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인민방송국 사회교육생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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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청명절 특집
방송주제:《청명과 한식문화 및 장례문화,
성묘객들이 주의할 점》
출연연사: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회장 현룡수
김동선 기자: 현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출연연사들: 답례) 반갑습니다. 올해는 4월 4일에 청명이 들었습니다. 청명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혹은 릉원으로 성묘하러 갑니다. 성묘 때문에 산에 들어가거나 릉원에 찾아갈 때 화재예방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조그마한 불씨라도 대형 화재를 불러올수 있다는 점을 명기해야 할것절입니다. 오늘은 청명과 한식에 깃든 우리 민족문화와 장례문화 및 이러한 문화를 어떻게 전승, 발전시킬가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어 보기 위해 현회장님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청명은 원래 24절기의 하나로서 다섯 번째 절기가 시작되는 날을 말하고 한식은 조선시대에는 설과 단오, 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속하는 명절이라는 점에서 구별이 있습니다. 현회장께서 먼저 청명에 깃들어 있는 문화를 짚어주시기 바랍니다.
현룡수 회장:
청명은 24절기의 하나로서 립춘으로부터 다섯번째 절기가 됩니다. 립춘을 원점으로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15도씩 움직이면 한절기가 듭니다. 청명이면 지구가 립춘으로부터 이미 60도 움직인 위치입니다. 이미 일년의 1/6이 지나간 셈이죠. 《세시백문》에 이르기를 “만물이 이때에 이르러 생장하는데 모두 청신하고 명려하다”고 하였습니다. “청명”이란 말은 여기에서 나온것이라고도 합니다.
청명은 또 습관적으로 한식이라고도 하는데 기실 청명과 한식은 계산하는 방법이 서로 다릅니다. 동지날 부터 105일이 되는 날이 바로 한식인데, 보통 청명 전날에 들며, 금년과 같이 청명과 같은날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식은 조선왕조시기에 설, 단오, 추석과 함께 4대명절에 속했습니다. 한식날은 조상의 무덤을 돌보고 제사를 지내는 성묘의 날입니다. 한식날에 성묘하는 풍속은 중국 당나라때에 조선반도의 신라에서 받아 들인것으로 추정됩니다.
김동선 기자: 한식은 우리 민족 4대 전통명절로써 여기에는 많은 유래와 민속문화가 동반되여 있습니다. 현회장께서 계속하여 한식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주십시오.
현룡수 회장:
한식 유래에 대하여 몇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두가지 설이 비교적 대표적입니다.
한가지는 개자추(介子推) 설입니다.
중국 춘추시기 진문공(晉文公)이 임금이 되기전에 국란을 당하여 심복신하들을 데리고 국외로 탈출하여 방랑하게 되였습니다. 하루는 허기져 쓰러진 진문공을 개자추라는 한 신하가 자기 허벅지 살을 썩- 베어내여 구워먹여 살렸습니다. 그후 고난이 끝나고 임금자리에 오른 진문공이 개자추에게 벼슬을 주려고 불렀지만 개자추는 벼슬에 뜻이 없어 이미 어머니를 모시고 면산(綿山)에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진문공은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어머니와 함께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옆에는 헝겊에 피로 쓴 한수의 시구가 있었습니다; “… 나는 구천에서도 부끄러움 없으니 임금께선 나라일에 청명하시고 또 청명하시라.”
진문공은 개자추를 기념하기 위하여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제사 지내게 하였으며 산에 불을 놓은 그날을 한식날로 하고 전국적으로 이날에는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하였으며 개자추의 시구에 근거하여 이날을 청명절로 정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한가지 설은 改火설입니다.
고대에서는 지금처럼 성냥이 보급되지 않아 민가에서 불을 사용할때에는 부엌이나 화로에 상기적으로 보관해 두었던 불씨를 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불씨가 오래되면 활력이 없어진다고 여기여 불씨를 일년에 한번씩 바꿉니다. 이때면 조정에서 의식을 가지고 마른 버드나무를 마찰시켜 불을 일으켜 그 불씨를 각 지방관청에 나누어 줍니다. 그러면 각 지방관청에서는 책임지고 그 불씨를 관활지역의 가가호호에 나누어 주는데, 전통적으로 이날이 바로 동지후의 105일째 되는 날이였다고 합니다. 조정에서 민간인들을 장악하고 관활하는 일종의 통치수단이 였습니다. 순수한 새 불씨를 받기 위하여, 집집마다 하루전부터 낡은 불씨를 철저히 청리하고 기다렸다고 하였으니, 이날에는 부득불 찬음식을 먹을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이날을 한식이라고 하게 되였답니다.
이외에도 몇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략합니다.
김동선 기자: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상이나 차례상을 차림에 있어서 알아두어야 할 점은 어떤것이 있습니까?
현룡수 회장:
산소에 찾아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일은 후토를 찾아서 후토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명태 한꼬리나 과일 세알을 제물로 놓고 술을 한잔 따라 올리고 세번 절을 하면 되겠습니다. 흙을 파고 초목을 베기전에 먼저 산소를 지켜준 후토신에게 인사하고, 허락을 받는다는 뜻으로서, 대자연에 대한 존중을 표시합니다. 그다음에 삽으로 조심조심 가토를 시작합니다. 많은 분들의 경우, 먼저 가토를 하고 후에 후토제를 지내는데, 크게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도 대자연의 한 성원이라는 리념에서 대자연에 대한 숭배를 조상에 대한 숭배의 앞순서에 놓는것이 리치에 맞습니다. 유가의《가례》에서는 꼭 이렇게 하여야 한다고 씌여있지는 않지만,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리념에서 산소는 조상의 뼈가 묻혀 있는 신성한 곳으로서 그곳의 일토일석, 일초일목에는 모두가 우리 조상들의 령기가 슴배여 있으므로, 그곳에서 함부로 흙을 파고, 함부로 나무를 찍고, 풀을베고 하는것은 조상들 앞에 엄숙하지 못한 행위입니다.
능묘에 가서 제사 지낼때에도 먼저 후토제 지내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골회함 찾아 놓고 제사 지낼때에는 후토가 없으니 이 절차가 없어집니다.
김동선 기자: 제사법에서 어떤 점에 주의를 돌려야 합니까?
현룡수 회장:
제사는 일종 마음을 표시하는 의식입니다. 아무렇게나 술을 붓고 절만 하면 되는것이 아니죠. 가장 중요한것은 정성입니다. 속담에 "냉수 한그릇도 자기 정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부모생전에 그이들로부터 생명을 포함하여 그렇게도 많은 보귀한것들을 가졌는데, 부모들에게 올리는 제사에서 돈도 안드는 정성에 린색할 리유가 없습니다. 제사소물을 갖출때부터, 많이 갖추기 보다는 매 가지마다 정성들여 갖추며, 제사를 지낼때에도 형식에 그치지 말고, 산사람 뫼시듯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가속 관념과 마음의 뉴대를 건실하게 할수있으며, 또 그로부터 유익한 방조와 계시를 받을수 있으며, 후대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줄수 있습니다. 성의가 없는 제사는 차라리 지내지 않은편이 좋습니다.
우리민족의 재래의 제사법에는 엄격한 절차 구분이 있었습니다. 크게는 강신, 초헌, 아헌, 종헌, 첨작, 사신, 이러한 절차입니다. 여기에 너무 구애될 필요는 없지만, 그 기본절차에 대하여 알아두고, 될수록 따르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강신이라는 것은 신령이 제사받으려 내려온다는 뜻으로, 제주가 술을 붓고 다 함께 절을 하는 절차이고,
초헌은 주부가 술을 붓고 절을 하는 절차이며,
아헌은 가족들의 차례가 되겠고,
종헌은 친척들의 주요 성원의 차례가 됩니다.
종헌이란 가문에서 마지막으로 올리는 술이란 뜻이 되겠으나, 지금은 가문 성원들이 모두 술을 올리고 인사하려는 요구에 만족주기 위하여 차수를 제한하지 않습니다.
종헌후에 붓는 술은 첨작이라고 하는데, 주로 가속과 친척외의 손님들의 차례로서, 재래식 제사법에서는 역시 세번을 초과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제한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사신이란것은 제사가 끝났으니 인젠 신령을 돌려 보낸다는 뜻으로, 이때는 제주가 술 대신에 숙주(랭수) 한그릇 올리고, 메밥을 조금 떠서 물에 놓고, 잠간 기다렸다가, 다 함께 세번인사하고 제사를 끝냅니다.
김동선 기자: 제사를 지내거나 차례상을 차릴때 금기시해야 할 것들로는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현룡수 회장:
전통적으로 우리민족은 장례,제사와 상관되는 금기사항들이 많았으나 사회가 발전하면서 지금 와서는 많이 취소되였습니다.
하지만 장례와 제사는 어디까지나 슬픔과 불행을 처리하는 엄숙한 행사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자연히 신중한 태도를 가지게 되며 잘못을 범할가봐 조심하게 됩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에 기초하여 지금도 사회적으로 장례,제사와 상관되는 적지않은 금기사항들이 보류되여 있거나 새롭게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래에 우리민족 장례,제사와 상관하여 현존하는 금기사항들 가운데서 몇가지 정리하여 적었습니다.
A, 성시의 병원이나 아빠트에서 친인이 사망하였을 경우 크게 소리내여 울지 않습니다.
B, 어린 아이들은 죽은 시신을 보지 못하게 하며 염습할때 다른 곳에 피신 시킵니다.
C. 농촌의 경우, 상가집에서는 초상기에 부엌 아궁이를 막아 놓고 불을 지피지 않습니다.
D, 령구를 내갈때 문턱이나 문설주를 다치지 않습니다.
E, 가문에 상사가 났을 때 임신한 며느리나 임신한 딸은 장례에 참가 시키지 않습니다.
F, 사망한 사람이 생전에 입던 옷과 덮던 이불은 남기지 않고 모두 태워 처리하며, 평소에 쓰던 일용품들 가운데서 특히 중요한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기지 않고 처리합니다.
G, 장례나 제사에 가서는 불길한 말을 하지 않으며 누구와 다투거나 싸우지 않습니다.
H, 제사상 제물은 짝을 지우지 않으며 홀수로 합니다.
I, 장례나 제사가 지난후에는 보충 부의금을 받지 않습니다.
J, 장례나 제사에 참석할때 화려한 옷과 진한 치장은 삼가합니다.
K, 친인이 객사하였다면 사망한 지역에 가서 장사 지내고 시신을 집으로 옮겨오지 않습니다.
L, 장례용품이나 제사소물을 살대 시장식 흥정 삼가합니다.
M, 제사상에 개고기와 이름에 “치”자가 붙은 물고기, 그리고 복숭아와 토마토는 제물로 쓰지 않으며 제사음식에 고추가루, 마늘, 파 등을 쓰지 않습니다
N, 제사상에 찰떡을 놓을 경우 붉은 팥고물을 쓰지 않으며 흰 열콩고물이나 콩가루 고물을 씁니다.
O, 상주와 주부는 장례를 치른해에 자기생일을 쇠지 않으며 친척이나 친구집의 희사잔치에도 가지 않습니다.
P, 자기의 배우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삼년제 지나기 전에는 새로운 혼인을 하지 않습니다.
Q, 가정에서 큰 희사를 치른 해(결혼잔치를 치렀거나, 새집을 샀거나, 아이가 태여난 해)에는 보통 장례집에 조문을 가지 않으며 제사집에도 가지 않으며 청명이나 추석에 자기집 산소에도 가지 않습니다(특별한 경우 제외).
김동선 기자: 지금 새로운 청명절에 고인을 추모하는 방법 즉 제사법이 많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생화 증정이나 인터넷 추모 등 방법이 전형적인데요. 이런 제사방법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현룡수 회장:
장례와 제사는 죽은 사람을 추모하고, 조상과 부모의 은덕을 잊지않고, 또 자손들에게 효도의 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하여 영원히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람으로 태여난것은 결코 우리들이 능력이 아닙니다. 바로 조상들과 부모들의 덕분이지요. 인류가 다른 동물보다 진화가 빠르게 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인류라는 이 고급동물은 보은의식이 특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은공을 모르는 자를 보통 짐승보다 못하다고 욕합니다.
새롭게 성행하는 생화 증정이나 인테넷 추모 등 방법에 대하여, 물론 아주 시대적이고 신사다운 방법이라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민족 제사문화의 보충으로 될수 있을 뿐, 민족 제사문화를 대체할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제사문화는 단지 고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없어서는 안되는 민속문화라는 의미에서 민족과 함께 계속 존재할것입니다.
김동선 기자: 요즘 우리 주 각급 해당 주관부문과 각 업체들에서는 우리 민족문화 특히 민속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위해서 많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듣자니 이번 청명을 계기로 현회장께서 주요직책을 맡고 있는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에서는 우리 민족장례문화와 성묘문화를 규범화하고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청명, 한식기간에 적지 않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하던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까?
현룡수 회장:
우리는 주관 부문의 건의에 의하여 매년 3월 5일부터 4월 5일, 즉 청명날까지의 한달을 “조선족 전통장례문화 선전월”로 하였습니다. 금년에는 장례문화 선전을 주요하게 인테넷을 통하여 진행하였습니다. 우리는 연변 “조글로”에 우리 연구회의 공간을 설치하였는데, 장례문화 전업지식을 포함하여 여러가지 민속문제도 다루고, 봉사정보도 제공합니다. 인테넷에 들어와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란에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혹은 “조선족전통장례”라고 쳐서 넣으면 즉각 우리 공간에 들어 올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공간에 들어와 보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김동선 기자: 현회장님, 우리 민족문화의 가장 중요한 내용의 하나인 민속문화를 발전장대시키려면 각급 당위와 정부 각 해당 부문의 중시가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 이런 업종에 종사하는 많은 연구부문과 전문가, 학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할것이고 또 민속문화 관련 업종 기업소들에서도 자기의 맡은바 책임과 의무, 사명을 다 하여야 하지 않을가요?
현룡수 회장:
참으로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 문화국의 지도하에 《조선족 전통장례》세미나를 주최하여, 20여개 정부부문과 유관단위에서 대표를 파견하여 참석하였으며. 8명의 민속학자들이 여덟편의 론문을 발표하여 우리주 민속문화 보호에 리론적 지침을 확정하였습니다.
민속문화 보호에서 정부가 중시하고, 유관부문이 노력하고, 전반 민족이 참여하여야 하는데, 이 몇가지 요소를 보장하려면 말로만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적으로 정부에서 유관 정책을 제정하여야 하며, 구체적인 조직조치가 따라가야 하며, 필요한 투자가 보장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연변의 병원부터 빈의관까지의 전반 빈장과정에 조선족 풍속을 위한 시설이나 항목은 한가지도 없습니다. 민속보호방면의 유관 조례를 내오기가 상당히 힘들며, 책임단위로서의 우리의 공작도 유관부문의 협조와 배합이 잘 되지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며, 필요한 투자란것은 꿈도 꿀수없는 형편입니다. 앞으로 민속문화 보호방면에서 해야할 일들이 아주 많고 점점 간거할것 같습니다.
김동선 기자: 현회장께서는 우리 민족 민속문화연구 기지라고 할수 있는 연변조선족례의문화연구회와 민속문화의 보급과 발전을 추구할수 있는 창구도 운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분으로서 앞으로 우리 민족문화 특히 민속문화의 전승, 발전장대를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타산입니까?
현룡수 회장:
우리는 주요하게 세가지 방면으로 사업을 펼쳐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미 간편하여진 조선족 장례방법을 견지하면서, 거기에 민족특색을 첨부하여, 실용적이고도 민족적인 《조선족 장례제사 편람》을 편찬하고 있는데, 지금 진일보로 완미중에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이미 유관 인민대표위원을 통하여 주 인민대표대회에 “조선족 빈장관리 조례”를 제정할데 관한 건의를 제출하였으며, 주 민정국, 주 위생국, 연변병원 등 유관 부문에 《조선족장례풍속》을 보호할데 관한 구체적인 건의들을 제출하여 적극적인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세째, 우리는 산하에 《시대상조 복무중심》을 설치하였는데, 종지는 조선족들의 장례치르기 어려운 시대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대는 언녕21세기에 들어섰지만 우리민족 장례제사문화는 아직도 락후한 민간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선족들의 출국인원이 많아 지면서 집에는 홀로사는 로인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리하여 고독사, 사망되여 며칠후 발견, 장례에 사람 모자라는 등 현상이 비일비재입니다.
우리는 무릇 조선족 장례제사와 상관되는 모든 방면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가장 우질적인 봉사를 제공하면서 조선족 장례가 진정으로 간편하고도 문화적인 민속 활동으로 되게끔 노력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민간차원의 락후한 장례문화를 현대적이고 전업적인 고급차원의 문화로 승급시킬 것입니다.
김동선 기자: 현회장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현룡수 회장:
감사합니다.
조선족 장례제사 자문전화: 138-9438-7438
조선족 장례제사 복무열선: 203-2224
연구회주소: 연변병원동대문남쪽정차점 맞은켠 5층
방송사명:
연변인민방송국
방송부서:
사회교육부
코 너 명:
《우리 방송 한마당》-《클릭, 우리 사는 세상》
방송일시: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아침 7시 20분
도착시간: 2013년 4월 1일 월요일 아침 6시 50분까지
도착지점:
연변병원 동대문 동쪽, 연변라디오TV방송국 대문
련 계 인:
김동선 부장 (주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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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인민방송국 사회교육부 2013년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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