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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의 필수용품으로서 쌀을 퍼내는 쌀바가지, 장독에 두고 쓰는 장조랑바가지, 물을 퍼내는 물바가지, 소의 먹이를 떠내는 쇠죽바가지 등 용도가 다양하다. 봄에 박씨를 뿌렸다가 가을에 박을 따서 만드는데, 반(半)으로 켜고 속을 파낸 다음, 삶아 다시 안팎을 깨끗이 긁어낸 후에 말려서 쓴다.
우리 민족이 바가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오랜 옛날부터이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탄생신화라든지, 《삼국유사(三國遺事)》의 <원효조(元曉條)>에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으로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홍석모(洪錫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상원조(上元條)>에도 남녀 유아들이 겨울부터 파랑 ·빨강 ·노랑으로 물들인 호리병박을 차고 다니다가 정월 대보름 전야에 남몰래 길가에 버리면 액(厄)을 물리칠 수 있다 하여 차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고, 《흥부 놀부전》에서도 바가지를 신비적 존재로 다루고 있다.
이 밖에 주술이나 금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는데, 혼인 때 신부의 가마가 신랑집 문 앞에 다다르면 박을 통째로 가져다 깨뜨렸고, 납채(納采) 때에는 바가지를 엎어놓고 발로 밟아 깨뜨려 소리를 냈다. 또 병액을 쫓는 굿이나 고사에도 이용되었으며, 가정에서는 바가지를 밥상 위에 올려놓지 못하게 하였고, 바가지 파편이 아궁이에 들어가면 불길하게 여기는 등, 박은 실용성의 한계를 지나 민속신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고려 때에는 아악(雅樂)의 8음(音)에 속하는 생황(笙簧)이라는 악기의 재료로 썼는데, 지금도 쓰인다. 고대 아프리카에서도 부양구(浮揚具)로서 배에 싣고 다녔으며, 제주에서는 해녀들이 부양구로 쓴다.
오늘날에는 플라스틱 제품의 이용도가 높아지면서 생활용구로서보다는 그림 등을 그려넣는 공예품이나, 실내장식품 등으로 쓰인다.
비교적 굵은 자연목(自然木)을 반절(半切)하여 만든 대형(大形) 용기(容器)로 평면(平面) 장방형(長方形)이며 수평(水平) 손잡이가 달려 있다. 용기(容器)의 내형(內型)과 외형(外型)은 평면(平面) 장방형(長方形)이고, 단면(斷面)의 형태는 위가 넓은 역(逆)사다리꼴이다. 내외면(內外面) 모두 예리한 도구(道具)로 깎아 낸 흔적(痕迹)이 잘 남아 있다. 부식(腐蝕)으로 쪼개지고 바닥은 균열이 심한 상태이며 동부일부(胴部一部)에는 결실(缺失)된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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