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위에 머리카락 하나가 떨어진다.
머리카락은 타면서 액체가 된다.
액체는 거품을 물고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그 꿈틀거림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뿜어져나온다.
뿌리를 뻗으며 식물인 양 얌전하게 자라던 것이
불에 닿자마자 슬픈 몸짓 역한 냄새로
제 뜨거운 동물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니,
눈 달린 것 이빨 달린 것 숨쉬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독한 냄새를 지우려고 창문을 열자
차고 커다란 겨울바람이 들이닥친다.
머리카락 속에서 용쓰던 힘과 냄새는
그 바람 속으로 고분고분하게 빨려들어간다.
-김기택,「머리카락 하나」부분
김기택 시의 특징은 우리가 사소하게 여기는 것을 예리하게 붙잡아 사물의 외양 뿐만 아니라 속성까지 치밀하게 재생산해 내는 데 있다. 고요하고 번득번득한 삶의 통찰자로서의 표정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시는 몸 안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온몸으로 삭혀 그 스스로를 무기화한다. 이런 까닭으로 그의 시는 부드러움보다는 강인함이, 낭만보다는 리얼리티가 문면에 자리잡는다. 남성적 자아로서의 세계 인식을 보여주며 육체의 건강함을 복원하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 시에서 부족한 논리로서의 시의 미감을 건강하게 보여주며 서정을 맥락화시킨다.「머리카락 하나」역시 난로 위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액체가 되는 단순한 사실을 치밀하게 관찰한 후 급기야 죽음으로 인식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시를 형상화 하는데 있어 얼마나 집요한가를 보여준다. 이에 반해, 80년대 거대 서사가 붕괴된 이후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펼쳐 보인 장석남은 시류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시세계를 아름답게 펼쳐 보인다. 완성도 높은 시를 써온 그의 시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은 ‘순수 서정’과 ‘탁마된 언어’이다.
요즘은
바람 불면 뼈가
살 속에서 한쪽으로 눕는다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친다
나는 안보이는 나라를 편애하는 것이 틀림없어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만큼 멀까
-장석남「진흙별에서」부분
장석남의 서정은 우리가 잃어 버리고 있던 꽃, 별, 나무, 바다 등과 같은 자연적 소재를 시 속에 끌어들인다. 디테일한 정서를 자연적 소재에 호흡을 입히고 있는 그의 시는 언어의 미감에 공을 들이는 한편 행과 행 사이, 연과 연 사이의 울림이 주는 여운적 감동에 힘을 기울인다. 그는 사물의 세계나 속성을 핍집하게 그리기보다는 재현적 세계를 무효화시키며 시가 주는 관념의 모형을 제시한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들로 우리들 심층에 깊숙히 자리잡고 있는 순수 서정을 일으켜 세우고 있는 그의 시는「진흙별에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진흙별은 “뼈가/ 살 속에서 한 쪽으로 눕”고 “꽃잎이 검은 무늬를 쓰고/ 내 눈에서 떨어져/ 발등을 깨치”는 현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 현실의 세계는 시적 언어에 전화되어 시의 내면에서는 관념화되어 나타난다. “이 진흙별에서 별빛까지는 얼마나 멀까”라는 구절이 의미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그가 현실 속에서 지향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무엇인지를 어렴풋하게만 제시할 뿐이다. 장석남이 시 속에 현실의 문제를 용해시키며 융화된 순수 서정을 아름답게 펼쳐 보이는데 반해, 박용하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위기의 문제들을 시 속에 적극적으로 끌여 우리를 사로잡는다. 유년 체험에서부터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역사와 사회적 상황까지, 에두르지 않고 문맥화시키고 있는 그의 시는 우리에게 시를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다.
숨소리라니!
국가에 물들어 있지 않은
無爲의 나무들이 문을 잎여는
믿음의 전화 소리가 들린다.
국가가 괴물일진대
교회가 더 큰 죄를 키우는 휴식일진대
나에게 넉넉한 교회는
나무들의 뽐내지 않는 품.
나무들은 세상 밖과 안의 경계에서
인간들을 만난다.
그 경계의 밖으로 떠나지 않는 나무들의 마음
그 복판에서 나는 자연의 국가를 숨쉰다.
-박용하「靑銅 구리빛 나무들의 노래」부분
박용하가 노래하고 있는 나무는 국가와 교회, 인간들과 구별되는 비세속적 대상이다. 나무는 박용하에게 있어 자신을 넉넉하게 받아 주는 무구(無垢)한 존재이며 무구한 국가이다. 박용하는 현실과 자아의 대립을 통해 자신이 속하고 있는 현실의 허위를 부정하고 냉소한다. 그는 자신이 꿈꾸고 있는 행복에 가깝게 가기 위해 역사와 사회 속의 불안정한 자아를 투명하게 그려내며 과거와 현실의 문제를 희망과 전망으로 전이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아와 사회가 서로 길항하면서 발견되는 세계의 모순을 적의적으로 바라보면서 영혼을 억압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조소한다. 우리들 삶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승리로 이끌려는 그의 ‘정체성의 시학’은 세계의 균열을 해석화하고 참된 질서를 실현시키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주체적이라 할 수 있다.
김기택, 장석남, 박용하의 시는 인간의 존재를 문제 삼으면서 순수 서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이들에게 있어 현실은 불화와 허위의 대상이며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대상이다. 이를 통해 이들의 시는 육체와 정신의 건강함을 되찾는 한편 폭력과 허위로부터 우리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폐허의 서정을 구출하고자 한다. 생명과 그 생명 속에 깃든 영성(靈性)을 찾아내 이를 사려 깊게 펼쳐 보이는 이들의 시에서 우리는 오늘의 현실에서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눈여겨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화산에서
오래전부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기이한 산으로 불리는 ‘서악[西嶽: 오악(五嶽)의 하나]’ 화산(華山)산. ‘서악’ 화산산 남쪽 봉우리 절벽에 위치한 ‘장공잔도(長空棧道)’는 100m 정도의 길이를 자랑하고 절벽에 구멍을 낸 후 그 구멍에 나무판자를 고정시키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잔도의 위, 아래로는 가파른 절벽이 이어져 있고 관광객들은 위험천만한 절벽에 달라붙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그 모습이 너무 위험천만해 보인다.최근 여름 방학이 다가오면서 화산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점점더 늘어나고 있다. (신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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