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의 신에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숭상하는 가택신(家宅神)이 있고, 부락에서 숭상하는 부락신(部落神)이 있으며, 무속에서 숭상하는 무신(巫神)과 그 밖의 잡신 등이 있다.
김태곤에 의하면 가정에서 숭상하는 신으로는 성주신, 조왕신, 문신, 측신, 지신, 업신, 삼신, 제석신, 조상신, 왕신(王神), 정신(井神) 등 11종이 있으며, 마을신에는 136종이 있고, 무신으로는 114종이 있다고 한다. 이밖에 잡신들 까지 모두 합치면 민간신앙에서 숭상되는 신은 모두 273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한국인, 과연 우리 토속신은 얼마나 알까. 아마 산신, 도깨비 정도를 넘어가면 궁색해질 것이다. 우리의 신화가 빈약해서가 아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한 줄로 꿰어 엮는 작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구려 건국설화만 봐도 서양의 신화 못지 않게 극적이다. 해모수가 하백의 딸 유화와 정을 통해 낳은 알에서 나온 인물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왕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관계에서 잉태된 것도 아니고 또 알이었다니 탄생부터 파란만장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서관이 최근 개발에 들어간 '오방대제와 한국신들의 원형'은 늦게나마 우리 민족의 의식세계에 내재해 있을 상상력을 자극하고 민족 자긍심을 찾아보자는 노력으로 평가할 만하다. 문헌으로, 이야기로 전해오는 토속 신들을 모두 모아 그 신들의 영역과 그들이 지녔던 물건들을 되돌려주고 서열과 계보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우리 민족은 유교.불교 등 외래 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다 보니 우리의 것에 천착할 기회가 없었다. 기초 작업을 거친 결과 서양 신들의 서열이 역할에 의해 매겨지는 것과 달리 우리 신들은 장소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으로 꼽히는 제우스 신은 은혜로운 비를 내리게 하는 천공(天空)을 신격화한 것이다.
제우스는 하늘을 지배하는 동시에 세계를 통치하는 자였다.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인 셈이다. 반면 우리의 최고신인 칠성신은 인간의 목숨을 관장하는 것으로 통하는데 바로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조선 숙종 때 완성된 '천상열차 분야지도'가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서 힌트를 얻어 칠성신을 최고신으로 잡았다.
칠성신은 그 하위신인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배하는 동방청제. 서방백제. 남방적제. 북방흑제와 함께 오방대제로 불린다. 그리고 상위신이라 하더라도 하위신에게 지시를 내리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칠성신이 동방청제 등에게, 가신(家神)이 변소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들끼리의 관계는 풍속이나 음양오행, 풍수, 민속학 등을 응용하여 개발팀들이 엮어내게 된다. 가설이 개입되는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가 반영돼야 한다.
당연히 오방대제들은 집을 관장하는 신과 관계를 맺는다. 서방백제의 경우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과는 상충한다. 북방흑제는 이 조왕신과는 대단히 친하나 변소신과는 반목한다.
전통적으로 부엌은 서쪽에 있으면 해가 질 때 햇빛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음식이 쉬 상하기 때문에 대부분 북쪽에 위치하고, 변소는 많은 미생물이 번식하는 곳이므로 부엌과는 멀찍이 떼 놓는 관습에 따른 것이다.
풍수지리학에서 나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동방청제. 서방백제 등이 일치하는데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거북과 뱀으로 그려지는 현무를 북방흑제의 탈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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