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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라는 이름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에 올라온 걸 보고 바로 소름이 돋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돌아가셨구나'
마광수 교수님의 댁을 뵈었던건 2011년 이었다.
출판예정인 2권의 책 표지 디자인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조금 놀라웠던 기억은 소설을 자필로 쓴 원고를 봉투에 넣어서 회사로 보내줘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편집자가 아니라 그런 경험이 없어서 였나 손으로 쓴 원고를 직접 받아본 건 처음이였다.
'오래 전에 활동하셨던 분이라 아직 손으로 쓰시는 구나'
다행인 건 한글 파일도 존재했다. 제자가 타이핑 해줬다고한다.
마광수 교수님을 처음 뵈었던 날이 선명이 기억이 난다.
인상이 좀 많이 예민해 보였다.
그래서 작업하는 시간과 과정이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했었다.
다행이 디자인의 컨펌은 쉽게 통과 되었다.
마광수 교수님은 2011년 당시에도 건강이 좀 안좋아 보였다.
얼굴은 통통하게 부어있었지만 바싹 마른 몸은 야위었다는 표현이 맞다.
일 얘기 외에 내 뱉으시는 말들은 상대의 호응이 없어도 쭉 이어나가셨다.
"나 감옥갔다 온거 알지? 난 아직도 정말 이해가 안되
그거 때매 명예교수도 못달고, 연금도 안나오고 참..."
"출판 시장이 왜 이리 엉망이야. 어렵네 어려워
사람들도 책을 참 안읽고,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책 안 읽어.
수업 받으러면 교재가 있어야지. 수업 교재도 사지도 않고 말이야."
"내 책 전자책으로 내준 출판사 있는데, 아마 잘 안팔리나봐.
그리고 나 전자책 싫어. 종이책이 좋지."
"나 원고 많은데, 책 출간해 줄 출판사 연결이 힘드네.
이번 책도 거기 대표가 어렵게 결심한 것 같은데."
마광수 교수님과 작업하면서 현재 책 얘기 보다 통탄의 세월 얘기를 더 많이 들었다.
책이 나오면 좀 웃으실 줄 알았다.
책 만드는 작업 하는 내내, 그리고 책이 나온 좋은 날에도 옅은 미소 조차 보이지 않으셨다.
평소 그림도 그리셔서 마광수 교수님 작품을 전시하고, 책 출판기념회도 함께 하는 행사를 가졌는데도 전혀 기뻐보이지 않으셨다.
그 때 마광수 교수님 그림전시 타이틀이 '소년광수'였다.
그림은 글과는 상반되게 굉장히 순수해 보였다.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즉흥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2권의 책이 출판 된 후 마광수 교수님을 뵐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이직을 하고 경향신문일을 하고 있을 때 자문할 것이 있어서 먼저 연락을 했었다.
4년이 흐른 뒤 였지만 여전하셨다.
"경향신문에서 나 종이책 좀 내 달라 그래. 나 원고 써놓은 거 많아.
책 안되면 칼럼도 쓸 수 있는데."
결국 일로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그 후 로도 몇 번이고 부탁하는 느낌으로 물어보셨다.
"책 많이 냈는데 인세도 별로 안들어오고, 연금도 없고 생활이 어려워.
어려워 죽겠어."
씁쓸했다.
논란의 중심에서 감옥살이 까지 하게 되었지만 윤동주 시인의 시 세계를 대중한테 널리 알린 상당히 문학적 공로자임은 틀림없는데 '윤동주 박사 1호'라는 사실은 묻힌지 오래다.
1989년에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로 인해서 논란의 중심이자 스타 작가가 되었고,
1992년에 <즐거운 사라>를 발표했다.
<즐거운 사라> 이 책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강의 중 현장에서 구속되었고 결국 대법원에서는 최종적으로 유죄판정을 받았다.
교수라는 직책이 도덕적 기대감이 큰 위치인건 분명하다.
하지만 문학은 예술이고, 어느 분야 보다 다양성이 인정되는 분야지만 세상이 그를 품지 못했다.
그의 글은 그 당시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법으로 제지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그 때가 불과 20 여년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난 아직도 이해가 안되. 진짜 다들 답답해"
자신을 향한 비난에 맞서야 했고, 외로움과 싸워야 했고, 긴 공허함을 오롯이 느낀 탓이였을까
마광수 교수님의 초점을 잃은 눈빛은 쉽게 볼 수 없는 깊은 어두움이 드리워있었다.
축쳐진 어깨, 끊임 없는 기침, 생기 잃은 파리한 낯 빛을 하고 있었지만
표현 욕구와 글에 대한 열정은 살아있었다고 생각한다.
"나 20대 교수되고 학생들한테 인기 참 많았어"
어느 날 이렇게 말씀 하면서 피식,
그게 마광수 교수님을 뵙고 본 처음이자 마지막 미소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출처] 소년광수,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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