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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갑
한국의 지명 ‘智異山’을 한자어 발음대로 읽으면 ‘지이산’이어야 맞는데 왜 ‘지리산’으로 읽는가? 지금까지 정확하게 해석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의 정답을 얻으려면 부득불 중국어와 한국어의 언어발달사에 착안하여야 한다.
우리말의 ‘가을(秋)’ ‘마을(里)’ ‘구이(가축에게 여물을 먹이는 그릇)’ 등을 함경도 방언에서 ‘가슬’ ‘마슬’ ‘구시’라고 한다. 중세 우리말에 원래 ‘을’과 ‘이’에 초성 ‘ᅀ[z]’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ᅀ’이 후세에 탈락되었는데 함경도 방언에서는 탈락되지 않고 그와 비슷한 발음 ‘ㅅ[s]’로 변하여 남아 있다. 이것이 ‘가슬’ ‘마슬’ ‘구시’의 내원이다.
한국어는 이런 고증이 훈민정음이 제작된 1445년 이후에 언문으로 쓰인 문헌에서는 가능하지만 언문 이전의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중국어는 80%이상을 차지하는 형성자(形聲字)를 통하여 이런 고증을 쉽게 할 수 있다. 형성자는 글자의 반쪽은 형, 즉 뜻을 나타내고 다른 반쪽은 성, 즉 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이를테면 형성자 ‘물을 문(問)’에서 ‘門’은 이 글자의 음을 표시하고 ‘口’는 뜻을 표시한다(입으로 묻다). 이는 중국 어학자들이 많은 한자의 고대 음을 고증해내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형성자 한자 중 음을 표시하는 성에 초성‘ㄷ’또는 ‘ㅌ’가 있는데 이 ‘ㄷ’ 또는 ‘ㅌ’를 아래에 든 예와 같이 어떤 자는 읽고 어떤 자는 읽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易(yi이)/碭(tang탕), 弋(yi익)/代(dai대), 也(ye야)/地(di지⇤디),
兪(yu유)/偸tou투), 異(yi이)/戴(dai대), 翟(di적⇤뎍)/耀(yao요)
당연‘易’ ‘弋’ ‘也’ ‘兪’ ‘異’ ‘耀’등자의 초성에 원래 ‘ㄷ’ 또는 ‘ㅌ’가 있다가 후세에 탈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부류의 글자를 중국어 음운학에서는 ‘이성모자(以聲母字)’라고 부른다. 필자가 우리말의 ‘되놈’을 한자 ‘夷戎’과 연계시키는 원인도 ‘夷’가 ‘이성모자’이기 때문이다. 왜 탈락되었는가는 그 설명이 복잡하므로 본문에서 할애한다. 상기의 예 중 異(yi이)/戴(dai대)가 바로 본문에서 말하려는 왜 ‘지이산’을 ‘지리산’이라고 하는가의 예에 쓰려는 글자이다.
혀끝이 앞 입천정에 튕기는 음 ‘ㄷ’와 ‘ㅌ’는 연화(軟化)되어 쉽게 다른 음으로 변한다. 지금은 ‘ㅈ’나 ‘ㅊ로 변한다. 예를 들면 맏이⇥마디⇥마지, 미닫이⇥미다디⇥미다지, 같이⇥가티⇥가치, 뎡거댱(停車場)⇥정거장 등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ㄹ’로 변하였다. 예를 들면 도댱(道場)⇥도량, 차뎨(次第)⇥차례, 모단(牡丹)⇥모란 등이다. 또한 고대 중국어의 ‘ㄷ’받침이 몽땅 한국어의 ‘ㄹ’받침으로 됐다. 예를 들면 達(닫⇥달), 發(받⇥발), 葛(갇⇥갈), 末(맏⇥말) 등이다. 이렇게 볼 때 ‘지디산’이 ‘지리산’으로 발음되는 것은 규율에 부합되는 변화이다.
만약 그 어느 외국인이 왜 ‘智異山’을 ‘지이산’이라 하지 않고 ‘지리산’이라 하는가라고 물으면, “이름은 주인을 따른다는 원칙이 있다. 한국인이 ‘지리산’이라고 하니 잔말 말고 그렇게 불러라” 하면 되지만 좀 알만한 사람한데는 필자의 이 문장으로 해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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