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그림을 대신 그려주는 건 안 되고 글을 대신 써 주는 건 되는가. 가수 조영남씨의 대작(代作) 논란은 우리 출판계에 횡행하는 대필(代筆) 관행까지 새삼 돌아보게 한다. 대필은 자서전이나 회고록, 각종 실용서 등 비(非)문학 분야에서 주로 쓰인다. 당사자의 구술이나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대필자가 정리하는 식이다.
전직 대통령이나 유력 인사가 만년에 혹은 사후에 펴내는 자서전이 보통 이렇게 탄생한다. 이런 경우 '정리 OOO', '편집 OOO', 'OOO 편' 같은 식으로 대필자가 소개되기도 한다. 도덕적으로나 법리적으로 문제삼을 구석이 없는 경우다. 이런 책은 당사자의 측근이나 언론인이 공식적인 대가 없이 집필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리'한 게 일례다.
돈을 받고 일하는 대필작가의 세계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로 불리는 대필작가들은 집필을 시작하는 단계에서 의뢰인과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받는 경우가 많다. 책 판매량에 따른 추가 보수를 받는 수도 있다. '대필 사실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계약에 반영되기도 한다.
계약금이나 보수 미지급에 따른 민사분쟁이 종종 생기지만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일은 드물다. 출판계에는 아예 분야를 특정해 대필을 전문 창작영역으로 인정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이미 '대필작가협회(회장 임재균)'도 존재한다.
소설이나 수필 등 문학이나 전문 학술 분야에서 대필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여겨진다. 국내 D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했던 출판기획자 A씨는 기자에게 "미술계에서 대작이 관행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문학이나 학술 저작물 대리창작은 관행으로든 다른 무엇으로든 허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필한 사실이 드러나면 사기 혐의 뿐만 아니라 저작권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다. 현행 저작권법은 '저작자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하여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해 저작물을 공표'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최근 들어 무협ㆍ판타지ㆍ로맨스 등 상업적 장르소설을 중심으로 대필이 심심찮게 쓰인다는 목소리도 있다. 온라인 이북(e-Book) 시장이 열려 '물량 경쟁'이 치열해지면서다. A씨는 "분량이 많거나 연작으로 구성된 작품에 이름을 거는 '대표 작가' 외에 조수 역할을 하는 '보조 작가' 여럿이 붙는 경우가 있다"면서 "대표 작가가 줄거리를 제시하면 보조 작가가 일정한 분량을 대신 집필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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