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그의 삶을 기억하려 할까. 탄생 100주년이라 하여 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을까.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그를 생각할 때 작은 창구멍이 그려진다.
당시 종이로 만든 창호지 문에는 구멍이 나곤 했다. 윤동주는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십자가`, 1935)했다고 신선하게 표현했다. 창구멍으로 도망 가는 암흑을 매를 본 꿩 같다고 재밌게 표현했다.
`창구멍`(1936)이라는 제목의 짧은 동시도 있다.
바람 부는 새벽에 장터 가시는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을 발라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아롱아롱 아침해 비치웁니다
눈 내리는 저녁에 나무 팔러 간 우리 아빠 오시나 기다리다가 혀끝으로 뚫어 논 작은 창구멍 살랑살랑 찬바람 날아듭니다 - 윤동주, `창구멍` 1936년
구절구절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진지하다. "새벽에 장터 가시는 / 우리 아빠 뒷자취 보구 싶어서" 침 발라 작은 창구멍을 뚫는다. 자식 키우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일하는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이 대견하고 안타깝다. 이 동시는 1999년에 발굴된 시로 용정은진학교, 평양숭실중학교에 다닐 때 쓴 시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는 1936년 초에 창작된 시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숭실중학교를 떠날 무렵 쓴 시다.
1935년 9월 애써서 입학한 숭실중학교지만 총독부는 계속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1936년 1월 20일 총독부가 윤산온(George S McCune) 교장을 파면하자, 학생들은 곧바로 동맹휴학을 시작하고, 3월에 윤동주는 문익환 등과 숭실중학교를 떠난다. 1938년 3월 19일 숭실학교, 숭의여, 숭실전문학교 등 3숭(崇)은 마침내 신사참배 반대 사건으로 폐교된다. 숭실에서 머문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을 썼다. 그는 15편의 시를 쓰며 창구멍으로라도 들어오는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절망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윤동주는 속삭이고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윤동주가 단순히 희망만을 그리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십자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이 이어진다.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서시`)라고 썼다. 이 사회에서 낮고 천한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실천을 그는 썼다. 가장 아픈 분 `곁으로` 다가가 연탄 나르기라도 할 때, 독거노인에게 반찬을 드릴 때, 우리는 윤동주 시의 진정한 독자로 다가설 수 있다.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는 의지가 없이 책만 읽고 영화만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윤동주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윤동주는 `배설`의 한 방도가 될 수도 있다. 윤동주는 `자기성찰`로 방 안에만 있던 시인이 아니다. 모가지까지 내놓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려 할 때 이 사회에는 진정한 `윤동주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참혹한 시대라 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창구멍`으로 들어올 희망을 꿈꾸며 버티고 이겨내라고 윤동주의 시는 응원한다.
중국에서 태어나 북한의 평양숭실중학에서 공부하고, 남한의 연희전문에서 공부하고, 일본에 가서 절명했던 그의 영혼은 단순한 희망을 넘어선다. `중국-남한-북한-일본`을 연결하는 아시아평화공동체에 대한 작은 희망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윤동주 강연을 할 때마다, 중국과 일본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를 볼 때마다, 중국인과 일본인이 윤동주 시를 읽고 공감하여 흘리는 눈물을 볼 때, 나는 작은 창구멍이 생각난다.
다가올 봄이 우리에게 `창구멍`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롱아롱 아침해"가 당신과 이 나라에 비치면 좋겠다.
"살랑살랑 찬바람"도 날아들어 게으른 정신도 깨어나면 좋겠다. 희망은 아롱아롱 아침해처럼, 살랑살랑 찬바람처럼 희미하게 다가온다. 우상이나 팬시상품이 아니다. 윤동주는 우리 시대와 아시아인에게 다가오는 희망과 실천의 상징이다. ⓒ 매일경제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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