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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늘 령감의 메시지를 잡을줄 알아야...
2017년 03월 15일 19시 28분  조회:2619  추천:0  작성자: 죽림

 

한 편의 시가 태어나기 까지/이희정 





이제 드디어 시인은 하나의 시를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을 느낀다. 그 욕망은 단순히 욕망이라기보다는 마치 육체에까지 스며드는 實感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지금까지 시의 씨앗이 뿌려짐과 그것의 자람은 밖으로는 먼 곳을 나는 시조새의 실루엣처럼 막연하게 보이거나 안으로는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태아의 숨결처럼 희미하게 느껴졌는데 이제 그것이 내 몸에 확연히 들이닥치려 하거나 내 몸에서 뜨겁게 분출하려는 찰나에 시인은 흥분하기도 하고 두려워하기도 하고 펜을 잡기를 계속 주저하기도 하고 온 신경이 곤두서기도 한다. 이때가 바로 시가 탄생하려는 순간이다. 

시인은 숨을 죽이고 책상 앞에 앉아 있다. 아니면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아니 미친 듯이 시골길을 헤매고 돌아다녀도 상관없다. 아니면 기차로 여행하고 있어도 괜찮다. 무엇이든 좋다. 시를 자기의 태내에서 끄집어내는 데 주의를 집중시키게 해주는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좋다. 시인은 그러한 가운데서 그 시의 속을 들여다보고 몇 주일이나 몇 달 전에 처음으로 머리에 떠오르거나 겪은 그 씨앗, 그러니까 그 뒤 감쪽같이 잊어버리고 있던 그 씨앗을 발견한다. 그러나 어느새 그 씨앗은 훌륭하게 성장하고 발전해 있는 것이다. 

< 한마디로 이번 단계는 방안에 갇혀 있던 시가 문에 몸을 부딪치면서 빨리 내어달라고 조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문이 열린다. 그러나 놀랍게도 맨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완성된 시가 아니다. 그것은 그 시의 대체적인 모습과 관념이다. 때로는 그 시의 1절이 얼렁뚱땅하게 맞추어졌을 뿐인 경우도 있다. 실은 시를 쓰는 괴로운 작업이 시작되는 것은 이때부터인 것이다.> 

사실 과장할 것 없이 그것은 괴로운 작업이다. 시인은 그 시의 완성되지 않은 부분을 끌어 내와야 한다. 여기다 형태를 맞추어주어야 한다. 그 시 속의 하나하나를 개개 시인이 각종 자재들을 골라 집을 짓는 건축가나 데생 위에 각종 색을 칠해 입체적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처럼 말이다. 이는 참으로 괴로운 작업이다. 시에 따라서는 비교적 쉽게 순산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너무도 괴로운 작업이어서 자기 스스로 납득할만한 단 한 줄을 쓰는데 몇 시간 또는 며칠이나 걸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서 나의 독특한 경험을 한 가지 말하고자 한다. 시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것이 무척 자라있는데도 그것을 탄생시키지 못하고 망설이고 두려워하고 헤맨다. 그렇게 헤매다 보면 내게는 출산을 돕는 어떤 계기가 대개 찾아온다. 그것은 특히 그 마음속에서 분출을 기다리는 시, 곧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감정, 새로운 해석의 심리적 상태가 찾아왔을 때이다. 

가령「직관」라는 다음의 제 시를 보자. 


간밤 뒤란에서 
뚝 뚜욱 대 부러지는 소리 나더니 
오늘 새벽 큰 눈 얹혀 
팽팽히 휘어진 참대 참대 참대숲 본다 
그중 한 그루 톡, 건들며 참새 한 마리 치솟자 
일순 푸른 대 패앵, 튕겨져 오르며 눈 털어 낸 뒤 
그 우듬지 바르르바르르 떨리는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이여 

사랑엔,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만리장성 쌓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는 대나무 고장인 담양, 그것도 대밭 밑 집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폭설이 내린 대숲의 장관을 해마다 몇 번씩 보고 살았다. 그 폭설에 밤이면 뒷문으로 대 부러지는 소리가 밤새 들리고,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면 어른 팔뚝만한 대들이 팽팽히 휘어져 고샅길을 아치인양 덮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팽팽히 휘었으면 거기에서 톡, 날아오른 참새 한 마리의 발짓에도 일순 패앵, 소리가 날 정도로 튕겨져 오르며 그 우듬지를 창공 깊숙이 바르르바르르 떨겠는가. 그런 장관이 진즉 마음속에 시의 씨앗으로 심기고 그것이 대나무처럼이나 자라있음에도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출산시킬까 몇 년을 망설였는데 어느 아침 그 계기가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 전날 낮에 아내와 경제 문제로 심하게 다툰 뒤, 밤에 어찌어찌 화해하고 그 긴장된 몸과 마음으로 섹스를 나누었는데, 부부 싸움 칼로 물베기요 하룻밤에 만리장성 쌓는 일이라고 하더니 그것이 딱 들어맞더라는 것이다. 기분이 상쾌해져 아침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오니 예의 그 장관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순간 “눈빛 한번의 부딪침으로도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사랑이다”라는 말이 떠오르며 앞에 펼쳐진 대숲의 장관이 금방 사랑과 연결되는 것이다. 휘어진 참대는 절정을 향한 그 팽팽한 긴장의 순간, 그런 대가 새 한 마리 톡 건들자 패앵 튕겨져 오르는 순간은 절정이 터지는 순간, 그 대 우듬지가 바르르바르르 떨리는 순간은 절정의 환희와 여진의 순간, 저 창공의 깊숙한 적막은 오르가슴 뒤의 죽음과 같은 적막과 혹은 평안의 순간, 큰눈 곧 폭설은 크나큰 사랑의 마음을 상징화하는 순간이었다. 

혹자는 이 시를 단순한 풍경시로 보아 2연은 없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지만 그러나 그 부분이 없었으면 아예 이 시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잘 눈치 챈 어느 평론가는 이 시에 대해 “사랑은 절대순결의 충만이며 그 탄력이다. 마침내 저 무한 穹窿의 아득함으로 치솟아 올라 가물가물 점 하나로 잦아들게 하는 몰입이 있다”고 했으니 나의 의도와 잘 들어맞는 평문이었다. 

< 어쨌든 그런 형편이니 비록 <영감>이라고 해도 그 의미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마침 황금과 같은 아름다운 단어의 홍수가 시인의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와 그것이 솜씨 좋게 자연적으로 시의 한 행 한 행에, 한 절 한 절에 늘어놓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감은 결코 전가의 보도나 요술지팡이가 아닌 것이다. 영감이란 한 편의 시에 있어 첫 씨앗이 시인의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는 때를 말한다.> 여기서 ‘뿌리를 내리다’라는 말에 주의하자. 시인은 온갖 경험을 가질 수가 있다. 온갖 관념이나 이미지를 받을 수가 있다. 그러한 것들을 몇 개의 시의 씨앗으로 삼으려고 하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까닭인지 그것들은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즉 반드시 시인의 상상력 안에 깊이 뿌리박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배양한다고만 할 수 없다. 그리고 또 시인은 과연 자기의 온갖 경험 가운데 어느 것이 스스로 형태를 갖추어서 한 편의 시가 되어, 마치 그 시가 제발 나를 낳아달라고 조르는 그러한 시가 되는가: 그 줄거리는 바로 당자인 시인으로서도 도무지 모르는 것이다. 영감이란 단어를, 시가 만들어지는 단계의 이러한 순간, 즉 시인이 금방이라도 한 편의 시를 낳을 준비가 다 되었다는 것을 마음을 두근거리면서 자각하는 순간으로 적용해도 틀림없다. 

이 순간을 설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마치 우리가 어딘가 먼 방송국에서 오는 방송을 캐치하려고 우리의 라디오에 스위치를 넣는 것과 같다.「다이얼을 돌린다, 1밀리미터만 틀려도 안 된다, 오랜 침묵이 있다, 기계가 열을 띠어온다, 한참 있으면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온다, 말이 점점 알아듣기 쉽고 알기 쉬운 말이 된다.」 도대체 이 영감이 어디서 오는지 정말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치 어느 방송국으로부터 보내는 전파를 잡기 위해 우리가 라디오 세트를 필요로 하듯, 

시인은 영감의 메시지를 잡기 위하여 자기 몸 안에 장치된 일종의 예민한 기계장치를 필요로 한다. 이 기계장치가 곧 시적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조금의 상상력은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상상력은 또 몇 가지 특수한 방법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나는 얼마 전 시적 상상력을 잘 구사하는 일곱 가지 방법을 얘기한 적이 있다. 앞으로 시의 일곱 가지 재료와 그것의 사용법을 강의하여서 시적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드리겠다.) 

< 그런데 무엇보다도 시인이 상상력을 발달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즉 시를 쓰는 일이다. 습관적으로 쓰는 일이다. 이 습관은 직업적인 진짜 시인과 가끔 심심풀이로 시를 써보는 사람을 구별하는 차이점의 하나다. 또한 시인은 마치 마술사가 무의식적으로 늘 동전을 만지작거려서 오른손을 가만두지 않듯이 늘 언어를 만지작거림으로서 상상력을 발달시킨다. 

만일 여러분이 언어라는 것-그 음운과 모양과 의미( 리듬과 이미지와 의미)에 몹시 매력을 느껴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머릿속에서 회전시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시인이 되기 힘들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인은 凝視라는 것을 통해서 그의 시적 능력을 발달시킨다. 그것은 자기 밖에 있는 세계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같이 가만히 바라보는 일, 자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인생의 불가사의와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 일과 또 끊임없이 인생의 밑바닥에 숨어있는 신비적인 바탕무늬를 잡으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러나 시인이 자기의 직무에 아무리 충실하다 해도, 아무리 응시와 연습을 쌓아도, 아무리 교묘한 말의 장인이 된다 해도 시인은 영감을 자기 힘으로 좌우할 수는 절대 없다. 영감은 몇 달간이나 시인 곁에 머물러 줄지 모른다. 또 몇 년 동안이나 시인을 팽개쳐버릴지도 모른다. 언제 그것이 찾아올지, 언제 그것이 사라져 버릴지 시인 자신도 모른다. 셸리가 말했듯이「창조하는 정신은 꺼져 가는 석탄의 불꽃과 같다. 안에 보이지 않는 힘이 변덕스러운 바람처럼 불꽃을 불어 순간적인 밝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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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꽃 무더기 (冠峀花層·관수화층)

 

 

 


 

앞다퉈 핀 철쭉꽃 위로  ??花爭發(척촉화쟁발)

아침 햇살 내려 쪼인다  朝曦又照之(조희우조지)

온 산 가득 붉은빛이라  滿山紅一色(만산홍일색)

파란 데가 외려 멋지다  靑處也還奇(청처야환기)

제철 만난 산꽃은 어여쁘게  得意山花姸(득의산화연)

한 무더기 또 한 무더기 꼭대기까지 에둘렀다  簇簇繞峨嵯(족족요아차)

봄이 저물까 걱정일랑 아예 말게나  莫愁春已暮(막수춘이모)

단풍 들면 붉은 빛이 더 퍼질 테니  霜葉紅更多(상엽홍갱다)

?신경준(1712~1781)

1760년 봄에 철쭉이 만발했다. 실학자 신경준(申景濬)이 한강 북쪽에 위치한 첨학정(瞻鶴亭)에 앉아 관악산을 바라보니 철쭉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산은 벌겋게 불이 난 듯했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붉은 철쭉! 그런데 붉은색 일색이라 그런지 군데군데 파란 빛깔로 보이는 곳이 꽃보다도 사랑스럽다. 제철 만나 산을 뒤덮은 철쭉도 철 지나면 사라질까. 천만에. 그런 반전(反轉)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여름 지나 가을이 되면 단풍은 더 붉게 산을 태우리라.

이 시는 관악산을 붉게 물들인 철쭉꽃 찬미가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붉은색 관악산을 본 시인의 눈에 권력을 독점한 당파의 전횡이 오버랩됐다. 붉고 푸른 빛깔은 당파의 색목(色目)이다. 시인은 푸른 빛깔의 소수당 소속이라, 자기 연민에 사로잡힌다. 계절이 바뀌면 달라질까. 천만에. 단풍이 산을 뒤덮듯 주도권을 쥔 세력은 때가 되면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봄날의 붉은 꽃에도 정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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