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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형태는 시가 담겨지는 그릇과 같다...
2017년 02월 09일 17시 52분  조회:2406  추천:0  작성자: 죽림





5-4-2. 행(行)과 연(聯)의 구분


시 쓰기에 있어서 행과 연은 작품의 형태를 결정 지워 줍니다. 시의 형태는 시가 담겨지는 그릇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과 연을 잘 구분하는 것은 그 시의 내용과 뜻이 한결 돋보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의 행은 운율이나 의미 그리고 이미지로 구분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분류에 따르면 시의 행은 리듬의 한 단락이거나 의미의 한 단락 또는 이미지의 한 단락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즘 현대시는 아예 연의 구분이 없거나 혹은 어떤 이유로 해서 행이나 연을 구분하는 경우도 있어서 유의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의 구성에 있어서 낱말(單語), 어절(語節), 구(句), 절(節), 문(文), 문장(文章) 등도 자세하게 고려해야 하겠지만 실제로 시 쓰기에 있어서는 이보다도 행을 어떻게 끊고 몇 행을 모아서 한 연으로 구성할 것인가 하는 점에 많은 관심이 있으며 또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잠간 우리 문법에 명시된 문장(文章)의 구성단위를 알아보고 넘어 가도록 합니다. “인생은 결코 달콤한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면 ‘인’ ‘생’ ‘은’ 등의 글자수를 음절이라고 하며 ‘인생’ ‘은’ ‘결코’와 같이 하나의 독립성을 가지고 문장을 이루는 지접적인 자료가 되는 생각의 단위 곧 품사(品詞)의 수를 단어라고 하며 ‘인생은’ 결코‘ ’달콤한‘ 등 한 문장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글월의 한 토막(띄어쓰기의 단위)이 어절이며 ’인생은 결코 달콤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행이 끝나고 마침표를 찍었을 때 문(文)이라고 합니다. 이 문(文)이 몇 개가 모여서 비로소 한 문장이 되는 것이니 참고로 하기 바랍니다.
시의 행과 연 구분의 중요한 요소를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설명하기로 합니다.

① 리듬의 한 단락
② 의미의 한 단락
③ 이미지의 한 단락
④ 강조의 한 단락

현대시에서는 리듬의 한 단락으로 한 행을 이루는 예는 극히 드물기는 합니다만 시의 구조에서 이미 익힌 바 있는 호흡에 해당하는 요소입니다. 김안서, 김소월 시인 등이 우리 민요가락에 기대어 쓴 시에서 간혹 발견되고 김영랑 시인의 4행시나 정지용 시인의 일부 시에서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현대시와는 달리 한시(漢詩)와 시조에서는 이 리듬(律格)으로 한 단락을 구성하는 것은 엄격하면서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듬의 규칙을 지켜야 할 정형시(定型詩)에서의 시행(詩行)은 한 편의 시 전체를 구성하는 형식의 ‘운율의 한 단락’으로 보아 왔던 것입니다.


한시에는 5언 절구(五言絶句)나 7언 절구(七言絶句)의 형식으로 한 행의 글자수와 한 편의 시 전체가 가지는 행수를 규정하고 있어서 흥미롭기도 합니다.
그러면 한시의 두 가지 유형을 참고로 소개하면 리듬의 한 단락에 대한 이해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1) 萬事階有定(만사계유정-세상 만사 모든 것이 정해진 바 있는데)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헛되고도 들뜬 인생 분주하게 헤메네)

(2) 邑號開城何閉門(읍호개성하폐문-읍이름이 개성인데 어찌하여 문을 닫느뇨)
     山名松嶽豈無薪(산명송악기무신-신이름은 송악인데 어찌하여 나무가 없다 하뇨)
     黃昏逐客非人事(황혼축객비인사-해 저문데 손님을 쫓는 것은 사람의 인사가 아니라)
     禮儀東方自獨秦(예의동방자독진-동방예의지국에서 당신은 진시황보다 더하다)
                                              -- 심삿갓의 [축객시(逐客詩)]

한편 시조는 3장, 곧 3행 또는 6행으로 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를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각각 행을 이루어 정형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음 김상옥 시인의 시조 [어머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아닌 밤중에
홀연히 마음 어리어져

잠든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 본다

깨시면 나를 어쩌나
손 아프게 여기실꼬.

이러하듯이 정형시의 행 구분은 정해진 틀에 맞추어 넣거나 기계적인 구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 구분이 미묘한 변화를 시도함으로써 정형시의 고정된 틀에 변화를 일으켜 시의 생기를 돋울 수 있고 같은 내용인데도 공감을 배가시킬 수도 있게 됩니다.
다음은 김소월 시인의 [가는 길]을 읽어 봅시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렇게 제1연과 제2연을 가름하지 않고 붙여서 바꾸어 놓았더니 어쩐지 시를 완전히 죽여버린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이별에 대한 미묘한 모순 감정이나 갈등의 느낌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한 행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 것을 3행으로 끊어서 한 연으로 구성하여 우리의 감정을 다음의 원문과 같이 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이 얼마나 고조된 리듬의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하였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립다’에서 일단의 리듬이 끊어져서 감정이 절절하게 무르녹은  ‘그리움’을 알 수 있고 ‘말을 할까’에서 리듬이 끊어지면 그런 이사를 드러내려는 충동과 차마 그런 말을 하디 못하는 심정과의 갈등이 뒤엉키고 ‘하니 그리워’에서는 리듬의 한 단위가 이루어지면 복받치는 그리움으로 목이 메어 말을 못하는 심정과 갈등이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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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 떼를 생각한다
―류시화(1958∼ )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바람을 신으로 모신 유목민들을 생각한다
별들이 길을 잃을까 봐 피라미드를 세운 이들을 생각한다
수백 년 걸려
불과 얼음을 거쳐 온 치료의 돌을 생각한다
터질 듯한 부레로 거대한 고독과 싸우는 심해어를 생각한다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과
히말라야골짜기돌에차이는나귀의발굽소리를생각한다
생이 계속되는 동안은 눈을 맞을 어린 꽃나무를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을 생각한다
내 안에서 퍼붓는 비를 맞으며 자라는 청보리를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는 사람보다
사랑하고 상처받는 사람을 생각한다
불이 태우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을 생각한다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
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을 생각한다
새의 폐 속에 들어갔던 공기가 내 폐에 들어온다는 것을 생각한다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를 생각한다
가슴에 줄무늬 긋고서 기다림의 자세 고쳐 앉는 말똥가리를 생각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서
둥근 테두리가 마모되는 동전을 생각한다
해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곳에 왔음을 생각한다


북극은 눈이 멀 듯 하얗게 얼음과 눈으로 덮인 땅, 하늘 끝까지 혹독하게 차가운 바람이 분다. 그 무기질의 세계를 ‘여자 바람과 남자 바람 돌아다니는 북극의 흰 가슴’이란다. 인간을 비롯한 뭇 생명체들에게 살벌하게 위협적인 그 동토(凍土)의 바람에도 사실 암컷과 수컷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기에 무한 바람을 낳겠지. 류시화 시를 읽다 보면, 자연은 그 자체가 시인 것 같다. ‘깃 가장자리가 닳은 되새 떼의 날갯짓’,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그해의 첫 연어를 잡으러 가는 곰’, ‘겨울바람 속에 반성문 쓰고 있는 콩꼬투리’! 시인의 이 날렵한, 상상력이라는 낚싯대!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엄청 고독할 테다. 거꾸로 엄청 고독하면 제가 ‘잘못 살고 있다고 느낄’ 테다. 큰 실패를 겪을 때, 제 인생이 어디부터 꼬였는지 모르겠어서 헤어날 바를 모를 때, 마음의 독을 풀어주는 시다. 몸에 좋으면서 맛도 좋은 즙액 같은 시. 이 시가 실린 류시화 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은 그런 시편들이 만발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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