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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에서도 싱싱한 화면으로 시정짙은 공간을 펼쳐보여야...
2017년 10월 28일 22시 46분  조회:3255  추천:0  작성자: 죽림

유명 화가의 미술 작품들 (19) : 쇠라 Georges Seurat (1859~1891)

 

신인상파의 진로와 완성의 대변자

 

 

 

퐁트벨의 숲속

 

쇠라의 초기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화면 전체를 작은 반점(斑點)으로 처리하고 있다. 아직은 색조 분할 이 명확하고도 과학적인 근거를 지니고 있지는 못하나, 그의 방향성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작품으로서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수직의 나무와 가운데 사선으로 뻗은 나무 역시 수직과 사선의 견고한 구도를 완성하는 쇠라 특유의 화면을 암시하고 있다. 나뭇가지와 줄기가 전체적으로 떨리는 것 같은 색채에 비한다면 딱딱한 느낌을 주고 있으나, 풍경 전체에 일관되는 정적인 요소는 역시 쇠라의 방향성에 일치한다.

 

 

 

 

 

손수레와 돌을 깨는 석공

 

 

초기의 쇠라 작품 가운데는 노동하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것이 많은데 아마도 쿠르베나 밀레 등 당시 사회적 의식을 드러냈던 화가들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쇠라의 그림 속엔 그런 주제 의식보다는 화면 구성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작품도 실제 돌을 깨는 석공이 갖는 노동의 사회적 의미는 전혀 찾을 수 없고, 밝은 색조와 견고한 구성이 자아 내는 화면의 건축(建築)만이 두드러진다. 말하자면 그는 초기에서부터 엄격하고도 분명한 화면 구성에 열중해 있었고, 그것을 주도하게 추진해 나갔을 뿐이다. 여기서도 색조의 분할이 도입되곤 있지만, 인상파의 경험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주의적인 방법에 의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들 가운데의 말

 

쇠라가 아직 완전한 분할주의(分轄主義)에 도달하기 전 초기 작품이나, 이미 엄격한 짜임새의 구도와 교착(交錯)하는 터치를 통해 쇠라의 방향성을 뚜렷이 보여 주고 있다. 소재는 극히 단순하다. 들 가운데 몇 그루 나무가 서 있고, 그 앞에 짐수레를 끄는 말이 서 있다. 이 단순한 형태의 설정을 화면 속에 엄밀히 구축해 넣는 일관된 방법상의 징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도 밝은 색조와 떨리는 터치의 섬세한 구사에서 시정(詩情) 짙은 공간, 싱싱한 화면을 유도해 주고 있다. 자연에 대한 엄격한 관찰과 화면에서의 짜임새 있는 구도 설정에도 불구하고, 쇠라의 화면 뒤쪽엔 언제나 투명한 시정이 깔려 있다.

 

 

 

 

'아니에르의 미역 감기'를 위한 습작 1

 

쇠라는 대작 <아니에르의 미역 감기>를 제작하기 위해 약 15점의 유채(油菜)와 10점의 데생을 그렸다. 양쪽 둑에서 보는 풍경 속에 몇 사람의 인물이 등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 습작들은 그 기본적인 구도에 있어서 완성작과는 변함이 없지만, 인물의 배치에 있어선 하나도 같지가 않다. 그러니까 하나의 대작을 위해 그가 얼마나 많은 구성적 시도를 거듭 했는가를 시사해 보인다. 둑 위에 앉아 있는 사람과 엎드려 있는 사람이 들어와 있고, 오른쪽 끝으로 검은 말과 말을 씻기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완성작에는 이 오른쪽 인물과 말은 생략되고 있다.

 

 

 

 

'아니에르의 미역 감기'를 위한 습작 2

(강의 말)

 

이 역시 <아니에르의 미역 감기>를 위한 습작 가운데 하나다. 습작 1에 비해 시각이 약간 강 쪽으로 이동했을 뿐, 강을 가운데 둔 양 둑의 풍경이 완성작과 대동소이하다. 왼편 둑에 앉아 있던 인물은 지워지고 대신 강에서 말을 씻기고 있는 두 인물의 모습이 등장하고 있다.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돛배와 보트는 완성작에도 그대로 연결된 것 같다. 둑과 강과 저쪽 강변의 풍경 등 극히 단조로 운 풍경이면서도 이 배경 속에 등장인물의 적절한 배치를 통해 풍부한 변화를 기하고 있다. 인상 파풍의 색채 대비와 경쾌한 터치가 극히 단조로운 풍경을 생기 있는 시각적 즐거움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아니에르의 멱감기'를 위한 습작 3

 

완성작을 위한 습작은 대개 거친 터치로 일관되고 있다. 뚜렷한 윤곽선에 의하지 않고 터치 하나하나로 대상을 포착하기 때문에 그만큼 일필 일필은 그 역할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묘사로써 최대한의 것까지를 암시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쇠라는 처음부터 굵은 터치와 반점에 의해 형태의 단순화를 시도했는데, 그것은 섬세한 색조 분할이 이루어지는 완성작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멱 감기>를 위한 이 습작은 다른 습작들과는 달리 시각이 둑 쪽으로 들어와 있으며, 등장 인물들도 완성작과는 다르다. 시각은 다만 앞 쪽의 둑과 강만을 끌어들인 근경에 두고 있다.

 

 

 

 

 

멱 감는 남자,'멱감기'를 위한 습작 4

 

습작 가운데 가장 완성작에 가깝다. 완성작에 보이는 화면 중심의 나체 인물과 둑에 앉아 있는 남자, 그리고 풀 위에 벗어 놓은 옷이 그대로이며, 멀리 원경의 다리와 공장 굴뚝도 고스란히 완성작에로 넘어가고 있다. 단지 완성작에 비한다면 일종의 부분도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시각이 나체 인물과 옷을 입고 있는 남자 쪽으로 밀착되어 들어가 있으며, 강 쪽의 풍경이 많이 잘려 있음이 그것이다. 이처럼 쇠라는 같은 지점에서 마치 카메라로 부분 부분을 포착하고 있듯 그렇게 화면을 분절(分節)시킨 시도를 거듭해 보이고 있다. 대상 인물과 풍경과의 관계에 대한 끈덕진 구도 실습일 것이다. 그는 이 여러 장의 습작을 갖고 최종적으로 완성작의 구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양쪽 둑, '멱 감기'를 위한 습작

 

1883년에서 84년에 걸쳐 쇠라는 쿠르보브와 근처에서 여러 장의 즉사(卽寫)를 했다. 그것은 <아니에르의 멱 감기>란 작품을 위한 일종의 현장 답습과도 같은 성질을 띠는 스케치였다. 이 소품도 그 중의 하나인데, 둑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배치만 없을 뿐 <아니에르의 멱 감기>에 나오는 배경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단순한 현장 스케치란 점에서 자신의 미학적인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스러운 표현 수단을 보여 주고 있다. 형태나 색채의 분석을 시작하기 이전의, 극히 담담한 스케치 풍이다. 색조에 있어서나 옆으로 문지른 필촉 등에서 어느 정도 인상파의 영향이 첨가되어 있다.

 

 

 

낚시꾼

 

강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인물들과 강 위에 배를 띄우고 있는 인물들이 한결같이 역광(逆光)을 받은 듯 처리되어 있다. 아마 저녁나절일 것이다. 어둠이 오 기 직전의 강가의 정경이, 실루엣으로 처리되어 있는 낚싯군과 강에 드리운 긴 낚싯대에 의해 더욱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정적인 분위기와 수평선과 사선에 의한 화면 구성은 후기의 작품들과 일치되나, 약간 거친 터치와 굵은 붓자국이 만드는 즉흥성은 초기의 작품들에서 나타나 는 공통점이다. 인상파적인 요소들을 보여 주면서도 견고한 구성에 대한 관심은 안정과 조화라는, 쇠라 예술의 근간(根幹)에로 그대로 이어진다.

 

 

 

 

그랑드 자트 섬

 

<아니에르의 멱 감기>에 이어 착수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한 습작 가운데하나, 습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완성된 하나의 독립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에르의 멱 감기>를 위해 끊임 없는 데생과 습작을 거듭한 것과 같이,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위해서도 그는 매일처럼 이 섬을 찾아와 전체적 시각에서부터 각 사물의 하나하나에 대한 포름을 확인하였다. 대작의 무대가 될 풍경만이 독립된 이 작품은, 그러니까 전체 적인 시각 설정에 해당된다. 여기에다 인물들만이 등장되면 곧 완성작이 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세밀한 구성과 색조 등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이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이룰 구도를 예상하고 있다.

 

 

 

 

걷고 있는 두 사람

 

역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습작의 하나로 뒷면의 <원숭이를 데리고 있는 부인>과 거의 같은 부분도이다. 파라솔을 든 부인과 실크햇을 쓴 남자가 나란히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인데, 저쪽 풀밭 위에는 완성작에서 볼 수 있는 여인네들 모습이 점경(點景) 된다. 완성작의 거의 반에 해당되는 오른편 화면인데, <원숭이를 데리고 있는 부인>보다 더욱 경쾌한 색채와 터치를 보여 준다. 굵은 붓으로 찍어 나간 터치는 어디 한 군데 주저함이 없이 화면 전체로 울려 퍼져 마치 색채의 코러스를 듣는 느낌을 준다. 모든 대상은 정지되어 있다. 심지어 걷고 있는 두 사람 역시 하나의 기념물처럼 그 자리에 뿌리 박혀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 정지 가운데서도 끊임없는 유동과 생기는 색채와 터치에서 오는 즉흥성 때문일 것이다.

 

 

 

 

원숭이를 데리고 있는 부인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오른쪽 전경만을 따로 독립한 습작의 하나. 완성작에는 부인 옆에 실크 햇을 쓴 남자가 덧붙여져 있는데, 여기서는 부인만을 다루었고, 원숭이를 데리고 있는 것은 완성작과 같다. 역시 습작에 공통되는 속도감 있는 터치와 즉흥성이 대담한 순색의 사용을 통해 진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의 중요성은 인물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과의 관계에 있어 밀도 높은 구성에 있다고 하겠다. 수직의 부인의 몸과 배경의 수목이 파라솔에서 생기는 사선과 원숭이를 맨 줄의 사선에 의해 밸런스를 유지해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화면 전체를 수평과 수직의 구조 속으로 끌어들인 견고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랑드 자트 섬'의 마지막 습작

 

극히 세부를 제외하곤 완성작과 거의 같은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단지 완성작에서 보는 완벽한 마감이 없어 거친 점묘로써 처리된, 즉흥적이고도 생생한 동감(動 感)이 완성작과 대조적이다. 하나의 습작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완성작과는 여러모로 다른 감흥을 얻고 있음이 역력하다. 섬세한 점묘와 그것으로 인한 더욱 견고한 조형적 건축은 완성작에 따르지 못하고 있으나, 즉흥성과 명쾌함은 완성작에 앞서고 있다. 그러니까 똑같은 소재를 각각 다른 표현에 의해 얻어지는 차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 점이 습작이라는 과정보다 이것대로 독립된, 또 하나의 완성이란 느낌을 강하게 주는 것이다.

 

 

 

 

 

그랑캉의 오크 곶(岬)

 

1885년 3월 대작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완성하고 그 해 가을에 다시 손질하기까지의 막간의 여름을 노르망디의 그랑캉에서 보낸 쇠라는 최초의 바다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것은 바다 풍경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전경에 불쑥 솟아 오른 거대한 암괴(巖塊)가 단연 화면을 압도하고 있으며, 멀리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선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가없는 바다 위로는 몇 마리의 새들이 날고 있다. 그리고, 암괴 끝부분 쪽 원경의 바다 가운데 아물거리는 돛배의 모습이 들어온다. 거대한 것과 미세한 것, 광대무변한 자연과 그 속에 존재하는 생물과의 대비 등, 단순하면서도 의미 깊은 구도 설정을 엿보게 한다.

 

 

 

쿠르보브와의 세느 강

 

역시 세느 강변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와 이어지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수목이 선 근경과 강가를 거닐고 있는 부인, 그리스도 피안의 풍경등에서 <그랑드 자트 섬>의 그것과 유사성을 나타낸다. 여기서도 정적이 깔린 한가로운 강변의 정경을 엿볼 수 있는데, 부인 앞에 그려진 뛰어가는 개가 유일한 동감을 대신한다. 밝은 색조의 경쾌하게 떨리는 터치가 어울려 화사한 강변의 분위기를 효과있게 묘출해 주고 있다. 강둑과 피안의 모래밭이 이루는 수평의 구도 속에 부인과 원경의 가옥들이 갖는 수직의 선감(線感), 그리고 약간 사선을 이루면서 솟은 나무가 화면을 긴밀하게 조여 주고 있다.

 

 

 

 

 

옹플뢰르의 바 뷔탕의 모래톱

 

이전과 다름없는 점묘법(點描法)이 사용되고 있으나, 점묘가 더욱 조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체의 색조도 이전보다는 약해지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구성은 더욱 견고함을 보여주는데, 필촉 분할과 구성의 견고함은 쇠라 특유의 화면의 완성이라고 할 만하다. 아침 햇빛을 나타내기 위한 청색의 기조는 상쾌한 빛의 효과를 더해 주면서 맑은 대기감을 전달해 주고 있다. 이런 대기감에 대한 배려는 쇠라의 새로운 색체 체계에 대한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 더욱 분할적인 점묘의 유도와 일치하고 있다. 가파른 벼랑의 사선과 약간 경사진 모래톱, 그리고 툭 트인 수평선이 화면 분할의 미묘함을 드러낸다.

 

 

 

 

옹플뢰르의 등대

 

약간 사선의 모래톱과 먼 원경의 수평선 구도는 쇠라의 해안 풍경에서 가장 많이 눈에 뜨인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조로운 구도이면서도 이 커다란 구도의 골격 속에 작은 수평과 수직의 대상물을 점경(點景)시켜 구성의 밀도를 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여기 다 조탁(彫琢)한 듯한 점묘(點描)의 효과는 완벽한 짜임새에 반응된다. 수평과 사선의 구도 속에 우뚝 선 등대가 단조로움을 깨면서 근경의 모래밭에 세워져 있는 단순한 나무 받침대와 시각적인 견인(牽引)을 유지해 준다. 더없이 밝은 색조와 떨리는 듯한 빛의 반영은 인상파의 그것을 그대로 이어주면서도, 화면의 짜임새는 인상파에서는 볼 수 없는 세심한 계산 위에 이루어져 있다.

 

 

 

 

'포즈를 취한 여인들'의 습작 (뒷모습)

 

완성작에서 보는 세 사람의 여인은 실제로는 한 명의 모델을 각각 다른 포즈를 취하게 하여 화면에 합성시킨 것이란 설이 있다. 쇠라의 애인 마드레느 노브로크가 그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 세 개의 포즈가 독립된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도 이 점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청색과 심홍색의 대비, 그리고 보색 관계를 이용한 생기 있는 색채 효과와 시각적 혼합에 의한 중화된 색채의 화음이 돋보인다. 필촉(筆觸)의 크기는 부분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머리털 부분에서는 크고, 어두운 부분에서는 작고 똑똑하게 상감(象嵌)하여 넣었다. 마치 모자이크에 의한 견고하면서도 화사한 벽화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포즈를 취한 여인들'의 습작 (옆모습)

 

그랑드 자트 섬의 야외 풍경에서 실내로 옮겨진 풍경인데, 제작 연대는 거의 비슷하다. 이 작품은 완성작 <포즈를 취하는 여인들>을 위한 습작 중의 하나로, 하나의 완성작을 위해서 사물 하나하나를 따로 독립해서 그리는 쇠라의 방식을 엿보게 한다. 완성작에서는 화면 오른쪽에 위치한 이 옆모습의 여인은 완성작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서도 완전히 독립된 작품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지 완성작에서는 스타킹을 벗고 있는 포즈인데, 여기서는 맨발이란 차이가 보일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 일련의 포즈는 이미 전통적인 누드의 포즈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성이랄까, 현대적인 세련미가 넘쳐 흐르고 있다.

 

 

 

 

'포즈를 취한 여인들'의 습작 (앞모습)

 

완성작에서 보는 화면 가운데의 여인. 이 습작은 완성 작과 거의 같은 점묘법에 의한 것과, 아직 거기까지 나가지 않은 단계의 습작의 것이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두 손을 치부 앞에 모으고 두 다리를 오므리고 벽 앞에 서 있는 포즈는 완성작에서 보는 약간 벌린 두 다리의 포즈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은 거의 세부를 알아볼 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형태로만 느껴질 뿐이다. 색채는 완성작에서와 같은 섬세한 분해가 아니고 마치 색 종이를 잘게 잘라 흩어놓은 것 같은, 분망한 필촉에 의하고 있다. 색조는 옥외의 오렌지 빛이 아니라 청색과 황색을 대비시켰다.

 

 

 

 

옹플뢰르 항구에서

 

항구 도시 옹플뢰르에서 제작한 선창의 풍경이다. <옹 플뢰르 항구>의 부분도 같이 느껴지지만 전혀 다른 시점에서 붙잡은 풍경이다. 선창의 구조물들과 배의 마스트, 그리고 마스트와 배에 이어진 줄들의 복잡한 구성이 눈에 뜨인다. 쇠라의 취향은 단순히 선창의 풍경에 있지 않고, 풍경 속에 들어있는 수직선과 사선을 이용한 구성의 시도에 있음을 엿보게 한다. 색조 분할의 과학적인 방법에 있어서 쇠라는 인상파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지를 열어 보였지만, 한편 인상파가 거의 무시해 버렸던 화면의 짜임새 있는 구성에서도 그 독자적인 시도와 정진을 보여주었다. 말하자면 그림은 사각형의 면 속에 이루어지는 구성이라는 사실을 가장 철저하게 자각했다고 할까.

 

 

 

 

 

옹플뢰르, 세느강 하구의 석양

 

 

 

 

옹플뢰르 항구

 

1886년 6월부터 8월까지 쇠라는 노르망디의 항구 도시 옹플뢰르에서 제작에 전념했다. 일련의 바다 풍경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점묘(點 描)를 조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강변 풍경에서도 자 주 나타나지만 특히 해안 풍경에선 수직선과 사선을 교묘하게 결구(結構)시킨 구성을 보여 주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배의 마스트와 굴뚝과 깃대 등 수직선의 밀집과 화면 왼편에서 시 작되어 오른편으로 뻗어 올라간 사선을 엿볼 수 있으며, 수직선과 사선의 교차가 완벽할 정도로 긴밀한 유대를 형성하고 있음은 쇠라의 취향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쿠르보브와의 다리

 

1886년 겨울에서 다음 해에 걸쳐 제작된 이 작품은 더 욱 엄격하고도 밀도 있는 구성과 색의 아라베스크를 보여 주는 쇠라의 완숙한 경지의 작품이기도 하다. 쇠라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수평과 수직, 그리고 사선의 변화에 의한 구성적 관심이 여기 선 더욱 밀도 있게 나타나고 있다. 부두와 다리의 수평선과 배의 마스트와 그 그림자가 만드는 수직선의 잔잔 한 화면 분절(分節)은 이미 현실적 풍경에 대한 관심보다 선에 의한 구성과 색점(色點)의 조화라고 하는 화면 자율성(自律性)을 강하게 반영해 주고 있다. 회화의 발전의 한 단계를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포르 앙 베생의 다리와 부두

 

포르 앙 베생은 노르망디의 해안선에 있는 항구 도시로, 쇠라는 1888년 여름을 여기서 보내면서 6점의 작품을 그렸다. 이른 아침이면 북적거리던 항구도 정오가 되면서 한적해지는데, 이 작품은 그런 정적의 한때 를 묘출하고 있다. 가운데, 다리를 두고 이 쪽 모래밭과 저쪽의 화면들로 화면이 분절되고 있는데 선창의 건물들과 방파제, 다리 등 구조물들이 보여 주는 구축적인 엄격한 선의 조화에 비해 앞 쪽의 모래밭의 정적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역시 다시 점적(多視點的) 요소를 볼 수 있는데, 왼편 끝으로 걸어 나가는 남자와 가운데 다리 위로 가고 있는 땔 나무를 진 여인의 모습, 그리고 앞 쪽에 우뚝 선 어린 소녀의 모습이 각각 흩어져 있다.

 

 

 

 

봄의 그랑드 자트의 세느강

 

강변이나, 해안의 풍경을 즐겨 다루는 것은 인상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쇠라의 작품 가운데서도 강변과 해안 풍경이 적지 않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보는 시각에서 강 쪽으로 더욱 나간 장면이고, 화면의 중심은 강에 떠 있는 돛배와 카누에 있다. 원경의 해안의 수평선과 근경의 둑이 보여 주는 사선은 쇠라의 풍경화에서는 자주 나타나는 구도인데, 수평과 수직, 그리고 사선을 통한 긴밀한 화면의 밀도를 엿볼 수 있다. 점묘는 더욱 세분 화되어 마치 상감(象嵌)을 하듯 색채를 조탁(彫琢)해 넣었다. 화창한 봄날의 신록과 빛나는 강 물, 그리고 흰 돛의 조화는 풍부한 계절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샤이 춤'을 위한 습작

 

쇠라의 거의 태반의 작품들이 움직임이 없는, 정적을 일관되게 추구해 오고 있는 점에 비해 본다면, 확실히 이 작품은 예외적이다. 또한 수직선과 사선에 의한 밸런스와, 수직, 수평의 구조 속에 부동의 대상을 끌어 넣었던 이전의 작품과도 현격한 차이를 보여 주는 곡선적인 요소, 소용돌이치는 패턴이 기조가 되고 있다. 후기로 오면서 실내의 풍경, 그 가운데서도 서커스단과 카바레의 장면을 그린 작품들에서 이런 요소가 공통된다. 완성작과 거의 같은 장면을 보이고 있지만, 완성작이 구성과 색조의 완벽한 조화를 추구하고 있는 데 반해, 이 습작에선 색조 자체의 즉흥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샤이 춤

 

같은 밤의 유흥가를 모티브로 한 <파라드>와는 매우 다른 표현을 보여 주고 있다. 가로, 세로의 직선의 분할에 의한 화면 구성과 거기서 일어나는 정적인 무거움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곡선을 주로 채용한 화면의 패턴이 매우 리드미컬한 구도를 이루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과 그림 전체의 디자인에 깔려 있는 유머는 확실히 쇠라의 새로운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런 특징은 아마도 당대의 종합주의, 아르누보 등이 추구한 종합성과 평면성, 그리고 양식화의 일반적 경향의, 극히 자연스런 반영이 아닌가 싶다. 환락가의 장면은 특히 세기 말의 중요한 소재이기도 하였는데, 쇠라 역시 그런 시대적인 분위기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에펠탑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졌는데, 이 작품은 바로 그 해에 제작되었다. 그러니까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일찍 그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에펠탑은 건립 직전부터 세워지고 난 뒤로 굉장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쇠라는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근대 문명의 개화에 찬성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것이다. 에펠탑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특성으로서의 수직과 수평, 그리고 사선은 쇠라의 풍경화에서 찾을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기도 한데, 쇠라의 구성적 특성을 떠올려 볼 때 에펠탑의 작품화는 극히 자연스럽고도 당연 한 것이라 생각된다.

 

 

 

 

서커스

 

쇠라의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작이기도 하다. <샤이 춤 >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직선적인 요소는 많이 후퇴하고 대신 원과 나선과 타원 등 곡선적인 요소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동시에 전보다 윤곽선도 뚜렷해진 것이 특색이다. 쇠라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서커스 메드라노에 열심히 다녔는데, 지금까지의 정지된 이미지와는 상반된 동적인 것에 대한 동경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수평과 수직, 그리고 사선에 의한 밸런스를 유지한 균형감각을 추구했던 지금까지의 의도를 곡선적인 것으로 전환시키려는 의욕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이 시도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중단되어 버렸다. 앙데팡당전(이 작품이 출품된)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죽었다.

 

 

 

 

 

일요일의 포르 앙 베셍

 

쇠라의 다른 풍경들에 비해 포르 앙 베셍의 일련의 해안 풍경은 복잡하고 그만큼 구성적 풍부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선창의 건물과 방파제 그리고 마스트가 만드는 직선의 구성에 의해 화면은 극도의 짜임새를 기하고 있는데, 위쪽의 펄럭이는 깃발의 다양한 곡선이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물에 비친 난간 구조물들의 그림자는 오후 한때의 항구의 정적을 더욱 실감 시켜주며, 물빛과 푸른 하늘에 피어오르는 흰 구름의 투명함이 청징(淸澄)한 세계의 결정(結晶)같은 고요함을 시사한다. 수직과 수평의 단정한 조화와 세밀한 점묘가 더욱 완벽성을 지향하고 있다.

 

 

 

 

 

그라비린의 水路

 

1890년 여름, 쇠라는 벨기에 국경 근처 해안 도시인 그라비린에서 몇 점의 풍경화를 제작하였다. 아마도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풍경화에 해당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90년에 들어오면서 실내의 풍경으로 옮겨진 그의 관심에서 본다면 과거의 해안 풍경에 맥락되는 것으로 다소 이질 감을 주지 않는 바는 아니나, 종전의 풍경에서 보는 일반적인 특징으로서 수평과 수직, 그리고 사선에 의한 안정된 구도의 추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더욱이 밤의 장막이 내리기 직전의 엷은 빛으로 물든 해안의 고요함이 안정된 구도에 의해 더욱 잔잔한 정감을 유도해 주고 있다. 과학을 초월한 투명한 시의 세계이다.

 

 

 

 

 

그라비린의 水路

 

 

 

 

 

 

화장하는 여인

 

쇠라의 애인 마드레느 노브로크를 그린 작품인데 후기의 양식성이 농후하게 나타나 있다. 인물의 객관적인 묘사와 인물과 배경 전체를 에워싸는 분위기에 깃들어 있는 문양적(紋樣的) 패턴이 기묘하게 어우러져 일종의 음악적인 톤을 형성해 주고 있다. 이 점은 <샤이 춤>이나, <서커스>에서도 발견되는 공통성이다. 여인의 모습과 화장대의 모양, 그리고 배경의 곡선적 패턴이 상승하는 무드를 타고 있는데, 쇠라는 이 상승적 무드를 즐거움으로 대치시키고 있다. 그 즐거움은 다른 실내 작품에서와 같이 유머를 곁들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화면 왼쪽 위에 그려진 꽃이 있는 곳에는 원래 쇠라 자신의 얼굴이 그려졌다가 지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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