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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馬光洙) ! 1989년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를 시작으로 그는 존경받는 교수나 작가보다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는, 작품성보다는 항상 말초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회적으로 화제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그의 이름 중 광(光)이 빛광이 아니라 미칠 광(狂)이 아닐까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을 만큼 당시 그의 작품 속에 묘사되는 성적인 코드는 높은 수위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그리 대단할 것이없는 수준이지만 당시의 기준으로는 거의 포르노그라피였었고 제 기억으론 여러번 TV 토론이 열릴 만큼 사회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었습니다.) 이후 <가자 장미여관으로(1989)>, <즐거운 사라(1991)> 등의 연작을 통해 파격적인 성애묘사와 가치전복의소재로 사회를 논쟁속으로 뜨겁게 달구었던 그는 결국 법정에까지 서는 수모를 당해야 했고 이후 거짓말처럼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서서히 잊혀졌었습니다. <사라를 위한 변명(1994)>, <광마일기(1996)> 등의 작품이 있었지만 대중들에겐 변태작가, 언론에 주목받으려 발버둥치는 이상애주의자로 치부되어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주류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물론 그 사이에도 여러 편의 책이 출간되었고 문학적인 활동이 있었습니다.^^) <즐거운 사라> 이후 22 년만에 첫사랑과 그 순간의 열띠고 설레이는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개인전 <소년, 광수>로 돌아왔습니다. 2011년 2월 18일부터 홍익대 앞의 "산토리니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마광수 교수의 개인전은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작품성향과는 다른 마치 아이들의 순수한 상상속 그림을 보는 듯한 이미지가 돋보이는데... 그의 명성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은 생뚱맞고 이상한 전시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기작가...... 변태작가로서의 마광수가 아닌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속으로 돌아가려는 순수한 동심으로 다가가려는 이번 전시는 그를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에겐 새로운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심을 이야기하는 그림이라 하지만... 곳곳에 마광수교수만의 생각과 도발이 느껴지는 것은 저만이 아니겠지요.^^ ㅋ~ 두고보자 정신.... 그가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1951년생이니 올해 마광수교수의 연세가 60세... 그런데 그 이상의 나이로 보이는 이 비쥬얼은... 하긴 젊었을때도 그의 저서로 통해 접했던 야한 컨셉은 외모와 일치하지 못했었죠.^^ 이번 작품들은 야하지 않으니 겁먹지 말라는 그의 말이 있었지만 이 전시가 그렇게 동심의 세계만 표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위의 그림 속의 말이 그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하긴 그만 아니라 모든 남자들이 한번쯤은 저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아닌 척하는 대중들에게 항상 도발을 합니다. "너희도 똑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점잖은 척하지 말라는....." "산토리니 서울"의 큐레이터 노경희씨가 진행한 간담회에서 마광수교수는 전시회의 작품들이나 현재의 동향 보다는 지난 날 그의 작품을 몰라주었고 오해했던 대중들에 대한 회한과 힘들었던 지난날에 대한 아픔을 이야기 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요. 그를 볼 때 화려했던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노인의 모습이 겹쳐 보여서 그리 편한 마음으로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마광수"...... 20년을 돌아 당시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했고 또 어떤 면에선 정치적인 희생양이기도 했던 영욕의 시대를 거쳐 동심과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담아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물론 요즘 세대는 잘 모르는 그의 작품들과 일부 사람들에게는 외설 연극 공연의 원작자(?)로 비춰질지라도 격동의 한 시대를 풍미했고 시대를 앞서갔던 아픔을 홀로 간직해야 했던 마광수의 이름은 언제나 우리곁에 가까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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