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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과 우리민족 상례문화
중양의 어원
중국의 전통 음양학설에서는 우수[隅數]를 음(陰)의 수라고 하고, 기수[奇數]를 양(陽)의 수라고 하며, 보통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양의 수가 두개 겹치는 날은 대길한 날로 여기고 명절로 삼았습니다. 례컨대 음력으로 1월1일은 설날(태아의 날), 3월3일은 삼진날(어린이 날), 5월5일은 단오날(처녀총각의 날), 7월7일은 칠석날(련인의 날), 9월9일은 중구날 혹은 중양절(노인의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중에서 중구날은 가장 큰 양의 수가 두개 겹쳤으니 대길중의 대길한 날이인 셈이죠.
2. 중양절의 유래
구구중양에 대하여 일찍 중국 춘추전국시기에 기록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아직 명절은 아니였습니다.
삼국시기 위문제 조비가 쓴 《九日与钟繇书》라는 문헌에서 처음으로 중구가 명절로 표시되여 있습니다.
당조에 와서 중구는 중양절이라고 칭하고 정식 민간명절로 정해졌고, 명조에 와서는 황궁에서까지도 중양절을 굉장히 쇠였으며, 그 풍속이 청조에까지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전통적으로 중양절에는 상국(賞菊), 등고(登高), 시주(詩酒) 등의 풍속이있었고, 당송(唐宋)때에는 관리들의 휴가일로서 추석보다도 더 큰 명절이였습니다.
반도에서 이 풍속은 신라시대에 당조로부터 들어 온것으로 추정됩니다.신라시대에 안압지의 임해전(臨海殿)이나 월상루(月上樓)에서 군신이중구에 연례적으로 모여서 술을 마이며 시가를 즐긴 기록이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중구의 향연이 나라적으로 정례화 되였습니다.
조선 세종 때에는 삼짇날과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였으며, 성종 때에는추석에 행하던 기로연을 중구로 옮기고 유생들에게 과거를 실시했습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9월 조에 의하면"서울의 풍속을 보면 중구날 남산과 북악산에 올라가 먹고 마시며 단풍놀이를 한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3. 구구 중양절의 전설
중국 남북조때 량(梁)나라의 吴均이란 사람이 쓴 《续齐谐记》란 책의 기재에 근거하면; 중국 동한시기에 汝河지역에서 해마다 9월9일이면 온역이라는 마귀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기만 하면 사처에 전염병을 퍼뜨려, 집집마다 사람이 병들어 눕고, 마을마다 사람이 매일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恒景이란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마귀를 소멸하여 마을사람들을 구할 뜻을 품고, 신선을 찾아 마귀 잡을 도술을 꾸준히 익혔습니다.
9월9일, 그는 마을에 내려와 먼저 마을사람들에게 수유(茱萸)잎 하나와 국화꽃술(菊花酒) 한종씩 나누어 주면서 높은산에 올라가 피신하게 하였습니다.
오시에 마귀가 나타나 산밑을 지나가면서 수유와 국화꽃술의 특이한 냄새를 맡더니 몹시 당황해 하였습니다. 이때 그 청년이 나타나 보검을 휘둘러 그 마귀를 죽여 버렸습니다.
지금도 중국 중원 지역에서 중양절에 옷이나 머리에 수유열매를 꽂고 높은산에 오르며, 국화꽃을 감상하고, 국화꽃술을 마이는 등 풍속이 있는데, 모두 온역을 피한다는 위의 전설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우리 민족 가운데서 전해져 내려 온 유설에 의하면; 중구날에는 양기가 너무 강하여, 음계(저승)에서는 사무를 볼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에 전반 음계에서는 염라왕을 포함하여 모든 신령과 귀신들이 휴가를 보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날이 탈이 없는 날이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날에 면례 하거나 묘소를 수리하기도 하였고,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으며, 객사하여 시신을 찾지 못하였거나, 구체적인 기일(忌日)을 알수 없는 조상이나 부모의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연변에서는 이날에 이장하고, 합장하는 행사가 많습니다.
4, 우리민족 상례문화에 대하여
중양절은 일년중에 양기가 가장 강하고, 또 탈이 없는 날이라고 하니깐,구태여 기피할 필요가 없는 이 기회에 무형문화재로 된 우리민족의 상례문화에 대하여 몇가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우리민족 상례문화가 왜 필요한가?
현재 우리 연변의 조선족 장례방식은 극히 간단하고 초라합니다. 아마 세상에서도 제일 초라한 장례방식인것 같습니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이미 습관되여 있으며, 시대의 현상이라고만 생각하고 이것이 우리민족의 수치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고로 우리민족은 찬란한 장례문화가 있었습니다. 부모의 장례를 단지 부모의 유체를 처리하는 실무수단뿐만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을 추모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를 표시하며,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는 문화수단으로 삼고 정중하게 실행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부모장례를 살펴보면, 환경위생부문에서 쓰레기 처리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절차가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손들의 성의가 부족하고, 사람으로서의 인정을 느껴볼수 없습니다.
한 민족이 흥성발전하려면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자기민족의 전통문화의 기초상에서 받아들여야만 적극적인 효과를 낼수있습니다. 자기조상을 숭배하고 근본을 이어가는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를 받아들여 흥성발전할수 있지만, 조상을 배반하고 근본을 잊어버린 민족은 선진적인 문화에 의하여 결국 쇄망하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은덕에 보답할줄 알아야 하고, 감사할줄 알아야합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인성입니다. 그래야만 사람들과 어울려 살수있고, 사회에서 발전할수 있으며, 위기에서도 운명의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작은 은덕에는 감사할줄 알지만, 큰 은덕에감사할줄 모릅니다. 그 큰 은덕이란 바로 조상들이 근본을 내려 주신 은덕이요, 부모가 생명을 주시고 키워 주신 은덕입니다.
우리의 부모들은 우리들에게 하늘과 같이 큰 은덕를 주시고도, 얼마 보답도 받지 못한채 저 세상으로 갔습니다. 인젠 그분들에게 보답의 기회조차 없어진 형편에서 감사이 마음이라도 있어야 할것 아닙니까? 장사제사를 크게 버젓하게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간소하면서도 성의를 다하여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 성의 가운데 바로 자기민족의 기본례의를 지키라는 뜻도 포함되여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 같은 행사에서는 천문수자의 돈도 아끼지 않고 푹푹 쓰다가도, 부모의 장례나 제사라고 하면 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혼이나 아이 돐잔치에 쓰는 돈은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장례에 쓰는 돈도 기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은 절때 아닙니다. 그 돈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쓰는 돈이며, 량심에 대한 투자, 도덕에 대한 투자,운명에 대한 투자로 됩니다.
우리의 상례문화는 바로 사망한 부모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인간도리인 효도를 깨우쳐 주는 문명하고 엄숙한 문화수단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상례문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 우리 상례문화를 왜 산업화 해야 하는가?
상례문화라고 하면, 가정에서 누군가 사망하였거나, 혹은 청명이나 추석이 띄였을 때는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평소에는 누구나 될수록 기피하는 것이 이 문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문화의 보호에 집착하는 것은, 이 문화가 특별히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문화에 우리의 뿌리가 묻혀있고, 우리의 넋이 슴배여 있으며,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깨우쳐 줄수있는 특수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이 문화를 효과적으로 보호할수 있겠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산업화 하여야 합니다. 시장경제시대에 와서 산업화 하지 못한 문화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만일 이 문화를 계속 민간의 자연존재 차원에 맡겨 놓는다면 다음 세대에 가서 이 문화는 철저히 소실 될 것임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일단 이 문화가 없어지면 우리민족의 일생생활에는 엄중한 결점이 생기게 될것이고, 우리민족 소질도 엄중히 떨어지게 될것이며, 우리민족의 존재의식도 엄중히 약화될 것입니다.
상례문화를 산업화 한다는 것은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고 국가의 유관정책과 시장규률은 준수하면서 합리한 유상복무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업체의 체제를 건전히 하고, 경영관리를 가강하며, 장기적으로 견지해 나간다면, 우리의 상례문화는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상관정책에 의하여 이미 전문 조선족 상례복무업체를 건립하였습니다. 상례는 조선족 천가만호와 상관되는 대사이며, 조선족 매 사람들과 상관되는 대사입니다. 조선족 상례문화 보호는 전체 조선족들의 공동의 책임입니다.
어떻게 책임 질것인가? 바로 가문에 상사가 나면 우리를 찾으면 됩니다.이것은 우리의 상례문화 보호사업에 직접적인 참여로 됩니다.
우리 모두 공동 단결하여 우리민족의 보귀한 무형문화재를 보호합시다.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작성
2016-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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