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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꾜 무사시노시(武蔵野市)의 칸다(神田)씨(86세)부부는 매년 설이면 꼭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가족사진을 찍는것이였다.
60년간 빠짐없이 견지해온 이 일은 생각하기엔 너무나 간단한것 같지만 일생동안 견지하려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결혼때의 두명으로부터 지금은 손자손녀까지 13명의 대가족으로 번영하게 되였는데 꼭 설날에 다 모여 정복을 하고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는다는것이다. 처음엔 둘째사위의 불만도 있었지만 결국엔 오늘에 이르기까지 딸이나 사위나 모두 한사람도 빠짐없이 사진에 생의 자취를 남겨놓고있다는것이다. 처음엔 정복을 하는것에도 의견이 있어서 세타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던 사위도 몇해후엔 정복을 하게 되였다고 한다.요미우리신붕セ톱기사로 수십장의 사진이 렬거되였다. 새해에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바로 이렇게 가족이란 쩨마가 첫 기사로 나오게 되는것을 세상이 알게 되여 한결 따뜻한 기분이다.
전쟁과 자연재해로 지난 한해는 정말 진저리나는 한해였다. 뉴스를 보아도 어디 밝은 소식이 없고 매일 어디에서 얼마 사망했다, 무슨 사고 났다 등등 내 얼굴이 환히 펴질새가 없었다. 거기에 보험금을 먹기 위해 남편을 죽인 일이나,부모를 죽인 일, 자식을 살해한 사건들로 꽉 찬 한해였다.가족의 반연(絆緣)이 약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0퍼센트나 되는 차디 찬 세상이였다.
겨우 그러한 한해를 견뎌냈다고 안도의 숨을 쉬는데 년말에도 불쾌한 대화가 오갔다. 내가 아는 젊은이인데 설날에도 어머니보러 가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고 물었더니 그가 하는 대답이 기가 막힌다.
멀지_, 시끄러워서요. 비행기를 타고 어쩌고 얼마나 시끄러워요?»
시마네켄에 부모가 계신다니 리해セ가 가는 일이다. 같은 시내에 살면서도 일년에 한두번밖에 부모한테 가지 않는 도꾜의 차거운 인정을 느끼고보면 말이다.
그런데 새해에 들어서서 이렇게 따뜻한 기사가 나오고 또 텔레비에서도 눈물 나는 장면을 띄워주어서 오래간만에 내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어머_, 새해에 들어서더니 얼굴이 넙죽해졌네.하고_ 안해가 호들갑을 떨 정도였으니까.넙죽해セ졌단다. 나 원참.
텔레비에 나온 장면이란 바로 아래와 같은 일이였다. 요즈음 일본의 개그맨으로 하나와라는 사람이 유명해졌는데 그는 가츠セ란 무식한 격투선수를 제재로 전설의_ 사내-가츠의_ 무식함을 밉지 않게 까밝히며 웃기는 능수였다. 한가지만 례를 들면 어느날 가츠セ에게오늘_ 해는 어느쪽에서 떴어요?하고_ 물었더니 머리 갸웃거리며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오른쪽_?»
이 무식한 가츠セ,전설의_ 사내가_ 눈물겨운 생활담을 하여 나의 눈시울을 적시였던것이다.
어려서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살면서 모든 수모를 받아오다가 가츠セ는 동네에서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불량소년으로 되어버렸다. 그의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소년원(미성년범죄자를 가두어놓는 시설)의 자동문이 열렸다 닫겼다 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 문어귀에서 살고있었다는 표현이다. 그러던 그가 도꾜에 가서 일본 제일의 격투선수로 되리라는 결심을 하게 되고 농촌의 뻐스정류소까지 어머니가 바래주었는데 뻐스가 떠날 때 어머니가 허리춤에서 돈 천엔짜리 지페를 한장을 꺼내 가츠セ의 손에 쥐여주었다. 수년간 허리춤에 간주했던 어머니의 전부 재산이였다. 꾸겨진 천엔짜리지페 한장을 받아쥔 가츠セ가 눈을 적시고있는데 어머니께서 성공하지 않고서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더란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기로 몇십년, 그는 성공하여 일본의 챔피언까지 되고 매스컴의 유명한 탤런트로도 되였지만 한생을 고생하신 어머니께서는 그의 이러한 화려한 삶을 다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가츠セ는 지금 반백이 넘어섰지만 아직도 어머니한테서 받은 그 천엔짜리 지페를 소중히 보관하고있다. 그 지페를 내보이며, 옛날 가난에 쪼들려 배를 곯아도 울어본적 없고 마을의 싸움대장으로 그렇게 얻어맞아도 한번 울어본적이 없고, 일본의 챔피언으로서 격투경기장에서 그렇게 피가 터져도 눈물 한번 흘리지 않던 그가 그 지페를 품에서 꺼내보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있었다
옛날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것은 가츠セ뿐만이 아니였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족이란 이 평범한 테마에 집착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가.
신쥬꾸의 이세탄백화점의 사진관에 가족사진을 찍으러 찾아오는 가족이 이십년동안에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디지털시대의 컴퓨터와 디지털사진이 발전하여 사진업이 크게 영향을 받아 적지 않은 사진관이 문을 닫게 되였는데 유독 가족사진업만은 10억이나 매상고를 늘이고있다고 한다. 늦었지만 이제야 이 사회의 인간들이 자기의 가장 소중한것을 찾게 된것인 모양이다.
바다밑의 천연가스발굴도 필요하겠지만, 달이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연구도 항아(嫦娥)님을 생각해서라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자연을 파괴하기까지 하면서 담을 만들고 삼림을 베어내고 남의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려야 하는것도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리석은 나의 두뇌로서는 아직 모르겠지만, 따뜻한 가족애만은 시급히 꼭 필요한것이 틀림없을것이라고 생각하며 구경 무엇때문에 우리의 생이 이렇게 외롭게 되였을가 하고 머리를 갸웃해본다.
아체의 남쪽바다에서 가족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친인을 잃어가는 서쪽전쟁터의 모든 인간들에게 누가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되돌려줄수가 있을가!
인간의_ 물음에 대답을 하는데는 철학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온다고_ 헤겔이 말을 했다고 한다. 전쟁과 자연재해로 불안한 이 세상에 필요한것은 가족애라고 새벽 닭이 목청 돋군다..
2005년 1월 9일
양지 바른 자유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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