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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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외 4 수
2014년 01월 29일 18시 03분  조회:2129  추천:7  작성자: 허창렬
뿌리깊은 나무 1
 
요즘 이래저래
너무 바쁘다는 리유 하나로
사랑이 뿌리깊은 님에게
슬쩍
싱거운
윙크만
실어 보낸다
 
요즘 이래저래
너무 어렵다는 리유 하나로
이제는 사랑에 상처가 클 님에게
비닐꽃같은 웃음을
종이에 접고 접어
다시 멋쩍게
슬쩍
건네 준다
 
그날밤 님은
꿈에도
오지를
않았다
그날밤 님은
추억에조차
나타나질
않았다
 
방울방울
잘 익은 한여름의 행복했던 그 웃음이
진붉은 토마토즙인양
이 가을의 흰 셔츠에
얼룩이 되여 새겨져 있고
너무나도 가난하게 행복했던
님의 뜨거운 입술마저
이제는 락인이되여
희미한 추억
 
되돌릴수조차 없는 세월의
이 안타까움
산다는건 얼마나 아프고 또 잔인한
깨달음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러보는 그 이름 옛사랑 순이
님도 없는 빈 뜰에 어느새
가을이 노크도 없이
성큼 들어서고 있다
 
 
2012년9월 9일
 
 
뿌리깊은 나무 2
 

오늘 하루 또다시
추억의 긴 마루턱에 홀로 앉아
세월이 쓰다남긴 일기를 외로이
바람과 함께 번져본다
 
뿌리깊은 나무는 생각이 항상 너무 깊다
뿌리깊은 나무는 추억이 항상 너무 깊다
뿌리깊은 나무는 사랑이 항상 너무 깊다
뿌리깊은 나무는 미움이 항상 너무 깊다
 
주소없는 편지
이름모를 분노
소름돋는 아픔
깨여나는 갈등
 
코는 벌써 으깨지고
눈은 벌써 멍이 들고
입은 벌써 비뚤어지고
귀는 벌써 바위돌에 다 막히고
 
목 잘리고
팔 잘리고
발 잘리고
다리 다 잘려도
 
뿌리 깊이 염글어가는 세월속
더욱 더 확고해지는 사상
가끔 입을 여는 잎속에는
젊음이 조심스레 노래 부르고 있다
 
 
 
 
 
 
                2012년9월12일
 
 
 
 
 
뿌리깊은 나무 3
 
하얗게
춤을 추다가
하얗게 내곁에
쏟아져 내리는
달빛ㅡ
 
달빛은
누군가의 입술에 데여
있지도 않은
제3 제4
악장을
연주한다
 

흐르는듯한
피아노소리에
게으른 웃음이
잘익은 가을을
밥상우에
초대한다
 
가을은
벌써 취해
팔이며
다리며
몸뚱이가
배배 꼴렸고
모든것을
 
흔들어 깨우는
친절한 바람속에
뿌리 깊은 나무는
슬며시
그리움을 다시
풀어 헤친다
 
지금 나는
마흔여섯갈래의 현을
골고루 튕겨가며
아직 푸른 소망
아직 푸른 념원을
저음으로
열심히
노래 부르고 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는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흔들며
하루하루 다시금
깨여나는 것이다
 
 
 
   2012년9월 14일
 
 
 
 뿌리깊은 나무 4
 
삶의 모든 소리는
울음에서 시작된다
 
태여나는 순간순간
이상한 울음소리 그 자체가
 
우리를 자꾸 그 무엇인가
더욱 깊게 생각케 하고
 
도무지 말없이 커 온건
뿌리 깊은 나무뿐이다
 
바람이 한번 스츠면 한번 빙그레 웃고
두번 스치면 두번 다시 빙그레 웃고
 
그 곁에 서면 나는 어김없이
생각하는 나무가 된다
 
세월은 가는둥 오는둥
전설이  허전하다
 
 
 

2012년 9월13일
 
 
 
 뿌리깊은 나무 5
 
우주의 정화《精华》만 남기고
찌꺼기는 모두 버린다
 
하늘에는 서른세개의 아츠랗게 높은 계단이
은하가 되여 우리들이 갈길을 막고 있다
 
오르는 사람 내리는 사람 얼굴에
달이 뜨고 별이 뜨고
 
아홉개의 태양은 아이러니하게
전설이 빚어놓은 휴머니즘임을 불쑥 깨닫는다
 
믿자 래일에도 사랑하는 이의 큰 축복이 있기를ㅡ
하느님의 허락마저 없는 이 자유
 
빈 껍데기를 벗고 알알이 잘 염근 세월이
뿌리를 내려 시간속의 탑이 된다
 
탑아래 응고된 기적이
한 껍질 두 껍질 전설의 갑옷을 벗고
 
알몸으로 슬며시
내곁에 다가서고 있다…
 
 
 
 
 
 
              2012년9월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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