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9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중국 춘추시대 현자 - 노담(노자)
2018년 05월 22일 22시 11분  조회:4648  추천:0  작성자: 죽림
 
저작자 노담(老聃)

요약 BC 510년경에 만들어진 "노자"란 책으로,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동양적 지혜의 정수를 담고 있다. ‘노(老)’는 저자 노담의 성이고, ‘자(子)’는 학자나 그 저술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노자’란 노 선생의 학설을 정리한 책이라는 뜻이다. 전문 약 5,400자이며, 보통 81장으로 나누고, 제1~제37장을 상편, 제38~제81장을 하편이라 한다.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는 ‘유약겸양부쟁(柔弱謙讓不爭)’의 덕을 설파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굴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긴다’라는 필승의 방책이다. 버드나무 가지가 눈사태에도 부러지지 않듯 노자는 유연함을 생명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리고 유연함의 극치를 추구하여 자연스러운 흐름과 모든 고정된 형태를 부정하는 경지에 이른다.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굳고 센 것을 꺾는 데 물보다 더 뛰어난 것 또한 없다. 이는 물이 철저하게 약하기 때문이다. 「제78장」

천하에서 가장 부드럽고 약한 물이 천하에서 가장 단단한 쇠와 돌을 마음대로 부린다. 형태가 없는 것은 도저히 파고들 틈도 없는 그 어떤 곳이라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43장」

형태가 없는 것을 ‘무’라 한다. 이 무의 움직임을 ‘무위(無爲)’라 한다. 노자의 승부사로서의 진면목은 무위로 이기는 것을 가장 높이 산다는 데 있다.

훌륭한 무사는 힘을 드러내지 않고, 잘 싸우는 사람은 성난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며, 잘 이기는 사람은 함부로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부리는 사람은 늘 남에게 겸손하다. 「제68장」

능동적인 것보다 수동적인 것이 중요하다. 이 가르침을 지키면 나아가도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주먹을 휘둘러도 휘두르는 것같이 보이지 않으며, 적을 쳐도 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무기를 들어도 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제69장」

노자는 이처럼 ‘무’를 활용한 승리야말로 병법의 궁극으로 쳤다. 승부란 무조건 이긴다고 좋은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투쟁을 피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서도 안 되고, 상대에게 패배의 굴욕감을 주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리하여 상대도 모르게 승리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다.

움츠리게 하고 싶으면 먼저 펴게 해 주고, 약하게 만들고 싶으면 먼저 강하게 해 주며, 멸망시키고 싶으면 먼저 융성하게 해 주고, 빼앗고 싶으면 먼저 주어라. 「제36장」

늘어날 만큼 늘어났으면 줄어드는 것이 도리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에 이기는 것은 이런 자연의 법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 ‘무위자연’(무의 움직임을 이용하여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것) 식 승리법은 약자들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강자가 계속 강자이기 위해서도 잊어서는 안 되는 마음가짐이었다.

큰 나라는 강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니 천하의 ‘여자’라 할 수 있다. 여자는 손을 뻗지 않고도 남자를 마음대로 부린다. 큰 나라가 스스로 겸양하면 작은 나라가 저절로 따르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겸양하면 큰 나라는 스스로 작은 나라를 받아들인다.

큰 나라는 모든 나라를 수용해 모든 사람을 잘살게 하기를 원하며, 작은 나라도 큰 나라의 그늘 아래 있기를 바란다. 서로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는 점이 있기 때문에 큰 나라가 먼저 겸양해야 한다. 「제61장」

무위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

무위로 다스리면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스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기로 하자.

최고의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는 백성이 군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다음으로 좋은 군주는 백성이 군주를 공경하며 찬양한다. 그보다 하수는 백성이 두려워하는 군주이며, 최악의 군주는 백성들에게 경멸 당한다. 군주는 백성의 자연스러운 생활에 간섭하지 않는다. 뛰어난 군주는 함부로 명령하지 않고, 만사를 백성에게 맡겨 둔다. 그리하여 잘살게 되면, 백성은 그저 군주의 공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리 된 줄로 안다. 「제17장」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노자가 전하고 싶은 말은 ‘대책 없이 있어라’라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어떤 시책을 세웠는지조차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통치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 이상적인 지도 방식은 농부의 작업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농부는 농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밭을 갈고 성장을 방해하는 원인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다음 일은 자연에 맡기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농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는 흙 속의 돌멩이와 잡초, 해충 등은 인간의 간사한 지혜와 그 지혜로 인해 끝없이 비대해지는 욕망이라 할 수 있다.

옛 성인은 백성을 영악하게 만들지 않고, 우둔하고 소박하게 만들었다. 백성이 영악하면 정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묘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 나라를 크게 일으키려면 간사한 꾀를 부리지 말고 무위의 정치를 해야 한다. 「제65장」

위정자가 재능을 중시하지 말아야 백성들은 다투지 않고, 귀한 물건을 중시하지 말아야 도둑이 생기지 않으며, 탐욕을 부리지 말아야 백성의 자연스러운 본성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제3장」

백성들의 마음에서 욕망을 없애고, 대신 육체는 편하게 하는 것. 이것이 성인이 나라 다스리는 법이다.

이 부분을 두고 노자가 우민정치를 주장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노자에게 그런 측면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의 사상은 결코 위정자가 백성을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우민정치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백성이 굶주리는 것은 위정자들이 세금을 많이 거두어들여 자신의 배를 채우기 때문이다. 백성이 반항하는 것은 그들이 술책을 부려 억압하기 때문이다. 백성이 목숨을 잃는 것은 그들이 욕심을 부리기 때문이다. 「제75장」

천하에 금기가 많으면 백성이 가난해지고, 통치자가 지략이나 권모술수를 많이 쓰면 쓸수록 세상은 어둡고 혼란스러워지며, 기술이 발달하면 할수록 불행한 사건은 더 많이 일어나고, 법률이 정비되면 될수록 범죄는 늘어난다. 「제57장」

2천 수백 년 전의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경쟁 사회의 정신적 피폐와 기술 문명의 발전에 따른 환경 파괴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담겨 있다.

자기가 자기임을 주장하지 않는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한층 격렬해지는 생존 경쟁의 장에서 인간은 어떻게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그 길은 단 하나, 현세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노자는 말한다.

사람들은 모두 의욕에 넘치지만, 나는 멍하니 모든 것을 잊고 있다. 나는 어리석어 무엇 하나 분별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명민하지만, 나는 도리에 어둡고 어리석다. 나는 정처 없이 출렁이는 바다이며, 그냥 스쳐 가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모두 유능하지만, 나는 우둔하고 촌스럽다. 나 홀로 사람들에게서 멀어져 자연이라는 어머니 품에 안기리라. 「제20장」

노자가 말하는 ‘나’라는 주체성은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나아가는 길이 아니다. 바다처럼 형체도 없이 출렁이고, 무작정 부는 바람처럼 어떤 세속적 개념으로 잡을 수 없는 자유의 주체성이다.

천지는 영원하다. 그것은 자기가 자기임을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인도 이와 같다. 사람 앞에 서려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사람 앞에 설 수 있다. 내 몸을 잊었기에 오히려 내 몸을 온전히 한다. 「제7장」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자신을 자연에 맡기고 때의 변화에 순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는 주체성을 지닌 인간은 번뜩이는 지혜의 빛과 의지의 불꽃을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 노자는 너무 넓어서 어떤 관점으로도 포착하기 힘든 인격을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았다.

도를 터득한 사람은 말이 없다. 말이 많으면 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감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욕망의 문을 닫는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마음의 엉킴을 풀어 헤친다. 자신이 뿜어내는 눈부신 빛을 부드럽게 하고, 풍진 세상과 어우러진다(和其光, 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1) 이라 한다. 그러므로 현동에 이른 사람을 보면, 친밀하게 대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 이롭게 해야 할지 해롭게 해야 할지, 존경해야 할지 경멸해야 할지 사람들은 가늠하지 못한다. 외부의 힘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하다. 「제56장」

인간이란 자연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 철학의 토대는 인간이란 자연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에 있다. 따라서 인간적 지혜의 이상적 형태는 만물을 지배하는 자연 법칙을 인식하고 거기에 따르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변화하는 실체로 파악하고, 우주 만물의 변화 속에서 일정한 법칙을 찾아낸다.

그 법칙이란, 모든 현상의 배후에 깔려 있는 시공을 넘어선 본체와 그 운동 원리이다. 그 본체를 그는 ‘도’라고 했다. ‘도’는 ‘무(無)’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각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도는 한정될 수 없는 본체이므로 ‘무’라 할 수밖에 없지만,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약된 현상, 곧 만물로 나타나므로 ‘유’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무는 극소를 나타내고, 유는 극대를 나타내므로 도는 소(小)이면서 대(大)이다. 이처럼 도는 모든 대립을 통일하는 존재이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도 안에 포괄되는 대립 관계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결코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무는 늘 유로 바뀌려 하고, 유는 늘 무로 바뀌려 한다. 이렇게 대립하고 서로 전환하려는 운동이 도의 법칙이다.

대립 상태를 내포하면서, 그 대립적인 것으로 바뀌려 하는 것이 도의 운동이다(反者, 道之動). 늘 소극을 지키려 함으로써 한없이 적극으로 통한다. 그것이 도가 작용하는 형식이다(弱者, 道之用). 만물도 그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 곧 현상 일반에 도달한다. 그 유의 근원을 더 파고 들어가면 ‘무’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에 이른다. 「제40장」

서로 대립하는 것의 상호 전환 과정이 무한히 반복됨으로써 끝없는 생성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 노자의 자연관이다. 그러나 인간은 지각에 사로잡혀 대립하는 것의 일면[예를 들어 미추(美醜)에서의 미]만을 고집함으로써 자연의 변화에 어긋나는 작위의 마음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끝없는 미망(迷妄)에 빠지는 것이다.

책 속의 명문장

道可道, 非常道 / 도가도, 비상도
진정한 도는 절대 불변의 고정된 도가 아니다. 만물은 끊임없는 변화 속에 있다. 진정한 인식은 사물을 늘 변화 속에서 파악한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아름답다고만 생각할 뿐, 아름다움이 곧 추악한 것임을 모른다. 모든 대립적인 개념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구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물의 일면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上善若水 / 상선약수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기르면서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낮은 곳으로 향한다. 이 물과 마찬가지로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자만이 자유로울 수 있다.
功遂身退, 天之道 / 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세우면 뒤로 물러서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니, 끝까지 올라가면 이제 남은 것은 내려가는 일뿐이다. 성공했다고 그 지위를 끝까지 지키려 하다가는 재앙을 부를 따름이다.
大道廢, 有仁義 / 대도폐, 유인의
사람들이 인이니 의니 하게 된 것은 무위자연의 대도가 사라지고 작위(作爲)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뒤부터이다. 도덕이 필요 없는 세상이야말로 이상적인 사회이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만족하고 물러설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고, 오래 지탱할 수 있다.
大巧若拙, 大辯若訥 / 대교약졸, 대변약눌
진정한 기교는 치졸해 보이고, 진정한 웅변은 어눌하게 들린다. 모든 진실은 작위를 버리고 자연의 길을 따르므로 오히려 진실되게 보이지 않는다.

노담은 춘추시대 말기의 현자로, 공자에게 가르침을 준 적이 있다고 한다. 일설에 따르면 그의 성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담(聃)이라고 한다. 초(楚)나라 출신으로, 주나라 왕실에 소속되었으나 주나라의 덕이 쇠약해지자 함곡관을 떠나 행방을 감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실존했음을 뒷받침할 만한 문헌 자료가 없어 우화적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며, 설령 그의 존재를 긍정한다 해도, 『노자』라는 책의 저자가 그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노자』는 『노자서(老子書)』 또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이라고도 부른다. 그 용법이나 문자들을 보건대, 전국시대 이후의 작품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상적으로는 전국시대의 양주(楊朱), 송견(宋銒), 윤문(尹文), 전병(田騈), 신도(愼到), 장주(莊周)와 같이 훗날 도가(道家)1) 로 분류되는 학파의 설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도가에 속하는 사람들의 사상을 집약하고 체계화해 노담이라는 이름에 가탁한 것으로 보인다. ‘도’를 체현한 성인만이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정치론은 이윽고 법가의 설과 결탁해 군주 독재 체제의 확립에 기여했다는 의견도 있다. 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원리를 설파한 군사론은 ‘손자’의 병법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통용되는 『노자』는 후한 시대에 성립한 것으로 보이는 하상공(河上公) 주석본과 위(魏)나라 왕필(王弼)의 주석본이다. 1973년에 마왕퇴(馬王堆)에서 발굴된 『노자』 고사본 2종류는 전한(前漢) 초기나 그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현존하는 텍스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인데, 내용은 위의 2가지 주석본과 별 차이가 없고, 다만 상편과 하편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 현대 중국에서는 노자가 달성한 변증법적 인식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사상 전반은 귀족 계급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라 비판해 왔으나, 비림비공[批林批公2) , 린뱌오(林彪)3) 와 공자를 비판한 것] 운동 이후로는 그 사상의 병가적 또는 법가적인 측면을 평가하게 되었다.

노담
노담

요약 BC 6세기경에 활동한 중국 제자백가 가운데 하나인 도가(道家)의 창시자.
(병). Laozi. (웨). Laotzu.

노자(Laotzu)
노자(Laotzu)

개요

성(姓)은 이(李), 이름은 이(耳), 자는 백양(伯陽),또는 담(聃). 노군(老君) 또는 태상노군(太上老君)으로 신성화되었다.

도교경전인 〈도덕경 道德經〉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현대 학자들은 〈도덕경〉이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저술되었을 가능성은 받아들이지 않으나, 도교가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통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노자는 유가에서는 철학자로, 일부 평민들 사이에서는 성인 또는 신으로, 당(唐:618~907)에서는 황실의 조상으로 숭배되었다.

생애

노자는 그 역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신원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생애에 대한 주된 정보원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의 노자전(老子傳)이다. 그러나 BC 100년경에 〈사기〉를 저술한 이 역사가도 노자에 대한 확실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했다. 〈사기〉에 따르면, 노자는 초(楚)나라 고현(古縣) 여향(術鄕) 곡인리(曲仁里: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루이 현[鹿邑縣]) 사람으로 주(周:BC 1111경~255)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이었다.

사관은 오늘날 '역사가'를 의미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천문(天文)·점성(占星)·성전(聖典)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사마천은 노자의 벼슬에 대해 언급하고 난 뒤, 늙은 노자와 젊은 공자(孔子:BC 551~479)와의 유명한 만남에 대해 말했다. 이 만남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이 만남은 다른 문헌에서도 언급되어 있으나, 일관성이 없고 모순되는 점이 많아 단지 전설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진다. 노자와 공자가 만났을 때 노자는 공자의 오만과 야망을 질책했고, 공자는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아 그를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용에 비유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못지않게 유명한 전설은 노자가 서쪽으로 사라진 이야기이다.

그는 주가 쇠망해가는 것을 보고는 주를 떠나 진(秦)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다. 관문지기 윤희(尹喜)가 노자에게 책을 하나 써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노자는 5,000언(言)으로 이루어진 상편·하편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것이 도(道)와 덕(德)의 뜻을 말한 〈도덕경〉이다. 그리고 나서 노자는 그곳을 훌쩍 떠났고, "아무도 그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사마천은 기술하고 있다.

노자가 서쪽으로 간 사실과 〈도덕경〉을 저술한 점을 언급한 뒤에 사마천은 가끔 노자와 동일시되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 말했다.

"초(楚)에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있어서 책 15권을 저술하여 도가의 정신에 대해 서술한 바 있는데 공자와 같은 때의 사람이다." "주나라의 태사(太史)이며 위대한 점성술가인 담(儋)이 진(秦:BC 384~362)의 헌공(獻公)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떤 이는 그가 곧 노자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아니라고 한다." 사마천은 또 이렇게 덧붙였다. "노자는 150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200년 이상 살았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초인(超人)의 장수를 믿었기 때문에 도교 신자들은 그들의 스승이 매우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훨씬 뒤에 생겨난 전통으로 여겨지는데, 그 근거로는 BC 4세기경에 활약했던 장자(莊子)가 노자의 죽음에 대해 얘기할 때 그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자의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유로 사마천은 그가 은군자였음을 들었다. 은군자인 노자는 작위(作爲)함이 없이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바르게 되는 것을 가르쳤다. 실제로 중국 역사상 속세를 떠난 은자는 늘 있어왔다. 〈도덕경〉의 저자(또는 저자들)는 생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자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인가 하는 의문은 많은 학자들이 제기해온 것이지만, 그같은 의문은 별 의미가 없다.

현존하는 〈도덕경〉은 1명의 저작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 내용 가운데는 공자 시대의 것도 있지만 다른 내용은 훨씬 후대의 것임이 분명하므로, 이 책은 전체적으로 보아 BC 300년경에 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사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도덕경〉의 저자가 태사 담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학자들은 〈사기〉에 나오는 노자의 후손들에 대한 기술이 신빙성있다고 보고 노자의 생애가 BC 4세기말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노자의 가계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사마천이 살았던 시대에 이(李)라는 가문이 스스로 도교의 성현인 노자의 후예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이 있었음을 증명해줄 뿐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자가 실제로 존재했었는가를 조사하는 출발점이 될 수 없다. 노자라는 이름은 어떤 개인보다 특정형태의 성인집단(聖人集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인으로서의 전설

〈사기〉의 노자전과 기타 오래된 문헌에서 이따금씩 나오는 기술을 제외하고도 2세기 이후부터는 노자에 대한 성인전(聖人傳)이 여러 편 저술되었다.

이같은 전기는 도교의 형성사에서 흥미로운 것이다. 후한(後漢:25~220)시대에 노자는 이미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고 때로는 황제도 그를 숭배했다. 그뒤 종교계에서 성전(聖典)의 계시자이며 인류의 구세주인 노군(老君)으로 추앙되었다. 노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의 기적적인 탄생신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 있다. 노자의 어머니는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노자는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세상에 나왔다고 한다.

또다른 신화는 노자의 성(姓)이 생겨난 유래를 설명한다. 노자는 오얏나무[李木] 아래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오얏을 의미하는 이(李)가 성이 되었다고 한다. 이 두 신화는 도교신앙에서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번째 신화에 따르면 노자는 역사상 여러 명의 다른 인물이 되어 지상에 내려와 통치자들에게 도교의 교리를 가르친 것으로 해석된다.

2번째 신화는 노자의 서행(西行:함곡관으로 간 것) 이야기에서 발달된 것으로 이 신화 속에서 부처는 바로 노자라고 간주된다. 3세기경 불교의 포교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같은 이야기를 조작하여 위경서(僞經書)가 씌여졌다. 〈노자화호경 老子化胡經〉이 바로 그것인데, 이 책에서 불교는 도교의 아류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국의 역대 정부는 빈번히 이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노자라는 인물은 모든 계층에게 일반적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어왔다.

유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철학자였고, 평민들에게는 성현이나 신으로, 도교 추종자들에게는 도(道)의 화신이자 도교의 가장 위대한 신들 가운데 하나로 숭배되어왔다.

사상

도교의 모든 이론은 노자에 의해 마련되었다.

〈도덕경〉을 통해 볼 때, 노장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無僞自然)에 있으며, 그것이 ''(道)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여기서 '무위'는 우주론적 정향을 지향하는 것, 즉 부자연스런 행위를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위자연의 구체적인 의미를 말한다면 '사실 자체의 바탕 위에서 떠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자체란 다름아니라 노자에게 있어서는 자연이요, 도(道)요, 기(氣)요, 변화이다.

그리고 무위란 그 바탕 위에 서서 떠나지 않음을 의미한다.→ 도가와 도교

=
========================

 

도가의 창시자. 도교 사상은 흔히 노자와 장자의 사상으로 대표되어 ‘노장 사상’이라고도 불린다.
초나라 고현 사람으로 이름은 이, 자는 담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존 자체가 불분명하다.
《도덕경》을 저술하여 도의 개념을 정의하고, ‘허정’과 ‘무위’ 사상을 설파했다.

 

삶과 만물의 진리를 풀어내다

도가는 유가와 함께 중국 철학의 핵심 사상이다. 노자는 도가의 창시자로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하여 도의 개념을 정의하고, ‘무위(無爲)’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노자는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베일에 싸인 인물로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조차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실존했다고 전제해도 그가 공자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인지 이후의 인물인지에 대해서도 밝혀진 바가 없다. 노자의 탄생에 관해서는 그의 어머니가 유성을 보고 임신하여 82년이 지나 아이를 낳았는데, 태어난 아이의 머리카락이 마치 노인처럼 하얗게 세어 있어 노자라고 이름 지었다는 신비한 설화가 전한다.

《사기》 〈노장신한열전〉에 따르면 노자는 초나라 고현(苦縣) 사람으로 이름은 이(李), 자는 담(聃)이며, 주나라에서 도서를 관장하던 수장실(守藏室)에서 사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의 가설일 뿐이다. 노자가 도와 덕에 대해 논한 15편의 저서를 남긴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로 공자와 동시대 인물이었다는 설도 있고, 진(秦)나라 헌공(獻公)을 알현하고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예언한 주나라 태사 담(儋)으로 공자보다 후대의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사마천 역시 《사기》에서만도 노자의 실재를 확신하지 못하고 당대의 설들을 그대로 기록하여, 《사기》에 노자로 언급되는 인물이 여럿이다. 이는 노자가 은둔 생활을 한 데다 당시 유가와 도가가 서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물소를 타고 있는 노자
물소를 타고 있는 노자

함곡관의 관문지기 윤희가 꿈에 물소를 타고 오는 기인을 본 후 그를 맞이했다는 일화에서 기원한다.

《사기》에는 노자와 공자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노자가 주나라에 머무를 때 한 청년이 찾아와 ‘예’에 관해 물었다. 이에 대해 노자는 “옛날의 성인들은 모두 죽어 없어져 지금은 그들의 가르침만 남아 있다. 군자는 때를 잘 타고 나면 수레를 타는 귀한 몸이 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산야에 묻히게 된다.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보관하여 겉으로는 빈약해 보일지라도 내실은 강화한다. 군자도 이와 마찬가지로 덕을 몸에 갖추고 있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어리석은 것같이 해야 한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교만, 지나친 욕심, 위선적인 표정, 지식들을 다 버려라. 이런 것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느니.”라고 했다. 이 청년은 공자였다.

공자는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새는 날고, 고기는 헤엄치고, 짐승은 달린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고, 헤엄을 치는 물고기는 낚싯대로 낚을 수 있고, 나는 새는 화살을 쏘아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용은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알지 못한다. 노자는 마치 이 용 같은 인물로 전혀 짐작가는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노자는 자신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 스스로 재능을 숨긴 채 도와 덕을 닦았다. 그는 주나라에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주나라의 국력이 기울어 가는 것을 보고 주나라를 떠나 서쪽으로 가다가 함곡관에 이르렀다. 함곡관의 관령은 윤희(尹喜)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전날 밤 한 성인이 물소를 타고 함곡관을 향해 오는 꿈을 꾸었다. 노자가 꿈속의 성인임을 확신한 윤희는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노자는 윤희의 요청에 따라 사흘 동안 5천여 자의 글을 남겼는데 이것이 《도덕경》이다. 이후 노자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도덕경》
《도덕경》

함곡관의 관문지기 윤희가 노자에게 가르침을 간청하여 탄생한 책이 《도덕경》이다.

《도덕경》은 《노자》라고도 하는데, 노자의 실재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덕경》의 저자를 노자로 보는 견해와 도가 유파들이 편집한 책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도덕경》은 총 81장으로 상, 하 두 편으로 나누어진다. 상편은 《도경》으로 37장이며, 하편은 《덕경》으로 4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덕경》은 도(道)의 본체와 덕(德)의 쓰임을 설명하고 있는데, 상편 《도경》은 도의 정의를 풀이하고 있다. 도는 만물의 근원이며 우주 운행의 원리이고, 우주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자 이 모든 것을 주재한다. 도는 ‘되돌아감’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즉 달도 차면 기울고, 밀물은 썰물이 되고, 낮이 밤이 되고 밤이 다시 낮이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은 한쪽으로 가다가 그 끝에 도달하면 다른 쪽으로 가는 원리를 따른다고 했다. 또한 노자는 도의 성질을 만물의 생명에 기운을 주고 유약하여 다투지 않는 물의 성질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가장 약한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성난 파도로 바뀔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약한 것이 가장 강한 것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부드럽고 유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본 것이다.

《도덕경》의 하편 《덕경》은 덕의 쓰임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서 노자는 ‘허정(虛靜)’과 ‘무위(無爲)’, 즉 완전히 비움과 행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인간의 인위적, 과장적, 계산적, 자기 중심적인 행위 등을 버리고 꾸밈이나 장식이 없는 순박한 자연 그대로의 품안으로 들어갈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의 혼란, 갈등, 분쟁의 원인들이 해소되어 모든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 수 있으며 자연 또한 조화롭게 된다고 했다.

마왕퇴에서 출토된 노자 백서
마왕퇴에서 출토된 노자 백서

노자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인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회귀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주장하는 인의의 도덕적 관념을 버려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백성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지기 위해서는 위정자들이 최소한만 간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자는 위정자들이 인위적으로 백성들을 통치하려 하지 말고 ‘무위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당시 지배자들의 과도한 군비 경쟁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통하는 시대 상황을 비판했다.

노자는 백성의 수가 적은 원시적인 촌락이나 부족사회 같은 성격을 지닌 공동체, 즉 작은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자의 정치론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반복하던 당대의 제후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사상이었다. 위정자들에게 배척당한 도가 유파들은 은둔 생활을 지향했고 도가 사상의 한 줄기는 훗날 도교로 발전했다. 그러나 도교는 노자를 시조로 추앙하지만, 노자의 사상과 도교는 그 연관성이 희박하다.

=========================
 

 
시대 BC 560 ~ BC 530경

〈도덕경〉은 노자의 사상이 담겨 있는 저술로, 도(道)를 중심으로 만물의 기원, 도덕, 정치, 철학 등의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이 저술이 노자의 실제 저서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200년 후 전국 시대 때 장자에 의해 계승, 발전했다. 장자의 사상은 노자의 사상과 함께 '노장' 사상으로 불리며,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 현실 도피 사상, 은둔 사상 등 다양하게 인식되는 한편, 중국 역사상 은둔자의 철학으로 발전했다.

 
노자가 만년에 푸른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려 할 때 관지기 윤희가 그를 존경하여 한 권의 책을 얻고자 거듭 간청하니, 노자는 그곳에 머물면서 도를 설파하고, 단숨에 5천 자에 이르는 책을 써 주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도덕경(道德經)》이 편찬된 경위이다. 일명 《노자》라고도 하는 《도덕경》에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인 노자의 모든 사상이 담겨 있다.

도가 사상의 창시자 노자
도가 사상의 창시자 노자

초나라 출신인 노자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므로 그의 생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노자는 초나라 고현 출신으로 이름은 담(聃), 자는 백양(伯陽)이며 주나라 왕실의 장서 관리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생몰 연대가 불분명하고, 행적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이름과 생애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한다. 그를 노래자(老萊子), 태사담(太史儋)으로 부르기도 하며, 노자가 정치적 원인으로 노나라로 망명했을 때 당시 17세였던 공자가 그에게 주례(周禮)에 관한 질문을 했다고 하여 공자보다 20세 정도 연상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도덕경》을 전국 시대의 저술로 여기고 노자를 전국 시대 인물이라고도 한다. 심지어 노자의 실재를 부정하는 학자까지 있으며, 노자에 대한 분분한 설로 인해 《도덕경》의 실제 저자가 노자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즉 《도덕경》의 저자를 노자로 보는 견해와 전국 시대의 도가 유파들이 지었다는 견해가 상존한다.

《도덕경》은 상과 하, 두 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편 〈도경(道經)〉은 37장, 하편 〈덕경(德經)〉은 44장으로 총 81장이다. 모든 글은 간단한 운문체로 되어 있어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며, 도교 신자들은 후에 이것을 주문으로 외우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철학적 입장에서 전략, 전술을 다루고 있다고도 본다.

《도덕경》에서 볼 수 있는 노자의 사상은 철학 사상과 정치 사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노자의 철학 사상 중심에는 도(道)가 있다. 《도덕경》에서는 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이 천지의 시초이고, 이름이 있는 것이 만물의 어머니이다.

노자는 도를 만물의 기원으로 지칭했으며, 그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지만 그것을 굳이 명명해야 한다면 '도'라고 했다. 또 노자는 도를 '무(無)'라고도 했다. 여기서 무는 존재를 부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상대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무는 절대적이고 무한한 힘을 가지고 있다. 《도덕경》은 '천하 만물은 유에서 나오고 유는 무에서 나온다'라고 적고 있다. 노자는 무에서 유가 생성되고, 유가 다시 무로 돌아가는 원리에 따라 만물이 생성되고 멸한다고 보았다. 또한 만물의 생성은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불변의 법칙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무위(無爲)의 원리에 따르며, 인간도 천지 만물의 구성체인 만큼 무위를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노자의 정치 사상이다.

노자는 무위를 통한 지배를 강조해 사회 진보는 혼란을 야기할 뿐이고, 생산의 발전은 인간의 탐욕을 부추길 뿐이며, 탐욕은 전쟁의 원인이라고 했다. 또한 문화는 지식의 발전을 가져오고, 이는 결국 전쟁에 이용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문명이 없던 시대, 어리석을 정도로 순박한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탄생한 노자의 이상적 국가 형태가 '소국과민(小國寡民)'이다.

백성에게 문자 대신 새끼를 꼬아서 뜻을 전달하게 하고, 백성은 스스로 만든 음식을 맛있어 하며, 스스로 짠 옷을 입으며, 내 집에 살면서 편안함을 느끼며, 예부터 해온 것들에 만족한다. 이마에 손을 얹고 보면 이웃나라가 들어오고, 닭이 우는 소리,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있어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오가는 일이 없다.

이처럼 인구가 적고 작은 나라가 노자의 이상국이었다. 이러한 노자의 주장은 현실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이 주장은 통치자들의 신랄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는 크고 강한 것이 작고 약한 것을 지배하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사회였기 때문이다.

노자의 사상은 약 200년 후 전국 시대 장자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장자는 노자와 함께 '노장'으로 불리는 도가의 대표 사상가로, 그의 일생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으나 저서인 《장자》는 도가의 핵심 경전으로 유명하다. 《장자》는 총 33편이 전해지며, 크게 〈내편〉, 〈외편〉, 〈잡편〉으로 나누어진다. 《장자》는 우언 형식을 띤 글들이 대부분이며 문학적 상상력과 표현력이 우수하여 문학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도교 스승들이 황제에게 《도덕경》을 바치는 모습
도교 스승들이 황제에게 《도덕경》을 바치는 모습

도가 사상은 한나라 시대에는 황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정치, 군사에 적용되었으며, 일부는 후한 시대에 도교로 발전했다.

장자 역시 도를 우주 만물의 원천이라 여겨 《장자》에 '도란 무엇인가? 그 어떤 것에서도 생겨나지 않으며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아서 그 자체가 근원적인 존재이며, 하늘과 땅이 열리기 전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라고 기술했다. 장자는 인위가 세상 모든 싸움의 원인임을 지적하고, 언어와 지식을 부정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관과 판단을 거부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을 잊고 천지 만물과 혼연일체를 이룰 것을 주장했다. 이를 이룬 자를 지인(至人)이라 일컬었으며, 지인만이 절대 자유의 세상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도교로 발전한 도가 사상
도교로 발전한 도가 사상

노자의 사상은 《도덕경》을 기반으로 하여 도교로 발전했다.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사상은 자유를 추구했다. 자유는 절대적이며, 누구라도 도를 깨닫기만 하면 절대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도가 사상은 절대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이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현실 도피 사상', '은둔의 사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따라서 도가 사상은 중국 역사 속에서 귀족과 지식인들에게는 패배자, 은둔자의 철학으로 여겨지며 발전했고, 어렵고 추상적인 면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백성들에게는 종교를 떠올리게 했다.

도가 사상은 한(漢)나라의 개국과 함께 위정자 사이에서 황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황로 사상은 황제(黃帝)와 노자의 준말로, 노자의 사상이 정치나 군사에 적용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개국 초기에는 계속된 전쟁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졌다. 따라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더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절실했다. 조참, 진평, 전숙, 급암, 직불의, 사마담 등이 황로 사상의 대가들에게 교육을 받았으며, 한 문제(漢文帝), 문제의 황후 두씨, 두씨 일가, 한 경제(漢景帝)도 황로 사상을 배웠다. 하지만 한나라 중기에 사회와 경제가 발전하면서 사회적 모순과 민족 갈등이 격화되고 정치 상황이 복잡해지자 도가 사상은 더 이상 통치 사상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이에 유가에게 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장릉
장릉

천사도를 창시한 인물. 천사도는 노자를 시조로 하며 《도덕경》을 경전으로 삼았으니, 이것이 곧 도교의 시작이었다.

한편 도가 사상의 한 줄기는 후한 시대에 도교로 발전했다. 당시 장릉(張陵)이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도 불렸던 천사도(天師道)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도교의 출발이었다. 이들은 노자를 시조로 하고, 《도덕경》을 경전으로 삼았다. 이후 도교는 불교와 결합하여 민간 신앙으로 발전해 현실의 고난을 비판하고, 새 세상을 원하는 민중의 바람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국 역사상 도교의 영향을 받은 민중 봉기가 다수 일어났다.
========================
 

노자의 생애와 사상 

 

우리는 노자라 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하는 것 없이 숨어살라고 주장한 은자적 사상가라고 그릇된 인상을 가지기 쉽다. 그러나 노자의 사상은 깊고 깊은 고요 속에서 더욱 큰 행위에 대한 의욕이었고 항상 내적 반성과 전쟁과 흥망으로 해가지고 날이새는 격동의 시대였다. 우국지사와 온천하를 구하려는 사상가들이 저마다 이상을 이루려고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며 그리스의 소피스트와도 비할 수 있는 제자상황판단을 냉철히 하려는 비판정신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노자를 낳은 중국 춘추전국시대란 백가들이 난무하였다. 이러한 격동기 속에서 도의 사상이 꽃피웠던 것이다. 노자는 현상의 세계에서 본체의 세계로 눈을 돌린다. 모든 사상가들이 이세상 문제에 매어 있을 때 그는 초월한 궁극의 세계로 지향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변화와 존재와 유의 절대적 근원인 도에 이르러 확고한 주체성을 확립한다.

 

 老子의 생애

공자는 일찍 老子(노자)를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으나 老子(노자)는 공자의 학문방법과 태도에 대하여 엄한 충고를 했다. 공자는 돌아와 老子(노자)를 龍(용) 에 비유하며 찬양하였다. 老子(노자)의 학문은 재능을 숨기고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했다. 오랫동안 周(주)나라에 살다가 周(주)의 德(덕)이 시드는 것을 보고 그곳을 떠나 函谷關(함곡관:또는 사관이라고도 한다.)에 이르렀다. 그곳 關令(관령)인 尹喜(윤희)가 원하는 대로 상,하2편을 써서 道(도)와 德(덕)의 학설을 5천여마디의 글자로 기술하고 떠났다. 그러나 그의 최후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老子의 傳說

604년 9월 14일 楚(초)나라 苦縣(고현)의  鄕(여향) 曲仁理(곡인리)에 한 여인이 오얏나무에 기대어 한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는 다름아닌 신과 같은 위인이 될 운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생 상황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떨어지는 별을 찬미한 뒤 62년간을 임신해 있었고 또 그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태내에 있었으므로 그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주위의 오얏나무를 가리키면서 나는 이 나무를 따서 내 姓(성)을 짓겠다고 하였다. 그는 오얏나무에다 그의 큰귀를 상징하는 이름을 붙여 자기 이름을 李耳(이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머리칼은 벌써 백설같이 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老子(노자)즉 늙은 소년이라 불렀다. 그가 죽은 뒤 사람들은 그를 老聃(노담)이라고도 하였다. 담이란 귀가 넓적하고 축 처져서 귓바퀴가 없다는 뜻이다.

 

 

 

老子의 思想

 모든 것을 부정하여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老子(노자)의 주장이었다.

 

 

 德과 道의 觀念

德(덕)의 사상은 周(주)나라 사람의 독특한 사상이다.

 다시 말하면 殷(은)나라 사람은 天(천)을 하느님으로 보았는데

周(주)나라 사람은 天(천)을 도덕의 근원으로 보았다. 文王(문왕)과 같이 德(덕) 있는 군자라면 하늘이 도와주고 周(주)와 같이 포악한 군주면 하늘이 망하게 한다는 것이다. 蒸民(증민)에 의하면 하늘이 뭇백성을 낼 때에 物(물)이 있으면 則(칙)이 있다 하였고 백성이 秉 (병이)하여 이 懿德(의덕)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것은 모든 서민은 다 하늘이 낸 것인데 物(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는 것과 같이 백성에게는 덕을 좋아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이다. 이 德(덕)자는 글자로 보면 從直從心(종직종심)이니 즉 直心(직심)이다. 공자의 仁(인)도 이 直心(직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 가운데 자주 直(직)을 말하였다. 이것으로 보면 仁(인)은 마음이 直(직)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巧言令色(교언영색)은 仁(인)을 하기 드물다. 하였다. 仁(인)뿐만 아니라 유가의 중요한 덕목인 忠(충)과 恕(서)도 그렇다. 공자가 우리 道(도)는 하나로 꿰뚫는다 할 때에 曾子(증자)의 道(도)는 忠恕(충서)일 뿐이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공자의 道(도)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이요 또한 당위법칙인 것이다.

 

 老子의 道와 自然觀

 老子(노자)의 道(도)는 유가에서 말하는 仁(인)의 道가 아니요 忠恕(충서)의 道(도)도 아닌 바로 자연인 것이다.

자연이라 함은 하느님의 의지나 또는 사람의 행위로써 만물을 창조 또는 시켜서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법칙으로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老子(노자)의 道(도)는 바로 자연 법칙이다. .

 

人間觀과 倫理觀

老子(노자)는 생명도 물질도 다 道(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였으며 사람도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에 사람만이 자각하는 존재이며 자기와 세계의 근본이 되는 근거를 자각할 수 있다 하였다. 그런데 사람을 자각하게 하는 知(지)의 활동은 사람을 그릇된 앎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知(지)가 있기 때문에 생성하는 자연 필연한 과정 속에서 그것을 거슬려 무엇을 하려는 마음을 일으키거나 스스로 죽음을 불러오는 잘못을 범하는 과실을 범하거나 하는 것이다. 老子(노자)는 그의 윤리설을 통하여 이 知(지)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전개한다.

 

 

  無爲說

 無爲(무위)란 결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법칙에 대하여 철저히 인식하고 그 인식에 서서 능동적으로 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 냉정한 비판 정신과 굽힐줄 모르는 실천 의욕의 통일이 있고 인간의 주체성 확립을 보장하는 인간 행위의 극치가 있는 것이다.

 

 

 

========================
 

자연과 하나됨을 추구한 노자

노자(老子, 기원전 579? ~ 기원전 499?)는 도가 사상의 창시자로 춘추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고, 그의 생애가 어떠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다만, 사마천이 당시까지 전해 오는 노자의 인물과 생애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모아 “사기”에 간략히 정리한 것이 현재 전해지는 노자에 관한 내용 대부분이다.

사마천에 의하면, 노자는 초나라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이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聃)으로, 주나라 수장실(守藏室)의 사관(史官)이었다고 한다. 사관은 오늘날에는 역사가를 의미하지만, 고대 중국에서는 천문(天文) · 점성(占星) · 성전(聖典)을 전담하는 학자였다. 노자가 쇠망해 가는 주나라를 떠나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관문지기인 윤희라는 사람이 노자에게 “공께서 바야흐로 은둔하려 하시는데, 나를 위해 책을 저술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고 한다. 이에 노자는 5천 자에 이르는 책, 곧 “노자”를 남기고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뒤에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사마천은 기술하였다.

노자라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면서도 확신이 없었는지 사마천은 노자와 동일시되는 다른 인물들에 관해서도 소개하였다. 그는 공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초나라의 노래자(老萊子)라는 사람이 “노자”를 지었다는 설과 아울러, 공자가 죽은 뒤 129년이 지나 활약한 주나라의 태사(太史)인 (聃)이 곧 노자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한다. 이렇듯 노자라는 인물의 생애가 불분명한 것은 노자가 이름 남기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은자(隱者)였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 속세를 떠난 은자는 늘 있었고, “노자”의 저자 또한 생애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은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한 시대에 이르러 노자는 신화적인 인물로 이해되어 사람들의 숭배를 받았다. 그리고 노자에 대한 여러 전설이 만들어졌다. 노자의 출생에 대해서는 석가모니의 탄생 신화에 영향을 받아 노자의 어머니가 노자를 72년간 임신하고 있었고, 어머니의 옆구리를 통해 이 세상에 나왔다는 전설이 전하며, 노자가 자두나무 아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두를 의미하는 이(李)가 성이 되었다는 전설 또한 전해지고 있다.

 

노자 명언 모음



가볍게 승낙하는 것은 반드시 신용이 적고 
쉽다는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움이 많다. 

노자 



가장 강력한 무기는 축복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런 것에 기대는 사람이야말로 현자이다. 

그들은 전쟁 한번 하지 않고 평화로 싸움에서 이긴다. 

노자 



가장 완전한 것은 무엇인가 모자란 듯하다. 

하지만 그 효용이 다함이 없다. 

충만된 것은 텅 빈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그 효용에는 끝이 없다.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서툴게 보이며 뛰어난 웅변은 눌변처럼 들린다.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노자 



가장 으뜸가는 처세술은 물의 모양을 본받는 것이다. 

강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물처럼 되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으면 물은 흐른다. 

둑이 가로막으면 물은 멎는다 

둑이 터지면 또 다시 흐른다. 네모진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또 다시 흐른다. 

네모진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으면 둥글게 된다. 

그토록 겸양하기 때문에 물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또 무엇보다도 강하다. 

노자 



가장 이상적인 생활 태도는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면서 상대를 거역하지 않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흘러간다. 

물처럼 거스름이 없는 생활 태도를 가져야 

실패를 면할 수 있다. 

노자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머물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천하의 지극히 부드러운 것이 천하의 강한 것을 지배한다. 

노자 



강한 군대로는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노자 



강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물과 같아야 한다. 

노자 



강해지려면 흐르는 물처럼 되어야만 한다. 

물이란 장애물만 없으면 유유히 흐르고 장애물이 

있으면 흐르지 않는 법이다. 

네모난 관이면 물은 네모나게 흐를 것이요 

둥근 관이면 물은 둥글게 흐를 것이다. 

물은 부드럽고 마음대로 흐르기 때문에 가장 

불요불급(不要不急)하고도 강한 것이다. 

노자 



곧으려거든 몸을 구부리라. 

스스로는 드러내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그 존재가 

밝게 나타나며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그 옳음이 드러나며 스스로를 뽐내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공을 이루고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그 이름이 오래 기억된다. 

성인(聖人)은 다투지 않는 까닭에 천하가 

그와 맞서 다툴 수 없는 것이다. 

'구부러지는 것이 온전히 남는다'는 옛말을 믿어라. 

진실로 그래야만 사람은 끝까지 온전할 수 있다. 

노자 



공을 세운 뒤에는 물러가는 것이 하늘의 길이요. 

사람의 도리다. 

노자 



공(功)이 이루어지면 그 속에 살 생각을 마라.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야 한다. 

노자 



군대가 강하면 즉 멸망할 것이요. 

나무가 단단하면 즉 부러진다. 

노자 



금욕은 반드시 습관이 되어야 한다. 

금욕을 하면 할수록 덕을 그만큼 쌓게 되고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억제치 못할 것이 없게 된다. 

노자 



끝을 맺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가 없다. 

노자 



나에게 몸이 없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노자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 있는 자이지만 자기를 

아는 사람이 더욱 명찰한 자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는 자이지만 자기 

스스로를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노자 



남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덕이 있는 사람이다. 

남에게 이기는 사람은 힘이 강한 사람이며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굳센 사람이다. 

죽음에 임해서도 '나는 이제 영원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노자 



남의 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 이상으로 

총명한 사람이다. 

남을 설복시킬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 을 이겨내는 사람은 

그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다. 

노자 



내가 말하는 도(道)를 듣고 소인배들이 웃지 않는다면 

내 도(道)는 도가 아니다. 

노자 



누군가를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강력한 사람이다. 

노자 



눈(目)이 아닌 배(復)로 보라. 

노자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현명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더욱 강하다. 

죽으면서도 자기가 멸망하지 않을 것을 

아는 자는 영원하다. 

노자 



대개 가벼이 승낙하는 것은 반드시 믿음성이 적다. 

너무 쉬운 일에는 반드시 어려운 일이 많다. 

노자 



대국을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 

노자 



도덕이라든가 인의(仁義)란 인간이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생활태도를 규제하는 인위적인 틀에 

불과하며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하면 할수록 

인간의 본성은 손실될 뿐이다. 

노자 



도(道)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도가 아니다. 

노자 



만사(萬事)를 제 갈 길에 맡겨 두고 간섭하지 말라. 

노자 



만족을 모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화근이다. 

노자 



많이 아는 자는 떠벌리지 아니하며, 성인(聖人)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다. 

노자 



맡은 바 일을 다하고 공명을 누리고 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순리이다. 

노자 



명예는 공기(公器)이다. 너무 많이 취하지 말라. 

노자 



문밖에 나가지 않아도 천하를 다 안다. 

노자 



물만큼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물은 굳고 강한 것과 싸워 이긴다. 

물보다 센 것은 없다. 

이는 물이 약하기 때문이다. 

노자 



믿음이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이 없다. 

노자



배가 있고 수레가 있어도 그것을 탈 일이 없게 하라. 

노자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중(重)하게 여겨. 

멀리 이사 다니지 아니 하게 하라. 

노자 



부족하다 할 때 손을 때면 욕을 당하지 않고 

머무를 줄 알면 위험을 면한다. 

노자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道)를 본받는다. 

노자 



사람의 덕과 지혜가 완전히 성숙하게 되면 그는 

또다시 어린아이와 같게 된다. 

노자 



선한 말은 시장에서 당신의 명예를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행동은 당신이 사람들 속에서 

친구들을 얻게 하는 것이다. 

노자 



성인(聖人)은 모든 것이 되도록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한다. 

노자 



스스로를 나타내는 자는 분명히 나타나지 않고 

스스로를 옳다고 하는 자는 드러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는 공(功)이 없고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는 오래 가지 못한다. 

이는 모두 발끝으로 오래 서 있으려는 것과 같다. 

노자 



신의 있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엔 신의가 없다. 

착한 사람은 말에 능하지 않고 말에 능한 

사람은 착하지 않다. 

노자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지껄이는 자는 알지 못한다. 

노자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다. 

노자 



아직 잔잔할 때에 평온의 기반을 견고히 하라. 

아직 나타나기 전에 예방하라. 

없애야 할 것은 조그마할 적에 미리 없애도록 하라. 

버려야 할 물건은 무거워지기 전에 

빨리 버리도록 하라.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이 터지기 전에 주의해야 한다. 

터진 뒤에는 이미 때가 늦다. 

노자 



우리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은 영원한 것이 못되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존재도 영원한 것이 못된다. 

노자 



위대하게 되려면 자꾸만 가야하고 자꾸만 가려면 

멀어져야 하고 멀어지려면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노자 



이 세상에 물보다 더 무르고 약한 것은 없다. 

그러나 약한 물이 바위 위에 계속 떨어질 때 

그 바위는 구멍이 뚫리고 만다. 

이처럼 약한 것도 한 곳에 힘을 모으면 강한 것을 

능히 이길 수 있다. 

노자 



인간의 세상만사를 관리함에 있어서 자제보다 

더 좋은 규칙은 없다. 

노자 



자기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노자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무시함으로써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 

노자 



자비·검약·겸허를 몸가짐의 삼보( 三寶 )로 하라. 

노자 



잘 싸우는 자는 노하지 않고 잘 이기는 자는 

잘 싸우지 않는다. 

노자 



재물과 보화가 가득 차 있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그것을 지켜낼 수는 없다. 

부귀한 지위에 만족하고 교만에 차 있으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될 것이다. 

공을 이루고 이름을 떨쳤으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노자 



적응하는 힘이 자제( 自制 )로와야 사람도 

그가 부닥치는 운명에 굳센 것이다. 

노자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결코 

말싸움을 하지 않으며 말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 

진실 된 말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며 즐거움을 

주는 말은 결코 진실 되지 못하다. 

노자 



족한 줄을 아는 자는 욕을 당하지 않는다. 

노자 



좋은 군대는 도전적이 아니다. 숙련된 

투사는 성급하지 않다. 

사람을 부리는 것이 능란한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다. 

겸손은 무저항의 덕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천명과 

일치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노자 



좋은 상품은 깊이 간직하여 아무 것도 없는 

양 가장하는 것이 뛰어난 상인이다. 

노자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만족하면 수치를 당하지 않고 

자기 영역 안에 머물 줄 알면 위태롭지 않으며 

이로써 오래 견딜 수 있다. 

노자 



지혜로운 사람은 보석으로 존중받기도 원치 않으며 

돌로 무시 받기도 원치 않는다. 

노자 



진실이 있는 말은 결코 아름답게 장식하지 않고 

화려하게 장식한 말은 진실이 없는 법이다. 

노자 



참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좋지 못하다. 

노자 



천 리 길도 발 밑부터 시작한다. 

노자 



천하를 사랑한다면 천하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노자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에 혜택을 

주지만 스스로를 내세워 만물과 다투려 

하지 않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사는 데는 땅이 좋고 마음은 깊은 것이 좋고 

사귀는 데는 인(仁)이 좋고 말은 신의가 있는 것이 좋고 

정치는 다스려져야 좋고 일 처리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시기에 맞는 것이 좋지만 물처럼 겸허해서 

다투지 않을 때 비로소 허물이 없을 수 있다. 

노자 



큰 나무도 가느다란 가지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10층의 탑도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아올리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처음과 마찬가지로 주의를 

기울이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노자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 

노자 



타인에 관해 여러 가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박식한 것이지만 자신에 관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노자 



한 아름의 나무도 티끌 만한 싹에서 생기고 

9층의 높은 탑도 흙을 쌓아서 올렸고 천리 길도 

발 밑에서 시작된다. 

노자 



항상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노자 



현명한 사람은 비행동을 실천하고 비활동에 

관심을 가지며 맛이 없는 것을 맛보는 사람이다. 

노자

 

 

 

앵두님께서 올려주신 게시물입니다

 

사랑하는 님들이시여

 

수욜 화이팅!요~~~~^^*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090 "자그마한 세계" 2018-06-14 0 2260
1089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공상 2018-06-14 0 4722
1088 "비가 온다야 개미야 대문 걸어 잠궈라"... 2018-06-13 0 2325
1087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창공 2018-06-12 0 4323
1086 "꽃씨가 되여봄은..." 2018-06-12 0 2085
1085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래일은 없다 2018-06-11 0 3281
1084 "우리는 '바다'에 관한 시를 쓸줄 모르외다"... 2018-06-11 0 2340
1083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삶과 죽음 2018-06-11 1 8324
1082 [매일 윤동주 시 한수 공부하기] - 초한대 2018-06-10 0 4981
1081 "할머니가 흘러간 그 시간의 탑이지요"... 2018-06-09 0 2437
1080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조선인민군행진곡 작곡가 - 정률성 2018-06-08 0 4952
1079 동시는 개구쟁이 애들처럼 써라... 2018-06-07 0 2373
1078 "너 이름 뭐니...." 2018-06-07 0 2387
1077 별, 별, 별... 2018-06-06 0 2234
1076 동시창작 다양화를 두고 / 김만석 2018-06-03 0 2369
1075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2018-06-02 0 2302
1074 "나무들이 작은 의자를 참 많이도 만든다"... 2018-06-02 0 2360
1073 "엄마와 아빠는 늘 바쁜 바다랍니다" 2018-05-31 0 2500
1072 "쌍둥밤은 엄마하고 냠냠"... 2018-05-30 0 2285
1071 "소나무는 꿈을 푸르게 푸르게 꾸고 있다"... 2018-05-30 0 2598
1070 "햇살 한 줄기 들길로 산책 나왔다"... 2018-05-28 0 2355
1069 "조선의 참새는 짹짹 운다" 2018-05-26 0 2374
1068 천재시인 李箱의 련작시 "오감도 제15호" 뮤지컬로 태여나다 2018-05-24 0 2656
1067 맹자 명언 2018-05-22 0 3705
1066 노자 도덕경 원문 . 해설 2018-05-22 0 4619
1065 노자(老子) 도덕경 명언 명담 2018-05-22 0 3441
1064 노자 도덕경 명언 모음 2018-05-22 0 6049
1063 중국 노나라 유교 시조 사상가 교육자 - 공구(공자) 2018-05-22 0 6375
1062 중국 춘추시대 현자 - 노담(노자) 2018-05-22 0 4648
1061 "돌멩이를 아무데나 던지지 마세요"... 2018-05-22 0 2272
1060 김철호 / 권혁률 2018-05-16 0 2569
1059 미국 녀류화가 - 그랜드마 모제스 2018-05-04 0 4736
1058 청나라 화가, 서예가 - 금농 2018-05-04 0 4231
1057 청나라 가장 유명한 양주팔괴 서예가들 2018-05-04 0 2495
1056 "사랑의 깊이는 지금은 모릅니다"... 2018-05-04 0 2304
1055 미국 시인 - 칼릴 지브란 2018-05-04 0 4157
1054 박문희 시를 말하다(2) / 최룡관 2018-05-02 0 2750
1053 박문희 시를 말해보다 / 김룡운 2018-05-02 0 2987
1052 "산노루" 와 "숫자는 시보다도 정직한것이었다"... 2018-04-26 0 2409
1051 축구세계, 시인세계... 2018-04-25 0 3095
‹처음  이전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