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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날(生)이미지를 자유롭게 다룰 줄 알아야...
2017년 07월 24일 03시 35분  조회:1937  추천:0  작성자: 죽림

 

해방의 언어 그 날(生)이미지를 찾아가는 시적 여정 …오규원論-

이연승


1. 들어가면서:시적 「언어」의 폐허와 시인의 자리

짧은 시간동안 급속한 정치, 경제, 문화적 변혁을 치러야 했던 우리 사회는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놓여있다. 지난 시대의 「중심의 담론」은 붕괴 되었고 다양한 문화현상들이 분산된 지형도를 그리면서 우리의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 90년대 중반을 가로지르면서 탈중심, 다원주의, 대중문화, 일상, 생태학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기존의 시각과 삶의 양식을 해체하려는 물결이 등장한 것은 분명 변화하는 우리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상적인 유행에 민감한 저널리즘과 컴퓨터를 비롯한 영상 산업의 폭발적 팽창, 그리고 세속적이고 일상화된 욕망의 분화구 사이에서 90년대의 분방하고 다발적인 논의들은 체계적인 사회, 문화적 맥락으로 조성되지 못한채 파편화되어 있다.

전망이 불투명한 사회속에서 문학은 지루한 소모품으로 전락하거나 감각적인 새로움을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에 편승하여 상업적 생산과 소비의 유통구조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기도 하다. 나는 삶의 진정성이 외면당하는 가치부재의 현실, 경건성이 질식당하는 문학판에서 문학이 책임질 수 있는 몫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자문한다.

우리가 문학에서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언어」를 매개로 한 비판적인 사유의 치열함과 부단한 자기 갱신으로 거듭나는 정신적 모험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중견시인을 만난다. 지각변동과 같은 급속한 사회변화속에서도 시종일관 「언어」라는 주제에 집요하게 자신을 쏟아붓고 있는 시인. 그는 우리 시단에서 30년 가까이 언어에 대한 치열한 반성과 고민을 통해 시형식, 시예술의 다양성과 새로움을 모색해 온 오규원이다. 새롭다는 것은 곧 한 시대의 전위적 측면을 의미할진대, 그에게 새로움이란 항상 새로운 감성의 체계와 새로운 긴장의 창조라는 시적 전망의 개진으로 이어져왔다.

최근 시집 자서(自序)에서 시인은 『모든 존재는 현상으로 자신을 말한다. 참된 의미에서, 모든 존재의 언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도 그 현상의 하나이다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집이 그 이전의 시집들과 다른 특성을 보이는 것은 「현상」에 대한 시적 탐구가 하나의 미학적 방법론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규원 시를 관통하는 「언어」라는 문제는 그의 시세계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그리고 최근의 인식상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상 자체에 대한 탐구와 그가 실험하는 「날(生)이미지」란 무엇인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들이다.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 위해 이 글에서는 그의 초기시부터 근작시까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본고에서는 오규원의 초기시를 「분명한 사건」(1971) 「순례」(1973)「사랑의 기교」(시선집)(1975)까지로, 중기시는 「王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이 땅에 씌어지는 敍情詩」(1981) 「가끔은 주목받고 싶은 生이고 싶다」(1987)까지로, 후기시는 「사랑의 감옥」(1991) 「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1995)로 나눈다>

자신이 쓰는 모든 시는 「해방의 이미지」라는 그의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들을 꼼꼼이 뜯어 읽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세계와 삶에서 질문된 「언어」를 투사하면서 자신을 새롭게 열어나가는 오규원의 시적 행로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2. 언어화된 추상의 세계, 「吳氏의 마을」

오규원의 시적 언어의 특징은 우선, 그 언어가 구체적인 현실세계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물론 시는 현실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변형이며 재창조이다. 언어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 대상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자리잡고 있던 초기시. 시인은 「나를 확신하기 위하여 나의 말을 믿」으며 「萬象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말을 믿는다」(「말-속 순례10」에서)라고 쓴다. 그가 시종일관 「말」이라는 시의 질료를 문제삼고 시에 대해 되묻는 것은 「확실하게 형체를 드러내는」 확신을 가지려고 하는 자기 욕망의 소산이다. 시인은 언어를 매개로 해서 관념과 사물을 자신의 시적 공간속에서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우 비유적이고 수사적인 초기의 작품들에서 시인은 시적 대상에 독특한 입김을 불어넣고 있는데, 그는 비록 독립적인 사물의 존재를 포착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제 사물이 환상이든 아니든간에, 사물들이 관념속에서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를 쓰고 있다.


고요한 환상의/출장소/뜰, 뜰의
달콤한 구석에서/언어들이/쉬고 있다.
추상의 나뭇가지에/살고있는
언어들 중의/몇몇은/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떨어져 죽고.
나의/고장난 수도꼭지에서도/
뚜욱 뚜욱/언어들이 죽는다.
건강한 언어의/아이들은
어미의 둥지에서/알을 까고, -「몇 개의 현상」에서

우리는 이 작품에서 하나의 메시지를 포착하기 이전에 관념적인 분위기로 채색되어 있는 두 개의 현상-「달콤한 구석에서 쉬고 있」으며, 「위험한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다 떨어져 죽」는 시니피앙의 움직임을 목도한다. 그의 언어는 현실 혹은 실재라는 시니피앙을 지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니피앙을 차용해 독자적이고 원형적인 제3의 세계를 창조하려 한다. 그가 꿈꾸는 언어, 순수한 언어가 살아 숨쉴 수 있는 원형의 공간은 「고요한 환상의 출장소」이다. 그 추상적인 공간은 구체적인 현실의 음영이 제거된 「환상의 땅」으로 상정되며, 현실과는 대립되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환상의 땅」에서 언어는 훼손되기 이전의 순결한 시간과 공간을 지향하지만, 실제 현실 속에서 그 언어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의 의식 속에서 이것은 가능해지며 「의식의 먼 강변에서/출렁이는 물결 소리로/차츰 확대」되거나 「소멸을 딛고 일어」나 자유로운 질서 속으로 흩어져, 완전한 존재로 빛나기도 한다. 그러니까 초기의 오규원이 열망하는 순수한 언어는 그의 관념 속에서 조형된, 추상의 공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투명한 심상의 바다 속에 사는 낱말은 
외로운 몇 사람이 늘 서 있는 그 배경만큼
조용히 사색의 귀를 열고 있다                 -「현상실험- 別章」에서

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언어는 추상적인 공간-「투명한 심상의 바다」에서 「사색의 귀」를 열어놓거나 땅 위에서 「조용히 쉬며 빛」난다. 타락한 현실 속에서 언어는 본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린다. 시인은 사물의 핵(核)을 간직하고 있는 절대언어를 꿈꾸고 있지만, 이런 언어는 현실과는 괴리된채, 그저 「흔들리」거나 「비키니 스타일로 벗어버린 대낮의 감미로운 피부」로 떠돌 뿐이다. 이 환상적인 영역에서 시인은 언어를 끌어들여 확정된 의미구조 속으로 가두어 둘 수 없다. 말은 그 자체로 자유로우며 「언어의 뚜껑을 열고 나와 다시 독립」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문학사를 읽은 후 지금까지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그녀의 신    장, 머리칼의 길이, 눈의 크기, 그런 것은 하나 모른다.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녀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다고 시에    적는다.                  -「시」에서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한 인물에 대한 시선은 「시」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투사시키면서 굴절되어 나타나는데, 「시」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작품은 그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세계를 해석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한 편의 시가 실제의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인물을 그대로 형상화시키거나 지시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시인은 하나의 이미지를 구상하고 여기에 자신의 관념을 육화시킨다. 에밀리 디킨슨의 몸에 「까만 사마귀가 하나 있다고」 자신의 시에 적는 것. 이것은 자신이 꿈꾸는 언어로 세계를 해석하며 관념화시키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실제의 모습과는 상관없이 까만 사마귀가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시인의 관념 속에서 새로운 시적 향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시의 세계는 어떠한가.


詩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아직도 살고 있다.
詩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우리의 生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幻想밖에는.         -「龍山에서」


자원전쟁시대 유류전쟁시대 그러나 걱정마라, 우회전쟁시대, 
이 글은 패배전쟁시대의 시 얘기가 아니니 오해마라.
시인의 나라는 높은 산 골짜기에 있다.                 -「시인들」에서


순수한 언어, 순수한 시의 세계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 「높은 산 골짜기」에 존재한다. 그 세계는 「환상」의 세계이며 현실적인 가치와는 위배될 수 밖에 없는 공간이다. 따라서 시인은 「시에는 아무 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라는 선언적인 진술을 통해 시의 세계가 풍요롭고 초월적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고, 시와 대립되는 현실이 얼마나 위악적인지를 우리에게 되묻는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기 때문에 언어를 버릴 수 없다. 언어와 삶, 현실과 순수성의 대립에서 비롯되는 딜레마는 오규원에게 더욱 절박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안녕」치 못한 시대, 「패배전쟁시대」, 그리고 일상화된 억압의 현실 속에서 절대적으로 순수한 언어가 유지되기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는 시와 삶의 대립에서 삶의 패배를 읽어내지만, 순수한 언어에의 믿음과 타락한 세상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순수한 언어를 갈망하는 것이야말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며 현실에 대응할 수 있는 힘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언어의 명징함, 그리고 의식의 깨어있음이야말로 자신의 존재 좌표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잦다.
오늘도 감기지 않는 내 눈을 기다리다
잠이 혼자 먼저 잠들고, 잠의 옷도, 잠의 신발도
잠의 文碑도 먼저 잠들고
나는 남아서 혼자 먼저 잠든 잠을 내려다본다.
……
남들이 시를 쓸때 나도 시를 쓴다는 일은
아무래도 민망한 일이라고
나의 시는 조그만 충격에도 다른 소리를 내고         -「남들이 시를 쓸 때」에서

시인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인의 의식이란 깨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시를 쓸 때 나도 시를 쓰는 일」은 「민망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실존적인 삶을 포기하고 훼손된 현실과 제도화된 가치에 스스로를 던져놓는 일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문득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 이야말로 바로 시쓰기의 원동력이다. 시인은 순수한 의식과 진정성을 되묻고 이것을 추구한다. 그에게 안정을 부여하는 언어에 대한 절대적 믿음은 현실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꿈을 간직할 수 있는 내적인 동인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깨어서 견뎌야 하며 자신의 의식을 일깨워 건강한 언어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정신성을 벼려나감으로써 시의 세계를 현실과는 동떨어진 순수의 세계에 두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이 시대의 純粹詩가 음흉하게 不純」해지는 것은 언어의 순수함에 대한 갈망이 현실속에서 와해되어 버릴만큼 현실은 타락했고 자신은 현실속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이다. 오규원은 언어를 믿는 것이 자신의 소외를 상쇄시켜 주리라 믿었고 이것은 세계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시적 주체의 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었다.

오염된 현실 속에서도 타락하지 않은 완전한 존재, 진정한 가치를 잃지 않는 것이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언어의 순결성에 대한 시인의 의식은 길들여진 관념이나 제도화된 가치, 그리고 굳어진 언어와의 싸움이라는 전략적 의미를 띠고 수행된다. 그의 시작(詩作)은 언어화된 현실의 힘을 빌려 세계를 인정하면서 거부하고 거부하면서 인정하는 긴장과 갈등의 양극을 순회하면서 새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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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박두진(1916∼1998)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다. 늘 거기 있는 하늘, 그러나 늘 같지 않은 하늘. 오늘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은회색, 막을 씌운 듯한 하늘에서 햇살이 뿌옇게 쏟아지고 있다. 시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눈길 한 번 끌지 못할 하늘이다. 글쎄,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조각칼을 대고 싶을 것도 같다. 저 덤덤한 질료일 뿐인 하늘의 막을 긋고 벗겨서 뭔가 근사한 형상을 탄생시킬 것도 같다. 시각예술가들은 다른 분야 예술가보다 덜 감상적이다. 그들은 저 스스로가 세계여서 창작 대상과 정을 교류할 필요를 느끼지 않고, 공격하고 굴복시키고 다스리는 것 같다. 우리네 마음 여린 시인만큼 날씨의 영향을 받지도 않으리라.

하늘은 늘 거기, 우리 머리 위에 있는데 ‘머얼리서’ 온단다. 화자는 하늘 한 번 쳐다볼 여유 없이 살았나 보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초가을 하늘이 어찌나 파랗고 맑은지 화자는 눈을 떼지 못한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화자는 풍덩 뛰어든다. 아, ‘가슴으로, 가슴으로/스미어드는 하늘/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처음에는 ‘여릿여릿 머얼리서’ 오던 하늘이 출렁출렁 푸른 호수로 눈에 가득 차고, 코로 허파로 스며들고, 입으로 목구멍으로 배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하늘을 마신다./자꾸 목말라 마신’단다. 그런 줄 모르고 살아왔지만 화자는 푸른 하늘이 고팠던 것이다. 향기롭지도 않고 메마른 도시 일상인의 갈증을 시원스레 풀어주는 청량한 하늘! 우리 가끔이라도 하늘을 보자. 사람들은 왜 하늘의 별을 보며 그리움을 느끼고, 죽으면 저 하늘로 돌아간다고 생각할까. 정말 우리는 우주 저편에서 온 것일까.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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