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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그림세계
2016년 05월 22일 22시 20분  조회:2602  추천:0  작성자: 죽림
2015.12.11. 10:58

 

 

 

 

 

 

 

 

피카소(Picasso,1881~1973) 

 

 

이 그림이 바로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아비뇽의 아가씨들>[Les Demoiselles d’Avignon] 이다.

'아비뇽의 여인들' '아비뇽의 처녀들' 다 같은 작품이다.

 

243 X 233센티미터의 거대한 화폭 안에 여자 다섯이 그려져 있다.

네 여자는 서 있고, 한 여자는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익히 보아왔던 그림들 속 여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때까지 화가들의 화폭 속 여인들은 항상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아름답지 않다. 보기 흉하다.

아니 그런 여자의 모습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큰 눈, 정면의 모습에 담긴 옆 모습의 코, 오른쪽 여자들의 모가 난 얼굴,

엄청나게 큰 발, 도무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오른쪽 여자는 난폭하게 쭈그리고 앉아 몸의 등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여자의 얼굴은 정면이다. 그것은 가능한가? 아니다. 불가능하다.

하나의 화폭 안에 어떻게 얼굴 정면과 등이 함께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 다섯 여자들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 화면에 둘 이상의 시점이 동시에 들어간 것이다.

여자들의 육체는 찢어져 있다. 그는 말했다.

“비뚤어진 코, 나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

나는 사람들이 코를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1907년은 마땅히 젊은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바로 그 해에 큐비즘이 시작되었고, 현대 미술도 시작되었다.

이 그림은 현대 회화의 첫걸음을 알리는 기록이다.

 

 

피카소가 비싼 이유 

  

유명 화가, 비싼 화가 하면 누구나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화가는 당연히 피카소다.  

르네상스 미술이 절정이었던 15세기 이후 400여 년 동안

서양미술에서는 원근법과 단일시점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었다.

멀리 있는 건 작아 보이고 가까이 있는 건 커 보이고,

화가가 바라보는 한곳 시점에서 본 대로만 일관되게 그려야

현실을 잘 표현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렇게 규칙에 맞게 그리는 것만이

꼭 세상을 잘 그려 내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는 사물을 사방팔방에서 본 시점(視点)을

다 한 화면에 넣어 그렸고, 원근법도 무시했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이 이상해 보이지만,

그게 사실은 당시 현실을 잘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는 이미 전통과 결별을 선언하며

변화와 혼돈을 겪고 있었다.

게다가 1, 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겉으로 보이는 현실의 외형을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것만이 예술이 될 수는 없었다.

 

 피카소는 여기에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세상을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냈다.   

 피카소가 1907년에 그린 <아비뇽의 여인들>은

이런 작가의 특징이 처음 발현된 그림이기에,

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그림 몇 개를 꼽을 때 꼭 들어간다.

 

이 그림은 직업여성 다섯 명의 누드를 그렸는데,

우선 이 여성들이 꼿꼿하게 서 있는 자세나

빤히 정면으로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부터

이전의 19세기 화가들이 그렸던 전통적인 누드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런 태도도 획기적이지만, 기법적인 면에서는

여인의 모습을 앞뒤 양옆에서 본 시점을 

마치 한 시점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린 것,

 

즉 다시점(多視點) 회화라는 게 당시로서는 매우 전위적인 것이었다.

오른쪽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을 보면 이 점이 확연하게 보인다.

얼굴은 정면에서 본 얼굴이지만 코는 측면에서 본 듯 그린 것이고,

엉덩이는 뒤에서 본 시점이다.

 

리고 그림 전체적으로 원근법도 무시했다.

이 때문에 뒤에서 천막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성과

천막 안에 앉아 있는 여성들 사이의 거리감도 완전히 없어졌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입체파 미술을 알린 신호로 여겨져

서양미술사에서 아주 중요한 작품으로 남은 것이며,

뉴욕 현대미술관의  핵심 소장품이다.  

 

중요한 건 피카소가 시작한 이런 ‘새로운 미술’이

피카소 혼자에서 그친 게 아니라는 점이다.

피카소가 시작한 새로운 미술,

특히 그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완성한

1907년쯤부터 시작한 ‘입체파(Cubism)’ 미술은

당대 유럽 미술계 전체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후 서양미술과 전세계 미술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눈을 찾아 변화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튀는 행동을 해서 혼자 날뛴 것에 그치면 광인에 불과하지만,

그게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역사적인 사람’이 된다.

그래서 피카소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은 화가인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렇지만, 예술에서는 특히 ‘선구자’가 중요하다.

선구자, 즉 ‘처음’이라는 것은 곧 ‘새로움’을 뜻한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독창적인 세계가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이전에 유명했던 선배 예술가들의 세계를 잘 배워

답습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이런 예술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영감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전의 것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예술가들은 그만한 역사적 위치와

수치(작품 가격)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다고 하겠다.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

가수 파트리샤 카스(Patricia Kaas)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대 히트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작 샹송의 하나.

가수 에디뜨 삐아프가 작사하고 친구인 피애프 루이기가 작곡했다.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는 녹음상태가 별로라서 카스의 것으로 했다.

 

<가사 내용>

나를 꼭 껴안고 매혹의 말을 들려 주세요.

이것이야말로 장밋빛 인생입니다.

당신이 입맞춤할 때는 최고로 행복해요.

그리고 나는 눈을 감고 장밋빛 인생을 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가슴에 안을 때,

나는 별천지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미꽃 피는 세계입니다.

당신이 말할 때, 하늘에서 천사가 노래하지요.

모든 말이 사랑의 노래로 되고 마는 것 같아요.

당신의 마음과 혼을 나에게 주십시오.

인생은 언제나 장밋빛 인생이 되지요.

 


 

 

 

 

 

 

 

 

 

 

 

 

 

 

 

 

 

 

 

 

 

 

 

 

 

게르니카

<게르니카>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 벌어지던 1937년

나치가 게르니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그림이다.

1936년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좌파 인민전선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파를 나치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으로 전개된 것으로,

1939년 프랑코파의 승리로 종전될 때까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이때 바스크 족의 수도인 게르니카가 나치에 폭격당하면서

1500여 명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피카소가 분노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전투로 인해 군인들이 아니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점.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피카소의 2대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세로 349.3cm, 가로 776.6cm의 대작

 

<게르니카>는 정형적이지 않은 인물과 대상의 표현이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거의 흑백 톤의 컬러만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극대화되었다.

캔버스 왼쪽부터 보면 불이 난 집, 죽은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멍한 황소의 머리, 부러진 칼을 쥐고 쓰러진 병사, 광기에 울부짖는 말,

상처 입은 말, 램프를 들고 쳐다보는 여인, 여자들의 절규, 분해된 시신 등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들이 뒤엉켜있다.

 

* 다음 회...

 

 

 

 


2015.12.14. 09:12

 

 

 

한국의 평화를 바랐던 피카소(1881~1973) 

 

 

 

♬ 카치니의 아베마리아/이네싸 갈란테

 

 

프랑스 남동부의 지중해  지역 두 도시 앙티브(Antibes)와

발로리(Vallauris)에는 각각 피카소 미술관이 있다.

이 두 미술관은 특히 한국과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는데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과 <전쟁과 평화>가 이곳 발로리에서 그려졌고

특히 <전쟁과 평화>는 이곳 발로리예배당 벽화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in Korea)

 

피카소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도에 이 그림을 그렸다.

1950년에 발생한 '신천 학살' 혹은 '신천군 사건' 소식을 듣고 나서 그린 작품이다.

신천 학살은 1950년 10월 17일부터 12월 7일까지 52일 동안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1/4에 달하는 35,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이다.

신천 학살이 전 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자 당시 서구 사회는 경악했다.

 피카소가 1937년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게르니카'를 그렸던 것처럼,

신천 학살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을 그렸을 정도로

평화주의자였으며 전쟁을 혐오하였다. 

피카소는 이 작품을 발로리에서 그렸으나
현재는 파리의 피카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오랫동안 피카소의 그림 속에 갇혀 있던 신천군 사건이

한국에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한 계기는

2001년 소설가 황석영이 신천군 사건을 소재로 한 '손님'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이 소설에서 신천군 사건은 기독교 우파와 좌파 간의 대립으로 인해 벌어진 일로 묘사됐다.

지난 2006년 한겨레신문이 인용한 이북5도민회 산하 신천군민회의 '10·13 동지회’는

신천군 사건, 혹은 신천 학살은 '신천군내 반공청년들'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동지회 회원 중 한 명은 "미군이 오면 빨갱이를 살려둘 것이라는 소문이 퍼져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보복에 나선 것"이라고 증언했다.

 

신천 학살을 주동한 반공청년단은 신천군 사건보다 먼저 벌어졌던

제주 4.3 사건에서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한 '서북청년단'과도 흡사하다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단체들이 모여서 1946년 11월에 창단한 서북청년단은

빨갱이들은 씨를 말려야한다며 제주도로 들어가 학살극을 벌였다.

서북청년단 회원이자 이승만의 친위대였던 안두희는

1949년도에 백범 김구를 살해했다.

 

이승만 정부를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고 날뛴 그들은 한국의 나치친위대였다.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의 나치 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다.

2014년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목표로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라는 단체가 등장하면서

사회적 우려를 높이기도 했다.

단체는 ‘백범 김구 선생 암살이 의거’라고 주장하는 글을

극우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 올려 사회적 비난을 받은 데 이어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추모를 위한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다가 저지당하기도 했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이 그림은 프랑스 남부 발로리 라는 마을 예배당 입구에 있는 그림. 

   


피카소는 한국전쟁이 시작된 1950년에는
도자기 작업으로 유명한 도시 발로리에서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벽화를 제작했다.
항상 전쟁과 폭력에 반대한 피카소는
발로리에서 작업하는 동안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기고 싶어 했다.
그 당시 한국전쟁이 막 발발한 때라 기왕이면 예배당을
역사적인 '평화의 전당'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는데 마침내 피카소는
12세기에 건축돼 1791년 프랑스 혁명 이후 사용이 중지된
발로리 성의 예배당에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게 된다.
피카소의 대작 <전쟁과 평화>(La Guerre et La Paix)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피카소의 전쟁과 평화 국립박물관'으로 불리는 이 예배당은
발로리 도자기 박물관 및 피카소도자기박물관과 함께 위치해 있다.
입구로 들어가면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예배당 깊숙이 들어가면 왼쪽의 '전쟁'과 오른쪽의 '평화',
그리고 원래의 예배당 문을 막아버리고 '세계의 4부분'이 전시되어 있다.
검정, 노랑, 빨강, 그리고 하얀 인류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떠받치고 있는
이 패널(Panel)은 '전쟁'과 '평화'를 잇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
 
'전쟁'의 하얀 방패에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와
프랑수아 질로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그려져 있고
'평화'에는 한국을 상징하는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박물관의 안내 팸플릿에는
"이 시기의 피카소는 특별히 한국의 평화를 염원했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평화

 

전쟁

3년이란 긴 시간의 작업을 마치고 완성된 이 작품은

1954년 이 예배당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었지만

 한국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휴전상태에 있다. 

 이 조그만 한반도에 180만 명이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군사밀도로

60년 동안이나 산업 인력을 낭비하고 있는 어리석은 민족에 대해서 

지하에 있는 피카소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기사 관련 사진

▲ 피카소 찬양하면 반공법 위반 1969년 6월 9일자 <경향신문>


 

한 장의 옛 신문 사진이 요즈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회자되고 있다.


<신문 내용>

서울지검공안부(최대현 부장검사 김종건 검사)는

9일 상오 불란서 화가 「피카소」를 찬양하거나 그의 이름을

광고 등에 이용하는 행위는 반공법4조1항

(국외공산계열의 동조찬양, 고무)위반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1차로 크레온 제조업자인 삼중화학 대표 박진원씨(45)를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또한 동사제품「피카소·크레파스」등의 광고를 금지시키고

판매중인 상품의「피카소」이름을 지우도록 지시했다.

검찰에 의하면 삼중화학은 68년 10월부터 크레파스, 포스터 칼러 등을 제조,

「피카소」라는 상표를 붙여 팔아왔다.

검찰에 의하면「피카소」는 좌익화가로서 1944년 국제공산당에 입당,

소련에서「레닌」평화상을 받았으며 한국동란때는「조선의 학살 」

「전쟁과 평화」 등 공산당을 선전하는 작품 활동을 해왔다.

검찰은 이밖에도 코메디언 곽규석씨가 사회를 본 모 민간 TV쇼 프로에서

「피카소」라는 별명의 이름을 등장시킨 제작자들을 조사하는 한편

곽씨가 좋은 그림을 보고「피카소」그림같이 훌륭하다고 말한 이면도 캐고 있다.


곽규석씨는 조사를 받고 훈방되었지만,

삼중화학은 자사의 크레파스 이름을 '피카소'에서 '피닉스'로 바꿔야 했다. 

이런 만화같은 일을 벌였던 검찰도 낯 뜨거웠던지

'피카소의 예술을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논하는 것은 괜찮으나,

피카소가 공산주의 운동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찬양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고의가 인정될 때는 반공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는 것.

피카소를 좋아하면 반공법 위반으로 잡혀가던 시절,

그때의 기사가 지금 누리꾼들 사이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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