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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적막한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
2017년 03월 23일 18시 58분  조회:2312  추천:0  작성자: 죽림
 

 

 

국빈 호위, 예포, 3군 의장대 검열의식에서ㅡ



처음 시를 배울 때 고쳐야 할 표현들/도종환 시인 



1.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 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다. 

사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세히 관찰하며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이것은 아마 
예술 창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서쪽하늘 가까이에서 실려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어린 시절이 벌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였던 숱한 언약들이 다시 귓전에 들려온다. 

살아오면서 버려진 덧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처럼 가슴 설레어 눈망울 적시었고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하얗게 깔린 백지장 위로 그리운 사연들이 써져 내려가고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잔잔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밉던 얼굴마저 그리워져 모질게 내쫓았던 당신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 「애착」 

이 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시이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떠한가. 

'황금벌판 풍요로움~.' 그는 고향 벌판을 바라보며 황금 벌판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피상적이다. 

오늘날 농촌의 실제 모습이 어떤가 하는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묘사하던 상투적인 관용어구를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이런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흔적은 이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 이런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고향을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라고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2. 상투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위의 시 '애착'에서 보는 것처럼,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따라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 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 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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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外界) 
―김경주(1976∼)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 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화가가 팔 없이 태어났다는 건 삶에 적응하기 힘든 태생적 결함이다. 그는 삶의 바깥에서 멀리멀리, 무언가를 그리워하며 바람처럼 떠돈다. 왜 떠도는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저, 그리 태어난 것이다. 세상의 습속에 순응하며 제도에 동화하려 애쓰는 사람들은 바람처럼 사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해의 바깥, 세상 바깥에서 화가는 오직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희구할 뿐이다.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시상(詩想), 누구도 움켜쥐지 못한 선율! 그 천상의 예술을 잡아채려 그는 절벽에 기어올라 가 몇 달이고 입 벌린 채 있곤 한다. 외계, 우주, 더, 더, 넓은 세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마시려! 바람은 시이며 음악이며 영혼이다. 이 세상 밖이기도 하고, 자신의 내면이기도 하고, 생명의 기원(起源)이기도 한 외계. ‘절벽’은 그 외계를 향해 뚫린 구멍이다. 지구인으로서는 불구인 예술가들. 은하수 너머 더 아득한 세계에 이르도록 더 큰 완성을 꿈꾸는 그들은 외계인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란, 예술의 완성이나 자기 주체와 자기 대상의 합일을 추구한다는 뜻이리라. 불구의, 불우하고 외로운 삶만이 천상의 아름다움을 재현해 낸다는 예술지상주의적 예술관이 가슴 시리게 그려져 있다. 전위적 시인 김경주의 시로서는 뜻밖의 고전적 모습이다. 예술가의 전형을 전형적으로 그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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