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는 생명의 황금빛이며 진솔한 삶의 몸부림이다...
2017년 03월 06일 19시 47분  조회:246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은 왜 시를 쓰는가/ 허형만


진솔한 삶의 역사를 위하여 ― 이것이 나의 대답이다.

  나는 누가 무어라 해도 '시'와 '삶'은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나의 삶이 잠시도 쉬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면, 그래서 전력투구 온몸으로 나의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나의 시 또한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기에 나의 시에는 가장 가까이 나의 가족사(家族史)가 많다. 그러나 이 가족사가 한정된 범주의 나만의 가족사에만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인간사(人間史), 나아가서 모든 생명 있는 것에까지 확산되기를 바란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졸시 한 편을 보자.

    시월이라 청자빛 우리나라 하늘 닮은
    만고에 순하디 순한 우리네 許松氏는
    일자나 한 자도 무식에 무식이지만
    아들 딸 서울 유학에 발톱 빠진 許松氏는
    젊었을 적엔 머슴도 했다. 소작도 했다.
    고향 그리워 고향 찾아 돌아오던 날 밤
    절 먼저 물꼬부터 훑으면서 눈물 씹던 許松氏는
    국법을 조심하고 국토를 중히 하야
    전라도 순천땅 닷마지기 논빼미에 혼을 거두는
    초야의 잡초보다 질긴 심줄 許松氏는
    이마에 흐르는 땀이 푸르딩딩 번득거린 허허청청 달도 밝은 이 한밤
    짚가리 옆에 쭈그려 지성으로 낫을 가는 許松氏는
    조선낫이사 잘 들어야지야, 암 잘들어야지야 다짐하며
    황토내음 오금 박힌 손바닥에 탁탁 침 뱉는 許松氏는
    살아야 밍(命)인께, 먹어야 뵉(福)인께
    푸른 댓잎 서걱이는 소리로
    하얗게 하얗게 밤이슬에 젖어드는
    낼 모래가 환갑이신 우리네 許松氏는
                                       ―「許松氏」전문

  이 시는 80년대 초반에 씌어져『현대문학』에 발표되고, 그 후 두 번째 시집『풀잎이 하느님에게』(1984, 영언문화사)에 실린 작품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許松氏'는 실제 인물로 필자의 숙부님이시다. 이 시 어느 한 구절에도 거짓은 없다. 그만큼 숙부님의 삶의 역사가 허튼 기교도 없이 과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객관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어찌 내 숙부님이신 '許松氏'한 분만의 삶의 역사이겠는가. 이는 곧 이 나라 이 땅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우리네 농투산이 모두의 이야기이지 않겠는가.

  하이덱거(Heidegger)는 말했다. 언어라는 것은 인간이 역사의 존재로 존재할 수 있는 보증을 한다고, 언어란 인간존재의 드높은 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계기라고.

  그래서일까. 다음과 같은 졸시를 쓰던 날 밤은 퍽도 많이 울었던 기억이 새롭다

    비나리는 밤이면/어머니는/팔순의 외할머니 생각에/방문 여는 버릇이 있다.

    방문을 열면/눈먼 외할머니 소식이/소문으로 묻어 들려오는지/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기대앉던/육순의 어머니.

    공양미 삼백석이야 판소리에나 있는 거/어쩔 수 없는 가난을 씹고 살지만/꿈자리가 뒤숭숭하시다며/외가댁에 다녀오신 오늘,

    묘하게도 밤비 내리고/방문을 여신 어머니는/밤비 흔들리는 소리에 젖어

    ― 차라리 돌아가시제./돌아가시제.
                                                 ―「밤비」전문

  내 갓태어났을 때부터 나는 외할머니의 사랑과 정성 속에서 자랐다 한다. 그 외할머니는 지금도 눈먼 채로 살아 계신다. 나이는 아흔 중반. 따라서 이 시 역시 80년대 초에 씌어져 그후『현대문학』,『살아있는 시』에 실린 뒤 세 번째 시집『모기장을 걷는다』(1985, 오상출판사)에 수록 되었다.

  이 시를 쓰면서 나는 앞서 밝혔듯 한없는 울음을 울었다. 그것은 아마도 밤비가 주는 분위기와 창호지 방문을 여시고 머엉하니 빗속의 먼 허공을 바라보시는 늙으신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외할머니 생각 끝에 내뱉으신 독백 등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을 저미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내가 이 시를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지막 연, 어머니의 기가 막힌 넋두리, 한숨섞인 그 독백의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당시 육순의 어머니와 팔순의 외할머니를 통해 이땅의 모든 여인의 인간사를 시로써 서사화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강했지 않았나 싶다.

  그후 나의 시는 80년대 중반을 넘어서 후반으로 오면서 정치적·사회적 상황 속에서 당시 시대가 내리꽂는 뜨거운 문초에 아파하며 그 대답으로 여섯 번째 시집『洪草』(1988, 문학세계사)를, 그리고 북녘시인에게 띄우는 형식의 화해와 통일의 조국을 갈망하는 일곱 번째 시집『진달래 산천』(1991, 황토)을 내놓았다. 두권 모두 연작시 형태로 발표된 시들로서 각각 한 가지 주제의식 속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이러한 작업은 지금도 변함없이 '땅시'연작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詩想의 체험은 항상 새로운 의미를 갖게하고, 그것은 관념과 관습과 나태를 거부한다. 휠더린(Holderlin)의 말처럼 시인은 神이 내리는 번갯불을 끊임없이 쐬야하고, 제비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빠쁠로 네루다(P.Neruda)의 말처럼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기 마련이고, 새들의 비상을 보며 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오늘도 시를 쓴다. 시를 쓰는 순간, 살아 있는 나를 확인한다. 나는 시를 쓸 때마다 시는 곧 내게 있어 생명의 입맞춤이며 빛이며 목마른 희망이라는 신념으로 쓴다. 적어도 나에겐 고도의 기교나 말장난은 없다. 더더욱 어떤 아류나 유파나 유행성출혈병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역사 속에서의 시인의 존재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진솔한 삶의 역사를 새로운 언어로 쓰고자 지난한 몸짓을 멈추지 않을 뿐이다.

 

=====================================================================================

 

서정주 (1915∼2000)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엄청 뭉클한 시다. 잊혔던, 닫혔던, 억눌렸던, 그리움의 감정을 덜컥 열어젖히는 시. 논리를 깨부수는 이 그리움의 해방구에서 우리는 가슴이 벅차다가, 벅차다가, 뻥 뚫린다. 

닥친 일들, 풀어야 할 문제들, 고된 노동, 이별의 슬픔, 조락의 불안, 잠시 놓아두고 하늘을 보자. 비운 마음을 청명한 눈부심으로 가득 채우자. 인생에 진짜 좋은 건 모두 공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090 "자그마한 세계" 2018-06-14 0 2357
108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공상 2018-06-14 0 4817
1088 "비가 온다야 개미야 대문 걸어 잠궈라"... 2018-06-13 0 2389
1087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창공 2018-06-12 0 4431
1086 "꽃씨가 되여봄은..." 2018-06-12 0 2142
108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래일은 없다 2018-06-11 0 3356
1084 "우리는 '바다'에 관한 시를 쓸줄 모르외다"... 2018-06-11 0 2429
108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삶과 죽음 2018-06-11 1 8577
108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초한대 2018-06-10 0 5072
1081 "할머니가 흘러간 그 시간의 탑이지요"... 2018-06-09 0 2512
1080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조선인민군행진곡 작곡가 - 정률성 2018-06-08 0 5040
1079 동시는 개구쟁이 애들처럼 써라... 2018-06-07 0 2435
1078 "너 이름 뭐니...." 2018-06-07 0 2454
1077 별, 별, 별... 2018-06-06 0 2318
1076 동시창작 다양화를 두고 / 김만석 2018-06-03 0 2445
1075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2018-06-02 0 2376
1074 "나무들이 작은 의자를 참 많이도 만든다"... 2018-06-02 0 2440
1073 "엄마와 아빠는 늘 바쁜 바다랍니다" 2018-05-31 0 2576
1072 "쌍둥밤은 엄마하고 냠냠"... 2018-05-30 0 2360
1071 "소나무는 꿈을 푸르게 푸르게 꾸고 있다"... 2018-05-30 0 2672
1070 "햇살 한 줄기 들길로 산책 나왔다"... 2018-05-28 0 2432
1069 "조선의 참새는 짹짹 운다" 2018-05-26 0 2445
1068 천재시인 李箱의 련작시 "오감도 제15호" 뮤지컬로 태여나다 2018-05-24 0 2719
1067 맹자 명언 2018-05-22 0 3793
1066 노자 도덕경 원문 . 해설 2018-05-22 0 4743
1065 노자(老子) 도덕경 명언 명담 2018-05-22 0 3559
1064 노자 도덕경 명언 모음 2018-05-22 0 6192
1063 중국 노나라 유교 시조 사상가 교육자 - 공구(공자) 2018-05-22 0 6509
1062 중국 춘추시대 현자 - 노담(노자) 2018-05-22 0 4745
1061 "돌멩이를 아무데나 던지지 마세요"... 2018-05-22 0 2351
1060 김철호 / 권혁률 2018-05-16 0 2633
1059 미국 녀류화가 - 그랜드마 모제스 2018-05-04 0 4839
1058 청나라 화가, 서예가 - 금농 2018-05-04 0 4350
1057 청나라 가장 유명한 양주팔괴 서예가들 2018-05-04 0 2566
1056 "사랑의 깊이는 지금은 모릅니다"... 2018-05-04 0 2394
1055 미국 시인 - 칼릴 지브란 2018-05-04 0 4238
1054 박문희 시를 말하다(2) / 최룡관 2018-05-02 0 2839
1053 박문희 시를 말해보다 / 김룡운 2018-05-02 0 3062
1052 "산노루" 와 "숫자는 시보다도 정직한것이었다"... 2018-04-26 0 2503
1051 축구세계, 시인세계... 2018-04-25 0 3192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