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관광지 파타야에서 벌어지는 외국인 대상 관광 매춘의 실태를 느낄 기회가 있었다.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때 매춘업에 종사했던 여성들과 면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들은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나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그곳에까지 오게 된 사연, 거기에서 겪었던 고생과 수모에 대해 담담하게 술회했다. 이야기가 끝난 뒤 그 자리를 주관했던 어느 수녀님은 참석자들에게 질문할 시간을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 처절한 인생역정의 사연을 듣고 차마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다. 몇 분 동안 그렇게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누구도 그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때 수녀님이 입을 열었다. 거기에서 흘러나온 한마디는 잔잔한 충격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저는 여러분의 그 침묵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침묵의 언어가 그토록 육중할 수 있음을 새삼 확인했다.우리의 일상은 너무 소란하고 난삽하다. 어디에 가든 미디어에 노출돼 뉴스.음악.광고 등에 시달린다. 휴대전화는 끊임없이 울려 대고, 소음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자꾸만 커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허겁지겁 정보를 발신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불필요한 소음의 증가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은 더욱 어려워진다. 단절과 고립이 두려워 우리는 맹목적으로 타인에게 접속하고 판에 박힌 교신에 더욱 골몰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 결과 도발적이거나 공허한 언어의 파편들을 붙들고 표류하기 일쑤다. 그러는 동안 언표(言表)되지 않은 것을 듣는 귀가 점점 멀어져 간다. 말을 하지 않고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침묵이란 단순히 언어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화되기 이전의 의미 원천, 또는 언어 너머의 세계로 다가가는 마음의 운동이다. 이따금 입을 닫고 침묵의 심오한 힘을 클릭해보자. 장황한 설교보다 조용한 경청이 훨씬 설득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확인한다. 시험 보고 귀가한 아이에게 '시험 어떻게 보았니'라고 다그치는 대신 말없이 껴안아 주는 부모가 실제로는 더 '무섭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연인이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아주는 눈길이 훨씬 감동적이다. 지난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회에서 일본의 이치로 선수는 '30년' 발언으로 공연한 빈축을 샀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았고, 한국 선수들은 말이 아닌 경기의 결과로 멋지게 답을 해주었다.
다시금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다. 지방 선거 출마자들은 저마다 수많은 공약의 보따리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후보들이 쏟아내는 담론의 성찬에 현혹되지 않고 참 일꾼을 어떻게 분간할 것인가. 빈 수레들의 요란한 소음 속에서 묵묵히 자치의 터전을 일궈갈 인재를 무엇으로 식별할 것인가. 말해지지 않은 것, 말과 말 사이의 행간(行間)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 선거철에 잠시 언어의 홍수를 이루다가 금방 대화의 불모지가 되어버리는 지역사회, 장황한 수사(修辭) 속에 만성적 소통 부전(不全)을 앓는 정치 영역에서 의미를 재생하는 말길이 열려야 한다. 행정과 시민, 그리고 주민과 주민 사이에 이심전심의 통로가 돼 공공의 선을 도모하면서 지역의 미래상을 그려가는 언어, 그것은 침묵보다 무겁고 빛난다. 현란하게 요동치는 정보의 바다보다 넓고 깊다.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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