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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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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중국조선족 시인 강효삼 篇 댓글:  조회:657  추천:0  2024-08-23
북방의 시혼, 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 2015년 07월 07일 00시 45분  작성자: 허창렬 북방의 , 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                    시인 강효삼과 인간 강효삼을 론함                허인                                                           하고싶은 말       대개 북방시단하면 필자의 머리속에 제일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르시는 분이 곧바로 강효삼선배님이시다. 한평생 민초의 삶을 꿋꿋히 살아오시면서 결코 곁눈조차  한번 팔지 않으시고 오직 현실주의와 사실주의 창작기법으로 외곬인생을 묵묵히 살아오신 북방의 ㅡ사실주의 창작거장 강효삼선배님ㅡ 매번 신문, 잡지에서 이제는 70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로익장을 과시하고 계시는 강효삼선배님의 주옥같은 시 한수 또 한수를 읽을적마다 필자는 마치 잃어버린 고향소식을 어느 날 문득 인편에 다시 전해 듣는듯한 그런 느낌에 저도몰래 가슴 짜릿한 전률을 느꼈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1944년 흑룡강성 연수현태생인 강효삼선배님은 1962년부터 벌써 처녀작을 발표, 근 50여년간 시, 수필, 에세이, 아동문학작품 등을 무려 300여만자 신문, 잡지에 발표, 고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강효삼선배님은 필자가 보건대 아마도 래생에 다시 태여나신다 하셔도 시만 쓰실 분 ㅡ 윤동주님의 서시처럼 성격이 대나무처럼 곧고 개성이 뚜렷한 시인님이시다.    1980년대초엽 , 북방시단의 첫 동인시집ㅡ 중 한분이셨던 강효삼선배님은 누가 뭐라해도 우리들의 본보기로 되시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으신 분이시다. 모두 알다싶이 80년대 초엽은 인터넷이 없었고 교통마저 몹시 락후한 시대였던 만큼 각지 문단상황은 지극히 국한시 되다싶이 하여 타성 문인들의 작품을 읽는다는것은 마치 하늘의 별따기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러한 시기에 북방시단에서  민초들의 애닲은 삶과 희노애락을 시로 , 희망으로 줄줄이 엮어 오신 분이 곧바로 강효삼선배님이시다. 여기서 조금 미안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80년대말, 90년대초엽, 그토록 날마다 목이 터져라 , 를 노래로 부르면서도 솔직히 작자가 누구인지조차 알지를 못하였으며 필자의 경우 썩후에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야 비로소  김성휘, 리상각선배님들의 시들을 점차 접할수가 있었다    박철준, 리삼월, 한춘, 한병국, 강효삼, 김동진(현재 훈춘에 거주), 리명재, 특히 리삼월, 박철준, 한춘, 리명재시인마저 타계하신 이 시점에서  현재까지 북방의 시단ㅡ완달산맥에 오롯히 작은 거목으로 우뚝 서셔서 현재까지 아낌없이 꾸준히 한수 또 한수의 현실주의, 초현질주의, 사실주의 시작품들을 한점 부끄럼도 없이 세상에 떳떳히 내여놓고 계시는 강효삼시인님은 북방조선족시단의 이심이 분명하다. 그럼 여기서 우리 다 함께 강효삼선배님의 주옥같은 시 한수 또 한수를 조심스레 살펴보며 가도록 하자.   기억에 생생히 살로 돋아나는 참신한 이미지   고향시초   실바람 어서 가자 길잡이 해주고 시내물 목청 돋궈 반갑다 노래하네 잘 있었냐 고향아 어머니 품이여 아 동구밖 배나무 한 그루 어머님 모습인듯 두 팔 벌려 나를 맞아주네   꿈 많던 소년시절 그때를 잊으랴 나는야 고향 떠나 학창으로 달렸지 생각나냐 고향아 석별의 그 날을 아 흰 저고리 고름에 매였던 빨각돈 쥐여주던 어머님 그 사랑 나를 울리네   …  … … (1980년 흑룡강신문에 발표)      강효삼선배님의 50년 창작성과를 필자는 단 한마디로 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시인 은 언제나 민초들 삶속의 크나 큰 희로애락을 항상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피로, 살로 경험하시면서 때로는 웃음으로 , 때로는 눈물로 한수 또 한수의 사실주의 시를 쓰시는 -사실주의, 현실주의 시인이시며 인간 은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를 구수하게 엮어가면서 언변이 청산류수이신ㅡ어쩌면 그 자그마한 체구와는 달리 너무나도 호방하신 분이시다. 특히 특정된 년대에 특정된 시, 즉 정치적인 구호시들을 써내여 명리에 눈이 어두웠던 그런 시인들과는 달리 과 의 70여성상 인생궤적을 아무리 낱낱이 살펴보아도 부끄럼없이ㅡ 와도 같이 청백하신 분이시다.     이 시는 지금 읽어도 감수가 새롭고 또한 가슴이 순간 뭉클하기도 한다. 어드바이스나 그 어떤 멘트조차 필요없이 필자가 알건대 강효삼선배님은 절대로 남이 알지 못하는 시들은 쓰시지를 않으신다. 시 창작에 있어서 강효삼선배님은 항상 이미지화를 극대화하면서도 또한 괴상한 이미지 조합이나 폭력적인 조합같은것은 아예 쓰질 않으시다. 거의 40여년전에 씌여진 시라고는 지금도 믿겨지지 않을만큼 여기서 실바람, 길잡이, 시내물, 목청, 노래소리는 자연스럽게 를 견인해 내여 구체적인 형상화까지 깔끔히 마무리해가면서 언제 ㅡ 어느때 ㅡ 어디에서나ㅡ멀리에서부터 마주서기만 하여도 벌써 듯한 배나무를 한폭의 그림으로 그려내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이 저도 모르게 뭉클해지게 한다. 특히 제 2련에서 이라는 이 참신한 이미지는 오늘까지 조금도 녹 슬지 않은 반짝반짝 빛나는 하나의 거대한 보석이 되여 마치 꿈 많았던 학창시절을 생각만 하여도 눈시울이 먼저 붉어지고야 마는 을 극대화 시켜놓아 시의 매력을 한껏 증폭시킨듯 하다. 알수가 있듯이 강효삼선배님의 시속에는 언제나 파워플한 패러다임 전환을 굳이 약속치 않으시면서도 꼭 우리들만의 방식, 우리들만의 정서, 우리들만의 비분, 그리고 강개와 긍지를 표현 그대로 과 으로 풋풋한 휴머니즘정신, 즉 인문정신이 그 밑바탕에 든든히 안받침 되여 있어 마치 개운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 그럼 아래에서 겨레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과 애증, 그리고 자신을 낮추어 민족을 부각시키고 있는 강효삼선배님의 어쩌면 자화상일지도 모를 와 를 다 함께 잠간 더 살펴보도록 하자   늘 거기 있기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 너른 세상 갈 곳 많아도 민들레는 아예 흙에 자신을 맡겨버리고 제 본래 태여난 땅 그 한구석에서 순하고 천해도 항상 밝게 살기로 했다   누굴 닮았나 묻지 말자 무심히 보기엔 너무 고상한 꽃 그렇게 많이 모여있어도 서로 헐뜯는것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혹하게 짓밟혀도 신음소리 한마디 듣지 못했다 흘리는 눈물은 더구나 없는 아, 우리 겨레 녀인들 같은 꽃이여 전문이다       사실주의 창작기법은 아마도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꼽슨, 카르세프스키, 트루베츠코이와도 같은 이들의 상징주의 형식론에서부터 시작된듯하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1928년 헤이그에서 열린 제1차 국제언어학회에서 라는 용어를 프랑스에 망명중이던 러시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처음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사실주의창작기법은 빠른 급물살을 탄것으로 알고있다. 그럼 구조주의란 무엇인가? 구조(라틴어 동사 struere에서 온 stuctura)란 알기 쉽게 을 가르키는 낱말이다. 보줄라나 베르노가 언어를 하나의 건물이라고 파악한것과 마찬가지로 퐁트넬은 인간의 육체마저 하나의 건축물로 보았으며 시에서의 사실주의는 상징주의를 기초로 그렇게 탄생이 된다. 사실주의 창작기법이 오늘날 우리 조선족시단에 현실주의,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모더니즘 점토우에 마침내 한떨기의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 날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수많은 선배님들과 50여년간 결코 곁눈 한번 팔지 않고 꾸준히 외곬 인생을 열심히 살아오신 강효삼선배님과도 같은 선배님들이 계셨기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였을가 생각해본다.    /늘 거기 있기때문이다 가장 낮은 곳에/너른 세상 갈 곳 많아도/민들레는 아예 흙에 자신을 맡겨버리고/제 본래 태여난 땅 그 한구석에서/순하고 천해도 항상 밝게 살기로 했다/에서 볼수 있다싶이 독백성이 강한 제1련은 어쩌면 시인 자신의 자화상일수도 있으며 또한 풀뿌리와도 같이 얽히고 설킨  이 세상 민초들의 애잔한 삶을 직접 한눈에 들여다 볼수 있듯이 그려놓아 결코 낯설거나 거리감이 전혀 없으며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또한 친숙하기도 하다 . 바꾸어 말하면 어쩌면 시인자신의 옹근 삶 전체를 그대로 표현한것이 아닐가 싶을 정도로 이 구절은 읽을수록 무어라고 형언할수도 없이 단단한것이 문득 가슴에 맺혀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알짜지근해나는것을 어쩔수가 없다. 특히 /누굴 닮았나 묻지를 말자/무심히 보기엔 너무 고상한 꽃/으로 다시금 멋지게 캐릭터를 시작한 제 2련에서 /모여 있어도 서로 헐 뜯는것을 보지 못했고/, /짓밟혀도 신음소리 한마디 없으며/./흐르는 눈물은 더구나 없는/우리 겨레의 녀인들/의 강인한 모습에 초점을 모아 공명감이 더욱 큰듯 싶다. 이렇듯 시란 회화성으로 뜻을 전해야 시 예술법칙에 부합되는 것으로 영구불멸적인 요구이기도 하다. 누가 저렇게 이글거리는 화로불을 황홀하게 지펴놓았는가 때가 되면 봄은 절로 익는줄 알았지 이렇게 누구인가 지성이 뜨거운 입김되여 지펴야 하는줄을 진달래꽃 타는 불길의 흐드러짐 알겠다 화로불에 잘 익은 고구마 같이 물씬 풍겨날 구수한 봄내음새… 진달래는 봄의 구미를 돋구려 산이 훌훌 입김불어 피워올린 숯불이 아니냐 아 봄은 이렇게 빨간 진달래 그 원초의 숯불에서 맛스레 익혀진 《불고기》여라   전문    아마도 강효삼선배님에게 있어서 는 영원한 시제이기도 하며ㅡ 수많은 시속의 이 되기도 하며 또한 그러한 겨레에 대한 사랑과 정서, 애착은 신선한 에너지가 되여 수많은 창작 동기가 되는것이 아닌가 싶다.>  제1련중에서 /누가 저렇게/이글거리는 화로불을/황홀하게 지펴놓았는가/에서 은 벌써 읽는들의 마음을 한꺼번에 사로잡기에 너무나도 충분하며 그 다음 제2련에서 과 은 마침내 제3련에서 /알겠다 화로불에 잘 익은 고구마 같이/물씬 풍겨날 구수한 봄내음새…/를 견인해 내여 로 시적 분위기를 무르익히고 한껏 고조시켜놓았으며 특히 제4련에서/산이 훌훌 입김 불어 피워올린 숯불/은ㅡ 제일 마지막 련에서 마침내 / 아 봄은 이렇게 /빨간 진달래 그 원초의 숯불에서/맛스레 익혀진 《불고기》여라/로 참신한 이미지를 등장시켜 시의 진수가 무엇인지 아낌없이 보여주는듯 싶다.   시인 강효삼과 인간 강효삼, 그리고 환유와 은유ㅡ직유와 비유ㅡ    력사는 련속적이면서도 동시에 불련속적인 특성을 띤다.시를 쓴다는것은 어쩌면 전통적인 시각에서 살펴볼때 을 기록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이기도 하다.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은 현실에서 오는 이러한 소외를 항상 의식하면서도 또한 늘쌍 새롭게 시작이 된다. 즉 리성(理性)이 보여주는 반리성적인 특성, 그리고 엄연한 사실과 그 가치의 분리와의 재조합, 더 나아가서는 구도적 효률성이 항상 시에서 각종 소외의 조건으로 인식되기도 하며 그러한 리성의 종착역은 곧 바로 죽음일수도 있다는 그러한 가 가슴을 치기도 하는 실례들이 현실적으로 적지 않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여난 이상 누구나 을 외면할수 없으며 또한 언젠가면 너나없이 받아 들여야 할 중요한 과업이기도 하다 .그럼 강효삼선배님은 이러한 삶의 자세를 어떻게 표현하셨을까? 여기서 강효삼선배님의 을 또 살펴보도록 하자   십자길에 앉아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로인 한분 지금 로인이 앉아있는 곳으로 두갈래 길이 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이 로인은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죽음의 길로는 로인은 부득부득 앉아버틴다 제자리를 뭉개며 얼마를 더 버티려고 정녕 고집부리지 마시고 어서 가시라해도 로인은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의 낡은 철학을 푼다 ㅡ날 그대로 두게 죽음을 앞에 둔 늙은일수록 더 살고싶다네.   전문이다      강효삼선배님의 시는 언제봐도 항상 질서 정연하고 일목료연하다. 질서 정연하고 일목료연하다고 할수 있는것은 그만큼 강효삼선배님의 삶 자체가 신의로 가득 넘쳐나기 때문이다. 에서 공자는 라고 하였다. 뜻인즉 신과 의는 아주 근접한것으로써 신(信)은 의의 범수와도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시인 강효삼을 80점 이상이라고 할수 있다면 인간 강효삼은 90점 이상이다. 왜냐하면 시인 강효삼에게는 가 있고 인간 강효삼선배님은 거짓없이 너무나도  진솔하기때문이다 . /십자길에 앉아있다/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하얀 로인 한분/에서 볼수 있는것은 역시 자화상이라 하여도 과언은 아닐듯 싶다. 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지금 로인이 앉아있는 곳으로/두갈래 길이 나 있다/ 죽음과 삶의 길이/ 로인은 가고싶지 않다/ 그래도 죽음의 길로는/ 로인은 부득부득/ 앉아버틴다 제자리를 뭉개며 /얼마를 더 버티려고/ 정녕 고집부리지 마시고 어서 가시라해도/ 로인은 거절하며 오히려 자신의 낡은 철학을 푼다/로 삶에 대한 애착을 남김없이 표현하였으며 제일 마지막 련 /ㅡ날 그대로 두게 /죽음을 앞에 둔 늙은일수록 더 살고싶다네./에서는 인생에 대한 회유와 허전함, 공허함ㅡ그러한 인생에 대한 반추에서 오는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을 즉 . , 사실주의 그대로 표현하여 어쩌면 쓸쓸하게  인생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끔 하는듯 하다. 필자가 알건대 강효삼선배님은 얼마전 사경에서 벗어나신줄로 알고 있는데 모쪼록 건강에 더욱 류의해가시면서 주옥같은 시작품들을 계속 써내시길 삼가 부탁 드리고 싶다.     모스 페컴(morse pekham)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고 설파한적이 있다. 이여야 한다. 그럼 아래에 강효삼선배님의 를 조심스레 더 살펴보고 가도록 하자   한평생 락을 바라고 허위 허위 쫓았지만 그건 꿈에 본 신기루 쫓고 쫓아도 그냥 그만큼 멀리 있어 가다가다 지쳐누운 나지막한 산비탈에 허리 착 꼬부라진 늙은 비술나무 한구루 삼밭처럼 숨막히는 오두막 찢어진 문풍지를 비집고 젓가락처럼 새여드는 빛을 거친 피부에 바르던 못난 사나이였다 산해진미는 평생 팔자에 없어 다마토리 술 석잔 그것에도 취해서 목침베고 뽑는 가락은 그나마 앞에선 노래도 못 넘기고 가파론 산을 톱는 초부처럼 암벽을 쪼아대는 석공처럼 힘들고 아프게 흙을 뚜져 참께 기름같은 땀을 동이로 짜냈던 누렇게 말라도 독한 잎담배였던걸 그래도 때묻은 동저고리 옷고름 잡아 풀면 장작개비처럼 말라가는 가슴에도 남은 것은 비취색 하늘같이 깨끗한 마음  젖은 장작같이 바른 금 쫙쫙 서는 참나무였다 옹배기는 숭늉같이 근심과 걱정을 증발시키며 인내를 연덩이로 굳혀들고 굴종을 담배로 말아피우며 근로와 선을 새끼처럼 꼬아서 뒤로뒤로 넘겨주고 태여날 때처럼 맨주먹 저세상을 가시였다 아 흙을 앗기고 흙에 미쳐 흙을 찾아 지구를 류랑한 나그네 그때문에 고향도 혈육도 다 잃는 눈물에 젖은 무명수건아 무지와 순박 근로와 인내를 한데 버무려 소여물처럼 새김질한 늙은 황소여   전문이다     필자는 나름대로 강효삼선배님의 를 수작(秀作)으로 생각한다.여기서/한평생 락을 바라고 허위 허위 쫓았지만 그건 꿈에 본 신기루 쫓고 쫓아도 그냥 그만큼 멀리 있어 가다가다 지쳐누운 나지막한 산비탈에 허리 착 꼬부라진 늙은 비술나무 한구루 /로 멋지게 베이스를 깔고 /산해진미는 평생 팔자에 없어 다마토리 술 석잔 그것에도 취해서 목침 베고 뽑은 가락은 그나마 앞에선 노래도 못넘기고/를 포인트로 단단히 골격을 이룬 이 시에서/옹배기는 숭늉같이 근심과 걱정을 증발시키며 인내를 연덩이로 굳혀들고 굴종을 담배로 말아피우며 근로와 선을 새끼처럼 꼬아서 뒤로뒤로 넘겨주고 태여날 때처럼 맨주먹 저세상을 가시였다/는 환유(欢喻)와 은유(隐喻)의  절정을 이루며 /아 흙을 앗기고 흙에 미쳐 흙을 찾아 지구를 류랑한 나그네/고향도 혈육도 다 잃은 눈물에 젖은 무명수건아/ 무지와 순박 근로와 인내를 한데 버무려 소여물처럼 새김질한 늙은 황소여/는 직유(直喻)와 비유(比喻)의 신기를 아낌없이 보여주는듯 하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도합 7련으로 나뉘였지만 산문시에 가까워 읽기에 조금 어려운 감이 드는듯하다.이외에도 강효삼선배님은 북방시단의 원로답게 북방의 산하(山河)와 향토문화, 고향에 대한 다함없는 사랑을 시리즈로 무려 37수나 련작시를 쓰신적이 있으시고 또한 수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도 많고도 많지만 여기서 시간상 관계로 일일히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무리하면서      북방시단에는 강효삼선배님과도 같으신 든든한 거목들이 계셨기에 문학기초는 상대적으로 다른 산재지방에 비해 많이 튼튼하였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어쩌면 망조가 들기 시작한 조선족문단 ㅡ이제 으로 찾아가면 웬 낯모를 타민족이 고 되묻는 세상 ㅡ 가령 40ㅡ50년후에도 조선족문단이 계속 존속하여 있다면 그때 가서 강효삼선배님의 현실주의, 사실주의기법으로 씌여진 주옥같은 시작품들은 그 어디에 내놓아도 조금도 손색이 없었을 명시였음을 아마 후세에 새롭게 재 평가될것 같다. 인심이 야박해서가 아니라 흔하면 누구나 수월하게 대하기 마련이고 금싸락같이 귀할때일수록 귀중한 보석이였음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고  생각해 본다. 끝으로 강효삼선배님께서 여생에 더욱 큰 와 가 있으시길   두손 모아 빌면서 후배된 도리로 시 한수를 증정하려 한다. 필자의 수준상 관계로 간혹 서툴지라도 그냥 이쁘게 봐주시고 성의로 받아주셨으면 한다   시인 강효삼   머나 먼 북방 완달산기슭에 버섯같이 아담한 초가집 짓고 한일평생 흰 저고리에 흰 고무신 신고 백발이 성성한 시인 한분이 해마다 봄마다 민들레를 읊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입니다 그가 바로 입니다 그가 바로 조선민족시인 강효삼입니다 시인은 오늘도 노래를 부르네 2015년7월3일 흑룡강신문 발표  
26    중국조선족 시인 윤청남 篇 댓글:  조회:679  추천:0  2024-08-23
옥녀늪에 와서 (외4수)/윤청남 2019년 07월 11일 08시 40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옥녀늪에 와서      윤청남 밭머리 먼 밭골에서 허리 굽혀 이삭을 줏다가 6월에 뜨는 꽃 누가 진달래라 할 것인고 손끝에 닿는 하늘 그 물의 원두에서도 우라고 했다 비가 내려 한결 축축한 날 고풍스런 구리거울에도 례외 없이 구름은 어려있었다 어디에도 실은 남아있지 않으리라 믿었던.   자작나무숲에서   네가 빨갈 때 나는 까맣고 네가 까말 때 나는 빨갛다 덮인 날 검은 흙에 해살은 살이 되여 천년을 넘어온 그리움의 바람이런가 수렁길에 설이 오른 소똥 식지 않은 물 남의 말소리 멀어지지 않고 가까워지지 않는 사의에는 둥지를 튼 음악이 초원으로 여리다 어둠에 맞먹는 그늘 밑을 굴러가는 살 촘촘한 저 바퀴.   습 지   밀려온 것이 자작나무숲을 짠하게 한다 낮은 곳을 선택했다가 이렇게 하늘을 갔고 구름을 갔고 별을 숨기게 된 것이다 머문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 수밖에 없는 저지대를 습하게 만든 것은 돌아갈 수 없는 물이다 새들의 지저귐에도 절반쯤 슬픔을 얹어준.   숭선 폭포   내가 아니라 너에 의해 얻어낸 멋 누가 시대를 택할 수 있겠냐만 운명은 너로 하여 달라져 있었다 미울 수 없는 농토 30리 구실이라면 어떠랴 너에게로 간다는 것 타고난 복이여라 그리움 천리를 허물고 두만강 둘이 하나로 되는 일은 숨기기 어려운 그림이였다.   상천벌   거북등 각골문 임금의 옥새 품도 품이려니와 물이 먼저니 올라선 두만강 꿈이라 하라 모내기 풍경은 지우지 못한 군함산 손톱눈에 흙이라 할가 얻어지는 것이 잃은 것을 덮을 수 있다면 가을에는 눈물 없이 마주설 수 있을지 그 뜰에 물이 들면 명경이 따로 없나니. /연변일보 2019년 6월 28일 발표 ====================================   힘들게 발표한 시 2020년 12월 15일 12시 01분   작성자: 윤청남                    평양랭면(1)                                      윤청남 오늘의 그림에는 과거도 미래도 섞일 수 없다고 했다 어둠을 사르는 정조로 영원을 노리는 어디에도 기대 살 수 없는 것이 별이라 했다 흙에 뿌리를 대이고 언어를 대신한 초불은 바람을 씹어 광명은 만든다 너를 청정하게 삭힌 태양은 고독이라 했다 풍만한 사상과 건전한 정감은 어둠 하나 벗는 순간의 정서라 했다 살아가는데 여유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2018.6.4.                                평양랭면(2)                                       윤청남 낯설지 않은 풍경을 거리와 대동강물에서 접할 수 있었다 유경호텔을 평양에서 으뜸가는 건물이라면 밤을 지배한 빛이 너를 얇게 썰어 말렸다 백이 되고 천이 돼도 결국은 다시 점 하나로 모여가 달이 됐다 내리는 봄은 야산 굽이굽이 모양을 지니지 않은 만큼 잔잔한 비에만 실릴 수 있는 서정이 밤을 흙으로 밑그림이 순한 음악을 대신했다                                      2018.7.7. 평양랭면(3)                                 윤청남 옥류관을 배경으로 한 사진에 어이다 잡힌 조선의 미인이 간판을 유색하게 한다 몇억광년 품을 들이면 별에도 닿을 수 있다지만 돌아갈 수 없는 경계를 넘어왔다 서늘한 숨결로 다가선 전자문명이 둘을 하나로 얽어줬다 보내려 해도 다시 보내지지 않는 너는 나와 석양을 함께 한다                             2018.7.8. 평양랭면(4)                                            윤청남 새 울음소리는 거울 밖에서 넘어오고 심플한 냄새가 하늘에 닿는데 한몫을 한다 산을 만나 물을 넘고 밀은 내가 멀어진 들에서 출렁였다 떠나 온지도 참 오래된 고장인데 어리광 부리는 바람을 다시 느꼈다 천지간에 그림을 바꿔 놓은 감았다 뜨는 눈이 나를 누르게 했다                                  2018.7.9. 평양랭면(5)                                               윤청남 너의 그림자는 있어도 너는 누굴 닮지 않았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하늘이다 수수한 언어로 불가한 거리를 줄였다 한컵의 물과 같은 군자와의 만남 어느 것과 같지 않은 것이 너다 너를 먹고 돌아앉아 이루지 못한 사랑을 떠올렸다                                            2018.6.5. 평양랭면 (6)                                      윤청남 유에 무란 말과 무에 유란 말을 씹어보게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사색하게 한다 먼 것이 가까운 것이고 가까운 것이 먼 것이란 것을 깨우치게 한다 돌아앉으면 눈앞에 있었다 지구가 둥글기 때문만은 아니리라                             2018.7.10.    평양랭면(7)                                       윤청남 밀이 골조 되고 메밀이 살 되어 일궈세운 건물 비우기가 아닌 한 몸 으깨진 뒤 자연과 환경을 널 키워낸 혼이랄 때 그리움의 깊이를 잴 수 있는 자(尺)는 눈물뿐이다 향기는 아픔과 맥락을 같이 한다                                 2018.5.15.  평양랭면(8)                                            윤청남 귀 눈 볼 살짝 들린 입귀를 넘어 상큼한 코신 콧마루까지 은근하다 담박하게 그려진 눈썹 하나의 곡선을 그릇이라 한다면 속히웠다 속혀 가는 련못에 바람과 달리 더디게 와서 느긋이 머무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담담한 정서를 앞세운다 했을가 점 하나로 나를 향해 지금도 오는 것 물론 화가의 초월한 작품에 그칠 수도 있지만 내가 작아지는 만큼 커지는 달은 진한 그림자를 만든다                                      202011.24. 평양랭면(9)                                         윤청남 대동강을 사이하고 옥류관과 수상시장 단군릉에 이르기까지 한눈에 넘어온 평양성 날 저물어 짐을 푼 량강도호텔이 대동강 물에 둘러싸인 섬이란 것을 알게 되고 새 날을 맞는다는 것은 숨겨진 비밀을 헤친다 하기보다 깨여나는 자의 느낌을 대신하는 그림으로 인정하고 싶었다 손이 아니면 닫을 수 없는 것들 무엇으로 저 풍경을 바꿀 수 있겠는가 맑다는 것의 의미는 이슬 보다 큰 이슬이 이슬을 덮었을 때를 말하는 것 같았다 때는 봄 여백의 한끝을 철새가 끼룩끼룩 날아들고 있었다                                                 2018.7.9.   
25    중국조선족 시인 림운호 篇 댓글:  조회:611  추천:0  2024-08-23
8월 (외 4수)/림운호 2019년 09월 18일 08시 39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8월     -림운호- 해빛이 무겁게 뚝뚝 떨어진다 장미가 몸을 활짝 열고 그의 원숙한 몸매를 뽐낸다 미풍에 하느작이면서   언덕 우 키 큰 나무이파리가 금빛으로 물든다 매미가 문득 울음을 멈추고 깊은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장미는 저만치 와 있는 9월의 찬바람을 알아채지 못한 채, 한껏- 여름날 향연에 부풀어있다.   장미빛 추억   저기 덩그라니 빈 교정에 장미빛 추억 하나가 그린 듯이 서있다 하나의 그윽한 눈빛이 장미를 훔친 찰나가   아직도 장미 한송이가 꿈처럼 피여있고 령혼이 넋을 놓은 그곳에 시간이 다한 듯 순간이 영원에 멈춰있다.   순 간   내가 너를 바라보고 네가 미소 짓는   순간,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가고   얼은 빠지고…   순간에 영원히 멈췄다.   흰 장미   달빛 어스름한 나무가지 사이로 파랑 나비 한마리가 힘겨운 듯 겨우 앞을 날아간다 -어서 서둘러라, 나비야!   홀제 찬바람이 우당탕-불어오고 죽음이 무겁게 와 있다 장미 한송이가 갸날픈 빛 띠고 온몸을 부르르-떤다   아아, 여름 내내 지켜온 흰 장미여 낱낱이 지는 슬픔이여 이제 우리도 작별을 해야겠지 머잖아 온 숲이 지니까.   산 책   해가 뉘엿뉘엿 기운다 락엽이 낮게 흩날린다 언덕길을 따라 한 로인이 시름없이 걸어간다   세상의 여기저기에는 삶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로인의 가슴에는 한줌의 불씨만 남아있다   그리고 바람에 저 지는 락엽에 외로운 가슴에 고독한 령혼에 천국의 손이 축 드리워져있다. /연변일보 2019년 8월 23일 발표
24    중국조선족 시인 방태길 篇 댓글:  조회:765  추천:0  2024-08-23
고 향 (외4수)/방태길 2020년 05월 22일 10시 25분    작성자: 문학닷컴 고 향 (외4수) 방태길 나는 고향의 하늘에서 멀리 가는 기러기 본다 모든 것이 낯선 고향에서 내 맘도 새들같이 남쪽으로 간다   저녁노을 피는 저 더기서 보면 서있는 허수아비도 정답던 벌판이 개구리도 엄마 그려 울던 여름밤이 인제는 머얼리 구름산같이 사라지고…   내 친구 황소와 강아지와 닭들은 없고 들국화만 머리 들고 고향손님 반긴다 새들은 옛 주인 찾아 훨훨 날아들고 정답던 나무들은 복덩이 찾아 시내로 갔다   나는 빈 집터에 무덤처럼 앉아 신기루같이 사라진 고향 다시 그린다 고향도 젊을 땐 홍시처럼 고왔다 고향은 지금 도시에 가 빨갛게 익는가보다…   천당과 지옥 사이   뒤골목 삼촌집에서 소주 마시고 너부러져 꿈나라 산책하다가 천당과 지옥 사이 드나들었다   지옥에는 악한들이 참회하고 천당에는 친인들이 북 치며 신선 되여 춤추고 있었다   고통스레 지옥 간 이들도 빈몸으로 세상에 왔다 가고 구름 타고 천당 간 이들도 빈몸으로 세상에 왔다 갔다 한다   가슴에 차오르는 죄 하늘에 날리며 마음 비우고 사랑 키운 이는 구름 타고 천당에 가고 량반도 모질면 지옥에서 청해가고…   천당과 지옥은 한발작 사이라 한다 사랑과 증오도 한발작 사이 선량과 사악도 한발작 사이 인간과 짐승도 한발작 사이…   삼촌집에서 소주 반근 마시고 천당과 지옥 사이 드나들었다… 천당도 지옥도 안가고 지금은 인간세상 기분 좋게 살려 생각했다.   들꽃 2   베토벤 운명교향곡 들으며 들꽃의 운명 생각한다   푸른 언어 하늘에 날리며 운명에 항거하며 웃는 들꽃   누구도 꺾을 근심 없는 들꽃 도시의 농민공처럼 사라져도 그리움 모르는 존재인 들꽃   락락 장송처럼 짤릴 행운도 없고 굳은 바위처럼 기초 될 행도 없는 들꽃   공기같이 물같이 존재감 없는 이는 버려진 의자에서 밟혀도 웃는 들꽃 보며 자기의 운명이 들꽃 같다 한숨 쉰다.   록차  풀어   고향의 청청하늘 물에 풀어 고향의 산냄새 꽃냄새 물에 풀어 록차 풀어 그대께 드리옵니다   그리운 정 만나면 한번 폭취하려고 고향의 해달과 흐른 세월 말하려고 도수 높은 소주 준비했지만   흐릿한 세월 청청한 머리 잊지 말라고 혼탁한 세상 맑은 눈 가리우지 말라고 오늘은 록차 풀어 그대께 드립니다   어느 때 또다시 엄동세월 만나면 온몸이 얼어드는 엄동세월 만나면 도수 높은 소주로 추위 이깁시다   고향의 청청하늘 풀어 마시니 얼굴에는 맑은 웃음 꽃으로 피고 가슴에는 붉은 해 둥실 솟습니다.   꽃은 새벽을 낳았다   모지름에 울고 흐느끼며 피 뿌려 하늘에 노을 만들며 부엉이처럼 수많은 밤 먹으며 꽃은 새벽 낳았다   꽃의 피는 해빛 되여 솟구치고 꽃의 사상은 안개 되여 펼쳐지고 꽃의 사랑은 강물 되여 흐르고 꽃의 노래는 무지개 되여 날고…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왜글왜글 떠들던 별무리가 세월의 주머니서 조용히 잠들 때 온몸을 박산내는 아픔 참으며 아프게 사랑하는 법 세상에 가르치며…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꽃의 아픔은 운명이라 말할 때 꽃의 향기는 숙명이라 말할 때 맑은 미소로 절규 씹으며 피멍 들어 타오르는 구름 헤치며…   꽃은 이렇게 새벽 낳았다 꽃은 이렇게 태양 낳았다 꽃은 이렇게 우주 낳았다! /연변일보 
23    중국조선족 시인 김경희 篇 댓글:  조회:649  추천:0  2024-08-23
거미줄 (외7수)/김경희 2021년 11월 12일 09시 41분  작성자: 문학닷컴 거미줄 (외7수) □ 김경희 낭창낭창 바람이 불어도 끊기지 않는 선의 미학   한뜸한뜸 무늬 잡은 엄마 사랑 꽃방석   허공중에 걸리여 그리움 자아낸다.   아빠향   바람에 하느작이는 귀룽나무 흰 잎사귀   바람타고 날아드는 실큼한 향기   어쩌면 희끗희끗 머리칼이 땀내 싣고 날리는가   마음 덥혀 안겨오는 아빠향.   그대 봄이 온다   그대 다가오는 소리에 풀잎은 푸른 물 머금고 여린 맘 활짝 열어 나막신 끌고 마중 나선다   의젓이 다가서는 그대 모습에 민들레는 노란  옷 받쳐입고 수집음에 젖어 이쁜 미소를 짓는다   그대 봄을 맞는다.   징검다리   물수제비 날리여 징검다리 놓는다 각일각 야위여가는 서산해를 지켜보며   유독 님만이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 주홍시가 익어가는 사랑다리를 놓는다.   숲 사랑   눈을 감고 귀를 열면 들려요 귀를 막고 눈을 열면 보여요 마음 안에 들어와 앉은 숲처럼 설레이는 사랑 울대마저 꼴깍이게 하는 그대 사랑이 이 한몸 다 녹여가요 사랑해요 가을 숲 그대   꽃에 담아보는 마음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생긴 빈 자리 하나   그 빈 자리에 구절초를 따다 심었다 주옥 같은 꽃 빈 마음 꽉 채워달라고   소금같이 귀한 사랑이였음을 왜 이제야 알게 되는 걸가   사무치는 사랑을 구절초에 담아본다. 별에서 온 사랑   창문 밖 빠끔히 지켜보는 작은 별 하나   작은 마음에 작은 별 하나 심는다   어느새 안기여주는 은은한 향기 한올   톡톡 뛰는 심장이 느끼고 살풋 웃는다   별의 사랑이여.   락화류수   피고 있는 꽃은 설음을 모른다 봄기운에 젖어 열창 할 뿐이다 부서지는 아픔을 겪을 때라야 는개 속을 헤매고 있었음을 느낀다 목청 떨어 웨치고 싶어도 이젠 동동 떠가는 상처부스러기들 뿐   아픔이 강물 덮고 흐른다. /연변일보 
22    중국조선족 시인 방순애 篇 댓글:  조회:687  추천:0  2024-08-23
버드나무 동네(외4수)/방순애 2019년 07월 29일 06시 2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버드나무 동네(외4수)         - 방순애- 산촌 현관문  출석부를 달고 있다 신선 구름 알몸 문 열고 들어간다 가장자리에 앉은 바위 머리가 번뜩이여 산을 빛낸다   달이 웃을 때 그림자 뒷걸음치고 생각 굴리던 별 풀잎에 키스한다   진달래에 햇님 뜨고 퉁소 소리로 촌락은 아침을 입는다 시계바늘 분침 오늘도 백년 전 할배한테 카톡 전한다     가을 연가   엉킨 혈 매듭 강물 타고 졸졸 풀려   초록빛 다림 꾸겨진 마음을 펴고 일천 봉오리 눈에 들어와 점 된다   저 기러기떼 릴레이 경주를 하고 가슴의 불꽃은 하늘로 치솟는다   커피향기        젊은 바다는 보라 커피색의 바다 뱃머리에서 떠오르는 꿈의 파도   언어의 선박 돛을 올려 출항한다   그늘 스친 입술 토기에 입 맞춘다 칠선녀 옷 벗는 소리에 찰랑대는 소천지 차잔에 흘러든다     길 우   환하게 웃는 인터넷 튕겨오는 모니터 정원의 선들 건반 우에 떠있는 짙푸른 호수가에서 련꽃으로 핀다   삿갓 구름은 하늘이 모아온 정액 울컥 눈물이 작동한 하얀 빛 보석 트럭에 구슬 옷을 입히여 소풍하는 대지를 수놓는다   높은 산은 저울추다 기여가는 길과 강을 저울에 달고 련못에 내려와 하늘을 재단한다     황야      웅크린 나무 왕관을 벗어버리고 이끼 낀 바위돌 무지로 달려간다   별무리들 쏟아지는  황혼 사막의 메마른 호양나무들 동천 붉은 땅의 천년 꽃으로 된다   기복을 타는 락타가 백리 언덕을 주름잡는 구름 타고 삼라만상 얼굴에 핀 야청빛 짓눌렸던 광명을 늘군다 /료녕신문 2019년7월23일 발표 =================================================== 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무아의 기저에서 펼치는 환상의 랩들                       방순애 첫하이퍼시집에 부치는 편지                              평론 허창렬(허인)           이모저모 살펴보면서ㅡ      십여년을 문학과는 쭈욱 담을 쌓고 지내오다가 요즘들어 조심스레 살펴본 조선족시단은 말그대로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아직 생소하고 낯선 얼굴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특히 중견시인으로 어엿이 자리매김을 하고서 맹활약중인 김승종 ,김영건 ,조광명 , 한영남 등 시인의 변화는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며 또한 놀라움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란 구경 무엇인가 ? 이 세상 그 누구도 가볍게 단 한마디로 정의(定义)를 내릴수 없는 이 간거한 작업을 그들은 나름대로 소화해냈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 낼수 없는 자신만의 독특한 필치로 한폭ㅡ 또 한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며 립체화며 수묵화를 개성있게 그려내고 있다. 는 말이 있다. 어쩌면 아직도 제 자리매김에 집착하고있는 여러 동우시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지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며칠전 필자는 연길에서 부쳐온 조선족시단의 첫하이퍼시집 방순애시인의 를 읽으면서 또 한번 크나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 언어련금술의 화려한 탈변, 그리고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 과거의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뿌리깊은 관습으로부터 당당하게 해탈을 웨치며 한결 숨결이 자유로와지고 시야가 맑아진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지(境界)ㅡ 겸손이 철철 넘쳐나는 그녀와의 짧은 통화에서 필자는 하고 다시 한번 자신의 지나온 행보를 뒤돌아보지 않을수가 없었으며 늦게나마 새로운 변화를 결심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필자가 알건대 방시인은 시공부를 시작한지 이제겨우 일년이 조금 지난 늦둥이시인이다. 평생을 경찰직에 몸담그고 살아온 그녀가 퇴직후 문학공부를 시작한데는 그녀만의 새로운 이야기가 있다. 책을 내면서 그녀는 머리글에 이렇게 쓰고있다          시란 이미지를 기본으로 하는 표현예술이다. 이미지는 사물성과 회화성을 추구하며 관념을 배척한다. 영국의 비평가 시드니(Sir Philip Sidney, 1554-1586)는‘시를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가르치고 즐겁게 할 목적을 가진 “말하는 그림”(speaking picture)이다.’라고 하였다. 그럼 여기서 알알이 통통 잘 여무른 88수로 엮여진 방순애시인의 금싸락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주옥같은 하이퍼시들을 잠깐 함께 살펴보자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 그리고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지에서 펼치는 환상의 바이브   수천개의 태양이 나무가지사이로 들어온다 태양줄에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 땅구멍마다 숨어있는 진실을 본다   개미가 떡함지무대에서 댄스를 쳐댄다 무대등 달덩이는 가슴을 헤치며 내려오고 베짱이들은 악기들고 연주에 여념이 없는데 엿장수가 지나다 멍하니 보며 중얼거린다   태고의 텅 빈 배속에 희미한 생명의 맥박이 널뛰기하고 시간의 등에 업혀 굴러나온 생명이 따가운 태양을 마주하느라 시물거리는 눈     의 전문이다. 수천개의 태양과 거꾸로 매달려있는 잎새들이 땅구멍의 숨어있는 진실을 살펴보고 있다고 시작된 이 시의 텍스트는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제목이 이지만 마치 한폭의 자연을 무아(无我)와 무의식(无意识) 그대로 그려놓은듯하여 독자들은 대나무숲사이로 수많은 해살이 폭포처럼 쏟아져 들어오느듯한 느낌을 받을수도 있으며 또한 한폭의 생동한 오감도(鸟感图)를 보는듯한 새로운 느낌을 준다. 여기서 다시점(多视点), 다초점(多瞧点)의 역할이 된 수천개의 태양, 개미 , 떡함지 , 댄스 ,달덩이 , 베짱이 , 엿장수 , 악기 , 널뛰기, 시물거리는 눈은 방시인의 숙련된 언어련금술을 통하여 서로 묘하게 새로운 조화를 이루면서 현시대 단순구조적 동화(同化)에 거부와 강한 저항의식이 깔린 다선구조로의 화려한 탈변을 선포하면서 환상적인 바이브와 랩을 펼치고 있다. 이외에도 이 시는 최소한의 상황제시를 하면서 시적 분위기를 나름대로 고조시키려는 작자의 의도가 최소한의 개입이 되여 냉정한 지적 사색과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럼 하이퍼시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서 잠간 하이퍼시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함께 료해하여 보자! ‘하이퍼텍스트 문학’(Hypertext literature)은 하이퍼와 텍스트를 조합한 단어로서 1960년대 컴퓨터 개척자 테드 넬슨(Ted Nelson)이 만든 말이다. 단순구조가 아닌 다선구조시를 일종 하이퍼시라고도 하는데 이에 대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문덕수선생의 해석에 귀를 기울이면 꽤도가 올것같다. 문덕수는 [하이퍼(hyper)란‘과도(过渡)한’, ‘과다(过多)한’, ‘초월하여’, ‘넘어서’,‘3차원보다 높은’등의 의미로서 본래 그리스어에서의 일종의 련결어]라고 밝히면서 이렇게 해석하고있다.     [하이퍼는 본의의 세계에서 유의의 세계로 뛰여넘는(초월해서), 현실세계의 상식을 초과할 때 일컫는 일종의 하이퍼적특징이다. 이 사실을 부정 하는것은 시의 본질적구조자체를 부정하는것과 같다… 더불어 하이퍼시는 ‘’현실세계’’의 경계를 넘어서 불연속성적 균열을 초월하여 ‘’상상세계’’와 연결하는 작시에서 얻어진것이라고 본다… 그리하여 하이퍼시는 초월세계와 연속하려고 하는 정신적, 언어적 운동이라고 할수가 있다.]     무릇 모더니즘이든 포스터니즘이든 레알리즘이든 휴머니즘이든 필자가 알건대 시는 시인의 체험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진술, 전달하는것이 절대로 아니다. 더불어 시인과 독자 사이에는 시적언어라는 매개물이 있으며 이 매개물 역시 의미전달의 구조가 또한 아니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의미형성을 위한 언어구조일뿐이다. 어디까지나“시는 예술이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인정한다면 전통시든 현대시든 또한 하이퍼시든 시는 단순히 시를 통하여 의미를 전달하려 하거나 전달받으려고 하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렇듯 시는 우리의 삶을 새롭게 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삶을 체험하게 하는 언어예술이 되여야 한다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의 하이퍼시를 한수 더 보자   지구가 점을 본다 너무 커서 보면 볼수록 어지럽다 지구가 지레대로 점을 앞으로 민다 요지부동이다 지구가  등으로 점을 굴려본다 꿈적거리는것 같더니 또 굳어버린다   바람이 쇠스랑 들고 은하수를 긁어어본다 표피가 떨어졌다가도 또 새살이 나온다 태양이 은하수를 바줄로 묶어 던진다 뒤로 번져지는 시늉만 하고 다시 원래 자리에 온다   컴퓨터 불이 켜진다 하나하나 또 하나가 켜진다 반짝이들이 세계표면을 덮는다 지구가 들린다 지구가 달린다   전문이다       보다싶이 전례의 자의였던 타의였던 아니면 피의였던간에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오랜 세월동안 주류를 이어온 대아(对我), 자아(自我)의 흔적은 꼬리마저 찾아볼수조차 없고 불교에서 달관의 경지에서나 찾아봄직한 무주(无住) , 무득(无得) , 무소위(无所谓), 무아(无我)의 새로운 경계(境界)에서 작자는 마치 우주와 자연과 자연스럽게 남의 이야기하듯이 녀성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펼쳐진 이 시적화자는 우리들에게 으로부터 시작하여 현대문명의 산물인 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면서 로 현실적인 직시, 미래에 대한 불안정과 또한 불안함과 그러한 갈구, 생명운동을 다차원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 꼼꼼히 살펴보면 누구나 쉽게 알수 있듯이 지구 , 지레대 , 잔등 , 바람 , 쇠스랑이 , 은하수 ,태양 , 바줄 , 컴퓨터ㅡ 등등 달라도 너무 다른 실물들이 이 시에서 직접 만나 방시인의 섬세한 가공을 거쳐 마침내 하이퍼시의 특유의 새로운 개성을 완성해나가면서 시적인 울림, 즉 허다한 공명과 긴 여운을 독자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      재래로 시를 쓴다면 시적계기요 서두요 발전이요 결말이요 조응이요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아야 했다 오늘 시의 현주소도 그런 시가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방순애시인이 쓴 시는 이런 언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 있다. 또 기, 승, 전 ,결이라는 언어로 방시인의 시를 살펴본다는것은 아마 통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방시인의 시는 이런 용어들과는 무관하다.방시인의 시는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라고 함이 타당할것 같다. 이 시집의 시들은 이미지 토막과 토막의 배렬로서 그 토막과 토막들은 시작이자 결말이고 결말이자 시작이라 하겠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것처럼 시작과 끝이 없고 항상 중간뿐이다…       최룡관시인이 평론에서 한 말이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옳바른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너무나도 작은 우리 조선족시단에서 내노라하는 시인들과 평론가들이 많지만 진정 후배양성과 현대시보급에서 서슴없이 자신의 마저 선뜻이 문학도들에게 내여줄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가? 이 점에서 나는 최룡관선배의 로고에 나름대로 큰 긍정을 하고 싶다.  /시간이 우리를 버리고 간다/칼바람이 심장을 찢고 그늘들이 모여 몸의 골수를 빼먹는다/흐르는 피는 왜 저토록 푸른걸가?/바이올린 현줄을 켜면 떠나간 아픔이 다시 와서 신경을 켜댄다/노을이 머리를 빠끔히 내밀며 흩어진 가슴을 몰아세운다/바라보는 한순간 두눈길은 멈추고 얼어붙은 등뼈에서 시린 정이 빠져나간다/메마른 가슴에서 백양나무가 다시 잎사귀를 키울수 있을가?/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문득 가슴이 부푸는 이 시각/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   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는 특히 /어둠 저편에서 빤히 쳐다볼때 진달래 흐드러진 젊은 산이 내게로 와서 옷소매를 잡는다/와 /초록빛하늘을 들이 마신다/라는 이처럼 단단한 긍정어로 부재의 세상속에서 현실적 존재의 충일성을 노래하는것은 부재의 그 아픈 현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극복해나갈수 있는 시인의 강한 힘, 그것은 곧바로 시인의 맘속에 포근한 휴머니즘정신이 자리하고있기때문이 아닐가 생각된다. 따라서 시인의 그러한 휴머니즘정신은 더없이 랭철하고 명석한것이며 또한 자성(自醒)이 밑거름으로 안받침되여있다고도 생각된다. 제목이 이지만 보시다싶이 결말에서는 부푸는 가슴이며 초록색하늘이여서 희망이 보여서 좋다. 이 시 역시 최룡관시인이 말한것처럼 시작도 끝도 없는것이 특징이라면 또한 특징으로 될것도 같다   파란 하늘에 둥둥 달려 있는 커다란 바위우에 번화한 도시가 앉아 있다               >   상아는 검은 색 옷을 입고 호화로운 요트에 앉아 입술에 노래를 담고 있다   멍청한 후렴은 고해의 값을 벌거벗은 자연에 치르고…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깃발을 든다               스님이 되여 앉아 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입은 닫겨있다         이러한 시구들은 방시인이 얼마나 언어련금술을 자유자재로 잘 다루고 있으며 또한 숙련되여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근거라는 생각이 든다. 첫째 보는이의 시각이 다 즐거워지고 둘째 촉각이 스스로 감미로와지고 셋째 미각이 어느새 시원해지는ㅡ더불어 이러한 시구들은 단순구조로부터 다선구조로의 힘찬 도약의 새로운 상징이며 또한 무아의 경지에서 오직 방순애시인만이 마음껏 펼칠수 있는 화려한 바이브이고 환상적인 랩이라고 한마디로 총괄하고싶다. 그럼 여기서 늦게나마 방순애시인이 이처럼 짧은 시간내에 크나 큰 성과를 이루어낸데 대하여 아낌없는 치하의 박수를 보내 드린다.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처리       시에서의 회화성은 추상적 관념을 구체적으로 감각화하여 객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옴니버스(낯설게 하기)기법은 여러개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시의 새로운 구조를 선보이는 하이퍼시창작기법이다. ‘낯설게 하기’는 로만야콥슨 등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사물, 언어, 사건을 충돌하여 낯선 구조와 낯선 의미의 새로운 감각과 미의식을 추구하였던 리론이다. 옴니버스기법은 제목과 내용, 련과 련의 연결고리를 끊어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한다. 즉 낯설게 하기를 최대화하면 구조의 새로움, 의미의 새로움, 감각의 새로움이라는 하퍼시성립조건을 충족시킬수 있기깨문이였다. 그럼 여기서 방순애시인은 폭력적조합과 옴니버스기법을 어떻게 처리하였는가 잠깐 다시 살펴보고 가자     스님이 되여 앉아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 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 마음속에서 지줄대는 이야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무성한 이파리 매달려있는 줄거리들 줄줄 타래진다   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 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입은 닫겨 있다 무거운 입술을 열면 하늘중 심에서 우는 천둥소리 지심까지 들썩인다   작은 귀뿌리는 점점 커진다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 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전문       여기서 1련과 2련ㅡ 그리고 3련은 제각기 생판 다른 세 얼굴이다 , 달라도 서로 너무 다른 불협화음을 조성하는듯하지만(옴니버스기법처리) 마지막련의 제일 끝부분에서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와 절묘하게 어울려 돌아가면서 뜻밖의 아어효과(雅语效果)까지 창출해낸다. 흔히 진펄에 빠진 발걸음이 한결 무겁다로 표현하지만 방시인은 여기서 로 시를 느긋하게 마무리하면서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진펄속에서도 발걸음이 자유로운 바람과 바람을 타고 둥둥 떠가는 마음을 엿볼수 있게끔 한다. 얼핏 보면 상호 모순이 되는 어구이면서도 또한 얼마나 희망적인 메세지를 독자들에게 안겨주고있는가? 이것이 방시인의 놀라운 재치가 아닐가 필자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그럼 여기서 폭력적조합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잠깐 더 살펴보자 . 스님 ㅡ 법글 ㅡ전설 ㅡ 강 ㅡ이파리 ㅡ 구름 ㅡ펜 ㅡ 입술 ㅡ 천둥 ㅡ귀뿌리 ㅡ열쇠 ㅡ진펄ㅡ 어찌면 제법 글깨나 쓴다하는 이름있는 시인들마저도 제대로 잇기가 쉽지 않을것이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든다 . 이렇듯 언어련금술은 아무나 자유자재로 사용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 언어련금술은 제대로 장악한 자들만이 누릴수 있는 특권이기때문이다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 갈대숲은 겨울의 어둠속에서 하얀 불을 지펴 지가 낳은 뿌리를 지킨다    울창한 숲과 새들 그리고 나의 집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달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창백한 손은 이곳에서 떠다니는 거품을 거둬내고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전문      “돌은 하늘이 버렸을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라고 서두를 뗀 이 작품은 마지막 련에서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우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고 마감하고 있다. 이는 자유의 혼이 구속의 쇠사슬을 박차고 아무런 구애없이 천애지각을 나름대로 미화해보려는 시인의 조심스런 양상인것 같다. 또 어딘가 모르게 본능에로 끌려가는 생명의 충동 그대로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제목이나 작중에 등장하는 여러 이미지가 암시해주는것은 과연 무엇일가는 독자마다 견해가 다를수도 있겠으나 이 시는 곱씹을수록 무언의 암시와 그런 색깔이 다분히 짙다고 필자는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총체적으로 방순애시인의 많은 하이퍼시는 한수 한수가 거의 환상적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가 완전무결하다는것은 절대 아니다./손에 들려 호강을 받을때/ 중에서/시베리아 풍차가 /장거리 려행을 떠난다/ 중에서 이러한 시구들은 표현이 너무 단순하고 형상적인 이미지보다 추상적인 이미지가 더욱 짙어 방순애시인의 특유의 시맛을 많이 떨어뜨리고 있다. 또 일부 시편이 주제가 모호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 읽기에 불안한것도 더러 있다. 첫술에 배 부를수는 없다. 아무튼 다시한번 방순애시인이 짧은 시간내에 이룬 성과에 다함없는 성원의 박수갈채를 보낸다   마무리하면서      조선족시단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연변시단이나 북방시단(흑룡강)에 비해 료심시단은 아직도 개간중인 에 불과한것만 같다. 료녕조선문보 문예부간, 심양조선족문학회 기관지라고 할수 있는 잡지에서 가끔 생소한 얼굴들이 때때로 나타나긴 하지만 별로 읽을만한것이 적고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시인이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하는 말이 있다 . 두꺼비 한번 눈섭을 찡그렸다 하여 금방 하늘이 흐려지는것도 아니건만 요즘 많은 사람들은 바른 말 하기를 꺼려하며 또한 너무 회피하려고만 드는것은 아닐가?  혹시 가슴 깊숙히 간직한것이 향긋한 파인애플이 아니라 겉이 속보다 더 싱싱한 한알의 진렬된 사과알처럼 자신의 이미지에 기스라도 갈가봐 너무 전전긍긍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아픈 매가 어쩌면 문인이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촉매제가 되고 필연적인 파스효과가 되지 않을가 ? 그럼 여기서 료심시단 중견시인이라고 할수 있으며 십여년간 심양조선족문학회 회장으로 있다가 지금 다시 료녕조선문보 기자부주임으로 사업하고 있는 김창영시인의 시집 과 을 잠간 살펴보자   산은 나보고 산이 되라 하네 물은 나보고 물이 되라 하네   산앞에 산처럼 물앞에 물처럼   말을 버리네 고개 숙이네   전문   물은 나보고 흐르라고 하고 산은 나보고 거기, 서라고 하네 산속에 물이 흐르고 물속에 산이 있으니 나, 여기 오도 가도 못하고 뜬구름 더불어 바장임이여    김학송시인의 전문     김창영시인은 아마도 도를 딲고 있는상싶다. 시인지 감오문(感悟文)인지 잘 모르겠지만 너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다음ㅡ 장춘식연구원이 김창영시인의 련작시 평론중에 한 말이다.      그럼 여기서 료동문학 호롱불금상 수상자와 대상수상자인 서정순씨와 편도현씨의 근작시도 살펴보자. 본문에서는 이들의 수상작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근작시만을 다루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두며 더불어 아무런 폄하나 저의도 없음을 명백히 밝혀둔다    맨드라미(鸡冠花)     (심양)  서정순   올망졸망 장독대사이로   빠알간 벼슬만 내여놓은   수탉 한마리   사위오면 닭 잡아준다는   집주인 말에   제 먼저 놀라   장독사이에 숨죽이고   간이 달랑   빠끔히 내다보네 .시. 숙명   ㅡ어머니의 83세 생신을 맞으며    (심양)  편도현 그 흔하디 흔했던 밭머리의 흙도 아니였소이다 무너진 돌담밑에 얼기설기 그것도 아니였소이다 바위돌 틈새에 가는 실뿌리 훅€?불면 쓰러질듯 가냘픈 신세 그러나 질기디 질긴 그 힘은 쇠사슬처럼 강파르게 살았소이다 헐벗어 드러난 하얀 속살 눈물겹게 가슴 시린데 바위에 매달려 안간힘 쓰며 여린 새싹들을 키우는 크나큰 사랑 어설픈 삶 시작할 때 이른봄 서리찬 새벽하늘은 그리도 차거웠고 밤하늘에 우뢰 울고 비바람도 사나웠소이다 걸음걸음 피눈물 나도록 세상살이 너무도 고달팠소이다 밤이나 낮이나 따로없이 푸름을 이고지고 보듬으며 언제나 분주했던 그 세월 몸에 푹 배인 그 땀이 이슬되여 축축이 젖어왔소이다 그렇소이다 모진 세파 그속에서 죽을 힘을 다하여 살아왔소이다 한잎 두잎 푸름을 받들며 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이 두편의 시 모두가 작년에 료녕조선문보
21    중국조선족 시인 최화길 篇 댓글:  조회:664  추천:0  2024-08-23
아버지(외 9수)/최화길 2021년 12월 30일 10시 32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 - 비소리(외 9수) ▣ 시 / 최화길   아버지(외 9수)       칭송에는 쪽걸상 신세지만   자식 사랑엔 암장입니다       매끄러운 성격이 아니여서   호랑이라 불리우신 우리 아버지       평생 그 독한 배갈 맛을 즐기며   줄담배로 근심은 혼자 태웠습니다        머리 한번 살갑게 쓸어주지 않았어도   깊은 속으로 우려주신 진한 차향기        내 머리 희기 전까지 까맣게 몰랐던   입이 비뚤어지게 쓴 맛이 다가섭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름 활 터시고 가셨지만   당신이 오르셨던 산마루엔 노을이 곱게 비꼈습니다       어머니        내가 울면 어머니는 아프셨습니다   내가 아프면 어머니는 우셨습니다       어머니는 자기 품을 나에게 다 내주셨습니다   내가 그 품을 떠나면서 비여버린 항아리        나의 체온 고이 간직한 그 품에서   된장은 숙성하고 김치는 익고…        머나먼 타향으로 엄마 체온은   한치의 차이 없이 송달되였습니다        아직도 철부지여서 무릎을 내주시는   자장가의 멜로디에 파도가 일렁입니다       불러도 대답 없는 하얀 메아리지만    내 가슴의 온돌은 아직도 따뜻합니다        아, 아 당신에게서 하늘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원천, 땅도 알았습니다        안해       나의 선택 존중하고 아껴준 사람    살다보면 험한 꼴도 보여주었건만   약점까지 껴안은 무던한 사람        꽃 한송이 안겨주는 랑만조차 모르는   무뚝뚝한 어둠에도 밝게 웃을 줄 아는   세상에 이런 녀자 또 있을지 의심 드는 사람       ‘큰 애기’라 이르는 소박한 롱담에는   생명을 잉태하는 무궁한 크기 만큼    세상 끝까지 가도 다는 알 수 없는 사람        빛은 올올이 볼 수 없어도 밝고   공기는 만질 수 없어도 떠나서는 못사는      없는 듯 숨쉬는 생명의 기원이라 이르옵니다       남편        어느 한 위대한 녀성이 점지하여 얻은    평생 싫지 않은 자랑스러운 칭호       땡볕이 지지면 양산이 되고   폭우가 찌르면 우산이 되는 일        아홉을 주고도 주지 못한 하나로   평생 가슴 앓아야 하는 숙명        스스로 원하기에 원했기에    몸과 마음 다 태우는 피빛 노을이다        아들       사람들은 나와 판박이라 말하는데   성질머리 하난 나의 적수인 듯하다    사춘기 때는 내가 동을 가르키면    기어이 서쪽으로 빠지곤 했다        내가 자랄 때도 아버지와 저렇게 맞섰는지?   자신을 검토해도 답안이 없던 허허벌판         장가 가서 자식 하나 생기더니   어딘가 내 눈치 얼마간 아는 듯하다        아버지대 아버지라야 공언이 있는 건지?   아들이 알아줄가 하니 나는 할아버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들 키울 때보다   손주놈 키우는 재미 더 쏠쏠한 건…        이왕지사 어찌 됐든    래일의 배심 하나 두둑하다        며느리        나하고는 말도 잘 안 섞는   뚝뚝한 아들놈의 최고 선물       어쩜 아들놈이 타고 난 결함    미봉하려 우리 집에 온 천사        묘하게도 아들한테서 받은 서운함    비자루 챙겨들고 깨끗하게 청소한다       딱히 고운 데 없이 곱기만 하고    별로 신경 안 쓰는데 주고만 싶다       너로 하여 아들은 더는 무릎 아래 아니지만    너로 하여 아들을 빼앗긴 듯하기도 한데        그래도 그냥 벙글써 좋게만 생각되는 나   며느리 앞에서는 항상 바보상이 아닌지?       그럼에도 시름이 다 가셔진 듯    구름 한점 없는 하늘처럼 청정하다        딸        엄마 곱니? 아빠 곱니?   하는 동네분들 물음에       똑 부러지게    “아빠 더 곱다”고 대답한 딸이다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나는 아들의 눈에 난 딸바보       시집가던 날 끝내 참지 못하고   어느 모퉁이서 엉엉 방성한 딸바보       사위를 질투할 만큼 어리석은 딸바보   사위를 하늘 높이 받쳐올린다       내가 고와하는 절반이라도    우리 딸 고와해라고 공연히 설친다         평생 퇴직 없는 행복한 직업    살뜰한 딸 가진 아버지!        사위       오직 존중할 수밖에 없는    우리 딸의 자아 선택        기대 이상으로 나보다 더    살가운 놈 낚아올렸어요        밉다고 보자 해도 미워지지 않는   피 한방울 섞지 않은 자식       하기에 내 앞에서 남편 질책할 때면   은근히 사위편이 되는 못난 장인        속심이야 콩밭에 두고 있지만    남자의 자존은 구길 수 없는 일        남자 대 남자로 짝꿍이 되여   술 한잔 나누어도 편해서 좋다        손군       내 성씨 타고 난 손군은    밉게 놀아도 고운데    사위 성씨 타고 난 손군은    곱게 놀아야 곱다       물론 겉으로 보건대는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두 손군 데리고 밖에 나가면    오른쪽에 친손군 왼쪽에 외손군        애들에겐 꼭 같은 할아버진데   어쩜 그렇게 유치할 수 있냐구요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옵니다    내 마음이 깜쪽같이 나를 속여요       그렇다고 딸도 서운할 일은 아닌 것 같아   딸 시집 보내고 아들 장가 들어    할머니로 되는 그 날이면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진 않을 거니깐!        선생님        엄마의 회초리 이어받으신   피를 섞지 않은 ‘엄마’   사랑 깊이 감추는 지혜로        비뚤게 쓴 글씨 바로 잡아주시고   넘어진 연유 차근차근 풀어주시며   심지에 불을 달아 어둠을 밝혔습니다        래일을 살자면 날개가 필요하다며   자신이 아끼던 깃털마저 내게 주시고   내 몸에서 돋는 날개에 꽃을 피웠습니다        내 생애에 숨어 사는 꺼지지 않는 등불    파도에 기우뚱거릴 때마다 손잡으시는    당신은 나의 인생과 함께 약동하고 있습니다 《도라지》2021년 2기  (계정)
20    중국조선족 시인 허옥진 篇 댓글:  조회:889  추천:0  2024-08-23
[시] 얼굴 (외 7수) ♦허옥진 2021년 05월 24일 09시 46분  작성자: 문학닷컴 ►얼굴   허옥진   시작도 끝도 없이 생겨나는 즙의 맛으로 우리는 맛의 빙점에 와있다   착즙기의 즙은 흘러넘치고 나는 당신의 빈방의 열쇠를 갖고 있다   당신은 끝없이 흘러내리고 이젠 나는 각종 맛을 인내할 수 있는  강아지의 여유로운 혀로 당신을 맘대로 핥아낼 수가 있다.   방의 축음기는 돌아가고   이 슬리퍼는 참으로 오래된 것인데   나는 슬리퍼를 벗어내치고 물이 떨어지는 수도꼭지를 닫는다   아,  멈출 수가 없어요 전 겨울이 싫어요 절 멈추게 한 지혜는 저  창밖에서   탕후루糖葫芦 파는 늙은이의 호주머니에 있어요   나는 장농 안에서 그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본다   밖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요 저의 빛의 부스레기들을 저 새들이 쪼아간 지 오래돼요 아, 병치된 언저리에 피여나는 해바라기, 해바라기 명도明度에 잘린 해바라기 속 해바라기   여전히 축음기는 돌아가고 나는 담배를 피워문다   절 태우지 말아주세요 저의 령혼을 흡입하면 당신은 나의 령혼 속에 살게 될 거예요   빈방에서 당신의 냄새로 가득한 빈 침대에서    나는 길게 누워 잠재울 수 없는  당신을 손가락으로 다독이며 당신의 카텐을 내리우고 다시 일어나서  랭수 한컵 들이켜고....   2019. 12. 4     ►해바라기   허옥진   나를 따르는 그림자가 있지 자주 이런 꿈을 꾸게 돼 이건 요람이야 외마디 부르짖고 한층 기여 오르고 아니 이 분지는 넘 고요하고  스스로 분출될 우려를 갖고 있기도 해   꽉 껴안은 이 팔은 넝쿨같기도 하고 그 창턱을 기억해? 스스로 기어 오르다  꽃이 피고 지었던 질긴 틈  말라간 사이로 이빨이 생겼던 게야 지칠 줄 모르고 까고까고 까고   이 분수는 분출을 멈추지 않아 텅 비였던 광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이건 피난이야 비비고 들어선 건 너의 앞니였지   미소한 전률은 송수신되지 못한 수집된 기록일 뿐이야   오래 동안 광장은 넓고 외다리로 길어져 목 떨구고  하루종일 침묵을 보이고 고드름이  길게 발 아래로 내려가  길고 긴 엿의 맛을 내지   책 속의 이야기는 우리한테 혼란을 가져와 가방 속에 한줌 넣고 가 까고 까고 까고 공연히 방향판 속에 헛돌게 해   난 이 화판우의 그림을 찢고  다시 그려야 해   까맣게 타들어간  어두운 한줄기 둥 뜬 표정   2020. 3. 17     ►신발   허옥진   신발을 바꿔 신고 사시斜视의 방향으로 가 보았습니다 어긋났던 발걸음들이 기러기가 되여 한일자로 날고 있었습니다 벌어졌던 입을 모으는 순간이였습니다   내 안으로 후두둑 새떼들이 지퍼처럼 날아들며 우짖고 있었습니다   저리도 긴 세기의 줄을 흔들 수 있었을가 허나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고여서 흐르는 먼 길의 진물들은  온몸을 화끈화끈 지지고 있었습니다 뼈의 락인이 된 아집들은 단단한 거였습니다   골수에 닿아 전파된  배와 노의 옆에는 노란 여우의 노린내가 십킬로메터를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코와 신발이 맞닿는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신, 그래도 그런 롱담이 좋은 거였습니다 슬그머니 밑바닥부터 꽉 껴안는 그런 느낌이    반쪽의 이야기는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난 반쪽이 됐습니다 더 높아질 수 없다면 땅이 높아지길 바랬습니다   작은 것이 좋다는 건 페허가 된 육중한 몸뚱이에서 처음 느꼈습니다   키의 축소판이 된 발자욱은 평생을 따라왔습니다 발가락은 여섯개의 혐의를 버리고 신발 안에서 꽁꽁 고부린 채 옹송그린 발톱의 넓다란 기슭을 허비고 있었습니다   얘야 더 판다면 쥐굴이란다 그럼  대신 새줄을 내려주세요   수많은 발가락들의 피아노 소리가 신발 안에서 울려나왔습니다 발가락들 발레가 시작되는 오후였습니다   2020. 1. 24     ►빨래    허옥진   우리들의 교는 씻겨지는 것이지요 수많은 옷들이 쌓여지고 있어요 보디가드 같은  단추들을 벗어난 일상들은 헐렁해져 있습니다 버티던 관절들은 사라지고 경직된 울타리들을 벗어난  하염없이 연연한 그리움 같습니다   우리가 씻길 수 있는 것은 단추와 같은 당신과 단추구멍 같은 내가 서로를 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잠은 깊습니다   때 먼지 속에 사라져간 아이가 있어요 꾀죄죄한 그 아이는 먼지처럼 작아졌지요 공기 속에 존재하고 있는 그 아이는  유령 같은 존재였습니다 익힌 발음 하나 구명의처럼 떠가고 있어요 비누물이 구름처럼 내 주위를 감싸죠.   오늘도 비눗물의 세례로 아침을 시작하지요 한알 두알 사탕처럼 모아둔 것들 녹고 있어요 발밑에도 흰 구름이 떠 있군요 우리는 거품처럼 사라지는 건가요   정오의 빛이  마술사의 금박 지팡이가 될 때까지 솟구치는 분수는 정수리 뒤에서 날개 가진 천사로 착각하게 만들죠   먹먹하게 그리움에 말리워 들어가면 또 한층 색 바래여 나와서는  우리는 건조증으로   가려움에 불타다가 또다시 씻겨지는 겁니다   말쑥한 세상에서 우리의 외로움은 때묻지않은 것이였습니다   2019. 10. 24     ►울타리   허옥진   륵골을 들어올려 우리는 가출하는 당신을  기러기, 해당화, 민들레, 맨드라미, 개똥벌레, 참나리로 한데 묶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흔들리는 풍경입니다   흐르려는 당신을 우리는 고요히 품어줘야 합니다   응고된 고집은  반맹증의 의혹을 갖게 할 테지만 다시 겹쓰기를 한다 해도 우리는 고집할 것입니다   몇번 흔들렸지만 박힌 교훈으로 더 든든해진 우리는 어깨 결은 사이좋은 자매입니다   이음새에 피는 벚꽃은 당신의 필사본에 늘어나지 않는 저금통장에 당신이 구겨서 던진 에이포용지에 송이송이 무럭무럭 핍니다   늘 순간에 멈춰서서 버텨내는 지정학적 교훈은 거세당한 척박한 땅에서 기름진 꿈입니다   우리는 개연성 근원의 모서리에서 탄생한 것 같은 자아 환각에 빠졌나 봅니다   한번 쯤 당신을 껴안고 왈쯔라도 신나게 춘다면 와인과도 같은 이 밤은  우리의 등을 너무나 어둡게 지지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는 늘 한자리에 멈춰있는데 당신이든 나든 몰락의 순간에  서로를 버텨낼 수 있는 끈끈함입니다     ►모래   이 세상을 가장 깊이 알게 된 후로 우리 가슴 한켠에 모래가 쌓이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한껏 불고 난 후로 움켜쥔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한줌의 모래 만큼이나 우리는 서로가 모래임을 쑥스럽게 생각했다 흙에 묻힌 얼굴을 씻고 볼 일이다 기대려 하던 바보스러움과 서로가 상대방에게 스며들 수 없는 존재란 걸 알게 된 후로 우리는 서걱이는 몸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는 갈증에 타는 목으로 사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였다 하나의 군체로 모임이 필요했을 뿐 더 이상 풀을 재래울 수 있는 흙인 척 꾸미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우리는 더는 씻을 필요 없는 얼굴이.되였다. 탁자에서 굴러내리는 콩알 만큼 불어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한 후로  불어서 터져죽을 사랑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의 젖은 바지가랭이에 묻어가는 우리일진 모르지만  말라서 털리우면 우리는 또  완전한 개체임을  수시로 깨쳐야만 했다 불도를 얻으러갔던 약속이란 단어마저  지우기로 했다. 해변가의 모래성답게 없는 것을 굳이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자尺안에 들어갈 만큼 큰 존재가 아니므로, 모래일 뿐이므로 한없이 바다가 그리웠다.   해빛 속에 반짝이고  물속에 부드러워지는  우리는 우리 대로의 고요함을 깨치기 위한 것일 뿐 황사마저도 바다로 가기 위한 몸부림인 것을 알았다 바다를 잉태하기 위한 련어의 억센 거스르기임을 알았다  모래 만큼이나 개인주의자의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것이 종내는 맑아지는 것임을 알았다     ►꿈에 대하여                                     그것은 불타버린 여름의 내장 주체못 할 가을비의 설사 동면의 깊은 곬으로 흘러 나오는 빛의 여울 푸르름으로 늘어 가는 흙의 사설 지평의 혼솔기를 마선질 하는 분침의 재봉틀 흑색의 칠판위에 하얗게 움트는 아지랑이들 비닐안의 끝없는 속삭임으로 눈 뜨는 부풀림 신용을 어긴 신용 불랑자의 낙언 벼락을 향해 솟구치는 피뢰침 백만광년의 집착으로 시공을 뚫는 별의 송곳 수거함에 분리되는 계절의 배설물들로 알찬 열매들 그것은 초원, 뭉게구름 노트북, 일기장..... 무수한 변신을 꿈꾸는 너와 나  그런 우리들.. .  한곳에 모여 함께 광장의 꿈에 대해 이야기 하네 함께 노래하네 합창의 우렁참은 극단의 기둥을 타고 높은 지붕을 떠이고 불멸의 흐름을 예언하지 1234567 도레미파쏠라시 솜사탕처럼 늘어져야 지 풀무가 돌아가는 한 우리의  부피 뜯어간다 그래도 우리는 달디단 맛          2018. 7. 23 9시     ►진눈까비의 복허수에 대하여    너에게로 날아든다 새나 나비처럼 근대성 가까이  어둡게 너한테 침몰 되는 중 나는 나라고 말 할 수 없어 사라지기 위해 네가 나를 위한 생리대는  일년에 두번쯤은 족 해   복식의 방안으로  복허수复虚数의 실수는 나의 이중성을 떠나는 첫번째 계절이 되였다   자기 카드에 인출된 수량만큼 형태소形态素를 나타냈을 뿐 너의 류배지에서  채 해동되지 못한 표절된 허두가 나의 첫 음성으로  너에게로 반환되여 사라지는 중   설맹雪盲으로 지양 되지 못한 여백에 공명으로 슴슴해 진 언어의 혈액형들 더는 낭설로 너의 밑바닥까지 적시진 않아   잠언으로 환원되지 못한 계절의 쪼각들 환절의 어설픈 주성走性으로  너에 향한 회귀성은  겨울을 견딜 수 있는  푸르른 땅에 대한 그리움으로 될 수 있었다 [허옥진 략력]   화룡시 출생 연변작가협회 리사   수상경력: 제1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2017년 연변문학 문학상 수상 중국 조선족 청년작가 수필 우수상 두만강 여울소리 시 우수상 수상  
19    중국조선족 시인 류춘옥 篇 댓글:  조회:693  추천:0  2024-08-23
'도쿄의 조선족'(외 4수)/류춘옥 /한영남 시평 2021년 09월 23일 10시 33분  작성자: 문학닷컴 한영남 시평 :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류춘옥(柳春玉) 약력: 1978년 흑룡강성 녕안시 출생. 1998년 중국정법대학 수료. 2000년부터 일본 거주. 현재 일본 옥룡상사주식회사 전무 이사. (사)재일본조선족작가협회 사무국장.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다수 발표. 길림신문 수기상, ‘애심녀성컵’ 제4회 전국조선족여성 생활수기상, ‘청년생활’ 계림문화상 등 다수 수상. 도쿄의 조선족    나는 일본에 산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꼽히는 아침의 나라 기모노를 입고 늘 생글거리는 미소가 하얀 백목련으로 아름다운 나라 이곳에서 나는 그 유명한 긴자거리를 옆집 쌍가매네집 놀러 가듯 동네돌이처럼 한다 초밥을 먹고 아사히를 마시며 사시미에 심취되기도 하지만 대화를 할라치면 발음부터 꼬인다 악센트에서 여지없이 드러나는 나는 이방인 어쩔 수 없는 이방인 당신 재팬? 아니요! 차이나? 아니요! 나는 재일 조선족입니다 조선족? 코리아?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나는 말입니다 중국 조선족입니다! 동그란 도쿄에서 도쿄가 세상 전부인 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도쿄의 유산 2020년 5월 29일 효고켄 타카라즈카시는 뉴스를 발표했다 효고켄 타카라즈카 시립병원에서 최후를 마감하신 90대 할머니께서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하셨다고 했다 새로운 의료기기들을 구입해 더 많은 환자들한테 삶의 희망을 안겨주라는 따뜻한 말씀을 얹어서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도쿄의 터널 어느 별에서 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지요 오 나의 도쿄 네모 반듯한 미소만 넘치는 곳 칼로 자르듯 거절하지 않는 곳 누군가에게는 천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겠지요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아무도 물어주지 않아요 오 나의 도쿄 나의 항구 하소연은 귀등으로 스치네요 누군가에게는 사랑이 꽃피는 거리 누군가에게는 가족마저 잃어야 하는 곳 가을도 아닌데 해살만 눈부시고 겨울도 아닌데 찬바람이 부는 곳 죽음과 환생의 갈림길을 수없이 오가며 방황이 반칙으로 결론나는 곳 오 도쿄 오 나의 도쿄 나의 청춘의 터널이여   도쿄의 텃새 도쿄의 까마귀는 길조도 흉조도 아니고 그냥 텃새라 부른다 도쿄의 아침은 그 까악까악 소리에 열리고 이 텃새들은 까만 눈이 아닌 냄새로 먹이를 찾아헤맨다 그물을 덮어 길바닥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통을 덮치는 도심 속 무법자들 어둠이 춤 출 때에야 비로소 시큼한 입을 다시며 시커먼 하늘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도쿄는 매일마다 먹이를 찾아헤매는 텃새들의 보금자리이고 아침마다 잠 깨우는 까마귀 까마귀 남편과 새끼들을 먹이겠노라 아침부터 주방에서 분주한 나도 도쿄의 한 마리 텃새일가 이름만이라도 철새라 불리웠으면 언젠가 고향 돌아갈 아아 그 이름 철새 철새   도쿄의 파티 요즘 도쿄의 파티에는 맥주도 없고 와인도 없다 그 흔하디 흔한 신선한 사시미도 없고  꿀처럼 달달한 디저트도 없다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물 한모금 없이 목만 타들어간다 지난 해 바닥을 치던 무우값처럼 초대장 가격이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올해 하늘을 찌르던 마스크값처럼 초대받은 손님들의 생활이 활짝 피여난 것도 아니겠는데 봉투의 무게는 변함없고 어쩐지 선거권 한표가 늘 모자란 도쿄의 어눌한 파티   문학비평 재팬 드림 그 실상과 허상에 대한 고발 및 디아스포라의 애환 ㅡ 류춘옥시인의 도쿄시 시리즈에 부쳐    한영남   한영남 약력 : 한영남 1967년 길림성 안도 출생. 시, 소설, 수필, 실화, 평론 등 300여만자 발표. 소설집 , 장시집 등 출간. 중국조선족수필상, 중국조선족동시상, 중국조선족연해문학상, 연변일보 제일제당상, 흑룡강신문 랑시문학상,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도라지 장락주문학상, 흑룡강성소수민족문학상, 연변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등 다수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흑룡강성작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자유기고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이 있다. 아메라칸 드림(Amrican Dream)이라는 이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James Truslow Adams라는 작가가 쓴 『Epic of America(미국의 서사시)』(1931)라는 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배경은 20세기 초 미국의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열심히만 일하면 삶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결국 미국이민의 꿈으로 연결이 되었고 한국에서는 꿈을 지향하는 용어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일본 땅을 밟은 중국의 조선족들 역시 재팬 드림을 꿈꾸었고 아직 일본을 모를 때 그들에게 도쿄는 천당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 교육에만 물 젖어 있던 그들에게 자본주의 세계는 냉혹하기 그지없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혹자는 눈물을 삼키며 혹자는 침을 뱉으며 혹자는 엿을 먹이며 정이 들까 말까 하는 꿈의 천당을 떠나야 했다. 그들에게는 자본주의 생리만을 고집하는 재팬이 인정머리 없는 고장이었고 다시 뒤돌아보고도 싶지 않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다수의 성실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참고 이겨내면서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했고 2세 3세를 낳아 키우면서 그들만의 삶의 신조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라고 손쉽게 그런 생활의 기반을 마련했을 리는 만무할 것이다. 그들도 새로운 환경, 새로운 풍토, 새로운 인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통스러워하며 눈물을 깨물어 삼키며 비로소 오늘의 생활을 가꾸어온 것이리라. 그리고 그들은 일본에 사는, 아니 도쿄에 사는 조선족으로서의 당당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중국조선족들이 일본에서의 생활을 소설로, 수필로, 실화로, 기행문으로 적어왔지만 시문학으로, 그것도 를 꺼내들고 세상에 이름을 알려온 이는 일찍 없었다. 그 경이로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낸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작품의 호불호를 떠나서 라는 타이틀만 가지고도 벌써 류춘옥 시인이 성공한 시인이 아닐까 미루어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도쿄시 시리즈 창작을 먼발치에서 지켜본 1인으로서 이 시리즈에는 일본에서 재팬 드림을 위해 엎어지며 뒹굴며 몸부림쳐온 조선족들의 삶의 모습이 적라라하게 투영되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구체적인 시작품에서 더욱 소상하게 밝히겠거니와 이와 같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시작품의 완성만을 위해 오롯이 제3자의 각도에서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스스로 벌거벗고 세상의 수술대위에 오르는 행위에 다름 아니며 자신과 자기 주변 지인들의 아픈 상처에 메스를 들이대는 행위에 다름 아닐 것인 까닭이다. 어쨌거나 그 어려운 작업을 류춘옥 시인은 해냈고 그것이 이제 라는 타이틀로 우리 앞에 성큼 와주었다. 구체 작품을 같이 읽어보도록 하자. 시 은 제목 자체부터 포장 따위를 걷어내고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족들한테 앵글을 맞추고 있다. 그들은 그런가 하면 를 입고 을 먹으며 를 마시고 에 심취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일본인이 다 되어버린 듯 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그러나 발음을 들어보면 어김없는 이방인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을 받는다. 일본인, 한국인으로 오해를 받을 때마다 반발처럼 치켜드는 것이 바로 라는 말이다. 못살고 낙후할망정 그것은 를 낳아 키워준 조국이요 고향인 까닭이다. 독자들은 시줄에 이끌려 이 대목까지 이르러서는 저도 모르게 뭉클해내는 심정이 되어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반성해보게 된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숨김없이 까발린다. 도쿄가 세상 전부인듯이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알 수가 없으리라 중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는 내 형제들을 한반도에서 북만주로 갔다가 이제 개혁개방으로 일본까지 건너와 이렇게 오겡끼데스까를 중얼거리는 내가 중국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김치를 좋아하는 내 아이들이 때로는 아리랑을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ㅡ 시 에서 재팬들의 포위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중국 조선족임을 밝히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눈물겹도록 자랑스럽다. 가난하고 헐벗었다고 어머니가 아닐 수 없듯이 시인에게 있어 낙후하다고 해서 조국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거기에 이 시의 핵이 묻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핵은 폭발하면서 독자들한테 엄청난 파장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시 을 보기로 하자. 시에서는 뉴스를 생방송하고 있다. 뉴스를 발표하는 연 월 일을 구체적으로 밝힘으로써 신빙성을 부여하고 뉴스시의 정의에 충실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이 뉴스시에 대해 일부 시인들은 사건에만 치중하면서 뉴스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을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류춘옥 시인은 뉴스시의 생명인 정확성을 확보해줌으로써 독자들의 믿음을 견인해내고 그로부터 독자와의 소통에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다. 90대 할머니가 3580만엔을 병원에 기부했다는 뉴스가 전부의 내용이다. 여기서도 구체적인 숫자를 그대로 노출시킴으로써 신빙성과 정확성을 동시에 획득하고 있다. 일본에 등 돌려버린 사람들한테도 따끔한 일침이 될 수 있는 시이다. 왜냐면 자본주의 사회가 냉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거기에도 인정이 있고 가슴 따스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는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또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지극히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봤음을 증명해보인 셈이기도 하다. 시의 말미를 같이 보기로 하자. 90여 년의 긴 려정을 마치면서 소담한 꽃노을로 하늘 한 자락 곱게 물들이신 할머니 그날 락조는 무지개보다 아름다웠다 ㅡ 시 에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인정이 넘치고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그리하여 이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굵고 큰 목소리가 아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로 소곤거리고 있는 것이다. 시 을 같이 걸어가 보기로 하자. 이 시야말로 도쿄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인식과 이해를 냉철하게 객관화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시인은 이라는 간결한 시구로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들에 대한 총적인 인상을 집약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 수 있는 일본 도쿄는 왜 시적 화자한테 이며 로 자리매김 되고 있을까. 그것은 청춘의 한 토막을 일본에서 생활의 지반을 닦기 위해 바쳐온 시인의 인생 경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는 일본에서 살아본 조선족이라면 혹은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쉽게 공감이 갈 수 있을 것이다. 시에서는 이라는 재미나는 표현을 만날 수 있다. 방황이 반칙이라면 그럼 반칙을 하지 말라는, 못한다는 말로 풀이되겠는데 그것은 어떤 상황이란 말인가? 그럴 것이다.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없이 겪었을 법한 생활이고 이유 불문하고 따라야 했던 무가내한 일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시인은 더없이 냉철, 냉정 지어 냉혹하리만치 사정을 두지 않고 꼬집는다. 시에는 이와 같은 발상들이 숨어 있어야 시가 시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 를 구경해보자. 드디어 우리한테도 익숙한 새가 등장한다. 그런데 하필 까마귀이다. 우리는 대체로 까마귀를 보면 재수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까마귀야말로 효조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까마귀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그렇다면 시인의 눈에 비친 도쿄의 까마귀는 어떤 모습일까. 무법자들이다. 그리고 까마귀들이 번창하면서 다른 새들은 다 쫓겨버린 셈이고 그리하여 까마귀는 텃새로 군림한다. 그렇다면 는 어떤가. 나 역시 한 마리 에 불과한 것이다. 이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시가 끝나도 괜찮은 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인은 한 번 잡은 시상을 절대 허투루 놓치지 않는다. 결국 시인은 까마귀에서 라는 낱말을 떠올리고 이라는 낱말을 길어올리고 있다. 까마귀가 새삼스레 뭉클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시는 시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코로나사태가 터진 다음 창작된 것으로 헤아려진다. 는 파티라니? 왜 그런 황당한 일이 생겨야 하는 것일까. 황량한 들판에서 말라가는 갈대처럼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누렇게 부스럭거리는  가을 국화들의 모임처럼 ㅡ 시 에서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파티는 스산하기 짝이 없다. 현실고발형의 시는 아무래도 가슴 아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현실을 백안시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시인이다. 그런 현실을 폭로 비판해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는 코로나시대의 한 단면을 파티라는 특정 모임을 빌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에서는 이나 등의 말들로 현장감을 긴장시키고 있으며 등의 시구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할수무가내한 삶의 측면에도 렌즈를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이상 류춘옥 시인의 를 살펴보았다. 긍정적인 것은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가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도쿄에서의 조선족들의 삶에 서치라이트를 켜댈지 모르지만 라는 타이틀을 처음 내건 시인이라는 점과 시들이 점차 성숙되고 완숙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는 것이다. 이는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가 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코리안 드림, 아메리칸 드림, 재팬 드림 등 꿈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는 이들에게도 무척 고무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해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류춘옥 시인의 도쿄시 시리즈는 미래지향적이며 건전한 시행보가 될 것이라고 믿어본다. 좋은 시를 써준 시인에게 박수를 보내며 시인의 보다 성숙된 도쿄시를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2021년 8월 할빈에서
18    중국조선족 시인 김선희 篇 댓글:  조회:699  추천:0  2024-08-23
가을앓이(외 6수)/ 김선희(윤형) /평론 두편 2021년 10월 29일 09시 00분  작성자: 문학닷컴   ►가을앓이     윤형  (김선희)   더이상 청운의 빛을 더듬지마라 몸살을 앓는 꽃들의 빛깔만으로는  생의 진수를 가늠할수없기에 달빛의 밋밋한 숨결을 받아들여야지 바람에 흩어지는 숲의 아우성처럼 뿌리 내리지못한 잎새들의 비명이 무너지고나면 옹이를 품은 천년송목*에도 피빛 저녁노을이 물살져오더라 그 차분하면서도 벅찬 윤슬앞에 나는 늘 가슴 텅 빈 죄인이 된다 육신에 스며드는 푸른 어둠이다가 만개한 빛자락의 여백이다가 가을은 천상의 향기를 남겨놓은채 저문 들녘의 침묵속으로 휘영휘영 나를 끌고 가는구나   달이 기우는것을 탓하지마라   * 송목 = 松木明子     ►채워도 채워지지않는것    세상의 한끝이다 허상들만 가득찬 도시의 언저리에 피빛을 태우다 남은 노을이 진다 붐비는 인파속에서도 날개안으로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도시의 자세를 스케치해본다 이방인에게 쉽게 허락하지않는 하늘과 땅속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길이 열릴것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다보면 꿈을 향한 구멍들은 열릴수있을가 색이 바랜 달이 뜰때쯤 작은 부끄러움마저 여미고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싶지만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없다   채워도 채워지지않는 가슴 빈자리     ► 락화의 흔적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지축을 울리며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 마지막 울음마저 토해버린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 한바탕 소나기 지나고나면 날개잃은 새들처럼 꽃이 추락한다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을 가슴 깊이에까지 끌어모아 품은것 이상으로 생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앞에 무슨 말이 위로가 될가 락하하는 순간 탈바꿈하며 한톨의 씨앗이되어 탄생을 알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여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시린 가슴으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뭉클해지는 엄마의 살내음이 뿌리 깊은 숨결로 꽃을 피우고있었네 울다 지는 부상화(扶桑花)꽃잎처럼 굽이굽이 차오르는 여러겹의 빛깔사이 그대의 능선을 딛고  그대의 강을 넘어  억겹으로 요동치는 생의 빛살이 내게로 전해지고있었네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는 내렸네 싸리문 너머로 멈추듯 흐르던  부드러운 샘이  바위끝 심장을 뚫고있었네 빛 고운  엄마의 치마자락이 천상의 날개를 펼치고있었네     ►돌의 아리아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영겁의 시간 몸 속 응어리는 슬픈 구멍으로 뚫리고 가장 먼곳으로부터 달려와 반겨주던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있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수없는 육신은 담벼락 기여드는 잎새처럼 한잎 두잎 석화들이 모여 작은 위로를 주지만 그것 또한 옛노래처럼 흘러갈듯 아파도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슬퍼도 가랑비는 내리지 않습니다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 고개를 쑤욱 쳐들고싶지만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 인과율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채 만추 끝자락에 촛대바위로  멈춰섰습니다   찌든 내 껍질은 어둠의 뿌리에 헝클어지고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  오늘도 가난한 뻐구기는 울다갑니다     ►석류   유리창 너머로  석류가 아프게 매달려있다 몇오리 바람이 찾아와 무어라 귀엣말 전해주듯 찌르륵 찌르륵 어디선가  풀벌레소리 땅을 울리고있다 떨어지면  금새 눈물날것만 같아   유리창 밖 ! 우주를 손바닥에 내려놓은 잎새 하나 햇살이 감겨들며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황칠나무     태줄 묻어  몸의 조각들을 어둠속에 깔아놓았습니다 얽혀있는 매듭들을  노오란 수액으로  한올씩 풀어내며 버려야할 세상 찌꺼기들을 걸러냈습니다    천혜의 숨결이 닿는곳에 여울치는 물살에 씻기다 주상절리의 넉두리에 귀를 잃다 세상의 빛에 뿌리를 내린다지요   나무잎 흔들릴때 천년의 달은 어둠을 더듬어 지상에서 가장 령롱한 열매를 맺습니다   꽃은 꽃으로만 피지않고 나무는 바람에게 길을 묻지않습니다. 김선희 프로필   연변작가협회 회원.연변시인협회 회원 시 《비》중국조선족명시집에 수록.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 참석. 시집 《석빙화》출간 아래 김선희 시에 대한 두편의 평론을 게재한다.   ▣ 비평 / 우상렬 생명, 혈연, 현대성 찍고―     윤형(김선희)의 근작시를 몇수 읊어보았다. 생명노래가 가장 진하게 울려퍼진다.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가 이에 해당한다.   〈락화의 흔적〉을 좀 보자. 여기서 〈락화의 흔적〉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한톨의 씨앗이 되여 / 탄생을 알리는 / 죽어서도 죽지 않는 생의 원혼이”다. 그것은 죽으면서 삶을 잉태하는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다. 그런데 이런 변증법은 처절한 ‘음지와 양지의 피를 쏟는 군무’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갈무리하는 ‘꽃들의 순수’한 생명의 승화에 다름 아니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딛고 탄생한다. 죽음과 삶의 변증법이 되겠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생명탄생의 보편적인 리치다. 이 시는 바로 이런 생명탄생을 노래하고 있다.    〈홍시〉를 좀 보자. 여기서 ‘홍시’는 생명의 상징. 그것은 ‘초불 같은 심장’을 가진 뜨거운 존재. 그리고 생명의 ‘새빨간 생각을 주고 받’는 존재.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허위와 거짓존재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주변을 강타하던 무수한 소문들은 / 스멀스멀 그림자로 멀어져간다”고 하지 않던가. 이제 “가지마다 감도는 / 생의 물결이여 / 빛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으라”에서 생명의 고양은 최고도에 달한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불행하고 아픈 존재들을 보듬고 감싸안는다. “물오르는 참꽃들의 애환과 / 비슬산 울다간 동박새의 꿈과 / 숲으로 돌아가고픈 / 령토들의 아픈 심사까지도 / 뜨겁게 감싸 안아준”다고 하지 않던가. 아름다운 기원을 한다. “서서히 타오르는 땡볕의 품으로 / 새빨간 날개를 활짝 펼치라”하지 않던가. ‘새빨간 날개’, 그것은 생명의 날개여라! 〈홍시〉는 생명의 찬가, 생명에 대한 아름다운 기원을 노래하고 있다.    〈원일초〉를 좀 보자. 여기서 생명은 ‘아기 꾀꼬리들’로 상징된다. 한 겨울 “아기 꾀꼬리들 뽀시시 / 날개짓을 시도한다”. 그런데 “푸르름은 아득하고 / 다른 세포들을 흔들어 깨우기에는 / 아직 밤이 길다”. 그리고 “부리를 쪼아 새 계절을 불러오고 싶지만 / 길을 열어간다는 것이 / 천년고목에 꽃을 피우듯 / 숨 가쁜 일”인 것이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 “시나브로 날개짓에 익숙해질 때 쯤 / 하늘을 쪼개볼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 않는가. 그것은 원일초―설련화처럼 눈속에서 아름답게 피여나는 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의 끈질긴 힘, 생명의 역경 및 희망, 포부를 노래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에서〉를 좀 보자. 여기서 바람의 언덕은 어떤 곳인가? 그 곳은 ‘꽃을 피우는 곳’. 이 시는 령토, 바다, 섬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령토는 ‘가을 들녘을 살찌우’고 바다는 ‘전설 같은 매듭을 풀어내’며 섬은 ‘작은 몸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령토는 물산, 바다는 정신, 섬은 천, 지, 인 합일의 문화를 지향하면서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결국 ‘꽃을 피우는 곳’으로 수렴되고 있다. 보다시피 이 시는 생명이 펼쳐지는 인생, 인간 삶의 기본 지표를 노래하고 있다.    혈연, 피는 무엇보다 진한 것이다. 인간은 혈연의 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이 혈연 가운데서도 부모자식 간의 정이 가장 끈끈하다. 따라서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 김선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노래한 시를 좀 보자.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을 좀 보자. 여기서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 누가 보이지? 엄마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는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 살내음이 뭉클해지게도 한다. 엄마는 ‘새삶을 위해서만 가랑비’가 되여 내렸고 ‘부드러운 샘’이 되여 ‘바위 끝 심장을 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엄마는 ‘뿌리 깊은 숨결’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이 시는 끈질긴 생명의 희생과 헌신으로 생명을 보듬고 키우며 인생을 마감하는 엄마를 노래하고 있다.   〈싸리문 밀고 들어서면〉이 어머니의 노래였다면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은 아버지의 노래이다. ‘겨울에 피는 꽃잎’은 누구지? 아버지! 아버지는 바로 ‘겨울에 피는 꽃잎처럼’ 사셨다. 그럼 ‘겨울에 피는 꽃잎’은 무엇이지? 그것은 희망이고 행복이다. 아버지는 “흔들리는 바람에도 빛을 잃지 않”았고, “허허로운 벌판에서도 씨앗을 키워오셨”으며 “엄동을 이겨내는 법을 가르쳐주시”였고 “세상의 빛을 당겨주셨”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등대고 생명이고 스승이고 희망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아버지는 “내 비여있는 길에 / 영생의 빛을 열어주고 계신”다.   현대성, 우리 인류가 고대를 넘어 추구해온 삶의 지표. 현재는 포스트모던시대라 현대성도 어지간히 실현된 듯하다. 그런데 삐긋 문제가 생긴 듯하다. 애초에 문제성을 내포한 현대성임에라! 적어도 과학성과 도덕성의 괴리가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계적 범위에서 현대성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 문학도 례외가 아니다. 이른바 모더니즘문학은 전형적인 한 보기가 되겠다. 김선희의 시도 이런 반성을 보여주고 있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을 좀 보자. 여기서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가. 그것은 ‘가슴 빈자리’. 그럼 왜 가슴이 비지? ‘내 여린 손을 뻗을 여백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여린 손’만큼 가냘프다. 그리고 ‘이방인’이다. 철저히 소외되고 주변화된 이방인이다. 그는 ‘세상의 한끝’에 서 있지 않은가. 그리고 ‘허상들만 가득 찬 도시의 언저리’에 말이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그를 품어줄 곳은 아무 곳도 없다. 한 쪼각의 하늘과 땅도 그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 하여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어딘가라도 파헤치면 / 길이 열릴 것 같은 막연한 기대들에 부풀어오르’기 때문이다. ‘꿈을 향한 구멍들’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색이 바랜 달이 뜰 때 쯤’ ‘희미한 뜬구름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의 기대는 간절한 만큼 처절하다. 둥근 달이라도 모르겠는데 ‘색이 바랜 달’, 흰 구름 두둥실도 모르겠는데 ‘희미한 뜬 구름’이 아닌가. 그것은 애초에 허무맹랑한 기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차마 미련을 버리지 못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라도 잡는 마음에 다름 아니다. 이 시는 도시에 융합될 수 없는 한 이방인을 통해 현대 도시생활의 소외(異化)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인간 사이에 응당 있어야 될 소통과 온정, 융합이 증발된 사막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현 단계 현대성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세계 보편적으로 보다 더 거론되고 있는 모더니즘문학의 기본주제와 통하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는 도덕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막지한 ‘과학성’에 의한 자연의 황페화로도 나타난다. 생태평형파괴, 환경오염, 지구온난화… 생태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돋보이는 문제로 되였다. 세계의 지성들이 여기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문학에서는 세계적인 범위에서 생태주의문학이 산생되였다. 김선희도 이 생태주의문학에 동참하고 있다.   〈네모나방〉을 좀 보자. 나비효과라는 것이 있다. 현재 세계는 하나로 얼기설기 련결되여있다. 세계 한쪽 끝의 미세한 움직임이더라도 그것이 파노라마처럼 번져가며 결국 다른 한쪽 끝의 큰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윈윈효과일 때는 더 없이 반가운 것이겠지만 도노미현상을 일으키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때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시는 이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첫 시작 “천애지각 땅끝마을에서 / 너는 반갑지 않은 기별처럼 왔구나”는 바로 이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반 시에 관통된 이상한 ‘네모나방’의 상징이미지가 이것을 밑받침해주고 있다. ‘만신창’이 되여 ‘천지간을 켜켜이 들추’는 네모나방, ‘시나브로 모닥불이 서서히 피여오르’면 쉬여야 정상이건만 ‘어둠의 발자국’의 재촉 때문에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네모나방은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가여운 미물’인 것이다. 여기에 시적 자아는 ‘너만의 계절을 담은 / 안식처에로 날아가 주’기를 기원한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자기의 ‘안식처’로 돌아가 이 세상이 정상적인 질서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아름다운 기원에 다름 아니다. 보다시피 이 시는 미물인 네모나방을 다룬 것 같지만 실은 생태평형 및 세계질서라는 거창한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현 단계 가장 민감하고도 중요한 생태주의라는 세계적 담론에 가닿고 있다.    윤형의 근작시 몇수를 생명, 혈연, 현대성 차원에서 살펴보았다. 모두 만만치 않은 담론들이다. 영원성을 띠는 담론이기도 하다. 그녀의 근작시의 1차적 의미는 여기서 찾게 된다. 그녀의 시는 긍정적이고 밝아서 좋다. 요새 말로 하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친다. 그녀에게 있어서 생명은 시련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그것은 죽음조차 딛고 일어나는 끈질김을 갖고 있거늘! 그녀에게 있어서 혈연은 생명의 깊은 뿌리를 알려주고 생명의 영원한 등대가 된다. 그녀에게 있어서 현대성은 문제가 있으되 우리가 그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반성하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윤형의 근작시 가운데 〈락화의 흔적〉, 〈홍시〉, 〈원일초〉, 〈바람의 언덕에서〉 같은 생명 관련 시는 현대 상징시로 나아가고 있다. 이미지 및 이미저리를 통하여 전반 시의 상징적인 경지를 잘 엮어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볼 때 〈바람의 언덕에서〉의 ‘꽃’, ‘령토’, ‘바다’, ‘섬’이미지의 상징적 의미 및 ‘비여있는 바람’, ‘시린 령토’, ‘허기진 생각’과 같은 역설적 표현이 돋보인다.   그리고 혈연, 현대성 관련 시는 사실주의적으로 흐르되 상징적 이미지 및 이미저리로 잘 엮어져 시의 의미적 내연의 함축성을 확보하고 감칠맛을 돋구며 현대시의 격을 잘 갖추고 있다.   그녀의 근작시에는 일부 문제점도 노정하고 있다. 례컨대 〈홍시〉나 〈바람의 언덕에서〉의 일부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좀 자연스럽지 못하고 생경하며 난삽하다. 그리고 〈원일초〉의 이미지 및 이미저리는 보다 구체적으로 맞물리지 못하고 론리적으로 좀 긴밀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근작시는 그녀의 끊임없는 시탐구에서의 새로운 한페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녀의 시탐구는 멈추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시의 녀신과 함께 달리고 있거늘!  《도라지》2019년 6호 br /> ▣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김선희의 꽃과 바람과 빛과 그리고 시--         박  은  희(일본)       “돌의 아리아(외7수)”는 김선희시인이 대한민국방문길에 들고 돌아온 선물인듯 하다. 물론 독자들을 위한 귀한 선물이기도 하겠지만,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바람의 언덕”)이였으니 시인 자신을 위한 소중한 선물이기도 한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꽃’과 ‘바람’, 그리고 ‘빛’을 모티프로 서로 내적 련관성이 있는 8수의 시를 하나의 정체적인 작품, ‘나를 찾기’ 려정(旅情)시라고도 볼 수 있다.        회화성(繪畵性)과 서정성이 강한 뚜렷한 특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려정(旅程)에서 만나는 절경은 시인의 시정(詩情)을 불러일으키고 시인은 감정적색채가 짙은 언어와 적절한 수사법으로 산수풍경을 리얼하게 재현시키면서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소리, 격정을 토로한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에서 주관과 개관은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된 존재인 것이 아니라 객관속에서 주관을 찾고 주관으로 개관을 확인하는, 서로 밀접히 련결된 존재이다.       아니무스의 심상—초대바위   첫 시 “돌의 아리아”는 외7수의 내용을 통괄(統括)하고 있다. 19행의 제1련과 5행의 제2련으로 구성되였지만 제1련과 제2련은 물리적인 대칭을 이루고 있다. 제1련의 노을속에 서있는 낮은 초대바위와, 그와 좀 떨어진 곳에 있을, 제2련의 초화언덕의 시들어 가는 꽃, 그리고 뻐꾸기는 모두 시인 자신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하고 시인은 누군가에게 호소하는듯한 높은 격조와, ‘슬픈 구멍’, ‘피빛 노을’등 간잡적표현이나 ‘아파도’, ‘슬퍼도’등 직접적표현으로 된 짙은 감정적색채를 띤 언어로 풍경을 그리고 력사를 읊고 있다. 그리고 ‘바람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만추 끝자락에 초대바위로/멈춰섰습니다’하고 의인화하여 초대바위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본다. 소설가든지 수필가든지 시인이든지를 막론하고, 그들이 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표현을 했든지간에 독자는 그 표현에서 표현자의 심층심리를 엿볼 수 있다.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에서 돌이나 바위, 철같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나 탑이나 기둥같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을 흔히 남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꽃처럼 여리고 아름다운 것은 녀성의 기호나 상징으로 표현되여 왔다. 심층심리학에서도 각기 남성성과 녀성성으로 풀이하고 있다. ‘초대바위’와 ‘꽃’을 구성상 대칭적으로 배치한 것이 김선희시인의 의식적인 것이였는지 무의식적인 것이였는지를 막론하고 여기서 심층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초대바위’는 시인의 아니무스(animus)의 심상(心像)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녀성의 내계(內界)에 존재하는 남성상이다. 여기서 말하는 남성상이란 꼭 남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성공이나 신분, 권력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들어가고 있는 ‘꽃’은 즉 인생의 꽃시절을 끝마치고 있는 녀성상이다. 녀성상은 남성상과는 상대적인 것을 의미한다.       50후나 60후의 녀성이라면 남존녀비사상을 가진 부모의 밑에서 자랐거나 혹은 중남경녀의 부조리한 취급을 당한적이 있을 것이다. 녀자로 태여났기에 이루지 못했던 일, 얻지 못했던 것이 한이 되기도 했다. 하여 ‘몸속 웅어리는/슬픈 구멍으로 뚫’렸다. 그러나 시인은 ‘전생에 무슨 업보 그리도 많이 쌓았는지/인과률의 그림자는 운무에 접힌 채’ 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항거할 수 없는 운명임을 받아들인다.        다시 정리해 말하면 시인인 ‘나’(‘가난한 뻐꾸기’)가, 녀자로서의 인생의 꽃시절을 보내고 있는 ‘나’(시들어가는 꽃)가, 지금 이 시각 이 곳에서 지난 반생을 인생의 세파속에서 씻기고 구멍 뚫리여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육신’이 된 ‘나’(초대바람)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리고(울고) 있다.   원숙의 우아함과 지는 미학       “돌의 아리아”에서 시인은 ‘피빛 노을은 온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꽃이 시들어가는 초화언덕에’하고 해가 서서히 져가거나 이미 진 뒤의 붉은 노을과, 져가는 꽃을 읊었다. 자연의 모든 사물은 지기시작하기 직전에 가장 원만하고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기에 지는 순간이 장렬하고 강렬하다. 이 순간이 지나면 두번 다시 볼 수 없기에 져가는 모습이 귀중하고 아름답운 것이며, 이를 지켜보는 마음이 애석하고 슬프고 아픈 것이다. 이것이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첫 시에 이어 시인은 두번째 시 “석류”에서 원숙한나머지 미풍이 불기만 해도, 아니면 풀벌레 울음소리가 나기만 해도 당장 떨어질 것만 같은 석류를 그리고 있다. 시 “석류”의 제1련은 유리창안이고 제2련은 유리창밖이다. 이 유리창은 시적주인공의 감정 즉 주관이다. 유리창너머로 석류의 원숙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떨어지게 될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시적주인공의 마음은 아프다. 이런 감정속에 자신을 가두어 두면 ‘눈물 날 것만 같’다. 하여 마음의 유리창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거기에는 우주가 있고 해살이 있다. 시적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시인은 세번째 시 “황칠나무”에서 ‘원숙’과 ‘짐’(또는 死)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마지막 련의 ‘꽃은 꽃으로만 피지 않고/나무는 바람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는 명언이다. 꽃시절이 끝났다고 하여 인생이 끝난 것이 아니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지 외부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될 것이다. 부(富)의 상징인 황칠나무는 껍질에 상처를 주면 노란색 진액을 흘러낸다고 하는데 그 노란 수액은 도료로 쓰이고 뿌리, 가지, 껍질, 잎,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그러니 꽃이 진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고 열매가 떨어진다고 비통해할 일이 아니다. 황칠나무가 사시절 귀중하듯이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의 어느 시절이 또한 귀중하지 않겠는가. 시인은 ‘천혜의 숨결이 닿는 곳에’ 뿌리를 내리는 성스러운 나무를 의인화하여 노래하고 있다.       다음, ‘나무는 바람3에 길을 묻지 않습니다’를 이어 시인은 시 “바람의 언덕”을 쓴다. 사실 ‘바람’은 첫시의 ‘바람1을 거슬러 단 한번이라도/고개를 쑤욱 쳐들고 싶지만’(“돌의 아리아”)에서 ‘몇 오리 바람2이 찾아와/무어라 귀속말 전해주듯’(“석류”)로 이어져 내려왔다. 김선희시인의 작품을 읽음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된다. 상술한바와 같이 ‘바람3’은 ‘외부적 영향’을 의미하는데 이와 비슷하게 ‘바람1’은 사회적이나 가정적, 또는 정치적으로 인한 인생세파 혹은 타자 등, 즉 ‘외부적 압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람2’는 자연으로서의 바람, 또는 ‘외부적 압력’이다. “바람의 언덕”의 ‘바람4’은 위의 모든 의미를 포함함과 동시에 ‘내부적 갈등’의 의미가 첨부된다. 제1련의 ‘바람은 다가오는 봄을 막지 못하지/밑창마저 뜯긴 해살이/마른 풀잎을 꺾는 걸 본 적 있는가’는 위에서 렬거한 의미로 읽을수 있다. 제2련의 ‘뒤틀려버린 뿌리까지 가는 동안/심장판막 넘나들다/안팎으로 찢어지고 부서지고’는 ‘외적인 압력(또는 영향)’이 ‘내부적 갈등’으로 전환된 것이다. 이런 갈등에 의하여 생겨난 수많은 ‘나’들이 초봄에 파란 새잎이 돋기전인 겨울에 피는 산수유꽃으로 피고 있다.       무언가 얻으려는 확답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시인은 잠시 “산다는 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산다는 건/꽃을 벙을게 하려고/흩어진 수액의 줄기를 모으고 있는 일’이라고 한다. 여기서 ‘꽃’은 성공이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일가? 제3련의 ‘신열을 앓다/생의 몇바퀴 돌고서야/운무를 헤집고 만개하는 꽃불의 넉두리’를 읽고나면 비로서 ‘운무’(無知, 迷)의 상대적 의미로서의 ‘앎(知, 悟)’을 의미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끝으로시인은 ‘어떤 경우에도/길 밖의 길 앞에 헤매지 마라’고 호소한다. 길은 한자로 ‘道’로 쓴다. 특정된 어느 한 종교의 리치라기보다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로 해석하고 따라서 ‘꽃’은 불교에서 쓰이는 련꽃의 상징적 의미를 따온 시적 표현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앎’에 대한 각성은 “바람의 언덕”의 ‘빈 가슴으로 울던 억새 앞에/무심코 쳐다 본 하늘/그 중후의 빛갈을 느끼게 된 건/불혹의 지나서 한참 후였지’에서 ‘불혹’의 상대적 의미로 쓰인 하늘의 ‘빛갈’에서부터 전개되여 왔다. 아직은 그저 ‘느끼게 된’ 단계이다. 사실 전 시편에 관통되여 있는 이 ‘빛’이 또한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이다. “겨울 해변에서”의 해변은 그야말로 빛의 세계이다. ‘여울 치다 얼어붙은 저 물빛’, ‘극과 극으로 만난 령혼의 빛’, ‘물을 강타하는/저 역겹의 해살’, ‘세상에서 가장 맑은 물빛’. 이 ‘빛’들이 즉 ‘앎’이다. 이 ‘앎’으로 하여 모든 슬픔을 물아낼 수 있고, 모든 풍문들의 매듭을 풀 수 있고, 모든 것을 넉넉히 받아들이고 포옹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토록 찾아헤맸던 ‘나’는 어디로 가고 ‘앎’이 남았는가? ‘나’는 어디에도 없고 또 어디에나 있다. 다만 ‘없다’ 혹은 ‘있다’고 깨닫는 ‘앎’에 의하여 존재한다.        시 “겨을 철쭉”은 첫시 “돌의 아리아”에 대응되는 작품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헌화가”에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태수로 부임하는 남편 순정공을 따라 동행하던 절세미인 수로부인이 벼랑끝에 피여난 꽃에 반하였는데 누구도 꺽어다 줄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때에 지나가던 한 로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꺾어와 노래를 부르며 바쳤다는 에피소드가 적혀있다. 그 꽃이 철쭉이고 그로부터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락조의 후광속에 한겨울의 맹추위에 몸부림치는 철쭉은 피빛 노을속에 세찬 바람에 구멍 뚫린 초대바위와 영상(映像)적으로 조응되고 또한 아니무스의 심상에 대응되는 시적형상이다. ‘다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때는/꽃으로 남지 않으리!’, 어디까지나 시인 개인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이 또한 명언이다. 한 녀성으로서 꽃시절에 대한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인생의 한 계절을 떠나보내고 홀가분히 다음 한 계절을 맞이하려는 결단이다.        시인 김선희의 ‘나를 찾아헤매는 려정’은 인생의 환절기에 아픔과 슬픔에 ‘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앎’으로 ‘나’를 확인하는 려정이였다. 이와 같은 인생과 삶에 대한 자세가 바로 인간 김선희의 ‘원숙의 우아함’이고 ‘지는 미학’이다.   그리고 시(詩)    “돌의 아리아”에서 시작하여 “겨울 철쭉”으로 끝나도 구조상 내용상 완벽한데 시인은 위 7수의 서정시와는 전혀 다른 서사시 “오늘의 담시”를 추가한다. 담시(譚詩)는 물론 서사시에 속하겠지만 유럽의 발라드의 영향을 받아 정착된 전통적 서사시와는 달리 더욱 자유롭고 짧은 것이 특징이다. “오늘의 담시”는 텍스트(정확히는 위의 서정시)밖의 시인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우선 텍스트밖의 시인의 일상언어는 ‘내 핸드폰 안 챙겼슴다!’와 같이 연변방언이다. 서정시의 엄밀한 계산에 의하여 선택된 시어와는 다르다. 다음, 생사를 구분하는 관건적인 시각에 담시의 시적화자 ‘내’는 무의식지간에 시를 쓰기 위한 재료나 초고가 들어있을 일기노트와 필기장들, 그리고 노트북보다는 먼저 려권과 돈지갑을 들고 도망친다. ‘나’를 찾는 려정에서 헤매이고 있는 서정시의 시적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이다. 거듭 되풀이되는 대사는 마자막끝에  ‘—과연 뭐다 그리 중한지?!’로 매듭되면서 사고의 여지와 여운을 남긴다.    김선희시인이 담시를 부가하여 담시의 사실과 서정시의 진실과의 차이를 보여주려고 한 것은 서정시의 구조와 내용에 대한 보다 깊은 리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였는가 생각된다. “돌의 아리아”를 비롯한 7수의 서정시의 구조는 초령역적인 심적(心的)구조이다. 자연령역과 인류령역의 사이, 의식령역과 무의식령역 사이, 내적령역과 외적령역의 사이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마음의 구조이다. 대문에 상징성이 강하다. 한 사물에 부여된 상징적 의미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중첩된 것이다. 될수록 여러가지 가능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하여 읽으면 시적세계가 보다 넓어지게 된다.    김선희시인의 ‘나를 찾기’ 려정시를 읽고나면 의사(擬似)체험을 했다기보다는 시적주인공의 마음과 마음을 겹쳐서 실제에 가까운 체험을 한듯한 느낌이 든다. ‘나’가 이 순간 무슨 감정인지 인츰 깨닫는 ‘앎’에 의하여 ‘나’를 잃지 않는 것은 삶의 지혜이다   /연변문학 2020년 9월호
17    중국조선족 시인 김성우 篇 댓글:  조회:722  추천:0  2024-08-23
《시경》과 술문화/ 김성우 2022년 02월 23일 10시 1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경》과 술문화 김성우   중국의 술문화 현상을 최초로 문학작품에 진실하게 묘사하고 반영한 것이 바로《시경(诗经)》이다.    중국 고대사회에서 생활의 ‘백과전서’라고까지 불리는《시경》에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민속문화 내용이 담겨져있어 후세의 민속문화연구에 아주 귀중한 자료를 제시해주고 있다. 특히 술에 대한 시가 아주 많은데 술을 빚고 마시고 하는 옛사람들의 생활이 폭넓게 반영되여있다. 술을 언급한 시만도 50수가 넘는데 그중 한수만 맛 보기로 하자.    안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된 시〈권이(卷耳)〉는 도꼬마리 뜯는 녀인의 갖가지 상상을 통하여 남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하면서 더해가는 시름을 술로써 풀려 한다.    저기 가파른 바위산에 올라가려니  내 말은 지쳐서 휘청거리네  나도 잠간 청동술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 그리움 잊어나 볼가  (陟彼崔嵬,我马虺隤。 我姑酌彼金罍,维以不永怀。)    저 가파른 산등성이에 올라가려니  말이 지쳐서 털빛이 검누렇게 되였네  내 잠간 소뿔잔에 술을 따라서  오래된 이내 시름 달래나 볼가  (陟彼高冈,我马玄黃。 我姑酌彼兕觥,维以不永伤)   간추린 통계에 의하면《시경》에 술 ‘주(酒)’자가 나오는 곳만 60여곳이 된다. 그중〈아(雅)〉에서만 50여곳이 된다. 시경에는 술의 뜻으로 씌여진 글자가 ‘주(酒)’뿐만 아니라 ‘례(醴)’, ‘고(酤)’ 등 여러 글자들이 있다. 이외 제사를 지내고 연회를 베풀고 하는 등 술과 관련된 내용만 해도 100여곳이나 된다. 그리고 제사에 쓰이는 술 기명들의 명칭도 수태 나온다.     중국 고전문학에서 시 300편으로 사실주의문학의 시조로 추앙받는《시경》이 이렇듯 술에 관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고대사회에서 술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 점에서 일부 학자들은 지어 “《시경》은 ‘주경(酒经)’이다.”라고도 말한다. 일찍 청조 때의 학자인 요제항(姚际恒) 은《시경통론》에서  “《시경》의〈빈풍 칠월(豳风ㆍ七月)〉은 마치 한권의 술에 관한 경전 같다.”고 말한바 있다.    《시경》에서 술은 또한 ‘지주(旨酒)’, ‘청주(清酒)’, ‘시주 (酾酒)’ 등으로 감칠맛 있게 노래되고 있다.    옛날, 가장 중요한 일은 전쟁과 제사였다. 술이 당시 제사 같은 아주 중요한 행사에 씌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여기에서의 경로의 뜻은 한층 더 경건한 것이리라.    술이 언제부터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확실한 정설이 없으나 동방에서 문자기재로 가장 일찍한 것은 갑골문의 표기인데 거기서 술은 ‘유(酉)’로, 즉 용기모양으로 새겨져있다. 그런데 갑골문의 대부분 내용은 제사와 점복이다. 그러니 사실상 술은 썩 더 이전에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술은 신의 음식으로 신과 통하는 매개로 작용하였기에 부족내에서 술을 관할하는 자 역시 그 신임과 지위가 대단하였다.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추장’이라는 의미의 ‘추(酋)’ 자도 술(酒)과 련계되여있고 술을 관할하는 자는 ‘대추(大酋)’로 불리였다. 그러고 보면 ‘존경’의 높을 ‘존(尊)’도 술과 관계가 있은 것은 물론 높직하고 굵직한 행사에는 모두 술이 돌려졌던 것이다.        옛날(은나라와 주나라 시기) 술은 전부 알곡 혹은 과일류로 빚어진 것이였다.    《시경》에는 술이 제사에 쓰이는 대목이 많은데 제사외에도〈빈풍 칠월〉처럼 농가의 로인을 공양하는 장면에도 나오고 있다. 주나라에서도 음주가 성하였는데 이는 농업의 자급자족으로 알곡생산의 풍요로움과도 관계가 되며 특히 지금 말로 하면 산 사람을 위한 술의 양생학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발전한 것과도 관계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시경》에는 술과 더불어 이제는 귀신을 즐겁게 하는 것외에도 산 사람의 수명을 축원하는 단어들도 나온다.   ‘만수무강(万寿无疆)’이니 ‘수고만년(寿考万年)’ 같은 말들 모두가 술과 함께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으니〈빈풍 칠월〉의 ‘봄술’이 겨울에 빚어서 봄에 걸러 마시는, 한자로 ‘醪(료)’라고 하는 것으로 바로 우리말의 ‘막걸리’라는 것이다. /계정
16    중국조선족 시인 김영능 篇 댓글:  조회:920  추천:0  2024-08-23
김영능 시-자가용(외 7수)/시평 한영남 2021년 12월 14일 09시 58분  작성자: 문학닷컴 시-자가용(외 7수)-김영능(《도라지》2020년 5기) ▣ 시 / 김영능 자가용(외 7수)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 어리둥절 알고도 모를 일이다   네가 배가 곯아서 헐떡거리면 말이 없어도 때를 어기지 않고 주머니를 털어 배불리 먹여주고   네가 고단하여 탈이 나면 지체없이 병원으로 모셔가서 오장륙부 검진 치료하고   너의 모양새가 허름하게 얼룩이 지면 대중 모욕탕에 모시고 가서 안팎을 깨끗이 샤워 시키고   네가 동서남북 눈치 없이 앉을 자리 갈 자리 헛갈리면 내가 벌점을 먹고   네가 급한 성격 덤벼치며 앞뒤 꽁문 접촉 사고를 내면 내가 벌금을 당해야 하고   네가 장부 호걸 깡패행세 재산인명 큰일을 저지르면 내가 감옥으로 가야 하니   피땀으로 애써 모은 돈 수없이 밀어넣었는데 또 얼마를 말아먹어야 하는가   아차하면 재산을 탕진하고 가문이 망하고 인생이 끝장 나는 판   도대체 알고도 모를 일이다 누가 주인인지 누가 노복인지   그래도 너들 무리들 큰 눈을 부라리며 큰소리만 빵빵 치고 싸다니니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 거꾸로 살아야만 하는 세월 알고도 모를 일 너무도 많아   삼색등이 색망이고 밤낮이 삭갈리고 하늘땅이 헛갈린다   시라지   한 뿌리 한 혈줄 한 족속인데   익고 여물어 하얗게 속대 탱탱 살아난 놈들 빠알간 맛갈양념 꽃단장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가 식탁무대에 올라서는데   바람을 막아주고 먼지 오물 뒤집어쓰며 애지중지 품어주며   껍데기 울타리로 퍼어렇게 멍이 들어 후줄근 꼴기 없으니   새끼줄에 목 졸리여 엄동설한 칼바람 속 사랑채 이영새에 교수형   피가 마르고 뼈가 삭아서 눈물마저 거덜이 났구나   록차   맑고 투명하여 거짓 없다 순결하고 뜨거운 가슴에 무작정 뛰여들었어요   야위고 여린 한몸 짜릿한 몸부림으로 깊이 파고 들어갔어요   따가움으로 살이 터질 듯 뼈 속까지 타들어가는 정열 온몸이 녹아 무너지는데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정은 아픔이였어요 사랑은 죽음이였어요   그래도 후회없이 마지막 숨결로 향기를 주고 싶어요   풀이고 싶다   꽃이 아니고 풀이고 싶다   화사하여 나비들한테 밟히우고 허비우고 사방의 눈총질에 고달프고   요염하여 벌들한테 쏘이고 할키우고 팔방의 발길질에 아프고   짙은 체취로 바람의 품에 안겨 벌님네 혼을 앗아가고 나비님 얼을 홀려가며 순진한 봄날을 희롱하고 무심한 세월을 간지르는   한순간 피였다 지는 가녀린 꽃이 아니라 한결같이 푸르른 이름 없는 작은 풀이고 싶다   수증기   나의 족속들은 아래로 낮은 곳으로만 찾아가는데 나는 우로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나의 사촌 비방울은 구중천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깨여져 땅 속에 스며들고   나의 팔촌 우박들도 구름차에서 뛰여내려 분신쇄골 부서져 흙 속에 사라지고   나의 본가집 하천강물들도 밤낮 구을러 바다에 침전되여 자취를 감추는데   나만은 훨훨 하늘을 날아 자유자재로 자유를 즐긴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올라갈 수 있는 한정된 자유의 세상   더 올라가면 사촌처럼 팔촌처럼 곤두박질 나뒹굴고 만단다   등산   배낭을 짊어지고 신들메 조여매고 톺아오른다 정상을 노리고   욕망의 구렁이 릉선을 기여오른다 희망의 꽃너울 가발로 둘러쓰고   새소리 흘러보내고 꽃구경 제쳐놓고 비지땀 쥐여짜고 가쁜 숨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서 앞을 살펴보니 더 높은 봉우리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네   끝없이 오르고 싶은 욕구 오금이 저려나는데 올라온 가파름보다 내려갈 골짜기 더 깊구나   솜구름   할아버지 한숨 하아얗게 숨 가쁘게 서리여   할아버지 산소 뒤산마루 오솔길에 꼬부랑 허리로 서성거린다   떠나가버린 수십성상 차마 잊을 수 없어 오늘도 이마에 손을 얹었는가   쓰라린 설음 함박으로 쏟아붓던 키 낮은 초가삼간   룡마루가 주저앉고 구새통이 기울어지고 쑥대가 무성한데   황소의 영각소리 꿀꿀이 떼질소리 수닭의 홰치는 소리   바람이 쓸어갔나 비물이 씻어갔나 세월이 잡아갔나   뭉게뭉게 솜구름 하아얀 수염발 날리며 마른 눈물 휘뿌린다   자욱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이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이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짭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비평-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한영남(《도라지》2020년 5기)     ▣ 비평 / 한영남 생활은 시가 되여 흐르고 시에는 생명이 깃들이고 ―김영능시인의 근작시를 모티브로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한마디 하자. 시는 생활가운데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다시 예술적 승화를 시켜서야 비로소 시로 완성된다고 한다. 요즘 많이 퇴색해버린 운률까지 넣어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하겠다. 낡은 터에서 이밥 먹던 소리를 하는 리유가 있다. 왜냐하면 낡은 터에서 이밥 먹는 소리라고 픽픽 웃는 분들도 결국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 이밥을 다시 찾게 되는 까닭이다. 시는 생활을 떠날 수 없다. 생활에 대해 눈을 감고 오로지 상상만으로 시를 쓴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의 머리속에 반영된 것은 생활 자체이고 그것이 상상력의 작용하에 아무리 희한하게 변형된다 하더라도 결국 생활을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활을 반영한다고 해서 생활을 그대로 사진 찍듯이 옮겨온다면 그 역시 시로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까닭이다. 예술적 승화가 되지 못한 글은 마치 날개가 없는 봉황과 흡사하다. 봉황이 날지 못한다고 상상해보라. 거기에 무슨 뭇새들의 왕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것인가. 한마디로 시는 생활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예술적 승화를 시켜주어야 시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만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조선족 중견시인 김영능선생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에서 어떻게 시가 채집되고 어떻게 예술적 승화가 되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자가용〉이라는 시는 그야말로 생활에 밀착한 시이다. “내가 너를 머슴으로 부려먹는지 / 네가 나를 몸종으로 부려먹는지”라는 아기자기한 표현으로 말문을 연 시는 시종 자가용을 ‘너’라는 이인칭으로 지칭하면서 자가용과 주인의 관계를 풀어나가고 있다. 아이를 키우듯 보살펴도 쩍하면 벌점, 벌금이 차례지니 그야말로 대체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복인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평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만들어진 세상’이라고 일갈한다. 시비가 전도되고 선이 손해 보고 악이 오히려 호통치는 일부 사회부조리에 시원한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시는 가장 일반적인 생활의 한 모퉁이에서 시적 발견을 하고 그것을 아기자기하게 풀어나가다가 반전으로 예술적 매력을 업그레이드시킨다. 생활의 묘미가 시의 묘미로 거듭나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시라지〉 역시 순수 소박한 우리 삶의 이야기이다. 우리 민족이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두고 자못 유머러스하게 ‘랭장고 고급호텔에 모셔’간다고 엉너리를 부린다. 그러나 “새끼줄에 목 졸리여 / 엄동설한 칼바람 속”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리는 그토록 즐겨먹는 시래기를 너무 홀대한 것은 아닌지. 독자들의 반성을 견인해내고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 “피가 마르고 / 뼈가 삭아서 / 눈물마저 거덜이 났”다고 끌어올림으로써 우리 민족의 애환과 매치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된 시라고 해야겠다. 〈록차〉를 마셔보자. 시는 우선 록차의 속성으로부터 출발해 본론으로의 접근을 꾀한다. 단 이 시에서 시인은 록차의 각도에서 시를 전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록차가 뜨거운 물속에서 우려지는 과정이 극명하게 안겨오면서도 록차의 심경이 되여 저으기 안쓰럽게 여겨진다. 4련에서 “그리움은 슬픔이였어요 / 정은 아픔이였어요 / 사랑은 죽음이였어요”라고 직접적 주정토로를 함으로써 록차의 깨달음으로부터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백미는 “그래도 후회없이 / 중략 / 향기를 주고 싶어요”라는 그 간절한 소망에 있다. 록차는 사랑을 위해 뜨거움 속에도 용감히 뛰여들었고, 짜릿한 몸부림도 치고, 온몸이 녹아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의 행위가 결국 사랑이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래도 향기 한점 주었다는데서 안도하는 여기에 시인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이다. 〈풀이고 싶다〉를 보자. 요란하고 화사하고 떠받들리는 고운 꽃보다 눈총질, 발길질에 아픈 풀이고 싶은 리유는 무엇일가. 그것은 한결같이 푸르다는 풀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세상의 란타를 당해도 오로지 푸름을 떠이고 사는 풀로 행복하다는 그것이야말로 시인의 시세계관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자연을 쓰되 인간의 삶과 매치시키고 거기에 생명의 숨결이 흐르게 하는 여기에 김영능시인의 범상치 않은 시적 재주가 돋보이는 것이리라. 〈수증기〉는 기체, 액체, 고체로서의 물의 세가지 상태를 둘러싸고 시가 전개되고 있다. 유머와 위트가 없는 문학은 진정한 문학이 아니라고 누가 말했던가. 이 시에서도 김영능시인의 능청스런 어투가 위불없이 드러나 시에 맛소스를 쳐주고 있다. 물의 세가지 상태를 ‘사촌’이니 ‘팔촌’이니 ‘본가집’이니 지칭해서는 친근감과 더불어 독자들의 입귀에 흐뭇한 미소가 걸리게 만든다. 그런데 생활의 론리가 사개 맞게 들어맞는 것을 독자들은 놀랍게 발견해야 한다.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 작아지고 가벼워져야만 / 올라갈 수 있”다는 이것이야말로 시인이 세상사람들한테 던져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니였을가. 〈등산〉도 소박한 서두가 깊은 인생철리를 견인해내는 시이다. 1, 2, 3련에서는 등산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련히 겪게 되는 사정이야기를 들려주기에 골똘하다. 그러나 4련에 이르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정상에 올라서서 / 앞을 살펴보니 / 더 높은 봉우리 / 소소리 건너편에 솟아있”는 것이다. 이 산에 오르면 저 산이 높아보인다는 말도 있고 산 우에 산이 있다는 말도 있다. 옳고 옳고 옳다. 그러나 시인은 여기서 그만둔 것이 아니라 지금껏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시적 발견을 해내고 있다. “올라온 가파름보다 / 내려갈 골짜기 더 깊”다는 이것이야말로 김영능시인만이 해낼 수 있는 시적 발견이요 이 시적 발견이야말로 이 시를 더욱 시중의 시로 거듭나게 해주는 화룡점정이라 해야겠다. 〈솜구름〉을 바라보기로 하자. 시인은 하늘에 떠있는 솜구름 하나를 보고 지나온 세월을 반추해보고 있다. 그의 눈망울로 수십 성상 세월이 아프리카 반마처럼 줄달음치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제 “바람이 쓸어갔나 / 비물이 씻어갔나 / 세월이 잡아갔나” 보이지도 않고 솜구름만이 마른 눈물을 휘뿌리고 있다. 고래희의 시인은 솜구름 한송이를 보고도 인생을 반추해보고 삶의 부족점들을 반성해보고 있는가 보다. 시 〈자욱〉 역시 비금한 맥락의 시로 분류된다. 시 전문을 옮겨보자.   지나온 발자욱 지워지기 마련인데 아무리 무겁게 밟아놓아도 티끌 먼지 속에 파묻히고 뒤따라온 자욱에 묻혀버리는 운명인데   누구나 열심히 깊게 얄팍하게 바르게 삐뚤게 자욱을 만들어가니 인생은 허무하고나   보이지도 않는 자욱 미련으로 고개 돌리고 그림자도 없는 자욱 꿈속에 더듬어갈 때 그 자욱 속에 주어담은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낡은 삶의 자투리   땀에 절어 눈물에 젖어 피물에 얼룩으로 새 삶을 반죽한다   ― 시 〈자욱〉 전문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시인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고도 많다. 그러나 시인은 인생의 무상함을 감지하고 어차피 묻혀버릴 인생이지만 누구나 나름대로 열심히 깊고 옅고 바르고 비뚠 자욱들을 만들어오는 바 그것이야말로 우리네 삶의 짜고 맵고 시고 달콤한 이야기라고 중얼거린다.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모든 것을 체념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래서 시인은 땀과 눈물과 피물로 ‘새 삶을 반죽한다’고 소리높이 호매롭게 웨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폭풍 속에서 가련하게 움츠리는 갈매기, 가가르, 펭긴 등 새들을 비웃으며 오연하게 창공을 그 날개짓으로 찢어대던 저 고리끼의 해연의 노래와 얼마나 닮아있는 것인가. 건강하고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인 삶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리라. 이상 김영능시인의 근작시 8수를 모티브로 생활이 어떻게 시로 환원되고 생명력을 획득하는지 살펴보았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지만 최근에 들어 김영능시인은 달관의 경지에서 인생을 관조하면서 지나온 삶의 궤적을 반추해보이고 인생의 철리를 길어올리는 시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것은 시가 생활을 떠날 수 없고 예술적 승화 없이는 시의 완성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아는 한 중견시인의 량심 있는 시적 주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능시인은 박수갈채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15    중국조선족 시인 림금산 篇 댓글:  조회:757  추천:0  2024-08-23
림금산의 새 "아리랑"(시평) 2016년 03월 15일 13시 44분   작성자: 림금산 시평 림금산의 새 “아리랑”                                             우상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하나의 집단무의식적인 원형상징. 그런만큼 그것은 하나의 아리랑군을 형성하고 우리 민족 시인의 시적령감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많은 시인들이 아리랑을 불러왔고 지금도 부르고있는줄로 안다. 그럼 우리 여기서 림금산의 새 “아리랑”(조시)을 감상해보도록 하자.   림금산에게 있어서 “아리랑”은 무엇이던가.        “조시1”-그것은 온 육신이 물러나는 소리가 나는 어려운 이주정착의 노래. 거기에는 가난이 깃들어 있고 피눈물이 슴배여있다. 그대로 두만강 민족적서정은 피여난다.       “조시2”-거기에는 가난속에서나마 전원목가적인 랑만이 깃들어있다.      “조시3”-조선족을 상징하는 모아산, 해란벌, 해란강 같은 키워드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좀 스산하다.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이 보이고 “구슬픈 곡조 익어가는 강끝”-“해란강의 소리”가 들린다. 그래 여기에 “모아산”으로 대변되는 조선족이 떠나련다.       “조시4”-아리랑은 우리의 령, 육, 혼이 하나로 아우러지는 경지. 바로 이런 경지속에 우리의 뼈대가 세워진다. 그것은 “조상이 피를 토하”는 한 맺힌 “민족의 국제가”로 우리의 하나의 집결점이 되고 기치가 된다.   전반적으로 볼때 림금산의 “아리랑”은 주로 우리 조선족의 아리랑, 우리 조선족의 이주정착 및 현실적삶의 역경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민족의 국제가”로 승화됨으로써 “세계공통어”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며 희망적이기도 하다.        림금산의 “아리랑”은 시적형식에 있어서 매 “조시”, 례컨대 “아리아리 아리랑(조시1)”, “아리랑 아라리요…(조시2)”, “아리랑 아라리요…(조시3)”, “아리랑 아리랑 윙-위잉—위이잉…//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나 주소…(조시4)”,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조시5)”에서 보다싶이 전통적인 아리랑의 “후렴구”를 넣음으로써 일종 전통민요 “아리랑”의 패러디양상을 나타내고있다. 이로써 전통적인 포스트모던적인 시창작특색을 나타내고있다.      매 “조시”의 이런 후렴구들이 서로 호응하고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새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감을 준다. 매 “조시”의 시구들도 보면 몽롱시나 현대파시의 경우처럼 별로 난해하거나 헛갈리지도 않는다. 평이한 가사에 가깝다고도 말할수있다. 특히 “조시1”에서 전반 시적이미지나 경지를 “소리”로 전환함으로써 애초에 “노래”분위기를 잡는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시구의 산문적의미 련결 및 토씨가 분명히 따라붙고 종결어미가 구전한 산문적어감 그리고 시구의 길이로 놓고볼때 일종 산문시적인 특색을 가지고있다. 그러면서 산문시도 시인만큼 다양한 시적인 수사법을 구사하고있다. 례컨대 “손가락에서 소리가 난다”보다 이것을 념두에 둔 “손가락에서 소리가 흐른다”는 표현은 청각을 시적으로 전환한 통감적적표현 및 “할배의 수염발이 몸을 후려치는 숨결이다”에서 시각을 청각으로 전환한 통감적표현 그리고 “모아산이 잠에서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멀리 바다쪽 하늘 우러른다…”를 보면 기표에서는 “눈을 비비며”, “우러른다”로 의인법, 기의에서는 “모아산”으로 조선족, “바다쪽 하늘”로 고국을 상징하고있다. 이외에 “가난이 가득 흘러내리던 소리”, “헐벗은 해란벌”, “짜개진 논밭”의 의인, “령혼속에 바위가 세워진다/바위속에 뼈가 세워진다/뼈속에 쇠쪼각이 세워진다”는 반복적인 틀속에서 “바위”, “뼈’, “쇠쪼각”의 중간꼬리법(顶针法), “아침안개 서려올라 무명저고리가/벗은 산허리를 둘러주고 저녁연기 타래쳐올라/초가삼간을 배불리던 이야기다”의 대구, “조시1”에서의 “소리를 낸다”, “소리다”의 각기 여러구에서의 반복 등등은 그 보기가 되겠다.      이제 림금산의 새 “아리랑”은 끝나는듯하다. 그런데 여운은 남는다. 새로 또 시작할듯하다. 그것은 우리의 영원한 멜로디이니깐. 기대해도 좋겠다. ++++++++++++++++++++++++++++++++++++++++++++++++++++++++++++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문학비평)   문학비평 달이 노래 부르면 상아는 춤을 추겠지 -임금산시인의 조시 열수에 부쳐   강혜라           자고로 시인 묵객치고 달을 노래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푸른 밤하늘을 흐르 듯이 가며 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던 달은, 저 시선 이백의 싯줄에서 뛰놀다가 존 키츠의 싯줄을 휘감기도 하던 달은, 이제 임금산시인의 시 노트에 담겨 둥그렇게 솟아오른다. 그리고 임금산시인은 동시인으로도 소문났지만 문학을 시작할 때는 멋진 성인시를 펑펑 쏟아내던 분이다. 작은 눈으로 너른 세상을 훑어보고, 작은 가슴에 풍진세월을 품기도 하며, 작은 키로 큰 하늘을 떠이고 드팀없이 문학의 길을 매진해온 임시인의 시적행보는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임금산시인의 조시묶음은 세월 속에서 헹구어낸 우리 민족의 가락과 시인의 나이테로만이 해석이 가능한 인간세상의 다양한 모습이 웅건한 울림이 되어 다가오는 것이다. 그것은 잘 길들여진 리듬감과 각고의 탁마 끝에 비로소 얻어진 보석같은 시어들로 해서 자칫 단숨에 읽힐지 모르지만 함부로 쉽게 읽어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편편주옥들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그러면 이제 다 같이 탁배기맛 시에 젖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달이 내게로 와서 노래가 될 때   은 조시 의 머리시 격으로 큰 스케일로 달에 대한 전방위적인 찬사를 유감없이 구가하고 있다. , , , , , , 등 거창한 시어들이 시의 스케일을 대변해주고 있거니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정신 등 교감을 통해 우주질서를 견인해내면서 인간세상을 관조하고 있다. 하면서도 시는 지나치지 않은 잔잔한 시어로의 시적감흥을 밑그림으로 깔아주면서 거창함과 유연함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시 독자들의 달 조시에 대한 몰입에 올리브유를 쳐주며 강렬한 구독을 부채질해주고 있는 것이다. 에 이르면 달 잔치를 빌어 나의 달 사랑을 잦은 휘모리로 표현해보이고 있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시적흐름으로도 숨가쁜 달사랑을 확인할수 있으며 입, 가슴, 머리칼, 팔, 다리, 눈썹, 귀 등 온몸으로 표현되는 달사랑은 수천억번의 키스를 가능케 하며 달 키스의 순결성에 공감하게 만든다. 그 많은 키스가 하나로 되어 내 가슴을 쭉 가른다는 단연 압권이다. 은 달집이 형상화되고 있다. 달을 찾아가서 만난 달은 달 구멍이 되기도 하고 달 잉태를 낳기도 하며 달집들이 터지고 엉키기도 한다. 달의 냇물, 달의 강, 달의 바다 그것은 시인이 만난 달이며 시인의 시적사고에서 비롯되는 달의 언어인 것이다. 바로 이런 달 언어에 편승하여 달조시의 낭자한 흐름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한편으로 시 독자들을 달 독자로 탈바꿈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는 의 연장선에 있다. 달집에 들어서니 달이 매대 앞에서 달을 판다. 기상천외한 판타지가 가능한 것이 바로 시라는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시인과 함께 달을 안고 달과 사랑을 나누다가 달에 코를 박고 달 꿈에 실려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상아가 달에 오를 때 이런 아름다운 장면이 연출되었으리라. 별다른 시적장치가 없어도 이 시가 지극히 아름답게 안겨오는 것은 바로 달에 대한 넘쳐나는 시인의 사랑이 안바침되고 있음이요 달 아니었던들 상기의 아름다운 풍경은 시적묘술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는 이색적이다. 달의 가는 허리라는 시적상상에 편승하여 거기에서 비롯되는 온갖 현상들이 마침내 시 독자들에게 공감대로 다가서는 것이다. 달의 가는 허리에서 달이 빠져나오고 빠져들어 가면서 봄, 청춘, 황금, 황제, 바람, 낙엽, 귀밑머리, 엄동, 신음, 귀신, 서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거의 카테고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상기 시어들이 왜 여기 나열되어야 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달이 충만 되고 이지러지는 일이 거듭되면 마침내 봄이 찾아오게 된다. 봄은 청춘과 통한다. 청춘은 인생의 황금시기라고 일컫는다. 황금은 황제의 특권이기도 하다. 황제는 늘 바람을 몰고 다닌다. 말하자면 호풍환우하는 것이다. 바람이 불면 낙엽은 지게 마련이요 낙엽이 진다는 것은 인생의 황혼 즉 귀밑머리의 퇴색을 의미한다. 그렇게 세상은 흐르면서 눈보라에 산천초목이 신음하던 엄동은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겨울의 신음소리는 귀신의 통곡소리를 연상시키고 귀신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귀신은 서시라 해도 대과는 없게 된다. 특히 서시까지의 연상은 월궁의 상아를 떠올리면 금세 안겨오는 시적대상물로 당연한 카테고리인지도 모른다. 자, 이쯤 시인의 상상을 추적해보았다. 가능하고 가능하며 달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채게 될 것이다. 에서는 달을 사랑하던 나머지 내가 달이 되어버린다. 달에 대한 찬사가 이번에는 달을 닮아버린 나의 일상에서 사품쳐 흐른다. 달의 유순함에서 순수의 나무를 키우고, 달의 밝음에서 순정의 샘물을 파내고, 달의 절절함에서 그리움의 싹을 얻는다. 달에 대한 노래가 격상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에서는 드디어 우리 민족이 달을 빌어 묘사되고 있다. 하얀 저고리, 하얗게 바래고, 저 여울지는 저고리 고름, 하얀 서리 등 이 시에서는 쉽게 채집되지만 시인이 알심들여 고른 시어들에서 우리는 민족의 혼을 볼수 있으며 세상 어느 민족보다 순결함을 지향하는 우리 민족 역시 지금껏 달과 함께해왔음을 감지할 수 있다. 에서는 달과 자연의 교감이 웅건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세상으로 보면 온갖 세상만사를 다 겪어온 달의 이야기는 별들이, 나무들이, 풀들이, 빌딩들이, 바람이 안다. 그래서 달을 쳐다보며 숙연해지는 시인의 마음을 우리는 어쩌면 알 수도 있으리라. 에서는 달에 대한 직설적인 고백이 눈물겹다. 달은 둥글어도 이지러져도 시인에게는 애모쁜 사랑의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그래서 어떤 모습이여도 고마운 달은 시인에게 언제나 슬프도록 행복한 존재인 것이다. 행복이 극에 달하면 슬프게 보이는가 슬픔이 극에 달하면 행복해지는가. 잠시 제쳐두고 달에 미쳐 달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만 확인해보는 선에서 일단 만족하자. 에서는 연쇄적인 수법을 활용하여 달을 노래하고 있다. 달 속에서 달이 나오고, 그 속에서 호수가 펼쳐지고, 호수주변에 수림이 설레고, 수림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늘 속에 흰 구름이 뜨고, 구름너머 아득히 하늘이 또 열리고, 나는 하늘을 휘감고 구름을 휘저으며 간다. 엄마야, 누이야 피터지게 외치는데 그 핏방울들이 흩뿌려져 살구꽃으로 피어난다. 세련된 아름다움이요 수채화 같은 장면이다. 꽃잎은 피로 색을 올려 더더욱 구슬프게 아름답다는 마지막 행에 시인의 달 노래가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조시라는 암시가 숨겨져 있다.     시가 일어서서 춤을 출 때   이상 임시인의 달 조시 10수를 한 수씩 반추해보았다. 달을 노래한 그 많은 시인들 중에서도 유독 임시인의 달 조시가 새삼스러운 까닭은 시의 폭(넓이)과 시의 심도(깊이)가 지금까지의 달시들에 비해 월등히 상위라는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아울러 아름다운 시어들의 몸짓이 사푼거리는 내지 너흘거리는 멋스런 춤사위로 우리한테 다가온다는 데서 그 두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다. 달을 사무치게 사랑하는 시인의 고아하면서도 설설 격정에 끓는 순수한 마음 앞에서 먼저 경건함을 여미고 접근해보기로 하자. 상기 10수의 시들은 일단 전혀 거리낌없이 달에 대한 시인의 송두리째 되는 고백을 동반하고 있다. 달을 바라보며 미치고 달을 미치도록 사랑하며 달 아니었던들 사랑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달 사랑을 주절거림에 추호의 망설임도 없는 시인은 땅 위에서 달을 바라보다가 달에 이끌려 달에 찾아가고 드디어 달로 화하면서 달과 일심동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다시 지상에 내려와 눈물겹도록 달을 바라보며 달에 대한 온전한 사랑을 다시다시 확인해본다. 왜 하필 달이었을까? 달보다 밝은 해도 아니고 달보다 기특한 별도 아니고 달보다 아름다운 그 무수히 많은 우주적 존재들을 다 제쳐두고 왜 하필이면 달이었을까? 일상에서 일반인이 바라보는 달은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나 시간을 알려주는(상현달이다가 보름달이다가 하현달이 되는) 존재나 기분을 돋궈주는 존재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눈에 비치는 달은 순수하며 깨끗하며 호젓하며 은은하며 내성적이며 독보적이며 이상적이다. 달은 또 여성적(월궁의 상아)이며 소녀적(거의 모든 소년들이 달을 향해 첫사랑의 고백을 중얼거려 보았으리라)이며 할머니적(달밤의 할머니 이야기)이며 애인적(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은 거의 반드시 달을 보며 왜 너는 비추는 내 애인을 나는 볼 수 없냐고 원망 한 마디 쯤 던져 보았으리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시인에게 있어 달은 사랑과 더불어 시적 창작의 원천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신적인 존재이며 아름다움의 절정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양인들에게 달의 존재는 저 비너스, 아폴로디테, 마돈나 등 유럽의 다양한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에 비견되는 존재로서 자고로 달에 대한 음풍영월은 단 한순간도 멈춰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 달이 임시인의 시붓에서 조시로 떠오르며 새롭게 거듭났는 바 여기에는 임시인의 시적 내공이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일상어인듯 아름다운 조화(폭력적 조합이 아닌 티없이 순수한 리얼적인 조합)를 이루는 시어들의 행진은 단아하면서도 격정이 있고 사품치면서도 이지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의 아름다움은 시어의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이며 시어의 아름다움은 시인의 사상의 아름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만큼 임시인의 심적 상태가 순수하고 깨끗하며 말숙하고 선량하며 폭포처럼 거창하면서도 깊은 소처럼 여울을 만들기도 하고 두루미처럼 끼끗하면서도 학처럼 도고함을 잃지 않는다는 방증이 되겠다. 시의 삼박자에서 시의 흐름과 시어들의 배렬과 시의 사상은 언제 어떤 시인의 어떤 시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다. 임시인의 달 조시가 단순히 달에 대한 찬가에 그쳤더라면 시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에서 아쉬움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기 10수의 시들을 부벼보면 거기에는 민족적인 맑은 영혼이 살아 숨 쉬고 그래서 우리는 임시인의 달시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호흡할 수 있는 것이다. 민족적인 시대적인 미래적인 높이와 깊이와 넓이의 시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라 해야겠다.   달은 저쯤에서 노래 부르고 상아는 저리 사푼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 임시인은 술잔을 잡은 채 시붓을 비스듬이 꼬나들고 있다. 이제 임시인의 조시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달의 노래가 끝나지 않는 한, 상아의 춤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 모두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기만 해도 무방할 터이다. 모처럼 아름다움의 경지를 보여준 임시인께 박수와 응원을 섞어보낸다. =================================== 림금산략력: 연변작가협회 리사, 시창작위원회 前 부주임, 사단법인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중국조선족소년보사 기자부 주임,동시집"사랑의 동그라미", "옹달샘,시집"불새" 등 출판,"리영식아동문학상", "백두아동문학상", "꽃망울"아동문학상,"정지용문학상" 등 수상,"연변주10대신문사업일군", "길림성우수신문사업자" 칭호수여받음. ================================= 강- 림금산 시인의 시 을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림금산   눈물을 버리지 말아라 놋대야에 잘 담아뒀다 화분에 주어라 그러면 눈물을 먹고 꽃은 피여난다 그 꽃에서 풍기는 향기는 눈물냄새가 나리라   아픔을 버리지 말고 하얀 손수건에 잘 싸두어라 그랬다가 가슴에 번열이 날때 꺼내보면 가슴에 봄이 내려앉는다 그 봄이파리에는 고름이 탐스럽게 열릴것이다   강- 눈물도 버리지 말고 아픔도 버리지 말라고 했는데요 왜서죠? 림금산- 네 사실 살아간다는것은 어찌보면 하나하나의 아픔의 련속이라고 할수도 있고 눈물의 련속이라고 할수도 있습니다. 어느 아름다운 사랑에 눈물이 동반되지 않은것이 있고 아픔이 동반되지 않은것이 있습니까? 또 반대로 눈물 한방울 없는 사랑과 아픔 한쪼각 없는 사랑이면 남들도 감동시키지 못하고 사랑을 깊이하고있는 장본인들도 감동받지 못할수 있죠…물론 여기서는 극적인 사랑이나 문학적인 사랑을 말한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렇습니다. 사랑다운 사랑을 한번 뻐근히 해보자면 눈물과 아픔이 이렇게 저렇게 동반될수도 있겠죠. 그래서 눈물은 아까운 거고 아픔도 또한 소중한거라 생각됩니다. 이 시는 아마 그런 눈물과 그런 아픔을 쓰려고 한것 같아요.    
14    중국조선족 시인 김춘희 篇 댓글:  조회:720  추천:0  2024-08-23
김춘희 시인 2015년 06월 19일 12시 31분  작성자: 림금산 김춘희 시인   서태문—안녕하십니까. 문학살롱에서 인사드리는 서태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연변에서 이름이 크게 날려지지 않았지만 좋은 전쟁시들을 많이 펴낸 주선우시인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오늘은 연변시인 김춘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늘도 림금산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림금산-네 수고하네요   서태문-네 감사합니다. 김춘희시인도 오래전부터 시를 쓰신 녀류시인이라고 알고있는데요. 오늘도 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 주겠어요?   림금산-네 김춘희시인은 1962.5.19---룡정 출생, 룡정 신안소학교졸업, 어려서부터 시를 좋아했습니다. 소학교나 중학교때에도 선생님들은 그가 쓴 시를 많이 칭찬해주셨고 범문으로 칠판에 써놓고 분석해주신적도 있습니다. 그는 가끔씩 필기장에다 시를 쓰군하였는데 아버지께서 버리시군 하였습니다. 룡정2중졸업 큐리부인같은 과학자가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후부터는 시를 쓰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리과성적이 아버지 기대와 같이 출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문성적은 여전히 좋아서 어문선생님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결국 리과가 안되면 조문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좇아 1981년7월에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였습니다. 1982년 봄, 친구와 함께 교실로 올라 가다가 길가에 돋아나는 새싹을 보면서 다시 시를 쓰고픈 충동을 가졌고 그래서 쓴 시가 “새싹”, “봄꿈”이였습니다. 연변대학 조문학부졸업, 흑룡강성탕원현문화관, 룡정시문화국, 연길시 연변대학부속중학교 연길시13중학교, 그간 시를 다시 시작하고 많이 발표도 했습니다. 길림신문같은데서는 상도 탄적 있고 방송에도 나왔던 적 있고 …여러가지 문단활동에도 참가하고…        연변대학 우상렬교수는 김춘희시인의 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서태문-네 대학교시절부터 시를 내놓은 김춘희시인인데요. 그럼 오늘도 먼저 그의 시를 감상하면서 시인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는 입니다.   어머니             김춘희   하나밖에 둘은 모르셨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함이라기엔 당신의 행복이라기엔 너무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아침에서 저녁에로 저녁에서 아침에로   봄에서 겨울에로 겨울에서 봄에로   눈서리 찬바람 다 맞으며 땡볕 더위 머리에 다 이고   자식 농사, 손군 농사 다 하고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먼먼 길에   365일 어느 하루가 남편 위한 하루가 아니였고   24시간 어느 순간이 자식 위한 순간이 아니였습니까?   당신밖에 모르는데 너희들밖에 없는데   눈물로 부르고 큰 소리로 말씀치 않으셔도   당신이 지나온 하루하루는 말합니다.   당신은 정녕 하나밖에 둘은 몰랐다고   정녕 하나밖에 둘은 없는줄 아셨다고   그래서 오늘은 나도 나를 당신 하나만으로 채우렵니다.   그 이름이 넘쳐 흘러 빛나는 날이면 빛을 따서 화환도 만들고 화환에게 길을 물을수 있도록   당신의 이름 새기며 그런 당신을 잊을수 있도록   서태문—네 김춘희 시인의 시였습니다. 어머니의 위대한 업적을 적은 시같은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금산-해설…..이 시에서 먼저는 숫자로 하나밖에 모르는 당신, 오직 그 하나 자식과 남편, 결국 내가족 하나만을 생각한 어머니를 피타게 부르며 노래합니다. 다음 이 시에서는 24시간 어느 한순간도 자식위한 순간이 아닌적 없다고 역시 숫자, 또 일년 365일 어느 하루하루가 남편위한 하루가 아니였나 반문합니다. 역시 수자지요 다음 이 시에서는 또 숫자적인것인데 아침에서 저녁에서 아침, 봄에서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이르기까지 어머님의 로고를 노래합니다. 여기서 아침에서 저녁 저녁에서 다시 아침, 봄에서 겨울 겨울에서 다시 봄도 역시 시간의 흐름인데 시간역시 수자인것입니다. 결국 매시간 매하루 매1년 시시각각 해해년년 오직 가족만 생각하고 유독 자신만은 생각하지 않은 위대한 어머님의 사랑을 읊조리고 있죠. 여기서 가족성원들은 남편 자식 손군들입니다. 자신만은 그 가운데 없습니다. 그럼 그이 자신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바로 자식들마음에 남아있지요 그래서 제일 마지막 부분에 그 이름이 넘쳐 흘러 빛나는 날이면/빛을 따서 화환도 만들고/화환에게 길을 물을수 있도록/당신의 이름 새기며/그런 당신을 잊을수 있도록/ 라고 종합합니다.   서태문—김춘희 시인도 우리 연변의 저명한 시인 김성휘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림금산-네, 저보다 한학년 후배인데요 그때 저희들은 잡지를 꾸리면서 시활동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김춘희씨는 적극적인 활약분자였어요. 연대조문계에 오셔서 시 인재를 선발하시느라 하던 김성휘선생님께서 과분하게 칭찬해주시면서 앞으로 우리 시단의 녀류시인으로 대를 이어가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리랑”에 그의 시도 발표해주시면서…..그후 그는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선생님의 학생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시를 발표할수 잇다는건 그에게 있어서 너무나 기쁜 일이였습니다. 그후 대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께서 애쓰셨지만 제가 원하는 글을 쓸수 있는 직장에 배치 받을수 없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녀자라고 어디서도 안 받겠다고 한다. 이게 너를 두고 쓴 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목책을 펼쳐보이며 안타까와하시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합니다.   서태문—일찍부터 시작품에 마음을 둔 김춘희시인이였는데요.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조용히 불러봅니다.                 김춘희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걸어도 뛰여도   떠오르는건 당신 모습뿐   고개 숙여도 고개 들어도 꽃이 펴도 꽃이 져도   들리는건 당신의 목소리뿐   조용히 불러봅니다 어머니---   눈물이 절로 납니다. 가슴이 절로 떨립니다.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솟아날 구멍은 없는가봅니다..   서태문—김춘희 시인의 시 였습니다. 역시 어머님을 쓴 시같은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금산-해설……아까 앞의 시에서 시간적인것, 수자적인것으로 어머님을 노래했다면요 이 시에서는 공간적인것으로 많이 어머님을 노래했습니다. 앞뒤, 고개숙이는것과 고개를 들어서 공간에서 찾는것, 꽃이 펴도 져도, 걸어도 뛰여도 …또 하늘을 봐도 땅을 봐도 솟아날 구멍,  …등등 표현은 모두 공간적인 측면에서 어머니를 노래하는겁니다. 시인은  공간적인데 어머니란 위대한 이름을 세워놓고 다각도 다 층차로 노래합니다. 여기서 다각도 다층차란 눈으로 찾는것, 귀로 듣는것, 눈으로 흘리는것 가슴으로 느끼는것 등 청각적, 시각적, 촉각적인 측면에서 어머니에 대한 진지한 정감을 주고받습니다. 이래서 다층차 다각도라고 하는겁니다.   서—김춘희시인님은 흑룡강성에도 가 있었다면서요…왜서 연변분인데 흑룡강에 가셨을가요? 흑룡강성에 가서는 어떤 일들을 했습니까? 림-네 1985.9월부터 1996년9월까지 흑룡강 탕원현문화관에서 근무하면서 가끔씩 시를 썼지만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남편따라 흑룡강에 가게 되였구요. “아리랑”에 소부분을 발표햇습니다. 1996년7월에 연변 룡정문화관으로 돌아와  1997년까지 근무하다가 그해 9월에 연길시 연변대학부속중학교 조문교원으로 전근하였습니다. 연길로 돌아온후 선배선생님들의 고무격려하에 가끔씩 시를 썻습니다. “김성휘선생님이랑 아끼시던 춘희인데 이대로 사라지면 선생님께 미안하지도 않는가”라는 선배시인의 말씀에 시창작을 다시 시작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문단이나 수상에는 관심 가지지 않기로했습니다. 2011.11월 연변대학부속중학교가 페교되면서  지금은 연길시 13중 조문교원으로 있습니다. 서—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입니다. 어떤 내용을 적고있는지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령전에 무릎 꿇고                 김춘희   어머님 령전에 무릎 꿇고 333배를 올립니다.   이 몸이야 쪼각난들 어떠리 어머님 그 은혜 못 잊어   무릎 꿇고 333배를 올립니다.   불효에 가슴 치고 그리움에 목 놓아   이마가 터지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무릎 꿇고 두손 마주 333배를 올립니다.   어머님 령전에 이 한몸 바칩니다.   서—저 세상으로 가버린 어머니를 적고있습니다. 삼백서른 세번이란 수자가 인상깊은데요. 시인이 어머님에 대한 사랑을 리해될것 같습니다. 이 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분석해주시겠습니까.   림—해설: 여기서는 주로 과장의 수법으로 위대한 어머님을 노래합니다. 절을 세번이 아니라 333번 한다든가 물론 서장에서는 이마가 터져 피흐르게 쪼아대지만 여기서는 과장으로 씌였다고 해야겠죠 그리고 이 한몸 통채로 령전에 바친다 역시 과장이죠 이 마음과 몸을 다 바쳐 부어올린 술잔이나 음식을 령전에 올린다는게 아니라 이 한몸 통째로 바치다는 표현은 역시 과장이죠 이런 수법을 통해서 시인 마음속의 절절한 추모의 감정을 더욱 강하게 들어내는 목적을 달성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좋은 방법도 있겠지만 시인은 그 수법상 재래의 방법만 쓰고 있습니다. 이 점은 시인 자신이 앞으로 시창작수법상 많은 현대적이고 우수한 표현수법이나 형식들을 많이 탐구해야겠죠…   서—김춘희시인은 특별히 어머니에 대한 시에 애착을 가지고 어머니에 대한 시를 많이 쓰는것 같습니다. 왜서 어머님께 이렇게 집착할가요?   림-네 김춘희시인의 말을 빈다면   2015년1월31일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장례식에 갔댔는데요…그의 어머님은 무릎관절때문에 걱정은 많았어도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실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2014년7월14일 담낭염이라는 오진으로 담낭수술을 했었는데 실은 담낭암이였습니다. 수술후 암세포들이 간에 전이되여 어쩔수 없이 두눈 펀이 뜨고 어머니를 보내드릴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은줄도 모르시고 병이 낫기를 기다려 이것저것 계획하시는것을 곁에서 지켜본다는것은 참으로 목이 메고 가슴 터지는 일이였습니다. 누구 한번 나쁘게 생각지 않고 오직 아버지와 자식들을 위해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삶에 대한 의욕과 사랑을 잃지 않고 한결같이 정결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였습니다. 김춘희시인이 어렸을때부터 장기환자인 아버지때문에 모진 고생을 다했습니다. 아버지 따라 신강 가느라 병원 직업 다 잃고 … 룡정에서 벽돌공장의 남자들 하는 일을 포함해 안 해본일 없었습니다.   서—네 시인이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을 리해할수 있는데요.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당신이 계실 땐             김춘희   당신이 계실 땐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로 몰랐습니다   어느날엔가는 당신이 떠나시리라는것을   그것을 알았더라면 그것을 깨우쳣더라면   이렇게 이렇게 돌아보면서 울고만 있지는 않을걸   어이 하시랍니까? 당신이 언젠가는 가시리라는걸   정말로 정말로 몰랐던 나는!   서—김춘희 시인의 시였습니다. 이 시도 어머님을 적은 시리고 보아야 할까요?   림—김춘희시인의 말을 들어보시면 이 시의 참뜻을 인츰 알게 됩니다   서-많은 분들의 마음의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럼 계속해서 다음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을 듣겠습니다.   당신 없는 봄은                  김춘희   당신 없는 봄은 봄이 아닙니다.   걸음은 락타처럼 느리고   마음은 미련 없는 연기처럼 한숨만 토할 뿐   당신 없는 봄은 봄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안에 숨은 어머님 옷자락일뿐입니다.   서—김춘희 시인의 시이였습니다. 이 시도 올해에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해설 부탁드리겠습니다.   림—해설….봄이 왔지만 엄마없는 봄은 스산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위에 갔다가 집에 들어와도 어머님이 없으니 집분위기가 말이 아니고 마당에 나가도 어머니가 안보이니 기분이 썰렁한것처럼 저 산 저 언덕에 봄이 왔어도 엄마없는 봄은 봄이 아니라고 시인은 우깁니다. 봄이면 날듯한 기분이겟는데 락타걸음처럼 느리다고 합니다. 또 맘으로는 연기같은 한숨만 풀썩 풀썩 토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재치있게 엄마없는 봄은 봄인게 아니라 내안에 있는 엄마 옷자락 즉 엄마옷자락의 펄럭임이라고 했습니다. 시인의 눈에는 온 산 온 봄의 한복판에 펄럭이는 엄마옷자락밖에 안보이지요 마무리가 아주 잘됐습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톡 치는 무엇이 잘 형상화 되였죠   서-김춘희 시인의 문학관 같은것이 있습니까? 김춘희시인은 문학을 어떻게 특히 시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주실수 있을가요?   림-네 김춘희시인의 말을 빈다면 “문학으로서의 시는 대중의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서 마음에로 수첩에서 수첩에로 전해질수 있는 시라야만 좋은 시라고 생각습니다. 투명하든 몽롱하든 독자들의 감정을 순화시키고 위무하며 고양시켜주는 시는 다 훌륭한 시라고 생각습니다. 너무 몽롱하여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야 터득이 되거나 아예 터득되지 않는 시는 물론 제외고. 앞으로 시와 생활에 대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을겁니다. 어머니에 관한 좋은 시, 아버지에 관한 좋은 시를 써내기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할겁니다. 내 부모 한번 좋은 시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내가 무슨 시인이랴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저 개인의 생각으로는 김시인께서 앞으로 좀더 많은 여러가지 현대적인 표현수법들을 연구해서 시를 장식하였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남들은 여러가지 신식무기를 척척 잘도 쓰는데 한두가지 무기로는 시를 이쁘게 장식하기 어렵겠죠… 남들이 중기관총으로 좋은 탄알을 재워넣고 뚜루룩 뚜루룩- 갈기는데 보총으로 한방한방 쏘면 좀 힘들겠죠… 좋은 탄알이란 시어겠죠…미국같은데서는 전문적으로 시인이나 작가들한테 창작수법만 훈련시키는 그런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엄가령(严歌苓)-미국적 화인인데 이분도 이런 학교를 다녔다는데 이 분의 많은 소설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였는데요 장예모감독도 이분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게 있죠… 명사와 명사의 조합이 때론 형용사보다 단어들을 더욱 살려주고 더욱 도약해줄수 있죠 통통뛰고 살아움직이게 …그리고 단어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시에 후각적이고 시각적이며 또한 촉각적인걸로 만들어 줄수 있죠… 례하면 네 마음속의  눈동자가/ 내맘속의 눈동자와 부딪칠때/ 나의 마음 하늘엔 숱한 별무리가/ 떨기떨기 피여난다…/뭐 이러루한 것이겠죠 …/노로 물밑의 달을 저으니/ 쪽배는 물밑의 하늘을 가른다… /(당나라 가도의 시구절)등 … 그리고 김춘희시인의 어떤 시들은 조금은 직설적인 면도 보입니다. 좀 더 알맞는 옷들을 잘 말가 입혀 내놓으면 더 좋지않았을가? 벌거벗고 나서기보담, 그리고 좀더 정서를 안에 꽉 짜서 안에다 재웠다 터쳤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떤 정서는 아예 재워만 주고 터치우지 말든지… 그래서 독자들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저절로 터지게 하든지…그저 겉면에서 아, 오 하지말구요..이 면에서 좀더 사로를 넓게 틔우고 시의 오색령롱한 빛갈을 맘껏 더 현란하게 파냈으면 하는 바랩입니다. 워낙 시적 기초가 든든하고 감수성이 뛰여난 분이라 이면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돌파가 있으리라 굳게 믿습니다.    서—김춘희시인의 시를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되였습니다. 어머니를 주제로 적은 시들이였는데요. 정말 많은 분들이 마음속에 두고도 글로 써내지 못한 어머님에 대한 시를 김춘희시인이 써내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어머님에 대한 더 좋고 많은 시작품을 써내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림선생님 오늘도 좋은 소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서태문-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이만 줄이겠습니다. 저는 다음 시간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13    중국조선족 시인 리문호 篇 댓글:  조회:831  추천:0  2024-08-23
시인 리문호 2014년 08월 17일 13시 10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우리 시단의 녀류시인 최기자님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들을 만나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료녕성에서 다년간 살아오면서 많은 좋은 시들을 펴낸 료녕시인 리문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반갑습니다. 신—리문호라고 하면 료녕성쪽에서는 많은 분들이 잘 알고있는 시인이라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시를 쓰신지 오래되엿습니까? 그럼 먼저 리문호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네 리문호시인은 70년대 으로 시단데뷔, 그러니깐 시창작시간이 30년도 넘었지요. 2007년 8월 26일 11회 연변 지용제 정지용 문학상 수상했구요 KBS성립 45주년과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망향시 우수상 2차 수상하엿고 연변작가협회 회원, 료녕성 작가협회 회원, 심양조선족문학회 부회장, 심양시 시조문학회 부회장 등을 력임하였습니다. 시집 등이 있음 신—리시인은 낚시질을 아주 즐겨한다면서요 ? 림—네 료녕의 거의 강과 호수는 다 돌아다니면서 낚시질하는 분이라고 하데요. 신—낚시질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하는 행사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시인인 리문호가 낚시질을 하는건 어떤 의미같은것이 부여되나요?   림—네, 리문호시인은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총적으로 낚시질은 마음을 정화하고 성정을 다스리는 일이요 속세를 떠나 신선이 된기분이요 자연으로 회귀한 기분이요 참을성과 강한 의지를 련마하는 일이요 무한의 시공에 잠기여 사유를 넓이는 일이다” 신—그렇다면 리시인의 시문학관을 어떻게 말할수 있겠습니까? 림—그가 다섯번째 시집을 내면서 쓴 시가 있는데요 이 시에서 그의 시문학관을 우리는 잘 알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시(詩)래기 –(诗来记) -        다섯번째 시집 을 내며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질긴 고집으로 엮은 배추시래기 무시래기 그리고 끓는 물에 데친 민들레 취나물 한 다랑구 두 다랑구, 무정의 바람에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무미(無味)와 무감(無感)의 줄거리, 상가나 마트에 내 놓지 못할 값도 없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울부짓는 소리도 메말라 사락사락 호탕한 웃음소리도 메말라 바작바작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싱싱 파랗던 고락의 시래기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시집 한권을 또 낸다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집 한권을 또 낸다   림—제목을 시래기(诗来记)라고 한건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찌개를 끓이는 시래기와 诗来记(시가 오다)가 우리 말로 대조시켜보면 음이 같던요 시인은 이걸 이용해서 자기의 시를 시래기에 겸손하게 비유했고 또 그러면서 자신의 시가 오게된 과정을 말하겠다는 뜻이겠지요 이 시를 살펴보면 그의 시는 “바즈작 바즈작 부서지는 기쁨과 슬픔과 인정이 말라버린” 시래기같은 시, 상가나 마트에 내놓지 못하는 그런 시, 세상길에서 허리 굽혀 줏어 모은 한 아름 된장국이 될가 개장국이 될가 모르는 시,   하지만 그의 시는 또 “집념의 고혈이 까맣게 마른”, “눈물도 메말라 소금끼가 하얗게 돋은 허무와 고민의 아픔이 건조된” 시인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시인이 추구하는 시는 눈물을 말리워서 쓴 생활의 밑바닥에서 우려낸 시임을 알수 있고 짜디짠 소금끼가 하얗게 돋을 정도로 생활에 푹 절은 시를 추구하고 있음을 알수있고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탁마가공해서 건조시킨 시임을 쉽게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즉 현실의 허무와 고민의 아픔을 쓴 시를 추구하고 사실주의의 기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시인임을 알수 있고 생활이 있는, 최하층 삶을 읊어가는 시인임을 알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문호시인의 시창작 자세와 문학창작에 입문하는 그 각도를 잘 보아낼수 있다. 신—리시인은 자신의 창작담에서도 자기의 시문학관에 대해서 많이 말슴했다고 들었는데요 림—네, 자신의 창작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적 기교와 묘한 언어는 시적 내용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여야해요, 그럼으로서 극치를 보여주어야해요, 즉 감동을 주어야해요. 내용이 없는 기교나 무리한 언어의 조합은 시로 인정할수 없어요 ---누구나 다 좋은 시를 쓸수 있어요.. 문제는 시적 발견이에요. 자기만의 개성으로 쓰는 시와 다른 시인이 쓰지 못하는 시를 어떻게 발견하는가하는 문제에요.. --시적 발견은 시인의 지식, 체험, 감수에서 나타나는 것이에요. 시인이 인문학적 바탕이 없으면 좋은 시적 발견이 있을수 없어요, 사물을 관찰하는데 인문학적인 안광이 있어야해요 ---한수의 시가 발표되였을때 시인의 이름은 자기만의 것이 아니에요. 사회적인 것이에요. 그러기에 신중성이 필요해요. 즉 어떤 이미지의 특징적인 이름으로 사회에 나타나는가하는 문제에요. 독자들에게 그의 시적 형상의 이름을 심어주는 것이지요.그러기에 시를 쓰는것은 장난이 아니에요 ---고금중외 책을 많이 보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자기의 시적세계를 넓혀야해요,특히 명시는 반복 구독하고 연구해야해요, 모르고는 형상을 창조할수 없어요, 독서는 어떤 의미에서 시창작보다 백배의 노력이 더 수요되지요, 이것이 바로 자기의 개성을 수립하고 창작 바탕을 두텁게 다지는 일이에요. 바탕이 엷으면 시창작의 다산은 불가능하지요 ---사물에 대한 감수성은 시인의 발상에 불꽃을 튀겨주는 것이에요, 풍부한 감정이 없이 좋은 시를 쓸수없어요. 감정이란 생활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것이에요. 생활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울고 웃고, 슬프고 기쁘고, 고민하고 염오하고, 서럽고 우울하고, 애상하고 그립고, 열렬하고 헌신적인 감정이 있을수 없어요, 시인의 감수성은 이런 생활에서 축적되는것이에요. 생활을 사랑하는것은 자기 인생에대한 가치의 책임감에서 오는것이에요 ----상상--- 시간과 공간속엔 무수한 시적 소재가있어요. 상상력은 무한히 넓은 시적 무대를 열어가는것이에요. ----시인은 몸으로 감각하고 마음으로 감수해요, 여기에는 시적 자질이 있어야 해요,  시인은 쉽게 된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몇편의 시를 발표하고 시인이 되였다고 더욱 생각말아요, 장기적인 고군분투를 거치는 심혈이 필요해요, 지독하게 노력하는 자만이 이 계관을 따올수 있어요. ---수련, 공유적 욕구, 나만의 정신생활 ---시인에게 왜 시인이 되려했는냐 물으면 참 답복하기 힘들어요. 천부와 그리고 후천적 동기, 처한 생활환경이 그를 시인에 지향하게 되였거든요.. 시를 쓰는것은 자기의 마음을 수련하고 자기의 새로운 정신적, 감정적 세계를 풍부히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느낀 느낌과 정을 더 많은 독자와 공유하려는 욕구가 있는것이에요. 시창작을 수련이라고 생각하면 고생도 달갑겠지요. 다른 사람이 없는 하나의 풍부한 정신생활이에요.   신—그럼 아래에 리문호시인의 시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깊이 이 시인을 료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걸인과 시”를 함께 감상하시죠   걸인과 시인                   리문호   상해 한 지하철 입구, 사람들을 향해 깡통의 깡전을 요란히 흔드는 저 걸인   금은보화 가득찬 이 세상을 향해 차거운 깡전 한잎 애걸하는 눈빛   문뜩 그의 눈빛에서 나는 나를 본다   나는 정을 동냥하러 방랑하는 시인 도시를 헤맨다, 레온등 불빛을 헤친다   인정은 어디로가고 음침한 황금 사막인가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갈망의 거리에서 부르짓으며 나는 녹쓴 마음을 쇠줄에 꿰여 들고 깡통처럼 흔들며 다니는 걸인 ! 신- 참 신기하네요 대도시 상해에서 걸인을 썼고 또 걸인과 시인을 대비적으로 쓰면서 뭔가 시인의 의도를 부여한것 같은데요? 림—해설: 이 시에서는 거리에서 동전을 동냥하는 걸인과 인정이 메마른 거리를 누비며 시를 동냥하는 시인을 대비적으로 묘사하면서 부에로 날아가는 도시에 아직도 불쌍한 생명이 있는것과 인정이 메말라 가는 거리에 아직도 후한 정을 동냥하는 불쌍한 생명을 잘 보여주었다. 기발한 착상입니다. 중국의 부유한 도시 상해 거리바닥에 나부러진 두 걸인 하나는 물질상의 걸인, 하나는 정신상의 걸인…대비적 수법…실물인 깡통, 녹쓴 마음의 깡통 여기서 “가상과 공상과 추상에  건초같은 나의 시 불을 지를까?” 등 표현은 살아가기 힘든 시인의 심정을 아주 잘 표현, 다른 시인들도 앞의 장면묘사는 어느 정도 할수 있겠지만 이 구절은 이 시인만이 내 던질수 있는 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신호등                리문호   파란빛, 노란빛, 빨간빛 물막이처럼 올리고 닫히는 십자거리 어느 물목으로 가라는 신호냐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섭에 은어 한마리 고향의 개울 그리며 두눈은 향수에 흐려라   제 노는 물 따로 있거늘 조수에 쓸리는 괴로움 오죽이나 옛 생각의 지느러미 저리도 저으랴     림—이 시는 십자거리의 신호등을 보고 서로 제갈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갈길은 이 휘넓고 눈이 뒤집히는 호화스런 시중심이 아니라 고향, 신선한 공기와 자연임을 자각하는 시인을 볼수 있다. 시인은 별로 현대문명에 미련이 없는듯 싶다. “상어와 고래들이 물결쳐가는 곳에 은어 한마리는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고향의 개울가를 그리고 두눈은 향수(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흐려진다 그래서 제노는 물 따로 있다고 은어는 지느러미를 막 그 그 쪽으로 젓는다 조수에 아프게 쓸리우지만 계속 제쪽으로 젓는 은어…그것이 바로 피여나는 안개와 신선한 공기로 충만된 자연을 그리고 고향의 산천초목을 그리는 시인자신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상해의 십자거리에선 시인의 순수한 마음을 읽을수있고 깨끗한 향수의 마음을 읽을수 있는것이다.   백 년을 못 사는 사람들이            천 년을 살겠다는 자라를 잡아 먹는다            양자강 류역의 어느 한 호텔식당            료리사가 산 자라를 들고 와            료리 솜씨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자라는 천년을 기어 가야 할 네발을            천 년의 허공에 발버둥치며            무엇을 소리 없이 부르짖다가            주방, 비참히 도살장으로 끌려간다            얼마 후 하아얀 백자옹에            자라의 눈물과 한, 그리고                                                                                 그의 부르짖음 소리가            젖빛 뽀얀 곰탕이 되여            식탁 정중에 오른다            - 자, 듭시다, 몸 보신에 좋습니다            금이빨 사장의 말, 드디어            금 숟갈들이 오고 가고            은 젓가락들이 집어가고            입들은 냠냠, 훌훌,             자라가 장송곡 부르며 목 고개를 넘어간다            곰탕에 우러난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술상에 뒹구는            탐욕의 찌꺼기들…….            쌓인 쓰레기 너머로 백 년이 흘러            야윈 우리의 후손들이            손 가락을 빨며          우리를 원망하고 있다                      - 고기는 다 뜯어 먹고          가시와 뼈다귀만 남겨 놓았다고               림—이 시는 선에 수록되였고 역시 리문호시인의 대표작의 하나라고 할수 있겠죠 조선족고급중학교과서 조선어문 필수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시인은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자라곰탕을 끊여먹는 장면을 통하여 현시대를 인간들의 팽창된 심리적 욕구와 앞으로의 미래를 먹어가는 아픔을 읊조리고 있다. 이 시는 록색시라고도 할수 있지만 저개인적으로는 록색시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서 인간들의 팽창된 타락과 코앞밖에 못보는 무지하고 욕념에 절어버린 현대사회에 대한 시인의 타는 부르짖음이라고 생각한다.     … … 천 년의 정한은 달고            김 안개에 서리는            세월의 슬픔은 향긋하다            우리는 지금 파렴치하게            우리 것이 아닌 미래를 먹는다   참으로 억이 막혀 더 말이 안나가게 만드는 대목이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천년을 살아가야 하는 자라를 삶아서 국물까지 다 마이고 뼈다귀만 달랑 천년후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이 장면, 너무나 어이가 없다… 우리는 눈물을 거들먹이 고이면서 자라의 립장에서 생각해보게 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얄미운 인간들을 기소롭게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탄식하게 되고 비탄하게 되고 통탄하게 되는것이다. 여기에 또 이 시인의 부르짖음이 있고 이 시의 성공이 있는것이다.                벽계수                            리문호               청산벽곡에          미역 감던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길게 늘어져          요리조리 휘젓히네          그우로          해와 달이          조약돌처럼 굴러가고          별들이 모래알처럼 흘러가네          두손으로          한자락 떠 마시면          가슴 골골에도          시원스레 팔락이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위들의 속삭임소리          청산의 맑은 웃음소리          가슴 속속          아름다운 노래로 화음하네.   신—이 시 역시 중국조선족명시선에 오른 시라지요 참 아름다운 시입니다. 림—그렇죠 청산벽곡에 흐르는 벽계수에 소녀가 풀어놓은 파란 댕기가 여울치고 그우에 해달이 조약돌처럼 구르고 또 별들이 모래알처럼 흐른다는 건 참 아름답고도 기발한 상상이죠 하늘의 해와 달, 별까지 다 벽계수의 구성물이 되게 아름다운 미의 극치를 쪼아새겼죠 역시 시인의 깨끗함을 추구하는 맑은 마음을 들여다 볼수있고 한생을 깨끗함을 추구하는 참삶의 참인생의 발로라고 할수있지요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이 시인의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리게 되고 동감하게 되고 또 그런 와중에 우리의 마음도 순화되고 려과되는 감을 받아안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이 시의 성공이 있겠죠 신-네 참 아름다운 시인데요 우리의 마음도 벽계수처럼 정화되는 감을 느끼게 해주는데요 벌써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료녕을 대표하는 시인중의 한분이신 리문호와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으로 인상이 깊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어요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 프로 여기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12    중국조선족 시인 최기자 篇 댓글:  조회:737  추천:0  2024-08-23
최기자 시인 2014년 08월 12일 17시 18분  작성자: 림금산   서태문-문학살롱프로에서 인사드리는 서태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년간 조선족예술단 창작실에서 가사창작을 하시면서 많은 시를 써낸 중견시인 박장길과 그의 일부 시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중국조선어문 잡지사에서 부주필로 사업하시면서 시, 수필 등을 많이 창작하신 녀류시인 최기자선생과 그의 일부 시편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림선생님,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서—최기자라고 하면 년세가 좀 계시는 분인줄로 알고 있는데요 저도 최기자선생을 잘 아는 사이인데요. 사람 참 좋은 분이시죠, 성격도 좋으시구…집체호에도 내려갔었죠? 언제 출생했으며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먼저 최시인의 프로필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림-네 최기자시인은 1947년 1월11일 연길 출생. 연길시 공원소학교 졸업. 소대장, 연길시 3중 졸업. 대대위원, 학교 공청단선전위원 연변일중 졸업. 단지부서기, 학교공청단위원회 선전위원 소학교때 , ,와 같은   책읽기를 즐기고 글짓기와 시랑송에 흥취가 있었음. 리상은 대학공부를 마치고 작가나 변호사가 되는것이였지만 1966년 고중졸업을 앞두고 문화혁명바람에 휘말려 농촌으로  내려갔음.   하향하여 문학의 꿈을 버리지 않고 가사, 시 등을 쓰면서 대대선전대의 청탁으로 연길시 신풍대대 선전대의 연출자료, 이를테면 가사, 삼로인, 극본 등을 썼다. 1973년 가사 등이 연변방송과 텔레비 우수가요상을 받았고 수필 가 연변일보 을 수상. 시 가 18회두만강여울소리 탐구회 우수상, 가 25회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이 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을 받음. 시 이 에 수록되였고  시 무제(2), 종합포도술(2) 가 에 수록되였음. 그외 교육론문 십여편이 시,주, 성, 전국급우수론문상을 받았음. 길림성신문출판우수작품편집 2등상과 3등상을 수상. 길림성정부 민족사무위원회로부터 네차례 선진사업자로 표창받음. 저서로는 시집 2006.12 (길림성 우수도서)(공저)  연변교육출판사 (공저))   연변대학출판사 (공저)  연변인민출판사 연변조선족녀류시회 초대회장,  사단법인 연변조선족어머니수필회 회장을 력임하고 녀류시회 회원 작품집 2권과 어머니수필회 회원작품집 1권을 펴냈다. 3회로 되는 중국조선족어머니수필상 응모를 벌리고 시상식을 가졌다.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단풍수필회 회원, 연변시인협회 회원,   가정—아들딸이 다 일본 류학생이다. 최기자시인은 45세에 남편을 잃는다. 시인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고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도 일찍 남편 잃었단다. 그래서 며느리는 절대 최씨를 안삼는다고 했는데 장씨를 삼았다. ㅎ   서—최기자 시인께서 문학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면 어떤것들이 있습니까? 림-네 얼마전 서로 메일이 통했는데 최시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문학은 흥취만으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독과 고통과 아픔과 희열을 망라한 생활이 있고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할줄로 안다. 한두편의 문학작품을 발표하였다고 문학가로 된것은 아니다. 나는 종래로 내가 시인이나 수필가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그저 시나 수필을 좋아하고 시나 수필창작에 노력하는 사람중의  한사람이다. 선배님들은 물론 후배들에게서도 허심히 배우면서 창작능력을 키우고 문학소양을 쌓아가고있는중이다. 나는 시를 쓰고싶어서, 쓰지 않고는 못견딜것 같을 때 쓴다. 가장 알맞는 언어 하나를 발견하였거나 정말로 신선한 시어로 내 감성과 감정을 토로하였거나 독자들에게 순간이나마 가슴을 탁 칠수도 있음직한 시 한수을 써낸후의 그 희열과 짜릿함은 무엇이라 형언할수 없다. 솔직히 는 것이 그리 쉬운것이 아니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 모두가 일정한 문학소양을 구비하였을 때에 가능하지 않을가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신-최기자시인의 시집 출간기념식도 가졌다면서요? 시집이 어떻게 평가되였습니까? 림—네, 시집 (2006.12)출간기념식이 있었는데요     문학평론가이며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회장은 인생살이가 묻혀나오고있는 이 시집은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의지, 저항의 시적응전이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있는 좋은 시들을 담았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출처(연변모이자 yanbian.moyiza.com) : 최기자 - 최기자 시집 《아침에 머리카락 줏는 녀자》 출간 - http://yanbian.moyiza.com/jizi/82003   서태문—그럼 최시인의 시들을 감상하면서 그의 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겠는데요 먼저 최기자시인의 시 “굴”을 함께 감상하면서 그 뜻을 음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굴(牡蛎) _대련에서 굴을 까며              최기자     꼭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기어이 돌로 살려는 속심을         결코 가볍게 부산떨지 않았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굳게 문 닫아걸고                    홀로 어둠속에서 묵묵히 소금 끓여 우유를 빚지만 집이 떠나가면 집을 빼앗기면 젖빛같은 눈물 흘리며                             두부같이 연한 알몸을 고스란히 통채로 바치는것이                                         고작 돌에 살아야 하는 리유와 돌로 사는 보람이였던가            시방 돌이 아닌 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있다 (2009.7.26)   서태문—바다에서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로 적은것 같은데요 실생활에서 느낀 시여서 퍼그나 생활맛이 짙게 풍기고 또 철리적인 일면도 있는것 같은데요   림금산—해설: 네, 대련에 있는 딸집에 갔다가 굴을 캐면서 느낀 감수를 시화했는데 역시 특이하다. 제재가 역시 평소 시인들이 자주 쓰지않는 제재이다. 이 시는 제26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우수상 수상작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굴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통하여 우리 현실의 수고한 인간이 수고한 대가를 받지못하고 억울하게 당하는 그 인간상을  조명하였다. 굴은 자기한테 주어진 운명앞에서 절대로 락방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무섭게 달려드는 파도와 귀찮게 감겨드는 바다풀과 얄밉게 달라붙는 벌레따위도 바위에 뿌리 박고 하늘 향해 피여나는 그 옹골찬 몸짓을 막지 못했다            그만큼 굴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지 않았고 고스란히 연한 알몸을 통채로 인간에게 바친다. 즉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간다. 헌데 그 인간들이 문제다. 사실 굴의 집은 돌이고 바위이다 헌데 돌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즉 돌이 아닌 돌들이 그의 목숨을 씹어대고 있다. 여기서 돌이 아닌 돌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두번째 돌은 결국 아둔한 인간들을 암시하고 있는것이다. 한생을 돌을 붙잡고 살았지만 나중엔 돌에 목숨을 바친것이 아니라 돌도 아닌 인간들에게 잡히워 씹힌것이다. 아주 억울한 한생이요 불공평한 한생의 막끝이다. 화자는 여기서 굴의 억울함을 현실을 위해서 죽도록 헌신했지만 되려 그 현실에 버림받고 억울함을 당하는 인간으로 상징하였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이다. 특히 문화혁명후기에 이런 악성일들이 많이 벌어지였다. 그 어떤 조직이나 집단을 위해 헌신했지만 조직의 불신임에 의심받게 되고 갇혀서 고생하다 무주고혼이 된 우수한 인간들이 아주 많았다. 시는 굴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비리와 현실의 암흑면을 아주 예리하게 풍자 비판한것이다. 여기에 이 시의 깊은 무게가 있지 않을가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진짜 눈물나는 시이다…   서—다음은 최시인의 시 “정자의 미로”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탄 시라고 하는데요…       정자의 미로             최기자   수억의 경쟁을 물리치고 나는 태여났다 시공의 한순간에   세상에 나왔으나 내가 갈 길은 어디인가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오존층 페는 구멍이 뚫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갈곳이 없다 빛을 잃은 반디불과 숨죽은 개구리 기침을 쿨룩이는 창백한 사나이에 도시는 피를 토하고 아파트마다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피임을 선언했다   아, 어디로 가야 하나 깊은 밤 미궁을 헤매다가 잠을 청한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깝다는 한 모금의 신앙으로 할머니적부터 넘겨받은 표주박을 들고 생수 마시러 산으로 가는 녹색의 꿈을 찾아 잠을 청한다   서태문--네 역시 제18회 두만강여울소리 상을 받은 시인데요 제18차라면 아마도 근 10년전에 쓴 시같은데요 그때 감히 정자에 대해서 쓴다는건 어딘가 대담하고 특이한 소재를 다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림금산—네 참 신기하다 할 정도입니다. 그때에 대담하게 이런 소재를 이 정도로 시화했다는건 조련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주로 자연오염과 생태파괴에 대한 주제를 다룬것 같은데요 어딘가 생신한 제재이면서도 또 그때 금방 성행되기 시작한 록색문학류에 속하는 시라고 봅니다. 시인은 시에서 파괴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의 적라라한 현모습을 그려내면서 “수억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태여난 정자”가 갈곳이 없어서 방황하는 묘사를 통하여 당시 너무나 생태환경을 홀시하고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오염이 심했던 현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정자가 세상에 나왔으나 갈곳이 없다. 공기는 혼탁하고 물은 썩고 지구의 오존층은 구멍이 뚫리고 반디불은 빛을 잃고 개구리는 숨을 죽였으며 사나이는 기침을 깇고 도시는 또 피를 토하고 아파트에 걸려있는 젊은 팬티는 임신하지 않겠다고 피임을 선언했다. 그래서 갈곳없어서 온밤 자지못하고 새벽을 기다린다. 여기서 새벽은 오염이 가셔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새벽이 도래하면 오염안된 할머니의 표주박을 들고 오염안된 산속의 생수마시러 갈 것을 생각하고 겨우 잠을 청한다. 온 시가지에 오염안된것이 없으니깐 산에다 희망을 걸고 산으로 갈 꿈을 꾸는 불쌍한 정자의 신세다. 우리 연길시로 말하면 모아산에 물길러 다니는 식이다. 총적으로 이 시는 록색시로서 심하게 오염된 자연과 오염된 인간사회를 준렬히 비판한 시이다. 10년전에 이런 시를 썼다는건 최시인의 시적 안광이 아주 예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된다.  종합포도술(1)            최기자   낮고 비좁은 무도장에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녀자들이 알몸으로 혹은 면사포만 가리고 퐁당퐁당 뛰여들어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춤을 춘다  어떤 게슴츠레한 염색체들만이 붉은 유혹을 후룩후룩 들이킨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라체춤을 추다가 죽었다   서태문—포도주가 형성되는 과정을 무도장의 상황에 비유해서 다루었는데 기발하고 독특하다고 느껴집니다.   림금산—해설: 이시는 2009년 중국코리언명시정선에 오른 시이다.   그렇다, 포도는 술병에 미끄러져 들어가면 껍질이 벗겨지고 살이 찢어지고 푸욱 고와져 나중엔 포도주가 된다. 이 시에서는 포도가 포도주병안에 들어가는 것을 즉 포도주병을 무도장에 비유하고 포도알들을 무도장에서 춤을 추는 여인들에 비유했다. 여기서 “빨갛고 파랗고 노랗고 검은 여자”라고 묘사한건 빨간 포도알, 파란 포도알, 노란 포도알, 검은 포도알을 말한다. 즉 포도알을 의인화했다. 착상이 기발하고 시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란함을 엿볼수 있다. “스치고 부딪치고 밀고 밀리우면서”—란 묘사들은 세월에 부대끼고 사람에 부대끼고 비리에 부대낌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동동 둥둥 한들한들 느믈느믈”- 등 시어들은 표면적으로는 행복한체 하고 점잖은체 하고 동동 둥둥 즐거운척 하지만 허황하고 허무하고 허탈한 인간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은근한 풍자와 조소인것이라고 해석해도 무방한줄로 안다. 전반 시의 노리는 점을 감안할때 가히 이렇게 말할수 있겠다.   “야위여가는 무도장에는 버림 받은 알몸들만이 거멓게 죽어가고있다”--- 이런 시적 표현은 결국 허무하고 허황하고 공허한 요즘 인간들의 무도장은 절대로 풍요로운 즐거움이나 행복한 곳이 아닐것은 당연함을 암시하고 또 그래서 “야위여가”는 무도장이라고 했다. 나중엔 거멓게 죽어갈수 밖에 없는것이다. 절대로 싱싱히 살아나거나 또는 새힘을 얻거나 부활하는게 아닌 그와 정반대인것이다.   “그날 숱한 녀자들이 나체춤을 추다가 죽었다”고 한 표현은 껍질이 다 벗어진 라체의 포도알처럼 요즘 인간들도 광대와 들뜸과 허위와 허상의 표면적인 껍질을 다 벗으면 그 안엔 죽은 시체밖에 안남는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이 시는 포도가 술병속에서 시달리다 죽어가는 것을 무도장에서 허무에 말려서 죽어가는 인간과 비유해서 요즘 많이 들떠있고 붕- 떠있고 실속없이 자기를 세월속에 던져버리는 인간상을 예리하게 해부햇으며 나아가서는 전반 이 사회 거품식 현실을 폭로하고 통책하고 비판한 것이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이 시로서의 자기의 사명을 완수할수 있은것이라 해야겠다.     서태문—다음은 최기자시인의 력작 “언감자떡”을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언감자떡   어느 배부른 자의 버림을 받아 한겨울 쓰레기로 나뒹굴던 감자들이 우리 집에서 옷을 벗으며 눈물을 쏟았다 엄마 손톱눈처럼 아린 눈물을   들어누워 열물을 토해낸 언감자 주렁주렁 처마끝에 내걸린 념주 알알마다 엄마손을 울린 동전들이 얼면서 녹으면서 마침내 하얀 속돌로 잘랑거리면 굶주렸던 절구친구가 배를 불린다                 엄마 머리에 하얗게 감자분꽃을 피우면서   엄마가 반나절이나 빚은 내 고사리손이 되짚으며 세여낸 언감자떡이 쑥불에 화독을 쓰고 무겁게 무겁게 장터에 나앉았다 엄마얼굴처럼 까맣게 나앉았다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 엄마는 서시장에서 언감자떡을 팔다가 진달래동생을 낳았다 할머니는 또 계집애라고 토라지시고   서—언감자떡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묘사도 아주 핍진하고 또 임신한 엄마가 임신한 배를 해갖고 서시장서 언감자떡을 파는 장면도 …참 눈물나는 묘사들인데요 이 시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림—해설: 네, 엄마가 언감자떡을 만들어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에 대한 시적인 묘사를 통하여 잔밥들을 키우시느라 숱한 고생을 밥처럼 자신 엄마의 눈물나는 일생을 추억했다.   언감자가 녹으면서 물을 줄줄 흘리는걸 “열물을 토해낸다”고 하고 념주처럼 처마에 달아맨 언감자들을 동전에 비유한다 왜? 그것으로 이제 언감자떡을 해서 팔면 동전이 되기때문도 있지만 또 조롱조롱 달아놓았을때 동전같기두 하다. 또 다 마른 다음에는 가벼운 속돌같기도 하다. 그걸 또 절구에다 하얀 감분을 머리에 들쓰면서 찧어 가루를 낸다 그후 엄마가 감자떡을 빚으면 나는 그것을 헤여본다 몇개나 만들었는가 나중엔 시장에 나앉아 판다. 이때 엄마는 임신때였고 드디여 언감자떡을 파는 동안 “1954년 팔월 스므이틀 오후 네시”에 최시인의 녀동생을 낳았다. 시에서는 진달래동생—진달래냉면 유한공사 총경리를 말한다. 시의 마지막 행이 또 재미있다. 낳은 애가 계집애라고 할머니는 토라진다…그 살기힘든 세월에도 또 남존녀비사상까지 우리 할머니들을 괴롭히여 더욱 가슴 아프다.   이 시는 녀성시인으로서의 섬세하고 구체적인 핍진한 시적 묘사가 돋보인다. 그리고 우리 민족 여성들만이 알수있는 언감자떡을 만드 는 전반 과정이 시줄을 타고 눈물과 한숨과 함께 잘 익어갔다. 시인의 재치를 잘 보여주는 눈물나는 시이다. 언감자를 만드는 과정도 눈물나고 피나는 과정이지만 그걸 또 임신한 배를 해갖고 장에 나앉아 파는 장면은 더구나 눈물나고 후일 진달래동생이 그 큰 중국조선족의 유명짜한 어마어마한 냉면집 총경리 동사장이 된것도 아주 잘 안받침되여 못살던 그때 당시의 엄마의 형상이 더욱 돋보인다. 이면에서 이 시는 읽는 사람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어주고 또 그러하기에 이 시는 아주 딱소리나게 성공했다. 신-다음은 역시 바다가에 갔다가 현장에서 느낀 감수로 쓴 시인데요 아주 독특한 내용을 쓴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대련 칠현령(七贤岭)에서 본 말매미   외손자 보러 왔다는 어느 할머니 손에 아이노리개로 되여버린 말매미 반나마 잘리워나간 날개 불구자의 고독한 연기입니다   가냘프게 치르르르 숫놈만 운다니 필시 숫놈일텐데 짝을 불러 열창하던 그 목청이 병들었습니다   넘어질듯 휘뚝휘뚝 빛에 취해 무리 지어 시공을 휘젓던 남자 그 남자가 거세되였습니다   고작 일곱날을 살려고 기껏 짝 한번 짓자고 칠년을 땅속에 묻혀산것 그것이 억울하지도 않은가요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희비는 엇갈리고 생사는 지척이고 명암은 불빛이니 애당초 번데기로나 살거지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누구의 동생 누구의 오빠 누구의 삼촌  누구의 남자여   서—참으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말매미를 썼는데 또 그 말매미도 병신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써서 더구나 독특한것 같습니다.   림—네, 제재가 역시 특이합니다. 시인은 이 시에서 병신 말매미를 썼고 수컷구실을 못하는 말매미를 썼고 기껏 일주일간 살자고 땅속에서 7년을 묻혀산 말매미를 썼는데 그것도 또 병신이여서 한번 밖에 짝을 짓지못하는데 짝도 지을수 없는 불쌍한 말매미를 썼다. 정말 말매미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서 은근히 인간의 삶의 기구함을 배면에 깔아주고 있다. 시에서 “녀자 하나 못 잡고 이렇게 허무하게 이렇게 값없이 이렇게 무참히 노리개로 앓다가 병신으로 살다가 제명으로 못살고 외토리로 가는건 아닙니까” 라고 한다. 완전히 우리 사회에 점점 시들어가고 병들어 가고 남편이 남편노릇못하고 지어 한생동안 외토리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는 인간상을 비유해서 탄식을 쏟았다. 치르르르 치이 짝을 찾아 우시는가요 새끼 원해 우시는가요 세월 탓해 우시는가요 라고 한것은 이런 남자들에 대한 측은한 감정과 눈물겨운 동정, 더 나아가서는 실망하는 그런 한탄을 풍겨준다…세월에 대한 한탄과 시들어가는 속세의 시들어가는 인간상에 대한 비탄을 쏟아냈다.   진짜 이런 병들고 제노릇못하는 남자가 누구의 동생이고 누구의 오빠이고 누구의 삼촌이고 누구의 남편인지? 만약 누가 이런 남자와 관계된다면 그건 진짜 그 사람의 비극이 아닐수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련, 마지막 행에서는 호격토 “여”까지 써가면서 피타게 부르짖고 있는것이다.   서태문—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녀류시인 최기자님의 재미나고 독특한 시들과 가까이 만나서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나 생각되는데요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서태문-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에서 이만 줄입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11    중국조선족 시인 김응룡 篇 댓글:  조회:768  추천:0  2024-08-23
김응룡 시인 2014년 08월 12일 16시 58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심금철입니다. 지난시간에는 훈춘에 계시는 김동진시인과 그의 시작품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방송국, 잡지사에서 편집사업을 맡아오시면서 우리 문단을 장식해온 김응룡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응룡시인은 많은 문학인들을 탄생시킨 두만강기슭-화룡시에서 탄생한줄로 알고있습니다. 두만강과 문학은 어떤 필연적인 련관이 있는것처럼 느껴지는데요. 먼저 김을룡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응룡시인은 1946년7.11. 길림성 화룡현 덕화향 유동촌 소유동골에서 출생, 선경대 그 아래. 유동하기슭. 좀더 내려가면 길지촌, 덕화향, 남평진, 맞은켠은 두만강건너 조선 이 부근에 많은 문학인들이 산출, 로과에 리욱선생(비록 여기서 태여나지 않았지만), 최룡관,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등 허씨3형제, 길지촌에 박장길, 김영건, 김응룡, 최홍일도 이 부근 하향 등   신-원래 형제가 여러분이였는데 후에 병으로 사망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그는 화전농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지금 국가급 풍경구인 선경대아래골인 소유동에서 화전을 일구고 감자와 보리를 심어 식구들을 먹여살리였다. 그의 우로 형 둘과 누이 둘이 있었는데 형 둘과 누이 하나가 전염병으로 어린 나이에 죽자 아버지는 막내아들(후에 남동생이 하나 생겨났음)인 그마저 잃을가봐 사주팔자를 잘 보는 로인을 집에 청해놓고 그의 이름을 짓게 하고 또 그의 평생 사주를 쓰게 하였다. 하여 그의 가문 형제들의 이름은 모두 만자돌림이였으나 그만은 이름을 응룡이라고 지었다. 신-이름을 바꾸었는데도 여러차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고 들었습니다.   림-네 이름이 좋아도 그는 어릴 때부터 내내 죽음의 신을 뒤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살을 잡는 해의 추석맞이때였다. 어머니등에 업혀 물레방아간에서 어머니가 방아를 찧는것을 보아온 그는 어머니가 제사상을 차리려고 기름떡을 굽는 사이에 아장아장 걸어서 방아간에 가 어머니처럼 방아확안의 쌀을 번지는 시늉을 하다가 그만 방아확에 빠졌는데 방아공이 내리치자 얻어맞아 정신을 잃었다. 그때 어머니가 찾으러 나왔으니 망정이지 방아공에 한번만 더 맞았더라면 물아이였던 그는 진작 죽고말았을것이다. 또 한번은 그가 다섯살이 되던 해 봄이였다. 그의 집은 두만강변의 작은 마을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한 이튿날 그 때는 1952년, 조선전쟁이 치렬한 때라 강건너 조선의 신작로로 중국인민지원군이 이틀 낮과 밤을 이어 전선으로 나가고있었다. 그는 군대들의 자동차며 땅크를 가까이에서 보려고 풀리려고 버석버석해진 얼음우로 건너가다가 그만 얼음이 꺼지는바람에 물에 빠지고말았다. 다행히도 강가에서 빨래를 하던 옥동이라는 처녀가 발견하고 기겁한 소리를 치자 그의 아버지가 달려나와 겨우 그를 건져냈다. 그 외에도 일곱살때 백일해에 걸려 죽을번하던 일, 강변에서 놀다가 뱀한테 물려 죽을번하던 일, 개한테 물려 범의 고기를 먹고 살아나던 일… 15살에 급성페염, 급성신염 등 합병증이 와서 다 죽게 되였는데 마침 연길현간부휴양소가 마을앞에 있어 휴양소 의사들의 극진한 치료를 받아 또 한번 사경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그러나 그 흔적으로 소년이였던 그의 머리는 반나마 희여버렸다. 그래도 죽음의 고비마다 귀인들이 나타난것은 아마도 이름 덕을 입은것 같다. 신: 그같은 일들이 그의 문학의 길에 어떤 힘을 주지 않았는가 생각하는데요.   림: 그는 죽음의 고비고비를 넘어오면서 생명의 귀중함과 그런 고비마다 사랑의 손길을 뻗쳐준 사람들한테서 사랑을 배우고 사람이 되는 도리를 조금씩 깨우쳐왔다. 이 모든것은 아마도 후날 그가 작가로 시인으로 될수 있은 밑거름이 되였으리라. 그는 아홉살에 13리나 되는 먼 곳의 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래서 학교로 오가는 길에 책을 들고 걸으면서 암송 같은 숙제를 하고 손에 들어오는대로 문학작품을 탐독했다.   신-초중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면서요? 그때 어떤 작품을 썼습니까?   림-네 초중때 《참외에 깃든 이야기》란 아동소설을 써서 연변방송국에 응모작품으로 보냈는데 뜻밖에도 우수상으로 입선되여 상을 받게 되자 그는 문학에 대한 뜻을 더욱 확고히 굳히게 되였다. 초중시절의 반주임선생이였던 남흥범선생님은 문학에 집념하는 그를 기특히 여기고 의식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해주었다. 그래서 초중을 졸업할 때는 일정한 문학수양을 갖게 되였다. 초중을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지망을 쓸 때 가정살림이 구차하여 아버지 뜻대로 연변사범에 지망을 썼는데 조선어문이 만점을 맞는 기적을 내여 화룡고중에서 먼저 입학시키는 바람에 사범학교로 못가고 화룡고중을 다니게 되였다. 1967년 화룡고중졸업. 문화혁명이 일어나 대학으로 가는 길이 막히자 68년 8월 고향에 돌아와 민영교원-남평소학교에서 1970년까지 교원을 하다가 (이때 학생가운데 박장길시인이 있음) 화룡현 중학교교원훈련반에 가서 근 8달동안 학습하고 덕화향 경흥중학교 교원으로 배치를 받았다. 그는 이 시기에 시와 아동문학작품을 써서 발표했다. 1972년에 연변작가협회에 가입. 이런 덕으로 1974년 8월 덕화향문화소에 소장으로 전근. 공사문화소사업을 하는 기간 김성휘시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공사의 아침》이란 덕화공사시집을 편집출판했으며(정식출판) 길림성 모범문화소의 영예를 따냈다. 1978년 5월, 그는 연변방송국 오태호주필의 안중에 들어 곡절끝에 전근수속을 마치고 연변방송국에 전근이 되였다. 방송사업을 하는 기간 그는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함수공부를 하면서 청소년프로를 당담했기에 몹시 분망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그래서 사업의 수요로 가끔 아동문학작품과 가사만을 썼을뿐 어려서부터 사랑해온 시는 별로 쓰지 못했다. 1985년에 함수졸업. 방송국청소년부 대리주임. 문학부부주임으로 사업. 신: 에 전근되여서부터 본격적으로 문학편집과 창작에 몰두하였다고 들었는데요.   림:1988년 12월, 연변문학월간사에 전근이 되여서야 그는 비로소 본격적으로 문학작품을 편집하는 한편 문학에 대해 재학습하게 되였다. 당시 그는 주관적으로 편집자가 좋은 작품을 많이 쓰지 못하면 과외작자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것이라고 인식하고 수필, 실화, 시를 닥치는대로 써서 발표했다. 이때 그는 수필편집, 실화문학편집, 시편집 등을 맡았댔는데 시문학작품을 편집하게 되자 그는 여러 류파의 시리론 특히 현대시리론을 알아야 함을 절실히 느끼고 학습에 게으르지 않았다. 나중엔 시평론실 주임도 맡아하면서 학습과 창작실천과정에서 그는 시란 심미적이고 정감적이고 생명의 상징이여야 한다는것을 깨우치게 되였고 그의 시에 이런것을 체현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8월 정년퇴직. 신-그렇다면 김응룡시인에게는 어떤 작품들이 있으며 또 지금 정년퇴직후에도 많은 사업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계십니까?   림-1969년에 시 “빈하중농호장”을 처녀작으로 발표하면서 아동서사시 “붉은 사과”, 덕화공사 시집 “공사의 아침”편집, 방송드라마 “산골마을의 아이들”, 동화그림책 “알룩이와 흰둥이”,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 등 백여수 성인가사 “그리운 고향길” 등 수십수. 1988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인작품쓰기시작했는데 실화문학작품 “사랑의 손길”, 수필 “망돌” 등 50여편, 시 150여수 많은 가사를 창작, 시집 “잔디풀의 작은 사랑”, 황장석시인과 합작하여 장편실화소설: “얼의 몸부림”, “삶의 선택”, “물속의 불”, --주로 기업가들의 일대기- 그중 리송웅도 있음. 역시 황장석시인과 함께 “숲속에서 맺은 사랑”이란 소설집을 번역 그리고 대형문학총서 “두만강”, 단풍수필회 비전기간행물 “단풍잎” 연변시인협회에서 꾸리는 시문학총서 “시향만리”등의 편집에 참가. 중앙문화부를 비롯한 8개부문에서 공동주회한 “전국 “꽤꼴새컵”동요창작콩클에서 동요 “우리 꽃명절 노래부르자”가 1등상을 타는 등 전국 성주 우수 문학창작상 수십차 수상. 한국 “문예시대” 해외동포문학상 수상. 현재: 연변시인협회 부회장 겸 비서장.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아동문학연구회 비서장. 시총서  "시향만리" 편집, 조직자의 한사람, 등   신-실로 많은 작품창작과 문단활동들을 펼친 김응룡시인이였습니다. 그럼 먼저 시골 외톨이들의 현실상황을 아프게 쓴 그의 시 "기다림"을 감상하고 림선생의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림   김응룡   정오무렵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시골마을에 개가 짖는다 컹컹 마을길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 보고 이 집개 저 집 개 짖어댄다 목 메여 짖어댄다 산비탈 메밀밭에서 다락논에서 김을 잡던 외기러기 사내들 약속이나 한 듯 일손 놓고 일어선다 행여 행여… 저마다 부서지는 마음을 추슬러 본다   신: 농촌의 현실생활에 눈길을 돌린 시였는데요 해설부탁드립니다.   림-녀성이 없어진 우리 농촌들에서 살아가는 외톨이 사내들이 정오무렵에 한적한 마을에 느닷없이 나타난 녀인에 대한 동일한 눈길을 통하여 리향, 해외로무송출 등으로 인한 부부리산의 아픔, 로총각들의 결혼난 그리고 이로부터 이어지는 농촌에서의 가정의 해체화 경향을 잘 보여주었다. 우리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실존상황을 아주 짧지만 특색 있는 모멘트를 통해 집약적으로 보여준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시제목 "기다림"에는 많은 뜻이 담겨있다. 혹시 마을에 여인의 그림자라도 나타날가고 기다릴수도 있고 한국간 친척이나 안해를 기다릴수도 있고 장가갈 그 날을 기다릴수도 있고...   신: 네농촌의 현실을 그려낸 김응룡시인의 시 이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까치둥지          김응룡   지는 잎들이 받들어 올린 까만 그리움 하나 백양나무 가지에 동그랗게 걸려 쳐다보는 나의 눈 이슬 젖는다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 주인은 어데 갔나 동구밖 나선 할배할매 눈이 허는데 반가운 기별은 전하지 않고 늙은 총각들 술병 안고 쓰러졌는데 오작교는 놓지 않고 생기가 떠나간 자리 까만 그리움 하나 행복했던 나날들이 락엽되여 뒹구는 시골 백양나무가지에 높이높이 걸렸구나   신: 백양나무에 걸려있는 빈 까치둥지를 통해 생기를 잃어가고있는 농촌의 전경을 그려내고있습니다.   림- 이 시에서는 우리 농촌에서의 가정이 해체되는 현실을 나무에 달린 빈 까치둥지에 비해 표현했다. 까치는 사실 좋은 소식을 알려주는 새이다. 그러나 그런 길상스런 까치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언어도 음악도/ 삶의 온기마저 잃은/ 비인 둥지"밖에 남기지 않고 애오라지》 《까만 그리움만 하나》만이 《백양나무 우에 높이 높이 걸렸구나》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시인의 민족적인 우환의식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정서의 발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민족적 사명감에서 우러난 김응룡시인의 우환의식을 잘 보여주었다. 민족적인것이 사라져가는 농촌의 현실에서 느낀 진실한 정서를 비교적 생동한 시적 형상화를 통해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시는 한국《문예시대》2006년 해외동포문학상수상작 신: 급속한 사회의 발전에 비해 피페해진 농촌의 현실을 밝힌 시였습니다.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향수   김응룡 삶은 올감자에 하얀 김이 서리고 된장 찐 풋고추 향을 피워 올리면 내사 65도 배갈 한 병 마셔도 취하지 않소 앞강의 여울소리 긴긴 전설 풀어내고 숲속의 새들 딸기빛 사랑을 노래했소 젊은 시인은 심장을 뽑아 미루나무에 걸고 둥둥 북을 쳤소 먼먼 지평선 저쪽 내가 태를 묻은 땅이 있으련만 강물의 여울소리도 새들의 사랑노래도 들리지 않고 안개만 자욱하오 불볕에 달아오른 세멘트길 따라 홍개미 한 마리가 포복전진하오 35도 배갈에 취해 비틀 비틀   신: 역시 농촌의 실생활에 눈길을 돌리고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시인의 고향은 앞강건너 저쪽 먼곳의 지평선저쪽에 아득히 보인다. 허나 갈수가 없는것이 또한 현실이다.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눈앞에 비쳐지는 것은 사랑도 희망도 빛바래진 농촌의 현실이고 그 속에서 정신상태가 허전하여  술이나 마이며 마음을 추슬리려 하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 시에는 쓸쓸함과  눈물이 반죽되여있다. 그리하여 독자들에게 이러한 시들은 우리 농촌의 쓸쓸한 통곡소리처럼 아프게 느껴진다. 마지막 부분에 홍개미가 포복전진한다는것과 술취한 작품중인물이 비틀비틀하며 겨우 한발작씩 전진한다는 표현이 아주 재치있어보인다. 이런 시적 형상화와 표현은 힘들게 향수를 참으면서 하루하루 한발작씩 옮겨디디며 살아가는 고달픈 정서를 더욱 짙게 해준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 시는 입니다. 역시 농촌의 정경을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시골개구리들의 울음   김응룡   어둠이 깃든 시골 개구리들이 운다 눈물도 없는 개구리들이 울음 높이 질벅하다 비도 오지 않아 강가 모래불에 묻은 엄마 물에 밀려갈 근심도없는데 왜 우느냐 물었더니 아니란다 개굴개굴 개구리들이 우는 리유 아는지 모르는지 이영이 고삭은 초가에서 진작 잠에 곯아떨어진 늙은 량주 꿈을 꾼다 꿈에 안아보는 손자손녀 재롱에 행복의 웃음 느침으로 흘러내려 베개잇 적신다 이 시골 인적 늙은 량주마저 초가에 묻힐가바 개구리들은 운다 밤새껏 밤새껏   신: 농촌에 내려가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가 봅니다. 비록 도시에서 생활한 경력이 더 길지만 농촌제재를 많이 다르고있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시도 농촌에 내려갔다가 느낀 감수를 적은것같은데 해설부탁드립니다.   림- 고향에 간 시인은 현대적인 문화향수에 푹 빠져 보내던 도회지와는 달리 밤에 우는 개구리소리를 듣게 된다. 문화도 없고 아예 늙은 량주밖에 안남은 그런 시골, 한산하기 그지없고 고적하고 스산하고 괴괴한 그 저녁 그저 하염없이 우는 개구리소리만 들린다 시인은 이제 늙은 량주만 늙어서 사망하면 이 시골은 완전 인적이 없어진다. 즉 사람냄새가 영영 없어진다는 말이겠다. 그래서 초가에 늙은 량주가 묻혀없어질가봐 개구리가 밤새껏 운다고 한다. 역시 사그라져가는 시골의 삭막한 풍경에 대한 시인의 애탄의 목소리다.   신: 계속하여 감상할시는 입니다. 젊음을 잃은 아쉬운 마음을 담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창졸한 시절 김응룡   꽃은 그때 벌써 다 지고 죽은 나비들의 장송곡이 슬펐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   눈물이 떠나간 자리에 아직 죽지않은 뼈들이 숭숭 구멍나는데 고해의 끝은 어디 굼실대는 저 파도우 지는 별이 차갑다   생명의 페지를 아무리 번져도 가장 빛났던 페지는 그 한장 행복도 그속에서만 파랗게 열기뿜는데 돌이켜 번질수 없는 오 창졸한 시절이여   신: 세월이 원쑤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들이 다 느끼고 경험했던 그런 감수를 적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림—고향에 있을때의 그 청춘시절 젊은 시절이 너무도 빨리 창졸하게 흘러간걸 아쉬워하는 마음을 시화했다. “웃음이 찬란했던 얼굴에 지렁이가 꿈틀거리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노라 모지름 쓴다”—여기서 지렁이는 울뚝 돋아오른 피줄을 비유한것이고 그 지렁이가 세월이 가지말라고 모지름쓰지만 허사이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한 시들과 비슷하게 농촌전경을 빌어 시인의 감수를 적은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우물                           김응룡 페허로 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 하늘이 좁다고 울던 개구리들 강따라 사방 흩어지고 돌담벽에 돋은 푸른 이끼 사라지는 농경세월 손저어 바래거니 시이미지 쫓던 이 붓대 갈팡질팡   신: 아주 짧은 시지만 사회현실을 잘 보여준 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림-페허로 된 마을, 스산한 마을에 드레우물 하나밖에 안남았다. 그 우물속에서 울던 개구리들도 이젠 다가 강따라 골안을 빠져나가 어디론가 산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돌담벽엔 이끼만이 외롭게 푸르러진다 어딘가 락후햇지만 인심이 아주 후했던 농경세월은 차츰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간다. 휑덩그렁하고 스산한 살풍경이 된 고향에서 시인은 뭔가 쓸수가 없어, 정서를 흘릴수가 없어 붓대가 갈팡질팡 허공에서 헤매인다…여기서 또 하늘이 좁다고 울던 우물안의 개구리는 결국 시골세계가 너무나 좁다고 웨치며 그 어떤 꿈을 안고 버덕으로 도회지로 떠나간 사람들을 상징한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시는 입니다. 우에서 감상했던 시들보다 더 슬프고 쓸쓸하게 농촌의 분위기를 그려낸 시인데요.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감자 두알 김응룡 이글거리던 숯불도 꺼지고 화로를 마주한 할머니와 손자 주고받던 이야기도 꺼지고 이제 남은 재불엔 감자 두알 인적 끊긴 마을이라 개도 일찍 잠들어 밤이 긴 도포자락 끄는 소리만 스르럭 스르럭 이따금씩 문풍지 울린다 다가는 인생과 막 시작하는 인생을 익은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흰김이 이어주어 아직은 온기가 도는 시골 초가의 밤   신: 할머니와 손자의 내일이 근심되는 쓸쓸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림-령감도 없는 홀로인 할머니와 아빠 엄마도 없는 형제도 없는 홀로인 손자 합했자 둘이서 마주 앉아있다. 분위기가 어딘가 외롭고 조용하고 적막하다. 그래서 숯불도 이글거리는 숯불이 아니고  화로불 개도 일찍 잠들다. 인적이 없으니 개가 짖을일이 없게 됐고 그래서 더구나 적막강산. 거기다가 또 밤이니. 그래도 시인은 완전히 식은 모습에 붓을 놓아버리지 않고 감자속살이 펴내는 한가닥 휜김속에 그 조그만한 온기를 되살려 준다. 미소하나마 그래도 그 어떤 묘연한 희망을 살작 얹어주는 배려를 보였다. 가는 인생은 가더라도 아직 어린 손자 그는 오는 인생이요 시작하는 인생이니깐. 희망같을걸 얹어주는 배려를 보여준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유리창을 생기발랄하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록있는 시입니다.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유리창                  김응룡 님아 너 상금도 기억하느냐 우리들의 숨결이 닿아 정열의 눈물 흐르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안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밖에도 반짝이는 새별 한쌍 서로서로 애타게 갈망하면서도 마음의 빗장 못열어 별만 쌍쌍 얼어붙던 그 투명한 유리창을 님아 그 유리창은 지금도 그 곳에 그 모습 그대로 달겨있고 소쩍새는 지금도 그날 밤처럼 그렇게 슬피 울고있어 님아 우리 함께 가자 그 시절 그 유리창가로 그리고 세월의 울타리 넘어 마주서 보자 너의 한쌍의 새별을 나의 한쌍의 새별을 그럼 축복같은 눈이 너와 나의 머리 하얗게 덮어놓고 꿈같은 옛말을 들려줄거야   신: 생기와 정열로 차넘치던 청춘시절의 사랑을 샛별눈을 빌어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림-사랑시다. 사춘기시절, 서로 창을 두고 눈사랑하고 기다리고 숨어서 보고 애타게 그 얼굴 그모습, 그 눈동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던 그 때 그 순진한 티없는 사랑. 지금처럼 대놓구 말하지도 못하던 전통적인 사랑, 수집은 사랑, 허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심장이 쿵-쿵 방아찧던 그런 사랑을 진솔하게 시화했다. 구성상으로 보면 님아가 세번 첫번째 님아로부터는 그때 젊음의 새별같은 눈동자가 유리창을 사이두고 얼어붙던일, 두번째 님아로부터는 지금도 그 유리창이 그냥 그 자리에 달려있다는 (혹은 기억속에 달려있다는) 세번째 님아로부터는 우리가 다시 그 유리창창가로 즉 그 추억속으로 다시 가자는 가서 추억의 눈을 맞으며 서로 그때의 콩콩 뛰던 가슴을 얘기하자는 걸 썼다. 그래서 구성상에서도 흩어짐 없이 아주 정연하고 자연스레 흘렀고 아주 째였다.   신-네 김응룡시인에게는 시작품외에도 수필, 소설, 드라마, 실화 등 다양한 문학장르의 작품들이 있지만 오늘은 그의 시작품에 대해서만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더 넓은 범위에서 살펴보면 좋겠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그럼 이것으로 이 시간 문학살롱프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10    중국조선족 시인 김기덕 篇 댓글:  조회:709  추천:0  2024-08-23
문학살롱 김기덕 시인 2013년 04월 28일 14시 54분   작성자: 구름바다  김기덕 시인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다년간 대련에 거주하면서 안중근의사에 대한 연구와 시창작을 열심히 해오신 김파시인을 소개했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쳥도에 거주하면서 시농사를 부지런히 지어온 김기덕시인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림금산 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하십니다. 신-그럼 먼저 김기덕시인의 시 “고향길”을 함께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고향길     김기덕 찾아갈 때는 민들레 홀씨처럼 발걸음이 한 장의 종이 같고 떠나올 때는 진흙에 빠진 것 같이 이렇게 무거운 까닭이 애닯다 빨랫줄에 앉아 사설 많던 제비 떠나오는 이 사연을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치솟으며 지저귀던 날 나는 뒤로 보고 또 보고 가슴 아팠다 떠나가면 다시 찾아가면 되지 하면서 그것만은 전부가 아니었다 멀리 멀리 손 흔들며 지켜 보는 80 넘은 어머니의 눈빛이 안타까워서다       2008년 8월 14일, 대한민국의 24시간 실시간 뉴스 전문방송국 YTN에서 방송한 김기덕 시인의 "고향길"입니다. 애절하게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튀는 심장은 전파를 타고 사람들에게 다가와 짜릿한 감동을 줍니다.   1950년 길림성 교하시에서 태어난 김기덕씨는 1972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 그간 1982년에 연변제일사범학교를 졸업하였고 1986년에 연변대학 통신학부 정치전업을 마쳤다. 그해로 교하시 교원연수학교에 교육연구원으로 승진했고 1993년 청도로 진출할 때까지 시종 교육 관련 사업을 하였었다.   김기덕씨가 문학을 접하기는 1981년 중국조선족교육잡지에 시 "코스모스"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문학이란 교사로서의 자질향상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갖추어야 할 소양이라는 것을 의식한 김기덕씨는 그후 왕성한 열정과 피타는 노력을 들여 수백편의 문학작품을 발표, 동시에 길림성 교육간행물인 "교수와 연구"의 특약편집으로 초빙받기도 했으며 길림신문과 중국조선족소년보의 특약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993년 4월, 김기덕씨는 한일합자기업 성전전자의 초빙으로 청도에 와 총무관리로 근무하게 되었다. 교육자로서의 2백위안 노임에 비해 기업관리인으로서의 1300위안 봉급이 큰 유혹이었다고 신분 탈바꿈의 정당성을 담담하게 밝히는 김기덕씨는 그러나 그게 진정한 원인이 아님을 그의 눈빛이 증명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유혹보다는 문학에 완전 매료되어 문학을 통하여 현실 생활과 변화되는 세계를 재조명하고 그런 와중에 자신의 인생관과 세계관의 완성도를 한 발자욱 더 접근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유인이 된 김기덕씨, 청도에서의 생활이 거의 고향에서의 사업경력과 맞먹어가는 이 시점, 김기덕씨는 청도는 무한한 창작에너지를 공급해준다고 말한다. 드넓은 바다와 붉은 기와, 푸른 나무와 기암괴석 그 어느 하나도 감동없이는 마주할 수 없다고 한다. 거기에 시넋을 얹으면서 김기덕시인은 연변작가협회에 가입하였고 2001년에 한국 월간 문학세계에서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를 출판하였고 세계문인협회 청도지부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2008년 8월에는 연변라디오방송에서 그의 시를 약 27분가량 특별 방송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중국은 물론 한국, 미국 등 국가의 간행물에 시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작품 2천여 편(수)를  발표한 김기덕시인은 건강이 좋지 못하여 병치료를 받으면서도 늘 문학창작의 필을 들고 물방울 하나 모래 한알이라도 그냥 스치지 않고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키기 위해 감동의 몸부림을 다하고 있다. 중국작가협회 연변분회, 길림시작가협회, 청도시연해조선족문인협회회원 《문학세계》문학상 금상(시), 중국조선족청마문학상 우수상(시) 수상 시집『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     가을빛 김 기 덕 소꼬리에 묻어 졸졸 따라 다니던 가을빛이 앞니 빠진 시골 애들 입술에 싱겁게 히죽거린다 오이밭에 여윈 빛이 언제 몽땅 철거했는지 곱사등 늙은 오이만 숨 가쁜 모양새로 걸려있고 밭고랑마다 변비인가 온 몸 붉어진 고추밭에 혀를 내밀며 호- 호- 바람을 부는 가을빛     림해설- 시-가을빛은 [경북일보]「아침시단」2011년 9월 30일,금요일 사위워 가는 가을 빛을 배경으로 펼쳐진 익숙한 시골풍경이 정겹게 읽힌다. 소꼬리나 앞니 빠진 시골 애들이나  오이밭이나 고추밭의 가을빛이 소멸로 가는 문턱에서 자신들의 형상과 빛깔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1련에서 가을빛, 2련에서 여윈빛, 3련에서 변비 등으로 진솔하면서 형상적으로 포옥 익어 흐드러진 가을빛을 그려냈다 마치도 고향의 채마전을 보는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빠진 애들을 썼고 변비같은 것을 썼지만 전혀 밉지가 않고 사랑스럽고 인정스럽다.          버들피리             김기덕 세월이 흘러가는 긴 흐름 위에 그리운 추억의 버들잎 하나 둘 띄워 보냅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고향의 물 맑은 정 한 잎 두 잎 한 옥타브 높은 음악이 되어 흘러 보냅니다 삐리리- 반은 울음이고 반은 웃음이랍니다   봄이 생글생글 오고 있습니다   김기덕 봄비 키득 키득 웃으며 파란 물 염색하는 들에 꽃 애기들이 좋아라 짱-짱- 손 벽 칩니다   꽃잎 펼치는 보조개에 파아란 봄비 찰랑거리고 꽈리 부는 제비들의 부리에 봄빛 재롱이 즐겁습니다   봄이 옵니다 노래하는 산새들의 나래에도 새 봄이 앉아 웃고 진달래 민들래 피여 날 실개천 물소리에 봄이 가득합니다   봄이 옵니다 시골 길로 쪼르르 꼬리 흔들며 콩콩 짖어대는 시골 강아지 강아지 등에도 봄빛 반지르르 윤기 돕니다   봄이 옵니다 그리웠던 님도 함께 오실 봄이 옵니다   그때의 밤이 옵니다   김기덕   그대는 나의 행복한 밤이였습니다 밤이 되면 나에게로 조용히 날아들었고 낮이 되면 그대는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날아가는 가을의 새들처럼 갔습니다   밤이 되면 그대가 꼭 오실 줄로 압니다 입은 옷 그대로 쪽잠을 자다 깨여나면 그대는 나의 창가에 샛별이 되여 있습니다 그대 뒤에는 출렁거리는 머-언 바다가 보입니다   갈매기들은 왜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지 제비들은 왜서 겨울을 피해 가는지 그대가 떠난 뒤에 알았습니다 저 새들의 우는 소리 들리면 난 너무 괴롭습니다   바다 가에 서서 먼 섬을 바라 보면 초점을 잃은 시선이 밤이 되여 옵니다 언젠가 섬 마을 고추 밭을 지나 가면서 똑 내 남편 거시기 같다는 웃기던 밤이 옵니다 ===========================================  김기덕과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장학규 김기덕은 1950년 길림성 교하시에서 출생하여 1972년부터 교육사업에 종사했다. 선후 연변제일사범학교와 연변대학 통신학부 정치전업을 졸업했으며 1993년에 청도에 진출했다. 1981년 시 “코스모스”로 등단한 김기덕은 현재까지 3000여 수의 시와 수십편의 수필을 발표하여 조선족문단의 다산작가로 손꼽히고있다.  한편의 좋은 시를 세상에 출품시키는 작업이 얼마나 까다로운지 시를 써본 시인들은 잘 알 것이다. 한 수의 시를 완성하기 위하여 여러 번 갈고 깎고 다듬고 지우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몸에 깊숙이 배여있다.  일년에  수백편의 시를 써오면서 한 수의 좋은 시를 내여놓으라면 그리 만만치 않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시속에 시인의 예리한 초점이 맞춰지고 최대의 카리스마로 압축시킨 강도 높은 함축이 시행마다 깊게 깔려 있는 시, 읽어보면 손으로 만져질것 같고 코를 대면 예상했던 글향이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을 할것만 같은 시를 일년에 한수를 창작한다는것이 그리 쉽지를 않은것이다 2002년 저자가 한국 월간 문학세계에서 출판한 시집 “천년이 가도 잠들지 않는 파도”에서 “풀잎”이란 시가 그 례로 들수 있다. 즉 100년이 넘는 시간을 세개의 단어로 함축시키고 다이아몬드처럼 강도 높은 빛을 발산하게 하는 노력이 뚜렷하게 엿보여주는 것이 자랑스럽다. 풀 잎//그 어느날 밤/짚신이 지나가고/그 어느날 밤/ 고무신이 지나가고/그 어느날 밤 구두신이 지나가며/厄이 풀잎에 길게 누웠다//넘어진 풀잎은 누워서/설레는 소리를 연습하고/그 뒤에 황소같은/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밟히면 일어서고/또 밟히면 또 일어서고…/끝끝내 일어서는//풀잎에도 厄을 딛고 일어서는/뼈가 있나 보다//그것으로 끝이 없는 들/만경창파에/책 한권 쓰나보다// 풀잎은 이 세상의 높이를 전부 남에게 사양하고 자신은 가장 낮은 바닥을 선호하며 짚신에 밟히고 고무신에 밟히고 구두신에 밟혀 사는 흔히 볼수 있는 우리민족의 력사와 너무나도 가까운 일이다. 짚신 고무신 구두신으로 한백년의 력사를 함축시키며 강한 뼈로 밟히면 일어서고 또 밟히면 또 일어서는 기백과 지혜가 력력히 숨쉬고 있음을 감지할수 있는것이다.  
9    중국조선족 시인 김창희 篇 댓글:  조회:711  추천:0  2024-08-23
김창희 시인 2014년 08월 09일 18시 24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편집사업을 해오면서 열심히 시창작을 견지해 오고있고 또 좋은 시들도 많이 써낸 중견시인 김창희와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을 모셨는데요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창희시인이라고 하면 시창작을 시작한지 꽤 오래된 분으로 알고있는데요 그럼 먼저 김창희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지요? 림-네   김창희 략력 1965년 안도현에서 출생 필명: 김희.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 수필, 평론 300여편 발표, 칼럼 다수 발표,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2008) 출간. 선후로 교원, 그리고 , , 등 신문,잡지들에서 편집사업을 하다가 지금은 지에서 시편집으로 사업하고 있습니다. 신-그렇다면 김창희시인은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1990), 24회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상, 19차 중국조선족아동문학필회 최우수상, 제 3차 중국조선족동시탐구회 최우수상 등 문학상 수상. 흑룡강성보도특별상(2005), 흑룡강신문우수작품 2등상(2006) 등 각종 상 30여차 수상.    신-김창희시인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판은? 림-네   한춘: 김창희시인의 파격적인 시구조는 우선 기존의 정연한 객관구조질서를 해체하여 자기의 심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데서 잘 보여지고있다. 해학적인것 같지만 그것은 단순한 해학을 넘어서 어딘가 풍자적 요소가 다분한 그리고 원유질서를 흔들어보려는 야심이 보여진다 김룡운: 김창희의 시들이 몇가지 양상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중 가장 두드러진것이 아이로니적(풍자, 비꼬기, 반어법: 사실과 반대되는 표현으로 사실을 더욱 강조하는 말)인 모습이 아닌가 싶다…아이로니로 삶의 뒤안길을 정성껏 비춰보는 김창희의 시는 차거움속에 따스함이 있고 빈정거림속에 진정이 있으며 질타속에 인류구원의 강렬한 불꽃이 번뜩이고 있다.   림—이 두분의 말씀을 분석해 보면 둘다가 김창희시는 아이러니한 멋이 다분히 풍긴다고 했다. 김창희의 시에서 아이러니란 야유적이고 눈물겨운 풍자, 해학, 조소, 자초 등이 다 포함되는것 같다. “아이로니는 배부른자, 아픔을 모르는 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김창희의 시가 주로 아이로니의 뿌리에서 돋아나고 거기에 걸터앉아 이 세상과 지껄이기를 즐기는 까닭은 김창희가 걸어온 오솔길에 널린 삶의 편린들과 그의 타고난 성격적 기질에서 표현된다.”-김룡운 김창희시인은 자기 시집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이유”에서 말한다. 신—김창희시인은 젊어서 남들보다 더 많은 인생고 비슷한 것을 겪었다고 아는데요 아마 이것이 그의 시창작에 그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는지요? 림—네 그렇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젊어서 많이 그달프게, 아프게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안도에 있을때 20여평방메터가 되나마나 한 단간방(이집에 저두 가봤습니다.)에서 로모를 모시고 최하층삶의 쓰고 매운 맛을 볼때로 보았고 그후 어쩔수없이 숙명의 멍에에 끌려 갖가지 연길에 와서 일자리도 없이 전전긍긍하면서 고초와 애로를 겪었고 하지만 문학의 끈은 계속 놓지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조여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친인들을 련이어 잃고 비애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하였다. 아빠, 엄마, 조카, 누님 등이 련이어 사망. 그러한 삶의 쪼각들이 알게 모르게 시인의 세포에 슴배여 있다가 시의 불꽃으로 변해 세상밖으로 튕겨나온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시들은 그때문에 리유가 많고 그때문에 인생이란 기차역을 휘딱휘딱 시름없이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멈춰서서 달리지 않는다. 결국 달리지 않는 방식으로 달리고 있는것이다.  간신히, 혹은 말을 바꾸어 말하면 이악스레, 히질기에…밑바닥인생을 살아오면서 생에 대한 사색이 누구보다 더 깊다고 생각됨…     신-네 그럼 아래에 김창희시인의 시작품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시인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감상할 시로는 “수박”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수박                   김창희 계절에 맞춰 입은 파란 색상의 숙녀복 그것은 생존을 위한 수단이였다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속설 또한 너무 잘 알기에 둥근 모습에 얼굴도 반반했다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진실은 늘 쓴맛만은 아니였던가 안팍을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생 누구의 탓인가   신—네 참 일상에서 흔히 볼수있는 수박에서 령감을 얻은것 같은데요 수박에다 깊은 뜻을 담은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이 시가 …   림—해설: 이 시는 2007년 8월호 결국 안팍이 다르게 살아야 하는 수박의 일생을 의인화하여 수박처럼 겉과 속이 다르게 살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대비했죠 그리고 이렇게 만든 것을 이 사회에 돌린것이다. 사실 요즘 세월엔 겉과 속, 안과 밖이 똑 같으게 살기 힘든 세월이다. 없어도 있는것 처럼 흉내내고 아파도 말을 못하고 세력앞에서는 지는척해야 하고 령도앞에서는 웃음을 지어야 하고 등 수박처럼 벌건 진실을 가슴속에 품고있으면서도 또 수박의 겉모양처럼 둥글둥글 살아야하는 요즘 세상의 비리에 대한 칼질이다. 풍자적인것을 바탕에 깐 아아러니한 작품이다. 사실은 화약냄새가 풀풀 나는 시인데. 시구에서도 칼이란 말이 나온다   … … 그러나 무참한 칼날의 세례에 속마음 활짝 열면 세월에 피멍든 몸 그 진실은 남을 유인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칼로 짜개보기전엔 겉모습은 그냥 둥굴둥글, 즉 편안하게 살게 위해서는 자기를 억제하고 둥글둥글 하게 살수밖에 없었다는 그런 안타까움을 썼다. 결국 비판이죠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변명태는 찢겨져 누구 반찬이 되나                      김창희   연변 도문발 렬차를 타면 비릿한 바다 바람이 매콤한 고추내음을 타고 나그네들 겨드랑이 사이를  비집고 흐른다 깡통맥주에 땅콩이며  소세지며 닭손이며 무더기로 모여온 안주속에 창백한 몸매에 발갛게 화장한 연변명태로 이름 바꾼 북어는 동해바다 너른 옷자락이 비좁게 미이라처럼 비닐에 꽁꽁 묶이여 남국인들 호기심 벅찬 눈길 벌겋게 받으며 한몸  활짝 열고 나그네의 손길을  기다리고있다 가리가리 찢기기를 기다리고있다 찢어져야 제구실을 하는 숙명 데치고 삶아지고 끓여여지는것도  모자라 한구(一軀)의 미이라가 돼서도 재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이를 환생이라 하나 소세지 햄 땅콩에 세련된 나그네들에겐 연변명태란 입맛 바꾸는 하나의 존재일뿐 이따금 색다른 맛 즐기려 찾아들면 은근슬쩍 비릿한 향기에 개성있게 톡- 쏘는 일침으로 버려지는 그 아픔을 재생이라 해야 하나 동해바다서 태여나 연변호적 달고 여윈 몸 추스르며 동해바다보다 너른 세상 찾아 연변명태는 오늘도 무번호 승차권에 완행렬차 급행렬차 번갈아 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 연출하며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신-네 아주 흥미롭게 쓰면서 어딘가 씁쓸하고 서글픈 느낌이 드는 내용인데요 어떻게 봐야 할가요?   림- 이 시는 2008.4월에 쓴 시이다. 그렇다. 연변명태를 통해 연변사람들을 썼다. 즉 조선족을. 도문에서 발차하는 차를 타면 꼭 조선족은 있기마련이고 조선족이 있으면 꼭 맥주같은걸 마실 가능성이 많다 맥주만 만나면 조선족은 명태를 안주하길 즐긴다. 요즘엔 또 고추양념까지 바른 비닐봉지속에 넣은 명태. 이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니깐… 숱한 민족들속에 끼인 명태 어디론가 잘 살수있는 방법을 찾아 또 잘살려고 차타고 “번지없는 어디론가 떠난다” 요즘 나의 사촌동생도 한국가서 돈벌어왔는데 상해쪽으로 뭘찾아 떠났다…사실 번지도 없이…그저 알아볼라 떠나더라… 기타 민족들한테 씹히면서. 일단 조선족이면 꼭 이런 저런 문의를 물어온다. 그래서 대답해야 한다. 하지만 제일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긍정적인 답을 던진다. 확신을 준다. “찢어지는 아픔이  즐거움으로 승화할/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며...”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명태와 조선족을 비유하여 아직은 뭔가 뚜렷하지 못한 목표를 찾아 즉 잘살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이제 앞으로 다가올 찢어지는 아픔을 미리 예견하면서 종내는 열반의 그날을 기약하는 우리 민족의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몸부림을 썼다. 시에서 명태를 통한 묘사가 아주 시적으로 잘된 점 또한 돋보인다.   신—네 다음은 역시 시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죠.       상금도 시를 쓰는 시우가 부럽다                            김창희   2006년 1월 3일 할빈 중앙대가에 쓸리다 오랜만에 서점가에 끌려 2005년중국시가정선이라 이름 한 시집을 골라잡고 오랜만에 시고랑을 빗질한다 소학생이 장편소설 읽듯 훑어보다 세집살이에 옹송거리면서도 등이 휘지 않는 시우의 파리한 얼굴이 읽혀진다 세월에 살면서도 세월의 중앙을 범하지 못하고 오늘도 시를 끄적이며 삶의 그림자 흉내내는 장하고 용한 시우가 부럽다 누구라 할것없이 빚진것도 없으면서 늘 마음 하가득 근심을 지고가는 달팽이처럼 훔쳐본 세상을 세상의 모든것이나 한듯이 으시대며 알았다는듯 머리를 주억대는 파리처럼 왜 그리 소심하게 용감하게 사를수 있을가 부쉬낀, 조기천, 김소월, 마리아 릴케,리상, 윤동주, 북도, 이싸… 사실주의, 이미지즘, 초현실주의, 신사실주의,포스터모더니즘 맑스, 모택동, 칸트, 니체, 베르그송, 사르트르 조선시, 조선족시, 중국시, 한국시… 짬뽕으로 말아먹으며 기신기신 헐레벌떡 콜록쿨룩 오늘까지 붙어온 살아온 시우가 눈물 아니라 코물이 나게 피물이 나게 감사스럽다 사재를 틀어 시집을 만들고 나팔꽃처럼 바지랑대에 따라오르며 해빛인양 향기를 피우며 한무리 잊혀진 족속속에 살면서도 마음은 지구의 중심에 사는 유치원어린이보다 유치하지 않고 김삿갓보다 해학적이고 황소보다 고집이 센 시우가 부럽다 2006년 추운 할빈 겨울을 나며 2005년중국시가정선을 에어콘해 언손 녹여보다 언제면 파리한 얼굴의 시우의 시도 이 시집 한자리 녹일수 있을가 중얼대본다 왜소한 시우의 모습이 삶에 부닥껴 부황 든 비대한 내 그림자보다 너무 살가와 할빈의 겨울이 푸근해진다. 2006.1   신-시를 쓰는 친구에 대해서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을 쓴것같은데요 그 배면에 또 더 깊은 인생철리가 있는것 같기도 하구요…시 쓰는 작업이 별로라는 말은 아닌듯 싶은데요?   림-네 맞습니다. 한시기 할빈에서 흑룡강신문사에 있을때 쓴 시로 추정되는데 결국 문학을 하는 참다운 인생을 아이러니컬하게 썼다. 가엾게 보고 비웃는 것 처럼 빈정대며 썼는데 결국 정신적인 추구에 대한 소중함을 썼다. 돈내풍기는 요즘 세상에서 시쪼각이나 가지고 노는 인간에 대해 겉으로는 실망하는것처럼 하면서 내면에서는 소중하게 생각하는게 배면에 알린다. 그리고 여기서는 친구한테 쓰는식인데 사실은 친구를 포함한 자신을 쓰고있다. 경제시대에 문학을 하는 이들에 대한 근심과 걱정, 또 그밑에 깔린 소중하고 존경하는…그런 심태를 시로 써냈다. 시에서 “부럽다”고 여러번 말하는게 바로 이런 심태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이 시에서 시인과 철학자들, 그리고 문학인들의 필독해야 하는 여러가지 주의, 등을 쭉- 라렬했는데 자유자재로…그 어떤 활기찬 감을 주고 문학인들의 지식면의 넓음과 정신세계의 풍부함을 잘 표현해주었다. 생활은 비록 각박하지만 정신상태나 지식구조같은것은 풍부한 삶을 사는 그 부를 시에 깔아주는데 아주 좋은 표현방식이였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이 시에서만은 …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 -친구에게                  김창희   산다는것이 페철의 옷을 벗기듯 피곤한 사연인줄 알면서도 하얀 이 바자처럼 세우고 언제나 희죽이 미소하는 친구여! 숙명이란 그림자를 호주머니에 구겨넣고 물새인양 삶의 갈대숲을 후여후여 누비며 송사리든 대어든 투정없이 건져올리고 장독대 비물이 고이면 얼큰한 매운탕이 되는 친구여 물소의 뿔이 하필이면 뒤로 번져지고 지붕은 위태롭게 물매지며 지렁이는 안스럽게 주름으로 걷는지 그 사연을 구태여 풀지 않으면서 나름의 기분으로 세상사 굽어보는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여!     림—친구에게”라는  부제를 붙인 이 시는 2000년 6 월에 쓴 시인데     시인의 자화상이라고도 볼수 있겠다. 배고픔과 아픔속에서 걸어나오는 김창희 시들은 그런고로 리유가 많고 그런고로 인생이라는 역전들을 시름없이 휘딱휘딱 지나치는것이 아니라 맘취서서 달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김창희의 시들은 기차가 서서 달리지 않는 리유를 펼쳐보이게 된다. 페철의 때를 벗기는 고역의 주인공, 호주머니에 미지의 숙명을  구겨넣고 물새처럼 아득한 삶의 갈대숲을 날아예는 물새가 바로 시인이 아닐가. 시인은 달리려는 렬차를 세워놓고 생각에 잠겨 머리칼을 세여본다. “고달플 땐 그림자를 줄이고/ 빈혈에 걸린 머리칼을 세여보는 시간을 키워야겠습니다” 내가 미워날 때면 머리칼을 세여보는중에서 시인은 더욱더 아픔과 배고품을 느끼고 그것의 해결책을 빈정거림과 야유와 흘겨봄에서 찾는다.   비운속에서도 락오자가 되지않고 늘 하얀 이 드러내고 웃으면서 살아가는 친구(자기)…그게 슬프단다 또 그게 락관적으로 사는 모습이여서 위안이 된단다.그래서 새벽 이슬밭의 참딸기같이 싱싱한 친구,친구를 썼지만 결국 자기도 동감이라고 흰트주면서 결국 자기도 함께 쓴 시같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의 시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를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랭장고는 계절을 몰라도 좋소                     김창희     아기와 정신질환 환자를 한방에 두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모기와 거미를 한 공간에 보태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계절과 랭장고를 접속시키지 마오 혹은 그래도 좋소   들판 허수아비가 감기를 하고있소 혹은 당신이 대신  약을 먹어도 좋소     림—이 시는 듣는 자가 아주 막연한 당신이고 화자는 베일에 가리운         아리숭한  자이다. 얼핏 보면 길 가던 싱거운 사람이 무심히 던지는 값 눅은 지껄임 같지만 그 지껄임 속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사색이 흐르고있다. 가령당신을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라고 가정하면 시인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약자, 위험에 처한 인간들을 구원하라고 반어적 귀띔을 하고있는것이다. 또한 모든 부조리를 조리로 환원시키려는 의도도 내포되여있다. 여기서 “혹은 그래도 좋소”라고 련마다 마지막행에 이렇게 썼는데 그 뜻인즉 “응 정안된다문 혹시 그래봐라 그래두 좋다. 어디보자. 콱 그래다”등의 뜻으로 즉 반어적으로 리해해야 할줄로 안다.   신-다음은 김창희시인이 백두산 “온천”을 소재로 쓴 시 “온천”을 함께 감상하고 림선생님의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죠   온천         김창희   추웠어요 아버지 모습   느꼈어요 아버지 마음   신—짧은 시이지만 그속에 온천처럼 따가운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있는것 같습니다. 맞죠?   림-네 맞아요. 바로 그걸 쓴거지요 이 시는 난해하지도 않고 짧지만 뭔가 처주는 그런 시라고 생각되네요. 이 시는 1988년에 씌여진 시인데요 참 아버지를 백두산아래에 있는 온천에 비유해서 쓴 시입니다. 여기서 아버지를 춥다고 한건 아버지가 원체 어머니보다 무서운 존재이고 엄엄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또 백두산자체가 늘 백설을 떠인 추운 존재이기에 이렇게 비유한것이 아주 타당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됩니다. 한어로 말하면 恰如其分이지요. 그리고 온천은 따가운 물인데 바로 추운 아버지도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따가운 온천처럼 후덥다는 것이 동감갑니다. 이 시는 짧지만은 추우면서도 마음은 따가운 우리 민족 모두의 아버지들을 잘 개괄했고 진짜 야, 그렇구나 하고 동감하게 되는 그런 시가 아니였나 생각되네요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김창희시인과 더불어 그의 독특한 시들을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한층 더 가까이 김창희시인한테 다가가는 아주 좋은 시간이 되지않았나 생각됩니다. 오늘도 림금산시인님 수고하셨습니다. 림-네 수고 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8    중국조선족 시인 김영춘 篇 댓글:  조회:885  추천:0  2024-08-23
문학살롱 김영춘 시인 2014년 08월 09일 14시 26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흑룡강성의 저명한 시인 한춘선생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우리 연변의 중견시인이고 또 녀류시인인 김영춘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님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김영춘시인이라고 하면 여성시인으로는 꽤 오래전부터 시를 쓴걸로 알고있는데요 석현에 계셨댓지요? 먼저 김영춘시인의 프로필부터 소개해주시죠 림-네 1968년 장백현 출생, 연변제1사범학교를 거쳐서 연변대학 졸업,석현에서 교원, 석지신문편집 등을 하셨구요. 도문에 다니며 두만강시회에서 활약。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녀성시회 부회장 등 현 연길텔레비죤방송국 편집. 여류시인으로는 아주 빼여나게 여성만이 쓸수있는 알찬 시들을 써낸 시인입니다. 2006년 8월 첫시집 출간. 두만강여울소리 시인상(2004년) 제1회 중국조선족녀성백일장상, 연변시조 우수상 등 수상   신- 그럼 아래 김영춘씨의 구체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김영춘시인한테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처음으로 감상할 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며 김영춘 8월의 호숫가를 거닐면 한 마리 은빛 잉어가 되고 싶어요 그대 하늘색 셔츠와 금 빛 낚싯대 곱게 잠그고 있는 호수   그 푸르른 호심에서 헤염치며 그대 넋을 빼앗는 백조가 못 될 바에는 물속에 숨어 그대를 지켜보는 자그마한 꿈이고 싶어요.   그러나 서글피 읊조리는 그대 사랑시 나를 부르는 예쁜 미끼라 믿어질 때 그대 사랑의 낚시를 덤벙 물고 행복한 죽음으로 그대 손에 이르고 싶어요. 신- 참 기발하면서도 재미나게 쓴 시라고 생각되는데요 구체적인 분석 부탁할게요 림--이 시를 보면 사춘기라 할까, 아니 사랑에 빠진 처녀들의 심리를 너무나 핍진하게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토로하지 않고 님을 사랑하는 자신을 미끼를 덤벙 무는 은빛 잉어에 대상화시키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은근히 김영춘시인의 시재를 엿보게 한다. 이 시에서는 8월의 호수가를 거닐면서 본 낚시질관경, 그것으로부터 서정적주인공의 생각을 펼쳤다. 아, 나도 잉어처럼 그 사람의 낚시줄에 달린 미끼를 덥석물고 그 사람한테 잡혀서  사람의 손바닥에까지 떨어지고 싶은 그 심정. 낚시에 물리면 즉 잡히면 나중엔 죽기마련이지요 그래서 죽으면서까지도 사랑하는 님한테 이르고 싶은 그 사춘기의 심정이랄가… 아주 묘하게 시화하고 있습니다. 재미나고 멋스런 또 여성의 각도에서 남성을 그토록 갈망하는 심정을 아주 잘 표현한 그런 시라고 생각되는데 시가 너무나 아름답게 흘러 진짜 사랑시로서는 진품입니다. 신-다음은 김영춘의 시 “현대 승냥이”이 입니다. 제목만 봐도 아주 무시무시할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오는데요 함께 감상해보시죠  현대승냥이 김영춘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 건 너의 눈이 였다 번개처럼 날카로운 야성이 번뜩이던 그 옛날의 네 눈빛과 하늘 땅 사이에 턱 버티고 서서 사납게 울부짖던 용맹한 위풍 이젠 조금도 찾아 볼수 없었다 양처럼 순한 눈매로 철창밖의 나를 바라보는 너는 나를 우울케 하는 풍경이였다 비린 바람이 불때마다 초원이 그리워 운다던 전설속의 승냥이는 나와 점점 멀어지고 한 가닥 애수가 흐르는 너의 흐린 눈빛만이 가까와지고 있다 네가 너무 승냥이답지 않은 모습이길래 아름다운 사람옷 입은 승냥이들 이 겨울에 하나, 둘 늘어가는 걸가? 진정 나를 슬프게 하는건 너의 눈이 였다 너를 너답지 않게 만든 이 부술수 없는 쇠살창과 양보다 더 순한 너의 눈매였다 신- 점점 시들어가는 용맹을 잃어가는 승냥이를 남성에 비유해서 쓴것같은데요. 왜서 요즘 남성들은 남성다운 기품을 점점 잃어가고 있을가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여기서 하는 건 만든 부술 수 없는 과 양보다 더 순한 였다. 다시 말해서 에 갇혀 을 잃어 가는 승냥이가 슬프다는 것이다. 그 보다도 승냥이가 을 잃어감과 동시에 을 입은 들이 에 하나, 둘 늘어가기 때문이다. 이 승냥이를 승냥이 답지 않게 만들었다면 은 을 입은 들이 하나, 둘 늘어가게 한다. 그렇다면 은 무엇이며 을 입은 는 또 누구인가? 을 입은 가 어떤 부류의 을 가리키고 있음을 텍스트 자체가 제시해 주고 있다. 즉 =으로 읽을수 있다. 사회가 점점 상업화로 나아가면서 농경생활이 없어지고 기계적인 움직임과 빠른 절주 등은 요즘 남성들을 꽁꽁 묶어서 스트레스에 쌓이게 하고 일상에 빠지게 하고 그러다나니깐 야성 즉 푸들지고 날파람나고 위풍당당한 그런 웅성이 점점 미약해진다. 그래서 나약해지고 여성화되고 특히 그 눈들이 정기가 없어지고 야성이 없어지고 무기력하다. 헌데 일상에 빠지고 삶에 지친 남성자신은 때론 그걸 잘 모른다. 이 시에서는 여성쪽에서 먼저 남성의 남성답지 못한 그걸 발견하고 탄식하고 아쉬워하고 나중에는 실망감을 느끼는 것이다. 남성에게 용맹한 남성다운 기질이 다분히 보였으면 좋겠는데 아주 무기력한 남성들이 숙보이게 되는것이다. 이 시는 스러져가는 남성들의 주눅든 모습을 쓰는것으로 남성답지않은 남성들한테 회초리를 안기고 더 나아가서는 남성들을 남성답게 만들지 못하고 남성의 야성을 죽여가는 이 사회를 비꼬는 것이다. 이 면에서 이 시는 또 사회적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이 시가 발표되던 당시에는 아주 인기를 끌던 시였고 지금봐도 그 새로운 사색령역에 대한 창조는 돋보인다.  신-네 참으로 묘하게 씌여진 시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다음엔 시 “젖먹이는 순간마다”를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젖 먹이는 순간마다 김영춘 젖 먹이는 순간마다 나는 물이 된다 주고 주어도 더 주고만 싶은 샘터가 된다 하얀 사랑샘에 매달려 눈 한번 안 깜박이고 쉼없이 젖 빠는 아가는 풀이 되고 별이 되고 사슴이 되여 작은 나와 큰 세상을 이어준다 엄마 되는 길이란 내가 여위어지고 아기가 커 가는 아프면서 예쁜 여행인 줄 젖 먹이는 순간마다 조용히 행복하게 느낀다   신-네 참으로 아기엄마의 그 마음, 그 모성애가 아주 잘 형상화된 시라고 느껴집니다. 어떻습니까? 림--김영춘시의 특색을 말하라면 아마 현실적인 녀성생활미가 흐르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영춘의 시를 읽으면 현실속의 장면 장면들이 리얼하게 눈앞에 보인다. 이 시는 전혀 해석이 필요 없는 시다. 여기서 살펴보고저 하는 것은 연상이다. . 에서 , 에서 으로 연상이 자연스럽게 직선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 에서 로 이어지다가 와 , 와 , 와 의 형식으로 연상이 빛발처럼 사방으로 퍼져간다. 그러다가 와 이라는 대립속에 발산하던 연상들이 모이게 한다. 마지막 연에서 이란 이라고 하면서 에서 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련상들이 이 시의 단순성을 극복시키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시에서는 젠더 문제가 제기 된다. 아가에게 젖을 먹이면서 행복에 잠긴 여인의 모습. 전형적인 의 형상이다. 하지만 는 시행이 제시해 주듯이 그 은 달갑게 맛보는 이고 그 자체가
7    중국조선족 시인 한춘 篇 댓글:  조회:769  추천:0  2024-08-23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 2013년 07월 18일 20시 58분  작성자: 구름바다 신—이번 시간에는 북방시단의 저명한 시인이고 평론가인 한춘시인과 그의 부분적 시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시인을 마이크앞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한춘 시인이라고 하면 평론도 많이 쓰신분인줄로 알고있구요 현대시쪽으로 많은 연구가 있는분이죠. 그럼 먼저 한춘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1943년, 흑룡강성 연수현  출생. 본명 림국웅. 저와 한성씨라서 아주 잘 아는 사이입니다. 저희들이 두만강여울소리를 연변서 조직할때도 년세가 많으시지만 여러차 할빈에서 직법 와서는 참가하시고 심사위원도 맡아주고 또 여러차 론문도 발표하군 했습니다. 1966년, 동북농업대학 졸업. 해림시 수리측량설계대 대장 역임. 黑龙江新闻社文艺部主任,北方朝鲜族文学巨头,著名诗人。   신—그렇다면 한춘시인한테는 어떤 시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 , , 등과  평론 다수. 신—한춘 시인은 또 어떤 상들을 수상했습니까? 림—네 연변작가협회문학상, 흑룡강성정부 문예상, 흑룡강소수민족문학상, “한춘시인의 중국읽기”란 수필은 도라지잡지에 련재되였더냈는데요  2009년에 도라지수필문학대상을 수상. 2005년 서울에서 진행된 한민족글마당에서 주관하는 제3회 한민족글마당 문학상 해외부문상 수상 등. 2008년 6월 20일. 장백산잡지사로부터 제6회 조선족문학비평상 수상. 이 상은 “한국문학리론과 비평학회”와 장백산잡지사에서 공동으로 수상하는 상인데 매년 중국조선족문학비평분야에서 성과가 큰 문학인에게 수상하는 상이다.   신—그렇다면 한춘시인은 문단적으로 어떤 문단활동들을 펼쳤구 또 지금쯤은 퇴직하셨겠는데요 지금은 만년을 어떻게 보내고 있습니까? 림—네 비록 퇴임했지만도 아주 풍부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퇴임하기전에는 흑룡강신문사 문예부장, 흑룡강조선족창작위원회 책임회장. 연변작가협회 이사. . 2006년 10월 이틀간 한국대구시인학교에 초청되여가서 특강 1996년 10월 「문학의 해」 세계한민족문학대회 중국측 대표로 발제문을 발표해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는가 하면 1990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2차 세계시인대회와 1997년 8월 서울에서 있은 제17차 세계시인대회때 서울에 가서 참가했으며 흑룡강신문사 서울지사 특파원으로 한국에 수년간 머물기도 했다. 지금은 신문사에서도 퇴임했구요. 흑룡강성조선족창작위원회 회장직도 나젊은 리홍규시인한테 넘겼습니다. 지금은 한글학회 하얼빈 소재 흑룡강지부장. 흑룡강신문사 편집위원 70  고령임에도  흑룡강동방학원에서  문학강의를  하고있는  한춘선생은  교수과정에서  한국문학사 교과서가  마땅한것이  없음을  느끼고  30만자에  달하는 《한국문학략사》를  편찬해  올해 내에  출판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당시 150수》, 《송사 150수”의  우리  글  번역서도  년내에  출판될  예정이란다.   신—그럼 한춘시인의  구체 시작품들을 함께 감상하면서 더욱 가까이 한시인한테로 다가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시 “무궁화련가”를 함께 감상하시죠 무궁화련가   한 춘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나는 시를 쓰고 노래했다 그대의 사랑이 내 살결에 닿아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꽃대궁은 키를 높이였다.   오늘만의 아픔이 아니라 해도 외로운 마음 더욱 단단해졌다 한점의 향기 풍기고 지쳐서 쓰러진다 하더라도 꽃은 피여나고 만개하였다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서러운 꿈은 아름다왔다 그대와 헤아리던 별은 나홀로 사육한 사랑의 물증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   림—무궁화련가는 결국 시와의 련가이다. 여기서 무궁화는 결국 우리 민족을 뜻하고 우리 민족의 문화 내지 문학,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시를 뜻한다. 3련으로 된 이 시는 련마다 첫행에 “오늘만의 기쁨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슬픔이 아니라 해도” “오늘만의 기다림이 아니라 해도” 등 말들로 시작되였다. 그렇다. 시를 쓴다는 자체가 미적 향수이고 기쁨일이다. 하지만 또 어딘가 아픔 일이다. 새로운걸 창작해 낸다는건 정신적인 고뇌, 즉 뇌즙을 짜내야 하는 아픔의 인고가 없음은 아니된다. 마치도 조개가 많은 아픔과 인고끝에 진주를 품어내는것 같이. 또 무한한 기다림이다. 3련의 첫행. 또 새로운 정서와 새로운 발상을 기다리는 늘찬 고행의 길이다 독자들한테는 아름다운 시의 꽃송이를 선물하지만 시인자신은 기다리고 아픔을 감내하고 물론 기쁨도 동반한 창작의 아픈 고뇌와 기다림. 나중에 시의 제일 마지막 련 마지막 행에서는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꽃은 피였다 질때에는 꽃씨를 남긴다. 그런데 쭉정이씨를 남겨서는 아니된다. 잘 여문 씨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꽃씨는 여물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는 시창작에 대한 신심과 희망과 용기를 말해주는듯 싶다.   신-네 시와의 뜨거운 련정을 읊어낸 좋은 시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시 “낫갈기”를 감상하고 그 해석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낫갈기 한춘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 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 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꿈꾸는 가지도 쳐주고 새둥지엔 풀도 깔아주고 막혔던 물길은 열어주고 배고픈 기다림은 깎아주고 그리고 마음의 잡동사니 하나 둘 썩뚝썩뚝 자르면 찬란한 비명소리 익어갈테다   혼자서 자꾸 낫 가는 일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일 낫 가는 일은 버릴수 없는 일.   신—네 낫을 간다는 뜻인건 같은데 여기서 낫으로 아지랑 쳐주고 마음의 잡동사니랑 썩뚝 썩뚝 잘라버린다고 했는데 그 밑에 “찬란한 비명”소리란 뭔뜻입니까?   림—여기서 찬란한 비명소리란 바로 몸의 어지러운 곳을 다 쳐버리고 또 쳐버릴때는 아프죠 그러니깐 비명소리가 나겠죠 하지만 다 대패질하고 몸매나 마음가짐이 잘 다음어지며는 거뜬하고 아주 잘 수련된 그런 말끔한 몸이 되겠죠 그래서 또 찬란하다고 한것같애요 그래서 결국 찬란한 비명소리라 했죠. 이 시는 시인으로서 시종 마음의 낫을 갈아야하고 또 잘 간 낫으로 자기의 이런 저런 거치장스럽고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잘 다듬어야 한다는 걸 시화했습니다. 즉 마음의 다듬기, 정신의 다듬기…여기서 시인자신의 자신에 대한 높은 요구와 바른 자세를 우리는 잘 보아낼수 있습니다. “낫을 갈아야 할것이다|한평생 갈아야 할것이다|망판같은 숫돌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반월만한 낫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아주 요구가 높은 …시인의 고도로 자각적인 수련을 강하게 표현한 시라고 생각됩니다.   신-네 시인의 적극적이고 엄격한 자아수련의 자세를 읊조린 좋은 시였습니다. 다음은 시 “락엽”, 참 한창 락엽지는 계절에 “락엽”을 함께 감상해 보시죠…   락엽 한춘   나비처럼 숨을 할딱이다 바람결에 떨어지는 락엽 떨어지는대로 불평이 없다 한여름 진록을 녹여주고 문득 무언가 깨닫고 하나둘 가지를 떠나고 떨어져서는 뿌리께로 간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조용히 몸을 돌린다 높은 가지 끝엔 까치둥지가 당실하다.   림—누구나 다 퇴직할때가 있다. 자리를 내야 한다. 락엽도 나무에서 떨어질때가 있다. 아주 작은 바람에도 떨어진다. 하지만 그걸 별로 싫어하진 않는같다. 그러나 그건 결국 맥이 모자라거나 능력이 제한되여 그런게 아니다. 살구가 제일 잘 익어 무게가 제일 무거울때 나무에서 저절로 떨어지는것처럼 제일 성숙되고 완숙될때 즉 성숙을 완성했을때 떨어진다. 결실의 계절이다.락엽도 이젠 자기 무게로 떨어져선 내려온다. 그렇게 푸르를땐 엄마의 몸체에 딱 붙어서 젖을 빨아먹느라 떨어지지가 않던 락엽이 이젠 모체가 필요치 않아 자체로 떨어진다. 하지만 자기를 키워준 모체를 잊지는 않는다. 즉 나무로 말하면 뿌리를 잊지않는다. 그래서 락엽은 뿌리께에 떨어진다. 떨어져서 하늘을 우러러 보니 까둥지가 당실하다. 하늘은 그렇게 높고 넓은데 그리 높지않은 곳에 까치둥지가 댕그랗게 보인다. 그것이 자기가 성숙되기 전에 여물기 전에 그렇게 흠모하며 우러러보던 꿈이였다. 지금 다시 보니 아주 우스웁지만…이렇게 우습게 보는 자체가 바로 락엽의 성숙을 말한다. 결국 다시 뿌리께로 와서 뿌리에 비료를, 부식토를 제공해주려 즉 모체에 보답하려 하면서 보니 까치둥치는 좀 유치스러워 보이는, 이런 생각이 바로 락엽의 성숙미를 보여준다. 락엽귀근, 즉 이 시는 락엽귀근의 위대한 인생철학을 보여준 훌륭한 시라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락엽이 떨어져서 뿌리게로 간다는 말까지 쓴 시인은 많다. 하지만 마지막 머리돌려 쳐다보니 까치둥지가 저만치 높은 가지에  달랑 매달려있다는 걸 쓴 이는 드물거나 거의 없다. 요기서 이 시는 성공을 보여주지 않았나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해변의 고석(孤石)            한춘 돌은 절벽에 서있어야  돌이라 하겠는데  어느 누구의 재채기에 해변가로 던져졌나 철없이 채찍질하는 물파도에 온몸을 씻어내고 또 씻어내여  청허한 마음 하나  해평선 저 한끝으로  눈길을 모으는 고석  날아가던 해조들이  잠시 내려 깃을 다듬을 때  바다의 너비를 받아안았고  둔덕에서 지는 꽃잎이 지심의 밀어를 실어다줄 때 대지의 기지개를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대낮 한나절  스쳐가는 바람도 한점 없다 썰물은 저 멀리 달아나고  뿌려진 조가비들도 말이 없다  이 시각은 합장기도하는 시각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이 시는 2008년 7월호에 실린 시인데요 참 무한한 인생의 막끝을 보는듯한 한생의 정점에 서서 그 넓이와 깊이를 응시하는 한 로시인을 마주한것 같은 그런 장중하고도 도고한 또 말없는 침묵을 우리는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하필이면 절벽에 서있어야 할 바위가 바다 한모퉁이에 고독하게 버려져 파도의 채찍을 맞고 …조가비도 말이 없고 스치는 바람도 없고 …고독..고독으로부터 사색, 합장, 응시, 회포, 추억, 안으로 반추하는 그런 자세…마지막에 “정도로 숨쉬는 법을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 아주 깊은 의미가 담겨진 한마디…일생동안 방황해왔지만 이 시간만은 정도- 즉 바른 옳바른 인생길…그걸 허공에 적어가는 시각-한어로 时刻。 신-네 참으로 장중하고 엄엄하면서도 차분한 어떤 사색적인 무게로 우리들 마음을 눌러주고 다져주는 시였습니다. 다음은 또 한수의 시 “혜성”입니다. 함께 감상하시죠   혜성 한춘 굴레를 벗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기로 했다 방향이 없다 혹은 어디나 다 방향이다 밤이슬 오른 풀잎들이 입을 다물고있다 어둠이 쪼개지는 시각 또다시 끝없는 적막속으로 짧은 옷자락을 태운다 우주 사계절을 쌓아놓은 페허에서 시간을 략탈한다 무언의 대사(臺辞)를 입은 가사가 지친 조각돌의 아물지 못하는 상처우에 천서 한장을 올려놓다 신—역시 무게를 누루는 시인것 같은데요 해설 부탁합니다. 림—네 한춘시인의 시는 모두가 이토록 지긋이 무게를 눌러주는 맛이 있는것 같습니다. 역시 인생, 앤생의 자세, 다각적인 인생에서의 옳은 길, 정도를 제시해주는 그런 의미깊은 시인것 같습니다. 헤성은 궤도를 따라 돌지 않습니다. 궤도를 벗어나 밤하늘을 쭉- 가르며 어딘론가 자기만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곹추 그 길로 뻗어나갑니다. 향방이 없습니다.하지만 또 향방이 너무 많습니다. 어디나 다 미개척지이니깐 어디나 다 내가 뚫고 들어갈수있는 방향이지요 그래서 길이 더구나 많습니다. 옛적 처음으로 상품경제시대에 들어설때는 무얼할가? 무슨 장사를 할가? 종래로 해보지못한 일이니 여러가지로 생각이 잘 안나지요 감이 잘 잡히지 않지요 하지만 이젠 뭐어든 다 해서 돈을 버는것과 마찬가지로 시창작같은것도 그렇죠 진정한 창작자유를 안아오기전에는 걍 그 길 …사상이 있어야 하고 주제가 있어야 하고 주제를 둘러싸고 창작해야 하고 그 어떤 쾅쾅에 맞추려 했지만 요즘 세월엔 그게 아니죠 그저 어떤 느낌같을걸 아주 미감나게 쓰면 되죠 또 아주 길이 많죠 요기로 가면 새우는 수풀로 갈수있고 조기로 가면 사랑노래 질펀한 정감의 동산으로 가서 맘껏 상상을 펼칠수있는 호시절이 나타나죠 이 시에서는 바로 혜성의 과감하고 대담한 개척정신을 노래했고 “굴레를 벗어버리는” “남의 말을 듣지않는” 비록 앞에 그 어떤 곤난이 닥쳐도 떳떳이 어두운 밤하늘을 헤가르고 나아가는 그 고귀한 정신을 노래했다고 나름대로 생각합니다. 마지막 “아물지못하는 상처우에 천서한장을 올려놓는다” 즉 개척하자면 아물새가 없지요 늘 상처를 지니여햐 하는 로고. 위기를 느껴야하죠 하지만 천서-하늘에서 보내는 약속의 편지가 우리몸에 올려지는 …하늘의 뜻인걸 어떻게 할가 그냥 가보자 또 그속에서 인생의 진가를 느끼게 되는 개척의 희열…보람같은걸…느끼게 된다. 신—네 다음은 “황야의 길”을 함께 감상하고 선생님의 해설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야의 길 한춘 산비탈을 에돌아가는  저 길우에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다   서리 내린 그날 아침  매가 채간 까투리 외마디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길바닥에 떨군 깃털   해볕이 이글거리는 삼복철  혀를 풀럭이며  빨간 눈알을 굴리던 미친개 그 지린내도 날려갔다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찌그덕거리던 굴림도  이즈음 어디까지 달려갔나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 길은  길이 아니라 바람이라고 림— 2008년 7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문혁때의 살풍경을 통탄하며 쓴것 같습니다. 그때는 사실 황야지요 전반 중국이 경제가 붕괴의 변두리까지 갔으니깐 …사실 붕괴의 변두리인것이 아니라 완전히 붕괴되였다. 전문적으로 정치비판대회나 하고 구호나 부르고 투쟁대회나 하고 전쟁준비나 하고…고도로 긴장되고 고도로 고갈된 그때 –참 그때는 진짜 중국이 황야였다. 제1련: 그런데 지금은 그런 황야로 가던 길에 아무것도 없다 안보인다 텅비였다 지금은 중국이 황야로 가는 길이 아닌 부강에로 가는 길밖에 없으니깐 . 물론 황야로 가는 길엔 지금은 아무 그림자도 없는 것이다. 제2련:그때의 그 동란의 년대를 회상한다. 때리고 마스고 빼앗는 분자들이 나와서 살판치며 사람을 잡아가고 …하여튼 이런 일들을 회상 제3련:미친 시대의 미친 개들, 그때 그시기의 반면적인 인물들을 묘사, 그 지린내도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제4련: 먼지속에 묻힌 차바퀴자국- 결국 이젠 세월속에 묻혀버린 그때의 그 요란하던 차바퀴자국, 뜨락또르, 덜컹거리는 해방패차, 혹은 찌그덕 거리던 소수레, 마차 등 스산하던 차, 집체호로 가도 차, 시골에 연출가도 차, 자전자, 등 하여간 아주 스산한 년대의 소란스런 그런 차들… 제5련:   “누가 말했던가 황야의 저길은 길이 아니고 바람이라고”           -그렇다, 그 동란의 년대, 황야로, 지옥으로 가던 길은 사실 길이 아니다, 그저 한번 미친듯이 불어친 폭풍이였고 태풍이였다. 결국 바람이였다. 전반 중국의 옥토벌을 쓸어눕힌 미친듯한 바람의 세례였다. 지금애들이 그때를 뒤돌아 보면 야, 그때는 정말 정신병자들만 살았구나. 하고 개탄할것이다.그렇다. 그 길은 길이 아닌 길이요 그저 한시기 불어지나가 버린 바람일뿐이다…          결국 이 시는 황야와같던 시대를 비판하고 통책한 시라고 본다. 신-다음은 또 기분을 바꾸어서 차분한 마음으로 늙으신 로모를 묘사한 시 “한 어머니의 화상”을 함께 감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어머니의 화상(畵像)                한 춘 꼿꼿이 선 여윈 겨릅대 그리고 박토에 박힌 지팡이 춘삼월 매화꽃이 되여  가지끝에 매달린 연보라  추위를 이겨온 자랑 아무런 욕망없이 흐르는 강물에  꽃잎으로 떨어져서  꽃잎으로 떨어져서 저 멀리 욕망을 실어보내고  구들웃목에 걸어둔 메주덩이 하얀곰팡이가 내렸네 찬바람을 쫓는 어려운 나날들이  락수물이 되여 떨어지는 추녀끝 아픈 가슴 가득채운  간 밤에 키웠던 꿈이  거미줄에 대롱거리네 림- 이 시는 2007년 8월호에 실린 작품인데요. 제1련:늙고 무감각적인 현재의 어머니 외모묘사 서있는 모습.     제2련: 젊은 한철은 그 추운것처럼 맵짜게 어려웠던 때였지만 매화꽃처럼 피여 가지끝을 연보라빛으로 자랑하며 추위(즉 어려움)를 이겨낸 때도 있었다. 제3련:일생동안 아무런 욕망도 욕심도 야심같은것도 큰 포부도 없이            평범한 가정여인으로 자기의 청춘을 고스란히 세월에 맡긴 어머니다. 여기서 “흐르는 강물”은 류수같은 세월의 흐름을 말한다. “ 꽃잎으로”는 젊음의 한철을 말한다. 시는 다시 오늘로 돌아오는데 오늘날엔 어머니가 만들어놓은 “구들 목의 메주가 하얀 서리 내렸다” 메주—엄마가 한생동안 반죽한 가정일, 가사를 말한다. 하얀서리—엄마의 꿈에도 이젠 흰머리, 엄마의 귀체도 이젠 늙었음을 암시한다 제4련: “락수물되여 떨어지는 추녀끝”—참 잘된 시구이다. 하나는 “그 어려운 나날들”이 다 물러갔음을 말해주고 또 거기에 어머니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비, 눈물—더 나아가서 시인과 독자들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얼굴에서 비오듯 쏟아지는 눈물이 한데 엉켜 반죽된다. “아픈 가슴”-이미 많은 풍상고초를 받아당한 상처입은 가슴 –그런 아픈 가슴에다도 간밤에 또 꿈성을 가득 채워본다. 허나 이젠 모든 꿈들이 다 현실로 될수없고 거미줄에 걸려 가냘프게 대롱거릴뿐-또 이것이 잔혹한 현실이다. 총적으로 이 시에서는 그 청춘의 매운 고개를 넘어오 고 시집살이의 추운 고개를 넘어온 이젠 늙으신 어머니가 지구의 한끝에 조용히 서서 인생의 허무를 생각하고 상실의 슬픔을 느끼는 인생무상을 읊조렸다. 또 그로부터 우리 매개 인간들이 자기 인생을 반추해 보게 만들었고 한없는 우주공간속의 티끌같은 인생을 다시 자아성찰하게 만드는 그런 시였다고 생각한다.참으로 명시이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은 북방문단에 하나의 작은 문학의 산을 만들어낸 시인 한춘과 그의 부분적 시편들을 감상해보는 아주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요 한춘시인께서 만년을 아주 불타는 석양노을처럼 더욱 황홀하게 장식하기를 빌면서 이 시간 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6    중국조선족 시인 김승종 篇 댓글:  조회:802  추천:0  2024-08-23
竹林 김승종 시인 2014년 08월 19일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청도에서 오래동안 몸담고 시창작을 하시다가 미국에 이민간 홍군식시인을 소개했는대요. 이번 시간에는 다년간 화룡시에서 시창작활동을 하시다가 한국에도 가서 한동안 일하면서 문학활동을 줄기차게 펼쳐온 김승종(죽림)시인과 그의 일부 시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는데요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합니다.   신-그럼 먼저 김승종시인의 시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을 감상하겠습니다.   그립다 그리워 또 다시한번                 김승종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놀러오시면 그 언제나 삼베보따리엔 그윽한 향기에 물씬 젖어있고   모시수건에선 알락다람쥐와 다투며 주었다는 노오란 깸알이 어느새 요 내가슴에 똑또그르―  구수히  흘러든지 오래고   앞내가 버들가지에 돌쫑개며 버들개며를 해빛 몇오리와 함께 스리슬슬 군침 돌게 스리슬쩍 말리웠다는 어느새 울 아버지 맥주병 들고 코노래 흥흥 넉사자 입은 언녕 귀가에 걸린지 오래고   외할머니, 우리 집으로 늘 놀러 왔으면…   신-외할머니는 누구의 동년에나 다 인상깊은 분이시죠 외할머니, 외가집 등 이 시는 김시인이 어렸을때 외할머니가 자기집에 오시던 때를 추억하면서 그때가 그립다고 쓴 시인데요 진짜 우리 민족의 시골에서는 흔히 볼수있는 삼베보따리,깸알, 돌쫑개, 버들개 그것도 해볕에 말리우느라 해빛 몇오리까지 함께 있는 향기론 물건들 그래서 아빠는 이날만은 맥주도 마이고 즐거워하신다는 …물론 시인 자신은 더욱 즐겁겠지요. 그래서 정말 외할머니가 오시는 날은 명절같은 날이고 뭔가 먹을수 있는 날이여서 그 살기힘들던 시절 더욱 잊혀안지는거겠죠… 이 시는 외할머니가 오시기를 기다리던 일을 추억하면서 그리운 고향과 고향사람들, 친지들을 그리는 마음을 잘 시화한것이지요       신-그럼 김승종시인의 프로필에 대해서 소개주시죠 림-네, 김승종시인은 1963년 화룡시 로과향 죽림촌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연변대학사범학원졸업후 연변작가협회 이사, 화룡시 모향 신용사에서도 10여년 근무, 화룡시청년시인회 회장,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등 단위를 떠나 한국에 가있는 5년동안 경상북도안동 간고등어가공회사에 서 일하면서(고등어를 밸따기일) 유관 유지인사들과 련계하여 해마다 한화 천만원을 유치해 연변작가협회에 보내주어 중국조선족대학생“이육사문학상”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미 2011과 2012년에 진행했고 앞으로도 매년 하는 활동으로 자리매김 하는것 같다. 그리고 서지월선생이 책임진 대구시인학교에도 가서 시낭송 등 문학행사에 참가했고 안동의 이육사기념관, 옥천의 정지용생가 등도 다니고 또 재한조선족문인회에도 참가하여 활약상을 보였다. 룡정에서는 또 룡정시아동문학학회에서 아동소설창작에 대한 강의도 하시고 …요몇년전엔 또 자신이 한국서 땀흘려 번 돈 300만(한화)을 기증하여 중국조선족중청년들의 모던시집 “은회색 두 동네 카니발”을 출판하였다. 한국세계계관시인협회 본상, 두만강여울소리상, 등 수상. 시집: “보리 한알과 등록되잖은 R와 일회용삶”-연길에서 출간기념회까지 가짐.       “보리깜부기와 ‘구혼광고’와 흰 그림자의 삶” 등 펴냄.   지평선너머     김승종     지평선너머 노을이 몸풀이하던   개바자너머로 쥬우― 쥬쥬쥬 닭들을 어둠과 더불어 하아얗게 불러들이던   문턱너머 화로불우에서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국이며 구수히―  얼룩고양이 코끝을 건드리던   나의 고향 느즈막 추억과 함께 새까아맣게 부서지고 그늘 비낀 마음속에서 하냥 색바래지고있는 아―   ―모두들 안녕하시우   림- 매일같이 고된 노동에 지치다 지평선너머 멀리를 눈주어 바라보면 고향이 그립겠지요 이제 마저 일을 다 마치고 가야할 그리운 고향, 지금 그곳에서는 예전처럼 어른들이 개바자너머로 쥬쥬-하며 닭들을 불러들일것이고 집안에서는 시라지국이며 오누이장이며를 홀-홀 불며 마시고 있을것 같은 그런 느낌과 그런 영상이 떠오르겠죠…물론 그것도 어린 시절의 그림이겠죠 그래서 새까맣게 부서지는 추억이고 또 마음속에는 그늘이 비끼고 색바래지는 추억…하나는 하루일에 고달파서 추억까지 부셔졌을것이고 다른 하나는 요즘 스러져 가는 우리 농촌의 현실이 안타까운것도 있겠죠. 이 모든것을 마지막 한줄에 담아 “ –모두들 안녕하시우”하고 문안이나 올리는겁니다. 역시 고향과 이웃을 그리는 고향애가 다분히 풍기는 시라고 생각됩니다.   새벽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남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많이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못쳐보고 가셨소이다   어ㅡ머ㅡ님!ㅡ   림-돌아간 어머님을 부르고 부르는데 그 부르는 소리가 사방으로 종소리처럼 막 비껴갑니다. 쓸때 진짜 이쪽 저쪽으로 시행을 옮기면서 종소리가 비껴가는것 형태처럼 썼습니다. 진짜 우리 어머님들은 한생동안 남을 위한 종은 많이도 쳤지요 아침부터 “얘들아, 빨리 일어나 밥먹고 학교가라…”,또는 “얘들아, 남산더기의 콩기음을 오늘은 끝내라…” , “얘들아, 내가 오늘은 고사리말린것 팔아갖고 오마” 그리고 또 학교가서 선생말씀 잘듣거라, 나쁜 일을 하지말라..종을 많이 쳤죠. 그러나 단 한번도 자기를 위한 종을 치지 안았습니다. 어머니란 그 자체가 희생적인 존재이니깐요. 오직 자식과 남편과 늙으신 량가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죠 어느 가사에도 있다싶이 “부모라는 그이름이 생겨날때엔 사랑이란 그 이름도 함께 나왔다.” 등…. 말린 나물을 팔아서는 그래서는 애들 고무신이나 소금같은걸 사오느라 몇십리씩 도회에 걸어갔다 캄캄한 밤에야 돌아오신 우리들의 어머님이시죠 더우기 김시인이 살던 곳은 깊은 산속…그러니깐 숭선으로 가는데 큰산을 넘는데 그 큰산을 거의 넘어서 아직은 숭선은 좀 멀고 그런 곳에 있는 자그마한 산속마을에서 살았으니깐…그때 당시는 화룡시로 오자면 걸어서 다녀올때가 많았죠. 즉 이 시는 한생을 자기아닌 남을 위해 살아오시다 돌아간 어머님을 피타게 부르는 그 부름자체인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한행은 “어머님-!”하고 세글자에 감탄부호가까지 달아놓았죠…   7천만 족보찾기              김승종     봄우뢰 운다. 새하아얀 가슴 가슴마다에 봄우뢰 운다 뜨거운 맘, 맘 너머 시꺼먼 금이 간 골짜기에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오해 아닌 최대의 죄악의 오해 아니기를 시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시비 아니기를 슬픔 아닌 최대의 죄악의 슬픔 아니기를 고독 아닌 최대의 죄악의 고독 아니기를 랑비 아닌 최대의 죄악의 랑비 아니기를                                                                      ... 의 번지는ㅡ 의 족보는ㅡ 세상은?ㅡ 세상은?ㅡ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엇허, 살아서 한냥짜리 될가... 엇허, 죽어서 천만억조...냥짜리 될가... 모두들 종당엔 저ㅡ 높고 장중한 큰산아래 자그마한 이 되련만... 봄우뢰 운다 봄우뢰 메인다...   림-우리 민족이 아직도 제대로 족보를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와 부르짖은 시같습니다. 즉 우리 민족은 북에서도 남에서도 모두 제대로 되는 “족보”를 못찾고 있는 현실입니다. 즉 통일되지 못하고 아직도 미국이든가 등 나라들의 간섭을 많이 받고있는 상황… 시가 박력이 강하고 넓고 ..전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운명적인 문제를 다루었는데 처지는 감이 없고 거창하게 흘러 좋았습니다. 봄우뢰 메인다. 사람도 너무 울면 목이 메인다. 봄우뢰도 의인화하여 울다 목이 메인다…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으로 몸부림치다 목메여 쓰러지는 …피타는 절규…피타는 호소…   그 어느 날의 빛                    김승종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진단(震檀)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ㅡ   이다가 10월의 빛, 그 어느날의 찬란함이다가 이다가 백두대간 너머 너머 두만강 압록강 건너 건너이다가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   오늘도 흐른다... 맥(脈), 맥과 맥으로 흐르는ㅡ 그 마력(魔力) 영원불멸, 영원불멸, 아, 그 이름 세월과 더불어 온 누리 만방에... 누누천년의 푹풍 새하야니 일으키는 훈민정음 !   신-이 시는 훈민정음을 말하는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여기서 수자들인 1446이라든가, 14+10이라든가, 3434…등은 뭘 의미합니까?   림- 이 시는 우리 문자가 생겨난 즉 훈민정음 창제된 그걸 기념해서 쓴 시라고 생각합니다. 제목에서부터 제시했는데 “그날의 빛”이라고 여기서 그날은 즉 훈민정음이 창제되여 공포된 날이겠죠 개굴개굴 ㅡ 복사꽃 피는 내 고향이다가-개구리-논을 푸는 마을 꽃이 피는 마을 옹기종기 ㅡ 꿀샘을 파는 초가삼간이다가-초가삼간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 새콤달콤 ㅡ 오얏 따주는 할배할매이다가-오얏의 맛은 새콤달콤…아바이아매랑 모시고 오손도손사는 그런 기분이 떠도는 마을 … 시원컬컬 ㅡ 막걸리 빚는 시골의 향음이다가-막걸리나 술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노래와 춤 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노래와 춤 총적으로 이 련에서는 화기애애하고 오붓하게 논농사를 지으면서 초가삼간 짓고 술마이면서 오손도손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밑에 련에서 1446년이라고 년도수도 밝혀 있구요 14+10=이란건 사실 우리 문자의 자모의 개수를 말한것 같구요. 맥이 흐른다에서 “맥”은 하나는 산맥-즉 백두대간에서부터 한나산까지의 그 척추뼈같은 그 산맥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혈맥-즉 혈통- 피의 맥을 말한것 같아요 그리고 3434, 3434이다가 3543은 곧바로 우리 민족의 시조의 글자수배렬을 말한거구요 정형시조의 기본 글자수… 에루와 데루와 ㅡ /강강수월래 강강수월래이다가/어절씨구 저절씨구/ ㅡ 아리 아리 아리랑이다가….등은 노래와 춤을 즐기는 우리 민족이 훈민정음 창제날을 기념해서 막걸리랑 마이고 노래와 춤을 추면서 기념하는 그런 분위기를 잘 그려냈습니다.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몇번 나오는데 말입니다. 참 노래와 춤과 수자와 피진한 민족적 정서가 다분히 깔려있는 좋은 시라고 생각됩니다…   38의 영탄조   백두산 세상 1번지 산천어 999 쫑- 쫑- 에 와 닿고...   한라산 세상 1번지 고등어 999 쏭- 쏭- 에 와 닿고...   두 세상1번지 권커니작커니 산천어매운탕 얼쑤~ 간고등어구이 절쑤~ 아리아리 아리랑 쾌지나칭칭 그 정다운 맛,- 그 성스러운 멋,- 새하야니 새하야니 한누리 너머너머 끝없으련만...   후유,ㅡ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만 가고 그리고 저기 저 녹쓸어가는 쇠붙이를 또 서로서로 맞대고 들어야만 하는...   림-그러니깐 여기서 999는 9자가 세번이나 들어간 1999년에 쓴 시같아요 여기서 9자는 형태가 산천어나 간고등어와 비슷하고 아직 세기를 넘어갈 대목에 있는 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시구에서 “이날은 핫, 또/ 누런 이끼 끼며 루루 저물어가만 가고…라고 했습니다. 즉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새천년으로 들어서는데 대한 아쉬움, 만약 통일된다면 북에있는 산천어나 남에 있는 간고등어나 다 얼쑤 절쑤 춤노래 펼치겠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백두산은 북에 한나산은 남에 모두 1번지로 (제일 높은 산)있고 ….즉 통일에 대한 갈망을 산천어나 간고등어, 통일각이나 평화의 집, 백두산이나 한나산을 매개물로 노래하고 있다. 마지막 련에서는 통일도 못되고 새천년에 들어서는 아쉬움을 목놓아 읆조렸다.     노을             김승종       고 독 과 고독과 고독이다가 그 리 움 그리움 그리움 그리움이다가   해     님 해 해 님 이 그리움으로 그리움으로 하냥 발그무레 흐르다가 부 힌딪부  고치디 피 울음 !  피울음 !   림- 이 시는 형태가 노을이란 글자로 되여있다. 그리고 노을을 통해 한국에서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며 고향을 그리는 그 고독과 그리움을 피타는 노을에 비유해 슬프고 서럽고 부르짖고 있다. 이런 감정은 한국에 가서 고된 일을 못해본 사람이면 느낄수 없는 감정정서다. 현실생활에 깊숙히 발붙이고 쓴 시인것이 확연히 알린다 즉 현장감이 뚝뚝 떨어지고 질펀히 흐른다. 형식을 노을이란 글자처럼 한것도 독특하다. 누가 뭐라던 시인은 또 시인의 나름대로의 창작쓰질을 내세우느라고 노력한것인것 같다. 이런 형식상의 탐구형식을 우리는 지지하고 높이 찬양해야 할줄로 안다. 왜? 그만의 독특한 노력이니깐… 여기서 주목되는것은 고독이 고독이다가 그리움으로 화했고 또 그 그리움도 노을빛에 빛을 튕기다가 다시 빛이 소리(피울음소리)로 변하는 이런 시적 승화가 돋보인다. 그리고 리념적인것(고독)이 다시 또 시각적(해빛)으로 화했다가 다시 또 청각적(피울음)으로 끝나는것은 기발한 상상과 시적 재능을 잘 보여준다…결코 쉽지가 않다.   신-그렇다면 김승종시인의 시작품특점을 귀납해본다면요? 림-네 주로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김시인의 시들은 내용면에서 하나같이 민족애, 고향애(물론 고향애도 민족애속의 하나지요 왜냐 우리 민족이 살던 고향, 조선족인 내가 살던 고향이기때문이죠) 통일에 대한 갈망 역시 민족적인 거지요. 어느 시나 민족, 고향, 통일 등 주제들이 많이 담겨있습니다. 여기 우에서도 보았지만 “어머니”를 노래한 시라든가, 7천만의 대화합을 갈망한 시라던가, 지평선너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던가, 외할머니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라든가 등 거의 모두가 민족과 고향, 즉 민족애와 고향애 조국애 등이 시들에 다분히 깔려있습니다. 둘째는 형식상의 특점인데 한국 이상의 시창작수법 비슷한 시들이 아주 많아요. 수자를 도입한다든가, 시줄을 널어놓거나 삼각형으로 쌓는다든가, 또는 례하면 락엽을 쓴다할때 락엽이 흩날리듯 여기저기 뚝뚝 떨어지는 식으로 시어나 시행을 안배한다든가, 메돼지란 시가 있는데 진짜 매돼지처럼 시어와 시행들을 메돼지몸체처럼 배렬- 꼬리도 있고 머리도 있고 지어 다리도 있고…그래서 아주 우습기도 하지만 어딘가 색다른 풍경선이 보이죠. 이 면에서는 우리 민족시단에서 김승종시인이 제일 특이하게 그런 형식을 연구하고 있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형식면에서의 김시인의 진지한 탐구태도라고 보아야 할것이고 또 이런 형식이 극히 희소하기때문에 지지하고 응원을 보내야 할줄로 저는 생각합니다. 고로 이런 시형식자체가 김승종시의 또하나의 특점이라고 짚고 싶습니다.   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였습니다. 오늘은 김승종시인과 그의 민족적 정취가 다분히 풍기는 독특한 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도 림선생님 수고많았습니다. 림-네 수고하셨습니다. 신- 그럼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이만 접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 클릭해보세요 → 潮歌网 2014年02月22日   개구쟁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 김승종   ㄱ  즈음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기대치(期待値)와 소망치(所望値)를 너, 나, 그, 마음절구속에 넣고 찧고 빻고 하는 짓거리와 짓거리에 무척이나 넋을 빼앗깁니다…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쯔즘쯔즘 까달까달 쩝쩝… 그 찰나, 그 옛적, 모래톱소꿉놀이도 하냥 즐거웠고… 또 그립고… 하지만 요즈음 개구쟁이공화국에선 모래톱 소꿉놀이는 전혀 까막나라 이야기!-   요즈음, 꾸겨지고 곰삭은 령혼들앞에서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ㄴ  요즈음, 너무나도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이십사기(氣)와 칠십이후(候)와 함께 너, 나, 그, 마음과 마음이 징그럽게 눈언저리 핥으며 메말라가고있습니다…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쭈룩쭈룩 서섬서섬 냠냠… 그 찰나, 이 골목 저 골목 맛갈스럽게 누벼가며 늘 사시절 색다르게 놀던 놀이들은 인젠 새파아란 귀등에서 서리 맞은지 오래고… 그리고 요즈음 개구쟁이공화국에선 그 무슨 “…게임”에 귀여운 눈꼴 눈매마저 다아 빼앗겨 피발에 성엉켜 비지땀 흘리고. 보리떡 대신 그 무슨 괴상한 이름으로 얼룩진 “…먹기콩클”에 호들갑을 떨며 그렇게도 아롱지던 눈빛과 눈빛들 사이는 점점 헐벗고 굶주리여가고…   요즈음, 녹쓸고 텅 빈 령혼들앞에서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ㄷ 요즈음, 이눔은 운이 좋게 내몽골초원 한가운데의 썅싸만(向沙彎)에 갔다 돌아와서부터 더더욱 참 이상야릇해집니다 염통방 닿기전 곰이 잔뜩 핀 그렇게도 찬란한 해볕마저도 지리지리 무서워짐은 또… 그무렵, 지꿎게 굳이 보리떡을 만들어 개구쟁이들에게 먹이고싶은 그 까닭은 또… 썅싸만 모래들의 소리는 이내 텁석부리 귀전에서 늘 찬란히 소소명명이 메아리치고… 웡-웡- 왱-왱- 쏴-쏴- 그 찰나, 썅싸만의 모래들은 소리에 소리를 뭉쳐 몽고포속 개구쟁이들을 왕왕 불러내여 거치른 모래바람앞에서 말이며 양떼며 락타들과 함께 열심히 뛰게 하면서 빨주노초파남보 새 별유천지로 생생히 만들어가고있었습니다   요즈음, 색바래지고 굳어진 령혼들 앞에서 오늘도 이 텁석부리의 마음은 늘 싹 사그라진 녹슬은 화로불과 마주하고있습니다…   ㄹ 느지막, 25시너머― 누우런 이끼 돋힌 침묵의 천년바위앞에서 개구쟁이들에게 보리떡을 정나미 정나미 먹이고싶습니다… 저― 높은 산아래 자그마한 “산”이 되기전   ―모두들 무사함둥…         이 글은 연변일보가 주최하고 한국CJ그룹 중국본사가 후원한      제21회 2013년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 수상작품이다.   【수상소감】 천만년의 침묵을 깨우치며...   뜨끈뜨끈한 수상소식을 접하고,  한파에 움추렸던 몸을 우직끈 불러 일으켜 세워 보았습니다. 옹송거렸던 텁썩부리 시지기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었고, 미세먼지에 혼나고있던 코도 어느새 그런 일 없는듯 흥얼대기 시작하는것이였습니다... (얘, 시지기야,- 좀 아서라!)   잠깐,ㅡ 시를 쓴답시고 허겁지겁 터벅터벅 문학이라는 가시덤불길과 벼랑길을 옹고집 하나만으로 걸어온 문학도였습니다. 친척, 친우, 형제들의 비꼬임들을 이만팔천리 내동댕이치고 저만의 소망 하나만으로 오또기마냥 일어서려 애쓰던 문학도였습니다. 그리고 대골령너머 죽림동의 촌지서였고 정치대장이였던 부친님께서 늘 보아온 를 철부지때부터 지금까지 쭉 내내 40여년 한시도 게으름없이 구독해온 애독자였으며, 눈곱만한 글귀라도 귀보에 등고되면 밤잠을 설치던 글쓰기열성자였으며 땜장이 통신원이였습니다...   이젠 시와 끄적끄적 씨름한지도 어언 30여년, 잃은것도 많고 얻은것도 많은 문학의 길에서 수많은 터널이 잇어지는 굽이굽이였습니다. 잃은것은 금싸래기, 은싸래기였으며 얻은것은 시향이 하냥 찰찰 넘치는 에너지였습니다.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정이 확 드는 울 할머니 성스러운 질그릇처럼 참 좋은걸요. 백의겨레 맥박속에서 뛰는 우리 가락, 우리 리듬으로 된 바탕우에서 늘 무릎 맞대고 빙 둘러앉아 을 기분좋게 서로서로 기울여봄은 또 그 얼마나 좋다구요. 문학을 지향한다는것은 오로지 늘 가난과 고독과 자기와의 싸움이므로 저는 항용 시라는 큰 경전에서 천만년의 침묵을 깨우칩니다. 또 깨우쳐 나아갈것입니다...   고로 록색평화의 반어적인 안부로 하고 전하면서 오늘도 는 를 띄웁니다...   이 문학상을, 자신을 위한 하늘을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가신 아버님과 자신을 위한 종을 단 한번도 아니 치고 가신 어머님, 그리고 문학의 고행 길- 시의 길에서 지팡이이며 우산이며 보리떡이며 기름등잔이며 불씨이며를 항상 정히 챙겨주시던 여러 선배님들과 애독자들께 돌립니다. 또한 이 크나 큰 상을 저의 삶의 고개, 문학의 언덕을 톺는 하나의 디딤돌로 삼겠습니다.   의 편집자들의 숨은 로고에 정중히 감사를 드립니다. ==========////////////////////////////////////////=====================   "별''을 불러보는 시간입니다 2019년 02월 20일 작성자: 룡윤회   "별''을 불러보는 시간입니다 ​ ​ -김승종-   ​ ​ 오늘 따라 용두레우물가 왕버들 지나 ​ 저기 저 동산마루 너머  ​ 별들이 쏟아집니다 ​ ​ 희끄무러한 광목천 보자기에서  ​ 노닐던 별들과 ​ 코쓰깨로 윤나다  ​ 팔소매끝자락에서 뛰쳐나온 별들과 ​ ​ 앞집 뒷집 삽작문 건너  ​ 설기떡 미역국에 동동 띄웠던 별들과 ​ ​ 민들레며 냉이며 고사리며 도라지며가  ​ 살점되여 퐁퐁 뛰던 별들과 ​ ​ 도깨비짐승들과 장돌뱅이짐승들이  ​ 마을안팎 스적스적 노닐던 별들과  ​ ​ 태극문양 정나미나는  ​ 팔간집 호롱불속에서  ​ 꿈자락 하냥 펼치던 별들과... ​ ​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 ​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 아이들의 이름과  ​ ​ 페이(佩), 찡(镜), 위이(玉),  ​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 ​ 벌써 아기 어머니 된  ​ 계집애들의 이름과,  ​ ​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 ​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 ​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 ​ 오늘도 ''흙으로 덮어 버린'' 별들이 ​ 초롱초롱 이슬 맺혀 밟혀오고 ​ ''부끄러움''의 별과 함께  ​ ​ 아리랑 오랑캐령 넘어 넘어 ​ 룡정 명동촌 하늘가에  ​ 은하수 되여 흐릅니다ㅡ  ​ ​ 아,불멸의 영원한 청년  ​ 윤동주의 ''별을 헤는 밤''이여ㅡ     ​ 김승종(金勝鐘) 프로필     아호; 죽림(竹林),  1963년 화룡 로과 두만강역 출생,  연변사범학원 졸업, 교원,  전 농촌상업은행 직원, 현 자유기고인.    전 화룡시작가협회 주석 력임,   중국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시인협회 회원, 룡정.윤동주연구회 리사,    , (200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2005년도 화룡시문련, 화룡시작가협회 주최            본 시집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2011년도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주최         본 동인지 출간기념회 및 시연구세미나 개최). ,  , (2016년 제20회 수상시집) 등 시집, 론저 출간.   두만강여울소리 시우수상,  연변작가협회 인터넷 문학상, 연변일보 해란강 문학상, 제20회 , 한국세계계관(桂冠)시인문학회 시본상,  중국조선족대학생리육사문학제 유치 연변작가협회 공로상, 한국 이육사문학관 공로상 등 다수 수상. //////////////////////////////////////////////////////// 하늘과 종과 그리고... 2015년 01월 22일  작성자: 룡윤회 하늘과 종과 그리고... 竹琳.김승종                  (ㄱ)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ㅡ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그렇게도 성스럽게 성스러이 펼쳐 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ㅡ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 ㅡ 버 ㅡ 님 ㅡ...                                        (ㄴ)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ㅡ 자신을 위한 종은,              단 한번도 단 한번도 아니 치고 아니 치고 가셨소이다...   어 ㅡ 머 ㅡ 님 ㅡ... ////////////////////////////////////////////////////////////////////// 두만강에 떼목이 흐른다 2014년 10월 06일    작성자: 룡정윤동주연구회 두만강에 떼목이 흐른다 김승종 여보소, 벗님네들! 버빡골 할배 떼목앞에서 거연히 뼈로 솟아 흐르오 부암동 할배 떼목뒤에서 소소리 탑으로 솟아 흐르오 진달래동산 지나  살구꽃동네 돌아 굽이굽이마다 아리랑 구성지오 에헤야 듸야  에헤야 듸야 두만강에 겨레의 전설  새하야니  새하야니  흐르고 흐르오… 2007년 12월호   파일 [ 2 ]      
5    중국조선족 시인 박장길 篇 댓글:  조회:965  추천:0  2024-08-23
박장길시인 2014년 08월 16일 21시 28분   작성자: 림금산   신—문학살롱 신금철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연변녀성시회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좋은 시를 많이 쓴 녀류시인 리순옥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봤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연길시 조선족예술단에서 사업하면서 가사창작을 비롯한 좋은 시들을 많이 창작하고 있는 박장길시인과 그의 일부 작품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림금산선생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네 수고많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군복무를 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후엔 또 예술단창작실에서 명가사들도 많이 창작한줄로 알고있는데요. 먼저 박장길시인의 약력에 대해서 얘기주시죠   림—네 박장길시인은 1960년 2월,   화룡시덕화향 길지촌에서 출생. 시인의 고향이라 불리우는 덕화향 길지. 길지에는 허충남, 허봉남, 허두남 허씨3형제 한마을 장길네 집과도 가까운 곳에 있었음 소학교 담임교원 김응룡 고중시절에 허충남선생의 지도를 받으면서 문학가의 꿈에 열을 올렸다. 허충남선생은 학교에서 써클을 조직하여 문학강의. 시창작연습. 최룡관선생도 박장길시인과 머지않은 곳에서 살고있었음. 신창수시인, 그리고 중견시인들인 김영건, 김승종 시인들도 모두 덕화향에 살았습니다. 박장길시인은 향문화소에도 있었고 청춘시절엔 배구를 잘 쳐서 성대회에도 참가한적 있습니다. 후에 박장길은 군대에 참군합니다. 참군하여서도 작품창작을 계속하여 소속부대 표창도 받았습니다.   신—박장길시인은 3가지 일에 동시에 흥취를 가지고 몸잠구고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3가지 일들이 있었습니까?   림-네  1. 참군2.배구. 3. 문학. 그의 아버지는 군관이였는데 퇴대하여 농촌에 와서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름은 마을에서 였습니다. 박장길은 박군대의 아들답게 역시 군대로 떠났습니다. 당시 전 연변주에서 남평배구팀이라면 다 알았다. 길림성대회에까지 가서 전주를 대표하여 성에서 1등 한번 2등 한번을 했다. 그때 징병모집이 내려왔다. 학교몰래 보명해써 키 170 배구로는 키가 작다했지만 군대에는 특등 신체로 입대—운동원이였으니깐 빵빵하지요 성대한 환송속에서 참군.   신-그러니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계속 배구운동쪽으로 나갔겠네요. 어찌보면 참군이 그한테 문학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림—네 흑룡강성 흑하 그 쪽. 먼저 자동차련대. 후에 치치할쪽 포병부대로 전근. 군복무 3년간. 전투명령이 내려 집에다 유언까지 써보내던 가장 간고하던 년대 흑하현 백운공사. 어느 촌락. 전등불도 없고. 집에 들어가 자는데 바닥에는 닭개, 돼지, 게사니들과 함께 자던일, 변소갈때 가축을 모르고 건드리면 …큰 소동이 생기기도 하고. 당시 남쪽에서는 윁남전쟁, 그들은 혹시나 있을 북쪽 쏘련침략을 방지하느라 1급전투태세에 들어간 것이였음. 그런 환경에서도 시창작을 견지. 라지오에서 웥남전쟁에서 영웅이 속출한다는 이야기 듣고 영웅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   신—이 시기 박장길시인이 쓴 라는 시가 센세이숀을 일으켰다면서요? 림—네 “초소에 날아온 까치”의 창작이야기. “숙아, 너는 구름을” –연변문학에 발표됐는데 후에 이 시가 “민족문학”에 번역되여 발표—박길춘이가 번역. 박길춘은 방정현의 사람. 서로 편지가 오가다가 방정현에 가서 교장인 길춘아버지의 소개로 거기서 교원사업도 함. “잠못 이루는 밤”이란 작품은 아이들한테 사탕 사주면서 편지로 부치라 했다. 부대에서 령넘어 백운공사에 가야 우편국이 있으니깐. “흑룡강성조선말방송국”에도 투고. 원고료 7원이 왔다. 가끔씩 치치할시 조선족중학교 교원한테 다니며 시를 배웠는데 그 선생한테 5원으로 적삼 사갔다. 시를 발표했다고 전 련의 표창받음. 68사에서 조선족전사들한테는 이름이 다 알려졌다. 그후부터 전사들은 박장길이 글잘 짓는다하여 련애편지를 써달라 해서 많은 연애편지를 써주면서 시창작에서의 정서도 많이 키웠다고 한다. 한번은 한창 쓰는데 순라대에서 발견, 헌데 조선말을 알아못보고 간첩활동을 하는가 사부에 붙들어 갔는데 조선족전사를 찾아 읽어본게 영웅노래시이니깐 풀려났다는 이야기. 모얼뚱이란 동굴에 숨었다가—집합나팔소리가 나니깐 굴에서 나가는데 그만 굴이 무너졌지만 호주머니의 창작시만은 그냥 보존하고 있었다. 겨울엔 잉크가 얼어서 연필을 썼는데 연필속대가 자주 끊어져서 혹간 연필속대가 끊어지지 않을때는 그렇게 기뻐했단다. 포탄상자에 눌리워 팔목을 상함. 시까지 발표한 사람이라고 특혜를 줘서 팔에다 완장을 끼고 검사원질 하는 대접도 받았단다 역시 시한편때문에 받은 혜택이였다. 저녁이면 아홉시에 통일취침. 그래서 전지불. 초불. 등을 켜고 창작, 그러다 한번은 침대에 불이 달린적도 있었다. 전지약이 없어지면 취사칸. 사부의 불빛빌어…책을 읽었는데 모기가 너무 매달려 고생하던 일도 있었음 … 제대후 군인생활을 시화한  제대군인 시초 “고향의 흙” 을 창작 그리고 몇년전에는 또 로신문학원 제11기 전국중청년작가고급연구반도 수료하였는데 북경에 있는 기간 수편의 시를 한문으로 각지 잡지에 발표함.   신—문단활동도 아주 적극적인줄로 알고있는데요. 지금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떤 성과들이 있습니까? 림-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리사.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사단법인 연변문학예술연구원 부원장,연길시 조선족예술단 창작실 주임 선후로 아리랑문학상, “두만강여울소리”시가탐구상, 국가급 가사창작1등상, 정지용문학상, 가야하문학상 등 30여차 수상. 몇년래 인기가 높은 대형무극 “계절의 노래” 등 창작 신—많은 작품들을 써냈으니 당연히 적지 않는 문학작품집들을 펴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박장길시인에게는 어떤 작품집들이 있습니까? 림-네 시집 “매돌”, “찰떡” ,“짧은 시 긴 탄식”, “ 동시집 “소녀의 봄” 가사집 “춘하추동” 수필집 “어머니 시집가는 날” 등 8책.   신—수상작도 많겠는데요? 림—네 두만강여울소리 상 몇차 제14회 정지용상. –“짧은시 긴 탄식”으로 “동년의 뜨락” 가사 상—히트친 노래 전국급상 , 성급상 등 30여차. 가요무대 “사계절의 노래”는 인기가 확끌려 연변에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가정- 안해는 중학시절의 동창생. 아들 무한대학졸업.  세식구   신—박장길시인도 시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것으로 알고있는데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습니까? 림—네 풍격에서—진실과 뜨거운 정감과 애틋한 그리움으로 얼켜야 한다고 주장, 언어장난으로 시를 짜내는 건 혐오한다. 언어의 발견으로 시를 창작하는걸 싫어하고 시적 발견으로 시를 써내는걸 주장. 그러니깐 형식이나 기교보다 내용을 앞에 놓자는 주장. 시에서 받은 혜택--시는 무너지는 나를 춰세운 친구이고 농민의 자식으로부터 국가 1급작가로 만들어주었다. 언제든 자신한테 많은 행운과 복을 안겨준 시를 배반하지 않을것이다고 다기차게 말함.   신—박장길시인의 시에 대해서 객관에서는 어떻게 평가하고있습니까? 림—네 장정일 평론가는 “수상작품집 ‘짧은 시, 긴 탄식’은 무엇보다 먼저 시인적인 역설의 재치를 바탕으로 인생만사에 대한 관조의 깊이를 탐구하는 의지가 돋보인다. 생활에 밀착되고 함축되고 절제된 시어를 구사하는 그의 시작들중 기발한 역설에 기대여 시적사유의 도약을 실현한 수작들이 그의 작품집의 근간을 이루고 있어보인다”고 평했다.   신—네 시 형식보다도 시 내용을 주장한다는 박장길시인인데요. 그럼 아래 박장길시인의 시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박시인의 문학향기를 더욱 가까이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감상할 시는  “콩꽃”입니다. 함께 감상하고 그 뜻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콩꽃 박장길   네가 맺은 열배로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 해볕에 부끄럼없이 탱탱 여물어 황금 같은것 고르고 골라서 오래오래 퍼지웠다가 매우매우 삶아서 뭉개고뭉개서 빚어낸 메주 거기에서 짜낸것 만들어낸것 간장이며 된장이며 고추장이며 청국장을 지나 장국에 이르러 승화된 맛 어머니같이 할머니같이 그렇게 정 깊어 무작정 좋아 불러만 보아도 입이 구수하고 군침이 도는 그 모든것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것은 콩꽃에서 비롯되였다 보잘것없이 잘게 잘게 피여 희게 피여 결실한것은 보귀한 꽃 콩꽃은 조선족꽃이다   신—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를 이끌어낸것 같은데요 참 자연스러우면서 기발하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림-네, 하얀 콩꽃이 피여나면 우리의 제일 전통적이고 고유한 음식의 하나인 콩이 달리고 콩으로는 또 된장, 간장, 썩장, 콩장,두부 등을 만든다. 하기에 콩꽃은 어떻게 보면 우리 민족만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색갈까지 하얀 색이니… 시인은 우리의 꽃인 콩꽃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민족이 즐겨 자시는 콩의 력사를 이 시에서 써냄으로써 우리의 음식문화를 도출해냈고 그속에 끈끈히 고패치는 민족의 문화, 민족의 맛, 더 나아가서는 민족녀성들의 고달프지만 또 찬란한 력사를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시줄에서 살펴보면  “우리들의 피에 흘러 대를 내려오며 같이 해온 대를 이어가며 함께 할 맛이 가지 않을 영영 우리의것” 이라고 했고 “우리를 우리답게 하고” “네가 맺은 열매로 하여 조선족은 조선족다와졌다”고 호소하는것이다. 콩꽃으로부터 우리 민족을 생각하고 우리의 음식문화의 피나는 역사를 파헤친데서 이 시의 뜻이 염글어진 것이 특이하다. 무심히 콩꽃을 보고 지났더라면 이 시는 세상에 태여나지 못했을것이다. 신—네 콩꽃에서 민족의 얼을 찾아 적은 한수의 좋은 시였습니다. 그럼 계속하여 박장길시인의 력작 “거울앞에서 “를 감상하고 그 뜻을 파보도록 하겠습니다. 거울앞에서 박장길 텅 비여서 다 품어주는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본다 가득차서 좁은 가슴? 바라보면 벌써 안겨있는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진것을! 채운만큼 좁아지고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침 펴는 거울의 밝은 가슴 비여있어도 빈 소리 없다 신—네 거울앞에 서서 거울과 자기를 비유해서 시적인 의미를 찾은것 같은데요 그 깊은 뜻이 담겨있을듯합니다. 림-거울앞에서 거울을 보면서 발견하는 철학은 바로 비워있는것과 채우는 것 즉 비우면 많이 채울수 있고 채우고 있으면 좁아진다는, 소유와 무소유의 철학을 잘 말해주고 있다. 거울은 늘 비여두고 있기에 뭐나 비쳐드는건 그 비운 자리만큼 그득 채울수 있지만 거울앞에서 “내안을 들여다보니 가득차서 좁은 가슴”이 보인다. “거울은 비여있기에 넓어졌고” 나는 “채운만큼 좁아지고” 거울은 지금 “비운만큼 채워지는것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또 마지막 련에 한술 더 떠서 거울은 “비여있어도 빈소리 없다”고 함으로써 –(사실 거울은 말이 없는 물체이다. 그만큼 또 빈소리할줄 모른다)무소유인 거울의 풍만함과 진실함 즉 그 품위를 한층 더 승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신—박장길시인은 로신문학원에서 연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음 감상할 시는 로신학원에서 문학공부를 하면서 지은시라고 합니다.  시 제목은 “나에게”인데요. 함께 감상하고 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박장길 접혀있는 손풍금이여 주름을 펴고 가득 차있는 그 소리 울려라 새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 깊은 호흡으로 울려라 주름 잡힌 가슴에 접어넣은 사색 활짝 펴고 태양을 안고 타면 하얀 소리 울려나와 무대는 다시 열리고 해와 달의 조명아래 나래쳐 열광할 백이십뻐스 접혀져있는 손풍금이여 가슴을 열어 세월이 데려간 화려하던 한때를 털어버리고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신—네 자기 자신을 손풍금에 비유하여 쓴 시같은데요 아마도     로신문학원에서의 자기의 감수를 시화한것 같습니다. 림—네, 그렇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북경에 있는 로신문학원에 가서 연수받을 때 쓴 시같다. 여기서 화자는 자신을 주름이 가득찬 풍금에 비유하여 풍금이 주름을 펼때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것으로 상상하였다. 시인은 그때 이미 쉰고개를 넘어서고 있으니 인생의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 고 또 쉰고개를 넘고 있으니 속에는 소리의 소재(즉 생활체험같은것)들이  가득차 있는것이다.   (120호 뻐스는 뻐스선로를 말하는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선생을 타며 한껏 울려라 는 “신생”을 타며로의 오식이 아닌가도 생각되고 진짜 선생을 타며는 선생을 초과하며로 해석할지 저도 조금 궁금한데요)   시인은 매일 교수들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시구에서는 “새 바람 잡아 가슴 가득 재워(지식을 많이 배워) 깊은 호흡( 깊은 시적인 사색)으로 울려라” 고 하면서 새로운 시야와 새로운 의식으로 새로운 시를 창작해 낼것을 다진다. 이 시에서의 새로운 창작수법이라면 그저 자기의 감수를 적은것이 아니라 손풍금을 대상물로 삼아 손풍에 의탁하여 시인자신을 표현한것이 기발하고 묘하다.   신—다음은 박장길시인의 대표작중 한수인 “세월조각가”입니다.  감상하고 그 구체적인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조각가   박장길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 모르고 운 울음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 때가 되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 입가에 눈가에 이마에 새기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전시장에 내놓고 해와 달로 비추어보며 지우지는 않고 그냥 보충만 한다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 눕혀 데려가고 세상의 문을 닫는다 세상문은 회전문 세월의 조각가는 할 일이 하도 많아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   신—세월의 무상하고 또 무정함을 쓴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습니까?   림- 제1련을 살펴보면 이 세상에 울리며 데리고와서—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날때 울며 태여남을 말함 모르고 운 울음맛을—아길적 응아응아 하고 저도 모르고 운 그 맛을 옹이를 박으며 배워준다—차츰 커가면서 옹이를 박으며 배워간다. 세월의 흐름속에.. 제2련을 보면 때가 되면—시간이 가면…세월이 흘러가면 빠짐없이 조각을 한다—시간을 하나도 빠뜨림없이 얼굴에 새긴다   제3련을 보면 입가에 –입가의 주름살 눈가에 –눈가의 주름살 이마에 –이미의 주름살 새기기만 하고 –그냥 주름살을 남겨주기만 하고 삭제는 할줄을 모른다 –주름살을 없애버리지는 않는다..   제4련을 보면 때가 되면-죽을 때가 되면 한점 한점 빠짐없이 저승사자를 시켜-한명한명씩 죽음의 신을 시켜 눕혀 데려가고—사람이 죽으면 눕는다 눕혀서 저승으로 데려간다는 뜻 세상의 문을 닫는다-이 세상과 리별을 하게 함을 말함 세상문은 회전문—헌데 세상문은 회전문이기에… 세월의 조각가는 –죽은건 보내고 조각가는 다시 돌아온다—즉 세월은 다시 돌아온다   할 일이 하도 많아 –세월은 할일이 많아서 한해에 허옇게 늙는다—한해사이에도 많은 사람을 저승에 보내느라 허옇게 늙어진다 여기서 한해라고 한것은 한해에 하나의 인생만 저승에 보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생을 저승에 보내야 하기에 드바쁘다는걸 말한다. “세월의 조각가” 누가 술을 많이 마여 간을 파괴하면 간암을 만들어주고 위를 파괴하면 위암을 만들어 준다. 또 누가 자연의 생태평형을 파괴하면 지진을 보내주고 해일을 보낸다…가차없다. 이 시는 이렇게 세월의 무상함과 가차없음을 …누구에게나 동등한 세월의 칼날같은 예리함을 밝힘을로써 세월-즉 시간앞에서는 누구도 용서나 회의나 후회같은것이 있을수 없음을 …즉 무정한 인생을 똑 찍어 말해줌으로써 다시 더 올수 없는 한생을 다시 수개할수 없는 한번의 인생을 허송하지 말고 분발하고 노력하여 알찬 한걸음한걸음을 찍어가라는 부탁과 명령과 조언인것이다. 이 시는 이렇게 아주 랭정한 인생자세와 갖춤새를 따갑게 말해주는데 그 성공을 두고 있는것이다. 구 쏘련의 저명한 대 문호 고리끼는 이런 뜻의 말을 한 일이 있다. 즉 사람들은 매일 매일 자기무덤을 향해 한발작 한발작 다가가고 있다.- 그렇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 자기의 죽음을 향해 전진한것이니깐 …이런 견지에서 볼때 우리는 매 한시간 매하루 매 1년을 소중히 살고 알차게 살아내야 할것이다. “세월의 조각가”는 사정은 봐주지 않으니깐… 신: 계속해서 감상할 시는 입니다. 문학작품에 많이 등장하는 물과 별인데요. 박장길시인은 어떤 물과 불을 쓰고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물과 불                     박장길 물은 아래로 흘러 바다로 커지고 우로 솟아 불은 재로 사라진다 가장 낮은 곳은 바다 가장 높은 곳은 허공 신: 네 아주 짧은 시지만 박장길시인의 글솜씨를 보여주는 시가 아니였는가 생각됩니다. 림-물은 허심하고 겸손한 인생을 말하고 불은 기세차고 하늘을 쯔를듯 거창하지만 허무함을 말하고 가장 높은 곳에 있을수록 허무하게 인생을 낭비하는 허상을 비판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걸 많이 볼수있다. 가장 낮은것같지만 가장 휘넓은 바다같은 삶을 안고 살고있는 참다운 생이 있는가 하면 가장 높은것 같지만 사실 아주 허풍적이고 아주 텅빈 공중루각같은 풍만과 삶의 진가를 떠나서 물거품인생을 살아버리는 허무맹랑하고 갈대같은 인생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시인은 이 시로써 이런 현실을 비판한것이다. 이 시는 설명이 필요없이 조금만 사색해보면 그 뜻을 짚어낼수 있는 그런 철리적이고 사색적인 단시이다… 신: 네 오늘 문학살롱 작가초대석시간에는 연변시가학회 림금산부회장님을 모시고 시인 박장길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또다른 시창작 자세를 엿볼수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는가 생각됩니다. 물론 박장길시인한테는 좋은 시들이 많지만 시간상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림선생님 오늘도 수고가 많았습니다. 림: 네 수고많았습니다. 신: 네 이것으로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 노래 ------
4    20세기의 신화/김학철(제목 클릭하기... 訪問文章 클릭해 보기...) 댓글:  조회:1578  추천:0  2024-08-23
[珍藏版] 김학철 장편소설《20세기의 신화》 潮歌家族 潮歌网        안내: 위 사진제목을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조선족 최대 필화사건!  작가가 10년 옥살이로 고역을 치르게 한 바로 그 소설! (《천지》1989년 발취련재,창작과 비평사 1996년 출판)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   김학철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1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29)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0)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1)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2)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3)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4)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5)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6)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7)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8) [김학철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39.끝)   김학철과 반우파투쟁 [수필] 《20세기의 신화》(김학철) [반우파투쟁에 관한 김학철수필 7편] 가해자와 피해자 [청취기록] 반우파투쟁과 《20세기의 신화》(김학철)  
3    김학철/정판룡 댓글:  조회:1585  추천:0  2024-08-23
원로작가 김학철선생과 《20세기의 신화》                              정판룡   (1)   1997년 이른 봄인것 같다. 나는 무슨 일로 한국에 나갔다가 서울 종로서점에서 생각밖에 갓 출판된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를 발견했다. 출판사와 출판기일을 보니 출판은 서울에 있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하고 출판시간은 1996년 12월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이 《20세기의 신화》로 하여 수많은 옥고와 고생을 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책은 처음으로 보는것이니 두말없이 한책 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3월 11일에 종로서점에서 샀다는것을 기록해두었다. 곧 읽어보려고 했지만 서울에서는 시간이 없었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내가 곧 병원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바람에 미처 읽을 사이가 없었다. 요지음 시간이 생겨 이 소설을 한번 자세히 읽었는데 내용인즉 전날 연길에 있던 임일평이라는 젊은이가 1957년 반우파투쟁때 우파분자로 되여 처음에는 기관에서 비판투쟁을 받다가 후에는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 가서 로동개조를 하고 돌아왔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摘帽右派)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는 것을 주로 쓰고있었다. 1957년에 전개된 반우파투쟁과 민족정풍은 주로 문예계를 중심한 인테리와 대학이나 당정기관에서 전개하여 이런저런 《분자》로 애매하게 붙잡혀나온 사람은 대부분이 임일평처럼 옳은 말, 속에 있는 말을 감히 한두마디 한 사회의 중견인물들이였다. 이런 사람들을 우에서는 50년말부터 공산주의농장이라는 강제로동수용소에다 모아놓고 로동개조를 시킨것 같다. 그러다가 60년대 중엽에 중앙에서 새로운 정책이 내려오면서 일부 《분자》들의 정치모자를 벗겨주었는데 그 사람들에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를 달아 주고 신임하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임일평이도 《모자를 벗은 분자》가 된 뒤에도 원래의 일을 하지 못하고 신문사 접수실에서 접수원 일을 했다. 설상가상으로 1960년부터 중국에는 《3년자연재해》라고 하여 종래로 보지 못한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일어났다. 확실한 통계가 나오지 않아 기근의 엄중정도를 알수 없으나 우리 대학에서도 한때는 가둑나무잎, 콩대, 강낭대를 삶아 대식품을 만들었으며 푸대죽만 한두해 먹었으니 소위 《분자》들이 강제로동을 하는 강제수용소가 그 난통에 어떠했으리라는것은 가히 짐작할수 있다. 1960년부터 1963년까지의 전국성적인 대기근은 《3년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났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것이 이미 밝혀졌다. 1957년부터 시작된 과격한 정치운동과 대약진, 인민공사화 등 좌적인 운동은 공산풍, 평균풍 등을 초래하게 한것이다. 거기다가 1960년부터 공개화된 중쏘분기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져 마지막에는 우쑤리강의 진보도(珍?島)에서 무장충돌까지 발생하는 정도에 이르렀다. 어제날의 형제국가는 우리의 적으로 되였으며 나처럼 국가의 파견을 받고 쏘련류학을 한 사람들까지 의심을 받게 되였다. 《20세기의 신화》에는 이런 내용들도 적지 않게 취급되고있다. 나는 바로 60년도 5월에 류학갔다 돌아왔다. 이때 학교에 돌아왔으니 이 시기가 아주 인상적이다. 돌아와보니 나의 스승 김창걸선생님은 58년에 내부민족주의분자 모자를 쓰고 임일평처럼 학부의 자료실에서 접수원노릇을 하고있었으며 나의 동창친구들도 여럿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로 되여 학교에서 로동개조를 하고있었다. 로시인 리욱선생은 57년도 대명대방(大鳴大放)때 북경에 연수 가고 학교에 없었기에 면했다고 하며 또 학교에는 《학생우파》라고 하여 학생속에서 잡혀나온 《우파분자》들도 여럿 있었다. 글을 가르칠만한 교원들이 모두 적으로 되여 잡혀가고 없으니 학교는 폭풍이 지난 들판처럼 쓸쓸하고 처량했다. 1960년 가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이 오면서 우리는 살기가 더 힘들었다. 김학철선생의 《20세기의 신화》에 묘사된 먹기를 위한 각종 사건들이 대학에서도 자주 일어났다. 1961년부터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대처하기 위한 각종 조치들이 우에서부터 내려오기 시작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일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 우경분자들에게 씌운 모자를 벗겨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우파분자, 민족주의분자라는 꼬리표를 그냥 달고 다니는것이였다. 로작가이신 김창걸선생은 운동때 민족주의분자로 확정은 되였는데 부교수이기에 성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고 하여 내부민족주의분자로 되고있었는데 비준이 없는 분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모자를 벗은 민족주의분자의 꼬리표를 달고 그냥 자료실의 접수원으로 계셨다.  이처럼 《20세기의 신화》는 나로 보면 근 6년간 쏘련에 류학갔다가 돌아와 문화대혁명의 대동란이 일어날 때까지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때였기에 퍽 인상적이며 실감적이다. 우리 조선족문학으로 볼 때 토지개혁, 해방전쟁, 항미원조, 그리고 50년대의 호조합작, 인민공사시기를 반영한 작품들은 많고도 많다. 그러나 《20세기의 신화》처럼 50년대중엽으로부터 무고하게 이런저런 《분자》의 정치모자를 쓰고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며 생활을 해야만 했던 우리 사회의 일부 우수한 인테리들의 생활과 《3년자연재해》로 하여 생겼다는 전국성적인 대기근을 폭넓게 반영한 작품은 없다. 형제민족의 문학에는 《강제로동수용소》거나 60년대의 대기근을 반영하는 작품들 (이를테면 왕몽의 소설)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김학철선생이 쓴 이 작품이 처음인것이다.   (2)   《20세기의 신화》는 전, 후편 도합 1350매의 규모이니 김학철선생의 장편가운데서는 중간에나 속할것이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년만 인 1965년 3월에 탈고 했다고 하니 1964년 년초에 쓰기 시작한것 같다. 당시 김학철선생은 몇해 강제로동수용소에서 로동개조를 했지만 잠시 모자를 벗은 분자라는 꼬리표가 달려 창작의 권리는 여전히 없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이때 《가중되는 정치적압박과 극단적인 궁핍》은 그로 하여금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는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보고 느낀것을 무슨 형식으로나마 쓸 생각을 한것이다. 격분된 심정으로 쓰게 되니 자연 개인숭배에 대한 말을 많이 하게 되고 그분에 대한 불경의 내용이 소설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다. 때는 또 바로 문화혁명이 일어날 때라 그 누가 그이에 대한 불경의 말 한마디만 해도 현행반혁명이 되던 때이니 김학철선생이 조용히 집에서 쓴 이 소설이 무사할수 없었다. 문화혁명이 일어나자 얼마 안되여 반란파들은 발표도 되지 않은 소설원고를 몰수해갔으며 예심으로만 7년 4개월, 정식공판으로 판결받은 감옥생활이 10년, 도합 17년 4개월의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김학철선생님의 말씀대로 이것도 력사적기록을 돌파했다. 나는 한동안 세계문학을 전공했으며 세계문학사도 여러 책 쓴 사람이기에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소설로 하여 큰 고생을 한 사람을 더러 알고는 있으나 김학철선생처럼 근근히 초고를 써놓은 미발표원고로 하여 근 20년 옥고를 치른 사람은 없는것 같다. 1977년 12월 만기출옥을 한 뒤에도 김학철선생은 옹근 3년을 완전실업자 대렬에 끼여 살다가 1980년에 최고법원에다 직소를 해서야 아직 발표되지 않은 미발표소설이라는데서 일이 락착이 되였다고 한다. 그리고 문제거리 《20세기의 신화》는 무죄판결이 공포된 뒤에도 7년이나 갇혀있다가 1987년 8월에야 비로소 임자에게 돌려졌다. 나는 《20세기의 신화》가 한국에서 출판되리라는것을 전혀 모르고 서울에 갔다가 우연히 그 책을 한권을 샀으며 김학철선생은 한국에서 출판되였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우연히 북경에서 김학철선생과 만나니 또 무슨 봉변을 받을려는지도 모르겠다는 근심을 했다. 그뒤 어떤 봉변이 또 그에게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 김학철선생의 속이 편안할수 없다. 그의 이런 정서는 그뒤 그가 발표한 많은 수필, 산문들에서 엿볼수 있다.   (3)   김학철선생은 1916년 출생이니 금년 만으로 85세가 된다. 지금 중국에는 파금(巴金)같은 로작가가 아직 생전이고 파금이나 빙심(氷心), 조우(曹遇)같은 백세로인이 한둘이 아닌것을 보면 이전에 비해 작가의 수명도 많이 길어진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반정황을 보면 수명은 길어도 창작수명은 길지 않다는것이다. 파금같은분은 건국초기부터 글은 별로 쓴것같지 않으며 빙심도 나이가 얼마간 들면서는 별로 쓰지 않았다. 우리 중국조선족 문단을 보아도 대부분의 작가, 시인들은 나이가 60~70이 되면 점차 적게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것이 상례로 되고있다. 장편소설 《부활》을 늙어서 완성하여 세상에 소문을 낸 로씨야의 대문호 똘쓰또이도 나이 80이 된 뒤에는 가정내부의 소소한 쟁론으로 출가하였다가 외지에서 사망하는 일이 생긴것을 보면 우리의 김학철선생처럼 85세의 고령이면서도 계속 쓰는 로인은 적어도 이 중국에는 더 있는것 같지 않다. 김학철선생은 몇해째 《장백산》 잡지에다 《초대석》이라는 란을 설치하여 매기 3~4편의 수필, 산문을 발표하고있으며 그외에도 이따금 이곳저곳에 발표한것을 합하면 한해에 근 20편의 글들을 발표하고있는 셈이다. 김학철선생은 1980년 12월에 《무죄를 선고한다》고 담당판사가 대중앞에서 랑독했으니 1956년부터 1980년까지 장장 24년을 창작권리를 박탈당했으며 환갑해가 퍽 지난 64세 때 다시 창작권리를 회복했으니 부득불 늙어서야 글을 쓰게 되였다. 남들은 집에서 편안히 할아버지노릇을 할  때 김학철선생은 그때에야 잃었던 시간을 찾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강철같은 그의 의지는 김학철선생으로 하여금 오늘까지 건강한 몸으로 글을 계속 쓰게 하는것 같다. 감학철선생은 어떻게 하든 잃었던 24년의 시간을 보충하고야 말겠다고 하셨다. 《이 점에서만은 하나님이 공정한것 같애. 잃은 시간을 보충하라고 나에게 시간을 주는것 같애.》 김학철선생이 몇해전에 골암(骨癌)에 걸리셨다는 말을 듣고 지금 정황은 어떤가고 물어보았더니 《몸에 난 암종만 열 개나 된다고 하는데 나는 치료도 하지 않고 거기에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아.》 기실 김학철선생님은 신체가 극히 불편한 몸이면서도 아침마다 그 높은 계단을 따라 내려와서는 부르하통강가에 나가 우리 젊은 사람 이상으로 운동을 하신다. 지난번 북경에서 《장백산작가상》 시상식이 있을 때 김학철선생은 원래 참가하려고 계획했는데 집에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부상을 입어 가시지 못했다. 김학철선생은 작가이고 투사이며 투사이며 작가이사다. 그는 일제시기에 반일투사 윤봉길의 애국행위에 감동되여 2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상해로 건너갔으며 중국륙군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대말에는 조선의용대에 입대한 반일투사일뿐만 아니라 광복후에도 정치, 사회 부조리와 감히 맞서 싸운것으로 하여 근 20년 령어생활을 하지 않을수 없었으며 24년이나 창작의 권리를 박탈당했었다. 그의 이런 투사정신을 떠나 그의 문학을 리해할수 없다. 그리고 김학철선생에게 있어 문학은 시종 그의 투쟁무기로 되여있었다. 김학철선생께서 건강장수하시고 더 많은 좋은 작품을 써주시기 바란다.                                                    2001년 8월         정판룡: 평론가, 연변대학 전임 부총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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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2024. 5. 16. 문학판 [시] 새벽(외1수)   김승종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남들을 위한 종을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만번 수천만번 쳐주셨소이다…   어머님 어머님 어머님은 자신을 위한 종을 단 한번도 아니 치시고 아니 치시고 가셨소이다…   어—머—님—     하늘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남들을 위한 하늘 그렇게도 그렇게도 수천수만자락 성스럽게 성스러이 펼쳐주셨소이다…   아버님 아버님 아버님은 자신을 위한 하늘 단 한자락도 아니 갖고 아니 갖고 가셨소이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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