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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대도 내가 원하면 하루밤을 자고자고..."
2017년 02월 14일 22시 52분  조회:2537  추천:0  작성자: 죽림

'페기 구겐하임' 20세기 미술史가 된 여인

 2017-02-08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잭슨 폴락,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바실리 칸딘스키... 

교과서를 수놓는 현대 미술 거장들과 씨줄 날줄처럼 엮인 이름이 있다. '페기 구겐하임'(1898~1979). 미술에 얕은 관심이 있다면 구겐하임가의 전설적인 콜렉터 정도로 기억하는 여인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페기는 자유분방한 유년기와 한번의 결혼 실패를 겪은 뒤 내재된 예술가의 자아를 실현한다. 돈을 통해 실력파를 발굴하고 작품을 사들였고, 그의 방대한 콜렉션은 구겐하임 박물관의 중요한 일부가 돼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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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페기 구겐하임 : 아트 애딕트'(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은 페기의 생전 미공개 인터뷰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그 삶의 속살을 파헤치면서, 단순히 부호였던 페기가 어떻게 20세기 미술에 기여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페기의 삶을 통해 보는 20세기 미술의 향연이자 눈으로 보는 전시회다. 낡은 흑백 영상에 담긴 거장들과 그들의 작업 모습, 문외한도 한번쯤 봤을 법한 명화들은 페기가 그랬듯 마니아 뿐 아니라 일반 애호가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하다. 마치 전시회같은 영상에 페기의 사생활이 끼어들면서 다큐는 서사성을 띤다.

"어떤 상대도 내가 원하면 하룻밤을 자고야 말았다." 지적 호기심과 함께 페기가 예술가를 움직인 동인은 성적 욕구였다. 그는 이미 50년대 발간한 자서전에서 '두 번째 남편인 에른스트 외에 많은 미술가와 동침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영화 속 인터뷰에서 자서전 리스트에 올리지 않은 이름들을 추가로 말한다. 종합하면 20세기 초 활약했던 근대 미술가들을 망라한다. 말년에 페기는 솔직한 고백 때문에 호사가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숱한 스캔들과 염문이 미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음 분명하다.

중세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2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예술을 일으켰다. 페기는 오롯이 개인으로서 열정과 부를 쏟아부으며 예술가들의 뮤즈가 됐고 20세기 메디치가 됐다. "그가 없었다면 20세기 현대 미술이 오늘날과 같이 풍성할 수 있었을까" '페기 구겐하임 : 아트 애딕트'은 왜 미술사가들이 페기의 존재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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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백 명의 아티스트를 모으고
1천 명의 남자와 잠을 잔 세기의 컬렉터

전설적인 아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뮤즈이자 후원자였던 그녀의 삶.
페기 구겐하임

‘1942년 10월 20일 화랑 개관일 밤, 나는 행사를 위해 맞춘 하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한쪽 귀에는 탕기가 만들어 준 귀고리를, 다른 쪽 귀에는 콜더가 만들어 준 귀고리를 했다. 초현실주의와 추상 미술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 중에서 


현실에선 가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삶이 그렇다. 2월 개봉하는 영화 〈페기 구겐하임: 아트 애딕트〉는 재벌가 상속녀로 태어나 마르셀 뒤샹, 막스 에른스트, 잭슨 폴록 등 현대 미술의 대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뮤즈이자 후원자가 되었던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페기 구겐하임의 본명은 마거리트 페기 구겐하임으로, 미국의 내로라하는 부호 가문 출신이다. 19세기 후반 광산업으로 거부가 된 마이어 구겐하임은 슬하에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페기의 아버지는 그중 여섯 째다. 영화 〈타이타닉〉를 본 사람은 배의 운명이 확인되는 순간 “신사답게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브랜디와 시가를 달라던 노신사를 기억할 텐데, 그가 바로 페기의 아버지 벤저민 구겐하임이다. 당시 프랑스인 애인과 여행 중이던 그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상황에 처하자 애인과 하인들을 구명보트에 태운 뒤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기의 큰아버지는 미국 철강계의 거물 솔로몬 구겐하임으로, 구겐하임 미술관·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등을 거느린 솔로몬 R. 구겐하임 재단을 설립한 인물이다. 

20대 초반 엄청난 부를 상속받은 그녀는 뉴욕에서의 안락한 삶 대신 파리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을 비롯한 예술가, 비평가들과 교류하며 미술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대가 뒤샹은 그녀에게 현대 미술의 흐름을 가르쳐주었을 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을 소개하고, 전시회에 데려가 작품을 보는 안목을 높여주었다. 그녀는 예술만큼이나 예술가들도 사랑해서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 초현실주의 화가 이브 탕기, 추상주의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 등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1천 명 이상의 남자들과 잠자리를 했다”고 고백했다. 페기의 첫 남편은 다다이즘 조각가 로렌스 베일, 두 번째 남편은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현대미술의 중심을 옮긴 여성

페기 구겐하임

베니스에 위치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은 잭슨 폴록, 헨리 무어, 칸딘스키. 콜더 등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보물창고다.

페기 구겐하임이 아트 컬렉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938년 영국 런던에 구겐하임 죈 미술관(Guggenheim Jeune Gallery)을 열면서부터다. 그녀는 알렉산더 콜더, 바실리 칸딘스키, 헨리 무어 등의 전시를 열고 그들의 작품을 수집했다. 한창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릴 당시 그녀는 지인에게 ‘사랑 없이도, 남자 없이도 이렇게 행복할 수 있다니’라고 편지를 쓸 정도로 컬렉팅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컬렉팅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도 계속돼 전시에 헐값으로 나온 미술품들을 쓸어담듯 사들였다. 당시 생활고에 시달리던 수많은 화가들이 그녀에게 작품을 팔기 위해 줄을 섰으나 단 한 명 예외가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였다. 페기가 작품을 구입하러 피카소의 스튜디오를 방문했을 때 피카소가 “속옷 가게는 2층”이라며 그녀를 돌려보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어쨌든 그녀의 수집에 대한 광적인 집착은 나중에 ‘전쟁 중 이득을 본 장사꾼’이라는 오명과 함께 독으로 돌아왔다. 1941년 나치가 유럽의 숨통을 조여오자 그녀는 미술품들을 가재도구로 위장해 미국으로 탈출, 이듬해 금세기 미술관(Art of This Century Gallery)을 오픈했다. 페기 구겐하임이 현대 미술에 끼친 가장 큰 영향 중 하나는 유럽 모더니즘 작가들을 미국에 소개한 것, 그리고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윌렘 데 쿠닝 같은 화가들을 후원해 추상 미술이 꽃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페기 구겐하임은 1947년 뉴욕에서 이탈리아 베니스로 거처를 옮기고 이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어 18세기 건축가 로렌초 보스체티가 설계한 대저택, 팔라초 베니에르 데이 레오니를 매입해 갤러리로 개조하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컬렉션과 함께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그곳 정원에 잠들어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컬렉션은 모두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기증되었으며, 그녀의 저택은 구겐하임 미술관의 베니스 분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The Peggy Guggenheim Museum)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1백 명이 넘는 현대 작가의 작품을 보유한 모더니즘의 성지이자 베니스를 찾는 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명소다. 

사진제공 구겐하임 미술관, 콘텐숍 
디자인 김영화 
참고도서 페기 구겐하임 자서전(민음인),
///
김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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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의 인생에는 잭슨 폴록, 마르셀 뒤샹,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바실리 칸딘스키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그녀의 인생 자체가 현대미술사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유태인 광산 부호인 구겐하임가의 아버지와 금융 부호인 셀리그먼가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구겐하임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는 구겐하임 재단의 창립자 솔로몬 구겐하임의 조카다. 

페기 구겐하임의 일생을 담은 영화 '페기 구겐하임:아트 애딕트'(수입·배급 콘텐숍)는 미술 다큐멘터리이지만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감상에는 별다른 무리가 없다. 영화 속에서 미술작품들은 그녀의 삶을 있게 한 매개물 이상으로 강조되진 않는다. 

 
대신에 현대미술 컬렉터로 족적을 남긴 그녀의 인생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주목한다. 유별났던 부모의 성향부터 타이타닉호 침몰로 아버지를 잃은 과거, 자유분방한 성생활 속에 깃든 남성폭력 등 그녀의 삶에 스며있는 결핍이 컬렉터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투영한다. 

결국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서 드러난 그녀의 수집욕을 통해 20세기의 현대미술이 이어졌음을 관객들은 느끼게 된다. 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은 그녀를 인터뷰했던 재클린 웰드의 지하실에서 인터뷰 테이프를 찾아내 영화를 완성했다. 

팝아티스트 낸시랭은 "미국에 유럽의 모더니즘을 이식시켰을 뿐 아니라 미술의 중심 모델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라며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설적인 여성"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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