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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100년을 빛낸 기념비적 작품들
2016년 07월 29일 21시 17분  조회:3921  추천:0  작성자: 죽림

 

한국문학 100년을 빛낸 기념비적인 작품들

 

  • 글쓴이: 장석주

한국문학 100년을 빛낸 기념비적인 작품들 



고전이란 시간의 풍화작용을 견디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네의 정서와 심성이 고스란히 담고, 그 형식도 새로워야 한다. 당대는 물론이고 미래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언제 읽더라도 현재적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심미적 텍스트여야 한다.

 당대성을 머금고 나오는 무수한 작품들은 시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소멸한다. 소멸하는 것들은 그 소멸로써 의미를 다 소진한다. 소멸은 그 텍스트가 고전이 될 수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시대와 더불어 그 의미를 갱신하는 텍스트. 바로 그런 작품들만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선다. 고전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넓고 큰 우주이되 어떤 근원과 향수로 속절없이 깊어진 심연이다. 삶의 심연, 언어의 심연, 의식의 심연이다. 한국문학 100년은 고전의 반열에 든 무수한 작품들이 별들로 반짝이는 심연이다. 




이광수의 ‘무정’(1917년)은 근대문학의 초기에 푯대처럼 우뚝 서 있다. 스타일의 미숙과 소통에 대한 성찰이 떫고 둔탁한 것은 불가피하다. ‘무정’에 스타일이 있다면 외래에서 이식(移植)된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캄캄한 먼동 속에서 돌이킬 수 없이 다가오는 새 날빛의 언어를 보여주고, 근대적 주체의 욕망과 계몽에의 의지를 잘 새겨 넣었다. 김유정의 ‘봄봄’(1935)과 ‘동백꽃’(1936)은 욕망이 표출하며 부딪치고 화응하는 삶의 원초적인 모습을 토속 언어로 담아낸 수작들이다.

 

 소설이라는 근대적 양식은 더 이상 외래적인 것이 아니다. 생래적이라 할만큼 몸-삶에 밀착한다. 이 소설에 돌올하게 솟은 골계(滑稽) 미학은 소설이 계몽이나 윤리의 수단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보여줌에 있을 드러낸다. 김유정이 출현한 지 반세기 쯤 뒤에 나올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1983년)나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1991년)은 소설의 또 다른 낯선 층위를 보여준다. 이인성과 하일지는 발화 방식의 새로움을 통해 욕망으로 들끓는 삶의 환멸을 드러낸다.

 

 이인성이 의도된 말 더듬기와 발화 주체의 분열을 통해 삶의 불모성을 보여준다면, 하일지는 끈질긴 반복과 변주를 통해 삶이 감춘 환멸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두 작가는 소설의 속/겉이 하나이고, 그 본질이 기억-이야기가 아니라 반(反)-기억이고 해체며, 그를 통해 만들어지는 스타일임을 보여준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1973년)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년)은 농경사회가 해체되고 산업화로 들어서는 1970년대 한국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떠돌이 노동자, 생산조직 속의 노동자의 삶을 사실주의적 문체로 그려낸다.

 

 농경 유림의 전통 속에서 유구하게 이어지는 삶들을 회고적 문체로 다룬 이문구의 연작소설 ‘관촌수필’(1978년도), 그리고 멸실하는 농업 노동의 현장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하고 거기에 사실적 언어의 실감을 불어넣은 신경림시집 ‘농무’(1974년)와 더불어 문학과 시대의 상동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작들이다. 박경리 ‘토지’(1994년)는 최씨 일가의 흥망성쇠를 중심축으로 펼쳐지는 대하소설이다.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다양한 인물들이 부침을 거듭하며 날줄과 씨줄로 얽히는 역사를 그려낸다.

 

 홍명희의 ‘임꺽정’(1939년), 이병주의 ‘지리산’(1974년), 조정래의 ‘태백산맥’(1989 ), 황석영의 ‘장길산’(1984), 최명희의 ‘혼불’(1996) 등도 기억에 남을 만한 대하소설들이다. 최인훈의 ‘광장’(1961년), 김승옥의 ‘무진기행’(1964년),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1971년) 등은 지식인 소설의 범주에 든다. 사소한 것의 사소하지 않음에 눈뜬 후진국 지식인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객체로 떠돈다. 이들은 주체의 의지나 선택을 압도하는 분단 역사 속에서 좌표를 잃거나, 개별자의 공간으로 퇴행하거나, 중심에서 튕겨 나와 주변을 맴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년)은 우리에게 익숙한 한과 시름을 바탕에 깔고 유장한 리듬으로 잃어버린 님과 집과 밥을 노래한다. 민요와 설화의 능란한 차용, 우리말 리듬의 능숙한 구사로 이루어진 시들은 경박하고 투박한 신체시들을 단번에 앞지른다. ‘진달래꽃’은 우리 민족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하는 서정시의 원형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년)은 상실과 부재에 따른 공허를 형이상학의 층위에서 조명한다. 님은 원융(圓融), 우주의 충만함, 그리고 삶의 중심적 가치이자 지향점이다. 그것을 잃은 자는 날카로운 상실감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있다 사라진 님도 님은 님이다. 없는 님은 있어야 할 님이다. 님의 가는 길과 님이 오는 길은 하나로 겹쳐진다. ‘님의 침묵’은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린 것에 기억을 부여하기의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어가 훌륭한 예술적 기반이며 형이상학적 관념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언어임을 증명한다. 백석의 ‘사슴’(1936년)은 한반도 서북 지역의 토착적 풍속과 언어의 곳간이다. 일제 강점기의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처지에 놓인 채 끊임없이 허드렛일과 거친 방황으로 내몰린 청년의 내면을 맑고 품격 높은 언어로 형상화해낸다.

 

 서정주의 ‘화사집’(1941년)은 관능의 비등점으로 치닫는 젊음이 내장한 매혹과 징그러움을 고압(高壓)의 언어로 포획한다. 서정주의 언어들은 들끓는 욕망에 속절없이 투항한다. 욕망의 장력은 아주 강력해서 금욕의 윤리학은 어디에도 깃들 여지가 없어 보인다. 파열하듯이 드러나는 맹목과 치기의 언어들은 영혼의 어떤 저급함, 혹은 악에 이끌리는 한 젊은이의 내면 모습이다.

 추악할 수도 있는 그 내면을 탐미의 언어들로 대체함으로써 부정적인 것들을 긍정으로 감싼다. 서정주의 시적 뛰어남은 주술적 언어의 부림과 위악의 능청스러움에서 나온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6년)는 일본의 한 감옥에서 숨진 한 무명 문학청년을 일약 민족시인의 맨 앞자리에 세운다. 인격적 성숙에로 가는 도상에 놓인 청년시인의 내면에 대한 고백의 언어들은 촘촘하다. 그 언어의 촘촘함이야말로 비상한 윤리감각의 물증이다. 이 내향적인 청년 시인은 아주 짧은 서정시에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쓴다. 내면에 대한 철저한 돌아봄에서 비롯된 양심의 예민함과 날이 선 윤리성은 놀랍기만 하다.

 

 박목월·박두진·조지훈의 ‘청록집’(1946년)은 해방기의 도처에 끓는 정치적 열기 속에서 돌연 탈정치적 자연 미학을 추구함으로써 눈길을 끈다. 아마도 선전·선동의 언어들에 멀미와 피로를 느낀 이들에게 이 ‘순수한’ 언어들은 휴식과 위로의 기쁨을 주었으리라. ‘자연’이라는 화두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세 시인이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정지용이 ‘문장’지를 통해 문단에 내보낸 이들 청록파 시인들은 제 시에서 일체의 정치색을 탈색함으로써 몽환적인 의고(擬古)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상은 ‘오감도’(1934년)와 ‘날개’(1936년)를 동시에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이 모던 보이는 그 출현 자체가 문학사의 스캔들이다. 이상의 극단적 실험주의 시들은 ‘무슨 미친 놈의 잠꼬대냐’는 비난을 받고, 신문사는 게재를 중단한다. 당대를 훨씬 앞질러간 ‘첨단’, 이 도저한 정신분열적 언어의 파행을 당대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날개’는 근대 자본주의에 포섭된 1930년대의 청년 지식인의 심리를 따라간다. 성과 노동력은 상품화되는 타락한 물신주의에로 치닫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그 위를 미끄러져가는 ‘나’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화폐를 변소에 집어넣는 행위 등으로 소극적인 저항을 한다. ‘나’는 사회와 단절된 채 자폐적 의식에 갇혀 한없이 나른한 권태 속에서 자본주의에 추동된 욕망들이 춤추는 것을 관조할 따름이다. “날자 날자 한번 더 날아보자꾸나”고 스스로를 독려하지만 그것은 메아리 없는 독백일 따름이다.

 

 패러독스의 언어들은 반세기 뒤에 이성복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1979년)에서도 작렬한다. 유신 독재의 시대를 건너온 20대의 이성복은 억압자들과 누이와 어머니 같이 여린 존재들을 짓밟는 시대의 초상을 악성 부성신화(父性神話)로 재현한다. 짓이겨지고 지리멸렬해진 삶의 참담함을 패러독스의 언어로 증언한다.

 

 이상의 모더니즘 일부를 유산으로 받은 김수영은 ‘풀’(1968년)에서 풀과 바람의 어우러짐에서 생명 운동의 벅찬 슬픔과 기쁨을 찾아내 노래한다. 풀의 현재는 다가옴과 물러남 사이에 있지 않다. 풀은 바람의 타자가 아니라 그것과 더불어 사건의 흐름이며 운동이고 유출이다. 풀은 바람을 끌어안고 눕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그때마다 웃음과 울음을 되풀이한다. 풀과 바람은 주체와 객체, 혹은 힘의 서열에서 아래와 위에 있는 관계가 아니다. 그 둘은 동시성의 존재 역학 안에 있으며, 차라리 사랑의 인력 안에 있는 밀고 당기며 유희에 열중하고 있는 연인 관계다. 존재함의 순간들은 사건의 연속체로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풀’은 한국시의 형이상이 도달한 한 정점이다. 김수영의 문학적 DNA는 고은과 김현과 황동규에게로 이어진다. 고은의 ‘만인보’(2008)는 한 세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인물군상으로 그린 대형벽화다. ‘만인’은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며 그 사람들로 이룬 이 세상 전체다.

 

 고은의 문학적 성과는 초기 탐미주의에 기운 서정시나 선시(禪詩)들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하나하나의 개별성을 꿰뚫으며 ‘만인’이라는 인류 보편으로 나아가는 이 전무후무한 연작시집은 시적 성과와 상관없이 기념비적이다.

 

 김현의 ‘한국문학의 위상’(1977년)은 문학이라는 속꽃 핀 열매의 내부를 보여준다. 김현은 보이는 것 속에서 안 보이는 것을, 안 보이는 것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아내고 사유한 사일구 세대 문학가의 대표적인 이론가다. 문학은 관념도, 시대에 복무하는 운동의 도구다 아니다. 아무것도 억압하지 않음으로 억압의 실체를 드러내고는 문학은 그 자체로 자율적 완성체다. ‘한국문학의 위상’은 이 재기발랄한 비평가가 문학은 생활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동궤라는 사실을 기어코 밝혀낸 비평집이다.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1978)는 후진적 정치의 억압 속에서 왜소해진 자아에 대한 환유를 보여준다. 폭압의 시대는 풍자를 낳고 은유를 키운다. 같은 폭압의 시대를 건너오며 김지하가 풍자를 낳았다면(「오적(五賊)」), 황동규는 은유로 나아간다. 황동규의 시적 스타일은 환유의 시학에 기대어 있다. 눈들은 허공에 어정쩡하게 떠 있고, 병든 삶을 가면으로 가린 채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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