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가 려과없이 씌여지면 시가 산만해지고 긴장감을 잃는다...
2017년 04월 18일 17시 32분  조회:1847  추천:0  작성자: 죽림

너무 많은 소재의 남용

대상 작품

가을비

1* 어스름한 저녁 무렵 약속없는 빗줄기를 만나면
2* 오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3* 빗길 저 끝으로
4*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가 서 계십니다
5* 고불고불 골목마다
6* 이름없는 들풀이 비를 맞습니다
7* 명분 세운 고목나무도
8* 비에 젖습니다 
9* 이리저리 이럭저럭 함께 왔으니
10*스스로 대견하여 손길이 다정합니다
11*비에 젖은 불빛이 말을 시작하자
12*가장들은 젖은 어깨 위에
13*고단한 생활을 올려놓고 바삐 갑니다
14* 나는 맨 몸을 다시 걸으며
15* 그러려니 하고
16* 초라한 삶을 웃어봅니다

평설

처음 시를 쓰는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 작품이다. 초심자의 경우, 한 편의 시 속에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본 것, 느낀 것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시가 산만해지고 긴장감을 잃고 만다. 그리고 언어의 선택에도 문제가 있다. 어휘력이나 언어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여 부적절한 비유법을 사용한다거나, 상투적인 표현을 하는 점 등이다. 
위의 시를 살펴 보자. 비가 오는 날의 저녁 풍경을 할머니, 풀잎, 고목, 불빛, 귀가하는 가장들을 소재로 삼아 그려내고 있지만, 정작 지은이가 이 많은 소재들을 통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지은이는 14행부터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할 지 모른다. 독자들도 그렇게 짐작은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닿아오는 내용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어떠한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꼼꼼히 따져 보기로 하자.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 ‘이름없는 들풀’ ‘명분 세운 고목나무’ ‘가장들의 고단한 생활’ ‘초라한 삶의 나’는 모두 함께 비를 맞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것들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비오는 저녁의 풍경을 단순히 나열한 것으로 그치고 있다. 각기 이야기는 성립하되, 전체적으로는 서로 어떠한 영향도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초심자들은 이야기를 벌려놓고 그것을 다시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몰아가는 힘이 부족한 탓이다. 
시를 포함해 모든 글은 초점이 뚜렷해야 한다. 시는 짧은 형식에 비유법을 위주로 내용을 전달하므로 더욱 그러하다. 위의 시는 모든 소재들이 제각기 하나씩의 이야기로 독립되어서, 시의 초점을 흐려놓고 있다. 지은이가 비 오는 저녁 우산도 없이 맨몸으로 걷고 있는 초라한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자 했다면, 앞의 소재들은 모두 자신과 연관된 어떤 내용들이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독자들을 설득시키고 감동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시는 주위 풍경의 감상적인 묘사가 아니다. 그 묘사 속에 자신의 감정이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의 상징성이며 묘미이다.
잘못된 표현에 대해 지적해 보기로 한다. 이 시는 거의 모든 행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약속없는 빗줄기’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 ‘명분 세운 고목나무’ ‘초라한 삶’은 특히 거슬리는 부분이다. 낡은 언어끼리, 혹은 의미없이 갖다 붙인 언어의 결합은 시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예를 들면 ‘사주팔자 짚어가던 할머니’는 이 시의 이미지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비 오는 날과 할머니, 그것도 사주팔자를 짚어보시는 할머니를 떠올릴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독자들이 시를 읽고 공감하는 것은 자신도 그러한 체험이나 느낌을 가졌을 때이다. 개인적인 체험이 아닌 보편적인 체험이나 감정만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또 ‘명분 세운 고목나무’는 앞뒤 행을 읽어보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이렇게 자신만이 알고 있거나, 그럴 듯하다고 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마구잡이로 언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시는 일단 언어를 도구로 삼아 표현하는 예술 행위이다. 아무리 머리 속에서 뛰어난 발상이나 고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더라도, 표현된 언어 자체가 유치하면 시 역시 그러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아직 언어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아마추어 때일수록 더욱 언어를 치열하게 갈고 다듬어야 할 것이다.
5, 6행의 골목길과 들풀은 말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골목길에 들풀이 어떻게 자라고 있겠는가. 시가 상상의 세계라고 해서 아무 말이나 서로 연결시켜 놓아서는 안 된다. 그 상상의 세계에서도 논리가 있고 질서가 있는 법이다. 9행과 10행의 대화체는 누가 하는 말인지 불분명하다. 지은이 자신이 하는 말인지, 11행에 나오는 불빛이 하는 말인지를 분명하게 처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이럭저럭’과 같이 불필요한 부사가 중첩되었으며, 누가 함께 온 것인지 무엇이 대견한지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그 다음 11행과 12행에서도 불빛과 젖은 어깨의 가장 역시 무의미하게 연결되어 있다.
위의 시는 전체적인 의미가 통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수정해야 할 곳도 많아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필자는 이러한 때 작품을 버리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자신이 꼭 쓰고 싶은 작품이라면 언젠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고 약간의 수정만 가해 보았다. 

수정

가을비

어스름한 저녁 무렵 빗줄기를 만나면
오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빗길 저 끝 골목마다
이름없는 풀들이며 나무들이 비에 젖어듭니다
비에 젖은 불빛은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들의 고단한 어깨 위에
초라하게 흔들립니다
나는 우산도 없이 걸어가며
삶이란 다 그러려니
가볍게 웃어봅니다

----------------------------------------------------------------

 

강가
―이용악(1914∼1971)

아들이 나오는 올 겨울엔 걸어서라도
청진으로 가리란다
높은 벽돌담 밑에 섰다가
세 해나 못 본 아들을 찾아오리란다

그 늙은인
암소 따라 조밭 저쪽에 사라지고
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췬지
그슬린 돌 두어 개 시름겹다


시집 ‘오랑캐꽃’에는 이용악이 1939년부터 1942년까지 쓴 시들이 수록돼 있다. ‘강가’는 그중 하나다. 1939년이면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해이고,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해 전쟁이 태평양으로 확대된 때가 1941년 말. 그러니까 전쟁은 나라 밖에서 벌어졌지만 식민지에 대한 수탈이 극도로 치닫기 시작한 시기에 쓰인 시다.

노인은 암소한테 물을 먹이러 강가로 몰고 나왔을 테다. 그 김에 등짝이랑 뱃구레랑 엉덩이에 말라붙은 오물도 씻어주고 있었을 테다.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어느새 노인은 초면의 화자에게 속에 담긴 말을 털어놓는다. (노인의 떳떳한 발설로 짐작건대) 독립운동을 하다가 잡혀 갔을 아들, 청진까지 갔다 올 차비를 마련하기 힘겨운 가난. 갈 때는 혼자 겨울 삭풍을 헤치고 걷겠지만, 아들과 함께 돌아올 때의 차비는 꽁꽁 여퉈 놓으셨으리라.
 

 

조밭은 어쩐지 논이나 밀밭보다 풍요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암소도 비쩍 말랐을 것 같다. 시 전편에 쓸쓸한 가난과 시름겨운 유랑의 기운이 자욱하다. 어느 길손인가 이 적빈한 마을의 강가에서 돌 두어 개 모아 불 지피고 밥을 지어 먹고 지나갔구나. 노인도 청진 가는 길에 어느 길섶에서 밥을 지어 드시게 될 테다. 화자도 정처 없이 떠도는 중이었을 테다. 그런데 시 속의 ‘그 늙은이’는 어머니일까, 아버지일까? 어머니일 것 같다. 이 늙은이의 결기는 간절한 모성이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10 첫사랑아, 첫사랑아, 나에게 돌려다오... 2017-07-24 0 2211
609 시의 첫머리는 독자와 만나는 첫번째 고비이다... 2017-07-24 0 1931
608 장마야, 우리들은 널 싫어해... 2017-07-24 0 2032
607 "시인이 되면 돈푼깨나 들어오우"... 2017-07-24 0 1863
606 백합아, 나와 놀쟈... 2017-07-24 0 2079
605 "해안선을 잡아넣고" 매운탕 끓려라... 2017-07-24 0 1961
604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있다는것은"... 2017-07-24 0 1790
603 시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창조성의 요인은 바로 상상력이다... 2017-07-24 0 2327
602 동물들아, "시의 정원"에서 너희들 맘대로 뛰여 놀아라... 2017-07-24 0 2657
601 시인은 불확실한 세계의 창을 치렬한 사유로 닦아야... 2017-07-24 0 1979
600 초여름아, 너도 더우면 그늘 찾아라... 2017-07-24 0 2090
599 "내가 죽으면 한개 바위가 되리라"... 2017-07-24 0 2632
598 련꽃아, 물과 물고기와 진흙과 함께 놀아보쟈... 2017-07-24 0 2288
597 현대시야, 정말로 정말로 같이 놀아나보쟈... 2017-07-24 0 2112
596 선물아, 네나 "선물꾸러미"를 받아라... 2017-07-24 0 2423
595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2017-07-24 0 2077
594 채송화야, 나와 놀쟈... 2017-07-24 0 3603
593 시의 초보자들은 문학적인것과 비문학적것을 혼동하지 말기... 2017-07-24 0 2123
592 찔레꽃아, 나와 놀쟈... 2017-07-24 0 2421
591 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2017-07-24 0 2031
590 커피야, 너를 마시면 이 시지기-죽림은 밤잠 못잔단다... 2017-07-24 0 2562
589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2017-07-24 0 2362
588 담쟁이야, 네 맘대로 담장을 넘어라... 2017-07-24 0 2284
587 시인은 사막에서 려행하는 한마리 락타를 닮은 탐험가이다... 2017-07-24 0 2156
586 꽃들에게 꽃대궐 차려주쟈... 2017-07-24 0 2272
585 무의식적 이미지는 눈부신 은유의 창고이다... 2017-07-24 0 2385
584 유채꽃아, 나와 놀쟈... 2017-07-24 0 1988
583 음유시는 문자와 멜로디와의 두개 세계를 아우르는 시이다... 2017-07-24 0 2047
582 풀꽃들아, 너희들도 너희들 세상을 찾아라... 2017-07-24 0 2078
581 시인은 은유적, 환유적 수사법으로 시적 세계를 보아야... 2017-07-24 0 2297
580 풀들아, 너희들 세상이야... 2017-07-24 0 2371
579 시인은 날(生)이미지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2017-07-24 0 1944
578 봄아, 봄아, "봄꽃바구니" 한트럭 보내 줄게... 2017-07-24 0 2347
577 시인은 그림자의 소리를 들을줄 알아야... 2017-07-24 0 2068
576 금낭화야, 나와 놀쟈... 2017-07-24 0 1754
575 시인은 절대 관념이나 정서의 노예가 아니다... 2017-07-24 0 2042
574 춘향아, 도련님 오셨다... 2017-07-24 0 2349
573 좋은 시는 그 구조가 역시 탄탄하다... 2017-07-24 0 1951
572 아카시아야, 나와 놀쟈... 2017-07-24 0 2263
571 시를 쓰는것은 하나의 고행적인 수행이다... 2017-07-24 0 2113
‹처음  이전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