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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숙한 동성련애자 천재 시인 - 랭보
2017년 12월 27일 00시 01분  조회:7832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 1854. 10. 20, 프랑스 샤를빌
사망 1891. 11. 10, 마르세유
국적 프랑스

요약 조숙한 천재 시인으로 근대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산문시집 <일뤼미나시옹>은 생략법과 난해한 문체를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랭보((Jean-Nicolas-)Arthur Rimbaud)

프랑스의 시인이다.

개요

한때 폴 베를렌과 깊은 관계(동성련애자)를 맺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린시절

랭보는 프랑스 북동부의 아르덴 지방에서 육군 대위와 그 지방 농부의 딸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1살 위였고, 여동생은 2명이었다. 1860년 랭보 대위는 아내와 헤어졌고, 아이들은 어머니가 키우게 되었다. 일찍부터 남다른 지적 능력을 보인 아르튀르는 8세 때부터 타고난 글재주를 보였다. 나중에 그는 샤를빌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그는 특히 라틴어 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1870년 8월에는 경시대회에서 라틴어 시로 1등상을 받았다. 그가 처음 발표한 시는 1870년 1월 〈르뷔 푸르 투스 La Revue pour Tous〉에 실렸다.

1870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프로이센전쟁 때문에 그의 정식 교육은 막을 내렸다.

8월에 그는 파리로 달아났지만, 차표 없이 여행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며칠 동안 감옥에서 지냈다. 그의 옛날 은사가 벌금을 대신 물어주고 그를 두에로 보냈다. 두에에서 그는 국민군에 들어갔다. 10월에 그는 다시 사라져, 침략군이 지나간 자국을 따라 프랑스 북부와 벨기에를 정처없이 돌아다녔다. 그는 다시 두에에 도착하여 2주일 동안 자유와 굶주림과 거친 생활 속에서 쓴 시들을 다듬었다. 삶과 자유 속에서 느끼는 천진난만한 기쁨을 노래하고 있는 이 시들은 그가 처음으로 쓴 완전히 독창적인 작품이다.

어머니의 고발로 그는 다시 경찰에 잡혔지만, 1871년 2월 그는 손목시계를 팔아 다시 파리로 가서 2주일 동안 거의 굶다시피하며 보냈다.

반항과 시적 환상

3월초에 그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전에 쓴 시들을 가짜라고 내팽개치고, 삶에 대한 혐오감과 순진무구한 세계로 달아나고 싶은 욕망, 그리고 선과 악의 투쟁의식을 표현한 거칠고 불경스러운 시를 썼다. 그의 행동도 그가 쓴 시의 분위기와 어울렸다. 그는 종교와 도덕 및 온갖 종류의 규율에 대한 의식적인 반항으로 일하기를 거부하고 하루 종일 카페에서 술을 마시며 나날을 보냈다. 동시에 그는 신비주의 철학과 밀교(密敎) 및 마술과 연금술에 대한 책을 읽었고, 2통의 편지(1871. 5. 13, 15)에 표현된 새로운 미학을 형성했다.

특히 2번째 편지는 〈견자(見者)의 편지 Lettres du voyant〉라고 불리는데, 이 제목은 시인이란 무릇 무한한 시간과 공간을 꿰뚫어볼 수 있고 개인의 인격에 대한 인습적 개념을 형성하는 모든 제약과 통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영원한 신의 목소리를 내는 도구로서의 예언자, 즉 '견자'(voyant)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1871년 8월말 랭보는 샤를빌의 한 문우의 충고에 따라 시인인 폴 베를렌에게 그의 새로운 시를 몇 편 보냈다.

그중에는 각 모음에다 다른 색깔을 부여한 소네트 〈모음 Voyelles〉도 들어 있었다. 베를렌은 이 시들의 탁월함에 깊은 인상을 받고, 랭보에게 여비를 보내어 파리로 초대했다. 갑자기 폭발한 자신감 속에서 랭보는 〈취한 배 Le Bateau ivre〉를 썼다. 이 시는 전통적인 작시법을 따르고 있지만, 깊은 정서적·영적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서 언어구사의 기교가 놀랍고 상징과 은유의 선택이 대담하기 짝이 없다.

이 걸작에서 랭보는 그의 예술의 가장 높은 정점들 중 하나에 도달했다.

1871년 9월 파리에 도착한 랭보는 3개월 동안 베를렌 부부와 함께 지내면서 당대의 유명한 시인들을 거의 다 만났지만, 거만하고 버릇없는 태도와 음탕함으로 베를렌만 제외하고 그들 모두에게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떠나라는 요구를 받자 술을 퍼마시고 방탕한 생활을 시작했으며, 베를렌과 동성애 관계를 맺어 추문을 일으켰다.

1872년 3월 그는 베를렌이 아내와 화해할 수 있도록 샤를빌로 돌아갔지만, 5월에 다시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이제 그가 없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고 맹세했다.

이 시기에(1871. 9~1872. 7) 랭보는 운문으로 된 마지막 시를 썼는데, 이 작품은 기법의 자유분방함과 독창성에서 뚜렷한 진보를 보이고 있다. 이때 그는 베를렌이 걸작이라고 격찬한 〈영혼의 사냥 La Chasse spirituelle〉이라는 작품도 썼지만 이 작품의 원고는 베를렌과 랭보가 영국에 갔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다.

일부 비평가들은 초월적인 산문시 〈일뤼미나시옹 Illuminations〉도 이 창조적인 시기에 쓴 작품으로 보고 있지만, 랭보 자신은 이 작품을 이루고 있는 어떤 시에도 날짜를 적지 않았다.

1872년 7월 베를렌은 아내를 버리고 랭보와 함께 런던으로 도망쳐 소호에서 살았다.

랭보는 이곳에서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썼을지도 모른다. 그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내러 집으로 돌아갔지만, 1873년 1월 베를렌의 부름을 받았다. 베를렌은 랭보의 동정을 사기 위해 중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연극을 했다. 4월에 랭보는 어머니와 여동생들이 머물고 있는 샤를빌 근처의 로슈에 있는 농장으로 가서 스스로 "이교도의 책, 또는 흑인의 책"이라고 부른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은 결국 〈지옥에서 보낸 한 철 Une Saison en enfer〉이라는 작품이 되었다.

1개월 뒤, 그 근처에 머물고 있던 베를렌은 랭보를 설득하여 함께 런던으로 갔다. 랭보는 베를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도 거기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는 것에 죄의식을 느꼈고, 이 죄의식 때문에 베를렌을 가학적일 만큼 잔인하게 다루다가도 금방 그것을 뉘우치고 다정하게 대하곤 했다. 두 사람은 자주 말다툼을 벌였고, 마침내 7월초 베를렌은 랭보와 다툰 뒤 그를 버리고 벨기에로 가버렸다. 그러나 아내와 화해하는 데 실패한 그는 다시 사람을 보내어 랭보를 불러온 다음 함께 런던으로 돌아가자고 애원했다. 그래도 랭보가 떠나려고 하자 베를렌은 랭보에게 총을 쏘아 손목에 상처를 입히고, 다시 총을 쏘겠다고 위협했다.

베를렌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고, 나중에 재판에서 2년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랭보는 곧 로슈로 돌아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정신이 지옥에 떨어지고 예술과 사랑에서 실패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1873년 가을 벨기에에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파리에서 호평을 받지 못한 데다 인쇄업자에게 돈을 줄 수도 없게 되자, 그는 인쇄된 책을 모두 포기하고 원고와 서류들을 샤를빌에서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이 책을 여러 권 묶은 꾸러미가 1901년에 벨기에의 장서가인 레옹 로소에게 발견되었는데, 그는 이 사실을 1915년에야 공표했다.

1874년 2월 랭보는 난폭하고 자유분방한 시인 제르맹 누보와 함께 런던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잡역을 하여 번 쥐꼬리만한 돈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랭보는 이때에도 〈일뤼미나시옹〉의 일부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보는 6월에 파리로 돌아갔고, 랭보는 병에 걸렸거나 가난 때문에 심한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7월말에 그는 버크셔 주 레딩에 있는 합승마차 매표소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집으로 간 뒤 다시는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랭보는 1875년초에 베를렌을 마지막으로 만났고, 이 만남도 역시 격렬한 말다툼으로 끝났다. 랭보가 베를렌에게 〈일뤼미나시옹〉 원고를 준 것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여행가와 무역상

1875~76년에 랭보는 독일어·아랍어·힌두스타니어·러시아어를 배우고 세상을 구경하러 떠났다.

1879년 6월까지 그는 걸어서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서인도 제도의 네덜란드 식민지 군대에 입대했다가 탈영했고, 독일 서커스단과 함께 스칸디나비아로 갔고, 이집트를 방문했으며, 키프로스 섬에서 노동자로 일했는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매번 병에 걸리거나 다른 어려움을 만나 고통을 겪었다. 1879년 겨울 내내 장티푸스와 싸우고 있을 때 그는 방랑생활을 그만두고 장래계획을 세우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봄에 키프로스 섬으로 돌아간 그는 건축업자의 현장감독으로 취직했지만, 곧 그 일을 그만두고 다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아덴에서 커피 무역상에게 고용되어 백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에티오피아의 오가덴 지역에 들어갔다. 이 탐험에 대한 그의 보고서는 프랑스 지리학회 회보(1884. 2)에 실려 약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885년 10월 랭보는 저금을 털어 셰와(에티오피아의 일부)의 왕인 메넬리크 2세에게 무기를 팔기 위한 원정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메넬리크 2세는 당시 에티오피아 황제인 요한네스 4세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1888년 중엽에야 겨우 기반을 잡는 데 성공했고, 요한네스 4세가 이듬해 3월에 살해당하고 메넬리크가 황제 자리에 오른 뒤에는 총포 밀수로 얻는 수입이 계속 줄어들었다. 에티오피아에 있는 동안 그는 가장 가난한 원주민만큼 소박하게 살면서, 언젠가는 은퇴하여 느긋하게 살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맸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는 인색했지만 남에게는 드러나지 않게 너그러웠고, 그가 원주민 여인과 함께 살던 작은 집은 에티오피아에 사는 유럽인들의 집합 장소가 되었다. 그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타고난 재주를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에티오피아인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정직성과 성실함으로 추장들의 신뢰까지 얻었으며, 특히 메넬리크의 조카인 하레르 총독은 그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가 이 시기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애정과 지적인 친구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1891년 봄 그는 신부감을 찾기 위해 고국에 가서 휴가를 보낼 계획을 세웠다.

해외에서 살고 있던 이 시기에 그는 프랑스에서 시인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베를렌은 〈저주받은 시인들 Les Poètes maudits〉(1884)에서 그에 대해 썼고, 그의 시를 발췌하여 발표했다. 이 시들은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지만 랭보한테서는 소식이 없었다.

랭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그에게서 답장도 받지 못한 베를렌은 1886년 상징파의 정기간행물인 〈보그 La Vogue〉에 〈일뤼미나시옹〉이라는 제목의 산문시와 여러 편의 운문시를 '고(故) 아르튀르 랭보'의 작품으로 발표했다. 랭보가 이런 발표에 대해 알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저주받은 시인들〉이 출판된 뒤 자신의 명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1885년 8월에 그는 학교 동창생인 폴 부르드한테서 편지 1통을 받았는데, 부르드는 전위파 시인들 사이에서 그의 시(특히 소네트인 〈모음〉)가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던 것이다.

그는 또한 1890년 7월에 한 평론지가 보낸 편지(프랑스로 돌아와 새로운 문학운동을 이끌어보라고 권유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이 편지가 그의 서류 틈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루어 그가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래도 답장을 보내지는 않은 것 같다.

1891년 2월 오른쪽 무릎에 종양이 생겨, 4월초에 하레르를 떠날 때는 해안까지 1주일 걸리는 길을 줄곧 들것에 실려 가야만 했다.

아덴에서 받은 치료는 실패했고 그는 프랑스로 송환되었다. 마르세유에 도착한 직후 그는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야 했다.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거의 위안이 되지 못했고, 그는 여동생 이자벨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좌절감과 절망을 쏟아놓았다. 7월에 로슈로 돌아갔을 때 그를 돌보아준 사람은 이자벨이었다.

그는 여전히 결혼하여 에티오피아로 돌아가기를 원했지만 건강은 계속 나빠질 뿐이었다.

1891년 8월 그는 마르세유로 악몽 같은 여행을 떠났다. 이곳에서 그는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를 따라간 이자벨은 오빠의 병이 나을 가망이 없다는 통고를 받았다. 그러나 랭보는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견뎌냈다. 그가 죽기 직전에 이자벨은 그를 설득하여 신부에게 고해를 하게 했다. 신부와 나눈 이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 주고, 소년 시절의 시적인 상상력을 다시 일깨워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견자'가 되어, 여동생의 말에 따르면 〈일뤼미나시옹〉에 영감을 불어넣어 준 것보다 훨씬 더 깊이있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근거는 여동생 이자벨의 말일 뿐이고, 이자벨은 여러 가지 점에서 특히 랭보가 에티오피아에서 쓴 편지를 몇 군데 교정했다는 점에서 이미 믿을 수 없는 증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평가

랭보보다 더 열렬한 연구대상이 되거나 근대 시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 시인도 드물다.

그가 독창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작품은 산문시 〈일뤼미나시옹〉인데, 이 시의 형식은 그의 생략법과 난해한 문체를 연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그는 선배 시인들과는 달리 산문시에서 일화를 이야기하고 서술하는 내용이나 심지어는 묘사적인 내용까지도 모조리 제거해버렸고, 낱말에서 사전적 의미나 논리적 내용을 박탈함으로써 상징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른바 '에타 담'(état d'âme:영혼의 상태)이라는 정신상태를 불러일으키는 거의 마술적인 힘을 시에 부여했다.

그는 또한 잠재의식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어린시절의 감각 속에 얼마나 풍부한 시의 재료가 숨어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의 글은 아직도 문명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의 가장 중요한 본질 자체에 대한 오늘날의 반감과 혐오감을 강렬히 표현하고 있다.
=====================================덤으로 더...
 

아르튀르 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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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auteur.png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Jean Nicolas Arthur Rimbaud
Carjat Arthur Rimbaud 1872 n2.jpg
Arthur Rimbaud signature.svg
출생 1854년 10월 20일
프랑스샤르빌
사망 1891년 11월 10일 (37세)
프랑스, 마르세유
직업 시인
언어 프랑스어
국적 프랑스
사조 상징주의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프랑스어: Jean Nicolas Arthur Rimbaud프랑스어 발음: [aʁtyʁ ʁɛ̃bo] ( )1854년 10월 20일 – 1891년11월 10일)는 프랑스의 시인이다.

 

 

생애[편집]

아르덴 주의 샤를빌(지금의 샤를빌메지에르)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일찍 집을 버리고 나갔고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의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학창시절에는 뛰어난 모범생이었으나, 차차 반항적으로 되었고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방랑도 하게 되어 16세로 학업을 포기한다. 이 전후에 쓴 여러 시에는 그의 그리스도교나 부르주아 도덕에 대한 과격한 혐오감이 가득 차 있다. 랭보는 시인은 우주의 모든 것을 투시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1871년 5월에 유명한 '견자'(voyant 부아양[*]=천리안이라는 뜻)의 설(說)을 제창하여 이 새로운 문학적 실험에 들어갔다.

얼마 뒤 100행의 장시 《취한 배》를 쓰고서는 베를렌의 초청을 받아 파리로 오고, 베를렌과 동성애 관계가 된다. 두 사람은 뜻이 맞아 여러 곳을 방랑하면서 파멸적인 생활을 보내다 브뤼셀에서 베를렌이 랭보를 권총으로 저격한 사건으로 두 사람은 헤어진다. 이 2년간의 이상한 체험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에 훌륭하게 정착되어 있다. 이때부터 그는 문학의 열의가 차츰 식어 실제적인 직업을 구하고자 분주하게 다닌 한편 환상적인 《일뤼미나시옹》의 산문은 대부분 이 시기에 썼다고 추정된다. 이 산문 시집은 《지옥에서 보낸 한 철》과 함께 프랑스 산문시의 최고봉을 이룬다고 하지만, 후자는 거친 그림자를 숨기고 그의 상상력에 의하여 해체된 현실이 보다 높은 차원의 시적 현실에 다시 구축되고 있다. 이미지의 풍요로움과 신선함은 다른 시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나 그는 예술적 자유의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1875년 문학을 단념하고 유럽 각지를 유랑하다가 1880년경 아프리카로 건너가더니 상인·대상들과 함께 돌아다니다가 다리의 종기가 덧나 프랑스 마르세유 병원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고 몇 달 후 숨졌다. 조숙한 천재 시인 랭보의 영향은 상징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뚫어서 현대시에도 파급하여 지금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저서[편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편집]

랭보가 1873년에 출판한 시집이다. 폴 베를렌과 동성애 관계였다가 베를렌이 브뤼셸에서 랭보를 저격하여 이별한 이후 완성되었다. 랭보 그 자신에 의해 출판된 유일한 책이며, 초현실주의자를 포함하여 후대의 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일뤼미나시옹[편집]

1886년 5월과 6월에 파리의 문학 평론지인 《라 보그》(La Vogue)에서 부분적으로 처음 출판된, 랭보의 미완성 산문 시집이다. 1886년 10월에 레 퓌블리카시옹 드 라 보그(Les publications de La Vogue)가 랭보의 전 애인인 폴 베를렌이 제안한 《레 일뤼미나시옹》(Les Illuminations)라는 제목을 붙여 책의 형태로 재출판하였다.

관련 사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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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랭보의 절절한 편지
(부제: 베를렌, 제발 돌아와줘...)

사뿐사뿐 2017.11.25 18:25

rimbaud complete work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요즘 백수다. 

그래서 예전에 영화 토탈이클립스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랭보옵빠의 책을 찾아 읽었다.

사실 랭보에 빠져든 이유는, 영화에서 랭보역을 넘나 잘 연기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옵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의 일생에 흥미를 갖고 써치해보면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어린나이부터 자기는 시인이 될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런 포부를 뱉어놓고 실제로 고군분투한 것,

당대 잘나가던 시인한테 제발 자기 작품좀 읽어달라고 여러번 편지를 보낸 것,

자기가 쓴 시에 대해서 엄청 자신있던 것, 등등

또라이 같은 짓을 많이 해도 밉지 않았던 것은,

그 나름대로 계속 노력을 해서가 아니었을까.

 

또 어린나이에 (10대에) 시를 쓰기 시작해서 20대초반 (정확히 잘 모르겠다) 

아무튼 약 5년동안 시를 가열차게 쓰고

미련없이 관둔 것도 신기하다. 그 후로 바람구두를 신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닌 것도... 

 

나무위키를 읽다가 알게된 건데,

랭보의 유명 국내빠돌이로 타블로랑 하현우가 있다고 한다.

타블로는 '막을 올리며' 라는 곡에서 '난 숨만 쉬어도 랭보' 라고 작사했으며,

하현우는 랭보관련해서 팔에 문신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랭보가 살았던 샤를빌? 샤를르빌? 을 방문하는 전세계적 빠순 빠돌이들도 많다고 하니.. 

정말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인건 분명하다.

 

아무튼,

회사에 쩌들어서 매일 집->회사->집->회사의 루틴만 반복하느라 

나의 감수성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흑.

 

쨌든, 오랜만에 감수성에 푹 빠져보자.

 

도서관에서 빌릴 수가 없게 되어있어서 ㅡㅡ

관심이 가는 부분을 사진 찍어왔다. (불법은 아니겠지?)

좀 있다 밑에서 한 땀 한 땀 타이핑해가며 음미할 예정♡

 

시는 몇개 읽다가 도저히 무슨 말인지 (한글로도 어려운데 영어라서 더 멘붕) 모르겠어서

흥미로운 편지들부터 읽어보았다.

그 중에 제일 임팩트 강렬했던 거 ㅋㅋ 

랭보를 버리고 떠난 베를렌느에게 제발 다시 오라며 보낸 편지. 

 

관련 이미지

 

영화 토탈이클립스 中, 배를 타고 떠나버린 베를렌느를 보며 우는 랭보 ㅠ

... 후회해도 소용 없는 각 ... 

 

 

RIMBAUD TO VERLAINE 

 

London

Firday afternoon

[July 4, 1873]

 

Come back, come back, my dear, my only friend, come back.

(아 첫 줄부터... 절절하다. 제발 도라와죠....!!!)

 

I swear to you I'll be good. If I was mad at you, it was a joke I carried too far, and I'm sorry for it, more than I can say.

(맹세할게, 너한테 잘할게...! 내가 너한테 화난거였다면, 그건 죠크였어.. 내가 너무 심했어. 암쏘쏘리...ㅠㅠ)

 

Come back, we'll forget the whole thing. It's awful that you should have taken that joke seriously.

(도라와죠.. 다 잊자. 내가 그냥 생각없이 날린 죠크를 진지충처럼 받아드린거가 틀림없어.. 유감이야.. 잠깐만, 돌아와달라고 설득하는 중 마즘?;;;)

 

I haven't stopped crying for two days. Come back. Be brave, dear friend; nothing is lost. All you have to do is make the trip again.

(나.. 이틀동안 계속 울었쪙... 돌아와!!!! 용감해지자. 잃을건 없쟈나. 너는 그냥 우리가 했던 여행을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거쟈나. 점점 번역이 이상해지고 있는 느낌적 느낌. 그치만 괜찮아 내가 읽을라고 하는 거니까 ㅎ)

 

We'll live here again very bravely and very patiently. Oh! I beg you, it's for your own good, really.

(우린 여기 다시 같이 살거야.. 매우 용감하고 인내심있게?? 왜 자꾸 brave란 단어를 썼을까.. 동성애라? 베를렌느가 마누라 버리고 같이 여행중인거라?)

 

Come back, you'll find all your things here. 

(도라와죠.. 니 물건 여기 다 있쟈나...)

 

I hope you realize now that there was nothing serious in our discussion. What a horrible moment!

(우리가 했던 대화...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심각한건 아닌거 같지? 응? 정말 끔찍했던 순간이었어 ㅠㅠ. 내맘대로 번역중 ㅋㅋㅋ)

 

And that time when I waved at you to get off the boat, why didn't you?

(그리구 내가 너보고 배에서 내리라고 눈물 콧물 짜면서 난리쳤을 때.. 왜 안내린거야..? 갑자기 책망하기 시작하는 랭보ㅋㅋ)

 

We've lived together for two years, and this is what it's come to! What are you going to do?

(우리 2년동안 같이 살았는데, 우리의 끝이 겨우 이거인거야?? 베를렌.. 너 앞으로 뭐할 건데?)

 

If you won't come back here, do you want me to come meet you where you are?

(너가 여기로 오지 않겠다면, 내가 니가 있는 곳으로 갈까? 응? 번역하다보니 점점 랭보에 빙의잼)

 

Yes, I'm the one who was wrong. Oh! Oh! You won't forget me, tell me you won't. No, you can't forget me. I have you always with me.

(그래. 내가 호로자식이었어. 오! 오! 너 .. 나 잊지 않을 거지? 잊지 않겠다고 말해! 아냐, 넌 날 잊을 수 없어. 난 너랑 항상 함께 였는 걸. 아... 진짜 너무 짠하다. ㅠ 베를렌이 그렇게 떠나버린게 좀 많이 충격이었나보다)

 

Tell me, answer your friend, aren't we ever going to live together again? Be brave. Write me an answer right away.

(말해줘, 우리 같이 다시 안 살거야??? 용감해줘... 또 용감이라 썼다... 읽씹하지 말고 당장 답장줘)

 

I can't stay here anymore. Don't listen to anything except your heart. Quick, tell me if I should come to meet you.

(나 여기 더 못있어. 니 심장이 하는 소리만 듣고 판단해줘.. 빨리, 내가 너한테 가길 원하는지 말해줘)

 

Yours for the rest of my life.

(뭔 표현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아무튼 애정듬뿍 담긴게 느껴진다. 넌 내 남은생의 전부야??)

 

Answer right away; I can't stay here beyond Monday evening. I haven't got a penny left; I can't even mail this.

(바로 답장줘. 나 여기 월요일 저녁이후로 더 못있어. 왜냐면.. 떙전한푼 없거든 ㅎ 너한테 이 편지를 보낼 돈도 없어 ㅎ)

 

I've left your books and manuscripts with Vermesch.

(네 책이랑 원고들을 Vermesch와 함께 남겨뒀어. Vermesch가 뭔가염..)

 

If I can't see you again, I'll joing the navy or the army.

(만약 내가 널 다시 못 만나는 날엔, 나 걍 군입대 해버릴거야.......!! 랭보..대박...)

 

Oh, come back, I Keep crying all the time. Tell me to come to meet you, I'll come.

(오 제발 돌아와. 나 매일 울고있느라 넘 힘들어.. 널 만나러 오라고 말해, 내가 갈게!)

 

Tell me; send me a telegram. I must leave Monday night. 

(말해줘, 아님 나한테 전보쳐. 나 월요일 밤에는 여길 떠나야만 해... 카톡이 없던 그 시절.. 연락이 바로 안되서 얼마나 답답하고 무서웠을까ㅠ)

 

Where are you going? What are you going to do?

(너 어디로 가고 있는거야? 앞으로 뭐할건데? 응?) 

 

 

.........여기까지 감명깊게 읽은 랭보의 편지였다.

물론 이 책도 French -> English라 그 당시 랭보가 썼던 뉘앙스의 100%를 담진 못했겠지만,

그래도 만족한다.

소설보다도 더 재미있는 느낌ㅎ 

남의 편지를 훔쳐읽는 그런 관음적인 느낌ㅎ

 

나중에 불어배워서 불어 원본그대로 또 읽어보고 싶다.

그땐 또 느낌이 다를수도...? 근데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될듯싶다.

 

아 갑자기 토탈이클립스가 떙기는 밤이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들리는 음울한 배경음악 들으러 꼬고♪

//////////////////////////////////////////

 
 

도시 위에 가볍게 비 내리네

 

                               

내 마음은 울고 있다네

도시 위에 비 내리듯 ;

 

이 우수는 무엇일까,

내 마음에 파고드는 이 우수는

 

 

오 부드러운 비의 소리여

땅 위에 지붕 위에

 

내 지겨운 마음을 위해

오 비의 노래여!

 

 

이유 없이 우는구나,

이 역겨워진 마음은.

 

뭐라고! 배반은 없다고?...

이 슬픔은 이유가 없구나.

 

 

가장 나쁜 고통이구나,

이유를 모르는 것은

 

사랑도 없이 증오도 없이

내 마음은 그토록 많은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나의 방랑 생활

 

               

난 쏘다녔지,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짤막한 외투는 관념적이게 되었지,

 

나는 하늘 아래 나아갔고, 시의 여신이여! 그대의 충복이었네,

오, 랄라! 난 얼마나 많은 사랑을 꿈꾸었는가!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었지.

-꿈꾸는 엄지동자인지라, 운행 중에 각운들을 하나씩 떨어뜨렸지.

 

 주막은 큰곰자리에 있었고.

-하늘에선 내 별들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하여 나는 길가에 앉아 별들의 살랑거림에 귀기울였지,

 

그 멋진 구월 저녁나절에, 이슬 방울을

원기 돋구는 술처럼 이마에 느끼면서,

 

환상적인 그림자들 사이에서 운을 맞추고,

 

한발을 가슴 가까이 올린 채,

터진 구두의 끈을 리라 타듯 잡아당기면서!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 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애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모음

 

                   

검은 A, 흰 E, 붉은 I, 푸른 U, 파란 O: 모음들이여,

언젠가는 너희들의 보이지 않는 탄생을 말하리라.

 

A, 지독한 악취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터질 듯한 파리들의 검은 코르셋,

 

 

어둠의 만(灣); E, 기선과 천막의 순백(純白),

창 모양의 당당한 빙하들; 하얀 왕들, 산형화들의 살랑거림.

 

I, 자주조개들, 토한 피, 분노나

회개의 도취경 속에서 웃는 아름다운 입술.

 

 

U, 순환주기들, 초록 바다의 신성한 물결침,

 

동물들이 흩어져 있는 방목장의 평화, 연글술사의

커다란 학구적인 이마에 새겨진 주름살의 평화.

 

 

O, 이상한 금속성 소리로 가득찬 최후의 나팔,

 

여러 세계들과 천사들이 가로지는 침묵,

오, 오메가여, 그녀 눈의 보랏빛 테두리여!

 

 

취한 배

 

 

유유한 강물을 타고 내려올 적에,

더 이상 수부들에게 이끌리는 느낌은 아니었어

 

홍피족들 요란스레 그들을 공격했었지,

색색의 기중에 발가벗겨 묶어 놓고서

 

 

플랑드르 밀과 영국 솜을 져 나르는

선원들이야 내 알 바 아니었어,

 

배를 끄는 수부들과 함께 그 북새통이 끝났을 때

나 가고 싶은 데로 물살에 실려 내려왔으니,

 

 

격하게 출렁이는 조수에 휘말린 지난 겨울,

난, 노아보다 더 넉넉한 골을 싸잡고

 

헤쳐 나갔지! 떠내려간 이베리아 반도도

그처럼 의기양양한 혼돈을 겪지는 못했을 거야,

 

 

격랑은 내가 항행에 눈뜬 것을 축복해 주었어,

코르크 마개보다 더 가벼이 나는 춤추었지,

 

끊임없이 제물을 말아먹는다는 물결 위에서,

열흘 밤을, 뱃초롱의 흐리멍텅한 눈빛을 드리지도 않으며!

 

 

셔츠를 짓찢을 듯

모진 겨울바람에,

 

 

 

지옥에서 보낸 한 철

 

                           

1.서시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그러고보니 지독한 치였다-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날뛰었다.

 

  나는 죽어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 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 팍 쓸어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치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라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慈愛)가 그 열쇠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 꽃을 나에게 씌어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드렸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죄종(罪宗)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7개의 주된 죄

               교만, 탐욕, 사음(邪淫), 질투, 탐심, 분노, 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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