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공지사항/활동소식
오늘은 청도에서 광명이란 작자가 오래간만에 메신저로 말 걸어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나_ 지금 누드다._ 하고 알려주었더니 이 걸작 롱 잘하는 사람이ㅋㅋㅋ_ 누드신사.라고_ 날 골려주었다.
그래서 난누드로_ 있을 때 난 신사가 된다._ 하고 말했더니야_, 수필제목이다.라고_ 하기에 고정한 나는 정말 그게 수필제목으로 될것인가? 하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컴을 두드리게 되였다.
언제나 난 일방적으로 골려대는 판이라 번마다 대충대충 응대를 하고있는 나였지만 그래도 즐거운 대화가 잘 오가기에 난 광명이와 얘기나누기를 좋아하고있었지만 이렇게 알몸으로 대화하기란 처음이였다. 대방이야 날 볼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어쩐지 누가 엿보는것 같아서 처음엔 퍼그나 부끄러웠지만 그런 부끄러움도 몇분후엔 다 어디로 숨어버리고말았다. 혼자만이 만끽해보는 개운함, 부담없이 가지게되는 개운함, 이때까지 찾아보기 힘들어서 개운함은_ 비행기표 없어서 날 따라오지 못했는가_ 했더니 이렇게 그냥 나의 곁에 있은걸 모르고 내가 못본척했음을 뼈가 저리게 통탄하며 나는 이 하루를, 겨우 얻어온것 같은 하루를 아낌없이, 남김없이, 모조리, 깡그리 향수하리라 다짐하였다.
내가 오늘 누드로 된것은 내가 음탕해서가 아니고 또 무슨 변태성적인 무슨 습관이 있어서는 더구나 아님을 우선 정중하게 성명해둔다. 이게 다 이 몸을 통째로 찜하려는 이 날씨때문이였음을 두번 다시 정중히 밝혀둔다. 날마다 파괴해대니 이 자연이 견디지 못하고 이렇게 온 지구를 불덩이로 태우고있으니 굳이 내가 누드로 된 원인을 누구의 탓이라고 하려면 난 날 포함한 인간의 탓이라고 말할것이다. 요즈음엔 사우나가 많기도 하던데 이대로 그냥 무더위가 지속되면 다 문 닫을짓이다.
휴일 아침이라 늦잠에서 깨여나 샤워하려고 알몸이 되였는데 방바닥이 어지러운것을 보고 집 청소하면서 땀 흘릴 일 생각하고 우선 바닥 닦고 그 땀을 시원한 샤워로 씻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렇게 행동을 하였다. 샤워실에서 나와 타올로 몸의 물기 씻으며 컴퓨터 켰다. 메일박스 들여다보고 메신저에 나온 사람들 살펴보고 그러다나니 우에서 말한 에피소드가 있게 되였다. 다음으로 난 누드-원인-무더위-여름 이런 순서로 생각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여름을 구가한 글을 읽어본적이 없다는것이다.
무더위를 구가한 글은 지금까지 본적이 없다. 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 대해서는 구가하고있지만 왜서 이 삼복의 무더위를 구가하는 사람은 없을가? 그런데 더운 여름에 랭정히 생각해보니까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는 죽도록 더운 이 삼복철을 구가 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워서 죽겠는데 뭐가 좋다고 쾌지나 칭칭나세를 부를소냐. 자기가 싫으면 객관대상도 주관의식에 의해 싫은것으로 되고만다.
우리 인간들은 너무나 옹졸하다. 꽃이 만발한다고 봄이 좋고 나무 이파리가 붉게 타오른다고 가을이 또한 좋고 순진하고 말끔하다고 눈덮인 겨울이 좋지만 몸을 비틀어 짜듯이 몸의 물기를 빠짐없이 짜내는 이 여름을 구가할 리유가 없다.
그래도 나처럼 한번 누드로 차리고(?) 무더위의 여름을 생각해보시라.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것이 아닐가?
우선 인간이 거짓을 벗어던지는 계절이다. 중년사나이의 웃팔에 큼직하게 남아있는 우두허물이 그대로 드러나고 보이기 싫어하는 녀성들의 웃팔밑살이 드리운채 드러난다. 울퉁불퉁 사나이의 근육이 드러나서 좋고 부드러운 곡선과 투명한 피부를 자랑하는 녀인의 드러난 몸매도 눈길 사로잡는다. 그래서 나는-해 비추이는 나무에 매달려 합창하는 매미의 노래소리 더 뜨겁고 푸른 이파리 시든 몸으로 간신히 가지에 매달려있는 한 여름의 더위라도 나는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잘 매달리던 감기도 한참은 멀리 가버리는 여름이다.
수림의 혜택을 제일 감명깊게 느낄수 있는것도 여름이요 바다의 품에 안겨보는것도 여름이요, 쳟 좋은 땀조차 흘리고(리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한구절)_ 싶어지는것도 기실은 이 여름이 아닌가!
홀로 방에 있을 땐 거치장스러운 옷따위들 다 벗어던지고 아예 알몸으로 책상을 마주하고 앉을 때의 거뿐함, 더울때 라체로 되여보는 쾌감은 형언할수 없이 상쾌하다. 시원한 샤워때와 꼭 같다. 스스로 자유를 만끽하는 기쁨이랄가.남의 눈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는 이렇게 한번쯤은 홀로 라체로 되여보는것도 오스스메(권고거리라는 말). 옷 입는다는것이 이처럼 거치장스런 일이였던가 싶을 정도로 홀가분해지는 기분이다. 땀이 흘러도 그대로 놔둘수 있는 자유도 그리 많지는 않을것이다.
자기 몸에서 나는 땀마저 자꾸 제한해야 하는 구속스런 삶,피부가 해빛 맞지도 못하게 옷으로 감아놓아야 하는 삶.자연의 섭리에 맞지도 않으면서 지켜가야 하는것은 오로지 남의 눈을 의식하기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남의 눈이 없을 때 한번이라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보는것이 옳지 아니한지?
그런데 대체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이 사회 살아갈수 있을소냐?
아, 무더위의 기습, 속박의 사슬! 누드신사의 할 일없는 날이여.
2006년 8월 12일
심양의 소란스런 닝따쑈취의 숙소에서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