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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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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은 풀잎같은 존재이다...
2016년 10월 01일 17시 38분  조회:4399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집 [선명한 금], [사람 사람아], [물의 섬]이 있음.



*
우리가 말하는 현대란 거대한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이-마트E-mart와 같다. 이 거대한 시장 속에는 현대라는 이름을 대신하는 여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며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기 위한 상품들이 즐비하다. 이들 상품은 일련의 과학적인 편리함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완전무장 되어 자본과의 영합을 꿈꾸고 있다. 
시장에 나가 보라. 언제부턴가 재래시장을 대신하고 있는 '마트'는 재래시장의 단점을 보완하여 편리하고 깨끗한 서비스로 값싸고 청결하게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감각의 마트는 재래시장의 규모를 축소하고 도시의 후미진 뒷골목에나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현대적인 마트를 이용하면서도 재래시장을 그리워하고 있다. 다시말해, 편리함을 추구하면서도 불편하고 지저분했던 과거의 좌판을 그리워한다. 이러한 상반된 현상은 현대인의 삶이 도식화되고 기계화되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정情의 부재'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삶은 '화폐 가치'로 환산된다. 즉, 화폐의 크고 작음과 정확한 단위 계산에 의해 내 것과 네 것이 구분된다. 그러므로 마트에서는 '한 주먹 더'란 있을 수 없다. 정확하게 무게를 재고 화폐로 환산된 상품이기 때문에 "에이∼ 기분이다." 혹은 "밑지는데…!." 하는 식의 '얹어주기'란 있을 수 없다. 
물질이 사람을 앞서가고 사람이 물질을 쫓아가는 현 시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재래시장 곧, '정적情的인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사람 사는 냄새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래시장에서 한 주먹 더 얹어주는 나물 한 움큼, 사과 한 알 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성격을 띤다. 여기서 '그 무엇'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정情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것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값어치이며 재래시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이기도 하다. 

*
이러한 재래시장의 상징적인 의미는 {시와산문} 가을호에 실린 김성수의 [밥]과 차옥혜의 [밥], 김행숙의 [먹다버린 빵]에서 물질화 된 자본주의의 암울한 일상으로 그려진다. 

노변 좌판에서
인심을 끌고 당기며
에누리와 덤을 계산해 내던
우리의 정감 깊던 너그런 맘씨
다 어디 보내고
기계의 작동이듯
회전축을 따라 진행하며
바코드에 허리 구부리는 자본주의
그 거대한 호랑이 앞에
골목의 애잔한 점방들
밥이 되었다.
――김성수의 [밥] 전문

김성수의 [밥]은 "자본주의"에 의해 잠식당해버린 "노변 좌판"의 "점방"들과 "기계의 작동이듯/ 회전축을 따라 진행하"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너그런 맘"이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랑이같은 자본주의에 먹혀버린 "우리의 정감"은 거대한 자본주의 속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고, 어느 날 문득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게 된다. 현대의 편리성이 좌판의 사람냄새를 대신하고 잘 포장된 상품이 구수한 입담을 대신할 때 사람들은 옛것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현대화라는 편리함 뒤에 숨겨진 삶의 근원적인 모습이다. 시끌벅적한 노변에서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고, 밀고 당기는 실랑이 속에 환한 웃음과 정겨움을 나눌 수 있는 장소. 그 곳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이들에겐 그 시절의 생동감(인간적)이 마냥 그리워진다.
김성수는 이러한 삶의 모습을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골목의 애잔한 점방들"이 이 시대에 어떻게 "밥"이 되어가고 있는가를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밥이 상징하는 의미 즉, "우리의 정감=점방"을 기억해두자. 왜냐하면 다음에 보여질 작품에서 밥이 어떤 의미를 띄고 변화되는지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02년 2월 3일 40대 여자가
굶어죽었다
쌀 재고량 1200만 섬이 쌓여 있는 나라에서

대구 수성동 임대아파트에 두 달 전
열두 살 딸과 함께 
돈 2만원을 가지고 이사와
간간이 빵을 사먹다
관리비 6만원을 못 내어
수돗물과 도시가스까지 끊겨
약숫물을 길어 먹다
그 여자가 굶어 죽었다
많은 사람들이 살을 빼려고 
헬스클럽 러닝머신에서 땀을 흘리는 도시에서

그 여자가 죽어가면서 본
하늘은 무슨 빛깔이었을까
사람들은 무슨 모습이었을까

봄이 와도 녹지 않을
얼음 속에 갇힌 
가랑잎 하나
――차옥혜의 [밥-얼음 속에 갇힌 가랑잎] 전문

차옥혜는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와 소외를 통해 현대인의 개인주의적인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내 것이 아닌 것에는 관심이 없는 현대인들은 타인의 사생활에 간섭하려들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생활 침해라는 그럴 듯한 이유로 상대방을 배려하려는 것 같지만 실상 이러한 배려는 우리의 이웃을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조그만 관심이라도 있었다면 어린 딸과 여자는 죽음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으로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김성수는 그의 [밥]에서 "너그런 맘씨"를 떠올리게 되고, 차옥혜는 "봄이 와도 녹지 않을/ 얼음 속에 갇힌/ 가랑잎 하나"를 보여주게 된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두 시인이 [밥]을 통해 내보이는 삶의 태도이다. 즉, 밥이라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정情) 자본주의에 잠식당하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게 만드는 현실 속에서 시인은 과연 무엇의 밥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이러한 물음은 시를 쓰는 시인에게 시쓰기의 괴로움을 선사한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시가 돈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시인의 밥은 시가 된다. 이때 시인에게 밥이 되는 시는 돈이라는 물질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게 마련이다. 시인은 돈을 쫓기보다는 우리의 각박해진 현실을 들춰내고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소설처럼 리얼하게 살아가는 방법이 참다운 삶일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에 비껴 서 있는 듯한 관조 또한 삶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시인은 그 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올바로 가는 길을 제시해 줄 수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의 밥이며 밥의 시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밥은 잡곡밥일 수도 있고 오곡밥일 수도 있으며 찰밥이나 보리밥일 수도 있다. 밥은 만드는 사람의 기술이나 정성에 의해 그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밥인 동시에 시인 것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져있는
빵조각을 보았다

한 입 베어 문 둥근 살점이
하얗게 이빨을 드러내고

먹히기를 단념한 채
불안한 어둠이 거기 고여있어
골목의 오후는 더욱 쓸쓸하다
삶도 먹다버린 빵처럼
그늘에 묻힐 때가 있다
오래전에 거부당한 기억이
비낀 햇살에 드러나듯
선명하게 다가올 때
느닷없이 가슴저린 상처로 하여
심장이 쿵쿵 뛸 때가 있다

먹다버린 빵조각처럼
살다버린 삶이 오늘도
석간지면을 장식했다
――김행숙의 [먹다버린 빵] 전문

"먹다버린 빵조각처럼/ 살다버린 삶이" "오래전에 거부당한 기억"으로 인해 "비낀 햇살"로 드러날 때 김행숙의 밥은 먹다버린 빵조각이 된다. 그녀는 먹다버린 빵조각을 통해 삶을 관조할 줄 아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작은 것의 고통이나 버려진 것들의 고통을 찾아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해진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거나 사라져버리기 쉬운 사소한 것들은 스스로의 아픔을 토로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작은 아픔에도 선명하게 심장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석간지면을 장식"하는 "살다버린 삶"일지라도 말이다.

*
[밥]을 시제로 한 김성수와 차옥혜, 김행숙의 [먹다버린 빵]은 "먹힘(밥)"이라는 의미를 통과해 "버려짐(밥)"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의 시는 서로 다른 접근을 통해 먹히고 버려지지만 결국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것이 김성수에게는 '밥(정)↔자본주의'로 그려지고 차옥혜에게는 '밥(소외)↔가랑잎'으로 그려지며, 김행숙에게는 '빵↔먹다버린 삶'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밥은 우리의 생명을 지속시켜주는 에너지이다. 그러나 우리는 밥의 에너지만으로는 세상을 살아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밥이 내포하는 여러 가지 코드를 통해 보다 가까운 삶의 진실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그것이 시를 쓰는 시인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밥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이여 내가 눈물 적실 때마다 그대는 별빛으로 걸어"(이동녘)올 것이며, '시선'(주봉구)을 통해 새로운 통로를 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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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사랑 
―이성선(1941∼2001)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 비추고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
함께 꿈꾸며
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시인이면 족하여라
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그와 내가 둘이서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의 뿌리까지 영롱히 빛내며
저 하늘 우주의 울림을
들으면 된다
세상의 신비를 들으면 된다
그의 떨림으로 나의 존재가 떨리는
그의 눈빛 속에 내가 꽃피어나는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
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다


 
일반적으로 시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풀잎과 마주앉아서 서로 마음을 비추고/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로/함께 꿈꾸며/별을 바라 밤을 지새는’ 사람일 테다. 남부럽지 않게 잘살아 보려는 욕망이니 정치니 착취니 인기니 유행이니, 이런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맑고 순수하게 사는 사람. 세상의 보이지 않는 이면에서 그 신비를 캐고 아름다이 노래하는 사람. 통념이 대개 그렇듯 기본은 맞는 생각이지만, 이런 이미지가 고정관념이 되면 시인을 세상과 멀찌감치 떼어놓는 힘으로 작용하며, 저 스스로 이 ‘보호구역’에 드는 시인도 많다. 

하지만 시인 이성선이 그런 ‘시인이면 족하여라/그것만으로 세상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에는 간단치 않은 울림이 있다. ‘나는 다른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시의 어조가 시종 쓰라리다. 풀밭에서 지새우는 별이 빛나는 밤. 풀처럼 낮게 앉아 ‘사랑의 뿌리가 영롱해지도록’ 풀잎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들어 별을 본다. 풀잎은 떨고 그 떨림, 시인에게로 별에게로 전해진다. 전 우주가 ‘눈동자와 귀를 서로의 가슴에 묻고’ 사랑으로 떨며 꽃피어난다.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시공간! 시인은 ‘그것밖에는 더 소용이 없다/그렇게 별까지 가면’ 된단다. 자연, 그 소박한 세계와 통하는 ‘남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에 대한 시인의 순정한 사랑이 ‘된다’ ‘된다’ ‘된다’라는, 자신을 다독이는 듯 쓸쓸한 종결어의 반복으로 미묘하게 변주된다. 욕심은 없지만 긍지는 높은 시인 이성선…. 화려하고 교묘하고 장엄하고, 현란하고 때로 요사스러운 시가 백화난만한 시절에 풀잎 같은 시인의 외로움과 당혹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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