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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엘리자베스 2세는 누구인가...
2017년 02월 11일 18시 52분  조회:7303  추천:0  작성자: 죽림

영국 국왕

 

윈저 왕조

조지 6세
(George VI)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현직)

 

 

2007년 애니 레보비츠가 버킹엄 궁전에서 촬영한 사진

왕호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1]

이름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
(Elizabeth Alexandra Mary Windsor)[2]

생년월일

1926년 4월 21일

출생지

영국 런던 메이페어

재위기간

1952년 2월 6일 ~ (현재)

대관식

1953년 6월 2일

종교

성공회[3]장로회[4]

영국 왕실 공식 사이트 영국 왕실 유튜브 공식 사이트

 

 

 

여왕의 문장(영국)[5]

국가에 상관 없이 쓰는 여왕의 깃발[6]

 

1952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파일:attachment/time_1952.jpg

1951 - 모하메드 모사데그

엘리자베스 2세

1953 - 콘라트 아데나워

 

파일:/image/091/2006/04/20/00694088.jpg

 

이 소녀는 훗날….[7]

여왕이 되었습니다.

 

1. 개요2. 칭호
2.1. '엘리자베스 2세' 명칭 사용 논란
3. 여왕으로서의 삶4가족관계5. 이야깃거리6장수만세
6.1. 영국 역사상 최장수 & 최장재위 군주6.2. 재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
7. 대중매체속 묘사
7.1. 영화7.2. 드라마7.3.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1. 개요[편집]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화(즉위 당시)

90세 생일 기념으로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한 사진.

1952년 즉위한 이래 영국호주캐나다자메이카 등 16개 영연방 왕국 구성원들의 여왕. 해당 국가가 아닌한 일반적으론 '영국 여왕'이라고 부르지만 현재 영국을 포함한 16개국의 군주직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2. 칭호[편집]

한반도에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부터 65년째 재위 중. 현재 영국 등 16개국[8]의 여왕이면서 영연방의 수장(Head of the Commonwealth)[9]라는 명예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재 재위 중인 16개국이 아닌 다른 16개국의 여왕이다.[10][11] 여왕이 과거 재위했던 국가와 현재 재위 중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파란색은 엘리자베스 2세가 현재 재위 중인 국가, 붉은색은 과거 재위했던 국가

국가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비고

국가

즉위년일

퇴위년일

재위기간

비고

영국

1952.2.6

 

 

(재위중)

파키스탄

1952.2.6

1956.3.23

4년 48일

헌법 개정

캐나다

1952.2.6

 

 

(재위중)

남아프리카 연방

1952.2.6

1961.5.31

9년 118일

국민 투표

오스트레일리아

1952.2.6

 

 

(재위중)

실론

1952.2.6

1972.5.22

20년 112일

헌법 개정

뉴질랜드

1952.2.6

 

 

(재위중)

가나

1957.3.6

1960.7.1

3년 119일

국민 투표

자메이카

1962.8.6

 

 

(재위중)

나이지리아

1960.10.1

1963.10.1

3년

헌법 개정

바베이도스

1966.11.30

 

 

(재위중)

시에라리온

1961.4.27

1971.4.19

9년 360일

헌법 개정

바하마

1973.7.10

 

 

(재위중)

탕가니카

1961.12.9

1962.12.9

1년

헌법 개정

그레나다

1974.2.7

 

 

(재위중)

트리니다드토바고

1962.8.31

1976.10.26

14년 61일

헌법 개정

파푸아뉴기니

1975.9.16

 

 

(재위중)

우간다

1962.10.9

1963.10.9

1년

헌법 개정

솔로몬 제도

1978.7.7

 

 

(재위중)

케냐

1963.12.12

1964.12.12

1년

헌법 개정

투발루

1978.10.1

 

 

(재위중)

말라위

1964.7.6

1966.7.6

2년

헌법 개정

세인트루시아

1979.2.22

 

 

(재위중)

몰타

1964.9.21

1974.12.13

10년 86일

헌법 개정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1979.10.27

 

 

(재위중)

감비아

1965.2.18

1970.4.24

5년 67일

국민 투표

벨리즈

1981.9.21

 

 

(재위중)

가이아나

1966.5.26

1970.2.23

3년 275일

헌법 개정

앤티가바부다

1981.11.1

 

 

(재위중)

모리셔스

1968.3.12

1992.3.12

24년

헌법 개정

세인트키츠네비스

1983.9.19

 

 

(재위중)

피지

1970.10.10

1987.9.28

16년 358일

군사 쿠데타

위 표에서 '헌법 개정'은 따로 국민 투표도 없었고 군사 쿠데타도 없이 이뤄진 것만 한정한 것이다.[12]

왕위 계승 직후 여왕인 모든 나라에서 썼던 과거의 칭호는 다음과 같다(현재는 나라마다 다른 칭호를 따로 제정해서 씀).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라틴어: Elizabeth II, Dei Gratia Magnae Britanniae, Hiberniae et terrarum transmarinarum quae in ditione sunt Britannica Regina, Fidei Defensor)

그리고 다른 여러 칭호들을 한데 다 통합해서 부르는 비공식 칭호도 있었던 모양인데 그건 다음과 같다. 다만 정식 칭호는 아님에 주의.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와 해외 영국 자치령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 에든버러 공작부인, 메리오네스 백작부인, 그리니치 남작부인, 랭커스터 공작, 맨 섬의 영주, 노르망디 공작, 가터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씨슬 기사단장, 성 패트릭 기사단장, 세인트 마이클 앤드 세인트 조지 기사단장, 대영 제국 기사단장, 무공 기사단장, 제국 공로 기사단장, 인도성(星) 기사단장, 인도 제국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 인도 메리트 기사단장, 버마 기사단장, 로열 빅토리아·앨버트 기사단장, 에드워드 8세 로열 패밀리 기사단장, 오더 오브 메리트 기사단장, 컴패니언 오브 아너 기사단장, 빅토리아 여왕 기사단장, 성 요한 기사단장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Queen, Defender of the Faith, Duchess of Edinburgh, Countess of Merioneth, Baroness Greenwich, Duke of Lancaster, Lord of Mann, Duke of Normandy,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Garter, Sovereign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the Bath, Sovereig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Sovereign of the Most Illustrious Order of Saint Patrick, Sovereign of the Most Distinguished Order of Saint Michael and Saint George, Sovereign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Sovereign of the Distinguished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Imperial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Most Exalted Order of the Star of India, Sovereign of the Most Eminent Order of the Indian Empire, Sovereign of the Order of British India, Sovereign of the Indian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Burma, Sovereign of the Royal Order of Victoria and Albert, Sovereign of the Royal Family Order of King Edward VII,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Companions of Honour, Sovereign of the Royal Victorian Order, Sovereign of the Most Venerable Order of the Hospital of St John of Jerusalem)'

그런데 공식 칭호는 1953년 대관식을 맞으면서 그녀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마다 각각 칭호를 제정하게 되었는데 영국의 경우 아래와 같이 변경되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13]과 그 밖의 국가와 영토[14]의 여왕, (영)연방의 원수[15], 신앙의 수호자이신 엘리자베스 2세 폐하(Her Majesty Elizabeth the Secon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er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Queen,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 이외의 다른 나라들의 칭호 및 현재 쓰지 않는 과거의 칭호들은 영어 위키백과에 있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1953년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원수로 있는 국가들은 각각 별도의 칭호를 제정해서 사용하고 있으나 영국의 칭호와 형태가 대동소이하다.

이는 영국에서의 칭호며, 현재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원수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들은 저마다 칭호를 따로 정하게 되었다. 다른 영연방 왕국에서 사용하는 칭호도 대동소이하다.[16][17]

그리고 즉위 이후에 영연방 국가들이 새로 사용할 훈장을 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단장으로서의 칭호가 덧붙여졌다.

'캐나다 기사단장, 오스트레일리아 기사단장, 뉴질랜드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밸러 기사단장, 캐나다 무공 기사단장, 캐나다 경찰 메리트 기사단장, 뉴질랜드 여왕 공로 기사단장, 뉴질랜드 메리트 기사단장, 바베이도스 성 앤드루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로거후 기사단장, 파푸아뉴기니 멜라네시아의 별 기사단장(Sovereign of the Order of Canada, Sovereign of the Order of Australia, Sovereign of the Order of New Zealand, Sovereign of the Order of Barbados, Sovereign of the Order of Valour, Sovereign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Merit of the Police Forces, Sovereig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Sovereign of the New Zealand Order of Merit, Sovereign of the Order of St. Andrew, Sovereign of the Order of Logohu, Sovereign of the Order of the Star of Melanesia)'

영국 왕립 해군의 사령장관, 노르망디 공작[18], 랭커스터 공작,[19] 맨 섬의 영주[20]이고 영국 성공회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한때 피지의 추장(Paramount Chief)이었던 적도 있는데, 이는 피지 문서의 대영관계 절을 볼 것.

2017년 현재 3개 이상의 국가의 수장[21]인 유일한 사람. 영국이 공화정이 돼도 캐나다나 뉴질랜드나 호주가서 왕 하면 된다[22] 공화주의자들이 과반수를 차지한 스페인 왕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카더라 또한 현직 국가 원수 가운데 유일한 제2차 세계대전 참전자.[23] 짧게 Elizabeth II, Her Majesty(엘리자베스 2세 여왕 폐하)로도 쓴다.이라고만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이, BBC는 영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국의 국영방송이므로 영국인들에게 '여왕 폐하'라 하면 엘리자베스 2세를 뜻하기 때문에 굳이 이름이나 어디 왕인지를 적을 필요가 없었던 듯 하다. 마치 일본인들에게 천황 폐하라 하면 아키히토를 뜻하듯이.">[24]

2.1. '엘리자베스 2세' 명칭 사용 논란[편집]

즉위 초 엘리자베스 2세의 명칭 사용에 있어 스코틀랜드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인 이유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기 때문인데 엘리자베스 1세 시기는 아직 연합왕국이 형성되기 이전이었다. 즉, 잉글랜드 입장에선 당연히 엘리자베스 2세지만 스코틀랜드 입장에선 그냥 엘리자베스[25]였던 것. 실제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별개의 국가인데 국왕만 같았던(동군연합) 시기에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구분했었다.[26][27] 한 나라가 되고서부터는 계속 잉글랜드의 넘버링만 사용되었다.[28] 그러니 격분한 것.[29]

엘리자베스 2세라는 이름에 격분한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은 공공연히 엘리자베스 2세를 부정하며 무려 1707년 연합왕국 결성 당시의 연합법까지 들먹이며 법원에 소송까지 냈으나 법원은 "국왕 명칭 결정은 국왕 특권"으로 소송을 기각하여 법적 논쟁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스코틀랜드에서의 반발은 계속되어, 공보물이나 공공시설물에 표기된 엘리자베스 2세 표기에서 '2세' 부분을 훼손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다.[30]

한편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당시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31]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어느 쪽을 채택할 것인지 타협책을 제시했다. 향후의 국왕들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 각각의 기준으로 ~~세 부분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 둘 중 숫자가 높은 쪽을 선택하게끔 한 것. 이 원칙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뿐만 아니라 그 동안 그냥 잉글랜드의 넘버링을 따르고 스코틀랜드의 것은 무시했던 윌리엄 4세에드워드 7세에드워드 8세의 넘버링까지 합리화되었다. 1타 4피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 역시 잉글랜드 쪽의 숫자가 크기 때문.[32] 나머지 역대 영국 국왕들은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하든 스코틀랜드로 기준으로 하든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하거나,[33] 양국 간에 동군연합이 성립(1603년)되기 이전에 양국에서 따로 모시던 군주들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34]

타협책도 나온 데다가 무한정 이 문제만 붙잡고 있을 순 없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스코틀랜드인들의 반발은 일단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수시로 엘리자베스를 스코틀랜드에서만 그냥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더불어서 여왕을 부르는 폐하에 해당하는 용어가 현재는 Your Majesty(2인칭)과 Her(남자 국왕일 때는 His) Majesty(3인칭)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건 헨리 8세 때 확립된 잉글랜드의 관습이고[35] 스코틀랜드는 줄곧 Your/His/Her Grace라고 했으므로,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관습대로 Your/Her Grace라고 불려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있다.[36] 물론 왕실은 계속 그 요구에 대해 계속 답을 하지 않고 기존 관례(즉 헨리 8세 이후 잉글랜드에서 쓰기 시작한 관례)를 쓰고 있다.

만약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가 가결됐으면 다시 이 이야기가 거론되었을 것이다. 투표에서 Yes(스코틀랜드 독립)이 다수로 결정되면 엘리자베스 2세를 여왕으로 하는 입헌군주국으로서 독립할 예정이었다(즉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는 형태로). 정말 독립하게 됐으면 엘리자베스 2세는 스코틀랜드에서 별도의 칭호를 쓰게 될 테니까 스코틀랜드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것이다.[37] 하지만 독립이 부결돼서 그 문제는 따로 논의될 새가 없었고 앞으로도 이게 거론되긴 힘들 듯하다.

혹시 향후 영국이 군주제를 죽 유지하고, 스코틀랜드가 영국에 남거나 독립된 군주국이 된 상태에서 케임브리지 공작 윌리엄 왕세손이 즉위할 경우 다시 이 넘버링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 윌리엄 왕세손은 윌리엄 5세[38]로 즉위할텐데,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4세가 돼야 한다고 태클이 들어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런 주장을 할 사람들은 아마 19세기의 영국[39] 국왕 윌리엄 4세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윌리엄 3세로 추존[40]돼야 한다는 주장을 같이 펴게 될 듯하다. 영국 왕 윌리엄 4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윌리엄 3세가 돼야 현 윌리엄 왕세손이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4세가 될 수 있으니까.

3. 여왕으로서의 삶[편집]


입헌군주제가 이미 확립되어 근대 정치가 다 잡힌 상태에서 즉위하였기 때문에 정치 권력은 전무함에 가깝다. 게다가 본인도 이점을 생각해서 정치에 관해서는 발언 한마디 안하는 성향이 있어 현대 왕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심지어 1965년에 거행된 윈스턴 처칠의 국장 이외에는 40년 가까이 총리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다가 2013년 마가렛 대처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할 정도. 그래서 그런지 영국 국민들의 평가가 매우 높은 편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정치 불화가 없는 선에서는 국정에도 일부 관여하고 있어 실은 영국을 움직이는 흑막 같은 모습도 보여주곤 한다. 예를 들면 전쟁 등의 민감한 사안의 경우 여왕의 승인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물론 여왕이 이를 거부한 적은 한번도 없긴 했지만 불만을 표시한 적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영국 총리들의 중요한 정치적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여왕을 알현하여 보고서를 올리는 것인데 이 역시도 에피소드가 많다. 윈스턴 처칠은 친한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시가를 피우면서 대담하는가 하면, 마가렛 대처가 왔을 때는 대처가 자신을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15분쯤 기다리게 했다. 포클랜드 전쟁 때 마가렛 대처의 전쟁 준비안을 승인한 뒤에 "내 아들이 이번 전쟁에 참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솔직히 내키지는 않았다. 그녀(대처 여사)가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말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자식을 전쟁터로 보내는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 야사 같은 이야기지만 대처의 신자유주의정책 등 정책 전반이 내키기 않아 아침마다 "오늘은 그녀가 얼마나 내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했는가?"라고 씹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래도 미운정이라고 2013년 4월 17일 엄수된 대처의 장례식에 처칠 이후 처음으로 왕실자격으로 참석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처음으로 여왕을 알현했을 때 "총리직을 맡게 되신 걸 축하합니다. 저는 12분의 총리를 만났지만요"라고 말해 캐머런을 쑥스럽게 만들었다고.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ATS(Auxiliary Territorial Service, 2차대전 당시 영국 육군 여군부대)에서 중위(subaltern)로 입대해 대위(junior commander)[41]로 진급하였다. 임무는 보급차량 운행이었다. 이 때문에 여왕이 2차대전 때 일개 운전병으로 참전한 것으로 와전되기도 한다. 활동한건 약 3주 정도였지만 2016년 현재 생존한 국가원수들 가운데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유일하다. 이 때문에 2009년에 열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65주년 기념식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초대하지 않아 여왕이 격노하고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나는 등 외교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노르망디에서 죽어나간 건 미국군과 영국군이었다. 당시 국가원수 중 유일한 참전용사이자 영국군의 총 사령관인 엘리자베스 2세를 초대하지 않는 행위는 그야말로 큰 결례. 비난 받는 가운데에도 사르코지는 정신 못차리고 "오는 건 환영하지만 노르망디 기념식은 전통적으로 미국-프랑스 간의 행사다"라는 발언을 해서 더욱 어그로를 끌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이 중재를 해서 어쩌어찌 넘어가긴 했지만, 여왕은 자신이 가는 대신 찰스 왕세자를 보냈다. 일단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집권기인 2014년의 D-Day 70주년 기념식에서는 참석했다.

또 하나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해외에 나간 상태에서 왕이 되어버린 국왕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가 암투병 도중 사망했을 때 자신은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냐를 방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로 자고 일어나니 여왕이 된 케이스. 엘리자베스 2세가 묵었던 트리탑 호텔(Treetop Hotel, 실제로 나무 위에 객실을 만든 호텔이다)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다. 여기에는 '공주로 올라가서 여왕으로 내려오다'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도 걸렸다. 주변에 야생동물이 많아서 전설적 사냥꾼이자 자연보호운동가 짐 코벳 육군대령이 밤새 잠도 안자고 경호를 서준 것도 유명한 일화.

 

 

 

윈저성 대화재(1992.11.20)[42]

의회개원식에서 제국왕관을 쓴 여왕

이후 1992년에 발생한 윈저성 대화재의 복구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것이라 추산되어 국민들의 반발이 있자 스스로 왕실이 가진 면세 특권을 포기하는 초 대인배적인 모습까지 보여줘 반발하던 여론을 한방에 잠재웠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다. 때문에 그 이후로 영국 왕실은 지금까지 계속 납세의 의무를 지고 있다. 진짜 대인배다.[43]

맏며느리였던 다이애나 스펜서와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여왕을 비난하는 여론이 종종 나왔고, 다이애나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직후 차가울 정도로 무관심하게 대응하자 급기야는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소리까지 터져나오기에 이르렀다.[44] 지금은 잠잠한 상황이지만 이때의 불씨가 아직도 잠복중이라서 영국의 공화주의자들도 여왕이 타계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1999년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 주요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여왕을 '호주의 군주'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헌법을 바꿔 공화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운동 끝에 국민 투표가 실시되었다. 선거 결과는 54.87% vs 45.13%로, 대다수의 호주 국민들이 왕정 존속을 선택해 호주의 군주직을 유지하게 됐다. 당시 공화정 전환 운동의 지도자였던 말콤 턴불은 이후 공화정 전환 운동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여러 정치활동을 거쳐 2015년 결국 호주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호주 국민들의 여왕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총리 당선 이후 계속되는 공화주의자들의 압박에도 공화정 전환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여왕이 만약 가까운 시일 안에 타계할 경우 말콤 턴불 총리가 호주 왕정 유지에 불안 요소가 될 것이라는 예측도 많다. 또한 호주의 공화정 국민 투표의 여파가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등 다른 영연방 왕국들로 퍼졌다. 해당 국가들의 여론 조사 등을 봤을 때 여왕 사후 왕위 계승의 향방에 따라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제 폐지 여부가 결정될 확률이 높다.[45]

이와는 별도로 2010년대 들어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400년간 이어온 연합왕국의 왕관이 자기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2년 10월, 영국 정부와 스코틀랜드가 2014년 분리 독립 투표를 시행하기로 합의하면서 여왕의 우려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2014년 투표를 앞두고 영국 정가에서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에게 "앞으로 잘해줄테니까 제발 남아줘요"하며 읍소하고 있으며 여러 정치인들은 여왕에게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개인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독립 문제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선택에 따라야 한다며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46]

4. 가족관계[편집]

 

 

여왕 부부

마운트배튼 백작과 여왕

 

 

 

장남 찰스(1948~ )

차남 앤드루(1960~ )

3남 에드워드(1964~ )

 

여왕의 손자 2명과 증손자 5명과 함께 촬영한 90세 생일 기념사진. 여왕이 안고 있는 아기는 샬럿.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참고.

오점이 있다면 그 놈의 자식들인데(…),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영국 왕실 스캔들이 여왕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나올 정도로 자식농사는 다 말아먹은 것 같다(…). 그래도 아들이나 손자가 간간히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기사가 나오는 걸 보면 아주 희망이 없는 건 아닐지도. 남편인 에든버러 공 필립 마운트배튼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 손자녀, 증손자녀는 엘리자베스 2세/가족관계 항목 참조 바람.

더불어 북아일랜드에서 피의 일요일이라 불리는 1972년 1월 31일 일요일 비무장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가해자인 영국 군인들에게 훈장을 수여한 사건도 오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때문에 숙부이자 2차대전 당시 영국 해군원수였던 마운트배튼 백작 (1900 ~ 1979 , 필립 마운트배튼이 아니다!)이 IRA의 보복 폭탄 테러로 끔살[47]당하는 일도 겪어야 했다.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 공은 영국 해군 대위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48], 문제아 취급을 받는 장남 찰스 왕세자도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1971~1976년까지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둘째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는 해군 헬기 조종사로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했으며, 셋째 웨식스 백작 에드워드는 해병대 장교로 복무. 그리고 찰스 왕세자의 장남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은 군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 육·해·공군을 순회한 후 공군 구조헬기 조종사로 복무 중이다.[49] 남동생 해리 왕자도 근위대 블루스 앤드 로열스 기병연대 소속으로 아프간에 파병되어 일선에서 전투소대장 임무를 완수하고 헬기 조종사 양성 코스를 수료했다. 국방부에서는 "해리 왕자 때문에 다른 전우들이 위험해진다"면서[50] 반강제로 귀국시켰지만, 그후 다시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AH-64 조종사로 군복무 중이다. 2012년 9월 14일(현지시간)에는 탈레반이 해리 왕자를 죽이기 위해 그가 있는 기지에 공격을 가했으나 무사했다.해리 왕자 대신 수많은 미/영국군 인명/재산 피해가 난 것은 안 자랑 군대 안 가면 또 지랄거릴 거잖아

이렇듯 왕실 구성원 중 남성 전원이 군복무를 완료했거나 수행 중인 멋진 나라다. 그런데 신분이 신분인지라 일반병으로 복무하지는 않고 전원 장교로 복무했다.[51]신병 받았는데 왕자면 내무반 분위기 아작나니 아예 장교로 넣어주는 센스

엘리자베스 2세까지는 영국 왕족의 성씨가 윈저(Windsor)이고[52] 윈저 가(House of Windsor)의 일원이다. 하지만 그녀와 남편 필립공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둘의 성을 합쳐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를 성(surname)으로 쓰게 되는데,[53] 왕가의 이름(family name)은 성과 구분해서 이전과 마찬가지로 윈저 가(House of Windsor)에 속하는 것으로 하도록 규정되었다. 보통 surname=family name=성씨이지만, surname과 family name을 구분한 특이 케이스에 속한다.[54]

5. 이야깃거리[편집]

여왕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꽤나 자주 영국의 부자스타들의 재력 측정기가 되곤 한다. 예를 들어 폴 매카트니는 전재산이 여왕보다 많다던지 J. K. 롤링의 재력이 세계 555위로 여왕보다 높다고 하는식으로 자주 이름이 거론된다.

 

 

영국의 얼굴마담(?)으로 해외를 종종 국빈 방문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으로 1999년 4월 19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당시 여왕은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서양에서는 발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데, 좌식생활을 하는 한옥에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하기 때문. 신발을 벗자마자 외신 기자들이 미친 듯이 플래시를 터뜨린 반면 한국 기자들은 '뭥미? 쟤들 왜 그럼?' 이랬다고. 문화의 차이. 마침 방문 날짜가 4월 21일이라서 간 김에 73회 한식 전통 생일상도 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는 안동 하회마을에서 3박4일 일정으로 사용할 의전 차량으로 쌍용 체어맨을 선택했다고한다. 

하지만 환영만 받는 건 아니라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를 방문하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인도 공화국을 방문했을 때는 일부 인도인들이 야유하며 식민지 시절 자행된 학살과 약탈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영어로 '영국의 위대한 암캐 여왕'이라 적힌 걸개를 들고 가는 곳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기도 했다. 인도 정부는 이들을 물론 처벌 하지 않았고, 영국 언론은 인도가 변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1970~80년대만 해도 여왕이 인도를 방문하면 인도는 식민지 시절 그대로 꿈쩍도 못 했고, 인도도 국력이 강해지면서 식민지배의 앙금을 풀게 된 것이다.

과격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영국 왕실 전체가 기생충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영국에서도 왕정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일례로 가디언지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식 기사를 인터넷에 올리고는 "For republican"이란 단추를 만들어 이 기사가 눈에 안보이도록 하는 편집방식을 취하기도 했다. 다시 여는 것은 "근왕파" 단추. 하지만 동시에 결혼식날 파업을 한다고 "저런 반역도당" 같은 반응이 나오는 나라가 영국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왕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문제 때문에 저런 비아냥을 듣는데, 여왕이 빈민 구제기금을 왕실 열병합 발전설비 보수비로 사용하려다 정부가 반발 여론을 의식해 거부한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가 하면 2012년에는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여왕에게 6,000만 파운드(약 1,050억 원)짜리 새 왕실 요트를 헌정하자는 제안이 나와 논란이 벌어졌다. 게다가 이 제안을 한 사람은 마이클 고브 교육장관인데,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영국 정부가 학교 예산까지 긴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비난이 심했다. 이후 2016년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다시 왕실 요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영연방 국가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1976 몬트리올 올림픽 개회식(1976.7.17)

2012 런던 올림픽 개회식(201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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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제임스 본드와 함께 낙하산을 타고 행사장에 강하해서 개회 선서를 했다.[55]

2012년 7월 27일, 증조부 에드워드 7세가 1908 런던 올림픽을, 아버지 조지 6세가 1948 런던 올림픽을 개회한 것에 이어 여왕도 1976 몬트리올 올림픽.[56]2012 런던 올림픽을 개회했다. 또 1956 멜버른 올림픽은 여왕을 대신해 부군 필립 마운트배튼이 개회한 적이 있다. 그러나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영연방 국가에서 열린 3번의 올림픽 즉 1988 캘거리 동계올림픽2000 시드니 올림픽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여왕이 아니라 총독이 개회했다. 이들 영연방 국가들이 같은 군주를 모시지만, 엄연한 독립국으로서의 면모가 강화되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3년 4월 8일, 영국의 前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의 사망에 큰 슬픔을 드러내며 유족에게 조의를 표했고, 대처의 장례식을 국장보다 한 단계 낮은 군장 규모로 치를 것을 명했다.[57]

인터넷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시절인 1976년 3월 26일에는 이메일을 최초로 보낸 군주로 기록됐으며, 2014년 10월 24일에는 트위터에 생애 첫 트윗을 올렸다.

2015년 6월 3일, BBC 기자의 실수로 여왕이 사망했다는 글이 트위터 계정에 올라왔다가 삭제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여왕이 고령이다보니 영국 사회가 여왕의 승하를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2016년 12월, 독감에 걸린 여왕이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예배와 신년 예배에 불참해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었으나 2017년 1월 8일 2주만에 왕실 가족과 함께 예배에 참석해 우려를 불식시켰다.

 

 

 

 

관용차로는 특수제작된 벤틀리를 탄다.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이라고 불린다.

2015년 7월 18일, 1933년 어린 엘리자베스 2세가 나치식 경례를 하는 영상이 발굴되어 화제가 되었다. 물론 나치식 경례가 금기 중의 금기이지만, 그때는 나치가 악의 축 낙인이 찍히고 스바스티카가 악의 상징이 되기 전이다[58]. 무엇보다 엘리자베스 2세는 겨우 7살이었고 엘리자베스 2세는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친나치 행보가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영상에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례를 시키는 사람이 에드워드 8세이기 때문이다.

2016년 6월 11일, 여왕의 생일 공식 기념 행사에서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 나온 왕실 가족이 시민들의 축하를 받을 때 왕세손이 아들 조지와 놀아주면서 앉아 있자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일어나라고 핀잔을 주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되었다.(#)

2016년 3월 9일더 선이 해당 일자 신문 1면에 '여왕이 브렉시트를 지지한다'고 기사를 내자 버킹엄 궁전측은 지난 63년 동안 여왕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며 해당 기사를 독립언론윤리위에 제소했다. #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전인 2016년 6월 21일, 여왕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동석한 사람들에게 영국이 유럽연합에 잔류해야 할 이유 세 가지만 대보라고 질문했다고 왕실 전기 작가 로버트 레이시가 밝혀 논란이 벌어졌다. # 레이시는 해당 질문이 여왕의 통상적인 토론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뿐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은 상황. 게다가 브렉시트를 지지했다는 설이 꾸준히 오르고 있는 상태이다.#

  • 2017년 1월 현재 영국 내 황색 언론들 사이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가 브렉시트를 지지하였으며 이를 실제로 언급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국가 현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것과 대비되게, 이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비공식 석상에서라도 표출하고 이것을 전기작가가 누설한 이유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다. 현재 영국 황색 언론들 사이에서 나오는 가장 유력한 이론은 엘리자베스 2세가 영연방 국가들과 영국의 관계는 물론 영연방 자체가 자신의 사후 흔들릴 것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영국의 황색 언론 중 하나인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데일리 메일의 왕실 소식통은 "현재 여왕 사후 왕위 계승 1위 후보인 찰스 필립 아서 조지는 오래 왕위에 있지 못할 것이고, 이후 2위 후보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가 왕좌에 앉을 것이 분명하다. ... 그는 EU 체제 내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연방 왕국을 유지하는데 그의 할머니 만큼 열성적이지 못하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즉,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의 유럽 연합 탈퇴와 영연방 복귀 없이는 자신의 사후 영연방이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을 구하기 위해 브렉시트를 지지했다고 한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내각 당시 부총리를 역임한 영국 자유민주당 정치인 닉 클레그의 주장에 따르면, 2011년에 이미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의 유럽 연합 잔류와 이로 인한 영연방의 약화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59] 다만 이건 닉 클레그 개인과 익명의 왕실 소식통의 주장일 뿐이며, 영국 왕실의 공식적 입장은 절대로 아니다.


1999년 호주 공화정 전환 국민 투표와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 등으로 지위에 위기를 맞기도 했으며, 브렉시트 이후 스코틀랜드의 불안정이 다시 지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영국 파운드와 영국 속령에서 사용하는 지폐의 모델이다. 또한 호주 달러와 캐나다 달러, 뉴질랜드 달러 지폐와 동전의 모델이다.

여기로 가보면 종류별로 다 있다. 심지어는 어린시절 사진이 지폐모델이 된 것도 있다.

6. 장수만세[편집]

6.1. 영국 역사상 최장수 & 최장재위 군주[편집]

파일:vS6DaTd.jpg

"'하느님,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하느님은 내게서 저들을 지켜야 할 거다.

살아있는 역사요 전설. 아직도 정정하시다(…). 2017년 현재 90세이며[60] 재위기간은 65년째로, 영국 역사상 가장 장수한 군주이자 가장 재위기간이 긴 군주다. 2015년 9월 9일 오후 5시 30분이 경과함에 따라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63년 216일 16시간 30분을 경신 하게 되었다. 여왕은 이 날을 기념하는 특별한 행사 없이 에든버러 인근에서 열린 열차 노선 개통식에 참석한 후 왕세손 부부와 저녁 만찬을 가졌고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지난 63년간 끊임없이 변화하는 버팀목이 되어줬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현재 생존한 군주들 중에서는 2016년 10월 13일 태국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이 재위 70년 126일로 사망하고 , 2015년 1월 23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국왕이 향년 91세로 사망함에 따라 2016년 기준으로 생존한 군주 가운데 최고령이자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되었다. 2017년 2월 6일 재위 65주년 사파이어 주빌리를 맞았다. 서구 군주 가운데서는 소국의 제후(그것도 1명)을 제외하고는 최장수한 빌헬름 1세의 만 91세를 1년 앞으로 두고 있으며, 역시 근대 이래 가장 오래 재위한 프란츠 요제프 1세(만 68년 재위) 다음으로 오래 재위한 서구의 (대국) 군주이기도 하다. 만약 10년만 더 살아서 재위 72년을 경신한다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래 즉위한 루이 14세의 기록을 갈아치울 수도 있다. 여왕의 모후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대비가 102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주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왕이 96세가 되는 2022년에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를 거행할지도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근대 이래 여든을 넘긴 60년 이상 재위한 5명의 (대국) 군주 가운데 한 명인데, 나머지 넷은 거론된 빅토리아, 푸미폰, 프란츠 요제프, 그리고 히로히토가 그들이다. 근대의 범위를 넓히면 청나라의 건륭제도 들어가게 된다. 8060클럽 2014년부로 만 88세에 다다르면서 히로히토보다 장수하게 되었고, 재위기간도 넘겼다.

이 때문에 2002년에는 즉위 50주년을 기념하는  희년(골든 주빌리) 행사[61]가 있었고, 2012년에는 즉위 60주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희년(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거행되었다. 2013년에는 초상화가 들어간 즉위 60주년 기념우표가 발행되었는데 여왕이 아니라 마가렛 대처를 닮았다는 구설에 올랐다.

 

찰스에게 양위하라고? 그럴 생각 없거든? 어림없는 소리!
어머니 제발요, 이러다 죽는다고요!

한때 즉위 60주년 되는 해인 2012년에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여왕 본인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한다. 전임 국왕이 사망해야 후임자에게 왕위가 승계되는 영국 왕실의 전통도 있거니와, 여왕의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남동생 조지 6세에게 양위한 것이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린 행위라고 비판받는 걸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기 때문. 아흔을 바라보는데도 매우 건강한데다 모후인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왕대비는 101세까지 장수했기에 찰스 왕세자의 즉위가 한참 멀어보인다. 2016년 90세 생일을 맞았을 때 왕실 전기작가 휴고 비커스는 같은 90살이었을 때의 엘리자베스 왕대비보다 더 건강해보인다며, 왕위 승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2007년에는 필립 공과의 결혼 6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는데 영국 군주정 역사에서 가장 긴 결혼 생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런데 막내아들 빼고는 자식들이 죄다 이혼하는 통에 부모 금슬에 먹칠 2011년 6월 10일에는 필립 공의 90세 생일이 있었다.

이렇듯 장수하다 보니 찰스 다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왕위를 계승 중...안되잖아?! 여왕 즉위 후 거쳐간 역대 총리가 윈스턴 처칠앤서니 이든, 해럴드 맥밀런, 앨릭 더글러스흄, 해럴드 윌슨, 에드워드 히스, 제임스 캘러헌마가렛 대처존 메이저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데이비드 캐머런테레사 메이까지 13명에 달하며 특히 토니 블레어는 1953년이라서 여왕 재위기간 중 태어나 총리가 된 첫 사례. 고든 브라운은 1951년생으로 빗겨나가고 캐머런은 말할 것도 없다. 메이 역시 1956년생으로 재위기간 중에 태어났다.

또한 재위중 만난 미국 대통령 역시 무려 11명(…)[62]

2012년 6월 4일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이 퇴위한다거나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를 건너뛰어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이 즉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여왕이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하고 찰스와 카밀라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63] 1971년의 첫 회의를 제외하면 여왕이 영연방 정상회의에 불참한 적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주장을 나오는 데 한몫했다. 2013년 7월에는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가 출산 예정일을 넘겼는데도 출산 소식이 없자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으니 내가 휴가 떠날 23일 전에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7월 22일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가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세증손을 순산함에 따라 3대 뒤에 왕이 될 증손자까지 보게 되었으며, 이와 같은 기록은 빅토리아 여왕 재위 중인 1894년에 에드워드 8세가 태어난 이후 119년만의 일이다. 2015년 5월 2일에는 캐서린 왕세손빈이 샬럿 엘리자베스 다이애나 공주를 순산함에 따라 외동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이후 25년만의 로열 프린세스도 보게 되었다.

여담으로 고구려의 장수왕도 하도 오래 즉위한지라 (79년) 태자가 그보다 먼저 죽었다.(다만 장수왕의 재위기간은 논란이 많은 편) 따라서 장수왕의 후계자인 문자명왕은 그의 손자였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찰스 안습 2010년대에 들어와 바티칸네덜란드카타르벨기에스페인일본 등 세계 각지의 군주국에서 국왕이 후계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나거나 물러날 예정이라 엘리자베스 2세도 동일한 수순을 밟을 지가 관심사지만 아직까지는 양위에 대한 언급이 없다.

6.2. 재위 60주년, 다이아몬드 주빌리[편집]

 

엘리자베스 2세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공식 초상사진

2012년 2월 6일부로 재위 60주년(다이아몬드 주빌리)을 맞았는데 이는 고조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가 거행된 1897년 이후 115년만의 경사.관련기사 여왕은 영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과 공화주의자들의 반발을 고려해 가급적 기념행사의 규모를 축소해서 낭비를 줄이려고 하지만, 정부에서는 2012 런던 올림픽 개최와 맞물려 관광객을 대거 유치할 수 있는 호기로 보고 각종 행사를 준비했다.

2월 3일, 100만 그루 나무 심기 캠페인에 참석해 첫 번째 나무를 심는 것으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시작했다. 2월 6일은 60주년 당일이지만 부왕 조지 6세의 기일이기 때문에 행사가 간소하게 진행되었다. 이날 노퍽 주의 소도시 킹스린과 샌드링엄 및 인근 학교를 방문한 여왕은 어린이와 시민들을 만나 축하를 받았으며, 즉위 60주년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데 다시 헌신하겠다"고 밝혔다. 런던 하이드 파크와 에든버러, 고스포트에서는 축포를 쏘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여왕의 통치에 존경을 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월 8일,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에서 여왕을 찍은 사진 1백점이 4월 22일까지 전시된다. 2월 15일, 여왕과 필립 공이 참석한 가운데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의 공관인 램버스 궁전에서 다종교 지도자들이 함께한 즉위 6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렸다.

3월 10일임시공휴일로 지정된 6월 본행사를 앞두고 주빌리투어 일정을 시작했다. 이 여행은 오는 7월까지 와이트 섬, 버밍엄, 머서티드빌, 에든버러 등을 거칠 예정이다. 남편과 손자며느리를 대동한 여왕이 제일 먼저 방문한 도시는 레스린으로, 이를 기념해 도시의 광장을 주빌리 스퀘어로 개칭하고 여왕이 참관한 가운데 명판 제막식을 가졌다. 여왕 일행은 드몽포르 대학에서 학생들이 연 패션쇼를 관람한 후 레스터 성당에서 열린 감사성찬례에도 참석했다. 3월 20일의회를 방문해 재위기간 동안의 감회를 밝히는 연설을 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헌신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와 더불어 영국적인 덕목으로 복원력, 창의력, 관용성 등을 예찬한 여왕은 영국군의 희생과 용기, 영연방 내 우호관계 증진 등을 강조했다. 이날 영국 의회는 여왕의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의원들의 사비를 모아 1,500 조각의 유리로 왕실 문장을 나타낸 스테인드글라스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공개했다. 한편 왕세자와 콘월 공작부인이 주빌리투어의 일환으로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을 순방하기 위해 이날 출국했다. 3월 23일, 영국 역사상 즉위 60주년을 맞은 국왕은 빅토리아 여왕과 엘리자베스 2세뿐이며 영국 국회의사당 서쪽에 빅토리아 타워가 있는 만큼 그동안 영국을 위해 헌신한 엘리자베스 2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3월 24일, 주빌리 투어로 맨체스터를 찾은 여왕 부부가 한 서민 커플의 결혼식에 깜짝 참석해 부부와 하객 모두를 놀라게 했다. 평소 왕실의 열렬한 팬이었던 존 캐닝이 버킹엄 궁전에 청첩장을 보냈지만 당연히 거절되었는데, 마침 그의 결혼식날 주빌리투어 공식 일정으로 맨체스터를 방문한 여왕 부부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는 결혼식장을 찾은 것.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4월 16일, 장녀 앤 공주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3일간 방문했다. 4월 19일,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로 어린이 20만명이 그린 자화상이 여왕의 초상화와 함께 버킹엄 궁전 정면에 3일간 영사된다. 4월 26일3남 에드워드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여기서 에드워드 왕자는 고조부 에드워드 7세가 152년 전 왕세자 시절에 방미해 2그루의 나무를 기념식수했던 필라델피아 지라드 칼리지(Girard College)를 찾았다.

5월 2일, 차남 앤드루 왕자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인도 공화국을 이틀간 방문했다.

5월 10일17개국에서 온 550두의 말과 1,200명의 무용수들이 참가한 윈저호스쇼가 왕실의 성원하에 13일까지 개최되었다. 여왕 부부가 참석한 폐막식에는 스코틀랜드 출신 수잔 보일과 호주의 유명 연예인 롤프 해리스의 공연이 있었다. 5월 14일, 마담 투소 박물관이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새로 제작한 여왕과 필립 공의 밀랍 인형을 공개했다. 5월 17일, 1952년 즉위한 이래 현재까지의 여왕을 주제로 한 60점의 회화 작품이 선보이는 'The Queen: Art & Image'전이 영국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10월 21일까지 열리는데, 김동유 교수가 아시아 작가로는 유일하게 초대되었으며 다이애나비의 사진 1,106개로 여왕의 얼굴을 완성한 사진을 출품했다.


5월 18일세계 각지의 군주국 왕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이아몬드 주빌리 기념 점심 만찬이 윈저성에서 열렸고, 저녁에는 찰스 왕세자가 주최하는 만찬이 버킹엄 궁전에서 열렸다. 사진에 등장하는 왕족들은 다음과 같다.(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볼드체는 당시 촬영 시점 기준으로 현직 국가원수.

같은 날 버킹엄 궁전 앞에서는 바레인 국왕이 행사에 초청된 것을 규탄하는 인권단체들의 시위가 있었다. 그가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독재로 국민을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5월 19일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하는 군대의 열병식이 윈저에서 열렸다. 5월 21일찰스 왕세자 부부가 주빌리 투어로 4일간 캐나다를 방문한다.

다이아몬드 주빌리의 본격적인 행사는 임시공휴일인 6월 2일부터 6월 5일까지 나흘간 열린다.(관련기사) 이 기간 동안 들어가는 행사 비용은 세금을 포함해 1,200만 파운드(약 216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영연방 15개국에서는 2,012개의 기념등을 밝히는 행사를 개최한다.

임시공휴일의 첫날인 6월 2일영국 최고 권위의 경마대회 '엡섬 더비(Epsom Derby)'가 개최되어 여왕과 왕실 가족이 관전했다. 엡섬 더비의 개막을 통해 나흘간의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대회에는 경마팬인 여왕의 경주마도 출전했다.

6월 3일, 왕실이 국민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는 빅 런치가 열려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의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한턱 쏘신 여왕님 찰스 왕세자 부부도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를 방문해 시민들과 함께 축하했다. 이번 거리 파티를 위해 영국 주요 도시에서 9,500건의 거리 폐쇄 신청이 허가되었다. 또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포함한 331명의 의원들이 영국 국회의사당의 빅 벤을 '엘리자베스 타워'로 개명하는 캠페인에 서명했는데,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기념해 의사당 건너편 광장의 타워를 '빅토리아 타워'로 개명한 전례를 따랐다고. 템스강에서는 여왕 부부와 왕실 가족이 첼시 부두에서 로열 바지선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에 승선한 가운데 대규모 수상 퍼레이드가 열렸다. ## 스피릿 오브 차트웰 호는 해군 함정과 영연방 53개국에서 온 선박 및 9백여 척의 민간 선박 등 도합 1천여 척의 호위선을 거느리고 템스강 서쪽 배터씨 브리지에서 출발해 동쪽 타워 브리지까지 11km 구간을 90분간 항행했으며, 비가 오는 날씨에도 150만명의 군중이 강변과 다리에 운집해 35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수상 퍼레이드가 거행되었는데, 왕실 가족이 외부에 장시간 노출되기 때문에 경호선 190척과 경찰 5,500명이 현장에 투입되었다. 한편 영국의 소도시 글로스터에서 중세부터 이어진 관례에 따라 자기 고장의 전통음식인 칠성장어 파이를 2002년 골든 주빌리(즉위 50주년) 때와 마찬가지로 여왕에게 선물로 보냈는데 글로스터산 칠성장어가 급감하면서 미국와 캐나다의 오대호에서 수입한 칠성장어로 파이를 만들어 논란이 벌어졌다.

6월 4일, 여왕의 부군인 에든버러 공 필립 마운트배튼이 전날 있었던 수상 퍼레이드 참석 후유증으로 급성 방광염 증세를 보여 런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 입원했다. 비가 오는 날씨에 2시간 가까이 선 채로 있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를 비롯해 5일에 열리는 세인트 폴 대성당 기념 감사성찬례와 거리행진에 필립 공은 불참하지만 여왕은 공식 일정을 그대로 소화할 예정이다. 버킹엄 궁전 앞에서 로비 윌리엄스.윌.아이.엠, 제시 제이, JLS, 게리 발로, 셰릴 콜, 클리프 리처드, 랑랑, 알피 보, 줄스 홀랜드, 루비 터너, 그레이스 존스, 에드 시런, 애니 레녹스, 러네이 플레밍, 톰 존스, 셜리 베이시, 카일리 미노그엘튼 존스티비 원더매드니스폴 매카트니 등이 공연한 대규모 야외 콘서트가 성황리에 열렸다. 한편 영국 전역과 영연방 국가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4,180개의 횃불을 밝히는 행사가 열렸다. 횃불 점화는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40주년과 60주년 때의 행사를 재연한 것으로 오후 10시에 첫 점화가 시작되어 버킹엄 궁전 앞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주빌리 콘서트에 참석한 여왕이 마지막 횃불을 점화히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6월 5일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2천의 인사가 함께 한 기념 감사성찬례를 마친 여왕과 왕실 가족은 근위대와 기마대, 군악대의 호위를 받으며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버킹엄 궁전까지 마차로 행진했으며, 트라팔가 광장부터 궁전 앞의 더 몰(The Mall)까지 모인 군중은 약 150만으로 추산되었다. 이밖에도 길드홀에서의 리셉션과 웨스트민스터 홀에서의 점심 만찬이 있었다. 나흘간 이어진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는 여왕이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축제 기간 동안 아낌없는 환호와 축하를 보내준 군중들에 대한 답례를 하고 영국 공군기가 궁전 상공에서 공중 분열식을 펼치는 것으로 대단원을 막을 내렸다.관련기사 이 날 여왕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 방영된 대국민 연설에서 '나를 겸허하게 만든 경험'이었다며 국민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왕이 대국민 연설을 한 것은 1997년 다이애나비의 교통사고 사망 이후 15년만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린 동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영 양국은 오랜 기간 특별한 관계 속에서 역경도 있었지만 항상 동맹을 유지했으며, 여왕은 이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라고 축하했다.관련기사

6월 26일,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이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북아일랜드를 이틀 동안 방문했다.

9월 11일왕세손과 캐서린 왕세손비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솔로몬 제도오스트레일리아 등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국가를 10일간 방문했다.

11월 4일왕세자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가 주빌리투어 일정으로 파푸아뉴기니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오세아니아의 영연방 국가를 13일간 방문했다.

7. 대중매체속 묘사[편집]

7.1. 영화[편집]


현재 나온 미디어 매체 중 엘리자베스 2세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 있다면 바로 2007년의 더 퀸(The Queen). 영국 출신의 여배우 헬렌 미렌이 여왕 역을 맡아 토니 블레어의 취임부터 며느리인 다이애나비의 장례식까지의 여왕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냈다. 여왕의 노동당과 다이애나에 대한 반감이 포인트로 블레어의 설득으로 결국엔 텔레비전 생방송으로 다이애나에게 보내는 추도사를 읽었다. 이 영화로 배우 헬렌 미렌은 2007년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


애니메이션 카 2에선 롤스로이스 팬텀(Phantom) 1세대 모델로 등장. 성우는 영국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Vanessa Redgrave)이다. 월드 그랑프리 영국 레이스에 참관하는데 시한폭탄이 장착된 메이터가 바로 앞에 난입하는데도 상황을 지켜보자며 여유를 부리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건이 해결된 이후 메이터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한다. 검 대신에 느릿느릿 뽑히는 안테나를 사용하는 모습이 웃음포인트.

영화 2012에서는 애완견 두 마리를 데리고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과 함께 방주에 허겁지겁 탑승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유전자 다양성이 아니라 돈을 보고 태운거 아니냐고 폭풍 까인다

킹스 스피치에도 등장. 다만 아역.


애니메이션 미니언즈에서도 나온다. 영화의 배경이 1968년도라 젊은 시절 모습으로. 사실 젊다는게 지금보다 젊다는거지 일반적인 젊음이 아니라 40대가 넘은 아주머니였는데 저렇게 표현 전투력이 대단하다(...).

영화 킹스맨에선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발렌타인의 계획에 영국 왕실과 함께 전원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영화 유스의 막바지에 에든버러 공과 함께 등장하여 심플송을 듣는다.

7.2. 드라마[편집]


달렉의 눈이 꺼져있다

영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여왕은 영국 드라마 닥터후의 올드 시즌을 재미있게 시청했다고 하며, 지금은 닥터후 뉴 시즌을 본다고 한다. 영국 최강 후비안 이러한 점 때문인지 닥터후에 등장한 적도 있다. 제작자들은 실제로 여왕을 등장시키려고 한적도 있었다고 하나 결국에는 불발.

여기서는 닥터후 뉴 시즌을 기준으로 정리했다.

뉴 시즌 2 에피소드 8 "바보 상자(The Idiot's Lantern)"에서는 여왕의 대관식이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 전역으로 생중계되는 것을 이용해 인간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려한 외계인이 나오는데, 이 때 등장한 여왕의 영상은 1953년 6월 2일에 거행된 실제 대관식을 촬영한 것이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크리스마스 침공(The Christmas Invasion)"에서는 영국에서 발사한 외계탐사선 귀네비어호에 실어보낸 A형 혈액을 이용해 시코락스가 지구의 A형 보유자들을 혈액 컨트롤할 때 여왕을 포함한 왕실 가족들도 버킹엄 궁전 지붕 위에서 뛰어내릴 뻔 했다.

크리스마스 스페셜 "저주받은 자의 항해(Voyage Of The Damned)"에서는 크리스마스마다 외계인이 런던을 습격하는 사태로 인해 공포에 질린 런던 시민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다들 교외로 피난갔지만 여왕의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버킹엄 궁전에 그대로 머무른다. 별일 없이 지나가나 싶었다가 하늘에서 우주선 타이타닉 호가 버킹엄 궁전으로 돌진하자 닥터가 건 비상전화를 받고 보안코드 771(긴급사태)이니까 당장 나오라는 연락에 황급히 바깥으로 나오지만 충돌 직전에 우주선이 궁전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갔다. 여왕은 우주선을 향해 손을 흔들며 "고마워요, 닥터. 메리 크리스마스"라 인사했다.

부활절 스페셜 "죽음의 행성(Planet of the Dead)"에서는 타디스가 버킹엄 궁전 정원에서 발견되지만 자기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며 닥터에게 옮겨다주었다.

뉴 시즌 5 에피소드 3 "지하의 야수(The Beast Below)"에서는 51세기의 영국 여왕 리즈 10세가 닥터와 선대 왕들과의 인연을 나열하며 "리즈 2세와 다과를 함께 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또하나, 토치우드 연구소는 영국 국왕의 직속 기관인만큼, 엘리자베스 2세는 토치우드의 수장이시다. 작중에선 잘 드러나지 않는 설정이지만, 캐너리 워프 전투 이후 페허가 된 토치우드 1의 폐쇄를 명령한 것도 이분이시다.

또한 BBC가 쓴 글 중 하나인 '영국의 유명한 후비안'에 따르면, 9대 닥터가 최애 닥터이신 듯 하다.

BBC 드라마 셜록 시즌 2 에피소드 1에서는 어느 왕족 아가씨의 방탕한 사생활을 뒷수습하려고 셜록과 을 버킹엄 궁전으로 불러들여 대리인을 통해 사건을 의뢰했다. 사실 이 에피소드 어디에서도 여왕의 이름이나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뒤통수에 대고 셜록이 바이올린으로 God save the Queen을 연주했기 때문에(…).



넷플릭스 오리지날 드라마인 더 크라운에서 즉위 직전부터 즉위 이후 부분을 다룬 드라마가 공개되었다.

7.3.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편집]

사우스 파크에서도 잠시 등장했는데, 해당 에피소드에서 함대를 동원해서 미국을 다시 영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다가 주인공들의 저지로 인해 실패한다.[66] 미국 침공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자 권총을 입에 넣고 격발해서 자살하는데, 워낙 충격적인 장면이라 영국 방영 당시에는 삭제되었다.


본격 등장인물들이 죄다 정상이 아닌 헬싱에서 나온다. 최후의 대대 때문에 열린 작전회의 때 아카드가 여왕 앞에서 예를 표하는데 이때 대사를 보면 여왕이 어릴 적에 아카드와 만났던 모양.[67] OVA 판에만 나오며 성우는 후지타 토시코. 밀레니엄의 선전포고를 듣고는 인테그라와 아카드에게 밀레니엄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리고 최후의 대대가 런던을 침공했을 때 왕실 및 소수의 고위층들이 캐나다로 피난 갔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 끔찍한 학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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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포3에서 본편의 주무대인 런던 지하의 마법학교 카자미도리 학원의 학원장을 겸임하는 걸로 나온다. 당연한 거지만 공략가능한 히로인은 아니다(다만 아주 짧게 1.3DASH와 D.C.3R에서 루트를 탈 수는 있다). 천리안을 가지고 있어 마법과 관련된 사건이 발생하면 그걸 감지하고 해결할 카자미도리 학원 내의 특정 단수 내지 다수의 인물에게 여왕의 종을 울려 해결할 것을 명령하는 걸로 나온다. 기존의 마법학교를 개혁해 카자미도리 학원을 지금의 체제로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릿카와는 약 30년 전부터 아는 사이이고,그녀의 밑으로는 일반 사무직으로 변장한 마법사들이 다수 근무하고 있다고 한다.또한 히메노가 아직 아기이고 키요타카가 카츠라기가에 입양되기 전 히메노의 부친과 만나서 키요타카 남매와는 어느 정도 면식이 있다. 성우는 T.P. 사쿠라 ~시공수방위전~에서 아사쿠라 준이치를 맡은 카세 아이나.

사실 현실과는 영국의 여왕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적은데 우선 애칭이 리즈[68]이며 다카포3 본편의 시간배경은 1950년 말~1951년 초인데 위의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기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즉위하지도 않았다. 나이 역시 마법으로 노화하지 않는지라 젊어보이는 것과 달리 50대인 걸로 나오는데[69] 현실에서는 20대 중반이었다. 애니판에서는 원작과 달리 미래편에도 등장하는데 학생회장으로 본편과 프롤로그 & 에필로그에서의 이름이 다른 서브 캐릭터들과 달리 다른데 에리 안젤라 아서로 되어 있다.
 

[1] 영국에서의 칭호이며, 영국 외에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으로 군림하는 15개국에서는 각각 별도의 칭호가 정해져 있다. 이들 칭호는 영국과 대동소이한 형태로 제정돼 있다.[2] 국왕을 비롯한 왕족은 성씨를 생략하는 게 일반적인데 꼭 써야 하는 경우에는 윈저라고 표기한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필립 공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은 둘의 성을 합쳐서 마운트배튼윈저(Mountbatten-Windsor)를 성으로 쓰되, 가문은 '윈저 가문(House of Windsor)'의 일원으로 취급한다는 복잡한 방침을 정해두고 있다.[3] 잉글랜드 성공회(Church of England).[4] 스코틀랜드 장로회(Church of Scotland).[5] 영국 여왕으로서 쓰는 문장이다. 단, 전통에 따라 스코틀랜드에서는 위와 디자인이 다른 문장을 사용한다. 또 영국 이외에 엘리자베스가 여왕으로 있는 나라(영연방 왕국)에서 쓰는 문장은 나라마다 다르다. 엘리자베스의 문장들은 영문 위키백과에 잘 정리돼 있다(해당 문서).[6] 여왕으로 있는 모든 나라에서 사용 가능한 '여왕'으로서 쓰는 깃발이다. 영연방의 '원수'(Head of the Commonwealth)이긴 하지만 영연방 원수 자격으로 쓰는 깃발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 엘리자베스 2세가 사용하는 다른 깃발들은 영문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 참고.[7] 이 사진을 찍었을 때 엘리자베스는 왕위계승권 3위로, 둘째 왕자의 맏딸에 불과했으나, 큰아버지인 왕세자가 40대인데도 결혼하지 않고 있어서,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미래의 여왕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는 상황이었다. 작가도 이 점을 숙지하고 있었던 듯. 꼬마 여자애 초상화에 알게 모르게 위엄 버프 뽀샵질(…)이 된 게 보이는가?[8] 영국 및 영국과 동군연합인 나라들을 부르는 비공식 용어로 '영연방 왕국'(Commonwealth realm)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영연방 회원국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다른 개념이다. 16개 영연방 왕국들은 영연방의 부분 집합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영연방 회원국 중에는 그냥 공화국인 나라가 더 많다. 말레이시아 등 다른 군주를 국가 원수로 하는 군주국들이 소수 있는데, 이들도 영연방 왕국이라고는 불리지 않는다.[9] 부왕인 조지 6세 재위 기간 중에 영연방에 영국 왕이 국가원수가 아닌 나라도 회원이 될 수 있게 바뀌었고, 그래서 '왕'과 별개로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함을 추가했다. 이후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이 직위도 이어 받았다. 그런데 왕위와 달리 영연방 수장직은 세습직이라고 규정된 바가 없다. 영연방의 수장이라는 직위가 생겼을 당시에는 영국이 그래도 강대국이고 영연방이 영국 왕과 영국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조직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회원국들 사이에 평등한 조직으로 변모했다. 단적인 예로 영연방은 원래 정식 명칭이 British Commonwealth of Nations였지만 지금은 Commonwealth of Nations로 바뀌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영국 왕실이 영연방 내 다른 회원국들에 대해 뭔가 우월적 지위를 주장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차기 영국 국왕이 자동으로 영연방의 수장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영국 왕실은 영연방 원수직도 세습직으로 명문화하길 바라고 있지만 그게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애를 태우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후 줄리 길라드 전 호주 총리 등 영연방 주요국 수장들에게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된 후 이 칭호를 승계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로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호주와 캐나다의 경우 차기 영국 국왕에게 영연방 수장 자리를 승계하는 걸 지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영연방 구성국들 사이에서 윌리엄 왕자나 해리 왕자에 비해 아버지 찰스 왕세자에 대한 인기가 매우 낮고, 향후 영연방의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찰스 왕세자가 왕이 된 이후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승계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10] 이 16개국은 영국에서 독립할 땐 영국과 군주를 공유하는 왕국이었다가 이후 국민 투표·헌법 개정이나 쿠데타 등에 의해 공화국으로 바뀐 경우이다.[11]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역사상 왕의 칭호를 가장 많이 가져본 전무후무한 군주가 되었다.[12]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헌법 개정 시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를 거치게 돼 있으나 헌법 개정 절차는 나라마다 다 다르며 단순히 의회의 의결로 변경할 수 있는 나라도 많다. 영국처럼 아예 헌법을 일반 법률이나 관습법과 분리하지 않는(불문헌법) 나라도 있고.[13] 1927년 이래 '연합 왕국(the United Kingdom)'이 칭호에서 빠진 지 26여 년 만에 정식 국호가 칭호에 돌아왔다. 1927년까지는 "of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and of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Queen"(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그리고 바다들 너머의 브리튼 자치령들의 국왕/여왕)이 왕의 칭호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섬의 대부분이 아일랜드 자유국(1930년대에 스스로 이름을 그냥 아일랜드로 고침)으로 분리되었고, 북아일랜드만 영국 본국에 남음으로써 칭호 쓰기가 골치 아파졌다. 그래서 그냥 1927년 영국의 국호를 현재처럼 고치면서 칭호 일부분을 "of Great Britain, Ireland and the British Dominions beyond the Seas King/Queen"(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그리고 바다들 너머의 브리튼 자치령의 국왕/여왕)이라고 고치게 돼서 United Kingdom이 왕의 칭호에서 빠졌다. 어차피 Ireland에는 영국 본국의 일부인 북아일랜드와 별도의 자치령이 된 아일랜드 자유국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이렇게 한 것이다. 그런데 뒤에 자치령들을 또 언급하기 때문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칭호에서 2번 언급된 거나 마찬가지다 조지 6세 재위 기간 중인 1949년 아일랜드(아일랜드 섬 전체 말고 구 아일랜드 자유국의 후신)가 공화국이 돼서 영국 왕과 완전히 무관해졌지만 왕의 칭호에는 반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 때에 맞춰 나라마다 칭호를 따로 정하기로 하면서 영국에서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라는 국호가 들어가 되었다. United Kingdom이 왕의 칭호에 다시 포함되었지만 예전과 달리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가 뒤에 따라옴에 주의할 것.[14] 자치령(Dominion)이란 표현이 이때부터 칭호에서 빠졌으나, 아직 남아있던 자치령들에 대해서 왕의 지위가 상실된 것은 아니다. (1956년 공화국 성립 전의 파키스탄 자치령 등)[15] 영연방 원수라는 지위 자체는 선왕 조지 6세 때 신설됐지만 국왕의 공식 칭호에 추가된 것은 이때부터다.[16] 캐나다의 경우엔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를 생략하고 '연합 왕국'과 '그 밖의 국가' 사이에 '캐나다'가 들어가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예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을 빼고 '오스트레일리아'가 들어가는 등 나라마다 미묘하게 다르다.[17] 엘리자베스 2세의 역대 칭호들은 영문 위키백과의 해당 항목을 참고할 것.[18] 단 비공식적인 칭호다. 채널 제도에서 관례적으로만 부르고 법적으로는 규정돼 있지 않다. 영국 왕실은 1259년 헨리 3세가 파리 조약에서 노르망디 공작 작위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여왕이어도 남성형인 Duke로 쓴다. 만약 여성형인 Duchess를 쓸 경우 여성 공작이 아니라 남성 공작의 부인으로 오해받기 쉬운데다가, 원래 노르망디 공작은 살리카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꼼수로(...) 여자가 계승해도 남자인 척을 하는 게 관례화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1967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프랑스 노르망디에 갔을 때, 프랑스인들이 "공작부인 만세! (Vive la Duchesse!)"를 외치자 여왕은 "글쎄요, 나는 노르망디 공작(Duke)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있다.[19] 비공식적인 칭호이다. 장미전쟁을 랭커스터 왕가의 방계인 튜더 왕가가 전쟁을 매듭지었기 때문에 이후로 랭커스터 공작은 왕의 비공식 칭호가 되었다. 그리고 여왕일 때도 남성형인 Duke를 쓴다. 여성형인 Duchess를 쓸 경우 여성 공작이 아니라 남성 공작의 부인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20] 맨 섬처럼 왕실령인 채널 제도에서 쓰는 노르망디 공작이라는 칭호는 비공식적인 칭호지만, 이 맨 섬 영주(Lord of Mann)은 공식 칭호이다. 참고로 Lord의 여성형은 Lady이지만, Lady라고 하면 영주보다는 영주의 부인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어서 그냥 남성형 Lord of Mann을 쓴다. 그런데 예전 빅토리아 여왕 때는 그냥 Lady of Mann을 썼다. 반드시 성별 무관하게 Lord로 고정시키라는 규정은 없고, 그냥 그때그때 다른 모양이다.[21] 2개 국가의 수장인 사람으로는 프랑스 대통령이자 안도라의 공동 대공인 프랑수아 올랑드가 있다.[22] 과거 다이애나 스펜서 비가 사망한 이후 일시적으로 공화주의자들이 50%에 육박하기도 했고, 왕실의 여러가지 스캔들이 발생하고 경제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지지율이 출렁이긴 하지만, 최근의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아직도 유지론이 폐지론(공화주의자)보다 3배 이상 높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상당수 영국인들이 왕실을 국가통합의 상징뿐 아니라 관광상품으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3] 92세인 룩셈부르크 전 대공 또한 2차대전 참전자이나 현재 국가 원수직에서 은퇴를 했으므로 노 카운트[24] BBC의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 방송영상에서는 자막에 이라고만 쓰기도 했다. 그런데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이, BBC는 영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국의 국영방송이므로 영국인들에게 '여왕 폐하'라 하면 엘리자베스 2세를 뜻하기 때문에 굳이 이름이나 어디 왕인지를 적을 필요가 없었던 듯 하다. 마치 일본인들에게 천황 폐하라 하면 아키히토를 뜻하듯이.[25] 나라에 따라 관행이 다르긴 한데, 영국(스코틀랜드 포함)의 경우, '1세'는 나중에 '2세'가 생길 때만 ~세를 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만약 엘리자베스 2세가 스코틀랜드에서의 이름을 따로 쓸 경우 엘리자베스 1세라고 적기보다는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적게 되는 것. 그래서 마찬가지로 빅토리아 여왕도 그냥 빅토리아라고 하지 빅토리아 1세라고 하지 않는다. 여태까지 빅토리아 2세란 여왕이 없었기 때문. 단 동일 군주가 여러 칭호를 사용하면서 넘버링을 여러 개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모두 합칭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1세'라는 표기를 쓸 수 있다. 이 경우 엘리자베스 2세 겸 1세(Elizabeth II and I; Elizabeth the Second and the First) 또는 엘리자베스 1세 겸 2세(Elizabeth I and II; Elizabeth the First and the Second) 식으로 되는 것.[26] 찰스 1세처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한 국왕들은 여기에 따로 안 쓰고 다른 경우만 적으면 다음과 같다. =는 동일인인데 나라에 따라 넘버링만 다르게 표현된다는 뜻이다. 잉글랜드 제임스 1세 = 스코틀랜드 제임스 6세, 잉글랜드 제임스 2세 = 스코틀랜드 제임스 7세, 잉글랜드 윌리엄 3세 = 스코틀랜드 윌리엄 2세. 참고로 명예 혁명으로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왕이 된 윌리엄 3세는 네덜란드 공화국(당시엔 지금과 달리 왕국이 아니었음)의 지배자이고 동시에 오라녜(오렌지) 공작이라는 명목상의 칭호를 썼는데, 네덜란드에서도 윌리엄(네덜란드어로 빌럼) 3세였다. 이는 당시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의 넘버링이 우연히 일치했기 때문이지 일부러 한쪽이 다른 한쪽에 맞춘 것은 아니다.[27] 웨일스는 잉글랜드에 딸려 있는 땅이 된 지 오래라 왕의 칭호에서 따로 언급되지 않는다(대신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잉글랜드 왕세자의 칭호로 쓰임). 잉글랜드 왕은 아일랜드 왕의 칭호도 같이 쓰긴 했는데, 아일랜드만의 넘버링이 따로 없었고 그냥 잉글랜드의 넘버링을 그대로 따랐다.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독립국으로서 잉글랜드와 동군연합을 하게 됐으므로 넘버링을 따로 썼지만, 아일랜드는 잉글랜드가 국외에 따로 지배하고 있는 영토식민지에 가까웠기 때문에 잉글랜드 넘버링을 그대로 쓴 것이다. 한때 영국과 동군연합이었던 하노버는 그 지역이 과거에 지배 가문이 이리저리 자주 바뀌었던 탓에 넘버링을 따지기가 힘들어 그냥 영국의 넘버링을 똑같이 썼다. 그리고 오늘날 영국에서 독립해서 영국과 동군연합을 이루는 나라들(예를 들면 캐나다)은 영국에서 쓰는 넘버링을 그대로 쓴다. 결국 영국 왕의 넘버링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불일치만이 문제가 되고 다른 데에서는 별 문제가 없다.[28] 윌리엄 4세에드워드 7세에드워드 8세, 그리고 엘리자베스 2세는 잉글랜드 넘버링에 근거하면 맞는데 스코틀랜드 넘버링에 근거하면 안 맞는다.[29] 영국 정부와 왕실은 스코틀랜드에서는 잉글랜드나 그 이외 지역과 다른 문장(royal coat of arms)과 다른 모토(royal motto)를 사용하고, 왕관을 그릴 때도 잉글랜드의 성 에드워드 왕관 대신 스코틀랜드 왕관을 그리며, 왕세자의 대표 칭호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 대신 로스시 공작(Duke of Rothesay)을 사용한다. 비록 잉글랜드의 상징들이 대표로 쓰이더라도 스코틀랜드 내부에서는 스코틀랜드만의 상징들을 쓰게 하여 스코틀랜드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해 온 것이다. 하지만 왕의 이름에 붙는 넘버링의 경우 스코틀랜드만의 독자성을 인정 받지 못하고 계속 잉글랜드의 넘버링으로 강제 통일당하니 스코틀랜드 민족주의자들로서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30] 엘리자베스 2세를 상징하는 로열 사이퍼(royal cipher: 왕의 이름을 딴 모노그램)는 왕관 그림 밑에 EIIR라는 문자가 붙는 형태다(왕관은 스코틀랜드 이외 지역에서는 성 에드워드 왕관,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 왕관 그림을 사용함). EIIR은 라틴어 Elizabeth II Regina를 줄인 것으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영어로는 Queen Elizabeth II)이라는 뜻이다. 이 모노그램은 각종 공문서나 공공 시설에 사용되는데, 스코틀랜드 버전(스코틀랜드 왕관 밑에 EIIR이 적혀 있는 버전)의 로열 사이퍼가 부착돼 있는 걸 보고 격분한 일부 스코틀랜드인들이 강제로 II(=2세) 부분을 떼어버린 것. 그래서 스코틀랜드에서는 우체통 등 공공 시설물이나 각종 공문서에 스코틀랜드 왕관만 사용하고 EIIR은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31]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패배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었으나 그 다음에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하여 총리직에 복귀했다. 그 후 조지 6세가 사망하면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 엘리자베스 2세(재위기 기준)의 첫 총리로 기록되었다.[32] 윌리엄 4세는 스코틀랜드식으로 따지면 윌리엄 3세가 돼야 한다. 그리고 에드워드 7세와 8세는 애매한데,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 중에 잉글랜드의 후원을 받아 스코틀랜드 왕위를 주장(1314~1356, 실제로 스코틀랜드를 지배한 기간은 1332~1336)한 에드워드 베일리얼(Edward Balliol)을 정식 국왕으로 인정할지 말지에 따라 달라진다. 오랫동안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를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으므로(그래서 이름 뿐만 아니라 성까지 붙여 부르고 있다. 유럽에서 군주는 성을 쓰지 않고 이름과 ~세만 적으니까) 그를 무시한다면 에드워드 7세는 스코틀랜드에서 에드워드 1세(살아 있던 동안은 그냥 '에드워드'),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에서 에드워드 2세로 불리는 게 맞다. 하지만 윌리엄 4세, 에드워드 7세, 에드워드 8세는 스코틀랜드의 넘버링을 따른 별도의 왕명을 쓰지 않았다. 지금 엘리자베스 2세처럼...[33] '찰스'와 '앤'이라는 이름의 왕은 동군연합 성립(1603) 후에 처음 왕의 이름으로 사용됐기(찰스 1세찰스 2세) 때문에 양국의 넘버링이 일치한다. '조지'와 '빅토리아'라는 이름의 왕은 양국이 합병(1707)된 이후에 처음 등장했는데(조지 1세~조지 6세빅토리아) 양국이 합병된 이후에는 잉글랜드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같은 칭호를 따로 안 썼기 때문에 넘버링 문제가 아예 생겨날 수가 없다. 그리고 '메리'의 경우 동군연합 성립 이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양국에 각각 1명씩 있었기 때문에(블러디 메리메리 스튜어트) 동군연합 이후에 등장한 '메리' 여왕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양국에서 모두 메리 2세라 역시 넘버링이 동일하다.[34] 예를 들어 동군연합 이전의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윌리엄 1세와 스코틀랜드의 윌리엄 1세는 다른 사람, 다른 시기, 다른 나라의 통치자이었으므로 넘버링 일치·불일치를 따질 필요 자체가 없다.[35] 헨리 8세 때 마련한 규칙은 호칭을 Majesty = 왕과 왕비, Highness = 왕자, 공주 등 왕족, Grace = 왕족이 아닌 고위 귀족용으로 고정시킨 것이다. 이 규칙을 마련하기 전에는 Majesty, Highness, Grace가 구분 없이 혼용됐다고 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독립국이던 시절 국왕에게 죽 Grace라고 불렀다.[36] 이쪽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스코틀랜드에서 그냥 엘리자베스라고 부르는 것보다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다른 왕족, 고위 귀족에게 적용되는 호칭 체계와 충돌한다. 따라서 스코틀랜드에서는 따로 왕족, 귀족들 호칭도 다른 방식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영국 해군 함선들의 접두어인 HMS(His/Her Majesty's Ship)까지 바꾸거나 이중으로 적용하는 뻘짓까지...[37] 오늘날 스코틀랜드 독립론자들 중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한 뒤 장기적으로 공화국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여왕이 뭘로 불리든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즉위했을 당시처럼 넘버링 문제가 심각하게 중요한 이슈로 대두됐을지는 미지수이다. 어차피 2014년에는 독립 자체가 부결됐고, 아마 이미 고령인 엘리자베스 2세 재위기 중에는 스코틀랜드가 독립 투표를 재실시할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만...[38] 즉위 후에도 윌리엄을 대표 이름으로 쓸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왕족이 왕으로 즉위할 때, 기존에 대표로 쓰던 이름 대신 자신의 다른 이름을 쓰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아마 '윌리엄'은 별로 문제가 되는 이름이 아니므로 즉위 후에도 그대로 쓸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경우 이전의 '찰스'들이 흑역사들을 여럿 남겼기 때문에 즉위 시 '찰스 3세' 대신 여태까지 많이 쓰였던 이름을 사용해 '조지 7세'로 즉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어차피 찰스 왕세자의 경우 찰스라는 이름을 쓰나 조지라는 이름을 쓰나 넘버링 불일치 문제가 없지만...[39]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한 나라로 합병된 지 100년 하고도 수십 년이 더 지난 시점에 왕이 되었다.[40] 서양에서는 동아시아보다는 추존의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지만 사례가 아예 없진 않다. 현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할아버지는 평생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사후에 후안 3세로서 묻혔다. 물론 그는 과거에 스스로 국왕 후안 3세라고 자칭하긴 했었지만,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후안의 아들을 프랑코의 후계자로서 왕정 복고가 이뤄지게 할테니 대신 후안 본인은 왕을 칭하지 말라는 제안을 받아 들인 뒤, 사망할 때까지 국왕 후안 3세라고 칭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후에 다시 국왕 후안 3세로 불리게 된 그를 추존 왕으로 보기에 문제가 없을 듯하다.[41] 당시 영국군 계급과 약간 차이가 있다.[42] 하필이면 이날은 여왕의 결혼 45주년 기념일이었다[43] 왕권신수설이 횡횡하던 시대나 입헌군주제를 시행하던 무렵과 이것을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인 셈이다. 즉, '같은 국민이지만 직업이 왕인 것'이라고 직접 인정한 것이다.[44] 그런데 다이애나에 대한 냉담한 반응은 여왕 본인의 의사보다는 엘리자베스 왕대비의 요구를 따른 거라는 말이 있다[45] 자메이카의 경우 2016년 10월 기준으로 이미  자메이카 총리를 중심으로 공화정 전환 운동이 진행 중이고, 각국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찰스가 왕이 될 경우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가 영연방 왕국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46] 이 투표는 2014년 9월 19일 부결되어 대브리튼 연합 왕국에서 탈퇴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자세한 내용은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투표 참고.[47] 타던 보트에서 시한폭탄이 터져 수행원 8명과 같이 죽었다. 게다가 바다에서 터져 물고기들이 시신의 살점을 뜯어먹은 바람에 시체는 극히 일부만 찾을 수 있었다... 이 사건 발생 며칠 뒤 IRA는 북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기지에 공격을 가하여 영국군 18명이 사망하면서 대대적인 내전 분위기가 된다.[48] 그리스와 덴마크의 글뤽스부르크 왕실 출신으로, 여왕과의 결혼을 위해 계승권을 포기했다.[49] 그래서 결혼식 때 어떤 군복을 예복으로 입느냐가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50] 테러리스트의 목표가 되므로[51] 영국의 경우는 아직도 왕족은 장교로만 복무가 가능하다. 물론, 훈련은 그대로 다 받는다.[52] 맨 위에서 주석으로 설명했지만 다시 설명하자면, 왕족은 성씨를 따로 표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꼭 써야 할 경우엔 Windsor를 쓴다.[53] 단, 이 성은 너무 길기 때문에 군 복무 등에서는 다른 성을 쓰기도 한다. 여왕의 손자인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는 군 복무 시 성을 웨일스(Wales)라고 바꿔서 웨일스 대위(Captain Wales)라고 불린다. 왜냐면 윌리엄은 입대 당시 Prince William of Wales가 공식 칭호였고(결혼 이후에 공작의 칭호를 받아 'Prince William, Duke of Cambridge'로 바뀜), 해리 왕자는 아직도 Prince Henry of Wales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찰스 왕세자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Charles, Prince of Wales)라 아들들이 이름 뒤에 of Wales를 붙였고, 군 복무 시에는 아예 Wales를 성으로 대신 사용했던 것이다.[54] 영국 왕실의 공식 설명.#[55] 당연하지만 대역이다.[56] 이때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개회선언을 했다(몬트리올은 퀘벡 주 최대 도시로 프랑스어권이라 이들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57]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다이애나비와 동일한 수준.[58] 1939년 초까지만 해도 영국에서 첼시 서포터들이 유태인들이 주축인 토트넘 핫스퍼를 야유할 때 로마식 경례를 하거나 스바스티카 깃발을 흔들 정도였다! 하켄크로이츠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미국이나 유럽 각지에서도 이 문장은 그저 행운의 상징으로써 1930년대까지 학교 심벌은 물론이거니와 미 육군 제45 보병사단의 부대마크, 심지어 소련도 스바스티카 낫과 망치 훈장같이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조합의 훈장을 1922년까지 썼다. 핀란드 공군은 나치와 관계없는 전통 문장이라며 아예 아직도 스바스티카를 쓰고 있다[59] 사실 영국이 1972년을 기점으로 영연방과 관계를 약화시키고 유럽 공동체에 가입한지 45년이 된 시점이라 대부분의 영국 신세대들은,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지 않는한, 영연방 국가들에 대한 각별함과 이해가 기성세대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60] 덕분에 영국군 근위대가 90세 기념으로 이런 동영상을 찍기까지 했다.[61] 다만 당시 국내 언론 보도로도 1897년 빅토리아 여왕의 다이아몬드 주빌리와 규모나 여러 모로 차원이 다른 뭔가 초라한 행사라는 보도가 나왔었다. 하긴 100여년 전 대영 제국 전성기라던 시절과 지금의 영국을 견주기가 그렇긴 하다.[62] 사실 잘 보면 린든 B. 존슨이 빠진다. 이는 존슨이 5년의 임기 동안 여왕을 방문할 적기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왕 역시 임신 등의 이유로 해외 순방을 이 시기에 하지 않았다. 괜히 윈스턴 처칠 장례 때 존슨이 욕을 쳐먹은 게 아니다 자세한 건 처칠 항목 참조.[63] 정작 영국 대중들은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세자 대신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스 왕세손이 왕위 승계 했다면 하는 이들도 있다.[64] 181cm로 키가 엄청 크다. 이 세계 각국의 왕족들 중에서조차 수위권으로 키가 크다. 아키히토 지못미.[65] 이 양반은 부왕의 급사로 어린 나이에 불가리아의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가 공산혁명으로 강제퇴위 당했지만, 불가리아가 민주화 된 이후 다시 불가리아의 총리를 역임한 매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66] 그런데 웃긴 것은 영국 함대의 무장이나 옷차림이 죄다 독립전쟁 당시의 것이라는 것(...). 게다가 타고 있는 배도 구식 범선이다.[67] 아카드의 얼굴을 만지면서 '당신은 50년 전 모습 그대로인데 난 말괄량이 소녀에서 할머니가 되어버렸다'고 말했다. 이에 아카드는 당신은 지금이나 그때나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인간의 미추에 관심이 없는 아카드이니만큼 과거나 지금이나 내면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지도.[68] 현실에서는 릴리벳이었다. 일단 가족 사이에서 불리던 것이지만...미래편 오리지널인 애니판에서는 에리카이다.[69] 오히려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과 비슷한 연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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