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인, 석류, 그리고 파렬, 분출, 문여는 소리...
2016년 12월 22일 18시 47분  조회:2603  추천:0  작성자: 죽림

석류가 영글어 터지는 계절 
성숙이고 파열이고 분출이며 시큼한 슬픔이거나 환희인 열매 
알갱이 하나하나에 생각 쏟아져… 
붉은색은 우리 자랑거리인 푸른 가을 하늘과 잘 어울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한여름 내내 뙤약볕에 시달리던 석류(石榴)가 여물어 붉은빛으로 터지는 계절이 왔다. 솔직히 석류 맛이 뭔지 잘 모른다. 지금껏 한두 번 먹어봤을까. 그래도 이 계절이 오면 괜히 생각나는 과일이다. 봄에 머리에 쓰고 싶은 화관(花冠)처럼 가을엔 이마를 간지럽히는 허영(虛榮)이라고나 할까. 석류를 칼로 싹둑 잘라 먹기보다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싶을 뿐이다. 석류 한 알은 과일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밀실을 내부에 지닌 종자(種子)들의 집이기도 하다. 그 단단한 덩치를 깨물기도 전에 붉은 속내를 떠올리기만 해도 꿀꺽 침을 삼키게 된다.

이 계절에 읽을 시 한 편을 꼽는다면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가 1920년에 발표한 '석류'를 빼놓을 수 없다.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至上)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라며 시작하는 작품이다. 우리말로 여러 차례 옮겨졌지만, 평론가 김현의 번역 시집 '해변의 묘지'를 통해 읽은 이들이 많다. 이 시의 도입부는 익을 대로 익어서 터진 석류를 시각적으로 묘사했다. 곧이어 둥그스름한 석류는 심사숙고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인해 절로 이마를 치게 되는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지상(至上)의 이마'(des fronts souverains)는 지존(至尊)의 경지에 이른 지성(知性)이 담긴 두뇌를 가리킨다. 발레리는 언어의 건축가였다. 그는 감정의 절제와 이성의 통제를 통해 마치 집을 짓듯 시어를 차곡차곡 쌓으며 시를 지었기에 지적(知的)으로 섬세한 시인으로 꼽혔다.

최근엔 성귀수 시인이 발레리의 대표시를 옮겨 시집 '바람이 일어난다! 살아야겠다!'를 내면서 '석류'를 새롭게 번역했다. '알갱이들의 과잉에 못이겨/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마치 자신의 발견들로 터져 나간/ 당당한 이마들을 보는 듯하여라'라고 도입부를 옮겼다. 그는 내부의 힘에 겨워 터진 단단한 석류를 '당당한 이마'라고 위풍당당하게 옮겼다.

 
김현의 번역으로 이 시를 이어서 읽어보면 이렇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傲慢)으로 시달림 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紅玉)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汁)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이 빛나는 파열'로 시작한 마지막 3행은 원문의 산문적 서술 구조를 기막히게 한글로 고스란히 반영한 번역이다. 시를 언어의 건축술에 비유한 발레리의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석류는 가혹한 햇빛을 오만하게 견디면서 스스로 껍질을 찢어 붉은 내부를 터뜨린다. 시인은 오만할 정도로 자긍심이 강한 영혼을 궁굴려서 시를 빚어낸다. 석류를 정물화처럼 세밀하게 묘사한 이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창작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게 된다. 성귀수 시인의 번역은 마지막 3행시에서 남다르다. '그 찬란한 파열은/ 꿈꾸게 한다, 내 지난 영혼의/ 은밀한 건축술을'이라며 원문의 구조를 살리면서 운문(韻文)의 맛을 가미했다. 원문에 없는 '쉼표'(꿈꾸게 한다, 내 지난 영혼의)까지 창안해 시 읽기의 말맛을 살리려 애썼다.

발레리의 석류가 사람의 머리를 떠올리게 한다면, 숱한 한국 시인들의 석류는 가슴을 가리킨다. 이가림 시인은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중략)/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라며 가슴에 맺힌 그리움을 토로했다. 박라연 시인은 '오 열어젖힌/ 석류의 말 못 할/ 알알이 알알이'처럼 연속된 'ㄹ' 받침의 음악성을 살리며 가슴속 슬픔을 노래했다. 발레리의 석류가 내적 성숙을 거쳐 튀어나온 언어를 노래했다면, 한국 시인들은 억눌렸던 감정의 분출을 참지 못해 서러워한다. 그 설움을 해소하느라 석류를 관능적으로 노래한 시인들도 적지 않다.

아무튼 석류는 성숙이고 파열이고 분출이다. 시큼한 슬픔이거나 달콤한 환희다. 알갱이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저마다 맛이 달라서 이러저러한 생각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시인 정지용은 겨울 밤 화롯가에 앉아 익을 대로 익은 석류 알갱이를 하나씩 씹었나 보다. '한 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느낌이여'라고 노래했다.

서정주는 석류가 열린 것을 보곤 '어쩌자 가을 되어 문은 삐걱 여시나?'라고 읊었다. 그는 다른 시에선 '석류꽃은 영원으로 시집 가는 꽃'이라고도 했다. 붉디붉은 석류는 우리 산하의 자랑거리인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린다. 올가을엔 석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 석류가 터지면서 가을이 익어간다.
 

 ⓒ 조선일보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370 시인은 작품속에 삶의 몸부림과 고통을 버무려야 한다... 2017-04-03 0 2528
369 당신은 왜 시인의 험난한 길을 걸어가려 하십니까?... 2017-04-03 0 2181
368 시는 누구나 쓸수 있으나 아무나 시인이 되는것은 아니다... 2017-04-03 0 2347
367 시인은 시상(詩想), 시정(詩情), 시흥(詩興)을 깨울줄 알아야... 2017-04-02 0 2255
366 시인은 시상이라는 "낚시 찌"에 전신전령을 기울려야... 2017-04-02 0 2682
365 시인은 詩나무그루터에 오줌을 싸고 있었다... 2017-04-02 0 2300
364 형이상시에서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폭력조합시켜라... 2017-03-29 0 2751
363 형이상시는 불협화음속에서 기상천외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2017-03-29 0 2564
362 시인은 언어를 잘 다룰줄 아는 고급동물이다... 2017-03-29 0 2391
361 형이상시는 즉물시와 사물시를 포괄한 제3류형의 시이다???... 2017-03-29 0 2665
360 형이상시에서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으로 통합된 감수성을... 2017-03-29 0 2230
359 형이상詩는 21세기의 시운동의 모델이라고???... 2017-03-29 0 2432
358 시인은 자연과 타인의 생을 기웃거리는 촉매자이다... 2017-03-29 0 2478
357 시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꿈꾸는 자는 늘 고독하다... 2017-03-29 0 2370
356 [시문학소사전] - 시쓰기에서 알아야 할 용어들 2017-03-29 0 2890
355 현대시는 탈관념의 꿈꾸기이며 언어적 해체인것이다... 2017-03-29 0 2517
354 후기산업혁명사회의 현대인들의 병을 시로 치료하라... 2017-03-29 0 2368
353 시란 희노애락을 부르짖는 소리이다... 2017-03-29 0 2771
352 "전통시인"이나 "실험시인"이나 독자를 외면하면 안된다... 2017-03-29 0 2267
351 현대시쓰기 전 련상단어 100개 쓰기부터 하라... 2017-03-29 0 2976
350 현대시의 실험적 정신은 계속 진행형이다... 2017-03-29 0 2245
349 현대시의 흐름을 알고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자... 2017-03-29 0 2203
348 현대시는 "단절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2017-03-29 0 2463
347 시는 추상적인 표현과 원쑤지간이다... 2017-03-29 0 2729
346 시심의 모든 밑바탕은 지, 정, 의를 근본으로 한다... 2017-03-29 0 2144
345 시가 "디지털혁명시대"와 맞다들다... 2017-03-27 0 2390
344 프랑스 시인 - 폴 엘뤼다르 2017-03-27 0 3284
343 시어는 삶과 한 덩어리가 된, 육화적인 언어로 련금술해야... 2017-03-27 0 2314
342 시는 한점의 그늘 없이 화창해야 한다... 2017-03-27 0 2420
341 시인아, 어쨌든 있을 때 잘해야지...그리고...상투는 없다... 2017-03-24 0 2063
340 시인의 "적막한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 2017-03-23 0 2315
339 시와 련관성이 없는 "무의미시"의 낱말로 제목화할수도 있어... 2017-03-22 0 2449
338 이순신 장군 시 모음 2017-03-21 0 3010
337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것들이 많단다... 2017-03-21 0 2511
336 류시화 시 모음 2017-03-21 0 5839
335 새가 나무가지를 못떠남은?!ㅡ 2017-03-21 0 2505
334 <새(鳥)> 시 모음 2017-03-21 0 2691
333 시제는 그 시의 얼굴로서 그작품의 질과 수준을 예감할수도... 2017-03-21 0 2793
332 시의 제목을 첫행이나 끝행으로 할수도 있다... 2017-03-20 0 2446
331 시의 제목에 의하여 시의 탄력이 생긴다... 2017-03-18 0 2494
‹처음  이전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