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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가 불러주는 삶의 노래- 상엿소리
2012년 07월 15일 18시 26분  조회:3824  추천:0  작성자: 백화상조


망자가 불러주는 삶의 노래- 상엿소리
정말이지 그 이유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체온으로 촉감을 나누던 그 사람인데 딸깍하고 숨넘어가는 순간 피부 닿는 게 싫어지고 손이라도 잡으려면 섬뜩하거나 꺼림직 해지기까지 하는 이유를 말입니다.

 
▲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주검, 체온이 채 식기도 전에 만지는 것은 물론 보기조차 꺼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누구든 죽은 다음엔 이렇듯 관속에 들어갑니다.
 
ⓒ 임윤수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과 피부를 접촉하는 것뿐 아니라 창백해진 모습을 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 질 정도로 무섭거나 공포감까지 느낀다고 하니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가깝던 사이였더라도 죽은 사람으로 시체가 되어있으면 그 사람 만지기를 꺼려합니다. 죽은 지 오래되었다면 살점이라도 썩어 문드러질지 모르지만 체온도 채 떨어지기 전인 사망의 순간부터 원인 모를 거리감이 생깁니다.

심한 경우에는 부모와 자식 사이도 임종과 운명의 고비를 넘어서는 순간 생전의 관계에 아랑곳없이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으로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죽은 사람은 잊고, 살아있는 사람 편안하게 잘 살라고 정 떼고 떠나려 일부러 무섭게 보이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무서워하고 시체 만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에게 정작 그 이유를 물어보면 '미생물학적 요인, 사체로부터 박테리아 등에 의한 질병 감염에 대한 우려나 심리적 요인' 등을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싫거나 무섭고, 기분이 나쁘거나 꺼림직 해서라는 정도입니다.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군대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상가(喪家)엘 가면 비위가 거슬려 끼니조차 거르곤 했습니다. 그냥 죽은 사람이 있는 집이란 생각에 먹는다는 게 꺼림직 했고 속까지 메슥대거나 울렁거리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일 먹어서 그런지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는 대로 먹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며 모자라면 찾아다 먹을 만큼 적극적일뿐 아니라, 그래야 된다면 주검조차도 기꺼이 만지려합니다.

꽃상여 앞에서 요령 흔드는 선소리꾼

지금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옛날 같으면 상가의 궂은일 중 하나인 상여메기는 천민들의 몫이거나 역할이었습니다. 시신을 수습해 장사를 치른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 상여는 이승에서의 고단한 삶을 마친 누군가를 저승으로 옮겨주기는 운반수단이기도 하지만 영가를 위한 마지막 꽃단장이며 치장이기도 합니다. 상여를 메는 사람들은 상여꾼 또는 향도꾼이나 상두꾼이라고도 합니다.
 
ⓒ 임윤수
 
죽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없으니 장사란 누구든 치러야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 일만은 누군가가 대신해 주길 바라며 자신만은 하고 싶어 하질 않습니다. 인간의 존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 인류의 역사라면 시체를 정리하기 위한 장사(葬事) 또한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언제까지나 지속되어야 할 불가분의 대사(大事)입니다.

대개 사람들이 그렇게 피하고 싶어 하는 그 일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장의업을 하거나 그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정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는 호소는커녕 눈길로도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주검이 된 한사람의 마지막을 조금이라도 덜 허망하게 잘 갈무리 해드리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주저하거나 꺼리는 궂은일이기에 서툴지만 기도하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들을 맞아들입니다.

상두꾼들의 발놀림 따라 너울너울 춤추며 구불구불 흘러가듯 집 떠나고 있는 꽃상여, 알록달록 꽃송이 나풀거리는 상여 앞에서 딸랑딸랑 요령 흔들고 이러쿵저러쿵 선소리 넣으며 요령잡이를 한 지 어언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 언뜻 두부장수가 흔들거나 자선냄비와 함께 연말에만 등장하는 종모양이지만 꽃상여 앞에서 사용하는 요령입니다. 장례식장에서조차 점차 듣기 어려운 상주들의 곡소리를 대신해 딸랑거리는 요령소리로 영가된 이의 명복을 빌고 선소리를 빌어 망자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듬습니다.
 
ⓒ 임윤수
목소리가 구성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런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점차 볼 수 없어지는 그런 풍경을 비슷하게라도 답습해 간직하고, 죽은 이의 마지막 길, 저승 가는 길이 너무 쓸쓸하고 황망해 보는 이들이 서럽지 않도록 상여소리로라도 길동무를 해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어르신 중 누군가가 돌아가셨다는 말이 들리고 3일이나 5일 후쯤이면 볼 수 있었던 상여 행렬은 장관이었습니다.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흉물처럼 동구 밖 상엿집에 보관되었던 상여가 장삿날이 되면 날이 밝기도 전부터 상가의 마당으로 옮겨져 조립되고 꾸며집니다.

상여를 에둘러 선 상제들, 누런 빛깔의 삼베상복에 짚으로 꼰 새끼줄 허리띠를 두르고 굴건제복을 한 상제들이 '애고'거리며 곡들을 합니다. 죽은 이가 살던 집을 떠나 북망산천이 되는 묘를 향해 떠나갈 준비가 되어있음이 상가의 울타리를 넘어 온 동네에 알려집니다.

발인제가 끝나고 영가된 이가 집을 떠날 때쯤이면 기다란 장대 끝에 매달려 사람들의 손에 들린 명정과 만장들이 바람결에 나풀대고, 선소리꾼이 흔들어대는 요령소리가 '딸랑딸랑'들려옵니다. 요령소리를 신호로 12명의 상두꾼들이 양쪽으로 6명씩 나뉘어 무릎을 쪼그리고 앉습니다. 어깨에 상여에 매여 있는 광목 끈을 걸머메고 무릎 펴고 허리를 곧추세우면 꽃상여가 일어섭니다.

상두꾼들의 어깨위로 올라선 상여가 12명의 상두꾼 발놀림 따라 일렁이듯 흐느끼듯 조심스레 좌로 우로 움직입니다. 마당 한가운데서 발걸음 따라 너울춤이라도 추며 마지막 작별인사라도 고하듯 처마 끝에 기대 높은 하늘을 향해 한바탕 슬픈 몸짓들을 합니다. '어~허'거리는 상두꾼소리와 '애고'거리는 상제들의 곡소리가 한바탕 뒤섞이면 흔들어대는 요령소리에 박자 맞춰 애간장 우려낼 듯 청승스럽고 애달프기까지 한 선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요령잡이의 선소리는 마냥 구슬프고 처량해 듣기만 좋은 소리인줄 알았는데 이제야 생각하니 그렇지 않습니다. 요령잡이가 하던 선소리는 죽은 자에 대한 예송이며 그가 살아간 한평생을 희로애락으로 농축한 삶의 고백이며 위령의 노래, 영가를 위한 진혼곡이었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을 기승전결로 정리했고 저승세계서 받게 될 심판내용까지 담겨있어,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가르침이기도 했지만 대사(大事)를 치르기 위한 커다란 지혜였습니다.

 
▲ 요령에서 울려나오던 딸랑 소리는 상두꾼들의 힘을 돋우는 응원의 소리며 흔들리지 않게 균형을 잡기위한 중심 추의 소리입니다. 요령도 이렇듯 그 크기가 다르니 울려나오는 소리도 다릅니다.
 
ⓒ 임윤수
 
요즘은 시골길도 웬만하면 자동차가 쑥쑥 들어갈 만큼 널찍하지만 60년대까지의 시골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신작로를 제외한 대부분 길들은 겨우 사람 하나 걸을 수 있는 논두렁길이거나 밭두렁길 아니면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전부였습니다. 길이 그러니 그 좁다란 길에 널찍한 요즘의 대로를 걷듯 상여를 멘 상두꾼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꼿꼿하게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상엿소리는 진혼곡이며 좁다란 길을 걷게 하는 지혜의 중심 추

좁은 길로 올라선 양쪽 상두꾼들은 서로 의지해 길 가운데로 발은 모으고 어깨 쪽이 벌어지는 V자 대열로 몸을 기울여만 논두렁 외길을 걸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요령에서 울려나오던 딸랑 소리와 선소리,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차곡차곡 이어지던 상두꾼들의 후렴소리는 힘을 돋우는 응원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중심추가 되어 외나무다리에서도 발걸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흔들리지 않게 하는 지침의 소리였습니다.

선소리와 그 후렴은 무게가 만만치 않아 어깨를 짓누르는 상여의 무게를 잠시 덜거나 잊게 해주는 환각의 역할도 했지만 죽은 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 커다란 흔들림 없도록 상두꾼들이 사뿐한 발걸음으로 고이 모시게 하는 안무가 같은 구령이기도 합니다.

 
▲ 영가된 이 마지막 가는 길에 흔들림 없고 너울춤이라도 추듯 사뿐히 모시려, 자박자박 내딛는 상두꾼들의 발걸음을 고르게 하기위해 움켜쥔 요령을 위로 흔들고 아래로 흔들며 박자를 맞춰줍니다.
 
ⓒ 임윤수
 
요즘 상여는 옛것처럼 분해하고 조립해서 반복 사용하는 것도 아니며 알록달록하고 치렁치렁한 헝겊이나 널판으로 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종이와 비닐 그리고 각목으로 만들어진 1회용으로 그 규모 또한 8명이나 10명의 상두꾼만 필요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목소리는 물론 요령을 흔들던 손까지 떨리던 그때, 처음으로 선소리를 넣던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요령을 흔들기 전이면 지극한 마음으로 가시는 길 고이 모시겠다는 서원을 합니다. 상두꾼들을 모으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한바탕 요령을 흔들고, 상두꾼들이 모여들면 발맞추고 입(소리) 맞추기 위해 두세 번 정도 후렴구인 '어~허~'소리를 반복합니다. 그리고 상두꾼들과 주고받으며 이산 혜연선사의 발원문을 빌어 발원의 선소리를 시작합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어~허~어~허~'
'팔만사천 큰법보화' '어~허~어~허~'
'보살석문 스님네께' '어~허~어~허~'
'지성귀의 하옵나니' '어~허~어~허~'
'자비하신 원력으로' '어~허~어~허~'
'굽어살펴 주옵소서' '어~허~어~허'


발인 날자와 영가(죽은 이)된 이의 본관 성명, 생전 거주지를 들어 모든 정령들께 누군가가 꽃상여를 타고 이승에서 저승으로 향하고 있음을 지극한 마음으로 고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모여든 친빈(親賓)들에게 망자 생전에 맺었을지도 모를 악연이나 서운함, 미운감정이나 서운했던 일, 다퉜던 일, 화났던 일 모두 잊어버리고 명복만을 빌어달라는 당부의 말도 한풀이 하듯 빼놓지 않습니다.

 
▲ 사람들의 손에 들린 기다란 장대 끝에는 보내는 이의 마음, 살아남은 자들의 서럽고도 애통한 마음이 담긴 만장들이 한풀이라도 하듯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습니다.
 
ⓒ 임윤수
푸념이라도 하듯 영가된 이 생전의 일들을 하나하나 늘어 놉니다. 잘 아는 이일 경우엔 아는 대로, 모르는 이일 경우엔 모르는 대로 사람이 살다보면 모두 공감하게 되는 그런 이야길 너스레라도 떨 듯 8자씩 끊어 선소리로 이어갑니다.

'천년만년 살 거라고' '어~허~어~허~'
'먹고픈 것 아니 먹고' '어~허~어~허~'
'가고픈 곳 아니 가고' '어~허~어~허~'
'입고픈 것 아니 입고' '어~허~어~허~'
'쓰고픈 것 아니 쓰며' '어~허~어~허~'
'동전 한 닢 아껴가며' '어~허~어~허~'
'아등바등 살았건만' '어~허~어~허~'
'인생이란 일장춘몽' '어~허~어~허~'
'공수래에 공수거라' '어~허~어~허'


넋두리 같고 하소연 같은 선소리가 몇 소절 이어지다 보면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이별의 소리가 들려오고, 찔끔찔끔 흐르는 눈물 닦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회심곡과 명심보감, 채근담은 물론 여기저기서 듣고 기억하는 좋은 말들을 상황에 맞도록 딸랑딸랑 요령소리에 맞춰 선소리로 꾸며갑니다.

상제들의 울음과 덩달아 훌쩍거리는 문상객들의 비통함이 자박자박 내딛는 상두꾼들의 발걸음에 저승 가는 노잣돈으로 돗자리처럼 펼쳐집니다. 여한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한바탕 축원 같은 선소리가 끝나면 꽃상여,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고 있는 망자를 태운 꽃상여를 둘러멘 상두꾼들은 돌아오지 못할 그 황천길을 향해 자작자작 걸어갑니다.

대문을 나선 상여는 생전의 오욕칠정, 부귀명세 모두 놓아버리고 훠이훠이 장지를 향해 떠나갈 뿐입니다. 그렇게 길을 가다 도랑이라도 나오면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몸부림이라도 하듯 한바탕의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생전이야 마음대로 건네던 다리였지만 이제는 다시 건네지 못할 다리니 그냥 갈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 만장에는 추모의 글도 있지만 삶을 예찬하고 죽음의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진리의 글도 담겨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설움을 적은 글들도 있습니다.
 
ⓒ 임윤수
'이 다리는 웬 다린가' '어~허~어~허~'
'이승에서 맺은 악연' '어~허~어~허~'
'이승에서 쌓은 악업' '어~허~어~허~'
'남김없이 끊으라는' '어~허~어~허~'
'저승 가는 세심굔가' '어~허~어~허~'
'속세번민 인생팔고' '어~허~어~허~'
'벗어나는 해탈굔가' '어~허~어~허~'
'능파교간 극락굔가' '어~허~어~허~'
'이 다리를 건너가면' '어~허~어~허~'
'이제다신 못 올 텐데' '어~허~어~허~'
'애달고도 설운지고' '어~허~어~허~'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몇 십 분에서 한두 시간 정도 이렇듯 선소리와 상두꾼들의 후렴소리가 반복됩니다. 선소리에는 동지섣달 긴긴밤을 홀로 지새우며 청춘의 뜨거움을 홀로 식혀야 했던 청상과부의 한숨소리와 애환이 들어있을 수도 있고, 딱하고도 급급하기만 했던 홀아비의 궁상맞은 삶의 얘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착하게 살던 사람이 대접받으며 살아나갈 내세이야기도 들어있지만 악하게 살던 사람이 고통 받게 되는 저승세계 지옥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발원하며 돌이키고, 축원하며 영가의 명복이라도 빌다보면 상여는 어느덧 장지에 도착합니다. 지관이 잡아준 천하길지 명당에 좌향(坐向) 맞춰 반듯하게 파진 금정(金井)에 영가된 이가 들어있는 널을 조심스레 안장합니다. 그리고 흙을 다지는 달구(회다지)를 할 때 다시 한 번 선소리를 넣으면 선소리꾼 요령잡이의 역할은 마무리 됩니다.

선소리와 후렴구로 불러주는 삶의 노래, 망자의 노래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모두의 가슴에 아름아름 내려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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