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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영화감독이였다...
2017년 04월 10일 01시 06분  조회:2992  추천:0  작성자: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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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로고는 매년 5월 프랑스 남부지역인 깐느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영화제인 “깐느 국제영화제”를 상징하는 로고이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도 뜨거워지는 차에 여러 매체들을 통해 자주 보고 지나쳤을 법한 이 로고를 디자인 한 사람이 바로 아래 보이는 사진의 주인공 "장 콕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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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장 콕토 만큼 예술 전반에 걸쳐 이렇게 다방면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는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극작가이자, 연출가이자, 화가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당당히 동성애자라고 밝히기도 했던 장 콕토. 당시 그의 삶과 작품들에 대한 평가는 호평과 혹평을 오갔고, 인기를 얻기도 했으나 질시와 야유, 비난까지도 한꺼번에 받았던 터다. 사생활까지도 시인의 것으로서 공개하여 인기를 모으고 그 때문에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는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 분야에서 다재다능한 활약을 한 까닭에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남긴 그의 최고의 예술 작품은 그 자신의 삶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온몸으로 자신이 존재하던 그 시대와 그 정신을 표현해낸 예술가였다. 그의 삶은 예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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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의 작품을 살펴보다보면 어떤 일관된 통일성을 발견 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 문자로서의 그림들, 그가 남긴 희곡 작품들, 그리고 특히 영화 작품([영원 회귀], [시인의 피], [오르페우스], [미녀와 야수] 등)들을 보면 전체적으로 시적 이미지를 풍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그렇게 느낀 이유는 콕토 그 자신도 자신의 시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예술의 형태로 작품화 시켰는데 그 작품들의 분류를 시로 나누곤 했다. 예를 들어 그림은 서사시(書寫詩, Póesie graphique), 소설은 소설시(Póesie de roman), 희곡은 극시(Póesie de theatre), 영화는 영화시(Póesie cinématographique)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들이 시적 느낌이 났던 것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시 이외의 소설, 희곡, 미술, 영화 등에서도 그만의 독자적인 시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파리 근교의 메종 리피트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장 콕토는 출생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기질에 있어서도 순수한 파리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을 지녔던 장 콕토는 학교 수업은 등한시하고 시 습작과 연극에 몰두한 까닭에 두 번이나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실패한다.

아주 일찍부터 서커스와 연극에 매료된 콕토는 문학 사교계를 드나들면서 시를 쓰기 시작하여 문단에서 로스탕, 프루스트 등 그 당시의 대가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09년에 첫 시집 「알라딘의 램프」를 펴낸 콕토는 1910년에는 당시 파리에서 러시아 발레단의 공연을 지휘하고 있던 디아길레프와 만난다. 그가 이끄는 러시아 발레단은 1917년 무용과 연극을 혼합한 전위극 [열병식](Parade, 에릭 사티가 음악을 맡고 피카소·디아길레프·콕토가 공동 제작했다)을 상연하여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콕토는 시인 아폴리네르·막스 자콥·화가 피카소·모딜리아니 등 그 시대의 전위 예술가들과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다. 이들과의 교류는 콕토의 예술 세계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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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콕토가 찍은 친구들의 모습. 좌-모딜리아니, 가운데-피카소)

1919년에 콕토는 16세의 미소년 레이몽 라디게(Raymond Radiguet, 시인이자 작가)를 만나 열정적인 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4년 되에 라디게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콕토는 절망에 빠져 아편 중독에 이르게 된다. 콕토는 아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하여 17일 동안에 한 편의 소설시 「무서운 아이들」을 쓴다.

시인 장 콕토는 특히 소년기의 동심을 소중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그저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비추고 그들의 맑고 투명한 생활, 또는 그 정신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고, 소년기에 오는 증오와 질투, 어른들의 세계와는 또 다른 비극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렇게 독특한 생각을 가졌고 그만의 방법으로 시의 세계를 이룩했다.

 

콕토의 모든 작품들은 비밀과 수수께끼에 대한 탐색이다. 주어진 물음을 탐색한다. 하지만 답은 찾을 수 없다. 아니 일부러 찾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마치 거울 저편에 있는, 무엇이 있는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공간 같은 것 말이다. 또, 어떤 침묵의 세계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는 현상 뒤에 있는 불가시성을 탐구하여 가면을 쓴 채로 진실을 제시하고자 했다. 불안과 부재가 생겨날 때 그는 거기에서 시를 발견할 뿐이었다.

"인간은 지금 살아 있는 인간이어야 하지만 예술가는 후세 속에 살아야 한다"

그는 비록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가 남긴 그의 삶, 작품, 그리고 예술을 불태웠던 그의 혼은 우리의 가슴속에 함께 하고 있다.

   


   장콕토가 남긴 작품/ #1

 
나는 죽어 간다오, 프랑스여 ! 
가까이 와서 내 말을 들어주오, 좀더 가까이. 
난 그대 때문에 죽어 간다오. 
그대가 나를 욕하고 야유하고 속이고 망가뜨리고 말았오. 
이젠 모든 게 상관없는 일이오. 
프랑스여, 나 이제 그대를 안아야 하리, 그대 음탕한 세느강에, 
그대 천한 포도밭에, 그대 못된 밭에, 그대 너그러운 섬에, 
그대 썩은 파리에, 지겹게 하는 그대 석상(石像)에 마지막으로 입맞추리. 
좀더 가까이, 더 가까이 와서 그대를 보게 해주오. 
아 ! 이번엔 내가 그대를 붙잡았오. 
소리쳐도, 누구를 불러도 소용 없다오. 
죽은 자의 손가락을 펼 수는 없다오. 
기쁨에 겨워 나 그대 목을 조르리. 
나 외로이 죽지 않으리.  -장 콕토 [시인의 죽음]
 

 

   장콕토가 남긴 작품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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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네이버 블로그, 해외문예/불어권

 

[출처] 장콕토, Jean Cocteau|작성자 lina_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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