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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선수‘의 유니폼
복장은 타인에 대한 첫 인상이다. 사람에 대한 최초의 판단은 옷차림새에서 출발한다는 뜻이다. 상대가 입은 옷만 척 보아도 그 사람의 교양과 취향, 생활수준 등 신상의 절반 이상을 파악할 수 있다. 만약 제복(制服)을 입고 있었다면 직업부터 고스란히 노출된다. 제복이야 말로 자신의 신분을 외부 세계에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메시지다.
제복(制服)에 대해 생각해 봤다. 유니폼(uniform)으로도 불린다. 곰곰 따져보면 유니폼 갖춰 입은 직업군(群)은 꽤 많다. 학생, 운동선수, 의사, 간호사, 약사, 판검사, 군인, 경찰, 소방관, 집배원, 세관 직원, 보이(걸) 스카웃, 승무원, 백화점 점원…. 회사나 공장들도 작업복, 간이점퍼 등 여러 형태의 유니폼을 만들어 입힌다. 일부 종교인들도 제복을 입는다. 한 세대 쯤 전 시대엔 여급(女給) 들을 같은 복장으로 통일시킨 술집도 많았다.
유니폼은 복장을 통해 특정 집단과 외부 세계를 가르고 차별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대내적 일체감(一體感), 대외적 권위 확보, 사회적 특별 관리 등 목적은 조금씩 다르지만 울타리 안쪽과 바깥쪽을 명확히 분리하겠다는 의도는 모두가 일치한다. 동일 제복에 자부심을 갖는 직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직군들도 있다. 죄수복이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다.
일반인이 경찰복을 무단으로 착용하면 법으로 처벌 받는다. 판사는 법복을 입었을 때와 사복을 입었을 때 발언의 무게가 천양지차로 다르게 다가온다. 약사법을 보면 무자격자가 위생복(가운)을 입고 조제(調劑)에 참여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이처럼 유니폼이 해당 직업의 권위를 상징하는 경우는 꽤 많다.
친절하기로 유명한 일본 MK 택시를 키워낸 한국인 교포 경영자는 ‘유니폼 전략’으로 사업 확대에 큰 효과를 보았다. 2000여 소속 운전기사들의 유니폼을 프랑스 유명 디자이너에 큰돈을 주고 의뢰해 입혔는데, 그 결과 종업원들은 자부심과 일체감이 높아지면서 고객들에 대한 봉사심도 함께 극대화되더란 이야기다. 국내에선 10여 년 전만 해도 슬리퍼에 반바지, 심지어 맨발로 껌을 쩍쩍 씹으며 주행하는 택시기사를 흔히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착용했던 유니폼이라면 역시 교복이 아닐까. 1904년 이화학당이 효시라니 교복의 역사는 한 세기를 훨씬 넘는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중고교가 도입했던 교복은 1983년 전두환 정권 당시 교복·두발 자유화 조치로 잠시 사라졌다가 1980년대 후반 부활했다(60년대에서 70년대 초까지는 대학생들도 선택적으로 교복을 입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교복은 중고생들 사이에서 억압과 규제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졸업식 때마다 교복을 마구 찢거나 밀가루 범벅 이벤트를 반복한다는 게 그 증거다. 이 점에선 군복도 동류항에 속한다. 일정 부분 자유가 제한된 곳에서 입었던 똑같은 복장이 좋은 추억으로만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제대 후 예비군복을 입혀놓으면 망나니(?)가 된다는 건 유니폼이 지니는 억압적 속성과 관련해 시사점이 크다.
스포츠는 유니폼의 기능이 확고하게 자리 잡은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다. 스포츠가 가장 강조하는 것이 단체정신이다 보니 모두가 같은 옷감, 같은 색깔에 같은 디자인으로 챙겨 입는 제복이야 말로 협력과 단결의 표상(表象)일 수밖에 없다. 축구나 농구같이 한 데 섞여 겨루는 경기를 관전하다 보면, 유니폼이야 말로 피아(彼我)를 구별해 주는 절대적 수단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경기 종목 자체의 재미와는 별개로 나는 스포츠 유니폼 문화와 관련해선 야구에 가장 호감을 갖고 있다. 선수들이 진흙탕에서 뒹구는데 감독은 기름기 잘잘 흐르는 정장 차림으로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매우 위화(違和)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TV 자본주의와 결합된 미국식 스포츠 바람이 몰아닥치면서 농구가 이런 문화를 선도했고 배구 축구 등도 따라왔다. 오직 야구만 선수들과 똑같은 제복을 입고 게임에 임한다. 유니폼의 의미가 가장 마음에 와 닿게 만드는 종목이 야구다.
이제 바둑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동네에도 유니폼이 존재한다. 바둑이 대표적 개인 승부로 취급되던 시절엔 꿈도 못 꾸던 변화다. 이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바둑에 단체전이 파생되면서부터였다. 2004년 바둑리그가 출범했고, 그 이듬해 2년차 대회부터 유니폼이 처음 도입됐다. 바둑리그에서 유니폼이 상륙한 것은 팀 지역연고제를 도입한 연도(2006년)보다도 빨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한국 바둑이 대표 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출전했던 최초의 국제무대였다.
바둑 유니폼은 진화를 거듭한 끝에 최근엔 패션으로 승격하고 상(賞)까지 등장하는 단계에 왔다. 2015년 4월 끝난 제1회 여자바둑리그에서 서귀포 칠십리 팀에게 베스트 유니폼 상을, 같은 팀의 오정아 프로에겐 경기 복장을 잘 소화한 선수에게 주는 베스트 드레서상을 수여했다. 여성 리그의 특성을 살린 마케팅이지만, 아무튼 이런 추세라면 바둑 유니폼을 주제로 한 본격 패션쇼가 열릴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다른 스포츠 종목에 뒤쳐지지 않으려는 바둑계의 안간힘은 세심하고 면밀하다. 심판에게도 유니폼을 입혀 “이래도 서자(庶子) 취급할래?”하며 체육계를 향해 시위를 시작한 것이 2008년부터였다. 한국기원은 프로기전 예선 때 심판들의 심판복 착용 의무화를 결정했고, 그 해 2월 25일 열린 제2기 지지옥션배 예선 1회전부터 적용했다. 그날 심판을 맡은 김일환 九단이 심판복을 착용한 바둑계 최초의 심판이 됐다. 바둑심판의 제복 착용 정책은 지금도 시행 중이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지켜보면서 처음 몇 년 간은 상당한 곤혹감을 느끼곤 했었다. 바둑이 지닌 가장 배타적인 특성은 독창성과 자유로움인데 이것이 훼손된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획일(劃一)이나 단합, 일체감 따위의 개념은 바둑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세상에 바둑보다 더 창의적 사유(思惟)와 자유로운 발상을 강조하는 게임은 없다. 그런 바둑에 획일화의 상징인 유니폼을 입히다니. 내로라하는 스타 기사들이 공식 행사장에서 단복(團服) 챙겨 입고 의장대처럼 정연히 움직이는 모습은 참 낯설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내다 보니 그런 감각도 많이 무뎌졌다.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는 심정으로 넘어간다. 이것이 불가피한 자구(自救)노력이자 대세라는데 어쩌겠는가. 하긴 바둑은 공동연구의 확산 속에 외피(外皮)뿐 아니라 수법과 기풍 측면에서도 어차피 몰(沒) 개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들 한다. 이제 바둑은 창의(創意)의 마지막 청정지역이 아니다. 유니폼이란 이름의 괴물은 교복과 군복과 사원복을 거쳐 마침내 프로기사들의 몸까지 휘감는데 성공했다. 이제 가족(家族) 단위 전용 유니폼이 등장할 날만 남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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