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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들이 권총을 쏜다"...
2017년 10월 09일 18시 48분  조회:2313  추천:0  작성자: 죽림

시말 : 표현의 한계를 말하다

김석준

 

 

 

‘그는 선을 긋고 모든 것을 합산하며 또 다른 방정식을 세운다. 가장 덜 관습적이고 가장 정직한 정신의 대단한 민첩성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영혼의 시선』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예술 세계를 간명하게 정의한 언명인데, 이 말은 함기석이 행한 일련의 시정신과 절묘하게 맞닿아있음에 틀림없다.

금번 상재한 함기석의 『오렌지 기하학』을 읽는 내내 기존에 행했던 언어의 유희에 가까운 해체론적 사유를 넘어서 새로운 시의 방정식을 설계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말의 한계가 곧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언어논리가 일거에 논파된다. 말이 기호와 결합하고 기호를 말과 이종교배 시킨 시말운동은 말의 논리를 철저하게 해체시킨다. 모든 것이 불연속적이고 말의 인과율이 잔혹하게 찢기고 파열하게 된다. 말과 세계 사이를 무한대로 발산시켜 표현의 한계를 극한으로 몰고 가다가 이내 그것을 한없이 수렴시켜 말이 곧 세계임을 증명하고 있다. “없다 ☞ 이것은 있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금 ☜ 이것은 사라진다”(「투명한 식사」중)로 탈바꿈하게 된다.

모든 것은 변이되고 발생과 소멸의 경계가 무너진다. 칸트의 인과율이 무너지고 초공간에서 벌어지는 고차원의 시문법이 발화된다. “상상”(「오렌지 기하학」중)의 극한을 내달리는 말은 불연속적으로 구현되는 세계 너머를 응시하고, 의미라고 지목되는 그 모든 양력과 부력이 치밀하게 반조된다. “뒤집힌 세상”(「몸시 절망한 남자의 몹시 이상한 보행법」중)을 재차 전도시켜 새로운 의미의 체계를 고도의 언어적 수사로 응결시킨다. 말이 새로운 말들 이끌고, 또 그 말이 말에 의해 질식하게 된다. 말의 묘법은 아르또의 잔혹극이다. “검은 피 검은 눈 검은 물”(「인드라 주행 코스」중)이 흥건하다. 물론 “말은 무색의 신경마취가스”(「고딕 계단을 공격하는 말개들」중)인 까닭에 그의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지만, 일단 말의 오묘한 마력에 중독이 되면 온몸이 만신창의가 된 채 죽음의 근방을 헤매게 된다.

말의 양력이 삶이라면, 그것의 부력은 죽음의 유혹이다. “말의 눈”(「어떤 市의 사물함」중)은 피히테의 새롭게 이식된 제3의 눈이거나 모든 인식을 전환시키기를 요구하는 “탈옥한 글자”(「탈옥수들」중)들은 “오류의 오류”(「어떤 市」중)를 응시한 채 말의 향연만을 탐닉하게 된다. 말의 심포지움, 그것이 바로 『오렌지 기하학』의 시적 정체이자, 말―사태가 현현시킨 시말의 극한값에 해당한다. 플라톤의 심포지움이 사랑의 외연과 내포를 총체적으로 논변했다면, 함기석의 그것은 말의 향연을 통해서 어떠한 말의 면모를 말―함수로 코드 변환시켰다고 할 수 있는가? 반복이 지배하는 프랙탈인가, 인간학의 새로운 방정식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이 세계 전체의 의미적 구조를 말의 가능적 함수로 치환시켰는가? 사실 이 지점이 중요한데, 그것은 “불명료한 무한(∞)궤도”(「사과의 2차원 균등분할」중) 위를 질주하는 말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 하겠다. 도대체 시인은 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에 관한 의미 구조를 불연속과 해체라는 기이한 방정식을 통해서 말을 하고, 시말을 도발하는가?

 

 

코흐곡선 해안을 걷고 있다

벼랑 끝 하늘로 물고기들은 헤엄쳐 오르고

죽은 자들의 숨이고 육체였던 저 투명한 대기 속에서

빛이 제 눈을 검게 태우고 있다

제로(0)인 너와

제로(0)인 내가 만나

무한(∞)이 되었다가 더 큰 제로(0)로 되돌아가는

아름답고 비정한 원(Circle)의 우주

그것이 그대로 삶이고 죽음이고 사랑인 시

세계는

제로(0)와 무한(∞) 사이에서 녹고 있는 눈사람(8)

자신의 부재를 자신의 몸 전체로 목격하고 기억하기 위해

눈동자부터 녹아내리는

진행형 물질

우린, 죽음으로부터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 「시인의 말」전문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의 서문에 해당하는 「군말」과 비견될 만큼 아름답고 심오한 함기석의 「시인의 말」은 『오렌지 기하학』이 펼쳐낸 조각난 퍼즐 같은 파편의 말들이 가닿을 수 있는 언어의 존재론적 심급이다. 말이 무한히 확산할 수 있는 원심력인 동시에 카오스로 향하는 말의 양력과 부력에 틀거리를 잡아주는 구심력이다. 말하자면 「시인의 말」은 시인의 담론적 사유가 총체적으로 함축된 일종의 메타담론에 다름 아니다. 코흐곡선, 즉 프랙털적인 반복이 지배하는 인간학적인 운명을 “제로”와 “무한” 사이에 위치시키면서, 말이 감당할 수 몫을 재귀시키고 수렴시킨다. “말의 현실”(「고딕 계단을 공격하는 말개들」중)은 세계의 현실이고, 인간학이 위치하는 존재의 현실이다. 마치 카프라가 이 세계를 새롭게 기술할 수 있는 물리학의 언어를 찾아 헤맸던 것처럼, 함기석은 「시인의 말」을 통해서 말과 존재의 양태를 기하학이라는 평면도형 위에 입체화시키고 있다.

  차이를 도발했던 그 모든 것들이 반복으로 수렴한다. 차이의 차이도 반복이고, 오류의 오류도 반복으로 재귀한다. 우리는 진리를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의 그것처럼 인간학의 기댓값을 완벽하게 고정시키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등거리에 무수히 많은 안간학적 담론들이 점으로 존재한다. 양력도 같고, 부력도 같다. 말하자면, 제로와 무한 사이를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가는 그 모든 것들은 “코흐 곡선 해안”을 질주하는 동일한 운명이다. 차이를 도발했던 삶도, 차이를 지우기를 열망했던 깨달음도, 그 모든 함숫값이 동일한 폐루프(closed loop)로 닫혀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말하자면 「시인의 말」은 차이를 욕망했던 『오렌지 기하학』의 재귀적 용법이자, 차이를 차이로 생산하고 기술하는 시말의 존재론적 근거이다. 존재의 呂律이 如如하게 연탄되기도 하고, “진행형 물질”인 “삶”과 “죽음”과 “사랑”이 시말을 도발하게 된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역전되고, 말이 말에 의해 말의 음가 전체를 동일성으로 치환시킨다. 모든 것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린다. 차이도 녹아내리고, 무를 욕망했던 그 무조차 여지없이 녹아내려 흔적조차 없어진다. 역으로 함기석이 시도했던 일련의 시말운동은 무의 운동인지도 모른다. 차이를 도발하고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지대에 말과 낱말과 문장을 위치시키지만, 시말은 그 모든 차이를 동일한 것의 반복으로 치환시키게 된다. “예기치 못한 문장이 하나 우연히 태어나”(「행위4」중)지만, 이내 말은 “없는 말”(「없는 나라」중)이 되고, “피투성이 말”(「고고는 고고고 다다는 다다다」중)이 된다. 말이 감당했던 양력이나 부력 전체가, 차이를 욕망했던 말의 운동이, “같은 거리에 있는/점들의 집합”으로 “코흐곡선 해안”선을 무량하게 걷고만 있을 따름이다. 말하자면 『오렌지 기하학』이 펼쳐낸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차이의 언어적 욕망들이 「시인의 말」 속에 내파한 동일성의 원리에 의해 제어되고 한계지어지게 된다. 만해의 「군말」이 『님의 침묵』 전체를 통어했던 것처럼, 함기석의 「시인의 말」은 모든 언어적 차이가 생성되는 말의 심급이자, 모든 차이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아름답고 비정한 원(Circle)의 우주”이다.

 

 

나는 텅 빈 우물

너는 망각을 담는 호수

나는 꿈꾸는 사과

너는 비의 발자국을 기록하는 음악

나는 사라지는 눈동자

너는 안개를 뿜는 바위

나는 이빨이 쏟아지는 하늘

너는 웃는 피, 뒤집힌 눈, 만개하는 만다라

나는 창녀 카오스의 유방

너는 돌고 도는 시간의 입, 웃는 틀니 「점2.空디스켓」전문

 

 

차이는 연기예요

우린 언제나 같은 우주에 있고

영겁 속에서 만물은 모두 평등하게 소멸해요 「벽에 비친 그림자 악사 빙」일부

 

 

시를 읽고 있는 사람이 보일 게요 누군지 아시겠소? 아픈 방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오 「아픈 방」일부

 

 

P가 흐르고 눈이 내렸다 눈길에서 나는 눈과 길을 잃었다 나를 태우고 온 말도 어디론가 사라졌고 사방은 칠흑의 어둠이었다 「글자들이 날아다니는 숲」일부

 

 

  “없는 당신”과 “없는 꿈길”과 “없는 삶”(「없는 나라」중)에 관하여 시말을 도발하게 될 때, 말은 어디에 당도하는가? 물론 함기석은 그 모든 것들이 “無無”를 기록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지만, 도대체 무가 겹쳐진 무무는 무엇을 지시하고, 또 나와 너 사이에서 어떤 삶―시간―세계의 진법을 설계하고 있는가? 표면적으로 볼 때 무무는 空의 다른 이름이거나 인간학 전체를 통어하는 시인만의 상징어인데, 그것은 어떤 운명의 “좌표”평면 위를 횡단하는 초공간의 언어인가? 우리는 시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말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공간 위에 활보하는 인간학적 운동이 어디로 재귀해 들어가는지 또한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 그저 “망각”이 최선이고 “돌고 도는 시간의 입”속으로 함몰하는 것이 차선이다. 우리는 말소되고 지워지는 “空디스켓”이자, “無無의 책”으로 존재하는 허무한 말의 운동이다. 우리는 안온한 몽상을 “꿈꾸는 사과”였다가 이내 “텅 빈 우물”이 되는 소진되는 적멸의 언어이다.

  “최초의 말”(「고딕 계단을 공격하는 말개들」중)이 시공간 위에 발화된다. “식인 글자族”(「글자族이 사는 무인도」중)이 의미의 세계를 야금야금 잠식시켜 언어의 가능적 조건들을 질식시킨다. “문장의 벽”(「ING 살인 사건」중)에 걸려 넘어져 의미가 훼손되고 논리의 구조가 왜곡된다. 말하자면 함기석의 『오렌지 기하학』은 2차 평면 위를 질주하는 말―사태들을 고차원으로 입체화시켜 표현의 한계를 실험 중이다. 도상과 기호와 다양한 그림을 시말과 병치시키면서, 시인은 말의 구조 전체를 “영겁”이라는 시간 위에서 현동시키고 있다. “차이”의 삶이 “연기”로 승화되고 또 존재의 존재성이 응시된다. 존재란 “평등”이고 “소멸”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고, 존재를 기술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한, 우리는 공간화된 말을 통해서만 인간학적 의미를 붙잡아 맬 별다른 방법이 없다.

  시인에게 말과의 상면은 진기하다 못해 극적이기까지 한데, 그것은 말의 위치가 세계의 위치를 정확하게 지정하기 때문이다. 극한으로 치달아가는 인간학의 심연에 치유 불가능한 시라는 “아픈 방”이 존재한다. “꿈과 상처”(「방향표시판 혹은 스텔스 機」중)가 동시에 매만져진다. 함기석에 말의 양력과 부력이 고스란히 기입된 문장은 일종의 공포의 권력이다. 아브젝트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눈앞에 현시되고, 죽음이 욕망된다. 아프다. 이 세계가 아닌 곳으로 떠나 사라진다. “이 문장이 목을 조르”(「지난여름 파도에 떠밀려온 이 시는」중)고, “두개골이 깨진 문장”(「색채강박증 교사 소괄호의 바나나를 둘러싼 음모들」중)의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진다. 홀로 아파 시를 쓴다. 당신도 아프고 나도 아프다. 우리 모두는 “아픈 방”에 갇힌다. 마치 “죽은 말”(「컬러 킬러의 흑백 사체」중)들이 “문장의 뒤편”(「ING 살인 사건」중)으로 사라져 말이 아닌 곳에서 시말을 위치시키듯, 시인 함기석은 말의 극한값을 표현의 극한값으로 치환시켜 말해질 수 없는 말을 꼬드기고 있다.

  “초원의 말”(「방향표시판 혹은 스텔스 機」중)들이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고, “말장기 놀이”(「빨간 돼지를 잡아라」중)가 행해진다. 만약 말의 위치가 인간학의 존재론적 위치를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말과 세계 사이의 어디에 위치하는가? 나는 P이고, ∼P이고, P∧∼P이고, P∨∼P이다. 나는 배중률이면서 동일률이고, 나는 나 아닌 동시에 나이다. 나는 세계인 동시에 세계가 아닌 나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차이인 동시에 합이기도 하다. 나는 이 우주 공간을 떠도는 리좀이다. 나는 말에 붙들린 “글자”의 정령이자, 문자들을 질식시키는 “空中無色無受想行識”이라는 문자의 가능조건이다. 나는 ∼이고, ∧이고, ∨인 동시에 기타 등등의 도상이자 수식기호이다. 나는 일종의 연산기호로 존재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말의 벡터로 표현되는 나의 정체이기도 하다.

  사라진 말들의 조합 속에 내가 있고, 또 “꿈속도 꿈 밖도 아닌 점이지대”에 나라는 존재가 꿈틀거린다. 때론 “글자들이 날아다는 숲”에서 방황하며 말의 심급이 무엇인지 고뇌하기도 하면서, 때론 “숲 밖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미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시인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존재의 여율을 문자에 응결시켜 사유하고 있다. 저 거대한 무무의 의지가 보이고, 죽음 쪽으로 무한히 질주하는 말의 궁극적인 심급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아도르노가 형이상학이라는 마물을 구멍 틈으로 은밀하게 들여다본 것처럼, 시인 함기석도 나에 부과된 존재의 단층지대를 주밀하게 수식으로 표현하면서 인간학이 무엇인지를 무의 표상작용으로 기술해가고 있다.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명제가 존재한다면

그건 사랑이고 죽음일 거다

우리의 말과 수학기호, 기억의 불완전성을 우주는

시간의 불완전성 정리로 정리해 명료히 망각할 거다 「제로 행성―규락에게」일부

 

 

글자들이 권총을 쏜다

글자들이 권총을 쏘며 튀어나온다 「탈옥수들」일부

 

 

“언어는 날마다 거짓말만 하는 나라는 앵무새”(「언어는 무엇일까?」중)로 표상될 때, 우리는 말의 다양한 지층 내부에 무엇을 기입하는가? 영원이 추상되고, “찰나”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 만약 이 세계가 “미지수 X”로 표상되는 불연속의 공간이라면, 끊임없이 “미분”계수로 분할되는 “무한의 빛”은 어디로 향하는가? “허수”이고 “복소수”이다. 우리는 “망각”으로 향하는 “사랑”이자 “죽음”이고, 궁극에는 “미궁”으로 향하는 적멸이다. 표현할 언어는 이 세계 어디에도 없고, 모든 것은 주검의 그것으로 “탈골”된다. 헛된 말이 발화되고 의미가 사라지자, “박제된 문장”(「알몸으로 계단을 오르는 투명한 여자」중)만이 무의미한 의미의 지층을 형성할 따름이다.

  모든 것이 어둠이고 아포리아로 재귀하는 운동이다. 스피노자의 그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정리(theorem)로 이 세계를 간명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렇게 발음할 “낱말”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말은 있으나, 그 의미의 지대를 정확하게 표현할 언어가 없다. 말하자면 이 세계의 앞면에 “무한”이 존재하고, “망각”만이 인간학의 진리함수를 증명하는 한, 그 어떤 “공리계”로도 우리는 우리의 존재론적 의미를 증명할 수 없다. 불확정성이 이 세계를 지배하고, 불완전성이 이 세계를 증명한다. 우리는 실수이면서 허수이고, 복소평면 위를 질주하는 표현이 불가능한 하나의 허구이다. 캄캄하고, “어두운 육체”가 빛을 한없이 빨아들인다.

  시인에게 말은 병이고, 분열이고, 불안이고,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해지게 만드는 패러독스다. 이를테면 함기석이 전개한 일련의 시말운동은 “백지병원”(「문장분열증 테스트」중)이라는 공간 위를 질주하는 탈주의 언어들의 자유분방한 향연인데, 그것은 이 세계가 발산하고 수렴하는 극한의 형식을 언어의 극한으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 세계의 주체는 말이고, 문장이고, 글자들이다. 말해질 수 없는 말이 새로운 세계를 생산하고,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건설한다. 말이 심문되고, “죽음의 책”(「빨간 돼지를 잡아라」중) 위를 삶으로 질주한다. 말의 양력이 “탈옥한 글자”의 신기원이라면, 그것의 부력은 모든 의미의 체계를 산종시키고, 마침내는 그 모든 것을 의미 아닌 것으로 “사살”하게 된다. 조종이 울린다. “권총”이 의미로 지목되었던 “글자”들을 사살하고, 의미의 공간 전체를 “전복”시켜 인간학 전체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의 겹침 현상이라고 언명하고 있다. 들뢰즈 식으로 말해서 말의 운동은 이미 예정된 인식의 수형도 위를 종주하는 체계의 언어가 아니라, 불연속적인 지층 위를 마구 내달리는 리좀이고, 탈주이다. 모든 것이 파열하고 해체된다. 나도 해체되고, 나를 말했던 말도 여지없이 주름지고 접혀 도주선 위를 질주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제까지 말해졌던 말들은 일종의 체계로부터의 일탈이자 탈옥인데, 그것은 말이 표현하고 존재했던 말―함수 전체를 표현의 한계 바깥으로 몰고 가는 행위라 하겠다. 모든 것은 의미를 발음하는 낱말이나 문장들의 화려한 제의가 아니라, 묵음을 발음하는 무의미한 “다다”이고, “고고”(「고고는 고고고 다다는 다다다」중)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행해졌던 그 모든 인간학적인 의미들은 정확하게 의미를 지목하기 못했거나, 의미 아닌 것으로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유폐는 기나긴 현기증이자 (허공을 떠도는) 시간의 돌

 

Z는 사라진다 Z의 육체와 (낱말들) Z의 그림자도

Z의 삶과 함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미궁 속으로 「Z는 사라진다」일부

 

 

끝났다 시간의 왼손은 자신의 음부를 가린 오른손을 자른다

로 시작되어 시작된다 언어의 처형지에서 언어가 시작된다

…(중략)…

나의 시작은 시작 전후와 함께 소멸하고 흑백 꽃비가 내린다

당신의 시작에 의해 이제 최초의 문장이 세계가 호흡이

시작된다 「시작」일부

 

 

  미지의 공간이, 미지의 어둠이, 미지의 절벽이 말 앞에 놓인다. “달리는 말” “춤추는 말” “꿈꾸는 말” “왼쪽의 말” “자궁의 말”(「방향표시판 혹은 스텔스 機」중)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미궁으로 질주하다 사라진다. “사라진다”가 말할 수 있는 의미의 전부이고, “들어온다”는 허구이고 절망이고 실패이다. 이 세계로 들어왔던 말들은 사라진다로 향하는 처연한 운명이다. 말해졌던 말들이 파열하여 찢기고 흔적으로만 남았다가, 끝내는 의미 아닌 것으로 소진된다. 역시 사라진다. 인간학이 꿈꾸었던 전체에 관한 담론적 욕망이 부분으로 소진되고 고갈된다. 이 또한 사라진다. 사라진다가 정답이고, 절멸은 또 다른 시작의 출구이기도 한데, 인간학을 포함한 이 세계 전체가 원순열로 얼기설기 엮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라진다는 들어온다로 역전되고 전복된다. 만약 삶―시간―세계가 차이의 다양한 구성체를 반복으로 증명하고, 그것의 궁극의 지점에 동일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가장 완벽하게 스스로를 증명하는 카오스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마치 함기석이 전개한 일련의 시말운동이 무한과 제로 사이를 극한으로 벌려놓고, 이 양자 사이에서 표현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인간학적 행위들은 동사 “들어온다”와 “사라진다” 사이를 영원히 배회하는 일종의 노마드에 다름 아니다. 마치 “돌아올 수 없는 미궁 속”에 빠진 채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리 잠자처럼, 우리는 미해결의 난제들로 중층 결정된 시간과 공간 위를 질주하며 파열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말을 꼬드겨도 인간학이 해체되고, 말의 침묵에 은거해도 삶은 언제나 짓이겨지고 파열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떤 말의 처음과 끝을 붙잡아 매야 하는가? “말의 심장과 내장”이 너덜너덜해지고, “말의 흰 뼈”가 탄화되어 끝내는 “말의 주검의 잔해”(「아프리카」중)들만 즐비한 이 세계를 우리는 어떤 태도로 건너야 하는가? 도대체 우리는 저 말의 세계를 응시하면서 “낱말들은 왜 계속해서 회귀하며 생멸하고 침묵하는가?”(「왼손잡이 상상책」중)라고 반복적으로 반문하고 읊조려야만 하는가? 함기석의 『오렌지 기하학』이 의미 있는 것은 말과 세계 사이에 놓인 간극을 헤집고, 재차 그것을 시말로 발화시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무수한 차이를 시말 속에 응고시켜 새로운 말의 제국을 건설했지만, 그 말조차 다시 시간과 공간에 유폐된 채, 재귀하고 순환하는 그 운명의 자리에 말이 있고, 낱말이 있고, 또 문장을 발화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끝의 자리에 영원한 시작이 존재한다. 해체와 파열의 자리에 건설이 있고, 신생이 존재한다. 마치 이 거대한 우주의 물리학적인 운동이 압축과 팽창이라는 두 이질적인 운동에 의해서 신생과 소멸을 반복하듯이, 우리는 끝과 시작이 상호 맞물려 있는 저 우로보로스의 원형적 신화 속을 위태위태하게 걸어가는 동일한 것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모든 차이의 욕망도, 그 차이를 연기시키고 지연시킨 차연에의 갈망도 모든 앎에의 의지가 맞닥트린 시작이자 끝 지점에 존재하는 미궁이라 하겠다. “미완”이 세계의 끝자리에서 미소 짓고 유혹하는 한, 우리는 말에 매혹되고 유혹 당한다. “無의 백지” 같은 존재의 여백 위를 알발로 걸어가면서, 시인은 말의 처음을 몽상하고, 말의 끝자락에 자신이 위치하기를 열망하고 있다. 시작이 비로소 시작된 자리에 함기석의 시말이 존재하고, 『오렌지 기하학』의 언어적 열망이 고스란히 기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론 무한의 저 광활한 심연을 무연히 응시하면서, 때론 말이 감내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총체적으로 심문하면서, 시인 함기석은 말해질 수 없는 것과 표현될 수 없는 것 사이를 다양한 언어적 층위로 이접시키고 연접시키면서 말의 한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표현의 한계를 심문하고 있다 하겠다.

 

 

출생 : 충남 아산

약력 : 1999년 시와시학(시), 2001년 시안(평론) <기침소리>(시집)

<비평의 예술적 지평>,<현대성과 시>,<감히 시인에게 말을 걸다>, <무덤 속의 시말><박찬일 시세계의 본질-상징에의 저항>(평론집) 2011년. 미네르바 작품상 수상(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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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형이상詩는 21세기의 시운동의 모델이라고???... 2017-03-29 0 2457
358 시인은 자연과 타인의 생을 기웃거리는 촉매자이다... 2017-03-29 0 2492
357 시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꿈꾸는 자는 늘 고독하다... 2017-03-29 0 2393
356 [시문학소사전] - 시쓰기에서 알아야 할 용어들 2017-03-29 0 2890
355 현대시는 탈관념의 꿈꾸기이며 언어적 해체인것이다... 2017-03-29 0 2517
354 후기산업혁명사회의 현대인들의 병을 시로 치료하라... 2017-03-29 0 2368
353 시란 희노애락을 부르짖는 소리이다... 2017-03-29 0 2784
352 "전통시인"이나 "실험시인"이나 독자를 외면하면 안된다... 2017-03-29 0 2270
351 현대시쓰기 전 련상단어 100개 쓰기부터 하라... 2017-03-29 0 2983
350 현대시의 실험적 정신은 계속 진행형이다... 2017-03-29 0 2270
349 현대시의 흐름을 알고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하자... 2017-03-29 0 2219
348 현대시는 "단절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다... 2017-03-29 0 2467
347 시는 추상적인 표현과 원쑤지간이다... 2017-03-29 0 2729
346 시심의 모든 밑바탕은 지, 정, 의를 근본으로 한다... 2017-03-29 0 2164
345 시가 "디지털혁명시대"와 맞다들다... 2017-03-27 0 2398
344 프랑스 시인 - 폴 엘뤼다르 2017-03-27 0 3301
343 시어는 삶과 한 덩어리가 된, 육화적인 언어로 련금술해야... 2017-03-27 0 2318
342 시는 한점의 그늘 없이 화창해야 한다... 2017-03-27 0 2432
341 시인아, 어쨌든 있을 때 잘해야지...그리고...상투는 없다... 2017-03-24 0 2071
340 시인의 "적막한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것인가... 2017-03-23 0 2326
339 시와 련관성이 없는 "무의미시"의 낱말로 제목화할수도 있어... 2017-03-22 0 2466
338 이순신 장군 시 모음 2017-03-21 0 3010
337 저 밑에는 날개도 없는것들이 많단다... 2017-03-21 0 2515
336 류시화 시 모음 2017-03-21 0 5863
335 새가 나무가지를 못떠남은?!ㅡ 2017-03-21 0 2518
334 <새(鳥)> 시 모음 2017-03-21 0 2711
333 시제는 그 시의 얼굴로서 그작품의 질과 수준을 예감할수도... 2017-03-21 0 2796
332 시의 제목을 첫행이나 끝행으로 할수도 있다... 2017-03-20 0 2466
331 시의 제목에 의하여 시의 탄력이 생긴다... 2017-03-18 0 2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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