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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베란다에 심어놓은 남방고추(학명은 모르겠으나 아주 작고 매운 고추를 고향에서는 남방고추라고 불렀다.) 한포기를 거두어 이파리 떨어진 빨간 고추만을 출입구에 달아매놓았는데 오늘 나는 그 고추를 올해의 새고추로 갈아걸었다.
작년 수확을 거둔다음 고추대를 잘라버렸는데 올해 봄에 그 긁에서 새싹이 나오더니 이렇게 제법 다닥다닥 고추를 열렸던것이다. 겨울이라도 화분통이 마르지 않도록 나는 일요일마다 물을 주는데 고추대를 끊어낸 텅 빈 화분통에도 빠짐없이 물을 주었던것이다. 도꾜의 겨울이란 풀이 퍼렇게 살아있는 겨울이여서 이렇게 게으름없이 물을 주느라면 화분통에서 이름 모를 풀이 한포기이상은 자라나는데 이름모를 잡초면 어떠랴! 나의 정성은 에누리없었다.
그러한 요행을 바라며 고추긁만 남은 화분통에 그냥 물을 주었더니 기다리던 풀은 자라지 않았지만 대신 봄에 그 고추긁에서 싹이 나와주었다. 난 고추의 수명은 한해로서 다음해엔 두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줄로만 알았었는데 이렇게 긁에서 새싹이 나오니 당혹하기까지 했다.
여름에도 게으름없이 물을 주었더니 이렇게 가슴이 벅찰정도로 열매가 많이도 열렸다. 늦가을, 아니 립동이 지났으니 초겨울이 되는 오늘에 해 따스한 베란다에서 빠알갛게 나를 반겨주고있지 않는가!
나는 자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득 안고 그 고추를 잘라서 묶었다. 고추대를 비틀어서 끈을 만든 다음 그것으로 고추를 묶었다. 옛날 싸리나무단을 묶던 기억이 생생해진다.
정성들여 묶은 고추를 나는 작년에 매달아놓은 고추와 갈아달았다. 출입구왼쪽벽, 사각형거울곁에 달아놓았는데 하얀 벽에 달려있는 빨간 고추는 한결 더 타오르고있었다.
곁에 걸어놓은 사각형거울속엔 향수의 얼굴 하나 담겨져있었는데 고추와 체경을 번갈아보는 나의 눈에는 바보처럼 눈물이 고인다.
2004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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