되어도 몸을 지우지 못하는 달이
 하늘 밖에 떠 있다
 창들이 화분을 허공에 내놓았다 내 앞으로
 시간이 사람들을 이쑤시개처럼 쑤시며 지나갔다

 

 넷째날

 

 연이어 시간이 사람들을 이쑤시개처럼 쑤시며 지나갔다

 

 다섯째날

 

  달이 뜨지 않았다 달이 떴던 자리에서 시간의 녹슨 뼈대가 덜커덕 올라온다 공기들이 자주 길을 바꾼다 시간은 잘 구겨지는 금속인지도 모른다 꺼진 스피커처럼 둘러선 하늘에 녹이 슬어간다
 사방에서 말더듬이 같은 별들이 돋아났다................
 부패한 별들도 자기 자리를 잡는다

 

 여섯째날

 

 반달이 떴다 별똥별이 떨어져왔다 은색을 칠해 창앞에 걸어둔다 바람이 부니까 시간과 함께 달그락거린다 반달너머 하늘에도 상표처럼 납작하게 별 하나가 박힌다 순식간에 그 적막 안으로 시간이 돌멩이를 집어던진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맞는다나?

 

 일곱째날

 

 휴일이었다
 시간이 되감기 버튼을 눌렀다

 

 


Ghost World / 이원


 

겨울밤
차고 미끄러운 불빛과
차고 울퉁불퉁한 시간을
짝짝이로 신고 다리를 건너
쇼핑몰에 간다

 

쫄깃쫄깃한 고단백 눈알 통조림을 두 캔 산다 캔을 안고 있다 보면 어느 별에 몸이 닿기도 한다 눈알은 들소나 야생 고양이나 송골매의 것이라는 설이 분분하나 화성에서 온 짐승의 것이라는 풍문도 있다 먹게 되면 한시도 몸이 어두워지지 않는 붉은 색의 눈알을 나는 특히 좋아한다

 

나비 2천마리의 날개로 만든 분말을 한 병 산다 나는 서른다섯 번째 이 병을 산다 한 숟가락을 물 없이 삼키면 동남쪽에 폭우가 쏟아진다 다시 거기서부터 20리 떨어진 곳의 하늘에 해가 여럿 생겨난다 다시 거기서부터 50리 떨어진 곳에서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 곡소리를 일년 내내 듣게 되면 썩지 않는 영혼이나 심장을 갖게 된다

 

사과처럼 머리 꼭지를 사각사각 도려낼 수 있는 칼세트를 산다 혼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어 머리 깊숙이 칼날이 들어가도 육즙 한 방울 나지 않는다 불면과 두통이 심할 때 머리 꼭지를 둥글게 도려낸 후 뇌를 꺼내 씻을 수 있다 전문 의료기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지만 서북쪽의 사철 내내 몽오리만 맺힌 채 꽃은 피지 않는 신품종 동백나무숲에 살고 있는 짐승들은 이 칼세트를 단체 구입한다 숲 밖으로 나오면 발소리만 나고 몸은 투명해지는 그들이 일년에 두 번이나 사들여 이 칼세트는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말굽 세트를 산다 약간의 빛이 스미는 곳에서 발목을 자른 뒤 끼운다 프리사이즈지만 의심하거나 두려워하면 맞지 않는다 말굽을 끼고 무엇이든 한가지만 간절히 원하면 바람의 길로만 다니는 좀비들과 놀 수 있다

 

낱개로 포장된 DIY 시간팩을 하나 산다 미로형으로 완성을 시키면 사방 7백리의 숲을 걸을 수 있으며 머리가 없고 몸이 새하얀 외짝신을 신은 사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손 안에 외눈이 박혀 있다 그들이 주식으로 사용하는 심야 전기를 나에게도 나누어준 적이 있다

 

지금까지 보존하던 5천년 묵은 뿌리를 버리고 새로 5십년 짜리를 산다 이 신종은 흙이나 쇠나 유리 그 어디에서도 잘 자라며 1백 8가지 모양의 잎을 한꺼번에 달고 꽃은 필 때마다 달라서 그 종류와 빛을 헤아릴 수 없다

 

(『문학사상』 2002년 1월호)
 

 


시간과 비닐 봉지 / 이원


 

 검은, 비닐봉지 하나, 길바닥을 굴러다닌다 계속해서 시간은, 길보다 먼저 다리를 뻗는다, 검은 비닐봉지, 이번에는 계단이 있는 곳까지, 굴러가더니 멈춘다 잠시 따갑게, 부스럭거린다 시간은 다리를, 양 옆으로 길을 벌리며 간다, 가다 간판, 밑에서 멈춘다 무방비 상태로 옷의 앞을 모두, 풀어놓은 채 시간은 계속되고, 있다며 비닐봉지, 검은 쓰레기가 있는 곳으로 굴러 들어간다, 한참 나오질 않더니 검은, 그림자를 흔들며 헤집으며, 나무 밑에 멈춰 있다, 그곳에서 시간과, 비닐봉지가 같은 색으로 만난다, 나무에 등을, 기댄 시간의 한쪽 다리가 무릎에서, 잘려 있다 뒤를 보니 나무의, 중간쯤에 다리를 접어 올리고, 있다 비닐봉지는 여전히, 나무 밑에 머물러 있고 몸을 앞으로, 숙인 시간은 무엇인가를 뒤로, 껴안고 있다


1992년 『세계의문학』가을호 당선시

 

 

 

3월과 나에 관한 짧은 노트 4 / 이원 

 

 

허공이 흔들리지 않는다 하늘도 흔들리지 않는다
흔들리는 것이 없어 숨 막힌다
3월은 수요일에 시작되었다
다시 수요일이 시작되었다
다시 수요일이 돌아왔다
수요일과 수요일 사이에
여섯 개의 단지가 들어 있다
피는 말라붙었고
돌아온 수요일에서만 피 냄새가 난다
돌아온 탕아에게서는 낯선 피 냄새가 난다
탕아는 돌아올 자격이 있고
피는 낯설어야 신선하다
돌아온 수요일은 3월의 첫 번째 탕아이고
곧 낯선 피 냄새로 지상이 흔들릴 것이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3월과 나에 관한 짧은 노트 5 / 이원

 


  3월이 왔고
  3월1일이 왔고
  계속해서 2일이 왔고
  그렇게 열아홉 번의 낮과
  열아홉 번의 밤이 왔고
  지금 스무 번째의 낮이 왔다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은
  자궁 속을 빠져나오고 있는 태아 같아서
  어느 쪽이 자궁인지 어느 쪽이 태아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은
  하늘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 길 같아서
  어느 쪽이 길인지 어느 쪽이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
  열아홉 번의 낮과 밤이 되었고
  스무 번째 낮은 스무 번째 밤과 구분이 되지 않을 것이어서
  아직은 자궁이고
  태아이고 길이고 하늘이다
 
계간 정인문학 2006년 여름호 발표

 


 
즐거운 인생 1 / 이원
  -창세기

                                            


첫째 날 신은 빛과 어둠을 복제했다
빛과 어둠 속에는 신의 소유가 아닌 것들이 수두룩했다 순식간에 천지간이 있었다 달이 있고 해가 있었다 그 순간부터 불법복제물이 성행했다 의외의 사태는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


둘째 날 신은 풍문을 복제했다
어디할 것 없이 천지간은 풍문에 휩싸였다 유력한 진원지가 안개구름 하수구 그림자 거울로  쉴 새 없이 바뀌었다 심심하지 않아 신은 보시기 좋고 놀기 좋았다


셋째 날 신은 짐승을 복제했다
전지전능했으므로 기분 나는 대로 복제해 천지간에 던졌다 머리 몸통 다리가 한 개에서부터  서른두 개까지 제 각각이었으나 피비린내 나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했다 우두커니 흙을 파먹는 것 서로 몸속을 파고드는 것 제 살을 쪼아 먹는 것까지 제각각이었으나 닮은 것들은 보자마자 서로 핥거나 울부짖었다


넷째 날 무허가 신들도 짐승을 복제했다
한밤이 되자 먹다 남은 흙과 휘발유와 신나와 소다와 방부제와 어둠과 우리밀가루를 섞어  반죽했다 무엇이든 듬뿍듬뿍 넣었다 신의 가까이에 고압전류가 흐르고 있다는 풍문이 무성했으므로 짐승들은 하늘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발아래가 풍성해졌으므로 신이 보시기에 좋았다


다섯째 날 신은 눈물을 복제했다
지난밤의 과음으로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내내 신은 제 눈물을 받아먹었다


여섯째 날 신은 인간을 복제했다
한참이 지나자 나침반이 동이 났다 인간  만들기에 흥이 난 신은 많은 수를 나침반을 넣지 않고 그대로 마무리했다 이들의 작동 버튼은 고의라기보다는 신의 실수로 눌러졌다는 풍문이 우세했다 몸에 나침반이 들어 있지 않은 인간들은 자주 길을 잃게 되었다


일곱 째 날 인간은 새우깡을 만들었다
이것에서는 찝질한 냄새가 났다 오래 전에 죽은 영혼에 배여 있던 몸 냄새라고도 했다 누구나 이것을 먹으면 허기가 없어졌다


2003 제48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추파춥스 / 이원

 


교복을 입은 아이가
깨진 보도블록 위에 추파춥스를 빨며 서 있었다
여자아이의 그림자를 차들이 계속해서 짓이기고 지나갔다
한 사내아이가 돌을 던지자
여자아이의 두 다리가 쨍그랑 깨져버렸다
돌 안에서 낯선 발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지만
여자아이는 여전히 추파춥스를 빨며 서 있었다
 

2003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목 잘린 부처는 하루 종일 힙합만 듣는다 / 이원

 

 

목이 잘린 불상의 얼굴 하나가 내게 왔다. 화두를 붙들고 있었을 몸은 다른 곳에 두고, 아래로 내려뜬 눈과 공기를 가두고 있는 코와 살며시 다문 입과 잘린 목까지 펄럭이며 내려오는 귀만 가지고 왔다. 부처를 동백나무 옆에 놓아두었더니 부처가 없는 왼쪽으로만 꽃이 핀다. 요즘 접시에 깔린 명사산 모래 속에 겨우 목을 담그고 있는 부처는 스피커와 모니터 사이에서 산다. 하루 종일 힙합만 듣는 부처를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보니 왼쪽 관자놀이에 흰색 플러그가 꽂혀 있다 목 잘린 부처는 힙합을 들으며 러시안룰렛 게임 중이다.


 2003년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중에서


 


여자가 간다 / 이원

 

 

 

등에 짐을 지고 한 여자가 언덕을 내려온다 땀이 흥건한 여자의 가죽을 햇빛이 옥수수 껍질처럼 벗긴다 사나워진 햇빛에 찔린 새들은 뜨거운 다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날아간다 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는 몸에서 쉬지 않고 길을 뽑아낸다 길은 연탄집게 같은 여자의 맨발이 지나간 곳에서만 생겨난다 살로 만들어진 물컹거리는 길 아래로 지붕들이 모여든다 여자의 몸에서 두 개의 유방이 나란히 허공으로 떠오른다 유방은 하늘 속을 파고 들어간다 떠도는 두 개의 봉분이 된다 허공에서도 지우지 못하는 대지의 시간을 피해 새들이 급강하한다 하늘에는 몸의 길이 끊긴 유방이 떠가고 언덕에는 녹슨 자궁이 덜그럭거리며 떠밀려온다 같은 풍경을 담고 썩지도 못하는 창 근처까지 온 새들은 먼저 날개부터 감춘다

 

 

 

쇠 난간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 이원

 

 

쇠 난간 끝에서 새 한 마리가 중심을 잡는다 그 옆에 화초의 동그랗고 빨간 열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들도 여물고 있다 여무는 것들에게는 씨가 생긴다 중심이 들어선다 새는 눈에 씨를 심어놓고 있다 두 다리 위에 떠 있는 새의 눈에 확확 달궈진 햇빛이 박힌다 난간의 중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새는 온몸이 검다 흘러내리는 살은 난간에 거꾸로 매달린 그림자에 달라붙는다 햇빛에 숨구멍을 모조리 틀어막힌 화초가 사방에 비린내를 풍긴다 공기들이 몰려들어 단물을 핥는다 하늘을 벗을 사이도 없이 구름들은 몸 안 가득 물고 있던 칼날들을 뭉텅뭉텅 떨어뜨린다 남은 살을 추켜올리며 새는 난간 밖의 허공으로 들어간다

 

 

 

사랑 또는 두 발 / 이원

 

 

   내 발 속에 당신의 두 발이 감추어져 있다
   벼랑처럼 감추어져 있다
   달처럼 감추어져 있다
   울음처럼 감추어져 있다


              어느 날 당신이 찿아왔다
              열매 속에서였다
              거울 속에서였다
              날개를 말리는 나비 속에서였다
              공기와 몸 속에서였다
              돌멩이 속에서였다
 

   내  발 속에 당신의 두 발이 감추어져 있다
   당신의 발자국은 내 그림자 속에 찍히고 있다
   당신의 두 발이 걸을 때면  
   어김없아 내가 반짝인다 출렁거린다
   내 몸이 쓰라리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길 또는 그물 / 이원

 

 

 

길은 그물이다 몸을 가진 것들은 걸린다 걸려본 발이 길을 알리라 길 가운데 선 청동의 동상에도 그물의 그림자가 비친다 허리에 찬 위풍당당한 칼도 예외는 아니다 공기가 포장지처럼 바스락거린다 길 밖의 키작은 채송화는 다른 길을 만든다 간간히 꽃망울 잎망울까지도 물과 흙을 담은 길이다 길의 무너지는 무덤들이 꽃속으로 스며든다 이파리와 아파리 사이에서 조금씩 벌어지는 하늘이 새하얗게 바랜다 공기는 얼룩이 져 있다 어김없이 하늘을 따라가는 길 가파른 매듭을 보여주고 매듭은 깊은 골짜기를 몰고온다 높은 곳의 웅덩이에서 몇 개의 자루를 지고 가는 구름 구름속으로 지상의 그물이 삭아내린다


 


버스정유장에서 만난 다섯 소녀 / 이원

 

 


1
햇빛이 꿰매고 있는 소녀의 얼굴 가장자리가 주글주글하다


2
횡단보도 신호등은 붉은색이고
횡단보도 끝을 밟고 소녀는
혀를 빼물고 섰다
오래된 나무 그림자는
연한 소녀를 두서없이 뜯어낸다
차 소리가 소녀의 혀를
계속 자르며 지나간다 소녀의
눈에 부서진 시간이 짝짝이로 박힌다
소녀의 얼굴이 모래의 시간으로 출렁인다
갑자기 신호등이 바뀐다


3
나무와 길에는 금이 가고 있다
입에 추파춥스를 문 소녀는
상하고 있는 등을 벽에 기댄다
시간은 소녀의 이마에 구멍을 뚫고 있다
살냄새도 모르면서 구름은
시간의 거울에 걸린 소녀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다


4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소녀의
치마가 확 올라간다
속에 자주색 팬티를 입었다 뒤집혀진 치마속에
사과가 넷 그려져 있다
사과에는 모두 초록색 이파리가 달렸고
시간이 베어 물었는지 사과 하나는
절반만 남아 있고
소녀의 치마 밖에서는 붉은 장미가 흩날린다
문이 닫힌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소녀의 다리는
한쪽은 검고 한쪽은 노랗다


5
한쪽 눈에는 어둠을 끼고
한쪽 눈에는 햇빛을 끼고
한쪽 귀에는 휴대폰
한쪽 귀에는 바람의 노래
한쪽 다리에도
무릎까지 오는
얼룩말 무늬 양말
얼룩말 무늬 속에
사육된 시간
한쪽 다리에는
덜그럭거리는 시간의 관절을
그대로 달고 소녀는

 


 

 거울 속에서 낙타는 어디까지 갔을까 / 이원

 

 

   사막의 달은 차고 환해 내가 들여다봐도 내가 나오지 않는 거울이야. 인공관절을 두 개  박고 병원 문 앞에서 다시 일어서려는 낙타와 그 낙타가 눈 속에 급히 쑤셔 넣은 모래의 허공과 어제의 표지로 뒹구는 뼈와 사막을 뜯어먹는 바람이야. 나도


       거울 속으로 밧줄을 늘어뜨려
       거울 속으로 낙타를 산 채로 들여보내
       거울 속으로 돌을 떨어뜨려
 

   달의 사막은 미끄러워 숨차 당신의 그림자만 깔려있는 거울이야. 숫자가 박힌 문짝과 핏빛 미로와 낙타의 울음소리가 묻은 달빛과 죽은  자의 귀 두 개와
귀에 붙어 있던 바다야. 나도
 

       몸 속에서 손에 잡히는 해는 건져내
       모자와 말발굽쇠는 집어내
       죽은 양의 가죽을 벗겨 거울 밖에 내걸어
 

       우리들이 저 거울의 모뎀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면
       우리들의 몸이 쉴 새 없이 두려움의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이 세계가 아니라면
       이 한밤에 거울이 대용량의 길을 장착했겠니
 

시집『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문학과지성사, 2001)  중에서


   


나이키 1 / 이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자신들의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는 벽을 향해 뛰어간다 입을 항문처럼 오므렸다 폈다하며 두 다리를 번갈아 들었다 내렸다 하며 뛰어간다 아이들의 그림자는 계속 벽을 밀고 있다 미끄러져 내리지는 않는다 길들은 벽을 피해 양쪽으로 갈라진다 물렁한 벽인 하늘이 녹아내린다 짓무른  길의 가랑이 속에서 그림자를 죽죽 늘이며 아이들은 함성을 지르며 뛴다 함성과 발소리가 아이들 앞에 순식간에 벽이 되어 선다 그러나 자궁을 찢고 나온 적이 있는 아이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아이들의 몸에 하늘이 고름처럼 엉겨붙는다 아이들의 몸이 점점 더 불어난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세운 벽을 뚫고 다시 벽을 세우고 다시 뚫는다 아이들은 진득진득하고 달콤하다 몸에 서 떨어져본 적이 없는 그림자도 벽을 계속 밀어낸다 벽 위까지 튕겨 오르던 그림자는 벽을 뛰어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림자는 벽 속으로 스미지 않는다 높고 가파른 벽 너머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벽 너머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뛴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중에서

 

 


월요일 / 이원

 

 

여자는 서쪽 허공을 낙타처럼 잡아끌고 이곳까지 왔다
여자는 사방에서 유리가 반짝이는 거리를 지나왔다
유리가 있는 한낮과 길은 계속되었고
여자의 몸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 속으로 쉴 새없이 기름을 실은 탱크로리가 달려갔다
몸 속으로 차오르는 것은 어둠이어야 했다
그곳을 향해 여자의 밸브는 자주 열렸다
여자의 몸은 밤의 전극에 닿고 싶었다
그러나 여자의 몸은 오랫동안 낮과 밤을 갈아 끼우지 못했다
여자의 발자국은 몸에 새겨졌고
도시에서 빼내고 있는 여자의 두 다리는 녹이 슬어 있었다

 

 

 

얼굴이 그립다 / 이원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 거울로 들어
가는 문을 찿는다 거울은  미끄럽고  태연하다 구름무
늬가 양각된 타일이 얼굴의 사방에  붙는다 얼굴은 벽
의 시간이 된다 나는 이제 막 내  등까지  도착한 오늘
의 밤에 기댄다  밤은 나를  뒤적이지  않는다 내가 밤
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공포이기  때문이다 공포
는 사랑이며 공포는 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지 거울 속의 얼굴이 나 대신 입을  벌린다  그곳의 밤
이 얼굴을 한 줄 한 줄 벗겨낸다  맨살이 새잎 나고 꽃
필 것처럼 깜깜하다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찿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
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시집『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지성사, 2007)

 

 


 몸 밖에서 몸 안으로 / 이원        


 
  새벽은 어둠의 녹슬어가는 몸이다 사람들은 이 몸을 희망이라고 믿는다 믿음은 오해일수록 좋다 믿음이라는 허방은 사방에 널려 있다


  몸이 닿았던 자리는 썩어 들어간다 남김없이 썩어 들어간 허공을 사람들은 하늘이라고 부른다 높은 곳을 찾아가는 것은 하늘에 좀더 가까워지고 싶은 몸 썩은 냄새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몸은 죽음이 썩히고 있는 삶이다 무엇이 간절해질 때 사람들은 잊었던 그 냄새를 찾는다


  길은 낯선 곳으로 못 나간다는 비명이다 사람들은 빈 땅마다 보도블록을 깔고 더 이상 그곳을 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불빛이 아래 더 이상 길인 곳은 없다


  죽음은 끝가지 관념이다 제 품에서 죽어간 몸도 마지막 숨을 넘기는 제 몸도 관념이다 관념을 벗은 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사람들은 먼저 제 죽음을 만난다

 
  몸이 썩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타일을 몸에 붙인다 사람들끼리 몸을 만지면 단단하고 미끄럽다


  손은 바닥에 지도를 감추어 두고 있다 사람들은 만나면 서로 은밀한 길을 맞대어 본다 그러나 서로의 길이 보일까 봐 손을 위아래로 세차게 흔든다 몸의 길은 쏟아지지도 뒤엉키지도 않는다


  뼈가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어 살은 어두워지는 법이 없다 살이 어두워지려면 오랫동안 뼈와 함께 흐르는 물에 씻겨야 한다


  입: 몸을 벗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구멍   몸 : 입을 메워버리고 싶은 간절한 무덤


(시집 :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2007.6)

 

 

 

 

 


    인연(불새OST) / 이승철

    눈을 떠 바라보아요. 그대.. 정말 가셨나요..
    단 한번 보내준 그대 눈빛은 날 사랑했나요..
    또 다른 사랑이 와도 이젠.. 쉽게.. 허락되질 않아
    견디기 힘든 걸.. 운명 같은 우연을 기다려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나,, 널.......
    너무 사랑 했었나 봐요.. 그대..
    보고 싶은 만큼 후회되겠죠.

    같은 운명처럼 다시 만난다면...
    서러웠던 눈물이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겠죠

    날 위해 태어난 사람.. 그대.. 이젠 떠나줘요..
    힘들어.. 지쳐도.. 그댈 그리워하며 살아가요
    지워질 수 없는 아픈 기억들..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그댈..

    난 사랑할 수 없었나 봐요 이젠..
    그저 바라볼 수밖엔 없겠죠..
    나 살아가는 동안 다시 만난다면
    차마 볼 수 없음에.. 힘겨운 눈물을 흘리죠..

    난 아직 정말 그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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