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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방송)2010추석특집 : 우리민족 장례문화-1
2012년 07월 16일 14시 11분  조회:3440  추천:0  작성자: 백화상조
연변인민방송국 사회교육방송
추석특집 생방송: 우리민족 장례문화-1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성원회장 발언부분)

1, 조선족 장례문화의 현존 문제점:
(3)
현재 우리 중국의 조선족, 특히는 연변 조선족 장례문화의 현 상황을 살펴본다면 한마디로 두리뭉실하게 되여 있습니다. 이 두리뭉실한 장례를 문화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그저 최근의 류행이라고 말할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나라에서는 “빈장관리 조례”를 내오고 조건이 되는 지방에서는 일률로 화장제도를 실시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후손만대에 복을 마련하고 덕을 쌓는 훌륭한 제도입니다.
우리 조선족 전통 장례문화가 오늘처럼 이렇게 두리뭉실하게 된것은 결코 화장제도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는 문화혁명을 겪으면서 이미 제모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엄중히 훼손되여 있었습니다. 문화혁명이 끝나고 나라에서 개혁개방 동풍이 불면서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도 우리의 혼례문화나 회갑문화와 마찬가지로 회복될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우리의 전통 장례문화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상층계층과 지식계층에서는 우리민족 전통 장례문화의 운명에 대하여 관심하는 사람조차 없게 되였으며 중국의 유일한 조선족 자치주로서의 연변에서, 4대 장의관중의 그 어느 한곳에서도 조선족 유가족들을 대상하여 조선족식 고별청을 설치한곳이 없습니다.
부모의 장례를 자기 민족식으로 치르는 것은 자기민족의 얼과 존엄을 지키는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민족이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이점을 알지못하고 있습니다.
 
2, 우리민족 전통 장례문화의 뿌리
(3)
조선족 전통장례문화의 산생과정과 발전사를 살펴 본다면, 그의 본질은 기실 중국의 유교사상에 기초하여 조선족의 전통 습속과 리념을 표현시킨 유기적인 결합문화 라는 것을 알수있습니다.
15세기초,  리조 조선이 성립된후 태종12년(기원1412년)에 조정에서는 전국에 령을 내려 백성들의 일상 생활에서 모두 중국 유교의 례의서 《주자가례》를 따르도록 하였습니다. 성종16년(기원1485년)에 《경국대전》(经国大典)이 출범하면서 리조의 조정과 민간에서는 정식으로 상제례의를 포함한 일체 행위규범과 례의활동에서 모두 중국 유교의 례법에 기준하게 되였습니다.
유교의 상제례법을 실행하여 몇백년을 내려 오면서 거기에 또 조선 민족의 많은 우량한 전통습속과 리념을 보충해 넣으면서 점차 조선민족 자체의 독특한 상제문화가 형성 되였습니다.
중국 조선족 선민들 대부분은 1850년 이후에 조선반도로 부터 중국에 들어와 정착하게 되였는데, 100여년 력사의 연혁을 거쳐 점차 당대 중국의 한갈래 소수민족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문화혁명 이전까지 중국의 조선족들은 그래도 기본상에서 조선반도에서 가지고 들어온 전통 상제제도를 실행하였는데, 마을마다 향두월(香徒月)이요 상여계(丧舆契) 같은 민간 상조 조직들이 있었으며,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덕망이 높은 좌상어른이 마을에서 진행되는 매차례의 장례의식을 엄격히 감독하였으며, 집집의 제사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으로 지도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풍을 다스리고, 문풍을 단정히 하고, 민족의 우량한 전통이 대대로 전해지도록 보증하였습니다.
문화혁명이 시작된후 1967년 《네가지 낡은것을 타파》하는 운동이 터지면서 연변각지의 상여는 거의 같은 시간에 당지의 학교마당에 끌려나와 두들겨 부서지고 모조리 불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후에는 간단한 운구용 소수레로 상여를 대체하고, 장례제도를 최저한도로 간단하게 하였으며, 일체 소위의 미신색채를 띤 장례 절차를 일률로 금지하였습니다. 그후부터 당시의 락후한 경제조건하에서 각지의 조선족 주민들은 점차 간단하게 치르는 이런 장례제도에 습관되였으며, 조선족 전통 상제문화는 점차 빛을 잃게 되였습니다.
 
3, 우리민족 상제문화의 기본내용
(3)
 우리민족 상제문화의 기본내용에는 초상, 안장, 제사, 이렇게 세가지가 있습니다. 초상이란 사람이 사망하여서부터 안장하기까지의 과정을 말하며, 안장이란 사망한 유체를 매장, 혹은 화장하는 과정을 말하며, 제사란 유체를 안장한후에 진행되는 일련의 의식들과 기념행사들을 말합니다.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관혼상제 문화에서 상례문화는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문화입니다. 우리민족의 전통 가례 지침서인 “四禮便覽”은 모두 8권으로 되여 있는데 상례부분만으로 5권을 차지합니다. 우리민족의 선인들은 우리민족의 전통습속과 전통리념을 정리하여 상례에서 집중적으로 표현시켰는데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상례문화는 우리민족의 대표성 문화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민족 상제문화의 핵심은 효도사상입니다. 효도사상은 유교의 대표성 사상으로서 천백년래 사회질서와 가정관계를 유지시킨 기본적인 도덕 준칙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孝为百行首” 라고까지 하였는데 그 뜻인즉 효도가 모든 행위중에서 첫번째로 지켜야 할 준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의 전통 상제문화에서는 효도사상이 집중적으로 표현되는데 조심스럽게 술을 붓고 무릎꿇고 절을 하는 등의 동작은 바로 효도의 대표성적인 표현동작입니다. 우리의 선인들은 바로 장례를 통하여 효도사상을 전수하고 민족전통을 계승하여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의 젊은이들이 효심이 부족하고 민족의식이 담박하게 된것이 어찌보면 우리 민족의 장례문화가 쇠퇴된것과 관련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효도라는 “孝”자는 아들이 늙으신 아버지를 업고 있는 형태로 이루어 졌는데 그 뜻인즉 부모를 공경하고 잘 받들어 모시라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은 평소에 자기 인생의 개척을 위하여 분투하면서 부모에게 많은 미안한 일들을 하게 됩니다. 자기 인생에서 일정하게 성공을 거둔후 다시 부모를 생각하게 될때에는 부모는 어느덧 늙어서 사망하게 되거나 언녕 사망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례와 제사는 부모 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부모한테 전달하고 반성하며 용서를 비는 역활을 합니다.
효도사상은 동방사상의 정수이며 우리민족의 보귀한 정신 유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조선족 전통 장례문화를 보호하고 발양시켜려는 기본 목적이 바로 효도사상을 보호하고 발양시키려는 것입니다.
 
4, 현재 우리들이 지킬수 있는 조선족 전통장례
(3)
병원에서 사망하여 화장하는 경우를 기준하여 설명 드리겠습니다.
1, 친인이 사망하면 인차 혼을 부르고 염습을 해야 하는데 이 절차는 될수록 전문인원이 하도록 하십시요. 우리 장례 복무열선에 련락하면 됩니다.
2, 염습이 끝나고 령구를 차에 싣기전에 고인한테 영결례를 합니다. 그 자리의 사람들이 다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어 세번 허리굽혀 인사합니다.
3, 령구를 장의관 랭동상에 보관시키고 객실, 혹은 례당에 작은 령좌를 차려 놓습니다. 조문객이 와서는 먼저 그 령좌앞에 가서 술을 붓고 세번 인사합니다. 상주는 하루밤 령좌를 지키면서 夕奠、夜奠、朝奠만은 간단히 올리는 것이 기본 례의입니다.
 4, 장례날 장의관에 가서 고별식을 할때 상주는 머리에 상모를 쓰고 주부 (主妇)는 머리에 베천오리를 동이여 자기들의 특수신분을 나타냅니다. 유가속 기타의 녀성들은 머리에 몽상을 달고 남성들은 팔에 상장을 두르는데 사망자가 남성일 경우 왼쪽에 달고, 사망자가 녀성일 경우 오른쪽에 답니다.
장례에 손님으로 참석할때 녀성분들은 될수록 꽃무늬 없는 단색옷을 입고 남성분들은 될수록 검은색 양복을 입습니다.
 5, 고별식이 끝나고 화장이 끝나면 골회함 보관여부 상관없이 안신제를 지냅니다. 전통적으로 안신제는 유가족들만 지냈으나 지금은 제한하지 않습니다. 안신제에서는 제사상 차리고 술을 붓고 절을 세번씩 하는데, 상주와 주부, 가속(상제), 친속(복인), 사돈, 단위조문객, 친구조문객, 기타 조문객, 이런 순서로 합니다. 마지막에 기름냄새를 피우는데 기름떡 아홉개를 상징적으로 구운 다음 제단의 제물들을 치우고 기름떡만 올려놓고 술도 붓지말고 상주와 주부가 절을 세번하면 됩니다. 제사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불길하므로 모았다가 지정한 소각로에 가져다 태웁니다.
 6, 골회함을 보관시킬 경우, 보관처에 안치하고 물러가면서 세번 허리굽혀 고별인사 하는것을 잊지 마십시요. 고혼의 안정을 바라는 의미에서 제사때마다 번번히 골회함을 움직일 필요가 없으며, 꼭 움직일 경우에는 먼저 세번 허리굽혀 인사한 다음 움직이는것이 례의입니다.
 
5, 염습의 기본 절차
(3)
조선족 장례 염습(연변에서는 매시라고도 함)은 현재까지 보유되고 있는 조선족 장례 습속에서 가장 중요한 습속의 하나입니다. 전통적으로 염습은 동네의 덕망이 높은 분이 와서 하게 되였는데 가속에서도 협조할수 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염습할시에는 극히 제한된 시간내에 질량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염습 실시 인원이 반드시 두사람 이상이여야 하며 먼저 소독을 하고 고인한테 한번 허리굽혀 인사한 다음 엽습을 시작합니다.
1, 皋復: 혼을 부르는 절차입니다. 고인의 웃옷을 두손에 받혀들고 서북쪽을 향하여 흔들면서 먼저 고인의 시호와 성명을 부르고 “복-, 복-, 복-”하고 웨침니다. 혼을 부른 옷은 개여서 령침에 넣어 고인의 머리밑에 베여 줍니다.
2, 下袭: 먼저 고인의 아래몸을 더운물로 깨끗이 닦습니다. 그다음 아래벌을 세벌 입히고 제쪽씩 발톱을 깎아서 종이봉지에 담아 접었다가 버선을 신긴다음 그 종이봉지를 버선목에 넣어 줍니다.
3, 上袭: 고인의 웃몸을 더운물로 깨끗이 닦습니다. 수의를 세벌 입히고 고름은 매지 않으며 옷깃은 반대로 여밉니다. 그 다음 제쪽씩 손톱을 깎아서 종이봉지에 담아 접었다가 악수를 끼우고 그 안에 넣어 줍니다. 그리고는 한태의 무명실을 헝클어서 고인의 손에 감아 주는데 녀성의 경우에는 오른쪽에, 남성의 경우에는 왼쪽에 감습니다.
4, 饭含: 고인의 얼굴을 더운물로 깨끗이 닦고 입안에 쌀알을 넣어 줍니다.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쌀알을 적당히 떠서 세번 넣어 주는데 차례로 “백석이요!”, “천석이요!”, “만석이요!”하고 외침니다. 전통적으로는 구슬이나 은전같은 것도 넣었댔으나 지금은 넣지 않습니다.
5, 面袭: 고인의 코구멍과 귀구멍을 약솜으로 막고 고인의 입에도 약솜으로 채운다음 잘 다물겨 줍니다. 그리고는 약솜편으로 고인의 얼굴을 가리우고 면백으로 머리와 얼굴을 싸서 동입니다.
6, 小殓: 전폭의 염포로 유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쌉니다. 그리고는 포끈으로 발목부위, 허리부위, 어깨부위, 이렇게 세 부위로 나우어 동입니다. 다섯곳 동일수도 있고 일곱곳 동일수도 있는데 매듭은 옭매지 않으며 비틀어서 끼우는 방법으로 풀어지지 않도로 단단히 동입니다. 소렴이 끝난 유체밑에 지요(地褥)을 깔고 유체우에 천금(天衾)을 덮습니다.
7, 铭旌: 흰 분필로 붉은천에 고인의 시호, 본관, 성씨를 쓰는데 한자(汉字)로 씁니다. 남성 사망자 경우 시호를 일반적으로 “學生”으로 쓰는데(시호만은 반드시 번체자 그대로 씁니다.) 례를 들어 남성 사망자가 본관이 安东이였고 성이 金씨 였다면 그의 명정에는 “學生安东金公之柩” 라고 쓰며 다른 본관에 다른 성씨이면 위의 격식에 맞추어 바꾸어 써 넣으면 됩니다. 녀성 사망자 경우 시호를 일반적으로 “孺人”이라고 씁니다. 례를 들어 녀성 사망자의 본관이 全州였고 성이 李씨 였다면 그의 명정에는 “孺人全州李氏之柩” 라고 쓰며 다른 본관에 다른 성씨이면 이 격식에 맞추어 바꾸어 써 넣으면 됩니다. 써 놓은 명정을 고인의 유체우에 덮습니다.
8, 永決礼: 염습이 기본상 끝나면 령구차가 오기전에 그 자리에 있는 가속들을 모두 불러 고인의 유체옆에 모이게 하고는 함께 세번 허리굽혀 영결례를 시킵니다.
9, 大殓: 전통적으로는 입관하는 절차였으나 지금은 성시에서 일률로 화장을 하기 때문에 관을 쓰지 않으므로 유체를 주머니에 넣는 절차로 됩니다. 유체를 주머니에 넣은후 주머니를 보기좋게 여며 놓아야 하며 담가에 담고 반드시 머리로 부터 바깥으로 나가며 담가를 든 사람들이 문설주와 문턱을 다치지 않도록 주의를 줍니다.
 
6, 현재 조선족 장례에서 존재하는 문제점
(3)
추도식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할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재 류행되는 조선족들의 장례에 대하여 몇가지 지적할것이 있습니다.
1, 부모상의 경우 령구를 장의관 랭동상에 보관시킨후 상주는 부모님의 마지막 하루밤만은 곁에서 지켜드리면서 夕奠、夜奠、朝奠만은 정성들여 올리는것이 자식된 기본의 도리입니다. 이 방면에서 한족분들은 비교적 잘 지키고 있는데 우리 조선족들은 대부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민족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2, 장례의 매개 절차마다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 인사를 올리는 것이 우리의 례의입니다. 염습이 끝나면 세번 인사를 올려야 하고, 랭동상에 령구를 보관하고서도 세번 인사를 올려야 하며 골회함을 납골당에 보관하고서도 세번 인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렇게 고인한테 매번 인사를 올릴때마다 당신의 령혼은 한층 깨끗하게 되며 숭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우리민족의 전통 장례에서 유가속들은 모두 상복 차림을 하였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우량한 전통입니다. 지금과 같은 번개식 장례에서 상복제도를 전부 회복한다는것은 어려움이 많겠지만 앞으로의 조선족식 장례에서는 그래도 상주는 머리에 상모를 쓰고, 주부는 머리에 베천오리를 동이여 자신들의 특수신분을 똑똑히 나타내는것이 바람직 합니다. 우리 연구회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여러방면으로 조건을 창조할것입니다.
4, 아직까지 우리 연변에는 우리 조선족식의 고별청이 없는것이 큰 유감입니다. 우리민족의 전통장례에서는 친인의 유체를 남들한테 보이는것을 제일 꺼려 왔는데 지금 우리는 통일식 고별청에서 장례를 치르다 나니 어쩔수없이 친인의 유체를 많은 사람들 앞에 전람시키게 됩니다. 우리 연구회는 이미 연길장의관에 조선족식 고별청을 설치할데 관한 건의를 주 민정국 유관부문에 제출하였는데 주 민정국에서는 이미 문건을 내여 우리의 건의를 동의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건의가 하루속히 현실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5, 사회적 장례복무 체제를 건립하고 건전히 해야 합니다. 장례복무 체제를 장기적으로 견지해 나간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 가서도 우리민족의 장례문화는 장기적으로 보전될수 있게 됩니다. 지금 가문에서 상사가 나면 가속에서는 몹시 당황하고 조급하게 됩니다. 지금은 시장경제 시대인데 계속 이렇게 어렵게 장례를 치룰순 없습니다. 유가속에서 장례복무 기구에 전화 한통만 걸면 모든 장례 행사가 OK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연구회에서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미 백화상조 장례복무 중심을 설립하였는데 합리한 수금 표준으로 정통적이고 높은 질량의 전면복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7, 현재 보유되고 있는 전통제사
(2)
제사란 원래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칭송하고 근본을 되새기며 고인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의식으로서 자손 된 도리와 살아있는 사람의 도리를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민족은 전통적으로 사대봉사(四代奉祀)를 조금도 소홀함이 없이 지내 왔으며 근본을 잊고 조상의 제사를 소홀히 하면 가문이 망한다고 철칙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민족의 전통제사는 특별히 엄격하였으며 우선 목욕제계를 하고 냄새가 나거나 자극성 있는 음식을 삼가 하면서 제사를 위하여 정성것 준비하였습니다.
제사는 크게 1,기제(忌祭); 2,시제(時祭); 3,묘제(墓祭). 이렇게 세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그 구체적인 분류에는 또 많은 종류들이 포함되여 있었으나 지금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현재 연변지구에서 보유되고 있는 제사 행사들로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가 있습니다:
기제(忌祭)에 소상(돐제); 대상(삼년제)이 남았고, 시제(時祭)에 청명제; 추석제; 환갑제가 있으며, 묘제(墓祭)에 면례; 합장; 비석제, 등이 있습니다.
 
8, 제사상 차리고 제사 지내는 법
(3)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먼저 제사상을 차리게 되는데 전통적으로 제사상 차릴때에도 많은 규칙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 많은 번쇄한 규칙들을 일일히 따를 필요는 없지만 총체적인 분포 규칙에 대하여서는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기왕에 제사상 차릴 바에는 형식에만 그치지 말고 정성을 넣어 제물을 차리며 제물 종류가 합리하고 제물이 놓인 위치가 합리하며 미관상에서 어색하지 않게 정연하게 차립니다.
제사상은 보통 장방형으로 된 네모상에 차립니다.
a, 상우에 먼저 흰 종이를 한벌 펴 놓습니다.
b, 령좌 안쪽 중간에 지방과 유상을 놓습니다.
c, 령좌 량옆에 그릇을 놓고 초불을 달아 각기 그 안에 세워 놓습니다.
d, 유상 앞 첫줄에는 각기 메밥, 국, 수저, 술잔, 등을 놓습니다.
e, 중간에는 고기류, 생선류와 기타 반찬들을 놓습니다.
f, 바깥줄에 과일류, 과자류와 기타 부식품들을 놓습니다.
g, 령좌 아래에 술병과 퇴주 그릇을 놓습니다.
제물의 개수는 짝을 지우지 않고 기수로 합니다.
제사 종류에 따라 이 기본방법을 참조하면서 적당하게 조절하여 차리면 됩니다.
첫돐제사나 삼년제사와 같이 집에서 올리는 제사는 출입문을 조금 열어놓고 그 제사와 상관되는 축문을 읽은 다음 효자(상주가 제사에서는 효자)와 주부로부터 차례로 나와 술을 붓고 절을 세번씩 하는데 가속(상제), 친속(복인), 사돈, 단위조문객, 친구조문객, 기타조문객, 이런 순서로 합니다. 마지막에 술 한잔 다시 붓고 다 함께 절을 세번 하고는 제사를 끝냅니다.
청면제나 추석제와 같이 산에 가서 올리는 제사는 먼저 후토를 찾아 간단한 제물을 놓고 후토제를 올립니다. 이것은 땅을 파 헤치고 초목을 움직이기 전에 먼저 산신한테 통보하여 허가를 받는다는 상징적 절차입니다,
그다음 봉분을 조심스레 정리하는데 청명때는 삽으로 흙을 올리니 가토라고 하고, 추석때는 낫으로 풀들을 베니 벌초라고 합니다.
봉분을 잘 정리한 다음 가지고 간 제물들을 제단에 차려놓고 가문의 항렬 순서에 따라 술을 붓고 세번씩 절을 올립니다. 마지막에 술한잔 다시 붓고 다 함께 절을 세번 하고는 제사를 끝냅니다.
제사가 끝난후 자리를 찾아 일동이 둘러 앉아서 제물을 음복하면서 아름다운 덕담들을 나눕니다.
 
9, 조선족 장례 제사와 상관되는 금기 사항
(1)
A, 성시의 병원이나 아빠트에서 친인이 사망하였을 경우 크게 소리내여 울지 않습니다.
B, 어린 아이들은 죽은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며 염습할때 다른 곳에 피신 시킵니다.
C. 농촌의 경우, 상가집에서는 초상기에 부엌 아궁이를 막아 놓고 불을 지피지 않습니다.
D, 령구를 내 갈때 문턱이나 문설주를 다치지 않습니다.
E, 가문에 상사가 났을 때 임신한 며느리나 딸은 장례에 참석 시키지 않습니다.
F,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입던 옷과 덮던 이불, 그리고 평소에 쓰던 일용품들은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웁니다.
G, 장례나 제사에 가서는 불길한 말을 하지 않으며 누구와 다투거나 싸우지 않습니다.
H, 장례 용품이나 제사 소물을 살때는 흥정을 하지 않습니다.
I, 장례나 제사가 지난후에는 보충 부조금을 받지 않습니다.
J, 장례나 제사에 참석할때 화려한 옷과 진한 치장은 삼가 합니다.
K, 친인이 객사 하였다면 사망한 지역에 가서 장사 지내고 시신을 집으로 옮겨오지 않습니다.
L, 제사상 제물은 짝을 지우지 않으며 홀수로 합니다.
M, 제사상에 개고기와 이름에 “치”자가 붙은 물고기, 그리고 고사리, 복숭아는 제물로 쓰지 않습니다.
N, 상주와 주부는 장례를 치른 해에 자기 생일을 쇠지 않으며 친척이나 친구집의 희사 잔치에도 가지 않습니다.
O, 자기의 배우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삼년제 지나기 전에는 재차 혼인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P, 가정에서 큰 희사를 치른 해(결혼잔치를 치렀거나, 새집을 샀거나, 아이가 태여난 해)에는 보통 장례집에 조문을 가지 않으며 제사집에도 가지 않으며 청명이나 추석에 자기집 산소에도 가지 않습니다(특별한 경우 제외).
 
10, 총 결 어
(3)
2009년 6월, 연변 조선족 자치주 정부와 길림성 정부에서는 《조선족 전통 상제례의》와 《조선족 전통장례》을 각각 주급과 성급의 무형 문화재(非物质文化遗产)로 지정 하였으며 연변주 문화국이 주관부문으로 되고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가 구체적인 보호사업을 책임진 보호단위로 되였습니다. 이로부터 조선족 전통 상제문화는 보호가치와 발양의의가 있는 민속 문화라는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되였습니다.
자기의 민족특색을 버리는것을 현시대의 개방사상이라고 여기는것은 틀리는 생각입니다. 당과 정부에서는 소수민족들의 특색문화을 보호하기 위하여 많은 우대정책과 사업조례들을 제정하여 실행하고 있지만, 우리 자신이 도리여 자기민족 특색문화의 보귀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무 꺼리낌 없이 하나, 둘, 버리고 있습니다. 민족특색이 없이는 민족 대단결이 있을수 없으며 자기의 민족특색을 버릴수록 점점 시대의 멸시를 받게됩니다. 자기의 민족특색이 짙을수로 자기의 합법성이 더욱 완벽하게 되며, 세계적 경쟁력이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우리 조선족의 전통적 상제문화는 우리민족의 전통적 관혼상제 문화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구성부분의 하나입니다. 만일 조선족 민속문화에서 상제문화가 빠진다면 조선족의 전반 민속문화는 자기의 완미성을 잃게 되며, 잔페문화로 될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족 상제문화를 보호하고 계승하는 사업은 전 사회적인 사업으로서 어느한 부문이나 어느한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완성할수 없습니다. 반드시 전 사회적인 참여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민족은 위대한 민족입니다. 우리가 계속 자기의 우량한 전통을 발양하고 시종 자기의 민족 특색을 확보한다면 우리 민족의 앞날은 더욱 밝을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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